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의 고유한 유산이 빼앗기는 것을 두려워한 남제의 신하들이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폐하, 절대 불가하옵니다! 아직 이 현영석 광산이 제대로 채굴되지도 않았고, 얼마만큼의 현영석을 얻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사옵니다. 설령 충분히 많다 해도, 이 나라에도 주고, 저 나라에도 준다면 남는 게 거의 없을 것이옵니다!”“맞습니다, 폐하! 이것이야말로 헛된 수고만 하는 격이 아니옵니까?”이 말에 사신들은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바로 맞섰다.“헛된 수고라니요? 저희는 오십만 냥을 내어 장인들의 품삯으로 쓸 의향이 있사옵니다!”“황제 폐하, 저희 북월도 은 오십만 냥을 내겠사옵니다!”그러자 남제의 백발 노신이 기세등등하게 나섰다.“지금 이게 돈 문제는 아니지 않소! 현영석 같은 귀중한 물건이 과연 얼마의 가치를 지니는지, 그대들도 다 잘 알고 있지 않소!”물론 그들은 알고 있었다.현영석은 매우 드문 희귀한 광물이었다. 지난 백 년 동안 북연국만이 독점하고 있었고, 그 현영석의 풍부한 자원 덕분에 강력한 ‘화룡’을 주조하여 전장에서 무패의 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타국에서는 현영석을 조금이라도 얻기 위해 비굴한 태도로 천금의 값까지 치렀으나, 손에 쥐는 양은 얼마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북연이 아예 타국에 현영석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기까지 했다. 이제 남제에서 현영석 광산이 발견되었으니, 어느 나라라도 이 이권에 한몫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했다. 설령 자신들이 많은 이익을 얻지 못하더라도, 남제가 이를 독점해 두 번째 강국으로 떠오르는 일은 용납할 수 없었다.소욱은 술잔을 홀짝이며 차가운 눈빛을 드리웠다. 오늘 생일 연회가 참으로 따분하기 그지없었다.사신과 남제의 신하들이 계속 언성을 높이며 다투고 있을 때, 서녀국의 사신이 입을 열었다.“황제 폐하, 서로 한 발씩 물러나 보는 건 어떻사옵니까?”“저희 서녀국은 현영석을 요구하지 않겠사옵니다. 다만 남제께서 새로 개발한 죽화총의 제작을 중단해 주셨으면 하옵니다. 죽화총을 제작
사신들은 허리에 밧줄이 묶여 있어 몸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말들이 뛰기 시작하자 목숨을 부지하려고 사신들은 다리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두 다리가 네 다리의 속도를 따라갈 리 만무하여 이내 쓰러져 땅바닥에 질질 끌려 다녔다.아무리 모래 땅이라지만 이 고문을 견뎌내기란 여간한 일이 아니었다. 몇 바퀴가 지나자 사방에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옷이 닳아 살가죽이 벗겨지고, 땅바닥에 피자국이 번졌다. 사신들은 연이어 자비를 구했다.“제발,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폐하!”“폐하, 감히 다시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사옵니다!”나머지 사신들은 그 모습을 보고 다행히 함부로 나서지 않았음을 내심 감사했다. 그러나 소요하는 그들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소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술을 마시고 음식을 즐겼으며, 인명이 오가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였다. 연회 분위기는 차갑고 무거웠으며, 누구 하나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하지만 그런 가운데, 유독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남강의 사신이자 여장부인 완부옥이었다.그녀는 남강의 사신이 말에 끌려다니는 참혹한 광경을 보면서도 마음의 짐 없이 술과 음식을 즐겼고, 심지어 궁녀에게 술을 더 올리라 지시할 정도였다. 술에 거하게 취한 뒤, 그녀는 해장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잠시 물러나기까지 하였다.그 모습을 살피던 봉구안은 그저 묵묵히 지켜보며 눈에 냉정한 빛을 담았다.이윽고 두 잔의 차가 지나간 후, 한 나이 많은 신하가 염려의 뜻을 담아 간언하였다.“폐하, 저들은 타국에서 온 사신들이옵니다. 만에 하나 불상사가 발생하면 남제의 대국 체통이 손상될 수도 있사옵니다.”온화하고 어진 성품으로 알려진 서왕도 거들며 폐하께 자비를 청했다. 후궁 중에는 평소 자비심이 깊은 모용선이 일어나 부드럽게 조언했다.“폐하, 오늘은 폐하의 생신이옵니다. 피를 보면 길하지 않으니, 부디 액운을 피하시옵소서.”소욱은 시선을 옆으로 돌려, 봉구안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기는
