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사연과 오세정은 사이가 아주 좋았다.친한 친구가 납치당했다는 말에 허사연은 걱정이 됐다.“서준 씨, 저도 같이 가요!”“좋아요.”진서준도 허사연 혼자 전라도에 있는 게 걱정되었다.조천무는 실력이 뛰어났기에 한씨 일가가 그를 막지 못할 수도 있었다.“진서준 씨,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어쩌면 제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요!”권해철이 말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마수였기에 권해철이라면 그에 대해 잘 알지도 몰랐다.곧 진서준 일행은 함께 차를 타고 인천으로 향했다....진서준이 예상한 대로 조천무 쪽에는 문제가 생겼다.게다가 문제가 하나가 아니었다.우선은 성씨 일가 쪽에 문제가 생겼다.진서준이 성규영과 성재흥 두 사람을 죽여서 동성의 다른 가문들이 호시탐탐 성씨 일가를 노리다가 몰래 손을 쓴 것이다.소식을 접한 성진형은 곧바로 동성으로 돌아갔다.그다음엔 인천 쪽에 마수가 나타났다. 오윤산이 조천무에게 도움을 요청했기에 반드시 그곳에 사람을 보내야 했다.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틀 뒤 점심으로 시간을 변경한 것이다.이번에 조천무는 인천에 직접 가지 않고 엄재욱이라는 종사를 보냈다.엄재욱도 실력이 강했다. 그는 인의방 82위의 대성 종사였다.국안부에 들어갈 수 있는 종사는 대부분이 천의방, 지의방, 인의방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었다.엄재욱은 진서준 일행보다 한발 빨리 조씨 일가에 도착했다.“엄재욱 씨!”엄재욱을 본 오윤산은 곧바로 그를 맞이했다.“다른 쓸데없는 말은 하실 필요 없습니다. 범인의 위치는 찾았습니까?”엄재욱은 이 일을 마친 뒤 바로 전라도로 돌아가야 했다.“아뇨...”오윤산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러면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 찾으세요!”엄재욱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전 이곳에 이틀만 있을 겁니다. 이틀 뒤면 돌아갈 겁니다.”조천무는 그에게 이틀 뒤 그 마수를 죽일 수 있든 없든 꼭 돌아와야 한다고 명령했다.국안부에서 호국사들끼리는 급이 나뉘지 않지만 내부적으로는 실력이 강한 자가
장철결에는 선인지로라는 사람을 찾는 술법이 있었다.찾고 싶은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손톱 같은 것들이 있으면 이 술법을 통해 대체적인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진서준이 왜 이 방식으로 진서라를 찾지 않았냐면, 집을 전부 뒤져봐도 진서라의 머리카락을 한 올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진서라는 집에서 청소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그래서 별장 전체를 항상 먼지 한 톨 없이 깨끗이 청소했다.그리고 진서준은 변태가 아니었기에 여동생의 모발을 모으는 취미가 없었다.유정과 고한영의 경우, 서울로 돌아가서 두 사람의 모발을 찾을 시간이 없었다.진서준은 어젯밤 늦은 시간에 조천무의 전화를 받았고 조천무는 아침 8시까지 조씨 일가로 오라고 했다. 그러니 서울까지 갔다가 다시 그곳에 갈 시간이 없었다.그리고 자칫하다가는 유정과 고한영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기에 그런 모험을 할 수가 없었다.더욱 중요한 건 선인지로가 대량의 영기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었다. 보운산으로 가기 전, 진서준은 선인지로를 시전하기에는 영기가 부족했다.그렇지 않으면 허사연과 진서라가 납치당했을 때 썼을 것이다.“있을 거예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 찾아볼게요!”오윤산은 곧바로 집안 도우미들에게 오세정의 방으로 가서 그녀의 모발을 찾으라고 했다.거실로 들어간 진서준 일행은 식사를 하고 있는 엄재욱을 발견했다.“진 선생님, 소개해 드릴게요. 이쪽은 엄재욱 종사님입니다. 저희 남주성의 호국사예요!”상대가 호국사라는 말에 진서준 일행의 눈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다.그들은 적이었다.엄재욱도 진서준을 알아보았다. 조천무가 그들에게 진서준의 자료와 사진을 보여줬었기 때문이다.“너구나!”엄재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노여움 가득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오윤산은 얼떨떨했다.“엄재욱 씨, 진 선생님을 아는 겁니까?”“그럼요. 이 자식은 우리 국안부에서 잡으려는 놈이거든요!”엄재욱이 화를 내며 말했다.“뭐라고요? 국안부가 잡으려는 사람이라고요? 잘못 안 거 아닙니까? 진 선생님이
