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궁.진길은 다급한 걸음걸이로 안으로 들어섰다.“폐하, 황후마마께서 북부에 계신다는 소식이 있습니다!”곧이어, 병풍 뒤에서 온몸으로 냉기를 풍기는 황제가 걸어나왔다.소욱의 두 눈에서는 참을 수 없는 살기와 분노가 요동치고 있었다.‘내 이럴 줄 알았지.’황제는 싸늘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시위들 데리고 북부로 떠나거라.”하지만 그는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그렇게 대단한 재주를 가진 여자라면 진길이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있을 리 만무했다.조회.봉 대인은 이미 죽을 준비를 마친 듯, 공허한 표정으로 조회에 임했다.‘내가 딸을 잘못 가르친 탓이지. 어찌 자기 자유만 추구하고 가문의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단 말이냐.’힘든 조회가 끝나고 황제가 자신을 남길 거라고 생각했지만 황제는 마치 한달 기약을 잊기라도 한 듯이, 조회가 끝나고 대전을 나가버렸다.봉 대인은 황제의 뜻을 알 수 없어 제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오늘은 안 죽어도 된다는 건가?’한편, 자녕궁.태후는 가빈의 헛소리를 듣고 있다가 인상을 찌푸렸다.“황후가 사당에 없다고?”가빈은 확신에 찬 어조로 답했다.“예, 태후마마! 제발 황후마마를 살려주시옵소서! 분명 폐하께서 황후마마를 어딘가로 끌고 갔을 겁니다!”그녀가 할 수 있는 건 태후께 청을 들이는 일뿐이었다.태후는 겉으로 티는 나지 않았지만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멍청한 것!’황제가 황후를 어디로 끌고 갔을 리가 없고 분명 황후의 신변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다.어쩜 황후는 위험에 처해 돌아오지 못할 처지에 놓였을지도 모른다.다만 황제가 왜 이 일을 굳이 숨기고 거짓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11월17일.황제는 직접 변방 군영을 시찰하겠다고 나섰다.하지만 그가 어느 군영으로 갈지는 아무도 몰랐다.북부.봉구안은 소환의 신분으로 가면을 쓰고 북대영을 출입했다.그녀가 군영에 오자마자 교먹은 그녀의 옆에 바짝 붙어다녔다.사람들은 두 사람이 잘 어울리는 한쌍이라고 생각했다.교먹이 매
사내는 느긋하게 등을 돌리고 싸늘한 눈으로 봉구안을 응시했다.그리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여기가 황궁보다 편하더냐.”말투는 담담했지만 봉구안은 그가 분노를 억제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황후가 신변에서 도망을 쳤으니 황제로서 존엄에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소욱은 걸음을 움직여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섰다.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조용히 그를 기다렸다.사내는 그녀와 한걸음 남겨두고 걸음을 멈추었다. 사내의 거대한 체구가 햇빛을 가려 그녀의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었다.곧이어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면사포를 벗겼다.그는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매만지다가 마지막에 턱끝에 닿았다.“왜 도망친 거지?”말투는 부드럽고 온화했지만 당장이라도 살인을 저지를 것 같은 눈빛이었다.봉구안은 두려움없이 그의 눈을 응시하며 답했다.“두려웠기 때문입니다.”문득 사내의 손이 그녀의 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계속 말해보거라.”봉구안은 죽음 앞에 두려워서 벌벌 떠는 대신,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날 밤에… 신첩은 오라버니께 배운 기술로 폐하를 기절시켰지요. 그후로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요.”“자유를 잃은 이 삶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여자 사체를 하나 찾아서 황후가 이미 죽었다고 모두가 믿게 하고 싶었지요.”소욱의 눈빛은 날카롭고 어두웠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심연 같았다.“정말 죽고 싶었다면 짐이 네 요구를 들어줄 수도 있다.”봉구안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담담히 말을 이었다.“하지만 북부로 도망치는 길에서 힘들게 사는 백성들을 보았습니다. 신첩은 저를 곱게 길러주신 부모님이 떠올랐지요. 그리하여 욕심을 내려놓기로 하였습니다. 황후로 사는 것도 그리 나쁜 삶은 아니지요.”“폐하, 신첩의 잘못을 알고 있습니다.”소욱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를 압박했다.“뭘 잘못했다고 생각
