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욱은 조정 대신들을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나, 황제의 위엄으로 황궁 어른들까지 억누를 수는 없었다. "변방에 전쟁이 끊이지 않아 후궁에 들 마음이 없습니다," 그가 그렇게 대충 둘러대자, 태황태후는 물러서지 않았다. "선이는 어여쁘고 상냥한 아이니, 어찌 너의 마음에 들지 않겠느냐? 아무리 애정을 주지 않더라도, 네가 최소한 한번쯤은 방비전에 가서 그 아이를 만나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두 사람이 서로 자주 보아야만, 그 아이의 좋은 점을 알게 될 것 아니더냐?" 소욱은 미묘하게 표정을 굳히며 답했다. "마마, 후궁의 일은 황후가 맡고 있으니 노여움을 끼치지 않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태황태후는 마치 화풀이할 상대를 찾은 듯 탁자를 세차게 내리쳤다. "솔직히 말해 보아라. 혹여 황후가 너에게 무슨 말을 한 것이냐? 혹시 황후가 네가 방을 함께한 것을 기회삼아 베개머리에서 어떤 속삭임을 했단 말이냐!" 그렇지 않고서야 선이 같은 조건을 가진 아이가 어찌 사랑을 받지 못하겠느냐? 소욱은 즉각 반박하려 하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한 후에 대답을 바꾸었다. "황후는 짐의 정실이니 짐 또한 황후의 감정을 배려해야 합니다." 태황태후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불같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봐라! 당장 황후를 이곳으로 부르거라! 내가 직접 황후에게 물어보겠다. 도대체 어떤 감정인지 말이다!" 두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봉구안은 만수궁의 청벽 너머에 서 있었고, 속으로는 한숨을 쉬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차라리 거친 말을 하고 싶었다. 그녀의 감정이 어찌 되느냐고? 감정 같은 건 털끝만큼도 없다고 말이다! 소욱이 누구를 총애하든,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때 소욱은 의자에 앉아 고개를 돌리지 않고 유유히 차를 마시며, 마치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듯 여유롭게 있었다. 봉구안이 방금 만수궁에 들어서자마자 태황태후는 그녀에게 무릎을 꿇으라 명하였다.
어정한 연못가의 정자 안, 미풍이 살랑이고 있었다. 이토록 아름답고 고요한 풍경조차도 황제의 분노를 달랠 수 없었다. 소욱은 등 돌린 채 연못을 바라보며 서 있었고, 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내려앉은 얼음덩이와 같았다. "황후가 늘 쓸데없는 말을 일삼더니, 물에 들어가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해야겠구나."봉구안은 침착하게 답하였다. "신첩은 전하께서 태황태후께 굴복하여 정귀인을 총애하시는 걸 원치 않으셔서, 급한 마음에 손쉽게 한 방편을 선택하신 것이라 여겼습니다. ""만일 신첩이 오해한 것이라면, 즉시 태황태후께 가서 전하께서 병을 이미 회복하셨다고 명확히 말씀드리겠사옵니다."소욱의 시선이 음험하고 예리해졌다. 병이라니? 그는 애초에 병이 없었단 말이다! 지금 그녀가 태황태후께 가서 한바탕 얘기하면 오히려 일을 더 망칠 뿐이었다."그만두어라!"소욱은 화가 났지만, 황후의 말이 자신에게 많은 수고를 덜어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스스로에게 약간 손해를 본 방법일지라도 약속은 지켜야 했다. "궁중 한 해의 처벌을 면하겠다."봉구안은 기쁘지도, 화내지도 않으며 담담히 답했다. "예, 전하."......방비전에서는 모용선이 꽃병 속의 꽃을 정성스럽게 손질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시녀 추홍이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추홍은 모용가의 집에서 태어난 몸종으로, 유서 깊은 여인이었으며, 최근 유서가 형자사로 끌려간 후로는 모용선의 신임을 받는 중요한 시녀가 되었다. 궁중 상황에 익숙한 그녀는 기대로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귀인, 황후께서 전하와 합방하신 것은 태황태후께서 주선하신 일입니다.""전하께서는 차갑고 무정해 보이시지만, 사실 가장 효심이 깊으셔서 태황태후의 말씀이라면 언제나 순종하시지요.""태황태후께서 전하께서 귀인을 총애하시게 할 것이라고 하셨으니, 그야말로 한마디 말씀만 하시면 될 일입니다."전하께서 이미 만수궁에 가셨으니, 아마 조금 있으면 유내관께서 방비전에 와서 오늘 밤 귀인이 침소
