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대인은 웃으며 예를 갖춰 말했다.“마마, 이 아이는 마마께서 낳으신 황자마마이십니다.”모용란은 눈빛을 잠시 흐리며 그를 되물었다.“그때 그 아이는 결국 지키지 못했다. 분명 유산되었을 텐데…”“또한, 나는 황제 폐하와 절대 사사로운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마 대인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마마, 이 아이는 마마께서 낳으신 황자마마가 맞습니다.”“지금부터라도 그리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희가 이 아이의 출생을 누구로 정하느냐에 따라, 이 아이의 신분이 바뀌게 되는 것이죠.”모용란의 눈빛은 매우 날카로웠다. 예전의 온순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설마 이 아이를 이용해 복국을 하려는 것이냐?”“황제 폐하는 결코 그리 쉬운 분이 아니시다.”“절대 쉽게 양보하지 않으실 것이다.”“폐하는 분명 이 아이가 자신의 자식이 아님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그런데 어찌 출처가 불명한 사생아에게 황위를 물려주겠느냐!”마 대인은 침대 옆으로 다가가 아이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천천히 말했다.“그것은 마마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황성.봉가 저택.봉 대인은 매우 의아하게 생각하였다.이전에 황제는 분명 자신의 딸을 후궁으로 세우겠다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대체 왜 지금껏 소식이 없는 것일까?황제가 봉구안을 향한 마음을 접은 것일까? 아니면 봉구안이 또 다시 입궁하는 것을 거절한 것일까?여러가지 가능성을 떠올리자 봉 대인은 화가 나서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조만간 봉구안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꼭 물을 것이라 다짐하였다!만약 전자라면 황제는 왜 그녀와의 혼인을 깨뜨린 것일까?더욱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봉 대인이었다……그날 조정 회의.봉 대인은 온통 그 어리석은 딸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그때 갑자기, 옆에서 한 사람이 털썩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간언을 시작했다.“폐하! 절대로 안 됩니다! 대군들은 성을 지키고 적을 막기 위한 군사입니다. 어떻게 강호 사람을 찾기 위해 군을 동원하실 수 있겠습니까! 비록
조정에서는 모든 이가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처절한 외침이 들려왔다.“폐하! 제 딸이 대체 어찌되었단 말입니까!”봉 대인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목소리가 갈라졌다.그는 방금 막 자신의 딸이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소욱의 눈빛은 어둡고 깊어, 마치 짙은 안개가 드리워진 듯했다.“생사가 불확실하다.”봉 대인의 마음속은 격랑이 일며 분노가 치밀었다.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곁에 무릎 꿇고 있던 동료 관리를 붙잡아 거칠게 뺨을 후려쳤다.그러면서 외쳤다.“방금 너는 뭐라 하였소?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다 들었소! 자네를 죽여버릴 것이오! 왜 내 딸을 구하지 않는 것이오! 어? 왜!”“그 아이는 열여섯 살에 전장에 나갔던 아이오! 겨우 열여섯 살에 말이오! 자네 딸은 열여섯에 뭘 하고 있었소!”“이 입을 찢어버릴 것이오!”그렇게 맞은 문관은 그저 맹하니 있을 뿐이었다.‘미친 게 틀림없군!’다른 노신들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 그 ‘미친 사람’에게서 최대한 떨어지고자 했다.봉 대인은 너무 오래 참아왔다.그는 비밀을 지켜야 했기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속이 너무나 답답했다.‘그 아이는 나의 친딸이란 말이다!’조상들이 정한 터무니없는 규칙이 아니었다면, 어찌 그녀를 버릴 수 있었겠는가!그녀가 전장에서 공을 세울 때마다 그는 얼마나 자랑스러웠던가! 하지만 그는 기뻐할 수도, 사람들에게 떳떳이 말할 수도 없었다.저 용맹한 사람이 자신의 딸이라 외칠 수도 없었다.이 비겁한 자들은 그녀가 전장에서 싸우고 있을 때, 그녀를 향해 오히려 반역을 꽤하고 있다고 비난했다.그는 그때부터 이들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이제 황제가 이 비밀을 공개했으니,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 아이는 제 딸아이입니다! 미래의 황후가 될 자란 말입니다! 왜 구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대체 왜!”봉 대인은 미친 듯이 소리치며, 손에 잡힌 관리를 놓자 또 다른 사람을 때리러 달려들었다.그가 때린 사람들은
