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 제59화 진성 씨, 나 의심해요?

Share

제59화 진성 씨, 나 의심해요?

Author: 연의 수정
“그럴 리가요.”

방현수를 죽이려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고개를 숙인 문채연의 눈에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박진성은 그런 문채연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중요한 건 내가 민여진한테 서원이를 보내려 했을 때 누군가 걔를 막았다는 거야. 그것도 내 핸드폰으로 직접 서원이한테 연락까지 해서. 그때 내 핸드폰은 사무실에 있었는데 거길 들어간 건 너뿐이잖아.”

“그게 무... 무슨 말이에요?”

“그래서 지금 민여진 씨한테 그런 짓을 한 게 나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창백해진 문채연을 보고서도 박진성은 주먹만 말아쥘 뿐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난 그냥 민여진이 제대로 살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감옥에서 눈도 잃은 앤데 목소리까지 잃으면 정말 남는 게 없잖아.”

“그래서 날 의심하는 거예요?”

“그래요, 오후에 진성 씨 사무실에 간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진성 씨가 하도 안 와서 그냥 갔어요. 핸드폰이 사무실에 있는지도 몰랐다고요. 그리고 내가 왜 여진 씨한테 그런 짓을 하겠어요? 진성 씨가 생각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에요?”

문채연이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울어 젖히자 살짝 짜증이 난 박진성이었다.

“나라고 너한테 덮어씌우고 싶겠어? 그런데 다른 답이 없잖아.”

눈물만 흘리던 문채연이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사람처럼 고개를 들어 올렸다.

“있어요.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있었다고요.”

“누군데?”

“나한테 물 따라주던 비서요.”

“그 비서가 물을 따라주다가 실수로 내 옷이 젖었거든요. 그래서 나는 옷 갈아입으러 들어갔고 비서 혼자 밖에 있었어요.”

“그리고 그 비서 교통사고 피해자 친구였어요. 혹시라도 여진 씨를 노리고 오래도록 계획해오던 일이면...”

말꼬리를 늘리는 게 확신하지는 못하는 눈치라서 박진성은 곧바로 그 비서를 불러들였다.

박진성의 말을 다 들은 비서는 낯빛이 창백해지며 물었다.

“대표님, 전 아닙니다! 선우랑 친구인 건 맞지만 그것도 그저 대학교 동창일 뿐이에요. 제가 왜 걔를 위해 복수까지 하겠어요?”

하지만 박진성은 이를 악물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60화 나 아직 걔랑 이혼 안 했어

    그런 자신이 싫었는지 박진성은 차갑게 말했다.“내가 이번 일을 신경 쓰는 건 민여진한테 빚지고 싶지 않아서야. 걔가 누명 쓰고 감옥 간 것도 어떻게 보면 내 탓인데 거기서 눈까지 잃었어. 게다가 말도 못 하게 되면 난 진짜 평생 죄책감 속에서 살 거야.”“진짜예요?”“그럼 언제 나랑 결혼할 거예요? 전에는 교통사고 때문에 그렇다 쳐도 이제 그 일은 2년이나 지났잖아요. 다들 잊었을 텐데 지금이 적기 아니에요?”문채연이 갑자기 꺼낸 결혼 얘기에 박진성은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 같았다.문채연과의 결혼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그건 조금만 더 기다려줘.”“또 기다리라고요? 왜요? 설마 진짜 여진 씨를 사랑하기라도 한 거예요?”휠체어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하는 문채연을 향해 박진성은 본인이 들어도 웃긴 말을 핑계랍시고 했다.“아니야. 그냥 아직 민여진이랑 이혼을 안 해서 그래.”“뭐라고요?”박진성이 자신을 아내로 맞진 않았어도 모든 면에서 배려하며 교통사고 일도 들추지 않아서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 믿고 있었던 문채연에게 둘의 법적 문제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이혼서류에는 사인했는데 이혼 증명서를 못 받았거든. 걔가 감옥 들어가느라 기자들이 걔만 쫓아다니고 있었잖아.”“그럼 언제 이혼 할 거예요?”“퇴원하면 바로 할 거야.”그 대답에 문채연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퇴원하면 바로 간다는 걸 보니 박진성이 민여진에게 가장 바라는 건 이혼인 것 같아서 문채연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을 나갔고 박진성 혼자만이 그곳에서 새벽까지 앉아있었다.그날 새벽, 갑자기 병실을 찾은 박진성에 하품을 하던 서원은 바로 자세를 바로 하며 인사를 건넸다.“대표님.”“민여진 상태는 어때?”새벽에도 쉬지 않고 직접 병원에 온 박진성의 최대 관심사가 민여진의 상태라는 사실에 서원은 놀라움을 애써 감추며 답했다.“검사했는데 전체적인 상황은 괜찮답니다. 그냥 목이 부어있어서 수액 맞고 좀 전에 잠들었어요.”잠을 잔다는 건 못 참을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61화 자는 척하는 사람은 영원히 깨우지 못하듯이