녕비가 떠난 후, 계 상궁이 태후를 위로하였다."태후마마, 녕비 마마께서 그런 말을 귀담아 들으셨다면, 이토록 태후마마를 실망시키진 않으셨을 것입니다."태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녕비의 성품은 잘 알고 있다.""늘 눈이 머리 위에 달려 있어 많은 것을 놓치고 마는구나.""녕비는 날 실망시키지 않을 게야."계 상궁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사옵니다, 태후마마. 녕비 마마를 가르치고 아껴 주신 노고가 헛되지 않았을 것입니다."……영화궁오찬 후, 가빈이 찾아왔다. 그녀는 오랜만에 말을 타고 싶어 황후 봉구안을 승마장에 데려가 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봉구안은 이를 거절하였다. 첫째는 황후로서 처리할 내무가 있었고, 둘째는 후궁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빈이 끈질기게 매달려서 그녀의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가 주십시오, 황후마마. 이번 한 번만이옵니다. 이후로는 절대 마마께 폐를 끼치지 않겠나이다, 네?"가빈은 어린 나이에 입궁하여 말을 편히 할 친구 하나 없었다. 오로지 황후와 있을 때만이 마음이 평온하고 기뻤다. 그녀가 오랫동안 사모하던 황상과의 느낌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황후 또한 차갑게 무시하기는 하였으나 적어도 비아냥거리거나 내쫓지는 않았기 때문이다.탁!봉구안은 짜증스레 장부를 힘껏 덮었다. 강림만해도 이미 시끄럽고 끈질기다 여겼으나, 이 가빈은 더욱 심했다. 강림이라면 진즉 손을 들어 때렸을 것이었다.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승마장에 가서 한 시진 동안 같이 있어 주마. 그 대신 앞으로 한 달 동안 영화궁에 찾아오지 말거라."가빈은 대꾸하였다."한 달은 너무 기나이다, 황후마마. 삼일만, 내일부터 삼일 동안만이라도 폐를 끼치지 않겠나이다.""한 달이다." 봉구안은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았다. 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일어나 연상에게 옷을 갈아입히라 명했다.가빈은 얼굴을 구기며 투덜거렸다. 황후마마는 정말로 정이 없다. 그래도 즉흥적으로 즐기는 게 낫겠지! 마마께서 말을
어느 순간 갑자기 날아든 암기가 있었으나, 봉구안은 그 기습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몸이 본능적으로 피했고 암기는 다행이도 물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곧이어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황후마마의 무예가 과연 대단하시군요."또 서왕이었다! 그가 나무 그늘 아래 서서 잘생긴 얼굴에 얽히고설킨 빛과 그림자를 드리운 채 서 있었다. 봉구안은 얼음같은 눈으로 그를 응시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소매 속에서 예리한 칼날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미 정체가 드러났으니 차라리…서왕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물었다."근래에 제 저택에 자꾸 누군가 침입하더군요. 무엇인가를 조사하려는 듯 보입니다.""이 일에 황후마마께서는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물론 봉구안은 알고 있었다. 서왕을 의심한 이상 당연히 그의 저택을 조사했었다. 하지만 그가 그녀라고 단정 짓고 궁까지 와서 따질 줄이야.서왕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오며 여전히 미소를 띠고 말했다."황후마마,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는 법이지요. 제가 황후마마께서 무공을 익히시고 몰래 궁을 나서시는 일을 모른 척해 드렸거늘, 어찌하여 저를 끝까지 몰아세우시는지요?""설마 제가 반격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시는 겁니까?"봉구안은 그의 몸에 시선을 고정했다."오히려 점점 더 네 비밀이 궁금해지는군."그 말이 끝나자, 그녀는 갑자기 몸을 날려 단검을 그의 목에 겨누고는 동시에 그의 혈을 짚었다. 기류가 갑자기 어지러워져 둘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휘날렸다. 서왕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고, 뒤에 묶인 머리끈이 바람에 나부꼈다.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칼날에 닿자 머리카락이 진흙처럼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봉구안의 차가운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렸다."사실대로 말한다면 목숨은 살려주마."서왕은 웃는 듯 마는 듯, 화난 듯 아닌 듯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황후마마께서는 정말로 제 목숨을 원하십니까?""말해라." 봉구안은 단검을 더 깊이 들이대며 그의 목에 칼로 얕게 선을 그