진서준은 머리카락을 받은 뒤 오윤산에게 말했다.“붓과 노란 종이, 주사를 준비하세요.”“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오윤산은 왜냐고 묻지도 않고 곧바로 사람을 시켜 준비하게 했다.진서준이 요구한 건 아주 흔한 것이라 곧 준비가 되었다.엄재욱은 그 모습을 보고 차갑게 웃었다.“설마 이딴 것들로 오윤산 씨 손녀를 찾으려는 거야?”진서준은 그를 힐끗 보았다.“도움 되지 않는 사람은 입 닥치고 빠지지 그래?”“너!”엄재욱은 진서준의 말에 화가 울컥 치밀어올랐다.진서준은 노란 종이 위에 진지하게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붓을 놀릴 때마다 진서준의 몸에서 많은 영기가 소모되었다.진서준은 선인지로 부적을 무려 연달아 세 장이나 그렸다. 동시에 그의 안색은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허사연은 급하게 타월을 가져와서 진서준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주었다.“흥!”진서준의 모습을 본 엄재욱은 작은 목소리로 같잖다는 듯이 말했다.“연기하긴. 난 이런 것으로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걸 믿지 않아!”선인지로 부적 세 장을 그린 뒤 진서준이 말했다.“차를 준비하세요.”“차는 이미 밖에 준비되어 있습니다.”오윤산이 말했다.오씨 일가의 별장 밖에는 비싼 차 십여 대가 있었다.곧 진서준은 부적을 들고 별장 밖으로 나갔고 다른 이들은 진서준의 뒤를 쫓았다.진서준은 머리카락을 부적 위에 놓은 뒤 입으로 주문을 외웠고 곧 부적을 가리켰다.부적 위의 머리카락이 마치 지남침 속 자침처럼 움직이기 시작했고, 머리카락 아래 부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머리카락이 움직이는 순간, 진서준은 아주 미약한 생명의 기운이 머리카락에서 흘러나오는 걸 느꼈다.그 광경에 권해철 등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입을 떡 벌리고 중얼거렸다.“진 마스터님은 역시 대단하시네요!”권해철은 술법을 아주 오랫동안 배웠지만 이렇게 신기한 술법은 오늘 처음 보았다.이때 머리카락이 움직임을 멈추고 북쪽을 가리켰다. 그것은 1초간 멈춰 있다가 재가 되어 사라졌다.진서준은 곧바로 말했다.“운전해
“진서준 씨, 안에 뭔가 좋지 못한 것이 있는 거 아닐까요?”한제성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더니 작게 물었다.조금 전 바람이 불었을 때, 한제성은 몸에 소름이 돋았다.늦여름이라 아직도 기온이 30도 좌우였는데 말이다. 그러니 이곳에 좋지 못한 것이 있는 것이 없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안이 확실히 이상해요. 여러분들은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어요. 저랑 권해철 씨만 들어가겠습니다.”다른 사람들까지 들어간다면 그들을 지키기 위해 또 신경을 써야 했다.“진서준 씨, 저도 같이 들어가겠습니다!”오윤산은 손녀의 안위가 무척 걱정되었다.진서준은 잠깐 망설이다가 승낙했다.“범인을 만나게 된다면 절대 싸우려고 하지 마세요!”“걱정하지 마세요. 곧바로 진서준 씨께 알리겠습니다!”오윤산은 곧바로 부하들에게 명령해 진서준과 권해철에게 이어폰을 나눠주었다.이 이어폰이 있다면 안으로 들어가서도 계속 연락할 수 있었다.“전 필요 없어요. 전 범인을 만나게 된다면 일격에 그를 죽일 겁니다.”엄재욱은 같잖다는 듯이 말했다.“휴...”오윤산은 한숨을 쉬면서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진서준 일행은 준비를 마친 뒤 곧바로 별장 구역 안으로 들어갔다.그곳은 아주 넓었다. 안에는 총 20여 채가 넘는 별장이 있었고 별장마다 적어도 300평 이상이었다.한때 화려했던 별장 구역이었지만 지금은 잡초가 무성했다.이상한 점은 그곳에 벌레 우는 소리도,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이렇게 황폐한 곳이면 각종 벌레가 살기에 적합한 데 말이다.“별장 구역이 너무 크니까 따로 가죠. 뭔가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면 바로 저한테 알려주세요.”진서준이 엄숙한 표정으로 당부했다.어렵사리 선인지로를 이용해 오세정의 위치를 파악했는데, 혹시라도 범인을 놓친다면 다시 찾기가 아주 어려워질 것이었다.“네, 바로 진 선생님께 알리도록 하겠습니다.”오윤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어젯밤 창격과 싸운 적이 있었기에 그가