    사실 역겹다고 느끼는 건 민여진이었다.아침부터 느껴지는 박진성의 숨결과 그의 몸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에 민여진은 자신도 몰래 결혼 초기를 떠올리게 되었다.그때가 너무 황홀했어서 지금의 민여진은 더욱더 화가 났다.모든 걸 멈춘 당사자이면서 늘 이러한 야비한 수법으로 자신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려는 박진성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다행히도 이번에는 그가 별말 없이 침대에서 내려가 줘 한시름 놓으려던 찰나, 박진성이 갑자기 이불을 들추더니 민여진의 옷을 벗겨내기 시작했다.몸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깜짝 놀란 민여진은 황급히 가슴을 가리며 소리쳤다.“지금 뭐 하는 짓이야!”이미 이렇게 망가졌는데도 왜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건지, 갈비뼈라도 한 번 더 부러져줘야 그만둘 건지 민여진은 이 상황이 괴롭기만 했다.“그만해! 내 몸에 손대지 마!”창백해진 얼굴로 박진성을 밀어내려 손을 휘젓던 민여진은 느껴지는 고통에 금세 눈시울이 빨개졌다.아파서 몸부림치는 민여진을 보자마자 박진성은 그녀의 두 팔을 잡아 주며 소리쳤다.“너 미쳤어?! 그렇게 움직이면 안 된다는 거 몰라? 그리고 누가 널 만진다고 그래? 그냥 네 몸 좀 닦아주려는 것뿐이야.”자신의 몸을 가려주던 옷이 사라지자 눈은 안 보이지만 지금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짐작은 갔기에 민여진은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필요 없어! 간병인 놔두고 왜 당신이 그런 일을 해? 정 안되면 간호사한테 부탁해도 되잖아. 당신이 해주는 건 죽어도 싫어!”“이제야 간병인을 찾는 거야? 그리고 간호사들은 바쁘거든.”사실 박진성이 굳이 직접 민여진의 몸을 닦아주려는 이유는 그녀의 몸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다.그게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나는 뭐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내 손은 억 단위 계약서만 작성하는 손이야. 그런 내가 직접 해준다는 데 왜 싫다는 거야? 그리고 어차피 난 이미 네 몸 다 봤어. 네 몸에 내 손이 안 닿은 곳은 없다고.”치욕스러움에 입술을 떨던 민여진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박진성은 그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62화 다시 찾은 희생양

    박진성의 모든 말이 어이없게 느껴진 민여진은 정말 포기한 듯 말했다.“내가 문채연을 몰아간다고 느꼈으면 그냥 그런 거니까 이만 나가줘. 나 피곤해.”또 이러는 민여진에 박진성도 화가 났다.아무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가장 아끼는 문채연을 따로 불러 묻기까지 하며 그녀를 의심했는데 민여진은 여기서 뭘 더 바라는 걸까.“민여진, 선 넘지 마. 네가 목소리를 잃을 뻔한 건 내 불찰이야. 그러니까 그냥 내 탓만 해. 괜히 채연이한테 화살 돌리지 말고.”그 말에 민여진은 마침내 웃음을 터뜨렸다.눈이 멀어버린 민여진은 이제 그 누구도 원망할 수가 없었다.박진성을 상대하는 게 귀찮았던 그녀는 이불을 덮어쓰고 눈을 감았다.매번 자신만 전전긍긍하는 것 같아 화가 난 박진성도 그 길로 병실을 나가버렸고 이렇게 감정 기복이 심한 상사를 보며 서원은 한 번 더 당황했다.민여진이 나타난 이후로 박진성의 심경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그 뒤로 한동안 박진성은 민여진의 병실을 찾지 않았고 그저 간병인만 붙여줬다.시답잖은 가십거리를 얘기하며 말동무를 해주던 간병인은 박진성의 근황도 종종 전하고 있었다.그가 문채연과 함께 자선 파티에 참석한 것부터 출장 간 것까지, 모든 상황에 문채연을 달고 다닌다고 알려주었다.별로 궁금하지 않은 근황이 자꾸만 들리자 민여진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그 사람 일은 굳이 안 알려줘도 돼요.”민여진의 차가운 태도에 언짢아진 간병인은 물을 뜨러 간다는 핑계를 대며 자리를 떴다.아마도 눈먼 민여진이 성격도 굽힐 줄 모르니 화가 난 모양이었다.피곤함에 눈은 감았지만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잠에 들지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 민여진의 병실 문을 열어젖혔다.하이힐 소리가 또각또각 울리자 입구 쪽을 바라보던 민여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문채연?”제법 잘 맞추는 민여진에 문채연도 숨기지 않고 웃음을 흘렸다.“그래, 나야. 진성 씨가 두 달 동안 너를 신경도 안 쓰니까 하도 불쌍해서 내가 한 번 보러 와봤어. 좀 지낼만해?”자신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63화 우리 엄마가 왜?

