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거야 말 거야?”밀입국 브로커가 어눌한 한국말로 물었다.유월영은 그를 한 번 힐끗 보고 말했다.“얼마야?”상대는 손바닥을 펼쳐 보이더니 두 번 흔들었다.유월영이 물었다.“20만 원?”브로커가 고개를 끄덕였다.“20만원, 한 사람당.”연재준이 막 동의하려 하자 유월영이 먼저 말했다.“20만원에 두 사람.”브로커가 흥정하며 말했다.“30만원, 두 사람.”“25만원 두 사람, 아니면 우리끼리 갈 거야.”브로커가 입술을 핥으며 손으로 OK 사인을 보내자 그제야 유월영은 몸을 돌려 돈을 세어 그에게 건넸다.돈을 받은 브로커는 그들에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둘은 뒤를 따라가며 연재준이 물었다. “왜 그렇게 흥정한 거야?”브로커가 한국말을 잘 알지 못해서 그들은 신경 쓰지 않고 서로 대화할 수 있었다.유월영이 찡그리며 말했다.“정말 몰라서 물어요? 밖에서 돈이 많은 티를 내면 눈에 띈다고요.”연재준이 미소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유 비서, 당신 없으면 어쩔뻔했겠어?”국경선은 철조망 하나로 구분되어 있었고 부근에는 경찰이 지키고 있었다.브로커는 그들을 데리고 풀숲에 숨었다가 국경 경찰이 교대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이때를 틈타, 그는 바로 뛰어 들어가 이미 손상된 철조망 부분을 벌리고 그들을 부르며 말했다.“빨리 뛰어! 빨리!”유월영은 그의 말대로 생각할 겨를 없이 몸을 움직였지만 머리로는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이게 다야? 무작정 뚫고 가는 거야?”그녀는 순간 아까 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거라면 그 브로커가 필요도 없고 그냥 연재준과 둘이서도 갈 수 있었다. 비밀 통로도 없고 왜 돈을 줬을까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연재준은 그녀를 잡아끌며 웃음을 참고 말했다. “인터넷에 나오는 농담 안 봤어? 브로커가 돈 받고 알려준‘비밀 통로’라는 게, 사실 줄을 새치기하게 해 주는 거래. 그리고 고객이 새치기해서 들어가면 그가 남아서 뒤에 사람들과 대신 싸워주는 거야. 지극히 간단한 방법이지.”“.
수술이 끝나 병실로 옮겨질 때까지도 유월영은 자신이 유산으로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그녀를 병실로 데려간 간호사는 인적 사항을 등록하기 위해 그녀에게 물었다.“유월영 환자분, 가족들은 어디 계신가요?”유월영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 천장만 올려다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간호사가 재차 물었다.“유월영 씨, 가족들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이때, 약품을 정리하던 다른 간호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한테 줘. 그거 내가 입력할게.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올 때 신분증이랑 카드 나한테 줬었어. 바로 등록하고 비용 결제하면 된다고. 아마 이 환자는….”유월영은 그제야 입술을 달싹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저는 가족이 없어요.”진한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를 잃었다는 상실감이 점점 더 진실되게 다가왔다. 그녀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었다.깊은 절망감이 찾아왔다.수술을 마친 유월영은 홀로 병원에서 사흘간 입원해 있었다.그 동안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나흘 째 되던 날, 드디어 연재준에게서 전화가 왔다.“유 비서, 무단 결근 3일이면 충분히 휴식하지 않았어? 지금 옷 입고 서덕궁으로 와.”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배경 음악과 여자들의 웃음소리까지 같이 전해져 왔다. 유월영은 지금 입원 중이라고 말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유 비서.”낮게 깔린 중저음 목소리가 재차 전해졌다.화가 많이 났다는 증거였다.유월영은 하려던 말을 도로 삼키고 그대로 병원을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부랴부랴 서덕궁으로 향했다. 그녀는 가는 길에 차 안에서 화장을 했다.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녀는 대충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카운터로 직행했다.“해운그룹 연 대표님이 계신 방이 어디죠?”고개를 든 어린 남직원은 눈앞의 미모의 연인을 보고 수줍게 웃으며 다급히 길을 안내했다.“연 대표님은 1번 룸에 계십니다. 제가 안내할게
