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시간 후 비행기가 신주시에 착륙했고 하정은은 차량을 이끌고 공항으로 그들을 마중 나왔다. 유월영은 곧장 그중 차 한 대로 향했다. 그녀는 앞좌석에 앉아 연재준과 같이 나란히 앉을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했다. 하지만 차 문을 열고 올라타기도 전에 연재준은 그녀의 팔을 잡고 뒷좌석으로 밀어 넣었다. 더 실랑이 해도 허사라는 걸 깨닫고 그녀는 아무런 반항 없이 뒷좌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하정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우선 동해안 저택으로 가시겠어요?”연재준이 대답했다.“응.”유월영은 즉시 반박했다.“엄마 만나서 병원에 갈 거예요.”연재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지금 ICU에 계셔서 당신 들어갈 수 없어. 그리고 가서 만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당신이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는 건 동의할 수 없어.”“내가 곁에 같이 있든 말든 내 일이에요. 더 이상 날 어떻게 할 생각하지 말아요.”“그럼 내가 할 수 있나 없나 한 번 보지.”연재준이 다시 말했다.“동해안 저택으로 가.”유월영도 지지 않고 소리 질렀다.“병원으로 가라고요!”운전기사는 당연히 연재준의 말에 따랐고,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동해안으로 설정했다. 유월영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날 내려줘요. 나 혼자 병원에 갈 거예요.”운전기사는 백미러로 연재준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아무런 지시가 없자 운전기사는 그대로 속도를 줄이지 않고 길을 달렸다. 자기 말에 아무런 반응이 없자 유월영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바로 앞 좌석으로 몸을 일으켜 운전기사의 운전대를 낚아챘다.“차 세우라고!”갑작스러운 행동에 운전기사는 핸들을 놓치고 차는 길에서 방향을 잃고 휘청거렸다. 다행히 주위에 차가 없어서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연재준은 재빨리 그녀를 끌어당겼다. “당신 미쳤어?”유월영은 연재준의 손을 뿌리쳤다. 다음 순간, 그녀는 손에 유리 조각을 쥐고 연재준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하정은이 놀라 소리 질렀다.“대표님! 사모님! 진정하세요!
차는 곧 신주병원 입구에 도착했다. 유월영은 차에서 내려 바로 병원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이내 연재준이 그녀를 잡아끌었다. “재준 씨!”유월영이 빠져나오려 하자 연재준이 담담하게 말했다.“어머님 보고 싶으면 나한테 맞춰줘.”‘뭘?’유월영은 눈살을 찌푸리고 그를 바라봤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이끌고 병원 안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계단을 오르자 뒤따라오던 승용차 한 대가 입구에서 천천히 멈춰 섰다. 뒷좌석 차창이 천천히 내려지고 윤영훈과 오성민이 얼굴을 드러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옆으로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다 병원 안으로 사라지자 비로소 눈길을 돌렸다. “연 대표 정말로 유 비서를 데려왔네.”윤영훈 비웃는 어조로 말했다. “난 또 유 비서가 현시우 따라가 버리고 다시는 안 돌아올 줄 알았지. 현시우가 첫사랑이라고 하지 않았어? 첫사랑도 별거 없고 연재준이 더 좋다 이건가?”오성민은 손에 있는 염주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자기 엄마를 위해 돌아왔을 거야.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달려온 거고.”“그건 모르는 거야. 당신이 유 비서를 몰라서 그래. 내가 애초에 그녀를 얼마나 열심히 쫓아다녔는데. 내게 웃는 얼굴도 안 보여줬어. 이 아가씨 아주 냉정하고 똑똑하다고. 연재준과 결혼까지 한 걸 보면 정말로 연재준을 좋아하는 걸 거야.”오성민은 윤영훈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챘다.“그 말은 그녀가 정말로 연재준을 위해서 유용우하고 고해양 그리고 고씨 집안의 복수를 포기할 거라는 뜻이야?”윤영훈이 표정 변화 없이 대꾸했다.“불가능한 건 아니잖아. 똑똑한 여자일수록 사람에 빠지면 답이 없다고.”오성민은 안전벨트를 풀고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도 사랑에 빠지면 답이 없어 보이는데?”윤영훈은 오성민이 그가 했던 말처럼 뿌리를 뽑을까 봐, 유월영이 해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애써 설명하고 있었다. 오성민은 차 문을 열고 내렸다.“내 눈으로 봐야겠어.”그는 병원으로 들어가 ICU 병실