    “당연히 네가 거슬려서지. 네가 우리 사랑에 자꾸만 훼방을 놓잖아.”“하지만 진성 씨가 아끼는 건 나야. 내가 싫다니까 너 혼자만 여기 남겨두고 나랑 같이 여행도 가주잖아. 매일 밤 진성 씨랑 한방에서 잘 수 있어서 난 너무 좋아.”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웃는 문채연에 민여진은 가슴이 찢기듯 아파왔다.박진성 대한 마음은 진작에 내려놓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감정도 다 함께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박진성의 무정함은 갈수록 더해졌고 그럴 때마다 민여진의 가슴도 아파왔다.“너랑 박진성이 서로 사랑한다는 걸 자랑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당연히 아니지. 나랑 진성 씨가 서로 사랑하는 걸 굳이 너한테 자랑할 이유는 없잖아? 내가 여기에 온 건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야.”“너 아직 진성 씨랑 이혼 안 했다며? 그때는 감옥 들어가느라 시간 끌었지만 2달 전에 진성 씨가 이미 나한테 약속했어. 너 퇴원하는 날 바로 이혼할 거라고. 그리고 나랑 다시 결혼할 거라고.”그 말을 들은 민여진은 이불을 꽉 잡아 쥐었지만 얼굴에는 큰 표정 변화가 없었다.“그래? 축하해. 그럼 앞으로 남편 관리 좀 잘해줘. 이상한 소유욕 나한테 안 쏟게.”민여진의 말이 끝나자 문채연은 얼굴에 있던 웃음기를 싹 거두며 표독스러운 눈을 하고 말했다.“그렇게 우쭐거릴 필요 없어. 진성 씨가 널 통제하려 드는 건 그저 네가 개 같아서야. 오랫동안 키우던 개를 다시 찾았으니 그동안 참아왔던 게 터질 수 있지. 진성 씨가 너를 질려 하면 그땐 네 인생이 더욱더 비참해질 거야.”민여진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비참할 리가, 박진성이 자신을 질려 하면 그때에야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건데.그게 지금보다는 백배, 천 배 더 나을 것 같았다.“만약 평생 안 질리면 어쩔 거야? 그럼 네 남편이 나까지 챙기는 걸 지켜봐야겠네?”“너!”민여진은 도발하려고 한 말이겠지만 문채연은 정말 거기까지 생각한 적이 있었기에 더 화가 났다.민여진을 다른 곳으로 보내자는 말만 꺼내면 자꾸만 회피하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64화 내가 직접 봐야겠어

    “쟤는 신경 쓰지 마, 잘해줘봤자 고마운 줄도 모르니까. 그냥 너만 짜증 날 뿐이야.”“저녁에 집 갈 거니까 넌 먼저 가 있어.”문채연이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민여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박진성, 나 퇴원하는 날에 맞춰서 이혼하려 했다는 거 사실이야?”그 말을 들은 박진성은 바로 표정을 굳히고 문채연을 바라보았다.“그냥 언질만 해주려던 거였어요. 정말 다른 뜻은 없어요.”그녀의 말에 답을 하지 않은 박진성은 민여진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차가운 말을 내뱉었다.“사실이면 뭐? 어차피 난 너 안 사랑해. 그런데도 우리가 법적으로 부부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2년 전에 들었다면 민여진을 한참 동안 눈물짓게 했을 말이지만 지금의 민여진은 저런 말을 들어도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이미 박진성한테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받아 마음이 재투성이가 돼버렸기 때문이다.“그럴 이유는 없지. 당연히 이혼할 거야. 단 조건이 하나 있어.”안 본 사이에 간이 더 부어올랐는지 고개를 들며 당당히 말하는 민여진에 박진성은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아니, 민여진이 조건을 들먹이면서 이혼을 막으려 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조건? 민여진, 네가 뭐라고 감히 조건을 내걸어? 뭐 위자료라도 부르려고? 네가 얼마를 불러도 난 이혼할 거야.”하지만 박진성은 그런 마음을 티 내지 않고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코웃음을 쳤다.“채연이를 위해서라도 난 너랑 이혼해야 돼.”그 말에 문채연은 눈에 띄게 기뻐했지만 민여진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문채연 씨를 위하든 안 위하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고 내가 원하는 건 하나뿐이야. 엄마를 직접 만나야겠어. 그렇게만 해주면 바로 이혼할게.”“뭐?”당황하는 박진성에 민여진은 두 주먹을 말아쥐고 아까 문채연이 했던 말을 곱씹으며 물었다.“아까 채연 씨가 나한테 정신 차리라고 그러더라. 안 그러면 우리 엄마처럼 만들어주겠다고. 그런데 우리 엄마는 당신이 해외로 보내서 치료받는 중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65화 평생 떳떳하지 못할 관계