연상은 내전으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이 사실을 알렸다.봉구안은 암기를 정리하던 중 이 말을 듣고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유사양이 직접 말한 것이냐?” 연상은 고개를 저었다. “직접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그런 낌새였어요…”“또 돌아가신 영비마마 이후로는 폐하께서 그 누구도 자진궁으로 부르신 적이 없다 하니, 더욱 그 말이 오싹했습니다…”“마마, 오늘 밤 정말 자진궁에 가실 건가요?” 봉구안은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건 네가 염려할 일이 아니다. 다만 당장 할 일이 있으니 어서 가서 하도록 하여라.” 연상은 무슨 중대한 일이라도 있는 줄 알고 귀를 기울였으나, 봉구안이 지시한 것은 약환을 가루로 갈아 놓으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벌레를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이 계절에는 궁에 독충이나 뱀이 나오지 않을 터인데 말이다.그날 저녁, 봉구안은 자진궁으로 향했다. 환관이 그녀를 안내하였다. 황제의 침전은 다른 궁실보다 더더욱 엄숙하고 위엄 있게 솟아 있었다.정문에서 주전까지 이어진 백옥 바닥은 아흔아홉 개의 돌로 깔려 있었으며, ‘자진궁’이라 새겨진 세 글자는 황금빛으로 빛나며 젊은 황제의 포부와 위엄을 나타내고 있었다. 주전에는 용과 봉황이 정교하게 조각된 기둥이 서 있었고, 특히 용의 눈빛은 마치 진짜 용이 돌기둥을 휘감고 있는 듯 날카롭게 빛났다. 감히 정면으로 올려다보기가 어려운 기세였다.봉구안의 허리춤에는 향낭이 매달려 있었다. 어둠 속에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주머니에서 약가루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는 남쪽 지방의 독충들을 억제하는 약재로, 그녀가 특별히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이날 연회에서 남방에서 온 완부옥이 도중에 자리를 비운 것을 떠올리니, 궁 안에 무언가를 남겨두었을 가능성이 컸다. 남방에서 헌납한 여인의 이례적인 행동을 떠올리자, 봉구안은 그들이 소욱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되었다. 그래서 오늘 밤 황제가 그녀를 부르지 않았더라
책상과 옥좌 사이의 거리는 한 사람만 간신히 설 수 있을 만큼 좁았다. 봉구안은 책상을 등지고, 소욱을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소욱은 옥좌에 앉아 상반신을 여전히 곧게 세웠지만,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는 자세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그녀가 갑자기 다가온 이유를 알지 못했다. 혹 투항하여 껴안으려는 건가 싶었으나, 그녀는 그저 그 자리에 직립해 있을 뿐이었다. 봉구안은 즉각적으로 다가왔지만, 그럴 새도 없이 책상 위에 벌레가 꿈틀거렸다. 그것은 갈색을 띠며 지렁이처럼 보였고, 작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그러나 봉구안은 그 즉시 알아챘다. 바로 '천주충'이었다! 평범해 보이지만, 체내로 들어가면 순식간에 번식하여 무한히 증가하는 벌레였다. 이 벌레들은 사람의 내장을 갉아 먹고 뼈에 붙어, 결국엔 사람을 껍데기만 남기고 파괴해 버렸다. 이 급박한 순간, 그녀는 가장 짧은 거리에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한 손을 허리에 두고 약 가루를 움켜쥐고 내공을 이용해 뒤로 흩뿌렸다. 그러자 천주충은 그 자리에서 즉시 굳더니 바람에 사라져 버렸다. 봉구안이 책상의 천주충을 제거하자, 갑자기 허리로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소욱의 강인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아 단번에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녀는 그대로 그의 품에 부딪힐 뻔했으나, 재빠르게 반응해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짚어 충격을 완화했다. 그러나 숨 돌릴 틈도 없이 그녀의 입술이 갑작스레 닿았다. 봉구안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눈앞에는 소욱의 날카롭고 냉소적인 눈빛이 있었다. ……궁 밖에서는 유사양이 먼지떨이를 손에 쥔 채 지루한 표정으로 하늘의 별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때, 진한길이 급히 궁으로 들어갔다. 유사양은 황후가 안에 계시다는걸 알리려 했으나, 촛불이 꺼지지 않은 걸 보고는 아무 일 없으리라 생각하며 말하지 않았다. 또한, 진한길이 너무 급히 전각 안으로 들어간 터라 그는 더더욱 그를 막을 기회가 없었다.하지만, 진한길은 곧 다소 경
침대에 눕는 순간, 봉구안은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황제의 입술을 깨물어 피를 내었다. 피비린내가 그녀를 자극하며, 그녀는 갑자기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녀는 힘껏 밀어내며, 곧바로 이성을 되찾았다.황제는 입술을 뗀 후, 힘이 빠진 듯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의 높은 콧날이 그녀의 목에 닿아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피부를 달구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보려 했으나, 황제의 거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오늘 이곳에 머무르겠느냐.” 이곳은 자진궁. 황 귀비가 아무리 총애를 받았어도 발을 들이지 못한 곳이었다. 그의 말은 곧 그녀에게 뒤를 맡기겠느냐는 뜻이었다. 봉구안은 곧바로 대답했다. “신첩은 이제 돌아가야 하옵니다.” 그녀는 너무 직접적으로 거절하지 않았다. 그를 불쾌하게 만들어선 안 되었다. 