어깨가 탈구된 듯한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듯, 서왕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탄식하였다."황후마마께서는 잊으셨을지도 모르겠사옵니다만, 칠 년 전 제가 황성에 와서 천자호변에서 습격을 받아 수행하던 자들이 모두 목숨을 잃고, 저 또한 목숨을 잃을 뻔하였사옵니다.""그때 마침 황후마마께서 지나시다 호위들에게 명해 구해주셨기에 제가 살아날 수 있었사옵니다."칠 년 전, 천자호. 봉구안 또한 그 일을 떠올렸다. 과연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당시 그녀와 봉장미 또한 열한 살 생일을 맞이하여, 스승님께서 며칠 휴가를 주셨고, 그녀는 황성으로 와 봉장미를 찾아 함께 사람이 적은 천자호에서 연등을 띄웠다. 스승님이 선물로 주신 가면을 쓰고 소년 행세를 하며 봉장미의 호위무사로 가장했던 것이다.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소년이 추격당하는 장면을 보았다. 처음엔 봉장미를 데리고 빨리 도망치고 싶었지만, 봉장미는 사람을 구해달라 요청하였고, 그녀는 결국 그 소년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구해준 소년이 눈앞의 서왕이었다니!봉구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기억하오, 그 소년의 왼쪽 어깨가 칼에 찔려 거의 뚫렸었지요."그가 그 소년이라면, 어깨에 분명 흉터가 남아 있을 것이다.봉구안은 주저하지 않고 손을 뻗어 그의 옷깃을 잡았다.옷깃이 그녀의 손에 의해 강제로 찣어지자 서왕은 눈이 커졌다. 평소 온화하고 침착하던 얼굴에, 이 순간에는 당황과 어리둥절함이 스쳤다. 그리고 다소의 부끄러움까지.아니!여자가 어찌 감히 사내의 옷을 벗길 수 있는가!봉구안은 그의 놀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왼쪽 어깨를 직시했다. 쇄골에서 약 두 치 아래에 옅은 갈색의 칼 흉터가 있었다.틀림없다. 바로 그였다!서왕은 온화하던 얼굴이 마치 서리를 맞은 가지처럼 시들고, 거뭇한 자주색으로 변하며 큰 충격을 받은 듯하였다.그녀가 손을 놓자, 서왕은 즉시 한 손으로 옷깃을 붙들어 단정히 가다듬으며 침착함을 되찾으려 애썼다."보시다시피, 제가 그때 황후마마께서 구해주신 그 소년
유사양은 황제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즉시 다른 시종들에게 물러나라고 눈짓하였다."아!"갑자기, 정귀인은 제기를 유독 높이 찼고, 사람들이 일제히 숨을 삼켰다.어렵게 보이는 제기었지만, 정귀인은 높이 뛰어오르며 안정적으로 제기를 받아냈다."귀인께서는 참으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셨군요!"궁인들이 일제히 칭찬하였다.정귀인은 두 번째로 제기를 차려 했으나, 멀리 복도에 서 있는 황제의 준수한 모습을 발견하자 활발하던 태도를 일순간에 거두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녀는 곧바로 동작을 멈추고, 단아하고 정중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낮추어 예를 올렸다."신첩, 황상께 문안 드립니다."궁인들 역시 황제를 보고 즉시 예를 갖췄다."황상께 문안 드립니다!"유사양은 태황태후의 말을 들은 바 있어, 정귀인을 다소 동정하였다. 원래는 활발하고 명랑한 사람이었지만, 억지로 얌전하고 말수가 적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소욱은 정귀인을 깊이 바라본 후 간단히 면례를 허락한 다음 만수궁을 떠났다.정귀인은 그의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만수궁을 나온 소욱은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정귀인이 저리한데, 황후는 어떠할가? 황후의 고요한 겉모습 아래에 감춰진 진짜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지...갑자기 그는 걸음을 멈추며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스쳤다. 아마 혼란스러웠던 모양이다. 황후를 떠올리다니. 그 여자가 어찌되든 상관없다!그를 생각만 해도 불쾌해지는 이는 비단 황후뿐만이 아니었다. 또한 그 여자 자객 역시 그랬다.며칠이 지나도 그녀는 아직 답을 내놓지 않았다. 과연 궁중에 남아 그의 사람이 될 것인지, 아니면 북대영으로 가 여군에 합류할 것인지.그는 진한길에게 물었다."이 며칠 대보단은 다 받았느냐?"진한길은 즉시 답하였다."모두 가져갔습니다."황제는 진귀한 대보단을 그녀에게 몇 알이나 내어주었다. 그만큼 얻기 힘든 귀한 약인데도, 황제는 자객에게 아낌없이 주었기에 그는 안타깝게 여겼다.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북방에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입니까?"오백은 봉구안과 마찬가지로 수 개월 동안 황성에 머물며 북방의 상황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북방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말을 듣자 그는 긴장한 채 불안에 떨었다.봉구안의 눈에는 서슬 퍼런 기운이 가득 차 올랐고, 그녀의 주먹은 굳게 쥐어진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장성이 이끄는 용호군이 한산파에서 양군의 매복에 걸려, 324명 전원이 전멸하였네."오백은 마치 얼음물에 쏟아진 듯 몸속의 피가 모두 얼어붙는 듯했다.