    박진성의 따가운 눈초리에 문채연은 억지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해외에 있는 엄마를 어떻게 만나냐는 뜻이었어요. 그렇게 빨리 오갈 순 없으니까요.”“그래?”마침내 안도한 민여진은 긴장이 풀어졌는지 그제야 자신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음을 알아챘다.하지만 불안감이 해소됐으니 그걸로 충분했다.“아무튼 난 우리 엄마만 보면 이혼할 거야. 박씨 집안 사모님 자리에는 관심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자신의 가정을 풍비박산 낸 박씨 집안 사모님 자리에 더 이상 남은 미련이 있을 리가 없어서 민여진은 말하면서도 우스웠는지 입꼬리를 올렸다.“엄마만 만나게 해주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직접 법원 가서 이혼서류 제출할 거야.”“나중에 얘기하자. 채연아, 넌 내가 데려다줄게.”박진성이 짜증 난다는 듯 문을 열었고 나가자 문채연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진성 씨...”“설명해.”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박진성이 풍기는 위압감에 문채연은 눈시울을 붉힌 채 말했다.“설마 민여진 씨 말 믿는 거예요? 여진 씨를 여진 씨 엄마처럼 만들겠다니,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어요? 여진 씨는 지금 날 모함하고 있는 거라고요!”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박진성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말했다.“그럼 얘기가 어떻게 흘러갔길래 민영미까지 언급한 거야?”“그건! 그건...”빠르게 변명거리를 찾아낸 문채연이 눈에 눈물을 매달았다.“여진 씨가 당신이랑 이혼하면 더 이상 남은 가족도 없으니까 그게 안타까워서 한마디 한 거죠. 반응이 저렇게 클 줄은 나도 몰랐어요.”“민영미 씨 죽은 지가 언젠데 설마 진짜 몰랐겠어요? 딱 봐도 당신이랑 이혼하기 싫어서 거짓말하는 거죠...”문채연이 나지막하게 투정을 부렸지만 민여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박진성은 그녀가 정말 몰랐다고 확신하고 있었다.만약 민영미의 죽음을 진작 알았다면 혼자 속으로 삼켜낼 사람이지 이렇게 입 밖으로까지 꺼내며 오바할 사람이 아니었다.민영미의 죽음을 이미 다 알고 1년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66화 사모님이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는 여자

    서원을 시켜 문채연을 데려다주게 한 박진성이 병실 안으로 들어가자 민여진은 넋이 나간 채 아까 그 자세 그대로 앉아있었다.인기척을 느낀 건지 가만히 있던 그녀가 갑자기 조급해하며 물었다.“우리 엄마는 언제 만날 수 있는 거야? 진짜... 보고 싶어.”민여진 역시 이런 모습으로는 엄마를 만나고 싶지 않았기에 전에는 잘 참아왔었는데 문채연의 말을 들은 뒤로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해져 엄마를 실제로 만나야만 진정될 것 같았다.“말했잖아, 해외에서 치료 중이라 보려면 시간 조절도 해야 한다고. 해외에서 사람 데려오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았어?”자신의 마음과 다른 말을 하느라 박진성의 말투도 자연스레 퉁명스러워졌다.그의 언짢음을 느낀 민여진은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한층 더 부드러워진 눈을 하고 말했다.“당신이랑 이혼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야. 그냥 당신이 나랑 우리 엄마 못 만나게 하는 걸까 봐 그래. 엄마만 보면 바로 이혼할 거야. 사모님 자리 욕심도 안 나.”박진성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 엄마를 하루라도 더 빨리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는지 민여진의 말투는 나긋나긋했지만 말의 내용은 박진성의 화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가자.”하지만 그는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주먹만 쥘 뿐 그 화를 표출하지는 않았다.3개월 동안 쉬면서 몸을 많이 회복한 민여진은 별 어려움 없이 침대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었다.그리고도 박진성에게 도움을 청하기 싫어 혼자 더듬거리며 입구로 향하고 있었는데 그게 또 짜증 난 박진성은 민여진의 손을 낚아채고 당황스러워하는 그녀를 또 한 번 비아냥거렸다.“너한테 무슨 감정이 남은 게 아니라 그냥 눈먼 애 때문에 괜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야.”“알아.”말끝마다 비웃는 사람에게 감정 따위가 있을 리 없음을 민여진도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웃음을 지어 보였다.그들이 엘리베이터 올라타자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을 보내왔다.아마도 포지션이 뒤바뀐 미녀와 야수를 보니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았다.게다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67화 원하는 건 오직 도망

    계단을 더듬으며 올라간 민여진이 박진성 방문을 열자 큰 손 하나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더니 순식간에 그녀를 푹신한 침대에 눕혔다.강한 입맞춤을 하며 자신의 옷을 벗기는 남자의 손길에 처음에는 당황하고만 있던 민여진이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싫어! 만지지 마!”“만지지 말라고?”하지만 힘을 주어 그녀의 턱을 잡아 올린 박진성은 민여진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말했다.“내가 왜 만지지 말아야 하는데? 이유라도 하나 말해봐. 나랑 이혼 안 하면 부부로서의 의무는 이행해야지.”“이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엄마를 보고 싶다는 거야. 엄마만 보면 바로 이혼해줄게. 진짜야.”“그 입 다물어.”민여진의 해명에도 박진성의 화는 풀릴 줄을 몰랐다.당장이라도 이혼하겠다는 그녀의 말이 오히려 더 귀에 거슬렸다.“똑같은 핑계를 뭐 두 번씩이나 대. 네가 뭘 원하는 지는 내가 더 잘 알아.”민여진이 원하는 건 언제나 도망이었다.그녀의 향기를 느끼기 위해 다가오던 박진성이 입술을 가져다 대자 민여진은 발작 버튼이 눌린 사람마냥 치를 떨었다.“저녁에 문채연 보러 간다고 약속한 거 아니었어? 걔랑 자 그냥. 부부의 의무 따위는 중요하지 않잖아. 다들 둘이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걔가 아닌 나한테 와서 이러는 거야!”진심을 다해 자신을 밀어내는 민여진에 박진성은 자연스레 아까 병원 앞에서의 장면을 떠올렸다.다른 남자 옆에 앉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곁엔 절대 앉지 않으려 하는 모습.자신이 문채연과 자는 것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은 민여진의 모습에 박진성은 점점 가슴이 답답해졌다.“우리 아직 이혼도 안 했는데 내가 채연이랑 자면 다들 걔한테 뭐라고 하겠어? 걔한테 그런 오명이라도 씌우고 싶은 거야? 난 그렇게는 안 놔둬. 너 같은 애랑 자는 건 채연이도 별로 신경 안 쓸걸.”얼마 뒤, 문채연에게서 전화가 걸려와서야 박진성은 간신히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진성 씨, 언제 와요? 당신이 좋아하는 와인도 사 오라고 했는데, 음식도 한

