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이상 수련한 맹수는 영성이 있어 낮은 수준의 수결을 배울 수 있었다.누렁이는 보운산에서 백 년을 지냈고 용혈과를 먹은 적도 있기에 영성도, 깨닫는 능력도 다른 영수들에 비해 훨씬 뛰어났다.진서준이 누렁이에게 가르쳐준 첫 번째 수결은 바로 자신의 몸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공법이었다.이 공법을 통해 누렁이는 자신의 몸집을 조절할 수 있었다. 누렁이는 2미터 크기에서 50cm 크기로 변했다.하지만 무게는 변하지 않는다. 몸집은 작아져도 허윤진은 누렁이를 안을 수 없었다.밤새워 연습한 덕에 누렁이는 드디어 수결을 터득했다.그래서 2m 크기에서 50cm 정도로 줄어들었다.“이렇게 보니까 정말 강아지 같네.”진서준은 누렁이를 보면서 크게 웃으며 말했다.누렁이는 조금 원망스러운 눈길을 했다. 마치 강아지 같은 걸 어떻게 자기랑 비교할 수 있냐는 듯 말이다.진서준은 잠기운이 몰려와서 몸을 돌려 자러 갔다....고양시.유건우, 유지수의 남동생.그는 유씨 가문 회사에서 한 팀의 팀장을 맡고 있었다.그러나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여자 직원들을 성추행하기 일쑤였다.“우리 누나는?”유지수의 별장 문 앞에 도착한 유건우는 경호원 두 명이 문 앞을 지키고 있자 곧바로 물었다.“사모님은 안 계십니다.”“누나가 여기 없는데 너희들은 뭘 지키고 있는 거야?”유건우가 물었다.“안에 아주 중요한 사람이 있거든요. 사모님께서 잘 감시하라고 하셨습니다.”“누군데? 남자야? 아니면 여자야?”“여자입니다.”여자라는 말에 유건우는 곧바로 흥미가 생겼다.“내가 들어가 볼게.”“죄송하지만 사모님께서 절대 그 여자에게 손을 대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한 경호원이 말했다.“알겠어, 알겠어...”유건우는 그들의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난 사모님한테 연락할 테니까 넌 유건우 씨를 지켜봐.”낮에 유지수는 두 사람에게 말했었다.혹시라도 진서라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들의 가족까지 전부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다급한 나머지 진서라는 침대 옆 스탠드 조명을 들어 윤건우의 머리를 힘껏 쳤다.순간 유건우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유건우는 서둘러 손으로 머리를 만져봤고 피가 흐르는 걸 보고는 버럭 화를 냈다.“이 빌어먹을 X이 감히 내 머리를 쳐? 오늘 내가 단단히 혼내줄 거야!”유건우는 눈이 벌게져서는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이 마치 화가 난 들개 같았다.그는 진서라가 들고 있던 스탠드 조명을 빼앗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곧이어 그는 미친 듯이 진서라의 옷을 찢기 시작했다.“도련님, 안 됩니다!”경호원이 서둘러 그를 막으려 했다.“넌 꺼져!”유건우는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질렀고 경호원의 배를 걷어찼다.경호원은 맞고 싶지 않아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유건우, 내 말을 귓등으로 듣네!”단단히 화가 난 목소리가 침실 밖에서 들려왔다.그 목소리에 유건우는 움찔하면서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유지수는 단단히 화가 난 얼굴로 걸어 들어와서 유건우의 뺨을 힘껏 때렸다.“저 두 사람이 절대 이 여자에게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안 한 거야?”유지수는 유건우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누나, 여자 한 명일 뿐인데 뭘 그리 화를 내? 난 누나 친구랑도 잔 적이 있는데 말이야!”유건우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2년 전, 유건우는 장혜윤이 예쁘장하게 생긴 것 같자 나쁜 마음을 품고 그녀에게 약을 먹여서 적절치 않은 행위를 했다.그 일이 있는 뒤로 장혜윤은 신고하겠다고 난리를 치는 대신에 앞으로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그에게 경고했다.유지수도 그 일을 알게 되었지만 별말 하지 않았다.“얘는 장혜연이랑은 달라!”유지수는 화를 내며 말했다.“뭐가 다르다는 거야? 장혜윤보다 조금 더 예쁘기만 하네, 뭐.”유건우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뭐 대단한 집안 딸이라도 돼?”유지수는 유건우를 노려보면서 버럭 화를 냈다.“너 당장 꺼져!”“쳇, 알겠어. 간다, 가. 대신에 4억 줘.”유건우는 손을 뻗으며 유지수에게 돈을 달라고 했다.유건우가 4억을