의사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보통 출혈이 없으면 큰 문제가 없으세요. 우선 침대에 누우세요. 초음파 한번 해볼게요.”“네.”이승연은 침대에 누워 옷을 들어 올렸다. 차가운 젤을 바른 기계가 그녀의 배 위에서 왔다가 갔다 움직이자 그녀는 옷자락을 움켜쥐었다.보름 전 그 호텔 사건 이후로 그녀와 이혁재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다. 이혁재는 그녀가 오성민과 재결합하고 호텔 방까지 들렀다고 오해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설명하기도 귀찮아 그대로 입을 닫았다. 그도 그녀 몰래 모델과 밤새 요트 파티에 낚시했으며 바람을 피운 것은 분명 그였다. 이승연은 이혁재가 이혼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유산을 탐내고 있었기에 그녀는 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그녀는 그의 다른 꿍꿍이에 눈감아 줄 수 있었지만 외도만은 참을 수 없었다. 다만 갑자기 아기가 생기는 바람에 그녀는 아직 아기를 남기지 말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의사는 초음파 기기를 거두며 그녀에게 티슈 몇 장을 뽑아 건넸다.“별다른 이상이 없습니다. 태아도 건강하게 잘 크고 있어요. 다만 근무시간을 잘 조절하시고 자신의 기분을 잘 조절하셔야 해요. 임산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충분한 휴식과 충분한 영양 섭취, 그리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이에요.”이승연의 배에 묻은 젤을 닦으며 대답했다.“네. 명심할게요. 감사합니다.”그녀는 옷을 정리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자신도 모르게 손은 배를 쓰다듬고 있었으며 머릿속에 희미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 순간 누군가 그녀의 앞에 불쑥 나타났다. 하마터면 부딪힐 뻔 하자, 이승연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어두운 표정의 오성민이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이승연은 여기서 그를 만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와 말을 섞을 생각이 없어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오성민은 바로 그녀의 팔을 덥석 잡고 그녀를 멈춰 세웠다. 그녀는 주저 없이 그의 손을 뿌리치자 그는 예상이라도 한 듯 다시 그녀의 손목
연재준은 유월영을 안아 차에 태웠다. 유월영은 그의 옷깃을 꽉 잡고 차에서 몸을 빼지 못하게 하고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재준 씨, 우리 엄마 왜 갑자기 혼수상태로 된 거예요? 당신들 우리 엄마에게 무슨 짓을 한 거예요?”그녀가 신주시를 떠나기 전까지 이영화는 분명 멀쩡했으며 며칠 사이에 갑자기 그렇게 된 건지 유월영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연재준은 허리를 굽힌 자세를 유지한 채 유월영을 내려다보다 창문을 바라보았다. 아까 그 승용차가 천천히 그들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유월영의 머릿속에서 병실에 누워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그녀는 갑자기 목이 메어 숨이 막혀왔다. “어머니를 협박했었나요?”연재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매번 자기 어머니와 관련된 일에 유월영은 침착함을 잃었고 그의 옷깃을 꽉 잡고 있었다. “재준 씨! 지금 당장 정해요. 당신 도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장부를 가지겠다는 건가요, 아니면 나와 우리 엄마 목숨을 갖고 싶은 거예요?”그녀가 잡고 놓지 않자 연재준의 시선이 그녀의 화난 얼굴로 향했다. “난 두 가지 다 원하지 않아. 내가 원하는 건 그저 당신이 온전하게 나의 곁에 있는 거야.”유월영은 꿈 깨라는 듯 그를 노려보았다. 연재준은 갑자기 그녀의 머리를 받친 채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훔쳤다. 익숙한 숨결이 바로 전해지자 유월영은 바로 그를 밀쳐냈다. “재준 씨, 이게 무슨...읍.”연재준은 다시 한번 자신의 입으로 그녀의 입을 막아왔고 그녀의 저항하는 손을 잡아 자신의 목에 둘렀다. 그 모습은 마치 그녀가 그를 놓아주지 않고 먼저 키스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오른 유월영은 그를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가 그녀의 머리를 누르고 있어 꼼짝할 수 없었다. 연재준이 입술은 마른 그녀의 입술을 적시고 입을 벌려 그녀의 하얀 치아를 훑고 입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그녀의 입안을 탐하고 매달렸다.그렇게 한 사람은 차 안에서, 한 사람은 차 밖에 허리를 숙
