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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이혼 합의서

작가: 연의 수정
그 말을 듣는 순간 민여진은 화상을 입은 손보다도 마음이 더 아파왔다.

울먹이는 문채연은 다정하게 달래주면서 다친 민여진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게 박진성이었다.

민여진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박진성은 우는 여자를 싫어하는 게 아니란 걸.

그는 그저 우는 민여진을 유독 싫어할 뿐이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억울함에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민여진이 부어오른 손을 박진성에 들어 보였지만 그는 오히려 화를 내며 그녀의 상처를 매정하게 쳐냈다.

“그 손 안 치워?!”

민여진은 숨을 들이마시며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고통을 참아냈지만 박진성은 그걸 연기라고만 생각하며 치를 떨어댔다.

“어디서 변명이야, 너한테 물이 튄 걸 다행으로 알아야지. 만약 다친 게 채연이였다면 너도 무사하지 못했을 거야. 당장 나가!”

박진성의 말에 걸음을 옮기던 민여진은 그만 문채연의 득의양양한 표정을 봐버렸다.

“진성 씨, 그만 해요. 여진 씨도 진성 씨 사랑해서 그러는 거잖아요. 2년 동안 부부로 지내서 쌓인 정도 있을 텐데 나 때문에 싸우지 마요.”

“정?”

박진성은 코웃음을 치며 그녀의 말에 답했다.

“나랑 쟤 사이에 정 따위는 없어. 네가 깨어났으니까 쟨 이제 가야지. 본가에서 너랑 결혼하는 걸 반대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쟤랑 결혼할 일은 없었어. 쟤가 박씨 집안 사모님 행세를 할 일은 더더욱 없었겠지.”

닫혀버린 문 때문에 뒤에 이어지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이미 들은 말로도 민여진은 가슴이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눈앞이 새까매질 정도로 어지러워 바닥에 쭈그려 앉은 채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겨우겨우 1층으로 내려온 그녀가 소파에 앉아있은 지 한참 지나자 마침내 박진성이 아래로 내려왔다.

“사인해.”

그런데 그와 함께 제 앞에 놓은 이혼 합의서에 민여진은 고개를 들어 조심스레 물었다.

“오늘은... 이혼 안 한다고 했잖아요.”

“안 하면 네가 계속 채연이 해치는 거 보고만 있을까? 빨리 사인하고 나가. 그래야 내가 채연이랑 다시 시작하지.”

짜증 가득한 투로 말하는 박진성에 민여진은 아직도 아파서 떨리는 손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도대체 누가 누굴 해친다는 건지.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건 중요하지 않았기에 민여진은 이혼 합의서를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말한 건 지키는 박진성이었기에 집 한 채와 현금 20억이 위자료로 되어있었는데 평생 양성으로 돌아오지 않는 게 그가 건 유일한 조건이었다.

“사인할게요. 그런데 나도 조건이 있어요.”

그걸 다 보고 난 민여진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제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20억도, 집도 다 필요 없어요. 대신 이 아이만 무사히 낳게 해줘요. 그것만 약속하면 지금 바로 떠날게요.”

“넌 어떻게 이 와중에도 그렇게 헛된 꿈만 꿔?”

저를 혐오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박진성에 민여진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았다.

헛된 꿈을 꾸지 않으니까 모든 걸 마다하고 아이만 지키겠다는 건데 박진성은 죽었다 깨어나도 제 마음은 몰라줄 것 같았다.

“마음대로 생각해요.”

“합의서에 그 조항 추가해주면 바로 사인하고 20년 동안은 안 돌아올게요. 만약 당신이 내가 아이 낳는 걸 끝까지 방해한다면 나는 사인도 안 하고 본가에 가서 내가 문채연이 아니라는 사실도 다 폭로해버릴 거예요.”

민여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진성은 그녀의 목을 조르며 분노를 표출했다.

“네가 감히 날 협박해?”

마지막까지 매정한 그게 가슴이 아려왔던 민여진은 눈을 감은 채 대꾸했다.

“그 정도로 내가 아이를 지키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두라고요.”

“그래.”

박진성은 오물 덩어리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민여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네 아이는 건드리지 않을게. 단 네가 약속 안 지키면 나도 너랑 네 엄마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사인을 마친 박진성은 이혼 합의서를 민여진의 얼굴을 향해 던져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줍다가 손이 아파온 민여진이 잠시 멈칫하자 박진성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물었다.

