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거의 도착할 때쯤, 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연락했다.허사연은 이때 남경석이 조희선의 다리를 치료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전화가 울리자 그녀는 서둘러 확인했다.진서준에게서 걸려 온 전화인 걸 확인한 허사연은 흥분한 얼굴로 병실을 나섰다.“진서준 씨, 산에서는 신호가 없다면서요?”“우리 이미 돌아왔어요. 이제 곧 서울에 도착할 거예요.”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네? 이렇게 빨리 돌아왔다고요?”허사연은 무척 경악했다.진서준은 화령문에 열흘이나 보름 동안 있어야 한다고 했다.그런데 바로 다음 날에 돌아올 줄이야.“네, 조금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영골을 얻어서 바로 돌아가고 있어요.”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그러면 됐어요. 참, 좋은 소식 하나 얘기해줄게요.”허사연이 비밀스럽게 말했다.“무슨 좋은 소식이요?”“제가 모셔 온 성약당의 장로가 아줌마의 다리를 치료해 줄 거예요.”허사연이 흥분해서 말했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자 안색이 확 바뀌었다.조희선의 두 다리를 완벽히 치료하려면 반드시 영골이 필요했다.치료하는 사람이 도를 닦는 사람이고 실력이 구창욱 만큼 강한 게 아니라면, 절대 아무것도 없이 조희선의 다리를 치료할 수는 없었다.“허사연 씨, 그 장로에게 영골이 있나요?”진서준의 목소리가 엄숙해졌다.“아뇨, 영골이 없으면 치료가 불가능한가요?”허사연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영골이 뭘 의미하는지 전혀 몰랐다.“그건 아니지만 그러려면 그가 제 사부님만큼 실력이 있어야 해요.”진서준이 말했다.“그 성약당의 장로는 아마도 제 사부님만큼 강하지는 못할 거예요.”허사연은 진서준의 말을 듣자 조금 불만스러웠다.그녀는 성약당의 남경석을 데려오기 위해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진서준은 그녀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남경석의 실력을 의심하고 있었다.“진서준 씨, 지금 절 탓하는 거예요?”허사연은 울컥해서 화를 내며 말했다.“아뇨, 전 그냥 혹시라도 뜻밖의 일이 생길까 봐...”진서준은 자신의 어조와 말하는 방
허사연은 진서준의 의술 수준을 잘 알고 있었다.진서준조차 영골이 있어야만 조희선의 다리를 치료할 수 있었다.남경석은 어두운 얼굴로 은침을 전부 뽑았고, 이때 조희선은 거의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중간의 다리뼈가 전부 부러졌고 경맥도 전부 망가졌어요. 이걸 치료하려면 대가가 너무 커요.”남경석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면서 허사연을 바라보았다.“그쪽에서 준 200억으로는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를 수가 없어요.”허사연은 그 말을 듣자 당황했다.“뭐가 필요하시나요? 저희 허씨 가문 일이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치료가 반쯤 진행됐는데 이제 와서 남경석을 보내줄 수는 없었다.사실 남경석은 일부러 이러는 것이었다.그는 조희선의 다리를 봤을 때 자신이 치료할 수 없다는 걸 바로 눈치챘다.그가 이렇게 하는 건 허씨 일가의 돈을 뜯기 위해서였다.남경석은 성약당의 장로이기 때문에, 허씨 일가에서 그가 사기를 쳤다는 걸 알아도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5년 된 천산설련 하나요. 시중에서 충분히 살 수 있는 겁니다. 겨우 400억이죠.”허사연은 생각지도 않고 승낙했다.“네, 제가 구해오겠습니다.”400억을 더 달라고 해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남경석이 조희선의 다리를 치료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그러나 옆에 있던 허성태는 남경석이 너무 탐욕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치료비용이 600억이라니, 욕심이 과했다.그러나 허성태는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그들로서는 성약당을 건드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좋아요. 우선 돈부터 이체하시면 치료를 계속하겠습니다.”돈을 주지 않으면 치료를 하지 않을 거란 뜻이었다.남경석의 까탈스러운 태도에 허사연은 곧바로 사람을 시켜 그의 통장에 입금했다.600억이 입금된 걸 확인한 남경석은 만족스러운지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비록 조희선의 다리를 치료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치료한 척해야 뒤탈이 없을 것 같았다.남경석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 상자 안에는 금색의 얇은 침이 13개 들어있었다.동시에 그는