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며 커졌다가 이내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몸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쿵! 그는 벽을 향해 돌아서더니 주먹을 꽉 쥔 채 힘껏 벽에 내리쳤다. 벽을 바라보며 고개를 떨군 채 어깨를 떨며, 그는 손으로 눈을 훑고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호흡을 삼키듯 씹으며 힘겹게 울부짖었다."으아아아아!"봉구안은 그곳에 앉아 있었고, 기름등 아래 그녀의 얼굴은 짙은 그림자로 덮여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동시에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오백은 잠시 분노를 발산한 후, 붉어진 눈으로 봉구안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절을 올렸다."소장군, 양군은 비열합니다! 전에는 거짓으로 화의를 청하고 실상은 전쟁을 연기하려 하였사옵니다. 이제 그들은 다시 세력을 규합해왔으며, 용호군은 전멸하였습니다. 소인은… 결코 이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장성은 그의 생사를 함께한 절친한 동료였다. 북방을 떠나기 전 장성은 돌아오면 함께 한 잔 마시자며 그에게 좋은 술을 남겨두었다. 그러나 이제 술은 남았으나 사람은 떠나고 말았다... 삼백여 명의 형제들이 이처럼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봉구안도 애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군영에 들어온 후로 숱한 생사의 이별을 보아 왔다. 슬픔과 눈물로는 적의 성을 무너뜨릴 수 없음을 일찍이 깨달은 그녀였다. 오직 칼과 복수의 결의만이 적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어전에서 조회를 마친 후, 소욱은 몇몇 중신들을 남겨두고 국사를 논의하였다.한산 비탈에서 일어난 전투는 양국이 먼저 도발한 것이며, 그로 인해 남제는 어쩔 수 없이 응전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이번에도 양국은 이전과 같은 꾀를 부려 화친을 요구하고 있었다. 남제 조정의 대다수 관료들은 양국이 간사하고 믿을 수 없다고 여겼으나, 이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이도 있었다."폐하, 양군이 전에 번복한 것은 맹 소장군이 중상을 입었기 때문이옵니다.""그들은 이 기회를 틈타 함락된 성을 되찾고자 했던 것이옵지요. 그러나 이제 그 맹 소장군이 회복되었다고 들었사옵니다. 이러하니 양국은 다시 전쟁을 일으킬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옵니다. 차라리 여기서 멈추고 나라를 보전하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 현명하옵니다."소욱은 얼굴에 냉랭한 기색을 띠며 신하들의 논의를 조용히 들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유사양이 들어와 그에게 낮은 목소리로 아뢰었다."폐하, 황후마마께서 알현을 청하셨사옵니다."소욱은 시각을 보더니, 마침 알맞은 때라 여겨 신하들을 먼저 물러가게 하였다. 곧이어 봉구안이 어전으로 들어섰다. 소욱은 손에 들고 있던 상소문을 옆에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황후께서는 어인 일로 날 찾아온 게요?"그는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중대한 일이 아니면 결코 알현을 청하지 않는 그녀였기 때문이다. 봉구안은 공손히 예를 갖춰 인사하며 말했다."신첩은 후궁이 정사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그러나 태조 황제께서도 일찍이 '나라의 흥망은 모든 백성의 책임이며, 남녀노소,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셨사옵니다.""그러니 비록 오늘 폐하께서 처분을 내리시더라도 신첩은 반드시 말씀을 올려야 하겠사옵니다."소욱은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는지 짐작했다. 여러 대신들과 긴 시간 동안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는데, 후궁의 여인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결연한 표정을