“왜, 또 다른 핑계 대면서 사인 안 하려고?”

“아니에요.”

고개를 떨군 민여진은 강한 통증도 참아내며 빠르게 사인을 마쳤다.

사인하느라 올라온 손등에 가득 난 물집에 박진성은 아까 그녀가 했던 말이 진짜라는 걸 알아챘지만 다 본인이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매정하게 민여진을 내쳤다.

“오늘 당장 짐 싸서 나가. 양 비서한테 비행기 타는 것까지 다 보라고 할 테니까 허튼수작 부리지 마.”

민여진은 고개를 끄덕이자 박진성은 바로 그걸 양경호에게 건네며 이혼절차를 밟으라고 지시했다.

이혼이 아주 절박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자신의 처지자 우스워 헛웃음을 흘리던 민여진은 방으로 올라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올 때도 박진성에 대한 마음 하나만을 품고 온 거라 짐이라고 해봤자 그녀가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은 얼마 없었다.

갈아입을 옷 두어 벌만 담은 캐리어를 끌고 문을 열던 그녀는 그제야 핸드폰을 수혈할 때 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3층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을 열기도 전에 문채연의 방에서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도 진성 씨가 걔를 어떻게 찾았는지는 모르지. 그래도 2년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내가 6년 전에 성형한 사실도 들키는 거 아니야!”

문채연이 성형을 했었다는 말에 문을 열려던 민여진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년부터 빨리 보내야지. 만약 진성 씨가 6년 전 자기를 불구덩이에서 구해준 게 내가 아니라 민여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난 끝장이야.”

“내 인생은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그때 진성 씨가 민여진의 손을 잡고 그 여자를 아내로 들이겠다고 할 때 나는 바로 성형을 결심했지. 내 얼굴까지 고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민여진한테 내 인생을 내어줄 순 없지. 돈을 받고 싶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민여진 치워. 그 여자 진성 씨 아이도 임신했으니까 이대로 양성을 떠나게 해선 안 돼.”

하나도 빠짐없이 알게 된 진실에 민여진은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박진성이 6년 전 은혜를 잊어버리고 문채연에게 빠져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문채연이 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엄청 난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그녀는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

엄청난 사실에 머리가 하얘진 민여진은 뒷걸음질을 치다가 실수로 난간에 부딪혀버렸다.

“누구야!”

그 인기척에 문을 열며 뛰쳐나오던 문채연은 문 앞에 서 있는 민여진을 보고 당황하더니 바로 입을 열었다.

“여진 씨, 방금 들은 거 그거 다 가짜에요, 그냥 친구랑 장난친 거니까 믿을 필요 없어요!”

하지만 민여진은 그녀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기에 문채연을 노려보며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당신은 진성 씨를 진심으로 사랑한 게 아니라 그냥 돈이 탐나서 내 얼굴로 성형까지 하면서 진성 씨 옆에 붙어있은 거였어요? 6년 전 화재에서 진성 씨를 구해준 게 당신이라는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민여진은 그것도 모르고 자신이 대용품일 뿐이라고만 생각하면 2년 동안이나 갖은 수모를 참아왔던 것이다.

화를 내는 민여진에 당황한 문채연은 다급히 해명하기 시작했다.

“잘못들은 거리니까요. 나랑 진성 씨는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에요.”

“당신이 직접 진성 씨한테 사실 고백해요.”

온몸의 피가 달아오는 것 같은 느낌에 민여진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는데 그에 조급해진 문채연도 그녀를 따라 내려오다가 1층에 거의 도착할 때쯤에 힘을 주어 민여진을 밀어버렸다.

“아!”

중심을 잃은 민여진은 배를 감싸 안으며 아래로 굴러떨어지다가 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아버렸다.

눈앞이 새까매져 몸도 움직일 수 없었던 그녀는 눈을 부릅뜬 문채연이 우유 적적하게 걸어 내려오는 걸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그냥 빈민 구역에 가만히 있을 것이지 왜 여기까지 와서 진성 씨 관심을 받으려고 애를 써요? 당신이 사실을 알린다고 해도 진성 씨가 믿을 것 같아요? 진성 씨 눈에 당신은 그냥 헛된 꿈만 꾸는 멍청한 여자일 뿐인데?”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정신을 잃은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바닥에 흐른 피가 이미 말라버린 뒤였다.

텅 빈 거실을 마주하고 있던 그녀는 몸에 힘도 없고 구역질도 났지만 아무 사실도 모른 채 문채연에게 속고 있는 박진성이 안타까워 힘을 내어 벽을 짚고 섰다.

