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영은 연재준의 말이 귀에 거슬리게 느껴져서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연재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다 씻었으니 와서 먹어.”유월영은 그제야 그가 매운 반찬을 모두 골라내어 유리그릇에 담아 매운맛을 제거하려고 물에 헹군 것을 알아차렸다.“이제는 덜 매울 거야. 내가 다시 우유를 데워 줄게.”유월영은 그를 바라보았다.연재준은 원래 세심하거나 자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도려님으로 자라온 그는 조금이라도 음식이 짜거나 싱겁거나 식어버리면 차라리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가 자신의 한 끼 식사를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가며 신경을 쓰고 있었다.유월영은 소파로 돌아가며 말했다.“연 대표님께서 갑자기 이렇게 자상하게 나오니 오히려 겁이 나네요.”연재준은 음식을 유월영의 앞에 두며 말했다.“내가 당신한테 그렇게 많은 걸 빚졌으니 조금이라도 잘해주는 게 당연하지 않나?”유월영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옷 한 벌 빌려주고, 음식을 좀 신경 써주고 우유 데워주는 걸로 날 위한 보상이 된다고 생각해요?”비꼬는 말투였지만 연재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그럼 당신이 원하는 게 뭔지 말해봐. 뭐든지 말해.”유월영은 그가 또 무슨 속임수를 쓰는지 알 수 없어 새 일회용 젓가락으로 그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말했다.“연 대표님, 그렇게 비굴하게 굴지 마세요. 당신답지 않게.”연재준도 피하지 않고 말했다. “그래? 당신이 생각하는 나란 어떤 사람이지?”“당신은...”유월영의 젓가락은 그의 턱에서부터 목젖까지 천천히 내려갔다. 다만 그 행동은 어떤 애정도 없이 차갑고 날카로운 놀이였다.“나를 거역하는 자는 멸망할 것이요.”“나만 너를 버릴 수 있고 네가 날 먼저 떠난다면 죽을 각오를 해야 하고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감히 나에게 반항하다니, 이 결과는 네 스스로 자초한 거야.”“당신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죠. 이게 진짜 연 대표님 모습이에요.”연재준의 울대가 움찔거리더니 낮은 목소리
유월영은 한세인에게 방을 한 번 더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연재준에게 다가가 가식적으로 말했다.“우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기 머물러 정말 폐를 끼쳤네요. 그래도 떠날 때 사용한 물품들은 모두 보상할 테니 걱정 마세요.”연재준은 더 이상 그 문제로 실랑이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차면서 말했다.“당신 내키는 대로 하면 돼.”“그럼 이제 연 대표님을 방해하지 않을게요.” 그녀의 말은 사실상 이제 눈앞에서 사라지라는 뜻이었다.연재준은 자신이 묵고 있는 옆방으로 돌아갔다.한세인이 점검을 마치고 보고했다.“아가씨, 도촬 카메라나 도청 장치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유월영은 욕실 거울 아래 있는 수납장을 열었다. 안에는 수건, 치약, 칫솔, 일회용 속옷이 들어 있었다. 유월영은 물건들을 꺼내어 자세히 살펴보았고, 포장지에 인쇄된 제조 날짜를 확인했다.3년 전이었다.이 집은 3년 전에 구매된 것이고, 이 물품들도 그때부터 놓여 있던 것이었다. 그동안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서 물건도 그대로 있었으며 날짜로 보아 연재준은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유월영은 수납장을 닫고 방을 둘러보았다. 벽에는 모네의 이 걸려 있었다. 그녀는 이 그림이 낯익은 느낌이 들어 한세인에게 물었다.“이 근처에 관광지가 있나요?”한세인이 핸드폰을 꺼내 검색한 후 곧바로 대답했다.“있습니다. 이 주택에서 3km 떨어진 곳에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스키장이 있습니다.”유월영이 멈칫했다.“아, 이제야 기억이 나네.”그녀는 다시 그 그림을 바라보며, 낯익었던 이유를 깨달았다....연재준은 자신의 방 서랍에서 슬리퍼를 발견했다. 유월영이 짧은 부츠를 신고 있던 걸 떠올린 그는 슬리퍼를 가져다주려 방을 나섰다.그녀의 방 앞에 서서 막 문을 두드리려던 순간, 방 안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어디를 갔어?”매우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에 연재준의 동작이 멈췄다.유월영이 대답했다.“아직 수청이야.