진서준은 분노가 극에 달했다.가족은 그의 역린이었다. 지금 남경석으로 인해 그의 어머니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는데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그가 허사연이 말했던 성약당 장로라고 해도 상관없었다.장로면 뭐 어떠한가?설령 신이라고 해도 감히 그의 어머니를 다치게 한다면 죽일 것이다.“진서준 씨, 드디어 왔네요!”진서준을 보자 허사연은 순간 마음이 안정되었다.동시에 그녀는 진서준에게 조금 미안했다.진서라는 아직도 행방을 알 수 없었고 조희선은 남경석 때문에 이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당신은 누구죠? 사부님께서 치료를 하고 있으니 지금 당장 나가시죠.”남경석의 한 제자가 진서준을 막아서면서 화가 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진서준은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그 제자의 목을 졸라 방 밖으로 던졌다.“시끄럽긴!”그리고 빠르게 남경석의 앞으로 걸어갔다.진서준의 속도에 남경석은 놀라서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당신이 누구든 상관없어. 지금 당장 떠나는 게 좋을 거야.”남경석은 소매를 홱 털면서 진서준에게 종사로서의 위엄을 보여주려고 했다.종사의 위엄 앞에서도 진서준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조희선의 괴로워하는 표정에 진서준은 마음이 찢기는 듯했다.“당신이 우리 어머니를 해친 거야?”진서준은 한없이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남경석을 바라보았다.남경석의 안색이 달라졌다. 그는 종사의 위엄이 진서준에게 아무 소용도 없을 줄은 몰랐다.“우리 어머니가 멀쩡하길 기도해. 그렇지 않으면 성약당의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버릴 거니까.”진서준은 짓씹듯이 말을 내뱉었다.그는 엄청난 힘으로 남경석의 얼굴을 때렸다.남경석의 강기는 진서준의 따귀를 버티지 못했다. 남경석은 비명을 지르더니 피를 토하면서 날아가 뒤쪽의 벽에 부딪혔다.따귀 한 방에 남경석의 치아가 전부 빠졌다.그리고 진동 때문인지 조희선은 피를 한 모금 토했다.“어머닌...”진서준은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했다. 그는 곧바로 모든 신경을 조희선에게
허사연은 남경석을 데려오기 위해 하루 종일 서 있었다.그 마음에 진서준은 매우 감동했다.조금 전에 전화로 싸운 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진서준은 허사연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이때 얼굴에 피가 묻은 남경석이 바닥에서 일어나 험악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젠장, 감히 날 때려? 내가 누군지 알아? 난 성약당의 장로야!”남경석은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면서 미친 노인처럼 굴었다곧 남경석은 허사연 부녀를 바라보면서 호되게 말했다.“이 사람더러 치료하게 할 생각이라면 무슨 문제가 생겨도 날 찾지는 말아요.”허성태가 차갑게 웃었다.남경석은 꽤 똑똑했다. 자신이 조희선을 구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이 기회를 틈타 진서준에게 책임을 돌렸다.그리고 600억을 챙겼다.조금 전 진서준에게 한 방 맞은 건 지금 당장 돌려줄 필요가 없었다.성약당으로 돌아가서 얘기한다면 남주성의 다른 가문에서 진서준을 혼내겠다고 나서줄 것이다.남경석은 떠나려 했고, 진서준은 이대로 그를 보낼 생각이 없었다.그로 인해 어머니가 괴로워했으니 말이다.“내가 언제 가라고 했지?”진서준은 고개를 돌려 차가운 얼굴로 남경석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서 분노가 불타올랐다.남경석은 흠칫했다.“왜? 날 죽이기라도 하게?”“우리 어머니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해.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줄게.”진서준이 차갑게 말했다.“뭐라고?”남경석은 경악했다.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기까지 했다.무려 성약당의 장로인 그가 진서준의 어머니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니.이때 권해철이 진서준의 곁으로 다가가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진 마스터님, 저 사람은 성약당 장로입니다.”“그런데요?”진서준은 싸늘한 얼굴로 차갑게 되물었다.“그...”권해철은 진서준이 큰 사고를 칠까 봐 두려워 서둘러 설명했다.“화진에서 성약당의 지위는 아주 높습니다. 화진의 유명한 가문들도 그들을 쉽게 건드리지 못합니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차갑게 웃었다.“다른 사람
감히 성약당 장로 앞에서 그런 얘기를 하다니.미친 건지 아니면 머리에 문제가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사부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지금 당장 이 거만한 자식을 혼쭐내겠습니다.”남경석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조금 전 그는 기습적으로 진서준에게 따귀를 맞아 꽤 심하게 다쳤다.그래서 남경석은 진서준이 아마도 반보 종사 급의 천재일 거라고 생각했다.남경석이 두 제자가 함께 손을 쓰게 놔둔 건 진서준의 실력을 시험해 보고 동시에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남경석의 두 제자는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체내의 내력이 움직이고 있었다.쿵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훌쩍 뛰어올라 마치 호랑이처럼 진서준을 습격했다.