남제의 동부 군은 한 번의 승리로 인해 다시금 군심이 뭉쳐졌다. 전쟁은 끝났고, 그날 소욱은 봉구안을 데리고 떠나려 했다.관 장군은 여러 장수들을 이끌고 소욱을 배웅했다.황제가 떠나는 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한 나라의 황제가 군영에 오래 머물 수는 없는 법이었다.다만 그들이 아쉬운 것은 봉구안이었다. 병법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관 장군은 시험 삼아 물었다.“폐하, 맹 소장군께서도 함께 떠나십니까?”소욱은 눈을 살짝 좁혔다.“그 말의 의미는 무엇이냐?”관 장군은 끝내 황제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는 그저 먼지와 함께 멀어지는 가마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봉구안은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에 매일 몸 안의 습기를 빼고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야 했다.그렇게 소욱은 봉구안을 데리고 황성으로 돌아갔다.동방세의 무리들은 양연삭이라는 심복의 골칫거리를 제거한 뒤에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그들은 강호에 몸을 두고 있었기에 계속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유일하게 완부옥은 봉구안을 따라 몰래 황성으로 따라갔다.…북연군이 퇴각한 뒤, 모두가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양연삭 한 사람으로 인해 그들은 큰 피해를 입고 말았다.패전 소식은 북연까지 전해졌다.조정에서 연나라 황제는 크게 분노했다.“짐이 말하지 않았느냐!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 출병하지 말라고! 어찌 이리 많은 병력을 잃었단 말이냐! 양연삭은 어찌 되었느냐! 죽었느냐!”“폐하,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연나라 황제는 분노 끝에 냉소를 터뜨렸다.“노여움을 거두라고? 너희는 아느냐, 남제 또한 화룡을 만들어냈단 말이다! 짐은 이제 편할 날이 없구나! 철저히 조사하라! 화룡 설계도를 유출한 자가 누구인지 밝혀내라!”그는 믿을 수 없었다. 이렇게 복잡한 화룡을 남제인이 만들어냈을 리가 없었다.북연 내부에 반역자가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한 가지 일이 해결되기도 전에 또 다른 문제가 터졌다.시위가 황제에게 서신을 전했
양연삭은 내공을 완전히 잃고 저항할 힘을 잃었다.소욱이 손짓하자 시위들이 나와 양연삭을 제압하고, 쇠사슬과 족쇄를 채워 미리 준비된 쇠창살 우리에 가두었다.양연삭은 끌려가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고 악담을 퍼부었다.“소환! 네가 어떻게 죽나 두고 보자!”범진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소환, 어서 말해봐라. 양연삭을 이렇게 처리할 방법을 어떻게 생각해낸 거냐?”봉구안은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양연삭이 황제의 내공을 흡수할 때, 진기가 유난히 불안정했소. 그때부터 의심이 들었지. 그리고 나중에 염추가 양연삭의 일부 내공을 흡수하는 것을 보고는 확신했소.”“무엇을 확신했다는 거요?” 범진은 성격이 급해 계속 다그쳤다.봉구안은 이어 말했다.“만간성법으로는 무한정 다른 이의 내공을 흡수할 수 없다는 것이오.”“아무리 깊은 심연이라도 바닥은 있지 않겠소?”“염추가 한 번에 너무 많은 내공을 흡수하지 못한다면, 양연삭 역시 마찬가지였소.”이 약점을 말로는 간단히 설명할 수 있어도, 실제로 깨뜨리기 위해서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 많은 이들의 협력이 필요했다.봉구안은 동방세 등에게 몸을 굽혀 감사의 뜻을 표했다.“모두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동방세는 바로 예를 갖춰 답례하며 활짝 웃었다.“무슨 말씀을! 우리야말로 공력이 몇 배 늘었으니, 감사인사를 받을 사람은 소환 자네가 아니겠소.”무림맹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더욱 후회가 깊어졌다.그들은 아무런 이익도 챙기지 못했으니 말이다.완부옥은 끌려가는 양연삭을 죽을 듯이 노려보다가, 소욱이 미처 막을 틈도 없이 봉구안의 팔 한쪽을 끌어안았다.“낭군, 양연삭을 어서 죽여버리세요. 방금 정말 깜짝 놀랐잖아요.”‘방금 양연삭이 저 자를 왜 안 죽였을까?’소욱은 완부옥을 흉내 내듯 봉구안의 다른 손을 잡고 말했다.“구안아, 내가 좀 어지럽구나.”동방세는 봉구안이 좌우에 둘러싸인 모습을 보고 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완부옥이 소환이 여자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그녀를
봉구안이 동방세를 비롯한 일행에게 말했다. “내게 내력을 전부 보내시오!” 동방세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뒤로 가, 소욱처럼 자신의 내력을 전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소환을 믿고 따르기로 했다. 봉구안은 차갑게 앞에 서 있는 양연삭을 바라보며 말했다. 양연삭이 그녀를 비웃으며 외쳤다. “소환! 네가 죽고 싶어서 이러는 건 상관없다만,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이다니! 좋아, 내가 모두 끝내주지!” 양연삭은 거의 주화입마 상태였지만, 강한 의지로 정신을 다잡아 눈앞의 적에 집중했다. 그러나 염추가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과 자신이 직접 그녀를 죽였다는 사실이 그의 정신을 흔들었다. 그의 진기가 흐트러지기 시작하며 몸 안에서 끓는 물처럼 요동쳤다. 완부옥은 내력을 전하다 점점 힘들어졌고, 그녀가 물었다. “대체 얼마나 더 걸리느냐... 