교먹은 곧장 황제와 황후가 있는 막사로 갔다.맹 장군이 친히 말동무를 해드리고 있었다.황제의 옆에 앉은 황후의 입술이 유난히 빨갰는데 딱 봐도 격렬한 입맞춤 후에 남은 흔적이었다.황제의 시선은 수시로 황후에게 향하고 있었고 마치 그녀를 많이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이는 교먹이 바라던 장면이 아니었다.황제가 도망친 비빈을 잡았는데 당연히 엄벌에 처해야 마땅했다.하물며 황성에서 그녀가 본 황제는 분명 황후를 좋아하지 않았다.봉구안은 분명 황성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테고 거세게 반항을 해야 마땅했다.그들 사이가 이렇게 화목할 리가 없었다.교먹은 여러 의문을 참으며 억지미소로 예를 행했다.“소신, 폐하와 황후마마를 뵈옵니다.”“예는 되었다.”소욱은 대외적으로 황후가 처음부터 자신과 동행하여 변방의 장령들을 위로할 계획이었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긴 여정에 지쳐 잠시 역관에다 쉬다가 늦었다고도 덧붙였다.허점이 많은 해명이었지만 아무도 감히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다.맹 장군은 두 사람을 위해 거처를 마련했다 했지만 소욱은 다른 일정이 있다며 거절했다.그 뒤로 소욱은 계속해서 연무장을 둘러보았다. 봉구안이 말했다.“북대영에은 여인군이 있다고 들었는데 맹 장군, 날 위해 길을 안내해 줄 수 있겠나?”교먹이 미처 뭐라 하기 전에 소욱이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황후, 군영은 황궁과 달라. 짐의 옆에 있거라. 보고 싶은 게 있으면 저들에게 시키면 될 일이다.”그는 더 이상 그녀에게 도망칠 기회를 주지 않았다.봉구안은 공손히 답했다.“예.”교먹은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황후가 자신을 따로 부르려 한다는 건 분명 황제가 왜 그 오두막에 나타났는지 묻기 위해서일 것이다.그녀는 당연히 자신이 밀고했다는 것을 황후에게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북대영의 연무장은 무척 훌륭했다. 여인군은 풍채가 남달랐는데 대부분 전장에 부군을 잃은 미망인들로 구성되어 부군 대신 변방을 지키겠다는 것을 구호로 삼고 있었다. 아주 감동적인 사례였다.연무가 끝난 후, 소욱
봉구안은 담담한 어조로 해명했다.“폐하는 줄곧 맹씨 부자의 손에 너무 많은 병력이 치중될까 걱정하셨지요.”“교먹은 맹건의 제자이자 그동안 자식처럼 돌본 아이이니 교먹을 황성으로 부른다면 맹건 장군의 약점을 잡은 셈이 됩니다.”소욱은 냉소를 지었다.“맹교먹을 인질로 삼자는 말로 들리는군. 황후는 자신을 구해준 은인에게 이런 식으로 대하나?”봉구안은 고개를 숙이고 답했다.“사적인 감정보다는 폐하의 심려를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북대영에서 맹 소장군의 위망은 이미 군주를 넘어섰지요.”“신첩이 보기에 이는 아주 위험한 상황입니다. 소장군을 황성으로 부른다면 점차 북대영의 관할권도 폐하의 손으로 들어올 것입니다.”그녀의 진솔한 제안은 소욱으로 하여금 점차 후궁은 정치에 간섭할 수 없다는 법도를 잊게 만들었다.그 역시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맹씨 부자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황제로서 그들을 견제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황제라는 자리는 본디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하는 자리이며, 이는 소욱도 예외가 아니었다.전쟁을 치를 때, 그는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들을 지켰지만 천하가 태평한 지금 그에게는 권력을 한곳으로 모으는 작업이 필요했다.북부에 시찰을 와서 군영과 북부 백성들이 맹씨 부자를 신으로 칭하는 것 또한 보았다.그러니 그는 신이라는 칭호를 없앨 필요가 있었다.2각이 지난 후, 마차는 온천 객잔 앞에 멈추었다.산을 등지고 지은 이 객잔은 각 방마다 온천이 있었는데 남제에서도 호화롭기로 유명한 객잔이었다.황성에는 천연 온천이 없었다.멀리 고생하며 이곳까지 왔는데 소욱은 굳이 일만 하다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진길이 두 사람을 부축하여 마차에서 내렸다.객잔 주인은 사십 대 정도로 보이는 여인이었는데 그 나이에도 여전히 매혹적이었다.이 객잔에 투숙하는 투숙객들은 대부분이 부자 아니면 관료들이었으나 소욱의 주변으로 풍기는 비범한 기질은 여주인을 놀라게 했다.눈앞의 사내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옥패만 봐도 귀중하여 구하기도
봉구안은 아주 빠르게 반응했다. 고개를 황급히 돌려 가까스로 입맞춤을 피하였다. 그녀의 눈에는 서늘한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황제는 그런 그녀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은 채 그녀에게 속삭였다.“보은이라느니, 짐을 위해서라느니… 너는 참으로 위선적이구나.”“너는 이미 맹교먹이 너를 배신했다는 걸 알지 않았느냐? 맹교먹을 곁에 두어 천천히 괴롭히려는 속셈이겠지…”“짐의 생각이 맞느냐?”봉구안은 잠시 표정이 얼어붙었으나 곧 평정을 되찾았다.이어 황제가 다시 물었다.“너는 정말로 돌아오고 싶었던 것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돌아온 것인가?”봉구안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대답했다.“저는…”“오늘 오두막에서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짐을 들고 있었다. 본디 도망치려 했던 것이 아니었느냐?”황제는 그녀의 속내를 모두 꿰뚫어 본 듯했다.그녀가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애원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그러나 그녀는 단지 고개를 들어 묵묵히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모든 것이 무언의 도전처럼 보였다.“돌아오고 싶었사옵니다.”