“아까는 내가 헛소리한 거야. 신경 쓰지 마, 누나.”어떤 말들은 진짜 다급할 때만 하게 된다.유지수는 유건우가 헛소리를 했다는 걸 믿지 않았다. 그녀는 부모님이 자신에게 유독 냉담히 군다는 걸 은근히 느끼고 있었다.원래 유지수는 부모님이 딸보다 아들을 더 좋아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 이유가 아닌 듯했다.“난 사실을 알고 싶을 뿐이야. 얘기하지 않는다면 사람을 시켜 네 다리를 부러뜨릴 줄 알아.”유지수는 유건우를 협박했다.유건우는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조금만 위협해도 자기 여자 친구까지 가져다 바칠 사람이었다.역시나 유지수가 조금 위협하자 유건우은 겁을 먹고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때리지 마, 때리지 마. 얘기할게!”유건우가 말했다.“사실 누나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 친딸이 아니야. 누나를 데려왔을 때 우리 어머니는 날 임신하기도 전이었어.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이를 갖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그러던 어느 날 밤 퇴근하던 길에 어머니가 길가에 버려졌던 누나를 발견한 거야. 그래서 누나를 데리고 왔지. 그런데 그러고 나서 반년도 안 돼 어머니는 날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되었어. 하지만 그때는 이미 누나에게 정이 붙은 상태라서 차마 누나를 버리지 못했어.”유지수는 그 말을 듣자 안색이 아주 어두워졌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누나, 이건 아버지랑 어머니가 나한테 알려준 거야.”유건우가 말했다.“믿기지 않는다면 직접 물어보든가.”유지수는 유건우의 말을 믿었다.유건우의 머리로는 이런 이야기를 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제야 이 사실을 알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들이 줄곧 자신을 속여왔다는 생각에 유지수는 괴로웠다.“네 말을 믿어.”유지수는 차갑게 말했다.“그러면 됐어. 비록 누나가 내 친누나는 아니지만 난 줄곧 누나를 내 친누나처럼 여겼어. 아버지랑 어머니도 그렇고.”유건우는 유지수의 말투에 날이 서 있자 서둘러 말했다.현재 유씨 일가를 먹여 살리는
아침 식사 때 허윤진은 놀랐다.“서준 씨, 누렁이 왜 갑자기 작아졌어요? 서준 씨가 한 거예요?”“네. 하지만 체중은 변하지 않았으니 안으면 안 돼요. 누렁이가 다른 사람 위로 올라가게 해서도 안 되고요.”진서준이 귀띔했다.누렁이의 체중이라면 테이블이나 소파 위에 섰다가는 집 안 가구들이 전부 다 망가질 것이었다.사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발 한 번 휘둘렀다가 인명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네? 체중은 그대로라고요?”허윤진은 조금 실망했다.하지만 누렁이를 데리고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만족스러웠다.허윤진은 앞으로 외출할 때 누렁이를 데리고 다닐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누군가 그녀를 언짢게 한다면 누렁이에게 상대방을 물라고 할 생각이었다.식사를 마친 뒤 진서준과 노정명은 떠날 준비를 했다.“사문의 금지 구역이 위험하지는 않겠죠?”허윤진은 긴장한 얼굴로 노정명을 바라보며 물었다.“위험합니다. 하지만 진 마스터에게 있어서 금지 구역의 진법 같은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죠.”노정명은 웃으며 말했다.진서준은 호산대진까지 단칼에 파괴한 사람이니 금지 구역의 진법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허윤진은 여전히 진서준이 걱정되어 그의 손을 꼭 잡았다.“서준 씨, 꼭 안전히 돌아와야 해요. 다친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요!”“알겠어요.”진서준은 웃었다.허윤진은 남을 걱정하는 방식이 조금 남달랐다. 그러나 그녀의 성격과 꽤 잘 어울렸다.곧 진서준과 노정명은 사문 서쪽의 금지 구역으로 출발했다.가는 길에 노정명은 진서준에게 금지 구역의 함정과 진법에 대해 얘기했다.“앞의 함정과 진법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구창욱 씨가 설치한 그 진법이 문제죠.”노정명은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구창욱 씨 말을 들어 보니 오직 그의 제자만이 그 진법을 풀 수 있다고 해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 사부님과 수련할 때 된통 당한 적이 많았어요. 이 진법도 파괴하려면 아마 꽤 골치 아프겠네요.”진서준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두 사