외딴 초가집 밖에서, 흰머리의 노인이 약로 아래 불을 지키고 있었다. 어린 약동이 집 안에서 뛰어나오더니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스승님! 스승님! 그 분이 방금 움직이셨습니다! 이분…깨어나신 게 아닐까요?”노인은 두 손을 등 뒤로 하고 허리를 굽힌 채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살펴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몸이 얼어붙어 버렸으니, 깨어나긴 어렵겠구나.”어린 약동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그럼 어쩌죠, 스승님! 제가 지금 약초를 캐올게요. 아주 많이, 많이 캐오면 되겠죠?”……천지 설산.맹 부인이 설산에 도착했지만, 호위병들이 그녀를 산 아래에서 막아섰다. 결국 오백이 와서 그녀를 데리고 들어갔다.“부인, 저희가 아무리 찾아봐도 소장군을 찾지 못했습니다.” 오백은 말라 비틀어진 모습이었다.“이게 소장군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겠죠?”그는 맹 부인을 바라보며, 희망을 담은 답변을 기다렸다. 맹 부인은 하늘로 솟아오른 설산을 올려다보며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구안에게는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많아.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아이가 아니야.”그 아이의 의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그녀는 살아남고자 한다면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그 믿음을 품은 채, 맹 부인은 굳건히 앞으로 나아갔다.……황성.옥양산, 선방.태황태후는 잠든 어린아이를 보며 기쁨과 안타까움이 가득한 얼굴이었다.그토록 바라던 중손이 드디어 생겼구나.그녀는 이 아이를 반드시 황상에 앉히겠다고 다짐하였다.어제 모용란이 갑자기 아이를 안고 찾아왔을 때 그녀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태황태후의 눈엔 한없이 자애로움이 흘렀고, 옆에 있는 모용란을 돌아보며 물었다.“이 아이의 이름은 지었느냐?”모용란은 얼굴에 근심을 띤 채 대답했다.“아직 없습니다.”“서두를 필요는 없다. 황제와 아이가 서로를 인정하게 된 후에 황제가 이름을 짓게 하거라. 아이고, 황손… 정말 잘생겼구나. 그동안 네가 얼마나 고생했을까.” 태황태후는 마음이 벅차오르는 듯했다
정오.왕가의 조묘.태황태후는 노신들과 황실 자손들을 데리고 약속대로 자리를 잡았다.수많은 왕자들은 한 달 전, 황제가 천지설산에서 사람을 찾으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틈을 타, 황성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황성 근처에 몰래 모여 있었다.그들은 이미 태황태후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 편지에는 아첨하는 말들이 가득했다.오늘 태황태후가 그들을 조묘로 불러 모으면서 각자 친위병을 데려오라 했을 때, 그들은 오늘 일이 단순치 않음을 직감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의 가마가 조묘에 도착했다.소욱은 밝은 황색 용포를 입고, 옥관으로 머리를 묶었다.귀 옆에는 몇 가닥 은색 머리가 가려지지 않은 채 드러나 있었는데, 이는 고독함과 세상사의 무거움을 짊어진 자의 모습이었다.그의 눈에는 어떤 색채도 담겨 있지 않았다.그 시선이 사람에게든 물건에게든 머무는 곳에는 죽음의 기운이 감돌았다.태황태후는 소욱을 오랜만에 보았다.그는 머리가 하얗게 샌 채였다.그 모습에 그녀의 가슴이 쓰라렸다.단지 소환 하나로 인해, 황제가 이렇게 변한 것인가?그는 그 여인을 얼마나 아꼈기에 이렇게까지 된 것인가?태황태후는 생각했다.이런 모습은 선제의 원비를 향한 사랑에 비할 만했다.그녀는 그를 보며 마음이 아프면서도 화가 났다.황가에서 이런 사사로운 감정은 용납되지 않는다.지금의 그 모습은 선제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었다.왕자들은 소욱을 향해 예를 갖췄다.“폐하를 뵙습니다.”소욱은 그들을 무시하고, 그들 뒤의 친위병들을 훑어보았다.조묘에 도착했으니, 천자라 할지라도 먼저 선조들에게 향을 올려야 했다.노신들은 뒷편에서 작은 목소리로 수근거렸다.“태황태후께서 우리를 왜 부르셨지?”“글쎄, 이 진영을 보니 아무래도 심상치 않군.”조상들의 위패 앞에서, 소욱은 정면을 바라보며 저음으로 물었다.“할마마마께서 저를 부르신 것은 소환을 해친 자를 밝히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이곳에서 또 다른 일들을 꽤하고 계셨던 것입니까?”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왕자들
낙담한 태황태후는 모용란과 황자가 모두 잡혀간 것을 보자, 날 선 말투로 꾸짖었다.“황상! 네 친자식조차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냐!”“정말로 그 소환에게 미쳐버렸구나!”“오늘, 조상들 앞에서 이 아이를 태자로 책봉하고, 영비를 궁으로 들여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애초에 네가 소환을 찾으러 떠나는 걸 내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그 천지설산은 '불귀산'으로 불리는데, 네가 황제임에도 그런 위험한 곳에 가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제후들은 하나둘씩 태황태후의 말에 동조하기 시작했다.“폐하, 신도 태황태후의 의견에 찬성합니다!”“폐하, 태황태후께서 하신 말씀이 옳습니다. 친혈육마저 외면하실 수는 없습니다!”“폐하, 이는 정말 잘못하신 것입니다!”태황태후는 노련한 눈으로 신하들을 둘러보며 단호히 말했다.“그대들 생각은 어떠한가!”신하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 한 목소리로 외쳤다.“폐하, 부디 태자를 조속히 책봉하십시오!”황제가 이 날들 동안 보여준 행동들은 신하들로 하여금 언제 사고가 날지 몰라 늘 조심스럽게 만들었다.