그녀는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황제는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추측이 옳다고 확신했다. 그녀가 맹교먹에게 복수하려 한다고 믿었다.“그 아이는 남제 최고의 여장군이다. 그 아이를 망가뜨리면 너는 무엇으로 배상할 작정인가? 남제에 대한 가치로 따지자면, 너는 그 아이의 손가락 하나만도 못하니 말이다.”봉구안은 무표정으로 대답했다.“신첩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사옵니다.”“짐은 너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그는 다시 입술을 맞추려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 봉구안은 피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폐하께서는 전혀 개의치 않으십니까? 신첩은 예전에 산적들에게…”그 말을 들은 황제는 잠시 멈췄다. 그의 눈빛은 차가워졌고, 목소리에는 살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 감정은 그녀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너의 잘못이 아니지 않느냐.”엄밀히 따지면, 그녀가 이런 고난을 당한 것은
황성으로 관직을 받으러 간다고 해서, 교먹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무심결에 황제 곁에 있는 봉구안을 바라보았다.이것이 정녕 사저의 뜻이란 말인가?아니, 그럴 리가 없다. 황제가 여인의 말에 휘둘려 자신에게 감찰위 직위를 내렸을 리가 없지 않은가.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교먹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사실 봉구안 또한 소욱이 이렇게 빨리 결정을 내릴 줄은 몰랐다. 분명 어젯밤, 그는 그녀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았던가.봉구안이 그를 바라보자, 황제도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눈빛은 차가웠지만, 오직 그녀만이 알아챌 수 있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너는 짐의 결정에 만족하느냐?"황제가 시키는 일인데 어찌 그녀가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녀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곧이어 황제는 교먹에게 명을 내렸다."관직이 중하니, 삼일 내로 출발하도록 하라.""황제 폐하…" 교먹은 여전히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하였다.그때, 맹 장군이 나서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장군 맹건,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이 아이를 대신하여 황제 폐하의 큰 은혜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그러고는 눈짓으로 교먹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라는 신호를 보냈다.교먹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황제 폐하의 은혜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사람들은 모두 황제와 황후를 배웅했다.마차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봉구안은 창문을 열어 바깥의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았다.눈앞에는 온통 하얗게 펼쳐진 잔잔한 눈발이 가득했다.봉구안은 이번 눈이 지나면 북방이 훨씬 깨끗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그녀는 창 밖으로 손을 뻗어 보았다.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었다.봉구안은 고개를 돌려 황제를 바라보았다. 황제는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눈이 안으로 들어오는구나."황제는 슬며시 봉구안의 손을 잡았다.봉구안은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는 더욱 강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녀는 그의 기
가빈은 태황태후의 물음에 모두 답하였다. "신첩이 사람을 시켜 사당에 가서 살펴보았사온데, 황후마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사옵니다. 그제야 황후마마께 무슨 일이 생긴 것을 단정하였사옵니다." 태황태후의 얼굴이 한층 더 엄중해졌다. "가빈, 네가 알고 있느냐? 함부로 말하고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중벌을 받는 일이다. 내가 다시 묻겠노라. 정말로 황후가 사당에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느냐?" 가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태황태후마마! 신첩, 목숨을 걸고 맹세할 수 있사옵니다." 태황태후는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참으로 이상하구나. 황후가 정말 사당에 없다면, 그동안 어디에 있었단 말이냐?" 