Latest chapter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338화 다른 사람한테 내어주다

    라미연이 이렇게까지 확신하자, 문채연도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제 분명히 박진성을 봤고, 양성에서 안진까지는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어떻게 된 거지?’라미연은 문채연이 아무 반응이 없자 또 불을 지폈다.“채연아,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정말 네가 사랑하는 남자를 그 여자에게 내줄 셈이야? 민여진은 그저 너랑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박씨 가문의 며느리가 됐고, 널 공식 석상에 나오지도 못하게 했어. 이제는 네 남자까지 빼앗으려 하는데 계속 이렇게 가만히 있을 거야? 너 이러다 다 빼앗길 수도 있다고!”힘들게 지내던 과거가 떠오르자, 문채연의 눈에는 살기가 스쳐 지났다. 그녀는 두 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알았어. 미연아, 고마워.”문채연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올해 신상으로 나온 핸드백, 사람을 시켜 보내줄게.”라미연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사양했다.“됐어. 친구 사이에 뭘 이런 것 가지고.”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던 문채연의 얼굴은 순식간에 혹한의 추위마저 얼어붙게 할 만큼 차갑게 변했다.그녀는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 정도로 두 손에 힘을 주더니, 다시금 사진을 열었다.사진 속, 그 여자의 환한 미소는 마치 칼날처럼 문채연의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았다.‘왜? 넌 왜 이렇게까지 망가진 꼴을 하고도 그렇게 행복할 수 있는 건데?’반면 문채연은 이정화가 그 두 해 동안 함께한 사람이 자신이 아니란 사실을 안 후로, 완전히 연락을 끊어버렸고 몇 번을 찾아가도 문전박대만 당할 뿐이었다.‘이정화와의 관계도 끝났는데 박진성마저 잃는다면...’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문채연은 이를 악물더니 벌떡 일어나 옷을 걸치고 나갔다.박진성의 병세는 도저히 나아지지 않았다. 복부의 상처가 자꾸만 벌어지며 악화하여 며칠 내내 별장에서 요양 중이었다. 게다가 민여진의 일까지 더해져 그는 식사 시간 외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문채연이 찾아가자, 서원은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대표님께서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337화 박진성이다

    민여진의 머리가 임재윤의 넓은 가슴에 닿았다. 그에게서 풍겨오는 향기는 묘하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특정할 수 없는 향수 냄새였지만, 오히려 민여진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다만 애매한 이 자세가 불편했다.두 사람의 행동에 여자는 눈이 빨개진 채 말했다.“뭐야? 사귀는 사이였어? 요즘 세상에 왜 잘생긴 남자는 다 못생긴 여자랑 붙는지 모르겠네!”여자는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고는 자리를 떠났다.여자의 말에 임재윤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낀 민여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익숙해요.”민여진은 임재윤이 자신의 마음이 다친 건 아닌지 신경 쓸까 봐 걱정스러웠다.임재윤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다가, 손을 뻗어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더니 그녀의 손바닥에 천천히 글씨를 썼다.[민여진 씨가 저 여자보다 훨씬 아름다워요.]한 글자 한 글자 강한 압력으로 글을 쓰는 그의 태도는 단호하고 진심이 어려 보였다.어쩌면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민여진은 웃음을 터뜨렸다.“왜 현준 오빠랑 똑같이 그래요? 현준 오빠는 원래 사람을 잘 달래주는 사람이라 이해가 가는데, 임재윤 씨는 예쁜 여자를 너무 많이 봐서 제 얼굴이 신기한 건가요?”임재윤은 침묵하다가 한참 만에야 대답했다.“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 그리고.”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타자를 했다.“내 앞에서 다른 남자 이름 부르는 건 싫어요.”다른 한편.엘리베이터를 타려던 라미연은 민여진과 임재윤의 모습을 보고 흠칫하며 멈춰 섰다.‘저거 민여진 아니야?’깜짝 놀란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민여진을 찍은 뒤, 엘리베이터에 올라 바로 문채연에게 사진과 함께 음성을 보냈다.“채연아, 방금 너한테 사진 보냈는데 봤어? 이 여자 민여진 아니야?”음성을 보내고 다시 한번 사진을 찬찬히 훑어보던 라미연은 그제야 민여진 옆에 한 남자가 희미하게 찍혀 있는 걸 발견했다.너무 멀리 떨어져 있던 터라 남자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등만 찍혀 있었는데 체형으로 보니 박진성인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336화 몸으로 갚다

