Share

제961화

Author: 일설연우
봉 부인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눈물이 고였다.

그때 원 아주머니가 조용히 계속 말했다.

“작은 마님께서 대인의 아이를 가졌어도, 대감 마님은 결코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대감 마님은 유가에게 많은 은전을 지급하며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지요.”

“첫째는 유영이 아이를 없애고 더 이상 봉가 문턱을 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원 아주머니가 봉 부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부인과의 모든 왕래를 끊는 것이었습니다.”

봉 부인은 이 충격적인 사실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때 봉구안이 대신 말을 이었다.

“그때 지급된 은전은 유가가 안락하게 지내기에 충분한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나 유가의 아들은 방탕한 삶을 살며 재산을 탕진했죠.”

“이모 역시 봉가의 요구대로 아이를 지우지 않았고, 대신 아이와 많은 지참금을 안고 지방 상인과 재혼했습니다.”

“그 후 유가는 도박 빚으로 인해 강주에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끝내 거절당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봉구안이 강주에 사람을 보내 조사한 결과였다.

봉 부인은 이 모든 전말을 알고 나자 가슴이 답답해지고 귀가 멍멍해지며, 주위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가족과의 단절이 억지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가족들이 봉가의 돈을 선택하고 그녀를 버렸던 것이었다.

자신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여긴 부모와 형제들의 배신에 그녀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봉구안은 크게 놀라며 소리쳤다.

“여봐라! 어서 어의를 불러라!”

그녀는 곧장 어머니를 침상으로 옮기며 바쁘게 움직였다.

원 아주머니는 이 모습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 손으로 부인을 들어올리다니… 힘이 정말 대단하시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의가 도착했고, 뒤이어 소욱도 나타났다.

장모님이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 일이 심각해질까 걱정되어 서둘러 내전으로 향했던 것이었다.

그는 어의가 침을 놓는 모습을 보며, 곁에 서 있는 봉구안을 발견했다.

그녀는 침상 곁에서 조용히 서 있다가 소욱이 다가오자 몸을 낮춰 인사했다.

“폐하…”

소욱은 재빨리 그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62화

    참장부.봉 부인은 한 시간 전에 깨어났으나, 궁에서 휴식을 취하라는 황후의 권유를 끝내 거절했다. 봉 부인은 동생 유영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아니, 꼭 전해야 하는 말이 있었다.궁에서 돌아온 봉 부인의 얼굴은 창백했고, 기운도 없어 보였다. 며느리 주씨가 부축해 침대에 앉힌 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어머님, 괜찮으세요? 궁에서 쓰러지셨다고 들었습니다.” 주씨는 궁에서 어머님이 기절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 입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봉 부인은 손을 들어 그녀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괜찮다. 잠시 후 손님이 올 테니, 오면 바로 이리 데려오너라.” “네, 알겠습니다.” 조금 뒤, 유영이 도착했다. 주씨는 유영에게 가볍게 예를 갖춘 뒤 봉 부인에게 말했다. “어머님,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녀는 두 살 된 딸을 보러 잠시 자리를 비웠다. 요즘 딸은 무척 보채는 시기였다. 봉 부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나갈 때 문은 꼭 닫아주렴.” 문이 닫히자, 방 안에는 두 자매만 남게 되었다. 유영은 봉 부인 옆에 앉아 다급히 물었다. “언니, 황후마마께선 뭐라고 하시던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유영은 이미 마음 속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황후의 생모인 언니가 나섰는데, 황후가 그 말을 따르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황후가 친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건 불효라는 것이 그녀의 논리였다. 봉 부인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유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 두 자매는 어찌나 가까웠던지, 서로 숨기는 일 없이 모든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나 지금 두 사람은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유영아, 너와 대인이 오래전부터 그런 사이였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니?”봉 부인의 질문에 유영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언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와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63화

    참장부. 유영은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눈물로 호소했다. "언니, 그때 저는 너무 충동적이었고 너무 어리석었어요." "언니가 봉가에 시집가는 걸 보고 질투가 났었어요. 정말 받아들일 수 없었죠." "제가 먼저 봉 대인을 알았고, 이미 봉 대인과 은밀히 혼인을 약속까지 한 사이였잖아요." "어째서 봉 대인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언니를 아내로 맞으려고 하는지 수도 없이 생각했어요." "어떻게 그런 엄청난 수모를 견딜 수 있었겠어요?" "부모님과 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제가 이런 일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어렸어요. "그리고… 그 당시 봉 대인을 정말로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래서 그런 일을 저지르고 말았던 거예요." 봉 부인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어릴 적부터 유영은 집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이였다. 가장 아낌을 받고 자란 유영이 갑자기 버림받고 배신당했으니, 황당한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봉 부인은 유영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잘못한 것은 바로 봉 대인이었다. 그가 자매를 망쳤다! 유영은 고개를 들어,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봉 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언니! 언니는 항상 절 아껴주고 보호해주셨죠. 그런데 제가 언니를 끝내 배신했어요." "이제야 모든 것을 깨달았어요. 정말 깊이 후회하고 있어요… 언니, 제발 절 용서해주세요…""정말 딱 한 번이었어요. 단 한 번의 실수로 아이를 가지게 되었을 뿐이에요." "맹세할게요. 그 이후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었어요." "언니, 부디 절 용서해주세요. 제가 지금 봉가에 시집가려는 것도 딸 아이에게 안정된 가정을 만들어주고,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고 싶어서예요." "만약 이게 언니와 제 사이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봉가에 시집가지 않을게요! 아니, 안 갈게요. 네? 언니가 원한다면, 딸 정희를 데리고 강주로 돌아가서 다시는 언니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요! 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64화