황제와 관련된 일은 감히 조사할 수 없는 터, 굳이 스스로에게 불편함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가빈에게 명하였다. "내가 네 말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내가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황후에게는 별다른 위험이 없는 듯하니, 곧 돌아올 것이니라. 네가 이 일을 정말로 알고자 한다면 사사로이 황후에게 물어보도록 하여라." 가빈의 얼굴에 기쁨이 어렸다. "정녕 사실입니까!" "황후마마께서 무사하시다니 다행이옵니다!" 태황태후는 친히 가빈에게 당부하였다.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거든, 주저 없이 나를 찾아오도록 하여라." "예, 태황태후마마!" 섣달 그믐날. 소욱과 그 일행은 황성과 인접해 있는 의성에 이르렀다. 이미 해가 저문 뒤였고, 그들은 의성 안에 위치한 객잔에 투숙하기로 하였다. 의성까지 오면서 소욱과 봉구안은 각기 방을 따로 썼으나, 이 객잔은 방이 몹시 부족하였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같은 방에 머물 수밖에 없었고, 여러 호위들은 다 함께 1층 창고에서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날은 유독 바람이 차가웠고, 봉구안 또한 바닥에서 자며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침대가 넉넉하였던 터라, 이전에 운성의 객잔에서 그랬듯 한 침대에 눕고도 서로 살갗이 맞닿을 일
그 객잔 하인이 말을 더 붙이려 했으나 소욱이 그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고, 그는 몸서리를 치며 입을 다물었다.봉구안은 별 생각 없이 그저 소욱의 취향이 독특하다고 여겼다. 어쨌든 군영에도 겨울에 물놀이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은 이것이 몸을 단련하는 방법이라 말하곤 했다.삼일 후, 황성에 도착해 입궁하기 전 연상이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연상은 매우 기뻐하며 소리쳤다."마마!"그녀가 ‘죽은’ 후, 소욱은 궁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녀가 줄곧 사당에 머물러 있었다고 알렸다.봉구안은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믿게 하기 위해 소욱은 연상을 그곳으로 보냈다는 것을 말이다…입궁 후, 소욱은 조정의 일에 곧바로 착수하였다.봉구안은 영화궁에 머물며 다시 황후의 자리를 지켰다.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으나, 사실 그녀의 마음 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사방에 아무도 없을 때에야 연상이 용기 내어 물었다."마마, 폐하께서 마마를 찾으셨습니까?"봉구안은 고개를 저었다."아니."그녀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소욱은 그녀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교먹을 황성에 묶어 두었으니, 이제 맹 부인은 안심하고 용호군 사건을 조사할 수 있었다.그녀 역시 교먹을 더욱 자세히 조사할 수 있었다.봉장미는… 북방에 남아 잘 지낼 것이라 믿었다.이어서, 그녀는 오백이 가져다준 가사약을 잘 보관하여 만일을 대비했다.오후.가빈과 강빈은 소식을 듣고 곧바로 영화궁을 찾았다.가빈은 의심스러운 얼굴을 한 채 입을 열었다."황후마마, 정말 사당에 다녀오신 거예요? 제가 사람을 보내 확인했는데, 마마가 그 곳에 계시지 않는다는 답변만 받았었습니다.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봉구안은 많은 것을 밝히지 않았다.그녀는 그저 말했다."네가 보낸 사람이 반드시 믿을 만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가빈이 더 캐물으려 하자, 강빈이 곧바로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황후마마, 벌써 섣달 그믐날이 지났습니다. 설날 연회에 대비하여, 저희가 도울 일이
옆방.단회욱은 검은 피를 토해냈다.그는 단정의 어깨에 기대어 반쯤 누운 채, 마치 버드나무처럼 연약한 모습이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한 쌍의 옥처럼 맑던 눈동자는 이제 흐릿해지고 있었다.그를 보며 봉구안은 많은 과거의 일들이 떠올랐다.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그가 뼛속까지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병사들의 희롱과 조롱에도 그는 얼굴을 붉히지 않고 늘 부드럽게 대했다.그는 군의관으로서 항상 인내심이 넘쳤다.그녀가 그를 좋아했던 이유는 그가 지닌 고요한 세월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그와 함께 있으면 그녀는 늘 마음이 차분해졌다.그래서 그가 천룡회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그녀는 그의 선량함과 자애로움을 부정할 수 없었다.그런 것들은 꾸며낼 수 없는 것이다.그의 신분과 과거는 그가 선택할 수 없는 것.그녀는 한 사람을 좋아할 때 언제나 현재만을 바라보았다.그를 좋아했던 일에 대해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고, 원망도 없었다.봉구안은 둥근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앉았다.한때 그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막상 정말로 다시 보게 되자 수많은 말들이 허공으로 흩어졌다.