박진성이 사랑하는 여자는 바로 자신이라고, 그냥 문채연한테 속은 거라고 알려줘야 했다.

그때 그 약속을 잊은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그저 속은 것 뿐이란 걸 안 민여진은 이 상황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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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여자한테만은 한없이 다정했다.“너 몸도 약하고 머리 아프다고 매일 그러잖아. 1년이 지나도 제대로 회복되지 않으니까 여기까지 온 거지. 여기가 곳은 이래도 실력 있는 의사가 있다니까 너 꼭 낫게 해줄 거야.”“이런 작은 진료소에 그런 의사가 있다고요?”반신반의하며 묻던 문채연은 아까보다 어두워진 박진성의 표정에 바로 그의 팔짱을 끼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나는 당신이 사기꾼한테 속아서 돈도 버리고 시간도 낭비할까 봐 그러죠. 가뜩이나 일로 바쁜 당신이 나 때문에 그러면 내가 얼마나 미안해요...”“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마.”팔짱을 껴오는 문채연에 박진성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네 몸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 나을 가능성이 1%라도 있다면 난 뭐든 다 해볼 거야.”“날 그 정도로 생각해줘서 고마워요.”얼굴을 붉히며 하는 문채연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섰는데 방현수의 사무실을 물어 가려던 찰나, 한 아이의 목소리가 박진성의 귀에 들려왔다.“여진 누나, 나 그네 탈래요!”거리가 너무 멀어 소리는 제대로 듣지 못했던 박진성이 정원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인영이 눈앞을 스쳐 갔다.그 모습이 민여진 같긴 했지만 그녀는 지금쯤 해외에서 아이를 낳고 잘살고 있어야 했기에 박진성은 빠르게 부인했다.만약 귀국을 했다 하더라도 민여진은 저를 가장 먼저 찾아올 사람이지 이런 허름한 진료소에 틀어박혀 있을 사람이 아니라서 박진성은 이내 고개를 돌렸다.“진성 씨, 왜 그래요?”하지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그 이름에 박진성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문채연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아무것도 아니야. 들어가자.”결국 아닐 거라고 단정 지은 박진성은 주먹을 쥐고 있던 손을 풀고는 문채연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방현수는 이내 문채연의 맥을 짚어보며 그녀에게 주의할 것들을 일러주었는데 옆에 있던 박진성은 자연스레 익숙한 황산철 화분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민여진이 저와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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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나타난 민여진에 문채연 역시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어 박진성을 따라 나가버렸다.방현수가 써준 처방을 들고 돈은 던지듯 내려놓고 나가던 문채연은 곧 큰 이변이 생길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구겨진 얼굴을 필 수가 없었다.하지만 감옥에 있던 여자들이 일을 잘 처리해준 덕에 민여진의 얼굴이 제대로 망가져 버렸다는 사실만은 만족스러웠다.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던 문채연은 이내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몇 초만 봐도 구역질이 나는 얼굴이니 박진성이 그녀를 알아본다 해도 절대 마음을 줄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생각을 마친 문채연은 화가 난듯한 남자에게로 다가갔다.한편 방에 있던 민여진은 방금 저를 스쳐 지나간 남자 몸에서 난 익숙한 향기에 저도 모르게 박진성을 떠올리고 있었다.하지만 그가 여기 올 리는 없었기에 민여진은 애써 힘을 주어 주먹을 쥐며 마음을 진정시켰다.“여진아, 괜찮아?”“놀랐지?”그때 방현수가 민여진의 손을 잡아오며 다정하게 물었다.“진짜 이상한 사람들이네. 진료를 받다 말고 뛰쳐나가는 게 어딨어?”“괜찮아요 저는.”그제야 진정한 민여진은 익숙하다는 듯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제 얼굴을 보고 놀라서 그런 걸 거에요.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다 그러니까 신경 안 써도 돼요.”방현수는 그래도 뭔가 찝찝했지만 다른 이유는 찾지 못했기에 빠르게 화제를 돌려버렸다.“그네가 끊어졌다고?”“네.”그에 민여진도 안 좋은 기분을 애써 감추며 웃어 보였다.“애들은 자기가 무거워서 끊어진 줄 알고 저보다 더 당황했어요.”방현수는 조잘조잘 떠드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마침 환자도 없으니까 일찍 문 닫고 시장가서 밧줄 사자. 이참에 정원도 다시 꾸미는 거 어때?”“좋아요.”민여진에게 지팡이를 쥐여주고 진료소 문을 잠근 방현수는 그녀와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진료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차를 대고 다정해 보이는 두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박진성은 가슴이 터질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13화 너 설마 임신했어