진서준은 한 손으로 검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수인을 맺으며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금지 구역 안에는 함정들이 가득했다. 독가스도 있고, 깊은 구덩이도 있고, 커다란 바위가 굴러가는 함정도 있었다.이런 함정들은 진서준은 단칼에 해결했다. 그의 속도는 전혀 영향받지 않았다.곧 진서준은 가장 깊은 곳에 도착했다.그곳은 농구장만 한 크기의 땅이었다.공지 중간에는 바위로 만들어진 단상이 있었고 그 위에는 파란색을 내뿜는 뼈가 있었다.진서준의 눈이 빛났다.“영골을 드디어 찾았어!”이 영골이 있다면 어머니의 다리를 치료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는 앞으로 평범한 사람들처럼 걸어 다닐 수 있었다.진서준은 너무 흥분한 나머지 노정명의 당부를 잊었다.공지 안에 들어서는 순간 진법이 발동되었다.진서준의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발밑도, 눈앞도 전부 밤하늘이었다.그리고 그 밤하늘은 졸졸 흐르는 실개천 같은 은빛으로 가득했다.진서준이 움직이기도 전에 그의 머리 위로 엄청난 크기의 운석이 떨어졌다.진서준은 상황을 보고 서둘러 장청의 힘을 사용하여 검을 휘둘렀다.퍽...운석이 산산이 조각나며 바닥에 흩어졌다.그러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진서준이 숨을 고르기도 전에 또 운석 몇 개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하늘, 둘, 셋... 마지막에는 하늘 위 별보다 더 많았다.진서준의 안색이 달라졌다.“어르신이 날 놀리려고 일부러 그런 거네!”진서준은 화가 나서 이가 갈렸다. 그러나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었다. 그는 반드시 진법의 진안을 찾아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진법 속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진법 안의 운석들은 보운산의 영기로 만들어진 것으로 무게가 엄청났다.거기에 맞는다면 아마 종사의 사력을 다한 공격과 맞먹을 것이다.비록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수가 너무도 많았다.진서준은 피하는 와중에 진안을 찾았다.“보자, 어르신이 어디에 진안을 만들기를 제일 좋아했는지...”진서준은 자신이 처음 있었던 곳을 보고 눈을 빛냈다.당시
조희선의 두 다리가 부러진 사실을 진서준의 사부는 알고 있었다.그는 그 일을 알게 된 뒤로 분통이 터졌다.그러나 구창욱은 조희선을 위해 복수하는 대신 조희선의 두 다리를 치료할 수 있는 영골을 화령문으로 가져왔다.그리고 그 뒤로 진서준을 더욱 엄격하고 가혹하게 가르쳤다.구창욱은 진서준이 본인의 실력으로 영골을 얻어 조희선의 두 다리를 치료해 주길 바랐다.그리고 그곳에 절대 자만하지 말라는 교훈 또한 남겨두었다.서울 또는 남주성은 화진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땅이 드넓은 화진에는 수억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천재도 널리고 널렸다.진서준은 아직 갈 길이 멀었다....동굴 밖, 노정명은 대지가 흔들리자 안색이 달라졌다.“설마 안에서 뭔가 뜻밖의 일이 벌어진 건가? 설마 진서준 씨가...”진서준의 실력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금지 구역 안의 진법은 구창욱이 직접 설치한 것이었다.진서준이 구창욱의 제자라고 하더라도 뜻밖의 사고가 일어날 수는 있었다.노정명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진서준이 동굴 안에서 나왔다.“진서준 씨, 괜찮으세요?”노정명은 진서준을 보자 서둘러 그에게 다가가서 걱정스레 물었다.“괜찮아요.”진서준은 손을 저었다.“영골은 얻었습니까?”노정명이 물었다.“네, 여기요.”진서준은 자신의 왼손을 들어 노정명에게 보여줬다.진서준의 저장 반지를 본 뒤 노정명은 큰 충격을 받았다.저장 반지는 보기 드문 보물로 수련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원하는 것이었고 돈이 있다고 해도 구하기 어려운 것이었다.저장 반지를 하나 만드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웠다.저장 반지 같은 보물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기 때문이다.이곳저곳 다 가본 노정명도 겨우 한 명 알고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강남 최고의 장인 경우현이었다.“진서준 씨, 이 저장 반지 혹시 경우현 씨가 만든 겁니까?”노정명이 물었다.“아뇨, 우연히 얻은 겁니다.”진서준이 물었다.“경우현 씨는 누군가요?”노