술자리가 끝나고 유월영은 고객사 직원들을 한 명씩 차에 태워 보냈다. 모든 일이 끝난 뒤, 그녀는 피곤한 얼굴로 길가 가로등에 등을 기댔다. 이미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듯이 아팠다.립스틱은 이미 지워진지 오래고 파리한 입술에는 핏기 한 점 없었다.그녀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연재준의 운전기사가 다급히 다가오며 그녀에게 말했다.“유 비서님, 먼저 차에 타실래요?”유월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힘겹게 뒷좌석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 문이 열리더니 밖에 연재준과 여자애가 서 있었다. 같이 타려고 했는데 유월영이 먼저 타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연재준이 그녀를 보고 인상을 확 찌푸렸다.여자는 다급히 달려가서 조수석 문을 열며 말했다.“대표님, 제가 앞에 탈게요.”연재준은 짜증스럽게 문을 쾅 닫고 차에 오르며 말했다.“유진이 먼저 데려다줘.”유월영은 고통스럽게 두 눈을 감았다.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속이 울렁거렸다. 유산하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술을 마시니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차는 한 낡은 아파트 구역으로 들어섰다. 유월영이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데 연재준이 갑자기 그녀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골목이 어두워서 위험해. 유 비서가 유진이 집까지 좀 데려다줘.”백유진이 흑수정 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말했다.“괜찮아요, 대표님. 언니도 피곤할 텐데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어요. 조금만 더 걸으면 도착해요. 혼자 올라갈게요.”차에서 내린 그녀는 뒷좌석 차창에 대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대표님은 월영 언니 바래다줘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좋은 꿈 꿔요.”차갑기만 하던 연재준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언뜻 스치고 지나갔다.“그래, 좋은 꿈 꿔.”유월영은 차에 오르고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운전기사는 유월영을 집에 데려다주는 대신, 연재준의 동해안 별장으로 차를 돌렸다. 그는 연재준의 가까운 심복 중 한 명으로써 눈빛 하나로도 연재준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집 안으로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소리가 남녀의 신음소리를 덮었다.연재준에 이끌려 욕조에 던져진 유월영은 갑자기 3년 전 그와의 첫만남이 떠올랐다.그날도 비가 오는 날이었다.그녀의 부모님은 작은 슈퍼를 운영했다. 부유하진 않지만 궁핍하지는 않았고 다섯 식구가 서로 이해하고 도우면서 오붓하게 살았다.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사기꾼의 꼬임에 들어 10억이라는 거액의 빚을 지게 되었다. 그들은 슈퍼와 집을 팔고 집안의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지만 그래도 6억이나 부족했다.막다른 길에 다달았을 때, 사기군은 유월영을 데려다가 빚을 갚게 하겠다고 꼬드겼다.그리고 그녀의 부모님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녀는 비 오는 밤에 살기 위해 집에서 도망쳤다. 뒤에는 오토바이 소리가 그녀를 쫓고 있었다. 맹수에게 쫓기는 이 가여운 먹잇감은 도망치는 길에 신발까지 잃어버리고 머리는 산발이 된 채로 어두운 대로를 달리고 또 달렸다.달리다 지친 그녀가 바닥에 주저앉자, 오토바이를 탄 폭주족들이 그녀를 에워쌌다. 그녀가 모든 게 끝이 났다고 절망하던 순간에 차량 한 대가 골목으로 들어섰다.차 문이 열리고 반짝이는 구두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고개를 약간 들자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검은 우산을 들고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며 다가와서 그녀의 머리 위에 우산을 씌워주었다.그리고 조폭들에게 자기 사람이라고 당장 꺼지라고 말했다.처음 만났을 때 그는 꿈에서 나타난 구원자 같은 느낌이었다. 그의 모습은 그대로 그녀의 마음속에 깊게 각인되어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대략 30분이 지나 유월영은 젖은 채로 욕실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주방으로 가서 흑설탕을 따뜻한 물에 풀어 마시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연재준은 아직 욕실에서 씻고 있었다.그녀는 유산한 사실을 그에게 알려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하지만 결국 비밀에 부치는 걸로 결론이 났다.3년 전 그녀를 위기에서 구해준 남자는 그의 곁에 남는 대가로 더 이상 귀찮은 일을