    그래서 박진성은 방현수가 사무실로 들어간 틈을 타 빠르게 민여진 앞으로 걸어갔다.신나게 케익을 먹고 있던 민여진은 느껴지는 인기척에 방현수가 돌아온 줄 알고 물었다.“왜 또 왔어요? 이거 저번 거보다 더 맛있는 것 같은데, 현수 씨도 먹어볼래요?”입가에 케익을 묻히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박진성은 민여진이 방현수에게 입맞춤을 요구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케익이 제가 모르는 사이에 발전해버린 둘의 사이를 나타내는 것 같아 거슬렸던 박진성은 그걸 바닥으로 쳐냈다.그에 민여진이 당황하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을 때려왔다.“민여진, 너 진짜 잘 숨는다.”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그 목소리에 민여진은 뒷걸음질을 치며 방현수를 찾았다.“현수 씨...”옷소매를 꼭 말아쥔 채 그네에서 내려온 그녀는 제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지난날의 악몽에 몸을 떨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현수 씨 어딨어요? 현수 씨한테 가야 하는데...”민여진이 힘겹게 발을 떼자마자 박진성은 그녀의 팔을 낚아채며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민여진, 언제까지 연기할 거야. 불쌍한 척도 그만하면 됐잖아.”“비켜!”그에게 잡힌 팔을 빼내려 힘을 준 탓에 민여진 본인도 그만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을 한 채 바닥을 더듬거리더니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고 박진성을 향해 겨누며 말했다.“당장 나가, 안 그러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눈도 보이지 않으면서 아무 소용도 없는 나뭇가지를 들고 공포에 떠는 민여진을 보던 박진성은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해지며 화까지 났다.방현수한테는 그렇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왜 제 앞에서는 이렇게 두려움에 떠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민여진, 네 지금 꼴을 봐. 내가 널 봐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야?”두 남자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다른 민여진에 화가 난 박진성은 그녀의 두 팔을 손아귀에 넣으며 말했다.“나는 내 자식 찾으러 온 거야. 우리 앤 어디에 숨긴 거야?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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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30화 네 팔자를 네가 꼰 거라고!

    “누가 널 무시했다고 그래?”박진성의 말에 민여진은 덤덤하게 웃었다.“그래? 그럼 현수 씨처럼 나를 당당히 데리고 나가서 사람들 앞에서 내 진짜 이름을 소개할 수 있어?”박진성은 순간 할 말을 잃었고 민여진은 그의 침묵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못하잖아.”그녀는 앞을 볼 수 없었지만 표정은 마치 그를 비웃는 듯했다.박진성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운전대를 움켜잡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외쳤다.“나를... 그 하찮은 녀석이랑 비교하는 거야? 내가 그놈보다 못하다고 생각해? 네가 정말 우리 둘의 차이를 몰라서 그러는 거야? 그놈이 나만큼의 힘과 재력이 있다 해도 너 같은 시각장애인을 당당히 데리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그놈이 널 자기 여자라고 인정할 배짱이나 있을 것 같아?”박진성의 독설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민여진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시각장애인이라니...’결국 그에게도 자신은 어둠 속에 갇힌 한낱 장애인일 뿐이었다. 민여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그래. 나 같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방씨 가문에 따라가 주느라 얼마나 고생스러웠겠어.”민여진의 냉소 섞인 말에 박진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민여진! 네가 지금 나한테 비꼬는 거냐? 네 처지가 어떤지 너 스스로 몰라? 너 같은 여자를 내 여자로 인정해 준 것만 해도 네겐 큰 영광이라고! 네가 나한테 이렇게 따질 처지가 아니란 말이야!”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졌고 무자비한 말들이 민여진을 전부 짓눌렀다.“너 손이라도 있잖아! 그냥 앉아서 아무것도 못 하는 쓰레기는 아니잖아! 그런데도 불평을 해? 다 네 탓이야! 네가 내 말을 들었다면 이런 꼴이 되진 않았어!”그의 억지스러운 우월감과 차가운 비난은 계속 이어졌다.“처음부터 네가 내 말을 들었다면 이 지경이 되진 않았을 거야! 네 팔자를 네가 꼰 거라고!”민여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스며 나왔지만, 고통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그래... 이 사람에게 나는 그저 이 정도의 존재였어.’박진성이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9화 너도 마찬가지잖아