설마 우리 내력을 전부 양연삭에게 줄 셈이냐!” 소욱은 끝까지 소환을 믿었고, 그녀의 의도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잠시 후, 양연삭은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히 점점 더 많은 내력을 흡수해야 하는데, 오히려 내력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양연삭은 즉시 기공을 멈추려 했지만, 소환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에 묶여 꼼짝할 수 없었다. 그는 마치 강력한 힘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양연삭의 눈을 가리던 검은 천이 공중으로 날아갔고, 그는 혼탁한 두 눈으로 분노에 찬 비명을 질렀다. “소환! 네놈이 만간성법 몰래 익혔구나!” 그는 이를 갈며 외쳤다. “이럴 순 없어! 만간성법 말고는 내 내력을 거꾸로 빨아들일 수 없단 말이야!” 그는 근력을 되돌려 그 힘에서 빠져나오려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소환의 손은 그의 내력을 빠른 속도로 흡수하며, 그녀의 뒤에 있던 동료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만간성법이었다. 그는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내지 못하였다! “소환! 그만둬라! 이러다 네놈도 주화입마할 거다! 멈춰!” 양연삭은 난생처음 두려움을 느꼈다. 이대로 가면
봉구안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양연삭에게 말했다.“양연삭, 염추는 네 딸이 맞아. 네 친딸이지.”양연삭은 여전히 믿지 못했다.이에 동방세가 나서며 말했다.“내가 증명할 수 있소. 양연삭, 전에 당신이 진 나라의 혈통이 아니라고 말했던 건 당신을 속이기 위해서였소. 그러나 염추는 확실히 자네의 아이가 맞소.”“헛소리하지 말거라! 저 년이 내 딸일 리 없다!” 양연삭이 소리쳤다.그런데 이미 숨이 끊어질 듯한 염추도 믿지 않았다.동방세가 한숨을 쉬었다.“염추, 네 어머니가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할 리 없다. 아버지라 부르고 마음 편히 길을 떠나거라.”봉구안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염추는 마공을 익히기 위해 무림의 수많은 사람을 해쳤다. 그녀의 잔혹함과 냉혹함은 그녀의 생부와 꼭 닮았지.”“양연삭, 딸을 이렇게 낳았으니 기뻐해야 하지 않겠느냐?”“만약 정말로 당신이 복국을 이룬다면, 딸 하나쯤은 혈맥이 이어질 길이 아니겠느냐?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네 유일한 자식은 이제 네 손에 죽었다. 네 딸의 마지막 순간을 보고 싶지도 않은 것이냐?”양연삭의 두 손이 떨렸다. 잠시 멍하니 있던 그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하하하! 죽으면 죽은 거지! 잘 죽었다! 저 년과 저 년의 어미 모두 죽어야 마땅하다! 천룡회의 배신자는 이와 같은 최후를 맞아야 하지! 너희들이 날 속이려 해도 소용없다! 차라리 내가 저 년의 심장을 도려내어 조각내 버리고 싶을 정도이니!”이때 완부옥이 혐오와 짜증이 섞인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잊으셨습니까? 저 늙은이는 눈이 멀어서 자기 딸도 못 알아볼거라 하지 않았습니까?”“늙은이, 내가 보기엔, 저 자랑 당신은 정말로 똑 닮았소. 그게 바로 부녀간의 닮은꼴 아니겠소? 저 자의 어미도 참 불쌍한 사람이었소. 당신에게 더럽힘을 당하고 이 야생아를 낳았다니. 그렇지 않고서야 왜 멀쩡한 사람이 딸을 버리고 스님이 되었겠소!”양연삭은 굳건한 의지를 보였다.그는 이미 봉구안에게 도발당해 마공을 익히다
염추는 마음이 불안해 뒷걸음질쳤다.“아, 아니야… 그게… 이건 만간성법이 아니야. 나는…”봉구안이 차갑게 말했다.“양연삭이 네 아비다. 너희 부녀가 강호를 이렇게 어지럽게 만들었으니, 염추, 너도 죽어야 마땅하다.”“아니야! 그 사람은 내 아버지가 아니야!” 염추가 극구 부인했다.무림을 통일하고, 만인의 존경을 받으려는 그녀였다. 어찌 그런 반역자가 자신의 아버지일 수 있단 말인가!봉구안은 냉랭하게 말했다.“네 부녀가 공모해서 일부러 이 연극을 꾸민 게 아니냐. 실은 우리를 제거하려고 손을 잡은 거겠지!”“소환! 네가 날 모함하고 있어! 내가 어떻게 그와…”봉구안은 그녀의 말을 끊으며 몰아붙였다.“그럼 왜 멈췄느냐? 왜 그와 싸우지 않고 뒤로 물러났느냐! 다른 사람들을 싸움터로 내몰아놓고, 우리가 양연삭에게 당할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게 해서 그의 내공을 더 채워준 거 아니냐!”염추는 고개를 마구 저으며 외쳤다.“아니야… 난 다쳤어. 더는 싸울 수 없었다고. 네가 날 모함하고 있어! 소환, 날 모함하지 마…”봉구안은 더욱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아직도 네가 양연삭의 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느냐?”“너희 부녀는 정말 독한 계략을 꾸몄다!”“네 친어머니마저 희생시키면서 말이다. 염추, 그분은 널 열 달 품어 낳은 네 어머니다. 너 정말 그분을 저버릴 수 있느냐? 어머니는 돌아가시면서도 끝내 이 모든 게 너희 부녀의 음모였다는 걸 모르고 떠나셨다…”“소환!!! 닥쳐, 닥치라고!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아니야. 내가 어떻게 내 어머니를 희생시켜! 그건 양연삭이야! 그 자가 우리 어머니를 죽였어! 그 자는 내 원수란 말이야!”염추의 눈은 새빨갛게 변하며, 분노로 양연삭을 노려보았다.“그래! 난 그 자와 원수야! 내가 그 자를 죽일 거야. 죽이고 말 거라고! 너희 다 똑똑히 봐! 내가 그 자를 죽여서 증명할 거야. 난 그 자의 딸이 아니야! 아니라고!”양연삭!저주받을 양연삭!그녀는 반드시 양연삭을 죽여야만 했