유월영이 아주 사소한 일까지 속속들이 연재준에게 말해주던 때는 그녀가 그의 비서였던 그 3년이었다.처음 반년 동안, 유월영은 무슨 일이 생기면 그에게 모두 이야기하곤 했다.예를 들어, 이상한 고객을 만났다거나 재미있는 소문을 들었다거나, 심지어 인터넷에서 웃긴 영상을 보았다거나 하는 사소한 이야기들을 식사 중이거나 단둘이 있을 때 그에게 말하곤 했다.그럴 때마다 연재준은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그녀가 왜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그 후로 유월영은 그에게 이런‘사소한’일들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되었다.그녀는 점점 차분한 모습만 보였고 그 어떤 일도 조용하고 여유롭게 처리하는 비서처럼 변해갔다.오히려 연재준이 자신의 모든 일을 유월영에게 공유하기 시작한 건 그녀가 지성에 있으면서 신현우의 아래에서 일할 때였으며 연재준은 유월영을 쫓아다니며 재결합하려고 했었다.그 시기 동안 연재준은 유난히 ‘집착'했고, 자주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자신의 하루 세 끼 뭘 먹었는지, 날씨가 어떤지, 새로운 고객이 얼마나 건방졌는지, 오래된 부하 직원이 어쩌다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저질렀는지까지 말하곤 했다.그리고 그녀를 보고 싶다고 말하며‘자기’라고 부르고, 전화를 걸어 그녀에게 자신의 이름을 불러 달라고 조르곤 했다.하지만 그때 유월영은 연재준에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그들은 이런 관계였다. 사귀었지만 진정으로 서로 사랑한 적은 없었다.두 사람은 모두 상대방이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순간에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언제든지 이 관계를 끝내버려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연재준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러자 폐부의 통증이 심장으로 옮겨간 듯했으며 마치 돌덩이가 짓누른 듯 숨이 막혔다.그는 통화가 끝나기도 전에 문을 두드렸다.솔직히, 예전 같았으면 유월영이 다른 남자와 이렇게 다정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바로 들어가서 그녀가 자기 것이라는 걸 주장했을 것이었고, 그녀에게 아무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고 으르렁거렸을 것이었다.하지만 이제
유월영은 그를 바라보다 ‘비숍'을 한 칸 움직이며 말했다.“연 대표님과 윤 대표님은 가장 가까운 파트너인데, 이렇게 저주하듯 말하는 건 좀 지나치지 않나요?”체스, 국제 장기라고도 불리는 이 게임은 64개의 작은 칸으로 이루어진 체스판에서 양측이 각각 16개의 말을 가지고 경기를 벌이고 말마다 이동 방식이 다르고, 상대의 ‘킹’을 먼저 잡는 사람이 이길 수 있는 게임이었다.연재준이 차분하게 말했다.“윤씨 가문의 최근 3년 자금 흐름은 5분의 3이 해성 그룹으로 들어갔고, 5분의 1은 신해 그룹의 정상 운영을 유지하는 데 사용되었어. 나머지 5분의 1은 윤 대표가 윤씨 가문의 사업을 확장하는 데 보탰고.”“하지만 누가 예상이라도 했겠어? 최근 2년 동안 시장 상황이 너무 나빴잖아. 거의 모든 산업이 하락하고 있어. 그는 투자에 실패한 게 아니라,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지. 그래서 지금 그의 자금에 큰 구멍이 생긴 거야, 특히 최근에.”연재준은‘폰'을 한 칸 앞으로 움직였다.체스의 규칙에 따르면, ‘폰'은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고, 뒤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그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이어 말했다.“이제 연말 정산이 다가오고 있는데 윤 대표는 이미 은행에서 여러 번 대출을 받았으니 더는 대출을 받을 수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구멍을 메우지 못한 거야. 지금 그는 아주 위태로운 상태야.”유월영은 그의 말을 듣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체스를 움직였다.“연 대표님께서 남의 집안 자금 상황을 이렇게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니 선을 넘은 거 아닌가요? 그래도 이렇게 말이 나왔으니, 제가 실례를 무릅쓰고 묻겠어요. 그 구멍이 얼마나 되나요?”“약 200억 정도.” 연재준은 아주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유월영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윤 대표님은 업계에서 인맥이 좋지 않나요? 멀리 볼 것도 없이 연 대표님이나 신 대표님 그리고 오 변호사님 같은 분들이 있으니, 이 정도의 친분이면 200억 정도는 가뿐히 준비해서 그를 도울 수 있지 않나요?”연재준이 갑