그녀는 그에게 이 몇 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그가 겪은 고통과 고난은 손수 적어낸 기록에 상세히 쓰여 있었다.“앞으로는... 모든 것이 다 좋아질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쉰 듯 갈라졌다.단회욱은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그의 눈동자는 예전보다 한층 단단해진 냉엄함이 더해져 있었다.그녀의 옷은 흙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손가락은 붕대로 감겨 있었다.그녀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알 수 있었다.예전에 그는 그녀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랐다.하지만 지금은 욕심이 생겼다.그녀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다행이었다.단정은 두 사람의 눈빛을 한 번 훑어보더니, 단회욱을 눕혀놓고 말했다.“형님, 약을 좀 다려 올게요.”그가 있으면 둘이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단회욱을 구해내는데 성공하였다.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봉구안의 마음이 순간 떨렸다.단회욱은 많이 수척해진 상태였다. 한쪽 팔은 부러졌으며, 머리카락은 흐트러지고 잘생긴 얼굴은 생기 하나 없이 창백해져 있었다. 마치 생기를 잃은 시체처럼 입술은 하얗게 메말라 있었다.“형님!”단정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드디어, 드디어 형님을 찾았어요!”단회욱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움직이며 멀리 있는 봉구안을 바라보았다.봉구안은 곧바로 앞으로 나아갔다. 거의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말했다.“오라버니…”단회욱은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햇살이 비치는 것처럼 온화했다.“구안아…”“폐하!”진한길이 놀라 외쳤다.봉구안은 급히 뒤돌아보았고, 몸이 저절로 움직여 그쪽으로 달려갔다.“폐하께서 어떻게 되신 겁니까!” 그녀는 다급히 물었다.그러나 소욱의 안전을 위해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다.진한길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안전 구역에 틈이 생겨 폐하께서 낙석에 팔을 맞으셨습니다!”그때 아래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과인은 괜찮다…”남산왕은 급히 외쳤다.“어서 사람을 구하라! 균형이 깨지면 안전 구역도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다!”만약 안전 구역이 무너지면, 그 이후의 위험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단정은 황제가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형님을 먼저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자 그를 업었다.그러다 형님 얼굴에 찍힌 뺨 자국을 보고 순간 몸을 굳혔다.“형님, 누가 형님을 때린 겁니까!”단회욱은 이전에 흐릿한 의식 속에서 누군가에게 뺨을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그러나 그가 말했다.“누구든 상관없다…”그는 오로지 봉구안만 걱정하고 있었다. 시선은 줄곧 그녀에게 머물렀다.잠시 후, 소욱이 드디어 구조되었다.남산왕은 중얼거렸다.“하늘이시여… 고맙습니다. 덕분에 큰 사고를 피했습니다.”그러나 소욱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의 팔은 옷과 살점이 뭉개져 엉망이었다.진한길은 마음이 아팠다.봉구안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
수만 대군이 날렵하게 움직이며 화약과 진천뢰를 옮겼다.구중탑 내부.양연삭은 계속 위층으로 올라가 마침내 여덟 번째 층에 도달했다. 진기의 영향으로 그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날렸다.다섯 번째 층 이상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죽였지만, 그는 소환과 황제를 찾을 수 없었다.잠시 생각한 뒤, 그의 시선이 위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발걸음도 돌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꼭 꼭대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이 꼭대기에 숨어 있을 게 분명하다!”양연삭은 구중탑의 아홉 번째 층에 오르자,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방을 살폈다.그러다 무언가를 발견했다.옷자락 한 조각이었다.그는 손바닥에 진기를 모아 그것을 끌어당겼으나, 나타난 것은 단지 겉옷 한 벌일 뿐이었다.“속임수인가?”양연삭의 눈빛이 차갑고 깊어졌다.“나와라!!”그는 광기에 휩싸인 듯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진기로 형성된 에너지가 사방으로 퍼지며 공격을 가했다.그때, 밖에서 거대한 폭음이 들려왔다.안전구역 내부.소욱 역시 그 소리를 들었다.“산을 폭파하고 있는 모양이군.”그의 눈썹 사이에 약간의 긴장이 풀리며 미소가 번졌다.“드디어 끝이 나는군…”쾅!!펑…!