    정희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니, 이걸 어쩌죠? 도대체 누가 우리를 이런 지경에 몰아넣었나요?" "분명 질투심에 사로잡힌 누군가가 이모님께 험담을 퍼뜨린 게 틀림없어요!" 유영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지만, 노련한 상인의 날카로운 눈빛이 번뜩였다. "다른 사람이 아니야. 바로 황후지." "황후라고요?" 정희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우리가 황후마마께 무슨 잘못을 했다고요? 왜 황후마마는 우리를 조사하고 다니시는 거죠?" 유영은 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자신의 추측이 거의 확실하다고 믿고 있었다. "네 이모가 궁에서 나오자마자 그동안의 일을 물으셨단다. 틀림없이 황후마마께서 알려준 게야." 정희는 마치 퍼즐이 맞춰지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황후마마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일을 벌일 수 있겠어요?" "어머님, 그럼 이모님께서 뭐라고 하셨나요? 우리를 아예 외면해버리시겠다고 하셨나요?" 유영은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난 네 이모의 친동생이야. 친정에서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데, 누가 우리 사이를 그렇게 쉽게 갈라놓을 수 있겠니?" "아무도 나만큼 언니를 잘 아는 사람은 없어. 언니는 마음이 여린 편이야. 오늘 아침 내가 무릎 꿇고 눈물을 보였으니, 언니의 마음도 분명 흔들렸을 거야." 정희는 어머니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한결 안도하며, 어머니의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렸다. "어머니, 정말 대단하세요! 그럼 우리 추석 궁중 연회에는 그대로 참석할 수 있는 거죠?" 유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궁중 연회에 참석하는 일은 잠시 미뤄야겠다." "오늘 네 이모가 경계를 조금 내려놓게 만든 것만으로도 충분해. 너무 욕심 부리지 말자." 정희는 이 말을 듣고 실망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면 어쩌라는 거예요, 어머니? 이번에 궁에 못 들어가면 전 대체 언제 황제 폐하를 만나고, 또 언제 그분의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건가요?" 유영은 딸의 입을 급히 막으며 날카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65화

    아침 햇살이 은은하게 퍼지는 가운데, 봉 부인이 마차에서 내리자 유영의 얼굴에 즉시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녀는 서둘러 다가가 상냥하게 불렀다."언니."봉 부인은 부드러운 걸음으로 다가가 유영과 함께 마차에 올랐다.마차 안, 봉 부인은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영아, 황후께서는 겉으로야 엄해 보이시지만, 속정이 깊은 분이야. 우리 모두 한 가족이니만큼, 너희 모녀를 잘 보살펴 주실 거란다."유영은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과연 황후가 자신을 진심으로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단순한 시간 끌기에 불과한 걸까?만약 후자라면, 황후는 그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속내를 감춘 인물이었다.머릿속이 복잡해진 유영은 봉 부인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음에도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어차피 그녀에게는 모두 쓸데없는 이야기일 뿐이었다.……참장부.봉안진이 막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아내 주씨가 기쁜 얼굴로 그를 방 안으로 끌어들였다.그녀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환희가 서려 있었다."서방님, 어머님께서 조만간 장주에 가신다고 들었어요."봉안진이 순간적으로 미간을 좁혔다."네? 부인, 정말입니까? 이렇게 갑자기 떠나신다고요?"주씨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황후마마의 뜻이래요."황후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무엇이든, 참장부에는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봉 부인이 떠나면, 자연스럽게 그 귀찮은 이모도 발길을 끊을 터였다.주씨는 지아비가 너무 깊이 고민하지 않도록 덧붙였다."서방님, 저야말로 어머님께서 오래 계셨으면 좋겠지만… 그 이모라는 분이 계속 찾아와서 집안일에 간섭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분과 마주칠 때마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봉안진은 아내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사실, 그 자신도 같은 생각이었다."부인, 우선 어머니를 좀 도와주세요. 먼 길을 가시려면, 필요한 짐들을 많을 겁니다."주씨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야 당연한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66화