황제들의 자존심은 종종 작은 일에도 무너지고, 그럴 때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소욱이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에는 약간의 냉기가 서려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한쪽 무릎을 침상에 세우고, 여전히 그녀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봉구안은 차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 차분함은 오히려 그에게 불안을 일으켰다. 그의 입술 끝에는 그녀가 물어 터뜨린 피가 남아 있었고, 그로 인해 그에게 살벌한 기운이 더해졌다. 그는 그녀의 손을 붙잡아 손바닥을 펴더니, 그녀의 손목 사이를 세게 물었다. 그러나 봉구안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고 눈살조차 찌푸리지 않았다. 소욱의 눈은 매서운 매의 눈처럼 그녀를 노려보며 손목을 깨물고 혀끝으로 그 자리를 핥았다. 갑자기 봉구안의 손끝이 저릿해졌다. 솔직히 말해, 그녀는 소욱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그녀를 시험하려 들었고, 그녀가 욕심을 부리지 않는지 확인하려 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대체 뭘 하는 걸까? 봉구안
밤은 이미 깊었으나, 완부옥은 아직 잠들지 않았다. 자시가 되어 음기가 무겁게 내려앉자, 그녀는 침상에 앉아 향로에 불을 붙여 독충을 기르고 있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그녀는 눈을 번쩍 뜨고, 서늘하고 음흉한 눈빛을 빛냈다. 잘됐다, 그녀의 새로운 독충을 그들에게 시험해볼 기회였다... 쾅!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문을 부수고 들이닥쳤다. 좁은 방안은 순식간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 완부옥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크게 휘저었고, 모양이 이상한 매미 같기도 하고 사마귀 같기도 한 독충이 튕겨져 나갔다. 그 독충은 날아서 한 검은 옷의 사람에게 붙었다. 단 한 순간에 그 사람은 온몸이 불타오르는 듯 뜨거움을 느꼈다. 그는 곧바로 비명을 지르며 옷을 벗기 시작했고, 연신 뜨겁다고 외쳤다. 그 불타는 고통은 몸 안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것이었기에 아무리 벗어도 달아오름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견디다 못해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진한길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남강 여인, 정말 악독하다! 절대 살아남아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 독충은 순식간에 두 사람을 해쳤다. 침상 위에 있던 완부옥은 자세를 바꾸어, 마치 투계놀이를 구경하듯 흥미롭게 반쯤 누워 있었다. 독충이 세 번째 사람을 해치려 하자, 진한길은 독충의 비행 방향을 예측하고는, 검을 번뜩이며 움직였다. 검이 번뜩이는 순간, 독충은 바닥에 떨어져 죽었다. 황제의 곁을 지키며 호위하는 진한길의 무술 실력은 단연 최고였다.게다가 완부옥이 방금 길들인 독충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진한길의 검에 죽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완부옥은 그제야 눈을 번쩍 뜨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눈은 서늘한 기운을 내뿜었다. “내 보물을 죽이다니, 죽고싶은 게로구나!” 수십 명의 검은 옷의 사람들이 즉시 진을 쳐 그녀를 포박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그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완부옥은 내력을 뿜어내어 그물을 치더니, 그물의 끝
봉구안은 별안간 눈을 들어 완부옥을 바라보았다.그녀의 평온한 눈빛 속에는 경고의 기색을 띄었다. 완부옥은 마치 나쁜 짓을 하다가 딱 걸린 것처럼 어색해졌고,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그의 가면을 쓰다듬었다. 마치 그의 얼굴을 만지는 듯이, 손끝으로 살며시 가면을 더듬었다. “참 차갑고도 차갑네요...”“혹시, 오라버니 얼굴을 한 번만 볼 수 있을까요?” 그녀는 거칠고 막무가내였지만, 지킬 것은 지킬 줄 알았다. 소환과 다투더라도, 그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화를 내며 인연을 끊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규칙을 어기고 가면을 마음대로 벗긴다면, 그들의 인연은 거기서 끝일 터였다. 봉구안은 말없이 그녀의 상처를 정성스레 싸매기만 했다. 완부옥은 약간 기운을 되찾자, 다시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제 몸을 다 봤으니, 책임을 져야되지 않겠어요?” 봉구안은 손을 씻으며 무심하게 물었다. “듣자하니, 궁에 들어가 후궁이 된다던데.” 완부옥은 놀리듯 반문했다. “왜, 질투라도 나세요?” 