오세정은 창격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녀는 창격이 자신을 속이는 거로 생각했다.“하하, 안 믿으면 말고. 여긴 아주 은밀한 곳에 있어. 아가씨 할아버지가 아무리 대단해도 절대 이곳을 찾을 수는 없어.”창격이 차갑게 웃었다.이때 창격의 몸 주변에서 갑자기 음산한 바람이 불었다.오세정은 뭔가가 속살거리는 소리를 들었다.순간 창격의 안색이 달라졌다.“아가씨 할아버지 꽤 실력 있네.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말이야.”오세정은 그 말을 듣자 곧바로 흥분해서 소리쳤다.“할아버지, 할아버지...”그러나 창격이 곧바로 술법으로 오세정의 입을 막았다.“입 닥치고 얌전히 여기 누워있어. 잠시 뒤에 아가씨 할아버지를 여기로 잡아 와서 아가씨에게 그가 죽는 모습을 보여줄 테니까.”말을 마친 뒤 창격은 곧바로 몸을 돌려 별장을 떠났다.그 음산한 바람은 창격이 기르는 귀신이었다.별장 구역 전체에 이런 귀신이 서른 마리가 넘었다.당시 별장 구역의 부자들이 갑자기 죽은 이유가 바로 창격 때문이었다.그는 자기가 기른 귀신들에게 부자들을 죽이라고 했고 그 뒤 별장 구역 전체를 점령했다.그렇게 한 이유는 단지 수련할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곧장 별장 구역의 가장 안쪽으로 향하던 엄재욱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그는 앞에서 발소리가 들리는 걸 발견했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분명히 들렸다.곧 창격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창격은 엄재욱을 바라보면서 차갑게 말했다.“그 노인이 너에게 도움을 요청한 거야?”“쓸데없는 말은 그만 해. 당신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겠어. 나와 같이 가서 자백하고 벌을 받든지, 아니면 여기서 죽든지.”엄재욱은 창격을 바라보면서 거만하게 말했다.그는 대성 종사였고 인의방 82위인 고수였다. 그러니 빼빼 마른 창격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창격은 그 말을 듣더니 같잖다는 듯이 웃었다.“너 따위 별 볼 일 없는 종사가 감히 내가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기를 바라는 거야?”별 볼 일 없는 종사라니?엄재욱의 눈동자에서 분노의 불길이 불타올랐
큰 체격의 악귀 네 마리를 본 순간 엄재욱의 안색이 달라졌다.그는 악귀에게서 종사와 비슷한 수준의 실력을 느꼈다.“미리 얘기해줄게. 이 네 악귀는 내가 99명을 희생해서 키운 거야. 모두 종사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지.”창격은 차가운 미소를 띤 채로 엄재욱을 바라보았다. 그는 엄재욱을 죽은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우습네. 내가 보통 종사인 줄 알아? 난 호국사야. 인의방 82위인 대성 종사라고!”엄재욱이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인의방? 82위?”창격은 더욱더 크게 웃었다. 그의 웃음에서 경멸이 느껴졌다.“난 반년 전 인의방 80위인 종사를 죽였어. 그 자식 이름이 기병민이었던 것 같은데.”창격이 웃으며 말했다.엄재욱의 안색이 달라졌다. 인의방 80위인 종사의 이름은 확실히 기병민이었다.하지만 반년 전 그는 갑자기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다.당시 기병민의 지인들은 그가 어딘가에서 폐관 수련을 하는 줄 알았다.그런데 창격의 손에 죽었을 줄이야!“어때? 이제야 두려워?”창격이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내 악귀들의 식량이 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 대부분의 놈들은 내 악귀들의 식량이 될 자격도 없으니 말이야!”“입 다물어. 오늘 호국사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겠어!”엄재욱은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체내의 강기를 전부 두 주먹에 집중했다.그의 두 주먹에서 파란색 불꽃이 타올랐다. 온도가 너무 높아서 공간이 일그러진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죽여버려!”창격이 명령을 내리자 네 악귀는 동시에 엄재욱을 향해 달려들었다.악귀는 소름 돋는 소리를 냈다. 손톱으로 유리를 긁는 듯한 소리라서 들으면 섬뜩했다.엄재욱은 꼼짝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네 악귀만 보였다.곧 엄재욱은 악귀들과 싸우기 시작했다.악귀에게서 느껴지는 살기는 아주 짙었고, 엄재욱의 강기로 그것을 완벽히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겨우 몇 초 사이, 엄재욱의 몸에 상처가 7, 8개 정도 생겼다.엄재욱은 어느샌가 피투성이가 되었다.겁이 난 그는 지금 당장 도망치