고요했던 옥령산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순식간에 연기와 화염이 뒤덮었다.남산왕은 장병들을 이끌고 안전지대로 물러난 뒤 명령을 내렸다.“폭파하라!“다시 폭파해라!”남산왕의 반복되는 명령에 진한길은 점점 불안해졌다. 그는 슬그머니 봉구안의 곁으로 다가갔다.“소... 공자, 그 안전구역이라는 곳이 정말 폭파되지 않는 겁니까?”그는 이 상황을 보며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봉구안의 다른 쪽에 서 있던 동방세는 단호하게 말했다.“우리 동방가문이 남긴 안전구역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물론 전제는 황제가 정말 안전구역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는 고개를 돌려 봉구안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지금 가면을 쓰지 않은 모습이었다. 과거 자신이 알던 그 소환이 아니었다.소환이 여인이었다니… 그것도 폐비 봉씨라니…동방세
구중탑 밖, 남산왕은 여전히 굳게 고집을 꺾지 않았다.이토록 완고한 사람은 봉구안도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동방세가 말했다.“저희 선조께서 구중탑으로 옥석비를 보호하신 이유는, 아마도 태조 황제께서 옥석비가 다시 세상에 드러나길 원치 않으셨기 때문일 겁니다.”진한길이 남산왕 앞에 무릎을 꿇고, 눈가가 붉어졌다.“전하! 방금 말씀 들으셨습니까! 태조 황제께서 정말 옥석비를 필요로 하셨다면 어찌 그것을 진압하셨겠습니까? 진작 그것을 받들어 모셨을 것입니다!”“그러니 더 망설이지 마시고, 어서 구중탑을 파괴하십시오!!”남산왕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더니, 이내 냉정하게 돌아섰다.“봉맥은 끊어질 수 없다.”그와 그 장수들의 사명은 봉맥을 지키는 것이었다.봉맥이 끊기면, 그들 모두 죽게 될 터였다.달빛이 봉구안의 얼굴을 비추니, 차갑고 살벌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녀는 남산왕에게 단호히 말했다.“양연삭이 감히 구중탑에 들어왔다면, 반드시 나갈 방도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지금 탑을 부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양연삭의 손에 의해 탑이 무너지게 될 것이고, 옥석비 역시 그의 손에 들어갈 겁니다. 그때가 되면 천하가 혼란에 빠질 텐데, 그것이 전하께서 바라는 바이십니까!”남산왕은 여전히 등을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미간은 깊게 찌푸려져 있었다. 그는 분명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단정은 형님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 분노하여 소리쳤다.“이 고집불통 노인네! 봉맥은 끊어질 수 없다고 하면서, 소씨 황족의 혈맥은 끊어져도 된단 말입니까?”“오늘 여기서 저 단정이 맹세합니다! 구중탑을 부수지 않아 저희 형님이 나오지 못하면, 전 소씨 황족을 모두 죽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황위를 잇는 자는 더 이상 없겠죠!”남산왕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감히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단정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못할 것 같습니까! 이 고집불통 노인네, 먼저 당신부터 죽일 것입니다!”봉구안이 단정을 재빠르게 막았다.단정은 곧 멈
“소환?! 너는 어떻게 나온 것이냐!폐하는!”진한길은 즉시 그녀의 뒤를 쳐다보았지만 그녀의 뒤에는 굳게 닫힌 돌 문 뿐이었다. 돌문 외에 황제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남산왕이 급하게 물었다. “소환! 어찌하여 너만 나온 것이냐! 폐하는 어디에…”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봉구안은 즉시 말했다.“전하, 즉시 명령을 내려 구중탑을 폭파하십시오!” 남산왕의 얼굴이 금세 파래졌다. “그럴 수 없다!” “저긴 봉맥이 이어진 곳이기 이전에, 폐하께서 아직 안에 계시지 않는가!” “지금 나의 손을 빌려 군주를 시해하려는 것이냐!” “아닙니다! 결코 폐하를 시해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봉구안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폐하께서는 안전한 곳에 대피해 계십니다. 천룡회 교주는 수시로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저 구중탑을 파괴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이요!” 그래도 남산왕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의 태도는 단호했다.“그래도 안 된다! 구중탑이 무너지면 봉맥은 반드시 끊어지게 돼. 나는 이 봉맥을 망칠 수 없다! 남제 국운에 관계되는 이 일은 내가 감히 결정할 일이 아니다.”“설령 폐하께서 똑같은 명령을 내렸다 하더라도 난 끝까지 구중탑을 지켰을 것이다!”진한길이 노했다. “남산왕 전하! 지금 황제 폐하께서 안에 갇혀 계십니다!”그는 즉시 분부하였다.“어서 빨리 사람을 불러와 구중탑을 폭파할 준비를 하십시오!!” 원래 그는 황제의 이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지금, 황제는 안에 갇혀있는 상태였다.그는 즉시 이러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구중탑을 폭파하기 위해 필요한 폭약과 진천뢰는 이미 충분히 준비해둔 상태였다! 남산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함부로 지껄이지 말거라! 황제는 새로 세울 수 있지만, 남제의 국운은 다시 올 수 없는 법이니...” 봉구안은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남산왕 전하께서 지키는 것은 봉맥이 아니라 그 황백한 물건들이 아닙니까! 설마 그 보물들이 황제 폐하의 목숨보다