    참장부 문 앞에서 호위병이 유영에게 서신을 건넸다."큰 마님께서 서신을 남기셨습니다."유영은 재빨리 서신을 받아 들고, 지체 없이 봉투를 뜯었다.[유영아, 일이 갑자기 결정되어 오늘 장주로 떠나게 되었다. 여정이 길어, 추석을 위해 장미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면 지체할 수가 없어 너와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망설이지 말고 궁에 가서 황후를 찾으렴. 황후께서 너와 정희를 잘 돌봐주실 거란다.]서신을 읽는 순간, 유영의 얼굴이 굳어졌다.이렇게 갑자기 떠난다고?뭔가 이상했다.마치 일부러 자신을 피해 도망치는 것처럼 말이다.심지어 이 서신이 정말 봉 부인이 남긴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하지만 유영은 이내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호위병을 향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이제 내가 누군지 잘 알겠지? 언니 방에 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 잠시 들어가야겠다."그러나 호위병의 태도는 단호했다."주인 어르신의 허락 없이는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작은 마님께 여쭙고 오겠습니다."유영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싸늘하게 빛났다.잠시 후, 보고를 마친 하인이 돌아와 말했다."작은 마님께서 지금 추석 연회 준비로 바쁘셔서 손님을 맞이할 여유가 없다고 하셨습니다.""남기신 물건이 있으시면, 큰 마님께서 돌아오신 후 찾아오시든지, 아니면 어떤 물건인지 정확히 말씀해 주시면 시녀를 시켜 찾아 드린다고 하십니다."유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이 주씨라는 여인, 정말 독하구나. 언니가 없다고 감히 나를 무시하는 건가?’‘산중에 호랑이가 없으니 원숭이가 왕 노릇을 하는구나!’겨우 한낱 며느리에 불과한 주씨 따위가 감히 그녀의 길을 막는단 말인가?그녀가 참장부에 들어가려 했던 이유는 단 하나.봉 부인이 정말 장주로 떠난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자신을 피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그런데 이제 그마저도 확인할 길이 막혀버렸다.유영은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어미가 불쾌함을 느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67화

    "어머니!"정희가 가게 밖에서 손을 흔들며 유영을 불렀다.그러나 유영은 어딘가 신경이 곤두선 듯한 표정으로, 무심하게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정희는 그녀의 팔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어머니, 이모님은요? 오늘 같이 오신다고 하셨잖아요!"그러나 유영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일단 여관으로 돌아가자."정희는 당황했다."하지만…!"그녀의 시선이 금류의로 향했다.이렇게까지 애써 찾아온 옷을 그냥 포기하라고?정희는 어머니의 손을 더욱 꽉 붙잡으며 애원했다."어머니! 가기 전에 저 주인장한테 말씀 좀 해 주세요.""이 주인장이 우리가 황후마마와 가족 관계라는 걸 믿질 않아요. 저에게 저 금류의를 팔지 않겠대요!"유영은 딸이 이 옷을 왜 사려 하는지 알고 있었다.추석 연회에서 황후 앞에 당당히 서기 위해서였다.그리고 그녀도 딸에게 연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약속했었다.하지만…누가 알았겠는가?봉 부인이 갑자기 장주로 떠나 버릴 줄은 말이다!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유영은 순간적으로 딸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걸 말해 줄 수는 없었다."내 말 들으렴, 일단 여관으로 돌아가자."정희는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어머니, 이모님은 대체 어디 계세요?"유영은 더 이상 감출 필요가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네 이모는 여기에 오지 않는단다.""뭐라고요?!"정희의 얼굴이 단숨에 굳어졌다.이모가 이 곳에 오지 않는다고?순식간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그때, 가게 주인이 조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말했다."이제 자리를 비켜 주시겠어요? 다른 손님들도 계시니…"짝!손이 올라갔다.정희는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가게 주인의 뺨을 후려쳤다."건방지게 어디서 말대답이야?!"갑작스러운 따귀에 가게 주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어떻게 아무런 죄 없는 사람을 때릴 수가 있는 거죠?!"정희는 콧방귀를 뀌며 도도하게 턱을 치켜들었다."내 말을 못 믿겠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68화