엄재욱은 오윤산의 곁으로 달려가서 그에게 말했다.“저 네 악귀는 종사 수준이에요. 우리끼리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에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해요!”“권해철 씨와 진서준 씨에게 얘기해 뒀습니다. 곧 올 겁니다.”오윤산이 말했다.“잠시 쉬세요. 제가 저 네 악귀를 상대하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오윤산은 발을 굴렀고, 시멘트 바닥 위에 발자국이 남았다.오윤산은 마치 총알처럼 네 악귀에게로 돌진했다.악귀는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덤벼드는 오윤산을 보더니 같잖다는 눈빛을 해 보였다.퍽!오윤산은 한 악귀와 싸우기 시작했다. 오윤산의 강기가 악귀의 발톱에 부딪혔다. 그러나 악귀는 멀쩡했고 반대로 오윤산은 주먹이 따끔거렸다. 그의 주먹에 둘린 강기가 부서질 것 같았다.그 광경에 오윤산은 큰 충격을 받았다.종사의 강기는 총알도 막을 수 있었으나 이 악귀 앞에서는 한없이 약했다.이때 다른 한 악귀가 오윤산의 옆으로 날아갔다.예리한 발톱이 오윤산의 허리로 날아들었고, 공기 중에서 파열음이 들렸다.오윤산의 안색이 달라졌다. 그는 곧바로 다른 손으로 허리를 향해 날아드는 발톱을 막으려고 했다.다음 순간, 오윤산은 줄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면서 피를 토했다.퍽...오윤산은 바닥에 세게 부딪혔다. 오장육부가 전부 망가진 기분이 들었다.엄재욱은 그 광경을 본 뒤 두 사람만으로는 악귀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직감했다.“일단 가죠. 제가 다른 호국사에게 도움을 청할게요.”엄재욱이 말했다.“안 돼요. 제가 떠난다면 제 손녀는 죽을 거예요!”오윤산은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아내며 바닥에서 일어났다.어렵사리 범인을 찾았는데 이렇게 도망친다면 앞으로 찾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엄재욱은 차갑게 코웃음 쳤다.“도망치지 않는다면 여기서 죽을 테데요? 그러면 난 먼저 갈게요!”말을 마친 뒤 엄재욱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도망치려고? 그게 가능할 것 같아?”창격은 두 사람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두 종사를 자신이 기르는 네 악귀에게 먹인다면 악귀는
권해철과 창격은 아는 사이였다. 20여 년 전 두 사람은 싸운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때 권해철은 너무 약해서 창격을 이길 수가 없었다.그리고 창격 또한 권해철을 죽일 수가 없었다.그 뒤로 20여 년 동안 두 사람은 또 몇 번이나 싸웠었지만 매번 무승부로 끝났다.이번에 권해철은 인천의 일을 알고 나서 창격이 한 짓일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짐작했다.예전에 진서준이 서울에서 만났었던 악귀도 창격이 키우는 악귀 중 하나였다.그러나 그의 제자 은태산이 그 악귀를 가져갔고, 진서준이 그 악귀를 해치웠었다.“권해철, 지금 당장 꺼진다면 나와 오랫동안 알고 지낸 네 체면을 봐서 이번 한 번은 살려주겠어.”창격이 차갑게 말했다.이때 창격은 조금 전처럼 여유롭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아직 음살 마스터가 되지 못한 그로서는 권해철과 실력이 엇비슷했기 때문이다.만약 권해철이 나선다면 그의 계획이 실패할 수도 있었다.“나보고 꺼지라고? 너한테 그만한 실력이 있어?”권해철은 같잖다는 듯이 말했다.권해철이 수련한 술법은 귀신 같은 것들에 아주 치명적이었다. 무인을 상대할 때보다 그 공격력이 두 배는 더 강했다.그래서 권해철처럼 술법으로 마수를 상대한다면 조금 더 수월했다.게다가 이틀 전 권해철은 진서준이 준 단약을 복용해서 실력이 대폭으로 향상되었다.그 단약이 아니었더라면 조금 전 부적 하나로 일격에 악귀를 소멸시키지 못했을 것이다.“난 너한테 기회를 줬어. 그 기회를 차버린 건 너야.”창격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저 자식을 죽여버려!”명령이 떨어지자 세 악귀가 아주 빠른 속도로 권해철을 향해 달려들었다.순간 음산한 바람이 불면서 근처에 있던 귀신들이 울부짖기 시작했다.그 소리를 들은 오윤산은 서둘러 귀를 막았다.그 소리는 신경 착란을 일으킬 수 있는 소리였다.권해철은 저번에 보운산에서 자신의 보물들을 전부 잃었었다. 그래서 지금은 부적으로만 세 악귀를 상대해야 했다.만약 그에게 천사검이 있었더라면 세 악귀를 아주 손쉽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