    “하지만...”민여진은 눈을 내리깔고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짧은 시간 안에는 갚기 어려울 거예요.”민여진에게는 자립할 능력도, 돈을 벌 방법도 없었다. 적당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한, 그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짐이 될 뿐이었다.“그냥 돈을 받아주세요. 현준 오빠한테 빚진 건 언제든 갚을 수 있지만, 임재윤 씨는 휴양지 건설이 끝나면 떠나실 거잖아요. 기간이 너무 짧아요.”민여진은 임재윤이 평생 안진 마을에 머무를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집은 여기가 아니었고,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임재윤은 받지 않고 물었다.“민여진 씨의 뜻은 나더러 안진 마을에 좀 더 머물러 달라는 건가요?”차가운 기계음 소리는 임재윤이 지금 농담하는 건지 아니면 진지하게 말하는 건지 전혀 알 수 없게 만들었다.민여진이 잠깐 멈칫하자, 임재윤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일단 가지고 계세요. 제가 떠나기 전에 갚을 수 있을 거예요.”결국 민여진은 그 돈을 임재윤한테 주지 못한 채 다시 조인화에게 가져갔다.“왜 다시 갖고 왔어? 임재윤 씨가 뭐라고 했는데?”“빌려주는 거래요. 돈이 생기면 갚으라고.”조인화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건 앞으로 다시 만날 계기를 만드는 거나 다름없었다. 오직 순진한 민여진만이 자신에게 매력이 없다고 여기며 그런 쪽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뿐이었다.“갚지 못하면 어쩌려고?”민여진도 고민에 빠진 표정이었다.“임재윤 씨의 말로는, 떠나기 전에 내가 갚을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몸으로 갚으라는 거야?”민여진은 흠칫하더니 순간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고개를 숙였다.“이모, 장난치지 마세요.”조인화는 웃으며 그녀의 옷깃을 정리해 주었다.“아이고, 이 바보.”잠시 후, 포장 되어있는 봉투는 아까 전보다 훨씬 무거워져 있었다. 임재윤이 봉투를 받아 든 뒤, 세 사람은 가계를 나왔다.밖으로 나가던 중 다른 한 가계에서 조인화는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335화 당신한테 빚지고 싶지 않아요

    민여진이 옷을 내려놓자, 조인화가 다가오며 물었다.“왜? 마음에 안 들어?”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다른 가게로 가요.”“왜? 현준이가 나한테 이 가게를 추천했는데, 겨울옷이 보온성이 좋다더라.”말하던 중 조인화는 뭔가를 깨달은 듯 미소를 지었다.“돈 걱정은 하지 마. 현준이가 너한테 옷을 사주라면서 돈을 푼푼이 보내줬어. 한 푼도 남기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하면서. 그러니까 현준이 말을 들어야겠지?”조인화가 민여진을 데리고 계산대로 가 결산을 하려 하자, 한 직원이 임재윤을 바라보며 말했다.“금액은 저분이 이미 결제하셨습니다. 옷은 포장해 드릴까요, 아니면 주소를 알려주시면 저희가 따로 배송해 드릴까요?”직원의 말에 조인화와 임여진은 깜짝 놀랐다.임재윤이 시내까지 태워다 준 것만 해도 이미 큰 도움인데 갑자기 옷까지 사준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얼마를 내셨죠?”민여진이 묻자, 직원은 웃으며 대답했다.“이 매장 전체를 살 수 있을 정도예요.”조인화는 탄성을 내뱉었다.“임재윤 씨가 부자라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브랜드 매장인데 이 매장을 통째로 살 수 있을 만큼 줬다니, 도대체 얼마를 준 거야?”민여진은 입술을 깨물었다.‘대가 없는 호의는 받을 수 없어.'그녀는 차라리 조현준에게 신세를 지더라도 임재윤에게 더 이상의 도움은 받고 싶지 않았다. 이미 그에게서 받은 것이 너무 많았다.“이모, 현금 가지고 계세요? 제가...”“가지고 있지!”조인화는 서둘러 지갑에서 돈을 꺼내 민여진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이모도 알아. 너와 임재윤 씨 사이가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는걸. 그러니까 이렇게 받는 건 아닌 거 같아. 어서 가서 돌려줘.”민여진은 돈을 받으며 고맙다고 말하려다가 너무 예의를 차리는 것 같아 미소를 지었다.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카운터를 짚으며 입구로 향했다.문어 구에 있던 임재윤은 그녀를 발견하고 다가가 휴대전화로 물었다.“왜요? 옷 다 골랐어요?”민여진이 손에 든 현금을 임재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334화 임재윤이 너 좋아해