“왜 갑자기 달리는 거야?”허윤진은 깜짝 놀라며 서둘러 누렁이를 뒤따랐다.문가로 가자 마침 진서준과 부딪혔다.허윤진이 넘어질 뻔했을 때 갑자기 힘 있는 손이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잡았다.“왜 이렇게 빨리 달리는 거예요?”’진서준이 훈계했다.허윤진은 얼굴을 붉히면서 진서준을 밀어내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뭔 상관이에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고개를 돌려 화령문 안쪽으로 돌아갔다.이내 누렁이가 낑낑댔다.진서준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허윤진은 조금 전까지 그를 몹시 걱정하다가 그를 보자마자 오히려 고개를 홱 돌리며 떠났다.“누렁아, 너... 난 네 입을 찢어버릴 수도 있어!”허윤진은 진서준이 누렁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번뜩 떠올랐다.조금 전 누렁이가 낑낑댄 것은 아마도 비밀을 얘기한 것일 테다.그녀가 진서준을 걱정하던 걸 진서준 본인에게 전부 얘기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허윤진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허윤진은 누렁이를 뒤쫓으며 달렸고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영골은 이미 얻었으니 더는 신세 지지 않겠습니다. 저희는 잠시 뒤에 하산할 겁니다.”진서준이 노정명에게 말했다.“좋아요. 잠시 뒤에 함께 하산하시죠.”노정명이 말했다.“함께 하산하자고요? 화령문에 계시지 않을 겁니까?”진서준이 당황하며 물었다.“제자들도 없는데 여기 있어 봤자 아무 의미 없죠.”노정명이 한숨을 쉬었다.“어젯밤 경문이와 다른 애들과도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다 하산해서 우리 화령문의 제자가 될 법한 사람을 찾을 겁니다. 그리고 1년 뒤 다시 화령문으로 돌아올 생각입니다.”노정명의 계획을 들은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화령문에는 장로 몇 명만 남았기에 더 이상 이곳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었다.보운산을 떠나 속세로 가서 제자들을 많이 받는 편이 나았다.“참, 이 공법을 드릴게요.”진서준은 미리 써둔 공법 비결을 꺼냈다.노정명은 눈을 빛냈다. 진서준은 무려 구창욱의 제자가 아닌가?구창욱의 실력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
하산한 뒤 진서준과 노정명 등은 작별했다.“진서준 씨, 앞으로 제가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노정명이 진서준에게 정중하게 말했다.“네, 그런 상황이 생기면 저도 사양하지 않고 부탁드리겠습니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그러고 나서 그들은 작별 인사를 했다.진서준과 권해철 등 네 명과 누렁이는 다시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갔다.노정명 등 사람들은 전국 각지로 흩어져서 제자를 받아 화령문을 다시 일으킬 생각이었다....서울.김연아가 아침 일찍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비서 이지연이 그녀를 찾았다.“사장님, 이건 오전에 사장님 앞으로 도착한 편지 한 통이에요.”김연아는 편지를 받은 뒤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지금 시대에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다니.김연아는 누가 편지를 보낸 건지 궁금했다.편지를 열고 그 위에 적힌 내용을 본 김연아는 곧바로 안색이 달라졌다.[딸아, 그동안 잘 지냈니?]김연아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계속해 편지를 읽었다.[그동안 미안했다. 많이 힘들었지? 난 이제 다시 김씨 일가의 대권을 잡았어. 그리고 안장도 다시 했단다. 하지만 가족들의 반대가 너무 심해서 아직 그녀를 김씨 일가 조상의 무덤으로 데려오지는 못했어. 이틀 뒤에 서울로 가서 널 볼 생각이다. 그때가 되면 나와 같이 강남으로 돌아가자. 이제 널 욕하거나 괴롭힐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글을 쓴 사람은 김형섭이었다.편지를 읽은 김연아의 눈동자에는 분노와 눈물이 가득했다.김연아의 어머니는 강남 김씨 일가의 도우미였는데, 김형섭의 마음에 들었고 그의 맹렬한 공세 끝에 그와 만나게 되었다. 김연아를 낳은 뒤 김형섭은 김연아의 어머니와 결혼하지 않고 강남 최고의 가문인 서씨 일가와 정략결혼을 했다.서씨 일가는 체면 때문에 김씨 일가에 김연아와 그녀의 어머니를 죽이라고 했다.그러나 김형섭은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서씨 일가에서는 종사를 보내 김연아의 어머니를 죽였다.김연아가 살 수 있었던 건 김형섭이 절박하게 애원했었기