유월영은 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전화 건 사람은 바로 윤영훈이었다.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윤 대표님, 무슨 일이 신가요?”윤영훈의 목소리는 다소 쉰 상태였다. 아마 밤을 너무 많이 새웠거나 담배를 많이 피운 듯했다.“고 대표님, 아직도 청원에 계시는가요?”유월영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네, 맞아요. 이곳에 온 건 정말 잘못된 결정이었어요. 눈이 아직도 그칠 기미가 없고, 도로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어서 차가 나갈 수가 없어요. 이 지역 대부분이 일시적으로 공사도 멈추고 학교도 쉬고 있다고 들었어요. 언제 정상으로 돌아올지 모르겠어요. 정말 출장 일정이 다 꼬였지 뭐예예요.”“그렇죠, 우리 같은 도시 사람들은 이런 큰 눈은 상상도 못 했죠.”윤영훈의 말투는 다소 건조했다. 그는 사실 이런 잡담을 할 기분이 아니어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고 대표님, 제가 하나 무리한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한세인이 홍차를 우린 찻잔을 가져와 그녀에게 건넸다.홍차는 진한 색을 띠며 향긋한 향을 풍기고 있었다. 유월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뜻을 표했고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네. 무슨 부탁인가요?”윤영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혹시 고 대표님께서 지금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이 있으신지요? 제가 지금 약간의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급히 자금을 빌려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차용증을 써 드릴 수도 있고 이자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제가 내년 초에 자금이 돌아오면 가장 먼저 갚도록 하겠습니다.”“아...”유월영은 눈썹을 살짝 올리며 물었다.“혹시 얼마나 필요하신 건가요? 제 계좌에는 약 30억 정도가 있는데, 급한 대로 그걸 보내 드릴 수 있어요. 저희 사이에 이자는 신경 안 쓰셔도 돼요.”그녀가 이렇게 선뜻 빌려주겠다고 말했지만 윤영훈인 잠시 침묵했다.2분 정도 지나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그게...고 대표님, 가용 자금이 30억 밖에 없으신가요?”유월영이 놀란 듯한 말투로 말했다.“30억도 부족한가요? 윤 대표님, 설
윤영훈은 의자에 다시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미간에는 주름이 깊게 잡혀 있었다.사무실에 노크 소리가 두 번 들리고 비서가 들어왔다. 비서는 이쪽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단번에 알아채고 망설이며 말했다.“대표님, 은행에서도 저희 재정 적자가 너무 많아서 대출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하네요. 더 이상 대출을 해줄 수 없다고 합니다...”윤영훈은 고개를 들어 비서를 바라봤다. 그의 눈은 온통 충혈돼 있었다신해 그룹의 재정 위기가 시작된 이후 그는 일주일 동안 합쳐서 열 시간도 자지 못했다.그는 조용히 혼자 중얼거렸다.“유월영의 30억도 사라졌어.”비서와 몇몇 경영진은 서로 눈치를 봤다.“그렇다면...지금 우리는 오 변호사의 40억과 신 대표의 40억만 남은 거네?”윤영훈의 말에 경영진 중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 원래는 연 대표님도 얼마 정도를 빌려줄 수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지금 폭설에 갇혀 연락이 전혀 닿지 않고 있어요. 그분이 안 계시니 해운 그룹에서도 큰 금액을 이체할 사람이 없어 사실상 2억도 빌릴 수 없는 셈입니다.”윤영훈은 다시 눈을 감았다.그는 평소에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사업에서 모두가 그런 것처럼 진정한 친구가 별로 없었고 대부분은 그저 겉으로만 가까운 사이일 뿐이었다.해성 그룹은 최근 몇 년 동안 너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주위의 너무 많은 질투와 시기를 살 수밖에 없었다. 신해 그룹이 위기에 처한 지금 경쟁사들이 돌을 던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배려였다. 그러니 자금을 대줄 수 있는 사람이 더더욱 없을 터였다.그중 진심으로 도움을 주려는 몇몇 사람들도 연말이라 각자의 정산으로 코가 석 자라 한꺼번에 많은 유동 자금을 마련할 수 없어 그리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신현우와 오성민이 각각 40억을 내놓은 것도 그들의 한계였다.비서가 입을 열었다.“문제는 회사의 구멍이 너무 크다는 겁니다. 400억이나 되니까요...”연재준이 예측한 것보다 200억이 많은 금액이었다