연재준의 목의 상처는 제때 처치하지 않아 피가 검은 셔츠의 옷깃을 더 어둡게 물들였고, 피는 이미 응고되어 그의 하얀 피부에 달라붙어 유난히 눈에 띄었다.유월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연씨 가문의 외아들로 작은 상처 하나 없이 귀하게 보호받고 자랐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상처를 내고 피까지 봤으니 해운그룹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경호원이나 노현재부터 아마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지.’그도 몇 번 다친 적이 있었다.한 번은 황야 수풀에서 그는 그녀를 안은 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의 몽둥이에 등을 맞은 적 있었다. 또 한 번은 마을을 시찰하다가 주영문의 부하의 칼에 복부가 찔렸었다. 다행히 그녀가 그 부하들을 제때 따돌려서 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우연인지 두 번 다 그녀와 관계가 있었다.유월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연재준은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는 그녀를 달래는 듯 그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자기야, 우리 다 없었던 일로 하고 당신도 이 일 잊으면 안 될까. 우리 다시 옛날처럼 알콩달콩 잘살아 보는 거야.”유월영은 몇 초간 생각하다 그의 어깨에 기대어 대답했다.“좋아요.”연재준은 그녀의 어깨를 잡은 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진심인 걸까?’유월영이 입을 열었다. “오늘 밤 병원에서 엄마 곁을 지키고 싶어요. 그러니 먼저 혼자 돌아가요.”연재준은 손바닥으로 그녀의 등을 쓸었다.“몇 시간 비행기를 탔는데 안 피곤해? 오늘은 먼저 나랑 집에 가고, 다음에 다시 어머님 뵈러 오자. 걱정하지 마, 의사가 잘 돌봐줄 거야.”유월영은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안 피곤해요. 오늘은 병원에서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요.”이번에는 연재준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유월영의 눈에 희미한 비웃음이 비쳤다. “왜요? 못 하겠어요?”그녀는 웃음이 나왔다.“예전처럼 다시 잘 해보자고 하지 않았어요? 전에 내가 엄마 옆에 있겠다고 했을 때, 당신은 병원에 소파도 가져다주고 주고 꽃도 보내줬어요
운전기사와 하정은은 계속 앞좌석에 있었지만 그들은 연재준이 그들을 필요로 할때를 제외하고, 평소에 자신의 존재감을 거의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연재준의 명령이 떨어지자 운전기사는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연재준은 싸늘한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조 비서에게 사람 데리고 동해안으로 오라고 해. 우리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집에 있는 칼, 도자기, 날카로운 물건들, 그리고 사람이 다칠만하거나 자해할 만한 모든 물건들 교체하라고 해. 내 아내가 다치면 안 되니까.”하정은 낮게 대답했다.“네.”유월영은 그가 자신을 방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그들의 차는 곧장 동해안으로 향했고 윤영훈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병원에 따라가서 뭐 이상한 것 발견했어?”오성민은 이상한 점 없다는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윤영훈은 가만히 있자니 졸음이 몰려와서 하품하며 말했다.“당신도 봤잖아. 둘이 차 안에서 우쭈쭈하는거. 사이다 아주 좋아 보이던데 지금쯤같이 집에 갔을걸. 못 믿겠으면 우리도 따라갈까?”오성민은 손에 염주를 세면서 대답했다.“그럴 필요 없어.”윤영훈이 손을 내저었다. “그래. 고해양이 아무리 친아버지라지만 만나 적도 없고 막말로 하면 남과 같은데. 뭐랄까, 내가 유 비서라면 나도 고해양에게 별로 감정 이입이 되지 않을 것 같아.”“그리고 연재준은 그래도 유 비서가 오랫동안 사랑하던 사람이니 연재준 편에 설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해.”오성민이 생각에 빠진 채 대답이 없자 윤영훈은 다시 입을 열었다. “고해양을 대신해 복수를 하는 길은 가시덤불과 같아서 삐끗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연재준을 선택하면 연씨 가문과 해운그룹의 사모님이 되는데 바보라도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알 거야.”오성민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그렇게 유 비서가 좋아? 계속 그녀를 위해 좋은 말을 해줄 만큼? 근데 당신 전에는 장부를 찾는 데 그렇게 적극적이더니.”“그거랑 별개야.”윤영훈은 다리를 쩍 벌