    “이모...”조인화의 말에 민여진은 당황스러워 입술을 깨물었다. 그 순간 차가 다시 멈추더니 앞에서 휴대전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도착했습니다.”“임재윤 씨, 고생하셨어요”문을 열려던 조인화는 문득 임재윤에게서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날카롭게 각진 그의 턱선은 불편할 정도로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고, 미간에 잡힌 가느다란 주름이 불쾌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임재윤의 태도에 조인화의 머릿속에는 순간 한가지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 임재윤이 휴대전화로 물었다.“돌아갈 방법은 생각해 두셨나요?”민여진이 대답했다.“오후 5시에 안진 마을로 돌아가는 버스가 있어요.”“너무 늦네요.”임재윤은 눈살을 찌푸렸다.“다섯 시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잖아요. 저도 할 일이 없으니 같이 쇼핑하다가 다시 모셔다드릴게요.”“그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민여진이 사양하려는 찰나, 임재윤은 차가운 표정으로 타자했다.“그냥 이렇게 하는 거로 하죠.”완강한 그의 태도에 민여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수고해 주세요.”조인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임재윤과 민여진 사이를 관찰하고 있었다.한 매장에 들어간 뒤 임재윤이 입구에서 기다리자, 조인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여진아, 너랑 임재윤 씨 사이가 좋아 보이던데?”민여진도 두 사람 사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몰라 두루뭉술하게 답했다.“임재윤 씨는 모두에게 친절하시잖아요.”“글쎄다.”조인화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임재윤 씨가 널 보는 눈빛은 분명히 다르더라. 게다가 성격도 원래 냉정한 걸로 보이는데, 우리랑 쇼핑하겠다고 하다니. 분명히 너 때문이야. 그리고...”게다가 민여진이 조현준과 통화할 때, 임재윤은 불편한 기색을 훤히 드러냈다.“그리고요?”민여진은 묻다가 바로 웃으며 말했다.“임재윤 씨는 겉보기에는 차갑지만 속은 따뜻하고 세심한 사람이잖아요. 이모도 그날 축하 자리에서 보셨잖아요.”조인화는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333화 신혼부부

    “우리도 좀 태워주시겠어요?”조인화가 말했다.“시내에 가서 여진이 겨울옷 좀 사주려고요.”“그럼요.”진시우는 자신의 차를 잠깐 바라보다가 말했다.“근데 제 차는 자리가 꽉 찼네요. 앞에 차가 임재윤 차인데 저쪽에는 자리 남았을 거예요.”“임재윤 씨요?”조인화는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임재윤에 대해 더 이상 거부감은 없었지만, 그래도 편하지는 않아 어색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괜히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무슨 소리세요.”진시우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다 한 식구 아닙니까. 도움 줄 수 있다면 좋아할 거예요.”“알겠어요.”조인화는 민여진의 손을 잡고 임재윤의 차 옆에 다가가 차창을 두드렸다.임재윤이 차창을 내리자, 날렵하면서도 깔끔한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조인화를 스치듯 흘깃 보고는 민여진의 얼굴에 시선을 꽂았다.조인화는 순간 당황했으나 바로 말을 이었다.“임재윤 씨, 저희 시내에 가서 옷 좀 사려고 하는데 태워주실 수 있나요?”임재윤은 볼품없이 낡아빠진 민여진의 옷을 보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조인화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두 사람이 모두 뒷좌석에 타는 건 임재윤을 운전기사 취급하는 것 같아, 조인화는 조수석에 올라탔다.차가 출발하자마자 민여진의 전화가 울렸다. 그녀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받자, 전화기 너머에서 따뜻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여진아.”“현준 오빠.”의외의 전화에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던 민여진은 운전석에 있는 임재윤이 미동하는 게 느껴져, 그가 시끄럽다고 생각할까 봐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전화를 다 하고?”조현준은 놀리듯 웃으며 말했다.“일 없으면 전화도 못 해?”“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민여진은 약간 당황해하며 말했다.“전화해 줘서 당연히 반갑죠. 그런데 지금 출근 시간 아니에요?”“맞아.”조현준은 미소를 머금었다.“그런데 갑자기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민여진이 말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332화 빨리 오는 것보다 때맞춰 오는 게 좋아

    너무 자연스러운 임재윤의 행동에 민여진은 또다시 혼란스러웠지만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털어 버렸다.‘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런 행동은 박진성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계속 앞으로 걸어가자, 눈은 어깨에도 쌓일 정도로 점점 더 많이 내렸다. 하지만 손이 잡혀 있어서인지, 그다지 춥지 않았다.문 앞까지 왔을 때, 임재윤은 멈춰 서서 휴대전화로 말했다.“도착했어요.”민여진은 옷에 묻은 눈을 털며 말했다.“고마워요.”민여진이 대문을 여는 순간까지 임재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민여진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임재윤 씨, 들어가서 따뜻한 차 한잔하실래요?”“다음에요.”임재윤은 빠르게 글을 쓰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어젯밤, 제게 할 말이 있냐고 물어보셨잖아요. 물어볼 말이 있어요. 다음에 만날 때 물을 테니까 그때는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요.”멍하니 서 있던 민여진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임재윤의 발소리가 저만치 멀어진 뒤였다.민여진이 안뜰로 들어가자, 불을 피우고 있던 조인화는 민여진을 보자마자 수건을 들고 와서 그녀의 옷에 묻은 눈을 털어 주며 말했다.“오늘은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방금 불을 피워 놓고 너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어.”민여진은 미소를 지었다.“마당에 마무리할 게 조금밖에 안 남아서, 그냥 두고 오기가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했어요.”“이 바보야, 안 추웠어? 내가 여기 있는 옷 몇 벌만 손보고 나가서 도와줄 테니, 너는 일단 앉아서 불 쬐고 있어. 따뜻한 물 좀 떠올게.”“네.”민여진은 앉아서 얼굴로 전해지는 따스함을 느꼈다. 손을 내밀어 차가웠던 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자, 아까 임재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그 뜻은 원래 어젯밤에 할 말이 있었다는 거 아닌가?’민여진은 머리가 아파져 왔다.‘어제, 무슨 일이 있었지?’...눈이 한번 내리자, 기온은 뚜렷하게 떨어졌다.민여진이 입고 있는 옷들은 하나같이 얇은 옷들이었고 유일하게 맞는 건 조인화의 낡은 옷뿐이었다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331화 내가 싫으세요