이제 황제가 불귀산으로 떠나겠다고 나서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남제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따라서, 조속히 후사를 정해 국본을 안정시키는 것이 최우선이었다.황제가 후계로 내세울 다른 자식이 없다면, 앞에 있는 이 아이가 유일한 태자 후보임이 틀림없었다.“폐하, 부디 태자를 조속히 책봉하십시오!” 신하들은 다시금 목소리를 모아 청했다.소욱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검은 안개라도 낀 듯 어두워졌다.그는 차갑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모용란을 바라보았다.“모용란, 내가 널 건드린 적이 있었느냐?”모용란은 단호한 눈빛으로 맞서며 말했다.“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설마...”그녀는 갑자기 커다란 눈을 뜨며 뒤늦게야 깨달은 듯 억울하고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설마 제 아이가 폐하의 자식이 아니라고 의심하시는 것입니까? 폐하! 어찌 제 정조를 의심하시는 것입니까!”이때, 진한길이 나서며 말했다
조묘 밖은 모두 태황태후의 친병들로 가득 차 있었다.이 병사들은 선제께서 그녀에게 남겨준 군사였다.태황태후는 차마 이렇게 쓰게 될 줄 몰랐지만, 오늘만큼은 황제를 압박하지 않을 수 없었다.황제가 무정하고 무리한 짓을 먼저 시작했으니, 그녀는 깊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태황태후의 늙고 주름진 얼굴에는 결연한 기색이 드리워졌다.“황상, 오늘 네가 태자를 세우지 않으면, 할미는 절대로 네가 떠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이어 왕자들에게 말했다.“너희들도 모두 나와 뜻을 같이해야 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 건 남제를 지키기 위함이다!”모든 신하와 왕자들도 황제가 지나치다고 생각했기에, 이번만큼은 태황태후의 편을 들었다.“저희도 동의합니다. 태황태후께서 옳으십니다! 황제 폐하, 태자를 세우십시오!”이때 무용하게 보였던 모용란이 아이의 손을 잡고 용감히 앞으로 나왔다.그녀는 두려움 없이 황제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폐하, 태황태후께서 이렇게 하시는 건 모두 폐하를 위한 일입니다.”“폐하께서 불귀산에 가시겠다는 고집을 부리시면, 그 어른께서 어찌 마음 편히 계실 수 있겠습니까?”“우리 아이를 태자로 세우기만 하신다면, 폐하께서 더 이상 근심하실 일도 없을 것입니다.”“폐하…”그녀는 황제 가까이 다가선 뒤,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폐하, 폐하의 생모께서 왜 돌아가셨는지 기억하시지요?”“만약 태자를 세우지 않으신다면…”“제가 그 진실을 온 천하에 폭로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소욱은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그대로 그녀에게 손바닥을 내리쳤다.이 한 방은 사정없이 내리쳐져 모용란이 몇 걸음 뒤로 밀려났고, 속이 찢어질 듯 고통스러워 보였다.“어머니!” 아이는 그녀를 향해 달려가며 두려움에 떨었다.아이의 눈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서려 있었고, 소욱을 향해 증오 어린 눈길로 노려보았다.이때 마 대인이 나서서 모용란을 지켰다. 그는 음흉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황제 폐하, 소인은 폐하께서 빨리 결단을 내리시길
이 말이 떨어지자, 원래도 갈피를 잡지 못하던 사람들은 이젠 완전히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하지만 소욱만은 침착하고 태연했다.황제로서, 태산이 무너져도 얼굴을 바꾸지 않을 정도의 평정심을 가져야 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소아에게 독을 쓴 이유가 다 있었군…”“첫째는 소환을 제거하기 위해서, 둘째는 주국공을 선성에서 떠나게 만들어 선성을 무주 상태로 만들려 한 것이군. 천룡회, 너희는 정말로 일석이조로 움직였구나.”마 대인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폐하께서는 남들과는 다르게 생각이 빠릅니다.”“하지만 아쉽게도… 이제야 눈치 채신 게, 너무 늦었군요!”그는 냉정한 표정으로 바뀌며 말했다.“북연 대군이 남제를 공격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폐하께 달려 있습니다.”“지금 즉시 태자를 책봉하고, 퇴위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신호를 보낼 것입니다. 북연군은 신호를 보면 즉시 철수할 것입니다.”“하지만 만약 그러지 않으신다면… 남제가 위험에 빠지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지금 선성이 무주 상태가 되면서, 남제는 이미 둘로 나뉘었습니다. 북부와 서부의 대군이 지원을 올 수 없으니, 북연군은 중부로 곧바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황성을 직격할 수도 있죠! 폐하,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태황태후는 분노하여 외쳤다.“무엄하다! 북연이 너에게 얼마나 큰 이익을 주었기에, 너는 감히 네 나라를 이렇게 배신하느냐!”태자 책봉과 퇴위는 분명히 다르다.그들이 이런 계획까지 품고 있을 줄이야!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모용란을 노려보았다.“란아! 너도 이들과 한패란 말이냐!”모용란은 고통스러운 가슴을 움켜쥐고 답했다.“고모님, 원망하지 마세요… 제가 이렇게 하는 것도 모두… 아이를 위해서입니다.”마 대인은 무릎을 굽혀 아이의 얼굴을 만지며 웃음을 터뜨렸다.“태자 전하, 미래의 남제의 군주께 인사드립니다.”아이는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천진난만한 얼굴로 마 대인을 바라보았다.마 대인은 다시 일어나 소욱을 바라보며