봉구안은 차갑고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남녀 간의 감정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제가 후궁이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완부옥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참으로 무정해요.” “실은, 정말로 궁에 들어갈 뻔했어요.” “하지만 오라버니를 위해 마음을 돌렸죠.” “부족의 배신자가 되더라도, 오라버니와 함께 있고 싶었거든요. 오늘 밤 제게 덤벼든 자들은, 저를 죽이기 위해 그 늙은이들이 보낸 자들일 거예요.”“이젠 갈 곳도 없어요. 오라버니, 절 버리지 마세요...” 그녀는 봉구안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애틋한 사랑이 눈에 어렸다. 봉구안은 손을 씻고 물기를 닦으며, 여유롭고 차분한 태도를 보이며 물었다. “그들이 널 궁에 들게 해서 하려는 일은 무엇이냐. 황제를 암살하려는 것이냐?” 방 안에는 아직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았다. 완부옥은 냉
남강의 사신이 깨어나 완부옥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다음 날 정오였다.완부옥은 길에서 종종 일행과 떨어지는 일이 있었기에 사신들은 그러려니 했다. 이번에도 그녀가 또 소환을 만나러 갔으리라 생각하였다.전날 말에 끌려 다니며 온몸이 멍투성이가 된 사신은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차마 완부옥을 찾아 나설 겨를이 없었다. 다른 사신들도 침상에 누워 신음하며, 후회와 원망으로 가득했다.서녀국의 사신들은 특히나 고집스러웠다. 그들은 침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다쳤으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우리 서녀국은 남제의 현영석 광산 독점을 결단코 허락할 수 없다!”“여러 나라가 힘을 합친다면 반드시 남제가 굴복할 것이다!”“이 문제는 중대사이니라! 남제가 제멋대로 굴도록 내버려 둔다면, 양 나라의 오늘이 곧 우리의 내일이 될 터이다!”북월의 사신은 바로 옆방에서 상처로 몸이 쑤시고 아파 쉬어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고함 소리에 참다못해 짜증이 일었다.감찰위.서녀국이 보낸 두터운 선물을 받은 교먹은 마음이 흔들렸으나, 황제마저 그 사신들에게 진노한 상황이니 선물을 받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요즘 그녀는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몇일 전 보낸 자객들이 장기양을 암살하려다 죽었고, 심지어 그녀의 수하 몇 명도 감쪽같이 실종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언니와 관계가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날, 교먹은 입궐하여 언니를 찾아가 사람들을 어디로 보냈는지 추궁하고자 하였으나, 문전박대당하고 말았다.교먹은 속이 끓어올라 안절부절 못하였다.‘우리 두 사람은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먼저 약조를 깬 건 언니이니, 내 사람을 건드린 이상 나 또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더욱 악이 오른 교먹이었다………자녕궁.녕비는 태후의 앞에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마마, 어젯밤 황제께서 황후를 자진궁으로 불러들인 사실을 아시옵니까?”“자진궁이라면, 제가 궁에 들어온 이후로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옵니다.”태후는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
옥령산.양연삭은 어지럽게 얽힌 바위 틈에서 뛰쳐나왔다.병사들은 적을 만난 듯 경계태세에 들어갔다.동방세가 즉시 앞으로 나서며 혼자서 양연삭을 저지해, 그를 그냥 도망치게 두지 않았다.곧이어 산을 지키는 십이사명이 출동해 진을 결성하였고, 양연삭을 가두고 연달아 공격을 퍼부었다.봉구안 일행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미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격전은 바위를 산산조각 내며 이어졌다.병사들이 활과 화살로 공격했지만, 양연삭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 제대로 맞히기 어려웠다.봉구안은 가면을 쓰지 않고 본래 얼굴을 드러냈다.그때 양연삭은 소욱을 알아보았고, 더불어 맹성주도 알아차렸다. 바로 자신의 아들 양소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수였다.맹성주가 아니었다면, 양소도 그렇게 비참한 꼴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양연삭의 가면 속 두 눈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그는 즉시 십이사명의 포위를 뚫고 소욱과 봉구안을 향해 돌진했다.봉구안은 장검을 뽑아 정면에서 맞섰다.소욱과 동방세는 양쪽에서 협공했다.세 사람은 마치 화살처럼 날카로운 진형을 이루었다.진한길과 병사들은 황제를 지키기 위해 양연삭의 공격을 저지하며 방어 태세를 유지했다.양연삭의 목표는 분명했다. 먼저 소욱을 죽이고, 그다음 맹성주를 죽이는 것이었다.그는 전투 중 바위 파편에 의해 이미 중상을 입었으나, 그의 마공은 현장에 있는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을 정도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방해가 되는 한 사명을 붙잡아 그들의 내공을 전부 흡수했다.나머지 열한 사명이 분노하며 외쳤다.“마두야! 목숨을 내놔라!”동방세는 가장 먼저 봉구안의 이상함을 눈치챘다.그녀의 움직임은 지나치게 무모했다. 예전 같지 않았다.양연삭의 함정에 빠진 봉구안이 공격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동방세가 다급히 외쳤다.“비켜! 소환!”양연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소환?동방세가 맹성주를 소환이라 불렀다?설마… 맹성주와 소환이 같은 사람인가!?양연삭은 순간 타오르는 분노에 휩싸였다.새로운 원한과 옛 원한이