양연삭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 친딸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거짓말이야.”그는 고개를 저었다.같은 반응을 보이는 이는 염추도 마찬가지였다.“어머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염추는 어머니가 자신을 구하려고 이런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양연삭이 다시 살의를 드러내자, 염 부인은 체면을 잃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과거의 진실을 폭로하기로 했다.“양연삭!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것입니까… 그때 막 만간성법을 수련하기 시작했을 무렵, 심마에 빠져 정신을 잃은 채 저를… 저를 능용하지 않았습니까! 염추는 그날 밤 생긴 당신 딸입니다!”양연삭은 분노에 차 소리쳤다.“천한 계집! 심마에 빠진 건 너였겠지!”염추는 어머니가 피를 쏟으며 쓰러지는 것을 보고 온몸이 얼어붙었다.그녀는 급히 염 부인을 부축했다.“어머니, 그만 말씀하세요. 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양연삭은 체내에서 진기가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것을 억누르며 불쾌감을 삼켰다.“천한 계집! 입 닥쳐라! 내 딸이 아니다! 아니야! 내게는 아들 하나밖에 없다! 혹시 소환이 너를 시켜 나를 속이라고 한 것이냐? 내가 너를 죽여버리겠다!”그는 이 말을 끝으로 순식간에 달려들어 염 부인을 정확히 붙잡아 염추와 떼어놓았다.“안 돼!”염추는 놀라 외쳤다.동방세와 범진이 양쪽에서 양연삭의 주의를 끌며 염 부인을 구하려 했지만, 양연삭은 반응이 빨랐다.염 부인을 붙잡은 채 뒤로 물러섰다.염추는 이를 악물며 일어났다.피가 입가에 맺혀 있었지만, 그녀는 상관없었다.어머니가 양연삭의 손에 죽어가는 모습을 보자, 분노가 극에 달했다.“양연삭! 어머니를 놔줘라!”그러나 양연삭은 염 부인을 놓지 않고 집요하게 따져 물었다.“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다! 내 딸이 아니다! 말해라, 내 딸이 넌 아니라고!”염 부인은 처량한 눈빛으로 염추를 바라보았다.“내 딸아… 네 몸에는 네 아버지의 더러운 피가 흐르고 있어. 하지만… 부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라. 그만둬라,
염추는 만간성법을 수련하며 양연삭의 내력을 흡수했다. 그녀의 공력이 크게 증가한 덕에 두 사람은 땅에서 산으로 옮겨가며 치열하게 싸웠다. 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먼지가 날리고 바위가 사방으로 흩어졌다.멀리서는 제군과 북연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북연군의 부장이 전장에서 희미하게 양연삭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근심에 빠졌다.‘분명 쉽게 제황을 죽일 수 있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 소식도 없다니. 이쪽은 더 버틸 수 없단 말이다!’제군은 곳곳에 매복병을 숨겨두었다.그들은 북연군이 포위망을 뚫어냈다고 생각하는 순간마다 다시 새로운 병력을 내세워 공격을 개시했다.북연군 부장은 이를 갈았다.“제군 놈들, 정말 비열하기 그지없구나!”북연군 병사들의 사기는 점점 흩어졌다.그때, 제군의 주장인 관 장군이 말을 타고 나와 크게 외쳤다.“북연군이여 들어라! 우리 장군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다면, 북연군이 안전하게 조유관을 떠날 수 있도록 허락하시겠다고 하셨다!”북연군 부장은 분노하며 외쳤다.“북연군은 절대로 항복하지 않는다!”관 장군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응수했다.“항복해라!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겠느냐! 어차피 북연군은 지난 전투에서 이미 남제에 졌지 않은가. 폐하께서 친필로 쓰신 항복문서를 우리도 읽어봤다!”지난 전투는 연태자가 이끌었으나, 30만 대군을 잃고 말았다.그 후 겨우 모집한 신병들도 전장에서 패배해 대부분 폭사했다.북연군 부장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남제인 놈들, 감히 우리를 모욕하다니!’얼마 지나지 않아 북연군은 포위망을 뚫고 다시 진영을 정비했다.두 군은 서로의 진영을 뚜렷이 구분하며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제군의 장수들이 권고했다.“우리 폐하께서 말씀하시기를, 더는 장병들이 헛되이 죽어나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고 하셨소. 아마 귀군도 같은 마음일 테지요?”또 다른 장수가 거들었다.“맞습니다! 여기서 물러나는 게 낫소. 병사들마저 폭사했다던데, 북연군이 공격할 용기가