    박진성은 사납게 눈빛을 번뜩이며 살기를 내뿜었다.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처럼 그의 분노가 공기를 짓누르고 있었다.“방현수, 이미 한 번 봐줬을 텐데! 네가 감히 경고를 무시하고 내 여자를 데리고 도망을 가려고 해?”박진성이 또 한 번 주먹을 휘둘렀다.방현수는 얼굴을 한 대 맞고도 기죽지 않았고 피를 닦으며 비웃음을 흘렸다.“네 여자? 네 여자가 다른 사람을 대신해 죗값을 치르고 네 장난감처럼 버려질 때는 네 여자라고 부르지 않았잖아. 박진성의 여자가 된다는 건 정말 비참한 일이네.”“죽고 싶냐?”박진성의 붉어진 눈동자가 번뜩이며 다시 주먹을 날렸고, 이내 두 사람은 서로 주먹을 주고받으며 격렬하게 맞붙었다.그러자 방씨 가문의 사람들이 놀라며 주위를 둘러섰다.민여진은 주먹이 오가는 살벌한 소리를 듣고 공포에 질렸다. 두 사람이 계속 싸운다면 박진성은 방현수는 다시는 의사로 살 수 없게 만들지도 몰랐다.“그만해! 제발 그만 싸워!”민여진은 두 눈이 보이지 않기에 소리만 쫓아 주먹질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순간, 두 사람 중 누군가를 향해 날아오던 주먹이 그녀의 얼굴을 세게 스쳤다.“아!”강렬한 통증과 함께 귀가 멍해지고 얼굴이 바닥으로 내리꽂히더니 뺨이 금세 부어오르며 호흡조차 가빠졌다.“여진 씨!”방현수의 눈가가 붉게 물들며 그녀 쪽으로 달려갔지만 박진성은 그를 밀쳐내고 민여진을 품에 안았다.그의 얼굴은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방씨 가문은 추후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박진성의 시선이 방씨 가문의 사람들을 훑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울렸다.“아무리 버려진 사생아라지만, 기본적인 예의는 가르쳐야 하는 거 아닌가요? 방씨 가문은 도련님은 교육을 더 받아야 할 것 같네요.”그 말을 남기고 그는 민여진을 품에 안고 걸어 나갔다.민여진은 귀가 먹먹해졌지만 방씨 가문을 나서는 순간에 방지혁이 분노하며 꾸짖는 소리가 들려 몸을 움츠렸다.“현수 씨는... 현수 씨를 병원으로...”차에 태운 박진성은 민여진을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8화 나만 의지해

    방 안은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운 공기가 가득 찼다.박진성이 ‘내 여자’라고 선언하자 방지혁을 포함한 방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휩싸였다.만약 민여진이 절세미인이었다면 모를까, 흉터투성이의 얼굴을 한 여자를 박진성이 지키겠다고 나섰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방지혁은 순간적으로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민여진의 체격과 분위기를 살피던 그는 그동안 화제가 되었던 ‘실검’ 속 인물이 그녀임을 깨달았다.‘그래서 현수가 이 여자 하나 때문에 박진성을 건드리고, 자기가 가진 모든 걸 걸었단 말이야? 고작 이런 여자 때문에?’방지혁의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 불효자 녀석... 여자한테 홀려도 그럴 만한 여자를 골랐어야지... 방씨 가문을 파멸 위기로 몰아넣고도 후회는커녕....’그는 하인에게 몇 마디 지시를 내리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두 분은 잠시 앉아서 차라도 한잔하시죠. 곧 현수를 데려오겠습니다.”박진성은 여유롭게 자리에 앉았고 민여진도 몸을 움츠리며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두 손은 본능적으로 떨리고 있었고 차를 마시기는커녕 오히려 속이 울렁거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무거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민여진은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눈을 크게 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방현수도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그녀를 발견했다. 그의 눈이 놀란 듯 커졌다가 이내 박진성을 발견하곤 울부짖었다.“박진성 씨! 또 무슨 수작을 부린 겁니까! 대체 뭐로 여진이를 협박한 거냐고요! 네가 그러고도 남자냐!”“이 개 같은 놈이!”방지혁이 몇 걸음 다가가 방현수의 뺨을 후려쳤다. 큰 소리와 함께 방현수는 옆으로 휘청했다.“대표님, 죄송합니다.”방지혁은 곧바로 박진성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굽신거렸다.“이 불효자는 어릴 때부터 가문에서 내쳐져 자라다 보니 워낙 버릇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제가 따끔히 훈계하겠습니다. 대표님께서 불쾌해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박진성은 차를 홀짝이며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지만 민여진은 바짝 긴장한 채 몸이 떨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7화 나랑 집에 가자.