유월영이 물었다.“뭘 해명하라는 건가요?”“유진이 왜 해고했어?”유월영은 사무적인 말투로 대답했다.“한아의 계약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소수점을 잘못 찍어 단가가 크게 차이 나는 실수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한아 쪽 관계자는 우리와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 해프닝으로 넘어갔지만, 회사 이익에 큰 손해를 끼친 신입은 바로 퇴사 처리하는 게 우리 방침이잖아요. 책임을 안 물은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그 말을 들은 백유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제가 원래 덜렁거리는 습관이 좀 있어요. 죄송합니다….”연재준은 그런 그녀에게 위안의 눈빛을 보내고는 다시 싸늘한 눈빛으로 유월영을 바라보며 말했다.“그 서류 가져와.”유월영은 가지고 온 서류를 그에게 건넸다.연재준은 맨 마지막 장을 확인하더니 서류를 도로 책상에 던지며 말했다.“날짜를 보니 유 비서가 무단결근 한 날짜에 벌어졌네. 유 비서가 무단결근만 안 했어도 이 계약서는 유 비서가 처리해야 할 서류였어. 신입인 백유진이 아니라.”유월영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그래서 제가 이걸 책임져야 한다는 말씀인가요?”“비서실 수석 비서로써 부하 직원이 실수를 저질렀을 때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는 건 유 비서도 잘 알 텐데?”연재준이 전달하고자 하는 뜻은 명백했다. 백유진에게 책임을 돌리지 말라는 것!유월영은 치미는 화를 꾹 참으며 또박또박 말했다.“유진 씨가 입사한 날에 저는 휴가를 내고 회사에 없었고요. 그리고 모르겠으면 다른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그냥 방치해 둬도 되는 서류였어요. 혼자 의욕에 넘쳐 처리한다고 했다가 문제가 생겼으니 당연히 당사자가 책임을 져야죠. 해운 비서실은 원래 전문 학과를 나온 탑클래스만 들어올 수 있는 자리 아니었나요? 아니면 경험이 풍부하거나 전 회사에서 뛰어난 업적을 세웠으면 모를까, 예술을 전공한 학생이 들어올 자리는 아닌 것 같은데요.”연재준이 물었다.“내가 꼭 유진이를 비서실에 둬야겠다면?”유월영은 어금니를 꽉 악물었다.“비서실은 지금
유월영은 월셋방으로 돌아가서 짐을 정리했다.“이제 돌아온 거야? 오늘도 안 돌아오면 시내에 있는 병원 다 뒤져서라도 찾아가보려고 했는데!”“이제 괜찮아.”유월영의 룸메이트 조서희는 그녀의 대학 동창이었다. 두 사람은 대학교 때부터 같은 월셋방에서 동고동락하며 지내왔다.입원해 있는 동안에 그녀를 걱정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유월영은 친구에게조차 사실을 말하지 않고 그냥 감기로 입원해 있다며 병문안을 거절했다.실내화로 갈아신은 조서희는 월영의 방 문 앞에서 짐 정리를 하는 친구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또 출장이야? 퇴원한지 며칠이나 됐다고. 연재준 그 인간 너무 직원을 부려먹는 거 아니야?”조서희는 연재준과 월영의 관계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친구를 부려먹는 악덕 상사를 줄곧 못마땅하게 생각했다.유월영은 이번에 떠나면 또 언제 돌아올지 장담할 수 없기에 솔직하게 사실을 털어놓았다.“나 지방 발령 났어. 안성 지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됐는데 언제 끝날지는 몰라. 3개월이 지나도 나 안 돌아오면 새로운 룸메이트를 찾는 게 좋을 거야. 그때 가서 미리 나한테 연락 주면 와서 남은 짐을 가져갈게.”조서희가 순간 당황하며 물었다.“이렇게 갑자기?”“누구나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발령 날 수도 있고 그런 거지 뭐.”다른 사람이었다면 흔히 있는 일이라고 넘어갔겠지만 연재준과 월영의 사이를 아는 조서희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너 연재준이랑 싸웠어?”월영은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말없이 일어섰다. 그러다가 호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조서희는 발 빠르게 그 종이를 집어 들었다.병원 진료 기록이었다.조서희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친구를 바라보았다. 날짜를 확인해 보니 그녀가 집을 비운 날짜와 맞물렸다.“유산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거야? 아이는 당연히 연재준 아이일 테고. 그 인간이 유산하라고 강요했어? 아니면 이제 너 필요 없으니까 멀리 꺼지래?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