이 자식은 정말 밉상인데 의술 하나만은 정말 뛰어난 듯했다.황예은은 오늘 진서준이라는 사람에 대해 또 다른 평가를 내렸다.“미리 말해두지만 난 거기서 널 보호하는데 그렇게 많은 정력을 퍼부을 수 없어.”진서준이 미리 경고했다.진서준은 진서라을 치료할 약재를 손에 넣은 후, 간첩을 찾으러 가야 했다.그때가 되면 유람선 위에 사람이 많아 자연스레 보는 눈도 많을 것이다.누군가 황예은에게 해를 끼치려 하면 그건 큰 문제가 될 것이다.황예은은 이내 얼굴이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단호하게 말했다.“내가 알아서 날 보호할 사람을 구할 거야. 알았어, 그럼 너 먼저 밥 먹어. 나중에 약 바르러 올게.”진서준은 방을 나갔다.허윤진은 진서준이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물었다.“진서준, 오늘 밤만 지나면 우리는 서울로 돌아갈 거지?”“왜 그렇게 급하게 돌아가려 해?”진서준은 허윤진의 말에 의아해했다.황예은이라는 여우를 경계하기 위해서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허윤진이 차마 꺼낼 수 없었다.“너무 늦으면 엄마랑 진서라가 걱정할까 봐 그래.”허윤진이 비장 카드인 두 사람을 꺼냈다.어머니와 진서라를 생각하니 진서준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약재만 받으면 내일 바로 돌아가자.”“이따가 또 저 여자 약 발라줘야 해?”허윤진이 질투와 원한이 섞인 눈빛을 보이자 진서준은 등골이 서늘했다.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서준이 허윤진을 속이고 불륜을 피운 거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응, 근데 이따가 바르는 건 마지막 약이야.”“그럼 다행이네.”허윤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황예은의 몸매는 너무 매력적이라 여성인 허윤진조차도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진서준 같은 정상적인 남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만약 두 사람 사이에 정말 불꽃이라도 튄다면 수습할 수 없을 것 같았다.“약 바를 시간이야. 일단 들어가서 약 바르고 나올게.”진서준이 약을 들고 들어가자 황예은이 이미 죽을 다 먹은 걸 발견했다.“엎드려, 먼저 등부터 발라줄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은 이미 사라졌다.황예은은 낯선 방을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가 죽었나?”그날 밤의 고문은 황예은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지독한 기억이었다.살 속에 깊숙이 박힌 가시가 빠져나갈 때는 피부와 살까지 함께 묻어 나왔다.그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깨어났구나.”익숙한 목소리가 황예은의 귀에 들려왔다.고개를 돌려보니 진서준이 평범한 죽 한 그릇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여기는 어디지?”진서준은 천천히 대답했다.“내 방이야.”이건 사실이지만 그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황예은은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진서준을 빤히 쏘아보았다.지금의 황예은은 병기운이 살짝 있었고 평소의 차갑고 도도한 여왕의 분위기와는 완판 다른 다소 애교가 섞인 느낌이 있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의 반응에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왜? 내가 말실수라도 했나?”“맞긴 한데, 그 말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어.”황예은은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누가 들으면 우리 둘이 이 방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든 줄 알겠어.”“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도 손해 본 건 나야.”진서준이 아무렇지 않게 대응하자 황예은은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너 정말 얼굴 두껍구나.”“난 여자친구가 있어. 내 여자친구가 내가 다른 여자를 내 방으로 데려온 걸 알면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여자친구가 화나서 나랑 헤어지면 내가 손해 본 게 아니야?”진서준이 논리적으로 해명하자 황예은은 더 이상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쓸데없는 말은 그만 집어치워. 일단 밥이나 먹어. 다 먹었으면 약 바를 거야.”진서준은 그릇을 황예은에게 건넸다.황예은이 일어나자 몸에 덮인 이불이 떨어졌다.진서준의 눈앞에 황예은의 완벽한 곡선을 자랑하는 풍만한 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다.진서준은 그 부위를 힐끗 보고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내 잘못 아니야.”진서준이 한마디 보태자 황예은의 얼굴은 눈에 띄게 더 붉어졌다.