다른 한 명도 손을 썼다. 그의 얼굴에 경멸 어린 미소가 걸렸다.그들에게 있어 진서준 같은 사람을 처리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제 주제도 모르는 놈들. 오늘 너희는 대가를 톡톡히 치를 거야.”두 사람은 아주 악랄했다. 모든 공격이 목숨을 빼앗으려는 치명적인 공격이었다.허사연은 상황을 보자 겁을 먹고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 두 손을 덜덜 떨었다. 그녀는 더욱 자책했다.권해철은 상황을 지켜보다가 성약당 제자들을 공격하려 했다.진서준이 그를 말리면서 차갑게 말했다.“이놈들은 제가 직접 처리할 겁니다.”어머니를 괴롭게 했으니 진서준은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직접 성약당 사람들을 혼쭐낼 생각이었다.권해철은 곧바로 물러나면서 연민 어린 눈빛으로 두 명의 내력 무인을 바라보았다.진서준이 직접 나선다면 큰일이었다.두 사람과 가까워질 때쯤, 갑자기 강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무릎 꿇어!”진서준은 차가운 얼굴로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그는 눈동자가 번뜩이면서 체내의 영기가 움직였다. 곧 엄청난 위력의 힘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두 명의 손을 쓰려던 무인은 순간 엄청난 압박을 느껴서 두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석 무릎을 꿇었다.두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
“감히 나한테 무릎을 꿇으라고 해?”남경석은 성약당의 장로로 신분이 높았다.그런데 진서준에게 맞았을 뿐만 아니라 무릎까지 꿇게 된다면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닌단 말인가?성약당에서의 그의 체면이 나락으로 떨어질 게 분명했다.그러나 남경석은 전력을 다해도 진서준의 손바닥에 저항할 수 없었다.남경석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가득했다.눈앞의 소년은 그보다 몇 배는 더 강했고 심지어 대성 종사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이럴 수가!이 세상에 어떻게 대성 종사 경지에 다다른 20대 청년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물론 경성의 몇몇 가문에서는 그럴 수도 있을지 몰랐다.설마 눈앞의 청년이 바로 경성 대가문의 사람인 걸까?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남경석의 두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그의 얼굴은 한없이 어두웠다.성약당의 여섯 번째 장로이자 종사급 강자인 그는 화진의 강자들 중에서도 강한 존재였다.그러나 그는 지금 한 청년의 앞에 무릎 꿇고 있었다.도저히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려!”싸늘한 음성이 방 안에서 울려 퍼졌다. 순간 이곳이 극지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진서준의 손바닥에서 번쩍이는 자줏빛 번개는 무시무시했다.남경석은 어쩔 수 없이 진서준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자칫했다가는 정말로 진서준에게 죽임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남경석은 울부짖었고, 피가 그의 입가에서 흘러내렸다.그는 매우 두려웠다. 지금은 성약당으로 진서준에게 겁을 줄 수밖에 없었다.진서준은 이미 손을 썼기에 성약당이든 뭐든 당연히 두렵지 않았다.“꿇지 않겠다고? 그러면 죽어야지!”진서준이 손을 쓰려는 데 허사연이 서둘러 외쳤다.“서준 씨, 저 사람을 죽이면 안 돼요. 그의 뒤에는 성약당이 있어요. 그를 죽이게 되면 성약당 전체가 서준 씨를 원수로 삼을 거예요.”“성약당에는 종사가 6명 있는데 모두 무도 종사예요. 심지어 그들의 당주는 전설 속의 선천 대종사라서 실력이 무시무시하다고 해요.”옆에 있던
병실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그렇게 몇 분이 흐른 뒤에야 사람들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진서준은 영골을 들고 어머니의 곁으로 걸어가서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사연 씨, 다들 나가봐요. 전 어머니의 다리를 치료할 거예요.”진서준은 허사연을 바라보았다.“네, 그러면 우리는 치료에 방해되지 않게 먼저 나가볼게요.”허사연 일행은 곧바로 병실을 나서며 방문을 닫았다.진서준은 영골을 들고 장청의 힘을 썼다. 50cm 정도 되는 영골이 순식간에 10cm 정도로 축소되었다.이 영골에는 유성이 지나가며 남긴 듯한 광택이 있었고 그 작은 광택은 영골 안을 유영하고 있었다.진서준은 본인의 영기를 이용해 움직이는 광택을 고정한 뒤 그것을 어머니의 다리 옆으로 가져갔다.영골이 영골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영골의 크기가 자유롭게 변화할 수 있고 그중의 경맥과 골수가 환자의 것과 똑같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마치 그 뼈가 환자에게서 가져온 뼈인 것처럼 말이다.이때 조희선은 깊이 잠든 상태였다. 진서준은 어머니의 망가진 뼈를 빼고 그곳에 대신 영골을 이어 붙였다.장철결의 작용 아래 영골은 곧 조희선의 다리와 합체되었다.모든 일을 마친 뒤 진서준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그러나 진서준은 힘들기는커녕 오히려 무척 기뻤다.