    임재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민여진에게 물었다.“됐어요?”그의 가슴은 여전히 드러난 채 있었고, 귀가 달아오른 민여진은 보이지 않음에도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며 대답했다.“네.”임재윤은 다시 옷을 내려 입고 단추를 채운 뒤, 천천히 글을 썼다.“당신 마음속에 있다는 그 사람, 저와 매우 비슷한가요?”민여진은 잠깐 멈칫하더니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아마... 조금은요. 하지만 많이 닮진 않았어요.”“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어요?”‘어떤 사람이냐고? 독단적이고 냉혈 하면서도 무자비한 사람.’민여진의 머릿속에 떠오른 박진성의 모습은 항상 높은 곳에서 누군가를 내려다보는 살얼음처럼 차가운 모습뿐이었다.자세히 생각해 보면, 임재윤과 박진성은 완전히 정반대의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무슨 황당한 생각으로 두 사람을 겹쳐 본 걸까?“잊어버렸어요.”민여진은 박진성이라는 사람에 대해 더는 생각하기 싫어 잠시 멍하니 있다가 대답했다.“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요.”어쩌면 이건 민여진의 바람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박진성이라는 이름조차 잊고 아픈 과거를 모두 떨쳐내고 새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임재윤은 눈치껏 화제를 바꿨다.“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민여진은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교회 내부 구조를 잘 모르는 한 시각장애인이 스스로 길을 찾아 나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수고해 줘요.”임재윤은 잠시 침묵했다. 약간 불쾌해 보이긴 했지만 크게 드러내지 않고 민여진의 손목을 잡은 채 밖으로 이끌었다.들어올 때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나가보니 땅에는 얇게 눈이 쌓여 있었다.민여진이 손을 내밀자, 눈이 손바닥에 닿아 차갑게 녹아내렸다.“집까지 데려다줄게요.”임재윤이 휴대전화로 글을 썼다.“괜찮아요.”민여진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안진 마을에 오신 것도 일 보러 오신 거잖아요. 저 때문에 이미 시간을 많이 낭비하셨는데 일 보러 가세요. 여기서부터는 길을 아니까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330화 계속해도 돼요

    임재윤은 더 이상 휴대폰으로 타자를 하지 않았고 대신 조용히 민여진의 손을 붙잡았다.그의 손은 크고 따뜻했고 그 사람이 지니던 차가운 손과는 전혀 달랐다. 임재윤의 손은 피부가 델 듯한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뜨거웠다.민여진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살짝 떨었고 임재윤은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자신의 몸쪽으로 이끌었다.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그가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그리고 그의 손이 그녀의 손을 가슴과 복부 사이 어디쯤 조심스럽게 얹었다.마침 그 자리는 심장이 뛰는 곳이었고 손등 너머로 전해지는 맥박은 뜨겁고 강했다. 그 울림에 민여진은 마치 전신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민여진은 반사적으로 손을 빼려 했지만 임재윤이 더욱 단단히 그녀의 손을 잡고는 아래로 이끌었다.그의 허리로 내려간 손끝에는 단단하고 잘 단련된 근육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졌다. 압도적인 힘과 긴장감과 폭발적인 에너지가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잠시 후, 임재윤은 그녀의 손을 놓았고 옷을 더 걷어 올렸다.그건 마치 마음껏 확인해도 된다는 무언의 허락이었다.민여진의 얼굴은 이미 새빨갛게 달아올랐다.피가 터질 것처럼 귀 끝까지 달아올랐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자신에게 되뇌었다. ‘이건 그저 확인일 뿐이야. 그 사람인지 아닌지만 알아보면 되는 거야.’하지만 시야가 보이지 않는 만큼 감각은 모든 걸 더욱 생생히 느꼈다.그의 숨소리 피부에서 나는 미묘한 향기 손끝에 닿는 근육의 결까지도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그녀는 예전에 박진성과 수없이 많은 밤을 함께 했지만 이렇게 집중해서 그의 몸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그들은 서로의 몸만 공유한 낯선 사이였을 뿐이다.감정도 사랑도 없었다.감옥에 들어가기 전에도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임재윤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고 그제야 민여진도 정신을 차리고 저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해요.”그러고는 손을 그의 왼쪽 허리로 옮겼다.그녀는 눈을 꼭 감고 과거를 떠올렸다. 그날 그녀가 칼을 찔렀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