    박진성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그는 치욕과 분노가 섞인 이 감정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방현수가 너한테 그렇게 중요해? 그 자식 없으면 죽기라도 하려고?”민여진은 두 손을 꽉 쥐었다.하인의 말투와 방현수가 방씨 가문에서 받는 취급을 보니 그가 얼마나 심하게 다쳤을지 짐작이 갔다. 그런데도 박진성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마치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하찮은 벌레처럼 취급한다고 생각했다.“그래! 현수 씨 없으면 난 죽어!”민여진의 목소리는 울분으로 떨렸다.“그런데 넌? 네가 약속했던 건 지켰어?”“민여진!”박진성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기분으로 그녀의 양팔을 거칠게 움켜잡았다.“너 지금 일부러 날 화나게 하는 거지? 믿어봐! 내 한마디면 방씨 가문도 방현수 그 자식도 이 도시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 수 있어!”박진성의 말에 민여진은 그 자리에서 흥분을 가라앉혔다.‘맞아. 박진성이 가진 힘을 난 너무 잘 알아. 내가 감히 대적할 수는 없어....’그녀는 방현수를 위해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박진성은 이를 꽉 깨물었다. 그는 민여진이 더 이상 방현수와 얽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이대로 두면, 그녀의 마음속에 그가 들어설 자리는 영원히 없을 터였다.그는 손아귀에 힘을 주며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나랑 집에 가자.”‘집? 나한테 아직 집이란 게 남아 있었나?’민여진은 저항하지 않았지만 발걸음을 따라가지도 않았다.“난... 현수 씨를 봐야겠어.”모든 건 그녀로 인해 시작되었으니,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눈을 감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안 돼!”박진성은 짜증스러워졌다. 그는 절대로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내 말 들어. 나랑 같이 가.”하지만 민여진은 그 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결국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억지로 한 걸음 끌어냈다.하지만 그녀는 힘겨운 발걸음 속에서 입술을 깨물며 울먹였다.“부탁이야... 단 한 번... 단 한 번만 보게 해 줘. 그다음엔 네가 원하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6화 거짓말이었어?