어머니가 드디어 다른 사람들의 무시당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처럼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조희선의 몸에 꽂은 7개의 은침을 전부 빼낸 뒤 진서준은 그녀를 깨우는 대신 그녀가 계속 잘 수 있게 놔뒀다.그동안 조희선은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진서준이 병실에서 나오자 허사연과 허윤진이 곧바로 그를 맞이했다.“진서준 씨, 아줌마는 어때요?”허사연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우리 어머니는 괜찮으세요. 지금 쉬는 중이라서 잠시 뒤에 식사할 때쯤 부르려고요.”진서준이 가벼운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놓였다.“다행이네요.”허사연은 매우 기뻤다.그녀가 이틀 동안 많은 고생을 했던 이유가 조희선이 평범한 사
허사연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그녀에게 진서라는 친동생과 다름없었다.그래서 진서라가 사라진 지금 그녀도 매우 슬펐다.권해철이 앞으로 나서며 진서준에게 말했다.“진서준 씨, 전라도 조씨 일가가 한 짓이 아닐까요?”어제 그들은 서울을 떠날 때 조씨 일가에서 보낸 사람과 마주쳤었다.그런데 진서라가 지금 갑자기 사라진 것을 보면 조재찬이 사람을 시켜 진서라를 납치한 걸지도 몰랐다.진서준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쿵!엄청난 살기가 진서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별장 전체를 휩쌌다.“조재찬, 죽으려고!”허사연이 말했다.“서준 씨, 조급해 하지 말아요. 아직은 조씨 일가가 그랬다는 증거가 없잖아요. 어쩌면 다른 사람이 한 짓일지도 몰라요.”“다른 사람이요? 어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 감히 내 동생을 납치한 거죠?”진서준은 미간을 찡그렸다.그러다 갑자기 전에 허사연을 납치했었던 놈들이 떠올랐다.황씨 일가, 유지수 말이다.황씨 일가와 조씨 일가 모두 전라도 3대 가문 중 하나였다.만약 진서준이 그중 한 가문과 갈등이 생긴다면 다른 가문에서는 틀림없이 기뻐할 것이다.그러니 유지수가 한 짓일지도 몰랐다. 진서준과 조씨 일가가 싸우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그렇게 되면 황씨 일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덕을 볼 수 있을 것이다.“지금 당장 전라도로 가야겠어요.”“늦은 시간인데 지금 간다고 해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조씨 일가에서 함정을 파놓았을지도 몰라요.”허사연이 서둘러 그를 말렸다.“그리고 아줌마도 잠시 뒤에 깨어날 텐데 서준 씨가 보이지 않으면 당황해하실 거예요.”어머니를 떠올린 진서준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권해철 씨, 내일 저랑 같이 전라도로 가죠.”권해철은 그곳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그와 함께 가면 편할 것이다.“좋아요!”권해철은 고개를 끄덕였다.조희선이 깨어났을 때 진서준은 그녀의 옆에 있었다.“어머니!”진서준이 그녀를 작게 불렀다.“서준아, 돌아온 거야? 난 내
김평안이라니, 아무도 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곧 이 이름이 대한민국 무도계에 널리 퍼질 것은 분명했다.남주성 진 마스터가 등장한 데 이어 이제는 검선 김평안이 나타나다니, 대한민국 무도계는 요즘 정말 떠오르는 샛별이 끊이지 않는 것 같았다.진서준과 김평안이 사실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현장 사람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혹시 김평안과 진 마스터가 만나게 된다면, 누가 이길까?”누군가가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두 사람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대단한 능력이 있잖아. 진 마스터는 강기와 술법에 능하고 김평안은 검도에 능하니 실제로 붙으면 막상막하일 거야.”한 종사가 잠시 생각한 후 천천히 답했다.“근데 이상하지 않나? 벌써 석 달이 넘었는데 진 마스터는 대한민국에서 증발한 것처럼 진 마스터에 대한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잖아.”“설마 김평안이 바로 진 마스터가 아닐까?”누군가 농담 삼아 말했다.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그 예상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진 마스터도 검을 쓴 적은 있지만 검도에 대한 이해는 그리 깊지 않다고 들었어.”“김평안의 검술은 섬나라 작은 검성을 순식간에 제압할 정도인데, 이는 대한민국 검존과 같은 수준일 거야. 진 마스터가 아무리 천재라 해도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잖아.”주변 사람들의 찬사에도 진서준은 무심하게 지나쳤다.진서준이 조용히 돌아오자 엘리사가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김평안 씨, 대회에서 우승한 걸 축하해요.”진서준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벌레 같은 놈 하나 베었을 뿐인데, 축하할 일도 아니죠.”“김평안 씨, 고시후는 벌레로 불릴 만큼 무능한 무인이 아닙니다. 고시후는 섬나라 작은 검성이자 고필두 다음 가는 실력자예요.”호창정는 흥분한 얼굴로 고시후에 관해 설명했다.김평안이 고시후를 단 한 칼에 쓰러뜨렸으니 고필두도 마찬가지로 이길 수 있다는 말 아닌가?현천진군이 도대체 어디서 이 막강한 실력을 갖춘 무인을 데려온 건