왕가의 조묘는 장엄하고 위엄 있는 장소였지만, 현재는 반역자들에게 점령당한 상태였다.“놓으시오... 제발! 날 만지지 마시오!”한 후궁이 땅바닥에 눕혀진 채 발버둥치며 울부짖고 있었다.그녀가 필사적으로 저항할수록 반역자들의 태도는 더욱 오만해졌다.갇혀 있던 우리 안에서 장공주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그 여인을 건드리지 마라! 어서 나를 풀어주거라! 나는 장공주다!”장공주는 생각했다. 만약 맹 소장군이 여기에 있다면, 그도 반드시 자신을 희생해서 이들을 구했을 것이다.궁녀로서 살아가는 이들은 황제에게서 외면받으며 이미 충분히 불쌍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이제 이런 수모까지 당해야 하다니, 참으로 가증스러웠다.태후는 딸의 외침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급히 장공주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딸을 꼭 끌어안았다.한편으로는 옆에 있는 녕비도 품에 안으며, 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었다.마 대인은 음침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장공주를 끌어내라!”장공주는 황제의 친누이였다.태후의 마음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안 돼!누구도 그녀의 딸을 건드릴 수 없다!태후는 죽을 각오를 다지려던 찰나,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네가 그들을 전부 죽인다 해도, 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소욱의 반응은 극도로 냉정했다.그의 시선은 멀리, 먼 곳을 향해 있었다.“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너희들에게 죽임을 당했다.”“내가 황위를 포기하기를 바란다면, 소환을 돌려줘야 할 것이다.”녕비는 놀란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들었느냐! 폐하께서 얼마나 무정한지!”“우리가 왜 폐하를 위해 고통받아야 하느냐! 너희들은 참으로 어리석구나!”그녀의 외침이 있은 후, 조금 전까지 땅바닥에 억눌려 옷이 거의 벗겨질 뻔했던 후궁이 기운을 쥐어짜며 악을 질렀다.“맞아! 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냐!”“그들은 궁에 들어온 지 여러 해가 지났건만, 단 한 번도 황제의 총애를 받은 적이 없었다!”“폐하께서
선성 밖에서는 매서운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수십만 남제 장병이 다양한 무기를 들고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그 소리는 선성 위를 울려 퍼지며, 마치 갇혀 있던 거대한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위압감을 주었다.성 안에서도 그 소리가 선성을 흔들 만큼 강렬하게 울렸다.봉구안은 전마를 타고 성벽을 응시하고 있었다.갑옷 아래 드러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대단한 힘이 느껴졌다.성문은 이미 단단히 닫혀 있었고,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도망칠 수 없는 상태였다.성루 위에서는 단춘이 놀란 얼굴로 멍하니 서 있었다.그 옆의 부장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장군, 저건 동방군입니다. 대체 어떻게 선성에 나타난 걸까요?! 분명 감주에 있어야 할 자들인데…”하늘에서 날아온 것도 아닐 텐데,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할까?북연의 황제는 성 밖 동방군의 존재에 크게 분노했다.그는 단춘의 옷깃을 움켜잡고 호통을 쳤다.“감주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그런데 이게 대체 뭐냐! 단춘, 정말 잘도 해냈구나!”단춘은 당혹스러웠다.본인도 전혀 모르고 있던 일이었기에 황제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그때 수화부 연합군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남제가 당신들을 속인 게 확실하군!”황제는 점점 격분하며 단춘을 더욱 매섭게 쏘아봤다.“동방군이 너희 뒤를 따라왔는데도 모르다니, 이런 실력으로 남제를 우리 북연과 나누겠다고? 정말 가소롭구나!”단춘은 황제의 손을 뿌리치며 반박했다.“폐하, 성 밖에 있는 건 일부 동방군에 불과합니다.”“게다가 우리 동부 연합군만 속은 것도 아닙니다.”“남부 연합군인 수화부는 어땠습니까? 그들이 남제군을 알아챘습니까? 똑같이 속았으면서 왜 저희에게만 책임을 묻습니까?”동부 연합군의 장수들도 이에 동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남제의 계략은 워낙 교묘합니다. 감주를 언제 빠져나왔는지, 우리는 알 수 없었습니다.”“폐하, 북부 연합군이라고 해서 뒤따라오는 남제군을 완벽히 파악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그만들 하십시오.