황씨 가문은 일시적으로 갈 수 없었다. 그곳은 아직 안전하지 않다.동호 별장에 돌아왔을 때, 올기는 여전히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다.“용존님.”진서준이 돌아오자 올기는 신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그에게 달려갔다.진서준은 진지한 말투로 한마디 던졌다.“문을 잘 지켜.”‘또 그 여자야? 이 여자는 왜 자꾸 다치지? 혹시 액운이 깃든 운명인가?’올기는 호기심을 품고 생각했다.이때는 이미 깊은 밤인지라 허윤진과 서지은은 잠들어 있었다.진서준은 가볍게 발을 옮기면서 될수록 소리를 내지 않고 황예은을 자기 방으로 데려갔다.황예은을 침대에 눕히고 진서준은 큰 물통에 물을 채운 후 가제와 은침을 준비했다.모든 준비가 끝난 후, 진서준은 황예은의 볼품없게 된 옷을 벗겼다.이전의 완벽하고 무결했던 몸과는 달리 지금의 황예은은 차마 직시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황예은의 몸은 온전한 곳 하나 없이 피와 상처로 뒤덮여 있었다.채찍에 맞은 자국, 피부가 갈라진 자국, 심지어 가시가 박혀 있는 곳도 있었다.진서준은 그 상처들을 보며 가슴속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억누르려 했다.허사연 일행이 이런 고문을 당했다면 진서준은 오늘 밤 이후, 박씨 가문이 다시는 명주시에 존재하지 않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을 사랑하지 않았다.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연약한 여성이 이렇게 비인간적인 무자비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면 누구나 분노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진서준이 젖은 수건으로 황예은의 몸에 묻은 피를 닦을 때 의도치 않게 그녀의 상처에 손이 닿았다.가볍게 닿기만 해도 황예은은 몸을 바르르 떨며 움찔했다.진서준이 황예은의 온몸에 묻은 피를 닦는 데만 두 시간이나 걸렸고 수건은 20개 이상 교체해야 했다.가제에 묻은 핏자국은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진서준은 흉터를 없애는 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약재가 부족해 늦은 시간임을 뻔히 알면서도 약왕 이용진에게 전화를 걸었다.“누구야?”밤늦게 전화를 받은 이용진이 기분 나쁘게 말했다.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모든 이들의 몸을 감쌌다.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보이지 않는 커다란 산맥이 자기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숨이 막혀 호흡이 어려웠다.본래 아무런 두려움도 없던 군인들도 이 순간, 총을 잡고 있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진서준은 박신준의 비명이 울려 퍼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손에 든 참선검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불과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박신준의 배 부분의 살과 피부가 모두 떨어져 나가 바닥에 떨어졌고 그 안에 하얀 뼈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몇몇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참지 못하고 허리를 굽혀 구토하기 시작했다.너무나 끔찍하고 잔인한 장면이었다.하문천도 이 광경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몸을 돌렸다.“이건 시작에 불과해.”진서준의 말에 박신준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배가 파여 나갔으나 이건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니, 박신준의 몸과 정신은 이와 같은 무자비한 대우를 감당할 수 없었다.진서준은 발을 들어 박신준에게 발차기를 날려 넘어뜨렸다.바닥에 쓰러진 박신준의 등은 진서준을 향해 있었다.이후, 진서준은 다시 참선검을 꺼내 이전의 행동을 반복했다.3분도 채 되지 않아 박신준의 등 쪽에 있던 척추뼈가 그대로 드러났다.박신준의 팔과 다리에 피가 남아 있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 물건이 수십 년 된 유골일 것이라 오해했을 것이다.박신준의 드러난 뼈 위에 살이 하나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날 죽여줘... 날 얼른 죽여!”박신준이 비참하게 울부짖었다.“진서준, 그 녀석을 죽여.”하문천의 목소리가 천천히 들려왔다.“박씨 가문 사람들은 내가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몰살하겠어.”말이 끝나자 진서준은 손을 들어 공중에서 박신준의 등을 가격했다.딱!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박신준의 등에 있는 뼈는 한 조각씩 부서져 부스러기로 변했다.진서준은 참선검을 들고 지옥에서 나온 악마처럼 냉정하게 자기를 막고 있는 군인들을 바라보았다.“비켜! 비키지 않는 놈은 죽는 길밖에 없을 거야.”살인귀의