    박진성은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이를 악물고 말했다.“민여진, 어디야?”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통화가 ‘뚝’하고 끊겼다.민여진은 대답 대신 전화를 끊어버렸다.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유는 전화를 걸어온 상대가 박진성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했던 것이었다.‘현수 씨는 대체 어디 있는 거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불안이 밀려왔지만, 방씨 가문처럼 알려진 가문이라면 그 주소 정도는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녀는 택시 기사에게 수소문해 방씨 가문의 저택으로 향했다.저택 앞에 도착한 민여진은 문 앞에 설치된 초인종을 더듬어 눌렀다.조금 후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무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디서 굴러먹다 온 미친년이 이 시간에 감히 방씨 가문의 초인종을 누르고 있어!”“죄송합니다...”민여진은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혹시... 방현수 씨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전화를 받지 않아서...”“뭐라고? 방현수?”하인은 여전히 비웃음을 숨기지 않았다.“이 집에서 내쳐진 사생아 따위가 방씨 가문에 얼마나 큰 폐를 끼쳤는지 알기나 해? 당연히 가훈에 따라 처리했겠지. 지금쯤 별채 창고에서 기절해 있을지도 모르겠네. 방현수를 찾으러 왔다면 시신을 수습하러 늦게나마 다시 오는 게 나을 거야.”‘뭐라고요? 시신을 수습해요?’민여진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박진성은 분명 모든 게 끝났다고 했는데... 거짓말이었어?’민여진은 절망감에 몸이 떨렸다. 그녀는 두 손으로 철문을 붙잡고 간절히 외쳤다.“부탁이에요! 제발... 제발 현수 씨를 보게 해주세요! 박진성이... 박진성이 모든 걸 끝내겠다고 약속했어요!”하인은 박진성의 이름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민여진이 가까이 다가온 것을 보고 흠칫 놀라 욕설을 내뱉었다.“이런 미친년을 보았나! 도대체 왜 이렇게 흉측하게 생긴 거야? 간 떨어질 뻔했네!”철문이 덜컥 열렸다.민여진은 안도의 숨을 쉬며 들어가려는 순간, 가슴팍에 무언가가 세게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5화 누가 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민여진은 조용히 리셉션 직원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 뒤 물었다.“죄송한데... 근처에 가까운 약국이 어디에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리셉션 직원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었다.민여진은 지팡이를 짚으며 약국으로 향했다.약국에 도착한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피임약 주세요.”낮은 목소리였지만 주변 사람들을 집중시켰다.“저렇게 흉한 얼굴을 하고 피임약이 필요할 수도 있나?”“누가 쳐다나 보겠어? 피임약이 왜 필요해...”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젊은 남자들이 피식거리며 비웃었지만, 민여진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약을 받은 그녀는 약국 문을 나서자마자 포장을 뜯어 물 없이 약을 삼켰다.‘박진성이 네게 남겼던 흔적 같은 건... 두 번 다시는 없어야 해.’그녀는 또다시 아이를 가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1%의 확률이라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 피임약을 복용했다. 악마 같은 박진성의 아이는 절대 다시 가지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리셉션 직원은 멀리서 그녀가 약을 먹고 약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걸 보았다. 그리고 민여진이 택시에 타고 떠나자, 쓰레기통 속 약봉지를 다시 확인했다.‘피임약?’직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세상에... 얼마나 많은 여자가 박 대표님 아이를 가지려고 혈안이 돼 있는데, 이 여자는 일부러 피임약을 먹었다고?’그녀는 이 쇼킹한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탕비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친한 동료에게 속삭이듯 말했다.“너 방금 그 여자가 뭘 했는지 알아? 얼굴은 엉망이지만 그 분위기만큼은 재벌가 따님 부럽지 않더라니까. 박 대표님하고 관계까지 했으면서... 약국에서 피임약을 사 먹더라니까!”“뭐?”동료는 깜짝 놀라 물었다.“피임약을 왜?”“다른 사람들은 박 대표님의 아이를 가지려 혈안이 됐는데, 일부러 피임약을 삼켰다니까!”“대체 무슨... 대표님의 아이를 원하지 않는 거야?”“그런데 말이야...”갑자기 탕비실 문이 열리며 냉기가 흘러들었다.“누가 내 아이를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4화 네 몸에 손댄 적 있어?

    “왜?못하겠어?”박진성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민여진을 쏘아보며 의자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방현수를 위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릴 수 있으면서... 내 앞에서는 끼 부리는 건 거부한다고? 나는 남자도 아니라는 건가? 이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기회인 줄이나 알아? 얼마나 많은 여자가 너 대신 이 자리에 있고 싶어 하는지 너는 알기나 할까?’박진성은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뭐야? 이제 와서 순결한 척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예전엔 내 곁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한시라도 떨어지기 싫다고 하지 않았었나?”민여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잠시 침묵하던 그녀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이 얼굴을 보고 역겹지도 않아? 무릎을 꿇으라면 꿇겠어. 하지만 왜... 이런 방법으로까지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건데?”‘왜냐고?’박진성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사실 그가 이런 요구를 한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의 몸에 방현수의 흔적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게다가 그는 민여진의 얼굴이 역겹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날 그녀가 보여준 강인한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머릿속에서 그녀와 함께했던 밤들이 스쳐 지나갔다.민여진은 그에게 있어 잊을 수 없는 치명적인 존재였지만 그는 결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더욱 차가운 비웃음으로 대답했다.“너를 괴롭히는 건 나한테 흥미로운 일이거든. 네가 괴로워할수록 나는 기분이 좋아...”‘내 고통이 너에겐 즐거움이란 거네...’민여진은 쓸쓸히 눈을 감았고 더 이상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이리 와.”박진성이 또 한 번 명령하듯 말했다.민여진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만큼 주먹을 꽉 쥔 채 한 걸음씩 다가갔다.박진성은 그녀의 손을 거칠게 잡아당겨 무릎 위로 끌어앉혔다. 얼떨결에 그녀의 손이 그의 가슴에 닿았고 얇은 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뜨거운 체온에 민여진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현수 씨를... 놓아주겠다고 약속해.”민여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순간에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방현수뿐이었다는 것에 배신감을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3화 나를... 만족시켜 봐