강력한 적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어리석은 동맹이었다.단춘은 선성의 옥석비를 손에 넣고 싶었지만,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그는 정정당당히 조유관을 공략하며 남제에 진입했다.그런데 수화부 연합군은 도대체 뭘 하는가?공격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 동부 연합군의 성과를 가로채려는 것은 아닐까?그들의 이런 태도는 단춘을 화나게 했다.그렇다고 이미 도착한 연합군을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결국 단춘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모두 들어라. 먹을 것도 쉬는 것도 뒤로 미뤄라.”“다른 나라보다 앞서 선성에 도달해야 한다!”“예!”……감주.대하국 연합군은 성 밖에서 남제 동부군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남제 황후 봉구안이 이미 거미줄이라 불리는 비밀 통로를 통해 대군을 이끌고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말이다.그녀는 소수의 병력을 남겨 감주에 대규모 병력이 주둔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이 계책에 말려든 동부 연합군은 발이 묶이고 말았다.그 사이, 봉구안의 동부군은 비밀 통로를 통해 이미 묵성에 도착해 있었다.그곳에서 그녀는 동방세를 만났다.동방세는 거미줄 비밀 통로의 마지막 관문을 개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그는 고된 작업 중에도 농담을 잊지 않았다.“이번 거미줄 개조를 위해 황제께서 이 장군의 10만 대군을 내게 맡기셨소.”“덕분에 난 한동안 대장처럼 군림하며 유세를 떨었네.”황제가 보낸 인력 덕분에 그는 북부와 동부의 거미줄 비밀 통로를 효율적으로 개조할 수 있었다.이제 마지막 관문만 마무리하면 되는 상황이었다.봉구안은 그의 쇠약해진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동방세, 남제 장병들을 대신해 깊이 감사의 뜻을 전하네.”“선성으로 갈 계획이오?”동방세가 웃으며 물었다.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소.”동방세는 들고 있던 망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여기 작업만 끝내면 범진과 함께 선성에서 보도록 하세.”그는 선성에서 큰 전투가 벌어질 것을 직감
남강.서왕은 수화부 연합군의 갑작스러운 철수가 단순한 계략일 것이라 의심했다.하지만 밤중에 직접 확인한 결과, 그들의 철수는 패주와 다름없었다.식기조차 챙기지 못하고 떠난 흔적이 역력했으며, 모닥불조차 꺼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조사를 거듭한 끝에, 수화부 연합군이 선성의 보물 이야기를 듣고 급히 이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 예기치 못한 상황에 서왕은 당황스러웠다.적군이 사라졌으니, 그는 계속 방어를 유지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한편, 수화부 연합군은 선성을 향해 급히 북진하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병사들은 강추위를 뚫고 말을 달리며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선두에서 말을 탄 장수가 외쳤다.“장군의 명령이다! 속도를 더 내라!”병사들은 지친 표정으로 웅얼거렸다.“우리가 가봤자 보물이 우리 손에 들어올 것도 아닌데, 이렇게 서둘러야 하나?”“그러게! 선성 보물 얘기를 듣자마자 진지를 철수했지만, 보물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잖아. 그 유명한 옥석비도 하나뿐인데, 그게 우리 차지가 되겠어?”“명령이 내려왔으니 따를 수밖에. 우리가 무슨 선택권이 있겠어?”……동산국 황궁.동산국 황제는 어마장에서 여전히 기력이 넘쳤다.오십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이어 과녁 중심을 명중시켰다.곁에 있던 신하가 조심스럽게 보고했다.“폐하, 수화부 연합군이 남강 공격을 포기하고 북상하여 조유관으로 향했다고 합니다.”조유관은 대하국 연합군이 최초로 돌파한 약점이었다.더 많은 연합군이 조유관으로 몰려드는 상황은 연합군에게 유리했다.그러나 그로 인해 남부 방면의 공격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황제는 활을 내려놓았다.머리칼에는 은빛이 드리워졌지만, 여전히 강인한 모습이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담대연의 소식은 알아왔느냐?”“담대연은 여전히 남제에 억류되어 천옥에 갇혀 있습니다.”황제는 다시 활을 들어 두 개의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한 번의 발사로 과녁을 뚫자, 곁에 있던 신하가 찬사를 보냈다.“폐하, 화살로 만물을