    황궁.봉구안은 추석 연회 전에 장공주의 혼처를 정하기로 했다.이것은 황제 소욱이 직접 그녀에게 맡긴 일이었다.이를 위해 봉구안은 자녕궁을 찾아 태후와 논의하기로 했다.태후 역시 딸이 다시 혼인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일찍이 혼인을 하고, 후사를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그렇지 않다면, 홀로 지내는 세월이 너무도 외롭지 않겠는가.하지만 봉구안은 태후의 말에 단호하게 반박했다."장공주께서는 거느리는 시녀와 하인들도 많고, 사교성이 좋아 벗도 널리 두고 계십니다.""결코 외롭지 않으실 것입니다."태후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이 아이,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그야말로 다 외부 사람들이 아니냐? 그런 이들이 어찌 진정으로 공주를 위할 수 있단 말이냐..."그때, 계 상궁이 다가와 공손히 알렸다."태후마마, 황후마마, 장공주께서 오셨습니다."자신의 혼인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장공주는 지체 없이 황궁으로 달려왔다.혹시라도 조금이라도 늦으면, 황제가 제멋대로 혼인을 정해버릴지도 모르지 않는가!장공주는 천천히 전각으로 들어서며, 두 사람에게 예를 갖췄다."어머니, 평안하셨습니까? 황후도 계셨군요."태후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맞았다."잘 왔다. 마침 황후와 네 혼인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단다."이때, 계 상궁이 나서서 덧붙였다."공주마마, 황제 폐하와 황후마마께서 공주님의 혼처를 신중히 정하기 위해, 궁중에서 특별히 아집을 열어 배필을 고르기로 하셨습니다."그러나 장공주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나는 그런 갓 쓰고 글만 읽는 남자들 전혀 취향이 아니다."태후는 혀를 찼다."너는 이 나라의 공주다. 순종적이고 예의 바른 부마가 가장 좋단다.""그런데 검과 창을 휘두르는 무관이라도 골랐다가, 혹여 너를 다치게 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장공주는 마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들은 듯, 입을 가리고 웃었다."어머니, 만약 정말 그런 사내가 있다면, 저는 오히려 더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69화

    봉구안은 어머니에게 유영 모녀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하였다.그렇기에 유영이 봉 부인의 서신을 들고 찾아왔을 때, 그녀는 내칠 수 없었다.그녀는 시종 오백에게 명령했다."두 사람을 영화궁으로 데려오도록 해라."오백은 공손히 예를 갖추며 답했다."명 받들겠습니다!"유영 모녀에게는 이번이 첫 궁궐 방문이었다.성벽만 보아도 압도될 만큼 웅장한 황궁. 그러나 성문을 넘어서니, 더욱 광활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규칙적으로 배치된 궁전들, 끝없이 이어지는 회랑과 정원, 곳곳에서 어른거리는 금빛 장식들…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길을 잃을 것 같은 미궁과도 같았다.선두에서 길을 안내하는 내시를 따라, 모녀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강주에서 살던 시절, 돈만큼은 부족함이 없던 유영이었다.그녀가 머물던 저택은 그 지역에서 가장 화려했으며, 정원이며 누각이며 온갖 명장들이 정성을 다해 조각한 곳이었다.하지만… 이곳, 황궁과 비교하면 그녀는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와 같았다.정희는 자연스레 주눅이 들었다.그녀의 두 눈은 놀라움과 동경으로 가득 찼다.‘왜 다들 궁에 들어가길 원하는지 알 것 같아…’이곳은 마치 구름 위의 천궁과도 같았다.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지상의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존재임이 분명했다.그녀 역시 이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했다.그러려면… 황자를 낳아야만 했다.머릿속으로 야망을 키우던 정희는, 조심스레 어머니에게 속삭였다."어머니, 황제 폐하는 어디 계신가요?"유영은 즉시 눈매를 날카롭게 바꾸며 딸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 입을 좀 다물거라. 궁 안에서는 항상 입을 조심해야 된다는 걸 잊은 게냐?’눈빛 하나로 경고를 보내는 그녀였다.궁중은 규율이 엄격한 곳이다. 감히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그렇게 모녀가 길을 따라가던 중,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마주쳤다.그중에서도 단연 화려한 장신구로 장식된 여인에게 눈길이 갔다.그녀의 뒤에는 수많은 시녀와 내시들이 따라붙어 있었다.내시가 발걸음을 멈추며 조