단회욱은 죽었다.사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기력이 다해 있었다.그동안 간신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 다섯 해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이제, 그의 구안이 자립할 수 있게 되었고, 곁에는 친구와 연인이 있는 것을 본 이상, 자신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는 완전히 힘을 놓아버렸다.그는 이 생에 후회도, 원망도 없었다.단정의 울부짖는 소리가 고요한 밤을 찢어발겼다.온 왕부가 암울한 그림자에 휩싸였다.소욱은 뜰에 서서, 창백한 달을 올려다보았다.처음으로 마음이 불안해졌다.만약 단회욱이 살아 있었다면, 과연 자신이 이길 수 있었을까?그들과 단 며칠 함께했을 뿐이고, 나눈 말은 몇 마디 되지 않았지만, 그는 왜 봉구안이 과거에 단회욱을 그렇게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이토록 온화한 군자는 죽는 순간까지도 타인을 생각했다.소욱은 봉구안이 단회욱 때문에 우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방으로 들어갔다. 마음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뭐 하나 잡히지도 않고, 마음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았다....남산왕은 왕부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불길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단회욱을 위해 묻을 자리를 찾겠다고 나섰다.하지만 단정은 이를 거절했다.그는 형을 옥령산에 묻고 싶지 않았다.양연삭도 옥령산에서 죽었으니, 형이 죽어서까지 편히 쉬지 못하게 할 수 없었다.단정은 화장을 하고, 유골을 북방에 묻겠다고 했다.그곳은 형이 평생 가장 행복했던 곳이고, 형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형님께서는 살아 있을 땐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적어도 죽어서만큼은 북방에 계셨으면 좋겠어요.” 단정은 고개를 숙인 채, 울음을 삼키며 봉구안에게 말했다.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단회욱의 시신이 화장되던 날, 소욱도 자리에 있었다.그의 시선은 내내 봉구안을 향하고 있었다.봉구안은 줄곧 무표정이었다. 두 눈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마치 죽은 사람이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 것처럼
“어찌 이런 일이!”봉구안은 손이 떨려왔다.의사가 말하길, 단회욱은 이미 오래 살지 못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그녀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그가 이 순간 세상을 떠난다는 현실을 맞닥뜨리고 말았다.봉구안은 곧장 남산왕부로 돌아갔다.문을 열고 들어서니 단회욱은 침상에 누워 기운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준수한 얼굴엔 생기가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단정은 침상 곁에 무릎 꿇고 그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형, 형님! 잠들지 마세요! 겨우 형님을 구해냈습니다… 형님!”봉구안은 한 걸음 한 걸음 굳은 몸으로 다가가, 단회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그녀의 눈에는 깊은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오라버니…”침대 시트는 이미 그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그는 그녀를 보며 부드러운 눈빛을 보냈다.마치 그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는 듯, 두려워하지 않게 하려는 듯…“구안아, 난 괜찮아.”그는 힘겹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봉구안의 손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그녀는 그의 몸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심지어, 그에게는 숨을 쉴 때마다 마치 능지처참을 당하는 것 같은 고통이 따랐다.그녀는 마음이 풀리며 조용히 침상 곁에 앉았다.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정이는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 천룡회도 이미 소탕했으니 더 이상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이제는 마음 편히 쉬세요.”단회욱은 봉구안을 향해 한없이 부드러운 시선을 보냈다.그 안에는 한없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구안아, 아직도 가끔씩 머리가 아프니? 미안해. 더는 약을 만들어 주지 못하겠구나… 너와 혼례를 올리지 못해서, 너에게 행복한 삶을 주지 못해서…… 매일 밤 너를 기다릴 남편이 되어 주지 못해서…”“미안해… 정말로, 널 평생 곁에서 지켜주고 싶었어.”“나는 이미 오래전에 버티기 힘들었어. 하지만 혹시, 혹시라도 죽기 전에 널 다시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해… 하늘이 날 불쌍히 여긴 거야.”“정말 다행이야. 널 보고 갈 수 있