소욱은 위층으로 달려갔다. 계속 달려 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그는 아래로 내려가는 쪽이 생존 확률이 더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래로 내려가면 봉구안에게는 아무런 살길이 남지 않았다.첫째, 그녀는 자신보다 체구가 작고 경공이 뛰어나 내문을 더 빠르게 통과할 수 있어 탑을 나갈 가능성이 높았다.둘째, 탑을 나간 뒤에는 남산왕을 설득해 탑을 부숴야 했다. 만약 탑 안에 남는 사람이 봉구안이라면 남산왕은 그녀의 생사를 아랑곳하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그곳에 갇혀 있는 사람이 황제인 자신이라면 남산왕도 어느 정도는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결국 봉구안은 탑을 나간 뒤의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녀는 그저 자신이 살기보다는 그를 살리는 데만 온 힘을 쏟았다. 심지어 단회욱과 함께 죽을 각오까지 한 듯했다.그런 그녀의 뜻을 소욱이 어떻게 두고 볼 수 있겠는가!…봉구안은 빠르게 1층까지 내려갔다.상황이 이지경에 이르렀으니, 시간은 더욱 촉박했다. 그녀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구중탑은 오직 들어올 수만 있고 나갈 수는 없는 구조였다. 입구가 곧 출구였다.탑을 나가려면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소욱이 탑에 들어온 이상, 진한길과 그 일행은 필사적으로 탑 안으로 들어와 그를 지키려 할 것이다.그러니 문은 언젠가 열릴 터였다.봉구안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이제 남은 건 하늘의 뜻이었다.그때였다. 2층에 있던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젊은이, 여기서 나갈 수는 없다. 이 구중탑에는 문이 두 개지.”“바깥 문이 열리기 전에 안문이 먼저 닫혀버리는 구조라네.”“가끔 머리를 굴려서 안문 바깥에 미리 서 있으면 괜찮을 거라 착각하는 자들이 있더군.”“하지만 그곳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안문의 기계 장치를 작동시키게 되지… 못 믿겠으면 한번 해보거라.”봉구안은 바닥을 뚫어져라 응시했다.그녀는 이미 5층에서 악인들에게서 들은 바 있었다. 이 바닥에는 하중 장치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위에 사람이 발
봉구안이 시체처럼 늘어져 있는 적룡왕과 자룡왕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그 자들 가운데 두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너희들, 저 둘의 옷을 입고 변장하거라.”악인들은 봉구안의 명령에 불만이었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또 그 소위 보물이라는 걸 위해서 일단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이곳에 갇힌 자들 대부분이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아예 구중탑에 갇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흉내 내는 정도는 쉬운 일이었다.옷을 갈아입고, 가면을 쓰자 꽤 그럴싸한 모습이 되었다.잠시 후, 그들은 봉구안을 따라 다시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양연삭은 그곳에서 명상을 하며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발소리를 듣고 눈을 번쩍 뜨며 그들을 노려보았다.변장한 자룡왕이 나서서 예를 표했다.“교주님, 조사해본 결과 뜻밖의 장소였습니다. 바로 다섯 번째 층 바닥에 보물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어쩐지 다른 층보다 훨씬 두텁더니…”양연삭은 그들의 몸에 묻은 피를 보며 차갑게 시선을 내리깠다.봉구안이 담담히 말했다.“저들을 죽이려 했습니다만 실패했습니다. 제가 교주였다면 저 자들을 당장 없애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말한 위치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누가 알겠습니까…”그 말은 은근히 협박의 뉘앙스를 풍겼다.양연삭은 그녀를 깊이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충분한 인원을 소집하여 당장 땅을 파거라.”“알겠습니다, 교주님!”봉구안이 제안했다.“외부인을 믿을 수 없으니…”“다섯 번째 층의 모든 이를 몰아내고 저희 손으로 직접 파는 게 어떠십니까?”양연삭의 음성이 날카롭게 변했다.“저들은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다.”그의 차가운 자신감은 무적의 내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말이 끝나자, 그는 갑자기 기세를 폭발시키며 강력한 힘을 봉구안에게 발산했다. 기류가 즉시 감옥처럼 형성되어 그녀를 가뒀고, 그녀의 몸이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동시에 진기가 새어나가기 시작했다.그것은 양연삭의 만건성법이었다! 그는 그녀의 내공을 빼앗으려 했다.양연삭의 눈빛은 얼