이번 교류 대회는 결승전에서도 여전히 3판 2선승제였다.아까 고필두가 기권하면서 섬나라는 이미 한 판을 졌다.이제 진서준이 고시후를 이기기만 하면 대한민국 대표팀이 이번 교류 대회의 우승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그러나 이번 대회의 우승이 그렇게 쉽게 얻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고시후는 고필두만큼 명성이 높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섬나라의 작은 검성이라 불리는 막강한 존재였다.고시후의 실력은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호칭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다.“이번엔 누가 대신 죽으러 나왔나?”자신감에 차 있는 고시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진서준의 눈빛은 아까보다 더 차가웠다.“죽을 사람은 바로 너야. 고필두가 체력 부족으로 네 목숨을 잠시 연장해줘서 고맙게 생각해. 고필두의 체력이 저 정도로 고갈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넌 이미 고필두의 검 아래 시체로 되었을 거니까.”고시후가 쌀쌀하게 웃으며 받아쳤다.진서준은 고시후를 무시한 채 사회자를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시작해도 되나요?”“시작하세요!”사회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서준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사실 진서준은 고필두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가 기권했기 때문에 이번엔 이 작은 검성이 고필두를 대신해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당연히 진서준이 질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진서준의 번개처럼 빠른 속도를 보고 모두 멍해졌다.“저 사람... 속도가 장난이 아닌데?”여러 겹의 잔상이 링 위에 차례로 나타났는데 이 속도는 아무리 봐도 육급 대종사와 맞먹는 수준이었다.심지어 조금 전의 해리스보다도 더 빠른 속도였다.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벌려진 입으로 감탄하기도 전에 찬란하고 푸른 검광이 링 위에 나타났다.하늘조차도 그 푸른 검광의 참격에 의해 두 갈래로 나뉜 듯했다.이 참격은 오직 검의 수준에 맞먹을 뿐, 검세급에는 이르지 않았다.참격의 강도를 낮춘 이유도 간단했다.눈앞의 작은 검성으로는 진서준이 검세까지 사용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진서준이 검의 대성 수준을 담은 검광을 휘두르는 걸 직접 목격
진서준이 고필두의 검을 쉽게 막아내자 관중들은 그제야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대충 이해했다.“고필두가 항복한 게 당연하지. 아까 해리스랑 싸우며 힘을 다 소진했나 보지.”“아마 검을 내려치기 직전에 체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미리 항복한 거겠지.”“어휴, 이기긴 했지만 불명예스러운 승리잖아. 진 거나 다름없네.”다들 고필두가 항복한 이유가 아까 해리스와의 대결에서 체력이 과도하게 소진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네 나약함이 네 목숨을 구했군.”진서준은 고필두의 요도를 집었던 두 손가락을 거두고 냉랭하게 말했다.고필두는 속에서 밀물처럼 몰려오는 두려움 때문에 더 이상 진서준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왜냐하면 고필두가 항복을 외쳤을 때조차 비겁한 그는 속도를 줄이지도 않았고 힘도 덜어내지 않았다.그런데 고필두의 요도는 진서준의 두 손가락에 꽉 잡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했다.고필두는 요도를 거두고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허겁지겁 링을 내려갔다.“쓸모없는 놈, 사람 잘못 봤어!”고필두가 도망치듯 내려가는 모습을 본 황현호는 화가 나 이마에 핏대가 섰다.고필두가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무너질 줄은 황현호가 상상할 수 없었다.“다행이네요. 저 섬나라 남자가 항복해서 정말 다행이네요.”조민영은 진서준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옆에 있던 조기강이 조민영을 보며 따졌다.“민영아, 김평안이 자기 실력에 대해 너한테 뭐라고 말한 적 있니?”조민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다만 장릉 마을에서 내가 사수에게 잡혔을 때, 그 악당을 공격 세 번 안에 제압했던 적이 있었어요.”사수를 단 세 번의 공격 만에 죽였고 또한 검세마저 대성이라니, 진서준의 실력은 조기강보다 한참 위일 가능성이 높았다.하지만 왜 여태껏 이렇게 대단한 사람에 관해 아무런 정보도 들은 적이 없는지 조기강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 김평안이라는 자가 봉호전에 참가했다면... 검존의 봉호가 바