남강.서왕의 어깨는 부상으로 아파왔고, 완부옥은 표면적으로는 화목한 부부처럼 행동하며 그의 곁에 머물렀다. 그러나 막상 군막 안에 들어가면 두 사람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으로 나뉜 듯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완부옥은 저녁을 지나치게 많이 먹고 배가 부른 상태였다. 갑작스런 복통에 허리를 구부린 그녀를 보자, 서왕은 급히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유화! 군의를 데려오라!”그는 완부옥의 뱃속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지 걱정했다. 하지만 완부옥은 그저 체한 것일 뿐임을 알고 있었다.“필요 없습니다!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마십시오.”내심 불안했던 그녀는 거짓 임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한 벌레가 최근에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 태아의 상태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군의가 와서 진찰을 하면, 모든 게 드러날 위험이 컸다.서왕은 그녀의 상태가 진정되는 것을 보고도 여전히 안심하지 못했다. 그녀를 침대에 앉힌 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아이는 괜찮은가?”그의 시선은 그녀의 배로 향했다. 완부옥은 워낙 마른 체형이라 배가 불러도 잘 티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느슨한 옷을 입고 그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서왕은 그녀의 진짜 상태를 전혀 알지 못했다.일반적인 임산부라면 나타날 만한 불편함이 완부옥에게는 전혀 없었다. 이런 점들이 서왕에게 의심을 품게 했다.그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졌다.“우리 아이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드디어 이 남자가 의심하기 시작한 걸까? 완부옥은 식은땀을 흘리며 속으로 초조해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을 유지했다.“어머,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아이는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제가 어미인데, 대체 무슨 일이 있겠어요?”그녀는 손가락으로 그의 옷깃을 살짝 건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마지막 기회를 줄 테니 솔직히 말해라.”그는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완부옥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평소에는 성격이 부드럽던 이
대하 연합군은 묵성을 함락한 뒤, 곧바로 선성을 향해 진격했다.장수들 중 신중한 성격의 인물이 말했다.“단 장군, 지금까지의 남제 원정이 너무 순조롭습니다.”“선성에서 매복을 준비한 건 아닌지 염려됩니다.”단춘 역시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지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동부군은 현재 감주에 주둔 중이었다.그는 전력을 선성으로 보내면서도 일부 병력을 감주로 보내 허위 공격을 감행하고, 동부군을 묶어두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만약 선성에 매복이 있다 해도, 우리의 10만 대군에 북부 연합군까지 합하면 수십만 병력인데, 선성 하나를 못 뚫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그럼에도 신중한 장수는 여전히 망설였다.“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남제의 전략은 적을 깊이 유인하려는 술책 같습니다.”“단 장군, 처음 계획대로 동부군을 견제하며 진격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단춘은 인내심이 바닥난 듯 짜증을 드러냈다.“유인이라니? 남제가 그렇게 어리석어 감주를 내놓고 선성에 매복을 펼친다는 말인가?”“만약 남제가 유인책을 쓴다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감주로 끌어들이는 것이겠지!”“그리고 한 가지 더 알아둬라. 만약 북연이 먼저 선성에 도달해 옥석비를 차지한다면, 우리는 북연의 손발 노릇을 하게 될 거야!”“북연이 동부를 맡으라고 한 것은 그들이 다 해먹으려는 술책일 뿐이다.”“기다릴 테면 기다려 봐. 하지만 대하는 그렇게 바보처럼 속지 않는다!”선성은 반드시 차지해야 한다!북연 황제 역시 선성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그들은 남하하는 도중 남제 잔병들에게 여러 차례 매복 공격을 받았으나, 모두 격퇴시키며 계속해서 진격했다.남제군이 계속 후퇴하면서, 연합군의 사기는 높아졌다.그러다 어느덧 설날 전야가 되었다.하지만 그날은 평소와 달리 정적이 감돌았다.백성들은 해가 지자마자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설날을 맞이하기보다는 다가오는 전란을 피해 숨으려는 모습이었다.황성.궁궐 안, 후궁들은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의지하며 밤을 지새웠다.그들은 한 손에 작은