Latest chapter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7화

    그해 봉구안은 스스로 천지설산에 올라 자욱화를 채취하려다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그때 그녀를 구해준 이가 바로 염 신의였다.그 후 인연이 닿아 둘은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 무렵 염 신의는 약쟁이 독의 해독제를 연구하고 있었다.이에 봉구안은 그를 황성으로 데려왔다.그는 예전에도 한 차례 해독제를 만들어낸 바 있었으나, 중독자들에게 써보았을 때 뚜렷한 효과는 없었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진정한 해독제가 완성된 것이다.분명 기쁜 소식이었다.“염 신의 말로는, 홍련초 덕분에 그동안 풀지 못했던 원리를 비로소 깨달았다고 합니다.”“이미 중독자들에게 해독제를 복용시켰고 모두 회복되었습니다. 장순의 어머니까지도요.”장순은 아직 어린 유생이었으나, 과거 제후국들이 남제를 포위했을 당시 봉구안이 특별히 데려갔던 소년이었다.그는 적국을 향한 설전에서 통쾌한 활약을 펼친 바 있었다.그의 어머니는 오래전 약쟁이 독에 중독되어, 살아 있으되 정신이 나간 채 살아온 사람이었다.해독제가 생겼다는 건 의심할 여지 없이 경사였다.허나 좋은 일과 화는 언제나 함께 오는 법. 봉구안이 눈짓 하나만 보내도 소욱은 그녀의 속마음을 단박에 알아차렸다.그녀가 입을 떼기도 전, 소욱은 그녀의 팔을 가볍게 두드리며 오백에게 명을 내렸다.“사람을 붙여 염 신의를 철저히 보호하라. 해독제 이야기는 절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라.”오백은 곧장 명을 따랐다.밖에서 듣고 있던 진한길은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폐하께서는 왜 이렇게 오백을 쓰시는 걸까?’오백이 물러난 뒤, 소욱은 봉구안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해독제가 완성되었으니 약쟁이 독이 아무리 퍼져도 더는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다.”봉구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해독제는 결정적인 열쇠예요. 폐하, 문득 떠올랐는데… 담대연도 약쟁이 독에 중독된 사람이었죠?”소욱은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그 자에게도 해독제를 줄 것이다. 이제는 마음 놓고 쉴 수 있겠지?”“네.”봉구안도 지쳐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6화

    황제는 용좌에 앉아 날카로운 눈빛으로 문무백관을 훑었다.“과인이 황성을 비운 지 몇 달이 되었다. 그 사이 그대들은 더욱 해이해졌구나.”문무백관들은 몸을 낮추고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었다.소욱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조정에서 명하여 각지에서 약쟁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라 했거늘. 과인이 묻겠다. 너희는 이 사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대부분의 신하들은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사건 수사는 지방 관아의 일 아닌가.그들은 각자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면 되는 줄 알았다.그중 몇몇 관료만이 그나마 성의를 보이며 대답했다.“폐하, 신이 아는 바에 따르면 이 약쟁이 사건은 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독에 중독되면 사람은 이성을 잃고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예전에 천용회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약쟁이로 구성된 군단이 실제로 나타난 바 있습니다. 반드시 철저히 조사해야 할 사안입니다.”“폐하, 신이 들은 바에 따르면 동산국이 비밀리에 약쟁이를 양성하고 있으며, 병력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약쟁이 독도 동산국에서 흘러들어온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소욱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향해 눈빛을 더욱 날카롭게 세웠다.“약쟁이 사건은 백성의 생사뿐 아니라 나라의 존망에도 관련된 일이다. 너희 가문의 안위와도 맞닿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어찌 이리 무감각할 수 있느냐.”꾸짖음을 들은 관료들은 줄줄이 엎드려 스스로 죄를 청했다.“부끄럽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소서.”소욱은 그들을 곧장 벌하지는 않았다.대신 명을 내렸다.“과인이 너희들에게 직접 수사하라 명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것이다. 오늘부터 약쟁이 사건에 연루된 자가 있다면 스스로 고하라. 훗날 과인이 직접 밝혀낸다면 그 자는 반역죄로 다스릴 것이며 구족이 멸문당하게 될 것이다.”이것이 그가 내릴 수 있는 마지막 자비였다.신하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고, 감정은 드러내지 않았다.그중 몇몇은 속삭였다.“폐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5화

    봉구안이 약쟁이의 본거지가 황성에 있을 것이라 단언한 것은 근거 없는 말이 아니었다.그녀는 남제 전역의 지도를 꺼내어 소욱에게 설명했다.“정말 막다른 길에 몰려야 그들도 허점을 보입니다.”“이번에 문제가 생긴 도시들. 그 위치와 거리로 계산해 보면, 명령이 어디에서 내려졌는지 역산할 수 있어요.”지도 위에는 이미 여러 곳의 약쟁이 거점이 붉게 표시되어 있었다.최근 발생한 약쟁이의 운송 경로와 이동 시간, 중간에서 방향을 바꾼 흔적까지 더하면 본거지가 어느 지역인지 대략 짚어낼 수 있었다.이런 판단력은 전장을 누비는 장수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었다.봉구안은 시간과 거리의 계산만으로도 적의 주둔지가 어디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그래야 곧장 본진을 겨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소욱은 그녀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황성이라니… 정말 그곳인가.”역시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었다.……그들은 황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죽산진을 들렸다.황성으로 돌아가기 전 소탁을 보기 위함이었다.보아하니 소탁은 눈에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의원의 치료에도 차도가 없어 실명에 위험까지 있었다.소욱은 그를 데리고 황성으로 돌아가 태의에게 맡기기로 했다.이 작은 죽산진에서는 명의라 할 만한 자를 구하기도 어려웠다.자객의 습격을 떠올린 소탁은 마음이 무거웠다.그는 형인 소욱을 걱정하며 말했다.“약쟁이 때문에 미쳐 돌아가는 자들이 많아졌습니다. 폐하께선 이번 여정 내내 각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결국 피를 나눈 형제였기에 자신의 상처보다 제왕의 안위가 더 걱정되었다.봉구안은 하얀 천으로 눈을 가린 소탁을 바라보았다.그 모습이 유난히 연약해 보였다.그녀가 물었다.“열무신은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소탁은 고개를 저었다.“그 자객을 쫓아 한참을 달아났습니다. 호위들도 따라잡지 못했지요. 혼자서 움직였으니, 살아있다면 다행이고… 혹시 도중에 남긴 흔적이라도 있다면 좋겠습니다.”봉구안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리 무공이 뛰어난 자라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4화