사회자가 아직 시작을 외치기도 전에 고필두는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고필두의 속도는 이미 음속을 넘어섰고 손에 든 요도는 한 줄기 검광이 되어 진서준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이 장면을 본 모두의 마음이 순간 덜컹 내려앉았다.진서준의 머리가 날아가게 생겼다는 게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유일한 생각이었다. 물론 조기강도 이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이런 말 들어본 적 있나?”그 날카롭고 눈부신 검광을 마주하고도 진서준의 얼굴엔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고 오히려 시선은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고 평온했다.“대한민국 무인 앞에서 칼을 휘두르겠다니, 어이가 없구나. 우리 조상들이 검을 다룰 때, 너희 섬나라 사람들은 나무 위에서 원숭이처럼 바나나나 먹었겠지. 오늘 내가 너희 섬나라 사람들에게 진정한 검술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마.”진서준의 목소리가 체육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이 녀석은 고필두의 심기를 완전히 건드릴 생각인 것 같았다.몇몇 관중들은 이미 눈을 감았다. 다들 곧 피범벅이 되어 피비린내를 풍길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필두의 눈에는 잔인한 살기가 맺혔고 시선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처음에는 한 방에 진서준의 목숨을 끝내려 했지만 지금 고필두의 생각이 180도로 변했다.고필두는 이 오만하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 무인을 극심한 고통 속에서 허덕이다 죽게 하고 싶었다.고필두는 검의 방향을 바꿔 진서준의 왼팔을 겨냥했다.요도가 진서준의 몸에 닿기 직전, 진서준의 오른손이 앞으로 뻗었다.순간,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청색 검광이 공중에 번쩍였다.검광은 비록 얇았으나 그 순간 모든 이들의 마음에 거대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짧은 순간 눈 부신 빛을 보이던 검광은 단순한 검광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천둥과도 같았다.아무런 방비도 없었던 고필두의 마음에 강렬한 위기감이 솟구쳤다.진서준의 오른손에는 눈부신 푸른빛을 발산하는 7척 길이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그 장검은 아무런 장식도 없었고 겉모습도 평범해 보였다.하지만 다음 순간, 청색 검신에서
아까 고필두가 보여준 실력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했다.조기강이 고필두를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진서준이 고필두를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삼촌, 아저씨랑 저 섬나라 검객 중 누가 이길 것 같아요?”조민영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물었다.“김평안은 신농에 들어가지 않았어? 어떻게 다시 나왔지?”갑자기 등장한 진서준을 보고 조기강도 순간 멍해졌다.당시 조기강은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전부 정리하고 진서준을 신농으로 들여보냈다.그런데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진서준이 다시 신농에서 바깥세상에 나온 것이다.“삼촌, 김 아저씨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나중에 물어봐요. 지금은 둘 중 누가 이길지 말해줘요.”조민영은 조기강의 팔을 잡고 흔들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조르기 시작했다.“흔들지 마라. 네가 아무리 흔들어도 결과는 변하지 않아.”조기강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고필두는 지금 새 상대와 대결할 힘이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김평안을 이기기에는 충분해.”아까 고필두의 광자 참격은 조기강마저도 깜짝 놀라게 했다.조기강이 직접 저 링에 올라 대결한다면 고필두를 이길 수는 있겠지만 매우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하지만 지금 링 위에 있는 김평안은 아예 승산이 없었다.조기강이 진서준에게는 승산이 없다고 하자 조민영은 초조해져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삼촌, 이따가 김 아저씨를 좀 도와줄 수 없어요?”“안 돼. 이건 국제 대회야. 내가 개입하면 우리 팀이 이기더라도 우리 대한민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거야. 그때는 윗사람들도 우리 조씨 가문을 탓하게 될 거고.”조기강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고 이내 속으로 대한민국 교류팀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형편없다는 걸 알았으면 자기가 직접 나섰을 거라며 한탄했다.엘리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속으로 진서준을 걱정하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은 김평안의 등장에 당혹해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저 중년 남자는 누구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몰라. 저 남자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어.”“쯧