군막 안.서왕은 한쪽 어깨를 드러낸 채 앉아 있었고, 군의가 그의 상처에서 독을 빼내고 있었다.예리한 단검을 손에 쥔 군의가 상처를 살피자, 서왕은 입에 물고 있던 두꺼운 수건을 꽉 깨물었다.그 모습을 본 완부옥이 눈썹을 찌푸렸다.“이미 독화살을 뽑아냈는데, 왜 또 칼을 드는 거죠?”호위 유화가 대신 답했다.“군의께서 남아 있는 독을 빼려면 살을 도려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을 듣자마자, 완부옥은 소리 내어 웃었다.“살을 도려낸다고? 군의가 혹시 적국에서 온 첩자가 아닐까요?”그녀의 말에, 군의의 손이 떨렸다.“부인, 어찌 그런 망언을!”서왕은 입에 물고 있던 수건을 깨물며 눈빛으로 완부옥에게 조용히 하라는 경고를 보냈다.그러나 그녀는 군의를 밀어내고 서왕의 상처를 살폈다.피부가 갈라지고, 독이 퍼지며 상처 주변이 검게 변해 있었다.흔한 여인이라면 얼굴을 돌리며 기겁했을 터였다.그러나 완부옥은 전혀 다르게 반응했다.그녀는 머리를 갸우뚱하며 무심하게 말했다.“이게 그렇게 심각한 건가? 별거 아니네.”그 말에 유화는 참지 못하고 외쳤다.“부인, 아직 독이 남아 있습니다! 군의께서 말하길 어서 전하의 몸을 도려내 독을 빼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그러나 완부옥은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독을 빼는 방법이 꼭 살을 도려내는 것뿐인가?”그녀는 품 속에서 작은 항아리를 꺼냈다.군의는 그것을 보며 해독약이라고 생각했다.유화 또한 그럴 것이라 짐작했다.그러나 항아리가 열리자, 그들이 본 것은 해독약이 아니었다.완부옥은 맨손으로 뚱뚱하고 하얀 벌레 하나를 꺼내더니, 서왕의 상처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두었다.군의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전하! 조심하십시오! 저것은 독충입니다!”유화도 경악하며 외쳤다.“부인, 대체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시끄럽다!”완부옥은 눈살을 찌푸리며 꾸짖었다.“한번만 더 내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다면 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군의는 이성을 잃고 외쳤다.“남강의 독충은 맹독입니다! 부
대하 사국 연합군이 묵성을 함락시키려 진격했을 때, 그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마주했다.묵성은 조유관과 똑같이, 텅 비어 있었다."말도 안 돼!"단춘은 차마 현실을 믿지 못했다.이 짧은 시간 동안, 도시 전체의 사람들이 대체 어디로 간 것이란 말인가?그들이 모두 감주로 이동한 것일까?그때, 정찰병이 헐레벌떡 뛰어왔다."보고 드립니다! 장군! 묵성에 적군이 없습니다!"연합군은 도시 곳곳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단 한 명의 인간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심지어 개미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니..."묵성은 한때 인구가 많은 번화한 도시였다.그런데 지금은 마치 유령 도시가 되어 버린 듯했다.연합군은 묵성에 주둔했지만, 밤이 되자 몰아치는 한파와 함께 불길한 분위기가 마을 전체를 감쌌다.캄캄한 어둠 속에서, 차가운 바람이 기괴한 신음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병사들은 모닥불을 피워 음식을 끓이려 했지만, 그제야 그들은 깨달았다.‘군량이 얼마 남지 않았어.’주군이 모여 있는 대장막 안.장수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단춘을 바라보았다."단 장군, 이건 분명 남제의 계략입니다!""우리가 이미 두 번이나 빈 성을 마주하면서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졌습니다.""더욱이, 우리는 전쟁을 통해 식량을 보충하려 했으나, 기대와 달리 얻은 것은 없습니다!""장군! 이곳에서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내일도 계속 진군하시겠습니까?"단춘의 표정은 냉랭했다.눈빛은 날카롭게 빛났고, 깊은 고민이 느껴졌다."묵성이 비어있다면, 사람들은 모두 감주로 이동했을 것이다.""그러나 감주에 적의 매복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섣불리 공격할 수 없다."그는 고개를 들어 정찰병을 바라보았다."북연은 어떤가? 북부 연합군은 어디까지 진격했지?"정찰병이 빠르게 답했다."장군! 북부 연합군은 이미 풍양까지 진격했습니다.""풍양은 작은 군현으로, 바로 인근에 있는 박주를 넘어가면, 그다음은 곧바로 선성입니다!"회의실은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북연군의 속도는