동방세가 웃으며 말했다.“좋소. 조금 고생하는 건 괜찮소만, 진짜 양연삭이 도망친다면 골치 아플 일이오.”한 시진 뒤, 봉구안은 남산왕부로 돌아왔다.그녀는 단회욱의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그의 방으로 향했다.침상 옆에 있던 단정의 표정은 몹시 어두웠다.“오늘 황제 폐하께서 형님을 찾아오셨습니다. 폐하께서 다녀가신 이후, 형님이 피를 토하셨습니다.”봉구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단회욱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정이의 허튼소리를 듣지 말거라. 내 상태와 폐하는 무관하니...”“그저 내 몸이 너무 약해서 그런 것이다. 구안아, 교주의 시신은 찾았느냐?”봉구안은 차분하게 답했다.“혹시라도 누군가 도망쳤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병사들에게 지키게만 하고 시신을 파헤치지는 않았습니다. 오라버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저희의 눈을 피해 도망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단회욱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나는 교주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야. 구안아, 반드시 조심하고, 방심하지 말거라.”“만약 정말 그가 도망쳤다면, 기억하거라… 만건성법은 너도 통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오발에… 쿨럭, 쿨럭!”단회욱은 너무 허약해 한 번에 말을 길게 이어갈 수 없었다. 몇 번 기침을 하더니 목에서 비릿한 기운을 느꼈다.그는 피를 토할 것 같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돌려 봉구안이 보는 걸 피하려 했다.“구안아, 조금 쉬고 싶구나… 이만 침소로 돌아가거라.”그러나 그의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피가 샘처럼 목에서 솟구치며 터져 나왔고, 그는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피는 손가락 틈새로 흘러나왔다.“오라버니!” 봉구안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그 장면을 보고는 눈이 크게 휘둥그레졌다.“형님!” 단정도 급히 반응해 침대 아래에서 숙련된 동작으로 대야를 꺼내 들고, 형의 상반신을 살짝 일으켜 피를 뱉도록 도왔다.봉구안도 손수건을 꺼내 단
소욱이 방문하자, 단회욱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는지 크게 놀라지 않았다.그는 병색이 짙은 얼굴로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 단정을 나무랐다.“정아, 무례하게 굴지 말거라. 너는 잠시 나가 있는 게 좋겠구나.”단정은 형이 폭군과 단둘이 있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가 얼마나 잔혹한지 이미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었다.소욱은 방 안으로 성큼 들어와, 거침없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너희 둘 중 누구든 들어도 상관없다. 내가 할 말은 숨길 것이 없으니...”단회욱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예.”소욱은 자리에 앉아 기세를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네 성을 보아하니 너는 단씨의 후손이구나.”“단씨 일족이 반역죄로 멸문당했지만, 너희 형제가 목숨을 건진 것은 하늘의 은혜다.”“봉구안, 그녀는 나의 황후다.”단정은 이 말을 듣자마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폐하, 형수님은 더 이상 폐하의 황후가 아니십니다! 두 분께서 이혼하신 사실은 천하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소욱은 그를 차갑게 흘겨보았으나 더는 그를 탓하지 않았다.“황후를 생각해 너희 형제를 용서하려 한다. 이제부터는 천민 신분을 벗고 정식 신분을 되찾게 해 주도록 하마.”단정은 뜻밖의 선처에 어리둥절했다.폭군이 이렇게 관대한 이유는 그의 형에게 형수님을 포기하라는 암시를 주려는 것이 아닐까?병든 단회욱은 여전히 고운 품성을 유지한 채, 소욱에게 머리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일뿐 아니라, 지난번 구중탑에서 구해주신 은혜 또한...”그러나 소욱은 그의 말을 끊으며 단호히 말했다.“나와 너는 아무런 인연도 없다. 너를 구한 것은 오로지 황후 때문이다.”“나는 네가 황후와 다섯 해 약조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것을 알고 있다.”“하지만 내가 황후를 향한 감정도 결코 네 것보다 적지 않다.”“네가 빨리 몸을 회복해야 황후도 괴로움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단회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지만, 그의 눈빛은 어딘가 쓸쓸하고 고통스러웠