“저기 있어...”진서준은 박신준을 바닥에 내던지고 빠르게 건물로 달려갔다.“경비 연대 좀 보내.”박신준은 숨을 두어 번 가까스로 몰아쉬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오늘 박신준은 무슨 일이 있어도 황예은이 떠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하문천 어르신, 보셨죠? 저는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 얌전하게 있는데 저 녀석은 제 체면 따윈 신경도 안 씁니다.”박신준이 이를 악물고 바로 고자질하자 하문천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만둬, 방금 일어난 일은 못 본 걸로 할게.”박신준은 하문천이 자기를 위로하려고 하는 말인 줄 알고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 말은 사실 진서준에게 하는 말이었다.지선도 죽일 수 있는 진서준이 굳이 박신준을 두려워할 리 없다.진서준은 속도를 내서 뛰어가 작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들어가자마자 진서준은 진한 피비린내를 맡고 당황한 표정을 지은 채 빠르게 피비린내가 나는 쪽을 따라갔다.우르릉!갑자기 진서준은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눈앞의 황예은은 도살장에 끌려간 죽은 돼지처럼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황예은의 몸은 피투성이였고 피부가 찢겨나갔으며 살점이 거의 다 떨어져 나갔다.지금 황예은의 몸에는 거의 온전한 상태의 피부가 보이지 않았다.피는 황예은의 발끝에서부터 조금씩 떨어져 바닥에 흘러내리고 있었다.쿵!진서준은 발로 감옥 문을 열어젖히고 참선검을 꺼내 밧줄을 끊어냈다.그러자 황예은이 이내 진서준의 품에 떨어졌다.“이 개자식!”진서준은 황예은의 처참한 몰골을 보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박신준이 여자에게 이렇게 가혹한 대우를 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더군다나 박신준의 아들 박진강은 황예은이 죽인 게 아니었다.참선검도 주인의 살기를 감지한 듯 미세한 빛을 발산했다.진서준은 황예은를 안고 천천히 건물을 빠져나갔고 참선검은 그의 뒤를 떠다녔다.작은 건물 밖에는 수백 명이 총을 장전하고 출구를 겨누고 있었다.진서준이 황예은를 안고 나오는 것을 보자 군인들은 총알을
박신준은 흑석영에서 이미 수년을 지냈고 여기 있는 모든 군인은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그래서 박신준은 하문천에게 공개적으로 대들 수 있었던 것이다.박신준은 하문천이 고작 여자 하나를 위해 장군 계급인 자기와 공개적으로 싸울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내가 손을 대야 정신을 차릴 거야?”하문천이 평온하게 물었다.흑석영에는 군단 하나 정도의 전력이 있었고 설령 지선이라고 해도 정면으로 맞설 수는 없었다.하지만 진서준을 위해서라면 하문천은 기꺼이 흑석영을 상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왜냐하면 그들 호국부가 진서준에게 진 빚이 있기 때문이었다.보해 전투에서 진서준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진서훈과 그 일행은 모두 죽었을 것이다.“하문천 어르신, 그 여자는 도대체 어르신에게 어떤 사람입니까?”박신준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여자라고?”하문천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네가 잡은 건 남자야, 여자야?”박신준도 의외의 질문에 멍하니 서 있다가 답했다.“어르신이 구하려는 사람은 황씨 가문 그 여자가 아니었습니까?”“당연히 아니야.”박신준은 비로소 자기가 하문천의 말을 오해한 사실을 깨달았다.하문천이 구하려는 사람은 진서준이지 황씨 가문의 여자가 아니었다.“너 도대체 몇 명 잡은 거야?”하문천이 냉랭하게 물었다.“두 명입니다. 그중 하나는 남자입니다. 지금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오해가 풀리자 박신준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박신준이 만약 호국장군과 싸운다면 나중에 군부에서 그를 해임할 가능성이 컸다.얼마 지나지 않아 박신준과 하문천은 진서준이 갇혀 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유리창 너머로 방 안에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보자 하문천은 박신준이 진서준에게 형벌을 가했음을 눈치챘다.다행히 진서준은 추위를 타지 않는 편이었고 그렇지 않았다면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얼른 문 열어. 왜 이렇게 멍하니 서 있어?”박신준이 언성을 높여 부하에게 소리쳤다.문이 열리자 뼈까지 파고드는 차가운 공기가 순식간에 쏟아져 나왔다.박신준은 저도 몰래
말을 마친 박신준은 손에 든 긴 채찍을 휘둘러 황예은의 옆구리를 강하게 내리쳤다.팍!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황예은의 옷이 찢어져 나가고 그녀의 하얗고 부드러운 복부에는 깊은 핏자국이 남았다.채찍이 박신준의 손에 돌아올 때 길고 날카로운 가시들에 피와 살이 묻어 있었다.극심한 고통이 밀물처럼 밀려와 황예은은 기절할 뻔했다.그 후, 채찍은 폭우가 쏟아지듯 미친 듯이 황예은에게 내리쳤다.팍팍!결국 황예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뼈저린 고통에 황예은의 몸은 계속해서 경련을 일으켰다.본래 완벽했던 황예은의 몸매는 이 가혹한 형벌을 겪은 후, 살점과 피가 튀어나오고 끔찍한 몰골이 되어 있었다.채찍의 가시에는 피와 살점이 가득했다.자세히 보면 황예은의 뼈마저 아슬하게 드러나 있었다.연약한 여자가 아니라 강철처럼 단련된 군인도 이 고문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옆에서 지켜보던 군인들도 이 광경이 너무 참혹해서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장관님, 이 여자 기절했습니다.”“물을 부어 깨워.”박신준은 황예은이 하나도 불쌍하지 않았다.박진강은 박신준의 유일한 아들이었다.그런데 그 유일한 아들이 죽은 마당에 박신준은 절대 황예은을 가볍게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대한민국 최고 부자의 딸이라 해도 상관없었다.박신준의 아들을 죽인 자는 반드시 그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이내 군인이 커다란 통에 담긴 고추 물을 들고 왔다.이 고추 물을 피범벅이 된 몸에 부으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견딜 수 없었다.촤락!고추 물이 황예은의 몸을 타고 흐르면서 상처투성이인 피부 속으로 스며들었다.극심한 고통에 기절해 있던 황예은은 다시 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자극을 받고 눈을 떴다.지금 황예은의 머릿속은 온통 고통과 아픔으로 꽉 차서 터질 것만 같았다.“그만해, 얼른 날 죽여...”황예은의 목소리를 듣자 박신준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죽고 싶어? 내가 네 말을 들을 것 같아?”팍팍