이촌은 그야말로 유령 마을이 되어 있었다.사람의 흔적조차 없었다.연합군은 황망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고, 북연 황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마지막 생존자를 끌어오라 명령했다.화살에 맞은 병사는 상처를 끌어안은 채 끌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폐하, 분명 이곳입니다! 바로 이 마을에서 기습을 당했습니다!”하지만 북연 황제는 차가운 시선으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여기엔 아무것도 없다. 귀신조차 보이지 않는구나.”조사에 나섰던 정찰병들도 나섰다.“폐하, 틀림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마을에는 백성들이 있었습니다!”북연 황제의 손이 힘껏 말고삐를 쥐었다.“찾아라.”병사들은 마을 곳곳을 수색했지만, 백성은커녕 전날 죽은 병사들의 시신조차 사라져 있었다.그 순간, 눈보라가 더욱 거세졌다.쌓인 눈이 빠르게 대지를 덮으며 모든 흔적을 삼켰다.북연 황제의 눈빛이 점점 날카로워졌다.“행군을 계속한다.”남쪽으로 내려가는 길,남제의 백성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심지어 임현에 도착했을 때도 상황은 같았다.원래라면 사람이 넘쳐나야 할 곳, 그러나 마을은 텅 비어 있었다.병사들 사이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퍼졌다.“이건 이상하다. 아무리 전쟁이 나도, 이렇게까지 흔적 없이 사라질 리가…”“설마, 남제 황실이 모든 백성을 대피시킨 건가?”전쟁이 벌어지면, 백성들은 피난길에 오르기 마련이었다.이는 그리 드문 광경이 아니었다.그러나 이번은 달랐다.정찰병들이 조사한 결과, 십 리 안에는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그것은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북연 황제는 손을 들어 병사들을 조용히 시켰다.“정찰병을 보내라.”이튿날 새벽.한 정찰병이 중대한 정보를 가지고 돌아왔다.“폐하, 확인된 바에 따르면 남제 황실은 일찍이 백성들을 남쪽으로 대피시켰습니다!”“그들이 향하는 곳은… 선성입니다!”선성.남제의 전략 요충지이자, 철벽 방어를 자랑하는 도시.이곳만 함락하면, 남제 황궁까지 진격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북연 황제는
동방이 함락된 데 이어, 이번에는 북방까지 무너졌다.끝없는 위기였다.조정 대신들은 안색이 창백해졌고, 궁중 곳곳에서는 남제가 정말 끝장나는 것이냐는 말이 오갔다.그러나 용상에 앉은 소욱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그는 남제의 황제, 나라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질 수 없었다.조정이 파한 후, 문무백관들은 삼삼오오 모여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어찌 된 일인가! 북방이 무너졌다니!”“연합군은 어디까지 쳐들어온 것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방이 안전하다고 하지 않았는가!”“황후마마께서 그토록 신중하게 군을 이끌었음에도 동부를 지키지 못했으니, 서부와 남부도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겠군.”혼자의 힘으로 십여 개국의 연합군을 막는 것은 결국 무리였던 것일까.많은 대신들이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황궁 안.궁궐 안에도 불안감이 퍼졌다.후궁들은 벌써부터 눈물을 흘리며 두려워했다.그들은 조묘의 난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성이 무너지고 적군이 들어오면… 우리는 가축과 다를 바 없어요.”“북연은 호랑이 같은 나라라더니… 그들에게 잡히면 끝장입니다.”그녀들은 북연과 대하의 야만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포로가 된다면, 그들에겐 지옥보다 더한 운명이 기다릴 터였다.자녕궁.자녕궁에서도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녕비는 잔뜩 겁에 질린 채 태후에게 물었다.“고모님… 남제는 정말 망하는 겁니까?”태후는 이미 곳곳의 정보를 통해 전황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태평성대에는 꽃이 피지만, 난세에서는 한낱 들풀에 불과하구나…”“내가 널 지키지 못할 날이 올 수도 있다. 어서 이 병을 받거라… 들고 있다가 꼭 필요할 때 사용하거라.”그녀는 조용히 손을 뻗어, 작은 약병을 녕비의 손에 쥐어주었다.그 의미는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녕비의 손이 떨렸다.그녀는 약병을 쥔 채, 눈을 뗄 수 없었다.“고모님…”태후는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애처롭게 미소 지었다.“내가 너를 궁에 들인 것은 잘못된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