봉구안은 추측했다.“남산왕 전하께서는 구중탑에 들어간 악인들이 봉맥을 양육하기 위해 희생된 줄 알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당시 태조께서는 옥석비의 살기를 평정하려고 생자를 희생시켜야 했습니다.”“그래서 그 악인들에게 왕공귀족의 의복을 입혀 황실 자손의 안전을 바꾼 것이죠.”하지만 왜 굳이 악인을 골랐던 것일까?곧 그녀는 그 해답을 알 수 있었다.첫째, 태조 황제가 아직 양심이 있어 이런 악인들은 어차피 십악불사, 어떻게 죽어도 그들에게는 큰 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둘째, 구중탑에 흉악범들을 가두면서 보물을 노리는 자들의 마음을 꺾고자 했으니, 누구도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했다.소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봉구안의 추측을 인정했다.“태조 황제는 남산왕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껏 남산왕의 가문은 자신들이 봉맥을 지키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지.”봉구안은 담담하게 말했다.“그건 인간의 본능입니다.”“제왕으로서 자신이 단순히 돌덩이 하나를 두려워한다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이 말을 하며 그녀는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회욱 오라버니께서 말하길, 양연삭이 진나라의 후손이라더군요. 그가 한 모든 일이 부국을 위해서였으며, 옥석비를 훔친 것 또한 전쟁에 사용하기 위함이라 했습니다.”소욱의 눈썹이 찌푸려졌다.“오라버니?”그녀가 그를 이렇게 부르는 게 참 친근하게 들렸다.소욱은 내심 불쾌했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묻지 않았다.진나라.그가 다스리고 있는 이 강산은 남제 이전에는 진나라이었다.그러나 진나라는 이미 멸망한 지 20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부흥을 꿈꾸는 자들이 있다니.그는 본래 천룡회가 단지 강호의 마교로서, 고작해야 자신의 형제 중 누군가와 몰래 손잡고 권력을 빼앗으려는 정도일 줄 알았다.하지만 이제 진나라와 연관되었다면,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그런 비밀을 단회욱은 어떻게 알았지?”소욱의 말에는 의심이 묻어났다.
봉구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왕에게 예를 갖추었다.두 왕은 소욱에게 절을 올렸다.노왕은 온화한 표정을 짓고 봉구안을 향해 농담을 던졌다.“마마, 봉맥이 끊어진 것은 저도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마마께서 다시 황제 폐하께 시집을 가신다면…”봉구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소욱도 그녀가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고려할 겨를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괜히 이런 말을 꺼내면 그녀를 더 번거롭게 할 뿐이었다.그는 노왕의 말을 가로막았다.“본론부터 말하거라.”봉구안은 자신의 신분이 부적합하다고 느껴 물러나려 했다.하지만 소욱이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굳이 나가지 않아도 된다.”“예.”남산왕이 공손히 입을 열었다.“폐하, 신과 부친이 찾아온 것은 보물과 옥석비에 대해 상의드리기 위함입니다. 구중탑이 무너져 그것들이 전부 지하에 묻혔는데, 이를 다시 발굴해야 할지 청하러 왔습니다.”소욱은 차분히 물었다.“옥석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남산왕은 답 대신 아버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는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었다.이렇게 대단한 신물이 태조 황제가 억눌러두어야 할 물건이었다니.이전에 동방세가 했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구중탑으로 숨겨둔 물건이라면, 결코 다시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그러나 그의 기억 속 옥석비는 흉물이 아니었다.어쩌면 부친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봉구안 또한 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그러자 노왕이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제가 아는 바로는, 옥석비는 가히 건국의 공신이라 칭할 만 하다는 것입니다.”“당시 태조 황제께서 전장에 옥석비를 들고 나갔을 때, 그 어떤 적도 무찌를 수 있었습니다.”“가장 전설적인 것은 양수 전투였는데, 태조 대군이 포위당하고 패배가 확정된 상황에서 하룻밤이 지나자 적군이 싸우지 않고 물러났던 일도 있었습니다.”“사람들은 모두 그 옥석비의 전쟁신의 영혼이 현현했다고 하였습니다.”“그러나 남제 건국 이후, 그 옥석비에 붙어있던 영혼이