    방 안에서 들려오는 무심한 목소리에 민여진은 자신도 모르게 한 차례 몸을 떨었다.이는 틀림없이 경험에서 나온 두려움이었다.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문을 밀어 열었다.박진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듯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시선이 민여진의 여행 가방을 스치자, 검은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어두워졌다.그는 의자 팔걸이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더니 비아냥대기 시작했다.“짐까지 챙겼네? 방현수가 다치지만 않았으면 둘이 함께 도망이라도 갈 참이었어?”민여진은 무의식적으로 여행 가방을 뒤로 보내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대답 대신 조용히 물었다.“현수 씨를... 놓아줄 수는 없어?”“현수 씨?”그 호칭에 박진성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손가락으로 애꿎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천천히 비틀었다. 그리고 눈동자에 분노가 불길처럼 번졌다.“내가 왜 그 자식을 봐줘야 하지? 감히 나에게 도발하는 걸 보고 대단한 놈이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고작 방씨 가문에서 내다 버린 자식이었더라고! 그딴 놈이 네 눈에는 그리도 멋져 보였어?”박진성의 비아냥에 민여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더니, 대뜸 무릎을 꿇고 앉았다.그러자 박진성의 눈빛이 흔들렸다.“진성 씨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 원하는 대로 내가 무릎꿇고 빌게... 그러니까 제발 그만해. 현수 씨를 놔줘...”말이 끝나자, 그녀는 머리를 숙였고, 곧이어 이마가 바닥에 닿는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그 모습에 박진성은 의자 팔걸이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민여진, 네 꼴을 좀 봐. 정말 비굴해 보여...”“맞아. 네 말이 다 맞아. 그러니까... 제발 현수 씨만은 살려줘. 하라는 대로 뭐든 할게...”박진성의 얼굴에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번지고 있었다. 그녀가 앞을 보지 못하는 게 다행일 정도였다.“뭐? 뭐든 할 수 있다고?”박진성은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자세를 바꿔 몸을 기대며 민여진을 내려다봤다.“그렇다면... 벗어 봐.”순간, 민여진의 표정이 굳었다.박진성은 담배에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2화 재앙

    아직 어린 듯 앳된 목소리였지만 무슨 일인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민여진은 순간 심장이 쪼그라드는 듯했다.“누구신데 그러세요?”“누구냐고요? 그걸 물어볼 자격은 있다고 생각해요?”갑자기 나타난 낯선 여자는 윤소정이었고 그녀는 불꽃 같은 눈빛으로 민여진을 바라보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민여진 씨 같은 눈먼 여자 하나 때문에 현수 오빠가 인생을 통째로 쳤다는 거 알아요?”민여진의 손이 옷자락을 단단히 쥐었다.“현수 씨가... 어떻게 됐는데요?”“어떻게 됐냐고?”윤소정의 목소리가 떨렸다.“현수 오빠는 민여진 씨를 지키려다 얼굴 하나 제대로 팔렸죠! 사진이 인터넷에 퍼졌고 사진 아래에는 전부 오빠를 향한 비난뿐이에요! 오빠는 환자를 살려야 하는 의사인데 그쪽 때문에 병원에는 발도 못 붙이게 생겼다고요!”윤소정은 숨을 몰아쉬며 이어갔다.“그리고 민여진 씨의 전남편이 박진성이라면서요? 그사람은 지금 방씨 가문을 완전히 몰락시키려고 작정했어요! 모든 계약을 해지한 것도 모자라, 누구도 방씨 가문과 손잡지 못하게 막아버렸어요. 방씨 가문과 거래하면 대영 그룹을 적으로 돌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선포했다고요!”윤소정은 이를 악물며 외쳤다.“민여진 씨! 민여진 씨는 진짜 재앙이나 다름없어요! 본인은 얼굴 하나 안 드러내놓고, 민여진 씨를 지키려던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버렸다고요!”민여진은 온몸이 굳은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세상에 버림받은 듯한 차가운 절망이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현수 씨... 현수 씨는 지금 어디 있나요? 제가 만날 수 있을까요?”“절대 안 돼요!”윤소정은 눈물을 참으려는 듯 고개를 젓더니 이를 악물었다.“또 만나면 무슨 말을 하려고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이제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요. 방씨 가문에서 데려갔거든요. 애초에 방씨 가문에서 인정받지 못한 사생아였던 오빠인데... 방씨 가문에서 가만둘 리가 없잖아요!”민여진은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고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윤소정은 잠시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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