“너희들이 날 또 속이려 드는구나! 소환, 네 놈은 죽어야 마땅하다!”양연삭은 더 이상 그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그는 아무것도 듣지 않고, 동방세의 내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봉구은 즉시 검을 뽑아 몸을 솟구치며, 마치 날렵한 제비처럼 양연삭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양연삭은 귀를 살짝 움직이며 날카로운 검기가 다가오는 것을 감지하더니 몸을 비틀며 공법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덕분에 동방세는 바닥에 떨어져 거친 돌 위에 등을 세게 부딪혔고, 머리카락은 흩날렸다.양연삭은 즉각 대응하며 봉구안을 향해 반격을 개시했다.그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올랐고, 반드시 봉구안을 죽여야겠다는 살의를 품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정면으로 치지 않고, 순간이동하듯 그녀의 등 뒤로 이동했다.그리고 갑작스러운 손바닥 공격으로 그녀의 등을 내리쳤다.“소환! 조심하시오!”동방세가 경고하자, 봉구안이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미 늦었다.퍽!소욱이 그녀의 뒤를 막아 서서 그 공격을 대신 받아냈다!봉구안은 즉시 눈이 커지며 소욱을 부축했다.“폐하!”진한길이 즉시 달려와 호위하려 했으나, 양연삭의 옷자락 휘두름 한 번에 허공으로 튕겨나갔다.뒤에서 다가오던 오백이 간신히 진한길을 받아냈다.동시에, 봉구안은 소욱을 보호하며 후퇴했다.범진과 다른 호위병들이 연달아 도착하여 도움을 주려 했지만, 양연삭의 마공은 너무 강력했다.그는 혼자서도 열 명이 넘는 병사들의 공격을 막아냈으며, 마치 거대한 저항의 벽처럼 그들을 튕겨내며 봉구안을 향해 다가갔다.봉구안은 그의 살기를 읽어내며, 소욱을 안전한 곳으로 밀어냈다.“구안아!”소욱은 즉시 그녀를 향해 달려가 그녀를 보호하려 했지만, 이미 양연삭의 손바닥 공격과 맞닥뜨렸다.손바닥과 손바닥이 맞붙는 순간, 소욱은 강렬한 흡수력을 느꼈다.마치 그의 몸속 깊이 갈고리가 박혀 내력을 강제로 끌어내는 듯했다.그는 벗어날 수 없었다.양연삭의 얼굴은 기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그는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강력한 내력이군!”
“양연삭,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군!”상방산 위에 동방세가 강호의 벗들과 함께 진을 치고 있었다.봉구안은 이미 이들과 연락을 주고받았으며, 이 감주에서의 매복은 단순히 북연군을 막기 위함만이 아니라 양연삭을 체포하려는 목적도 있었다.익히 알고 있듯이, 양연삭이 듣는 감각으로 싸움을 이어가려면 시간을 들여 적응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감주는 그에게 낯선 곳이었다.양연삭은 헝클어진 머리칼과 검은 천으로 가린 눈을 한 채, 귀를 곤두세워 소리를 가늠했다.“소욱! 소환! 너희 둘, 당장 나와라!”그의 분노는 깊었다. 복국과 복수를 위해, 반드시 이 둘을 죽여야 했다.아들마저 죽음에 이르게 한 두 사람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봉구안은 높은 곳에서 이를 싸늘히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곁에는 소욱이 자리하고 있었다.그 외 장수들은 병사들을 이끌고 북연군과 싸우고 있었고, 이 상방산에는 오천의 정예병력만 배치되어 있었다.이 오천이 바로 오늘, 양연삭의 무덤을 파낼 병력이었다.…북연군은 진영이 어지럽혀지면서 전투력이 급감했다.관 장군은 먼저 기습으로 혼란을 일으킨 뒤 포위 공격으로 말머리를 돌렸다.기병들은 북연군 주위를 돌며 기세를 꺾었고, 말발굽 소리와 흙먼지, 그리고 치열한 함성은 북연군을 더욱 당황하게 했다.그들은 마치 산적에게 길을 막힌 규중 여인들처럼 갈팡질팡했다.부장은 목청껏 외쳤다.“흩어지지 마라! 반격하라! 우리가 북연군의 실력을 보여주자!”병사들은 방패를 들어 올리며 진을 짜기 시작했다. 이는 기병의 돌격을 막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었다.동시에 북연군의 기병들은 다른 쪽에서 포위를 뚫으려 고군분투하고 있었다.부장은 속으로 양연삭이 빨리 소욱을 죽이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렇다면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을 것이며, 그는 대공을 세운 영웅으로 남을 것이었다.양연삭은 비록 눈이 멀었지만 그의 마공은 전성기 못지않게 강력했다.완부옥이 몸에 지니고 있던 독물조차 그의 ‘만간성법’에 의해 모두 파괴되었고, 그녀는 내력을 상당히 잃은 채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