다른 심문실에서 황예은은 의자에 단단히 결박된 채 앉아 있었다.황예은의 맞은편에는 박신준이 앉아 있었다.박신준이 황예은을 쳐다보는 눈빛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증오가 담겨 있었고 황예은은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두 사람은 분명 처음 만난 사이인데 왜 상대방이 이렇게 자기를 증오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국가를 배반한 반역죄를 저질렀다니, 황예은은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었다.“황예은 씨, 박진강과 당신 사이에 어떤 원한이 있었습니까?”박신준이 다짜고짜 물었다.“네?”황예은은 그제야 왜 자기가 이곳에 끌려왔는지 알 것 같았다.“당신은 그 사람 삼촌인가요?”황예은의 질문에 박신준이 퉁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난 박진강 아버지입니다!”이 말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고 황예은은 순간 얼음처럼 얼어붙었다.박서명이 자기 친형제에게 오쟁이를 지게 되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박신준을 쳐다보는 황예은의 의아한 눈빛을 본 박신준은 한마디 덧붙였다.“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닙니다. 자강은 우리 형이 나한테서 직접 입양한 아들입니다.”황예은은 더 이상 그 이유에 관해 묻지 않았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박신준이라는 장군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였다.흑석영에서 박신준은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황예은과 진서준은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없을 것이다.“당신 아들은 내가 다른 사람을 시켜 때린 거예요.”황예은의 말에 박신준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그냥 때리기만 했습니까?”“그래요.”“근데 우리 아들이 죽었네요!”박신준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죽었다고요?”황예은도 순간 당황했다.진서준이 그 당시에는 꽤 과격하게 행동했지만 박진강을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분명 누군가가 박진강을 죽였을 것이다.“내가 한 일이 아니에요...”황예은은 본래 우리라고 하려다가 곰곰이 생각하고는 혼자서 모든 걸 떠안기로 결심했다.황예은은 진서준에게 진 빚이
“군부에 잡혔어.”진서준의 말에 진서훈의 목소리가 다소 불쾌해졌다.“어느 군구야?”“너희는 어느 군구 소속이야?”진서준이 군관을 보며 물었다.“동부 임해 전구야.”“동부 임해 전구라고? 알았어. 지금 바로 사람을 보낼게.”진서훈은 여전히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전화를 끊은 후, 군관은 진서준의 휴대폰을 강제로 빼앗았다.하지만 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침묵만 지키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군부 사람들과 함께 차를 타고 두 시간 이상 간 후, 진서준 일행은 깊은 산속에 도착했다.마침내 차는 흑석영이라는 군사 기지에 도달했다.흑석영 군사 기지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죄수만이 갇히는 곳이다.일단 들어가면 살아서 나오는 사람은 없다고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했다.차에서 내리자 진서준은 주변 환경을 천천히 살폈다.은은한 달빛과 반짝이는 별이 먹구름에 가려져 있었고 주변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있었다.딱 봐도 곧 폭우가 쏟아질 것 같았다.그때 두 사람이 진서준과 황예은을 향해 다가왔다.“황예은 씨, 제 이름은 박신준입니다. 흑석영 군사 기지 총책임자입니다.”장군 훈장을 단 중년 남자가 차갑게 말했다.박씨 성을 듣자 진서준과 황예은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혹시 이 사람이 박씨 가문의 사람인가?하지만 황예은은 박씨 가문에 군부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왜 날 잡아들였죠?”황예은이 차가운 목소리로 따졌다.황예은은 장군급 군관을 상대하면서도 여전히 일말의 두려움도 없었다.“황예은 씨는 반역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박신준이 차갑게 말하자 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간첩이냐 아니냐는 네가 잘 알지 않아?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까놓고 다 말하는 게 낫지 않겠어?”박신준의 얼굴을 보니 이전에 만났던 박진강과 조금 닮아있는 듯했다.이 사람은 박진강의 삼촌이나 큰아버지일 가능성도 있었다.박신준이 진서준을 힐끗 보더니 이내 부하들에게 지시했다.“이 두 사람 분리해서 구속해.”박신준이 두 사람을 따로 구속하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