윤영훈은 일주일 내내 별장에 오지 않았었다.하지만 오늘은 별장에 들렀을 뿐만 아니라 평소보다 퇴근 시간도 빨랐다.그가 집에 들어서자 가정부가 그의 외투를 받아주었다.그는 신발을 갈아신고 거실로 들어갔다.거실 카펫 위에서 유모와 놀고 있는 딸을 본 윤영훈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말했다.“연이야.”여자아이는 낯설지 않은 듯 윤영훈을 보고 거부감 없이 눈을 깜박거렸다.윤영훈은 어린 딸을 안아 들고 자연스럽게 카펫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딸을 무릎 위에 앉히고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달랬다.“아빠라고 해봐. 아빠, 아빠.”딸아이는 아, 아 하는 무의미한 소리만 냈다. 윤영훈은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한 글자씩 말했다. “아빠 해 봐.”연이가 옹알거렸다.“아! 아!”“아니야 아니야, 연이야. 따라 해봐. 아빠.”“엄마! 엄마!”윤영훈은 잠시 멍해졌고 고개를 돌려보니 역시나 주월향이 다가오고 있었다.여자아이는 엄마를 애타게 부르며 주월향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주월향은 딸아이의 분유를 타며 조용히 말했다.“애는 이제 겨우 1살 반이에요. 아직 잘 말할 줄 모르니 너무 다그치지 마세요.”윤영훈은 그녀를 바라보며 입가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졌다. 그는 다시 예전의 그 방탕하고 가벼운 윤영훈이 된 듯했다.“그럼 당신이‘여보'라고 한 번 해봐.”주월향은 잠시 흠칫하더니 곧 윤영훈의 품에서 아이를 안아가며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윤 대표님께서 연이로 나를 협박하지 않았더라면 난 절대 당신 곁에 남아있지 않았을 거예요.”그래서 그녀가 그를 “여보”라고 부를 일은 없었으며 그들 사이에는 그런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윤영훈은 가만히 카펫에 앉아 한쪽 다리를 구부리고 손을 무릎 위에 얹은 채 그녀가 능숙하게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그의 시선이 갑자기 애틋해졌다. 그는 눈을 깜빡이기 싫었으며 한 초라도 더 보고 싶었고 이 장면을 마음속에 새기고 싶었다.주월향은 그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 불편해
주월향은 아주 빠르게 윤영훈과 사랑에 빠졌다.그는 그녀의 첫 남자였고 첫사랑이었다. 그녀는 순진하게도 그들의 미래를 그렸으며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부터 함께 백발이 된 모습까지 상상했다.결국, 고작 반년도 채 안 돼서 그녀는 현실의 쓴맛을 알게 되었다.윤영훈이 그녀에게 마음을 쏟았던 이유는 오직 이름에 “월”자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게다가 윤영훈은 이미 그녀를 질려했고 곧 주변에 다른 여자가 생겼다. 그리고 그 여자가 아무렇게나 둘러댄 모함에 윤영훈은 주월향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믿고 자연스럽게 그녀와 헤어졌다.그녀가 믿었던 진정한 사랑은 결국 순진한 꿈에 불과했다.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던 그 시절 그녀가 어떻게 견뎌냈는지는 하늘만이 알고 있었다.주월향의 눈에는 잠깐의 증오가 스쳤지만 곧 그것을 억누르며 감췄다.윤영훈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녀가 두 번이나 “영훈 씨”라고 불렀지만 그는 깨어나지 않았다.주월향은 할 수 없이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영훈 씨. 영훈 씨?”조용히 자고 있던 남자는 갑자기 주월향의 손목을 잡더니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주월향은 본능적으로 몸부림쳤다.“나 좀 놔줘요!”윤영훈의 쉰 목소리가 그녀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잠깐만 이러고 있게 해줘.”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의 그 말투를 듣자 주월향의 극도로 거부하던 마음이 왠지 모르게 차분해졌다. 그녀는 그의 셔츠를 잡고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윤영훈은 주월향을 품에 안고 턱을 그녀의 머리 위에 올린 채 조용히 말했다.“당신이 믿든 안 믿든 난 당신을 그 누구의 대체품으로도 여기지 않고 있어. 내가 뭘 하는지 잘 알고 있어.”주월향은 자기도 모르게 울컥해졌다.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는 건 아니야. 결국 우리 사이도 고작 반년이잖아. 내가 지금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해'라고 말해도 당신은 믿지 않을 거잖아.”주월향은 말없이 그의 가슴에 엎드려 그의 심장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