그녀더러 소욱을 죽이라니?봉구안의 손바닥이 서늘해졌다.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양연삭에게 되물었다.“이 탑에서 나갈 방도가 있습니까?”말인즉슨, 황제가 그 비밀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그러나 양연삭은 그런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황제를 당장 죽여라.”봉구안은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 소욱을 보호하며 말했다.“보물과 황제, 둘다 필요합니다.”자룡왕은 이미 몸을 가누고 일어서며 양연삭에게 외쳤다.“교주님, 이건 계략입니다! 소환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양연삭은 봉구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봉구안은 태연하게 고백했다.“저는 소수자입니다. 미남을 좋아하죠. 황제는 제가 아직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입니다.”“만약 황제를 죽이신다면, 여러분 중 누가 이보다 나은 장난감을 저에게 보상해 주시겠습니까?”그녀는 말하며 시선으로 오왕을 훑었다. 마치 물건을 고르듯, 눈빛은 방자하고 조롱기가 섞여 있었다.“참고로, 저는 자극적인 놀이를 좋아합니다. 당신들 중 감당할 자가 있다면, 나이가 좀 많더라도 상관없습니다.”그 말에 자룡왕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양연삭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길을 안내하거라.”봉구안은 마치 아쉽다는 듯 오왕을 흘낏 보았으나, 그들 중 누구도 그녀의 시선을 감히 마주 보지 못했다.양연삭은 탑의 제9층에서 떠나지 않고, 자룡왕과 적룡왕에게 봉구안을 따라가라고 명령했다.봉구안은 그들을 탑의 5층 돌계단까지 데려갔다.그러고는 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그녀는 눈앞의 돌벽을 가리키며 말했다.“여기입니다.”자룡왕과 적룡왕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즉시 봉구안을 죽이려 하였다.그러나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기억이 잘못되었습니다. 아마도 한 층 더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자룡왕은 참지 못하고 그녀의 옷깃을 붙잡았다.“소환, 경고하겠다. 잔꾀 부리지 말거라!”봉구안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물었다.“교주님께서는 보물의 절반을 줄 만큼 후
봉구안은 원래 쓰던 가면이 깨져버려 다른 이의 가면을 대신 쓰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형에 조금 맞지 않아 그녀의 얼굴이 유난히 좁고 작아 보였다.소욱은 살기를 가득 담은 얼굴로 중앙에 있는 이를 차갑게 노려보고 있었다.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바로 공격을 시작했다.양연삭은 가부좌 자세로 앉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어쨌든 그의 곁에는 다섯 명의 왕이 그를 지키고 있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다음, 아무도 예상치 못한 장면이 벌어졌다.봉구안이 뒤에서 기습을 가해 은침 하나를 소욱의 뒷목에 꽂았다.소욱은 검을 쥔 채 동작을 멈추더니 믿기 힘든 듯 뒤를 돌아보았다. 배신감에 휩싸인 표정이었다.“네가 어째서…”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고, 그가 들고 있던 검 역시 ‘쾅’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한 채 쓸모없는 쇳덩이에 불과했다.천룡회의 다섯 왕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무슨 상황이지?양연삭은 쓰러진 황제를 한 번 보더니 봉구안을 다시 바라보았다.봉구안은 쓰러진 소욱을 무시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저는 소환이라 합니다.”자룡왕은 분노에 찬 냉소를 터트렸다.“소환? 네가 감히 여기에 나타나다니! 우리가 누군지 알기는 하느냐?”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손에 든 무기를 봉구안의 목에 들이댔다.그러나 그녀는 피하지 않고 차분히 대답했다.“압니다. 여러분들은 천룡회의 사람들이지요.”“예전에 우리 천룡회를 멸망시킨 자가 바로 너구나. 오늘, 네놈을 당장 죽여, 천룡회 일원들의 복수를 할 것이다!”자룡왕이 곧바로 공격하려던 찰나, 봉구안이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저를 죽이신다면, 여러분은 보물을 찾을 가능성이 더더욱 없어집니다.”“멈춰라.”양연삭이 직접 말을 꺼냈다.자룡왕은 즉시 공격을 멈췄다.“네놈,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봉구안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자룡왕을 지나쳐 교주 양연삭을 향해 말했다.“여러분처럼 저 또한 이번에 구중탑에 들어온 것은 남제 태조 황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