이 순간, 하늘과 땅 사이 모든 흐름이 한순간에 멈춘 듯했다.피가 졸졸 흐르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눈을 휘둥그레 뜬 엘리사는 눈앞에서 벌어진 황당한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엘리사의 친위대 대장이 한낱 섬나라 검객에게 이렇게 처참하게 패하다니, 너무나 경악스러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눈이 휘둥그레졌고 말문이 막혔다.육급 대종사인 해리스도 고필두의 광자 참격 앞에서는 이토록 무력했다니, 이 고필두의 실력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짐작할 수 없었다.지금 상황으로 봐선 칠급 이상의 대종사만이 고필두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호창정은 하얗게 질린 창백한 얼굴을 돌려 진서준에게 말했다.“김평안 씨, 차라리 이 대결을 포기합시다. 산을 남겨두면 언젠가 땔감을 얻을 기회는 또 있어요.”해리스도 이렇게 깔끔하게 당했는데 사급 대종사 경지에 불과한 김평안은 상대가 되기엔 턱도 없이 부족했다.대표팀 사람들은 김평안이 링에 올라가 봤자 고필두의 참격을 한 방도 견뎌내기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하지만 진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걱정 마세요, 난 내 한계를 잘 알고 있어요.”고필두의 실력이 확실히 대단한 건 맞지만 지금 그는 온몸의 힘을 거의 다 고갈한 상태였다.아까 열세 번의 검광은 고필두 체내의 모든 강기를 거의 다 소모했다.지금 진서준이 이런 상태의 고필두를 이기는 건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였다.“서둘러 주세요. 해리스 씨를 구해야죠.”엘리사도 정신을 차리고 즉시 자기 황실 친위대에게 해리스를 구하라고 지시했다.고필두는 해리스를 죽이진 않았다. 해리스가 용란 황실의 친위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고필두가 진짜 해리스를 죽이기라도 했다면 용란의 적대감을 살 게 분명했다.누가 섬나라의 진정한 적인지 고필두는 구분할 줄 알았다.하지만 고필두는 자기가 이 필살기를 보이면 대한민국 대표팀이 기권할 것 같아서 내심 두려웠다.이런 밥맛 떨어지는 상황은 무조건 피하고 싶
“해리스도 만만치 않네. 강기를 사용해 고필두 요검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걸 보니 해리스도 대단한 실력이야.”“누가 이기든지 간에 다음 경기에서 우리가 질 게 뻔하구나.”누군가 한숨을 내쉬며 신세를 한탄했다.해리스와 고필두가 이렇게 강력한 모습을 보이자 아무도 자국 팀이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주로 대한민국 대표팀 안에는 눈에 익은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대표팀 팀원들의 실력을 보니 솔직히 대종사 경지에도 못 미칠 것 같았다.대종사도 아닌 무인이 링에 올라가 저 두 사람과 대결하면 죽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엘리사는 해리스가 전혀 다치지 않은 것을 보자 드디어 안심하며 긴장하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긴장이 풀린 엘리사는 진서준을 바라보며 약간 자랑스럽게 말했다.“김평안 씨, 해리스 씨가 무조건 진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해리스 씨가 지금 이 섬나라 검객과 절대 밀리지 않는 상태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잖아요.”진서준은 그 말에 평온하게 대꾸했다.“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는 곧 알게 될 겁니다.”곧 알게 된다니, 엘리사는 진서준의 말을 믿지 않았다.엘리사의 눈에 지금 기세가 절정 상태인 해리스가 절대 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쿵!엄청난 소리와 함께 고필두와 해리스가 각각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어느새 단단한 강철로 만든 링 위에는 검에 베인 자국이 수백 개 생겼다.이 검에 베인 자국들은 전부 고필두의 검기가 스쳐 지나간 후 생긴 것이었다.“애들 소꿉장난은 여기까지야.”말을 마친 고필두는 링에서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그 후 링 위에는 고필두의 모습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났고 마치 수많은 고필두가 링 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이 장면을 본 해리스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자기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해리스의 근육이 갑자기 급격히 부풀어 오르며 매끈한 정장을 단번에 찢어버렸다.한 줄기 강기가 해리스의 상반신을 감싸고 있었고 햇빛 아래서 해리스는 금빛으로 보호받고 있는 듯했다.“고필두가 광자 참격을 쓸 것 같군.”