오성민이 다가가자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면서 공손하게 말 걸었다.“오 변호사님 아직 저녁 안 드셨지요? 저희 사모님께서 퓨전 한식집을 예약했는데 어서 가시죠.”오성민이 물었다.“사모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운전기사가 답했다.“연씨 사모님이세요.”‘뭐? 연씨라고?”오성민은 염주를 만지작거리다 허리 숙여 차에 올랐다. ...연재준을 따라 동해안으로 돌아온 유월영은 휑한 집안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다. 모든 위협이 될 만한 물건들은 모두 치워졌고 꽃병마저 도자기가 아닌 플라스틱이었다.유월영은 냉소를 지었다.“다음은 나를 여기에 가두고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요?”연재준이 외투를 벗자 가정부가 조용히 다가와 받아주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부인 지금 무슨 말씀을 하는 거지. 내가 어떻게 당신을 감금하겠어. 당신이 그동안 너무 고생했으니 휴식도 하고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래. 며칠 집에서 쉬어.”이제 와서 유월영도 뾰족한 수가 없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그래요. 쉴게요.”유월영은 곧장 게스트 룸으로 올라가 문을 쾅 닫았다.방문 닫는 소리에 집 전체에 울려 퍼졌고 연재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셔츠 소매의 단추를 풀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며칠 안 본 사이 성질만 나빠졌네.”유월영은 침대에 몸을 웅크린 채 누웠다. 오늘은 잠을 못 잘 거라고 생각했지만 눕자마자 졸음이 쏟아졌다. 요 며칠 그녀는 자주 졸리는 듯했고 시간이 한 시를 가리키자 그녀는 곧 잠에 빠졌다. 눈을 감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언가 그녀의 허리를 뒤에서 껴안는 느낌이 들었으며 익숙한 손길이 그녀의 몸에 닿았다. 유월영은 피곤함이 순식간에 사라져서 팔꿈치를 구부리고 힘껏 뒤로 몸을 뺐다. “이거 놔요!”연재준은 그녀가 반응을 예상하고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받쳐줬다.“부인이 쉬면 남편도 쉬어야지.”그는 목소리를 조금 더 낮춰 얘기했다.“그렇게 막 부딪치면 어떡해. 거기 허리인데 삐끗하기라도 하면 남은 인생 어떡하려고 그래?”
유월영은 한참 동안 멍해 있었다.그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닫고 얼굴이 달아올라 손에 잡히는 대로 그에게 던졌다. “연재준!”연재준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날아오는 곽티슈에 어깨를 맞았다. 휴지통은 그대로 그의 발아래에 떨어졌고 그는 허리 숙여 곽티슈를 주웠다. 그리고 그대로 휴지 한 장을 뽑아 입가를 닦으며 그녀에게로 향하자 가정부가 외투를 가져왔다. 그가 유월영의 머리카락을 매만지자 그녀는 이내 뿌리쳤다. 하지만 연재준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자기야, 집에서 얌전히 날 기다리고 있어.”유월영이 그를 노려보았다.연재준은 돌아서서 문을 나섰다.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자 유월영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 못 하고 남은 물건까지 부수기 시작했다.그녀는 평소에 절대 이렇게 물건을 내던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가슴에 쌓인 울화를 이렇게 분풀이하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가정부가 주춤주춤 와서 치우려 하자 그녀가 소리 질렀다.“치우지 마세요!”가정부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만 했다. 유월영은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보이는 족족 아래층으로 내던졌고 멀쩡하던 신주시 제일 가는 별장이 하루아침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연재준은 아무 말 없이 모든 걸 감시카메라로 보고 있었다. 유월영은 항상 이성적이었으며 그녀의 이런 모습은 새롭게만 느껴졌다.그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어렸다. 차에 탄 연재준은 하정은에게 분부했다.“가정부들의 음식 솜씨 별로니까, 서덕궁에 연락해서 시간 맞춰 요리해서 가져오라고 해. 요리사도 몇 명 보내고.”하정은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차는 해운그룹에 들어섰고 노현재도 막 도착했다.그의 타고 온건 고급 모터사이클이었다. 이 브랜드에 이 사양은 전 세계에 몇 대 없었으며 값은 신주시의 아파트 한 채의 값과 맞먹었다. 블랙과 골드로 된 차체는 매끄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으며 마치 야생적인 치타처럼 연재준의 롤스로이스 컬리넌 옆에 서도 꿀리지 않았다.노현재는 헬멧을 벗고 머리를 털었다. 밝은 갈색 머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