    그 닭장수들은 고문을 당해 사람 꼴이 아니었다.그들은 결국 사실대로 털어놓았다.“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저희는 정말 모릅니다. 그 닭들을 거래한 뒤, 그걸 어디에 쓰는지도 몰랐습니다.”“누가 높은 값을 제시하길래,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열무신은 무고한 이를 죽이지 않았다.그들이 실토한 이상 그는 더는 손을 대지 않았다.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마침 소탁과 마주쳤다.소탁은 내내 문밖에 서서 안에서 들려오는 말들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소탁은 성품이 부드럽고 인자했다.이런 고문이나 심문 같은 일은 애초에 잘하지 못했다.황제가 곁에 붙여준 암위들도 제법 실력은 있었지만, 닭장수들을 떨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하지만 열무신은 달랐다.그는 그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지옥불에서 기어나온 귀신 같았다.맑은 날임에도 사람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 만큼, 존재감 하나로 공포를 자아냈다.소탁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보아하니 저들은 그저 도구일 뿐이군요.”열무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손에 묻은 피를 닦고, 수건을 바닥에 던지듯 놓으며 말했다.“잔챙이들이지. 아무리 캐물어도 쓸만한 정보는 없었습니다.”배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닭장수 몇 명을 잡아봤자 소용없었다.열무신의 마음엔 짙은 짜증이 피어올랐다.약쟁이의 수법은 치밀하고 조심스러웠다.겹겹이 함정을 깔아놓은 듯, 쉽게 뿌리를 드러내지 않았다.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어둡게 눈을 떴다.속이 타들어갔고, 분노를 쏟아낼 데도 없었다.소탁은 그의 좌절과 혼란을 읽고 조심스레 말했다.“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 집에서 따뜻한 밥이라도 드시고 길을 나서시지요.”그의 말 뜻은, 강주로 돌아가 황제와 황후에게 상황을 전하라는 뜻이었다.하지만 어쩐지 그 말은 사형수에게 마지막 식사를 권하는 것처럼 들렸다.열무신은 입꼬리를 비뚤게 올렸다.“이런 와중에도 밥이 넘어간단 말입니까.”소탁은 전혀 언짢은 기색 없이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제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3화

    봉구안은 자신의 친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그녀는 몰랐다.그가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기억력을 지녔고, 내용을 명확히 꿰뚫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그의 말에 따르면, 어릴 적부터 그런 재능이 있었다고 했다.하지만 점쟁이는 이렇게 말했었다.지나치게 총명하면 오래 못 간다.그래서 그는 일부러 자신의 능력을 억눌렀고, 남 앞에서는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다만 집중만 한다면, 단 한 번 본 것도 전부 기억할 수 있었다.“이 십수 년간 강성에 들어온 외지인들의 성씨, 이름, 무슨 일로 들어왔는지, 머문 날짜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우선 가족을 동반하거나, 노약자와 함께 들어온 이들은 제외했습니다. 대부분은 친척을 만나거나 생계를 위해 온 이들이니까요.”“그리고 또 걸러냈습니다. 강주에 지인이 있는 사람들 말이예요. 그런 이들은 약쟁이와 같은 은밀한 조직과는 어울리지 않지요. 저들은 언제나 혼자 움직이니까요.”봉 대인의 말은 모두 일리가 있었다.결국 그의 탁월한 기억력이 있었기에, 수많은 인원을 기억하고 하나하나 대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최근 2년간 입성한 외지인에 대해서는 여관마다 숙박 기록이 남아 있어, 그것도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었다.물론 개인적인 판단이 섞이긴 했지만, 봉구안은 이 명부가 충분히 쓸 만하다고 보았다.봉 대인은 말을 덧붙였다.“폐하, 특히 수상하다 여겨지는 인물들은 모두 붉게 표시해 두었습니다.”소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럽게 말했다.“알겠다. 만약 이 명부에서 약쟁이의 흔적을 찾아낸다면, 자네는 큰 공을 세운 셈이니라.”그러자 봉구안이 단호하게 나섰다.“설령 단서가 나온다 해도, 그건 시작일 뿐입니다.”“이전에 잡은 자들도 그랬지만, 약쟁이는 각자 다른 방식과 규율을 따르고 있어, 흔적을 따라간다 해도 본거지에 닿기는 어렵습니다.”소욱 역시 같은 생각이었지만, 장인어른에게는 현재 채찍보다는 당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하지만 봉구안의 태도는 여전히 차가웠다.봉 대인의 얼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2화