그 직장 동료는 진심으로 유월영을 걱정해 주었다.“월영 씨, 고용 계약서가 한 달 뒤에 만기라면서요? 본사로 못 돌아오면 재계약이 힘들 것 같은데 계약이 끝나면 회사를 나가야 하잖아요. 물론 월영 씨야 유능해서 어딜 가도 환영 받겠지만 해운에 계속 남으려면 본사로 한 번 돌아와서 대표님이랑 잘 얘기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재계약이 안 돼서 퇴사했다는 꼬리표가 붙는 건 재취직에도 불리하니까요.”물론 유월영은 이런 문제를 딱히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와 얘기를 나눌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다.연재준이 안성 지사로 오는 날, 그녀는 공 들여 화장을 하고 하얀색 정장 원피스로 차려입고 아침 일찍 회사로 나가 대기했다.10분 뒤, 정문 입구로 세 대의 승용차가 들어왔다.차 문이 열리고 연재준이 차에서 내렸다. 유월영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리려던 찰나, 뒤에서 내리는 여자의 얼굴을 보고 그대로 얼어버렸다.백유진.어딜 가도 데리고 다닌다더니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었다.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에게 다가가서 공손히 인사했다.“대표님.”연재준은 덤덤한 시선으로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말없이 그녀를 스쳐지나 지사 사장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유월영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늘 입던 브랜드의 검은색 정장에 위트 있는 넥타이까지 여전히 가슴 떨리게 매력적인 모습이었다.백유진이 그녀에게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언니, 오랜만이에요.”순진한 눈을 깜빡이는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워 보였다.유월영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프로젝트 담당자로서 오늘 회의의 업무 진행 보고를 맡았다.해외 고객사 임원도 참석한 자리였기에 유월영은 유창한 영어로 재치 있는 농담까지 섞어가며 회의를 주도해 나갔다. 자리에서 듣고 있던 임원들도 그녀의 센스 있는 표현에 웃음을 터뜨렸다.40분이나 진행된 업무 보고였지만 아무도 따분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가 보고를 마치고 내려오자 회의실 안에 뜨거운 박수가 터졌다.연재준도 박수를 치고
그 뒤로 회의실 문은 한 시간 동안 안에서 잠겨 있었다. 격렬한 몸부림이 지나간 뒤, 유월영은 휴대하고 다니던 티슈를 꺼내 책상을 깨끗이 닦았다.청소를 끝낸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연재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옷매무시를 정돈하고 거만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셔츠가 살짝 구겨졌을 뿐, 다른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유월영은 바닥에 떨어진 넥타이를 집어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연재준은 평소처럼 턱을 치켜들고 그녀가 넥타이를 매줄 때까지 기다렸다. 유월영은 자연스럽게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저 본사로 돌아가고 싶어요.”연재준은 여자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내가 처음부터 말했잖아. 프로젝트 진행하는 동안만 지방에 있으라고. 이제 프로젝트도 무사히 끝났으니 돌아가고 말고는 유 비서가 결정하면 돼.”그렇게 되어 연재준의 지사 탐방이 끝나고 돌아가는 차량에는 한 사람이 더 늘게 되었다.백유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연재준에게 물었다.“대표님, 언니도 이번에 저희랑 같이 돌아가는 거예요?”연재준은 서류에서 눈길도 떼지 않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유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유월영에게 말했다.“정말 잘됐어요, 언니! 안 그래도 언니가 출장 가 있는 사이 많이 외로웠거든요!”유월영은 오렌지 계열의 볼터치를 곱게 바르고 자연스러운 아이라인을 그린 소녀 느낌이 충만한 여자를 힐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화장 잘 됐네.”남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한듯 안 한듯한 투명 메이크업이었다.백유진은 순진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그들을 태운 차가 신주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때가 넘은 시각이었다. 백유진을 먼저 집에 데려다주라는 연재준의 지시에 운전기사는 번화가로 방향을 꺾었다.유월영이 잠시 야경에 한눈을 파는 사이 차는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회사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호화 빌라 단지였다.자연스럽게 차에서 내린 백유진이 차 창 너머로 인사를 건넸다.“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