모든 사람은 숨을 죽이고 링 위에 서 있는 해리스와 고필두를 주시하고 있었다. 자칫 한눈을 팔다가는 두 사람의 대결 중 하이라이트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김평안 씨, 해리스가 정말 고필두의 상대가 될 수 없는 건가요?”호창정은 여전히 믿기 힘들어했다.해리스는 육급 대종사였고 반면에 고필두는 사급 대종사에 불과했다.검수는 강기를 수련한 무인보다 강하긴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두 단계 대종사라는 큰 격차가 있었다.이 두 단계의 차이는 그렇게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냥 조용히 지켜보면 알게 될 겁니다.”진서준은 추가 설명 없이 해리스와 고필두를 평온하게 바라보았다.사회자가 시작 신호를 알리자 두 사람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선공이 강하다는 말은 고수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고수 사이의 대결에서 일반적으로 먼저 움직이는 자가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었고 일단 빈틈이 보이면 패배할 확률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관중들이 슬슬 지루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날카로운 검 소리가 울려 퍼졌다.주위의 몇몇 검을 지닌 무인들은 자기 검이 방금 그 검 소리에 맞춰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고필두가 쥐고 있는 장검은 매미 날개처럼 얇았고 차갑고 섬뜩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고필두는 단순히 검을 들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오싹하게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풍겼다.“삼촌, 삼촌이 이 섬나라 사람과 대결한다면 누구 검술이 더 강할까요?”관중석에서 조민영이 궁금한 눈빛으로 조기강을 바라보며 물었다.조태희와 함께 동북으로 돌아가야 했던 조민영은 조기강에게 국제 무도 교류 대회를 보러 가자고 발을 동동 구르며 부탁했다.조태희는 결국 조민영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대신 대회가 끝난 후 조기강과 함께 동북으로 돌아가기로 약속했다.“고필두 실력은 내 아래야.”조기강은 고필두를 바라보며 천천히 한마디를 내뱉었다.조기강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조민영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왜냐하면
“대한민국, 섬나라, 그리고 용란의 대표팀 팀장들은 올라와서 마지막 추첨을 진행해 주세요.”나머지 세 팀 중 두 팀이 대결하니 나머지 한 팀은 부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할 판이었다.호창정은 마음속으로 공석에 걸리기를 조용히 기도했다.동시에 해리스가 고필두를 이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야 진서준이 살아남을 희망이 있었다.추첨을 받은 순간, 호창정의 손은 바르르 떨렸고 심장이 두근거렸다.“음? 또 부전승이네.”3번을 뽑았을 때, 호창정은 기쁨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섬나라의 그 팔자수염 남자가 호창정의 3번 추첨을 보고 비웃었다.“너희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런 더러운 짓밖에 못 하나 보구나. 하지만 괜찮아, 어차피 우리는 결승에서 만날 거니까. 너희가 결승전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팔자수염의 말에 호창정은 얼굴이 화끈해졌고 목이 바짝 말랐다.“당신들 대한민국 운이 참 좋군요.”해리스도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한판 대결도 안 치르고 그대로 결승에 진출하다니, 하늘이 선택한 운명의 인물이거나, 아니면 암암리에 어떤 뒷거래가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어찌 됐든 해리스의 목표는 달성됐다.섬나라의 이 검존과 아무런 걱정도 없이 정식으로 대결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경성에는 10명 이상의 용란 황실 경호원이 지금 주둔하고 있다.해리스가 심하게 다치더라도 엘리사를 혈수사의 손에서 지킬 수 있었다.“김평안 씨, 또 부전승이에요, 대박이에요.”호창정이 자리로 돌아와 격앙된 어조로 외쳤다.진서준은 담담하게 미소 지을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해리스가 대결을 위해 링에 올라가려 할 때 진서준은 몸을 돌려 한마디 했다.“투항해야 할 때는 깔끔하게 투항해. 괜히 버티다가 목숨 잃는 짓 하지 마.”해리스는 그 말에 화를 내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건 무슨 말이야? 내가 고필두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똑똑히 잘 들어, 나 해리스 사전엔 투항이라는 두 글자는 존재하지 않아. 우리 용란 황실 경호대 명예에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