    맹건은 갑작스레 봉 대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단서라도 잡으셨습니까?”봉 대인은 옷깃을 한 번 여미더니, 진지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며칠 전부터 실종자 명단을 정리하라는 명을 받았어.”“근데 그 일은 다른 동료들이 거의 다 끝내버렸더라고. 그래서 난 좀 색다른 방법을 생각해봤지.”맹건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다그쳤다.“요점만 말씀해 주십시오. 뭘 찾으신 겁니까?”봉 대인은 그의 다급한 말투에 살짝 통쾌함을 느꼈다.하지만 지금은 공과 사를 구분해야 될 때였다. 감정에 휘말려 일을 그르칠 수는 없을 노릇이었다.특히 맹건의 아들 맹성주는 훌륭한 장군이었다. 그런 식으로 목숨을 잃다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그는 곧 말을 이었다.“외지인 명단을 전부 뒤져봤지. 대조를 거듭해서, 수상한 인물들을 걸러냈어. 강주의 실종 사건은 바로 그 사람들이 오간 이후부터 부쩍 많아졌거든. 그들 중에 분명 뭔가 수상한 놈이 있어.”맹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하지만 곧 의문을 품은 듯 봉 대인을 바라보았다.“이렇게 중대한 일인데, 어째서 폐하께 보고하지 않으셨습니까?”봉 대인의 이마가 일그러졌다.“그걸 자네가 왜 캐묻는 거야?”사실 그는 오늘 황제 폐하께 생신 예물을 드리며 이 이야기를 꺼내 큰 공을 세우고자 했다.하지만 그 꼴을 당하고 나니, 더는 얼굴을 들고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차라리 이 늙은 맹건에게 전부 넘겨주고, 알아서 하게 시키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황제와 황후 앞에서 또 체면 깎을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그는 이내 품속에서 장부 한 권을 꺼내 맹건에게 건넸다.맹건은 몇 장을 넘겨보더니 감탄한 듯 봉 대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형님 정말 잘하셨습니다.”수년 많게는 십수 년간의 외지인 유입 기록을 추려낸 이 장부는 보통 정성으로는 해내기 어려운 작업이었다.기억력이 나쁘거나 끈기가 없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이 사람… 제법인데? 역시 명문가 출신은 다르군.’맹건은 그 길로 장부를 들고 황제와 황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1화

    방 안.봉 대인은 몸을 돌려 맹건에게 등을 보인 채 옆으로 누웠다.더는 이 늙은 영감과 말 섞기 싫었다.지금 그는 고집불통 아이 같았다.무슨 말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맹건은 애써 인내심을 눌렀다. 한숨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형님, 이 나이에 싸우고 삐칠 일이 뭐가 있습니까.”“두 딸 일로 사이가 틀어진 거 저도 잘 압니다.”“인정할 건 합니다. 구안인 저랑 아내가 십수 년을 키웠습니다.”“친딸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여겨왔지요. 그때 형님께선 그 애를…”“우린 버린 게 아니야!”봉 대인이 벌떡 소리쳤다.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맹건이 되물었다.“그렇다 해도 구안이를 저희 맹가에 맡긴 건 사실 아닙니까.”“저희가 키웠고, 저흴 부모라 불렀습니다. 그 아인 그렇게 저희 딸이 된 거죠.”봉 대인은 말이 막혔다.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맹건은 자리에 앉아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이젠 우리 곁에 남은 건, 구안이 하나뿐입니다.”“장미는 어쩔 수 없이 저희 성을 따랐지만, 마음은 여전히 친부인 형님께 있죠.”“하지만 구안은 달라요. 성주가 죽고, 그 애가 아니었으면… 제 아내도 아들을 따라갔을 겁니다.”“그러니 형님이 불편하다고 해서, 저희가 구안이와 정을 끊을 순 없습니다.”“우리 마음속에서, 구안이는 진짜 딸이나 마찬가지입니다.”“이 일은 형님이 잘못하셨습니다.”“지금 형님께서는 저희 아이를 뺏으려 하시는 겁니다.”봉 대인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곧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그건 불만의 표시였고, 동시에 나가라는 뜻이었다.맹건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을 이었다.“형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형님이 부럽습니다.”“딸 둘에 아들 하나.”“누굴 더 아끼고 덜 아끼고를 떠나,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복이지요.”“성주를 다시 살릴 수 있다면, 그 아이가 누구를 아버지라 부르든 기꺼이 받아들였을 겁니다.”남자라면 통하는 감정이었다.맹건의 진심이 전해졌는지, 봉 대인의 숨소리가 잦아들었다.이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0화