옆방.단회욱은 검은 피를 토해냈다.그는 단정의 어깨에 기대어 반쯤 누운 채, 마치 버드나무처럼 연약한 모습이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한 쌍의 옥처럼 맑던 눈동자는 이제 흐릿해지고 있었다.그를 보며 봉구안은 많은 과거의 일들이 떠올랐다.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그가 뼛속까지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병사들의 희롱과 조롱에도 그는 얼굴을 붉히지 않고 늘 부드럽게 대했다.그는 군의관으로서 항상 인내심이 넘쳤다.그녀가 그를 좋아했던 이유는 그가 지닌 고요한 세월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그와 함께 있으면 그녀는 늘 마음이 차분해졌다.그래서 그가 천룡회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그녀는 그의 선량함과 자애로움을 부정할 수 없었다.그런 것들은 꾸며낼 수 없는 것이다.그의 신분과 과거는 그가 선택할 수 없는 것.그녀는 한 사람을 좋아할 때 언제나 현재만을 바라보았다.그를 좋아했던 일에 대해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고, 원망도 없었다.봉구안은 둥근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앉았다.한때 그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막상 정말로 다시 보게 되자 수많은 말들이 허공으로 흩어졌다.그녀는 그에게 이 몇 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그가 겪은 고통과 고난은 손수 적어낸 기록에 상세히 쓰여 있었다.“앞으로는... 모든 것이 다 좋아질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쉰 듯 갈라졌다.단회욱은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그의 눈동자는 예전보다 한층 단단해진 냉엄함이 더해져 있었다.그녀의 옷은 흙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손가락은 붕대로 감겨 있었다.그녀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알 수 있었다.예전에 그는 그녀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랐다.하지만 지금은 욕심이 생겼다.그녀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다행이었다.단정은 두 사람의 눈빛을 한 번 훑어보더니, 단회욱을 눕혀놓고 말했다.“형님, 약을 좀 다려 올게요.”그가 있으면 둘이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단회욱을 구해내는데 성공하였다.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봉구안의 마음이 순간 떨렸다.단회욱은 많이 수척해진 상태였다. 한쪽 팔은 부러졌으며, 머리카락은 흐트러지고 잘생긴 얼굴은 생기 하나 없이 창백해져 있었다. 마치 생기를 잃은 시체처럼 입술은 하얗게 메말라 있었다.“형님!”단정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드디어, 드디어 형님을 찾았어요!”단회욱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움직이며 멀리 있는 봉구안을 바라보았다.봉구안은 곧바로 앞으로 나아갔다. 거의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말했다.“오라버니…”단회욱은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햇살이 비치는 것처럼 온화했다.“구안아…”“폐하!”진한길이 놀라 외쳤다.봉구안은 급히 뒤돌아보았고, 몸이 저절로 움직여 그쪽으로 달려갔다.“폐하께서 어떻게 되신 겁니까!” 그녀는 다급히 물었다.그러나 소욱의 안전을 위해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다.진한길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안전 구역에 틈이 생겨 폐하께서 낙석에 팔을 맞으셨습니다!”그때 아래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과인은 괜찮다…”남산왕은 급히 외쳤다.“어서 사람을 구하라! 균형이 깨지면 안전 구역도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다!”만약 안전 구역이 무너지면, 그 이후의 위험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단정은 황제가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형님을 먼저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자 그를 업었다.그러다 형님 얼굴에 찍힌 뺨 자국을 보고 순간 몸을 굳혔다.“형님, 누가 형님을 때린 겁니까!”단회욱은 이전에 흐릿한 의식 속에서 누군가에게 뺨을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그러나 그가 말했다.“누구든 상관없다…”그는 오로지 봉구안만 걱정하고 있었다. 시선은 줄곧 그녀에게 머물렀다.잠시 후, 소욱이 드디어 구조되었다.남산왕은 중얼거렸다.“하늘이시여… 고맙습니다. 덕분에 큰 사고를 피했습니다.”그러나 소욱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의 팔은 옷과 살점이 뭉개져 엉망이었다.진한길은 마음이 아팠다.봉구안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