    봉 대인은 오늘 봉구안의 탄신일을 맞아 직접 발걸음을 옮겼다.비록 궁에 몸을 두진 못하지만, 아비 된 도리로 성의는 보이고 싶었다.며칠을 두고 장터를 돌며 고르고 또 골라, 마침내 고운 비취 하나를 준비했다.객잔에 도착하자, 마당에서 강림이 그를 맞이했다.“폐하와 황후마마께선 지금 배 타고 나가셨습니다. 금세 돌아오진 않을 듯하니, 대인께서 맡겨주신다면 선물을 대신 전달해드리겠습니다.”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봉 대인은 품 안의 비단 상자를 바짝 끌어안았다.눈빛에는 노골적인 경계심이 배어 있었다.강림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내 꼴이 무슨 도둑이라도 된단 말인가?’“나중에 직접 다시 오지.”봉 대인은 짧게 대꾸한 뒤 등을 돌렸다.그의 눈에 강림 같은 자들은 그저 싸돌아다니는 무림객일 뿐이었다.딸의 성정이 저리도 제멋대로가 된 이유 중 절반은 맹건 같은 무사놈 때문이고, 나머지 절반은 저런 하류들과 어울려서라고 여겼다.그는 강림이 어떤 인물인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직접 찾는 편이 빠르리라 생각하였다.황제와 황후가 함께 나갔다면, 배를 띄운 곳은 정해져 있었다.강주에 그런 호수는 딱 하나뿐이었다.강주, 천자호.호숫가에 도착한 봉 대인의 발걸음이 멈췄다.그가 마주한 광경은, 생각보다 훨씬 쓰라렸다.화려한 화선이 고요히 물가에 정박해 있었고, 그 위에서 몇몇 인물들이 막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그중 한 명, 황제를 그는 단박에 알아보았다.봉구안이 강주에 내려온 사실을 감추고자 했고, 출입 시엔 분장을 하거나 신분을 감췄다는 것도 알고 있던 터라, 그녀를 곧장 알아보지 못한 건 납득할 만했다.그러나,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얼굴을 보게 되었다.맹건.그 자가, 여기에 있다니.쾅.봉 대인의 가슴이 요동쳤다.심장을 그대로 움켜쥐는 듯한 통증이 번졌다.그가 이 자리에 있다는 건, 황제가 부른 것이겠지.황제가 그 무사 하나를 위해 이토록 정성을 들인 건, 결국 봉구안 때문이지 않겠는가.황제는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99화

    “북방으로 가겠다고?”소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곧장 봉구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그 말이 진심인지, 그녀의 눈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그는 여러 가능성을 떠올려봤지만, 봉구안이 아이를 위해 북방으로 간다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선택이었다.그렇게 되면, 두 사람은 당분간 떨어져 있어야 한다.황제와 황후… 부부가 멀리 떨어져 지내는 일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맹 부인 또한 그 점이 걱정스러웠다.봉구안의 지아비는 그저 그런 사내가 아니었다.한 나라의 군주였고, 궁궐엔 이미 수많은 후궁이 있었다.그가 과연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을까?세상일은 알 수 없고, 사람의 마음은 더더욱 그렇다.지금은 아무리 다정해도, 시간이 지나고 자리가 비면 변할 수도 있는 일.그녀는 봉구안이 훗날 후회하는 상황만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남자의 마음은 바람에 날리는 연 같아서, 한 번 놓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르지 않은가.맹 부인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마마께서 북방으로 태교를 가신다면, 저희 부부가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기꺼이 도와드릴 일이긴 하나… 결국은 임시방편일 뿐입니다.”“한 번쯤 폐하와 다시 상의해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그녀는 느꼈다.황제의 반응만 봐도 이건 미리 상의된 결정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그러자 봉구안은 잔잔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사모님, 오해십니다.”“실제로 북방에 갈 생각은 없습니다.”그녀의 말투는 조용했지만 안에는 단단한 결심이 담겨 있었다.굳이 떨어져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녀도 외로웠고, 두려웠다.봉구안은 또렷하게 덧붙였다.“그저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게 하려는 것입니다.”“서여국이든 남제든, 지금은 그 어느 쪽도 방심할 수 없는 때입니다.”“그래서 양쪽 모두를 잠시 속이는 수밖에요. 지금은 그게 가장 안전합니다.”“속인다는… 말씀입니까?”맹건은 미간을 찌푸리며 되뇌었다.하지만 소욱은 가장 먼저 그 뜻을 깨달았다.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