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허순재가 진서준과 말다툼을 벌이는 상황에서 허사연이 진서준을 편들지 않을 리 없었다.“작은할아버지, 제 남자 친구 문제는 이제 그만 신경 쓰세요. 그리고 윤진 남자친구 문제도요. 이런 건 작은할아버지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에요.”허순재의 동공이 흔들리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이를 꽉 악물었다.불효녀들이 오늘 여기서 대역죄를 저지르는 판이었다.옆에 있던 변지오는 상황을 대충 이해하고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허 어르신, 보아하니 허씨 가문 젊은이들이 당신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것 같군요. 사실 오늘 밤 우리 범씨 가문 저택에서 여는 연회에 허씨 가문을 초대하려 했는데, 이제 보니 그럴 필요가 없겠네요.”변지오는 허순재가 만류하려는 것도 무시하고 곧장 허씨 가문 저택을 떠났다.허순재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허사연과 허윤진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외쳤다.“너희 둘, 정말 날 화병으로 죽이려는 거야?”진서준의 눈빛은 싸늘했다.“당신이 사연과 조금이라도 혈연이 있었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당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겁니다.”이 말은 허순재에게 겁주려고 위협하는 말이 아니었다.진서준은 이미 조씨 가문에서 조민영이 가문 사이 결혼을 강요당한 일을 듣고 내심 불쾌한 상태였다.그런데 허순재가 이번에는 허씨 가문을 위해 허윤진을 변지오에게 넘기려 하다니, 이건 진서준의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진서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하려는 자는 죽어 마땅했다.그런데 뜻밖에도 허순재는 피식 웃으며 진서준을 비꼬았다.“나도 한때 너처럼 젊고 겁 없던 시절이 있었지. 하지만 곧 너희가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거야. 변씨 가문의 압도적인 실력은 너희처럼 세상 물정을 모르는 자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야.”허순재의 뻔뻔한 모습에 허사연은 역겨워 구역질이 났다.왜 지금까지 이 노인이 온순한 양의 가면을 쓴 늑대라는 걸 몰랐을까?“가자, 서준아. 여기 더 있을 필요 없어.”허사연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너희가 어디
허씨 가문을 떠날 때야 허윤진은 진서준과 함께 온 하얀이를 알아챘다.“진서준, 이 원숭이는 어디서 샀어?”허윤진은 하얀이를 원숭이로 착각하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하얀이는 그 말에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왜 다들 날 원숭이 취급하는 거지? 정말 원숭이처럼 생긴 건가?’진서준은 피식 웃으며 설명했다.“이건 원숭이가 아니라 천산의 괴물 설괴야.”“설괴라고?”허윤진은 생전 처음 듣는 단어에 눈을 반짝였다.“그래. 내가 천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만난 녀석이야. 쉽게 말하면 누렁이 친구라고 생각하면 돼.”진서준의 말에 허윤진은 금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누렁이한테 친구 만들어주려는 거야?”허윤진이 웃으며 물었다.“그런 셈이지. 게다가 하얀이는 누렁이보다 훨씬 강해. 집에서 누렁이랑 함께 있으면 어머니랑 서라 걱정을 덜어도 될 거야.”그때 허사연이 뜬금없이 물었다.“서준아, 그럼 변씨 가문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거야?”아까 허순재가 말했던 것처럼 변지오는 변씨 가문 가주의 장남이었다.게다가 변씨 가문은 동북 지역에서 손꼽히는 명문대가였으니 잘못 건드렸다가는 세 사람이 곤란해질 게 뻔했다.진서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오늘 저녁에 열리는 변씨 가문 연회에 같이 가자.”“응? 근데 우린 초대도 안 받았잖아?”허윤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설마 우리가 강제로 들어가겠다는 건 아니겠지?”“변씨 가문이 우리를 초대하진 않았지만 조씨 가문은 초대받았잖아.”진서준이 조씨 가문을 언급하자 허윤진은 질투 어린 눈길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아차, 깜빡했네. 네 귀여운 애인이 조씨 가문의 금지옥엽이었구나.”진서준은 그 말에 난감한 표정으로 웃었다.“무슨 소리야? 민영이는 내 마음속에서 그냥 여동생 같은 존재야.”조민영은 진서준의 마음속에서 아무런 연애 감정도 없는 단순한 가족 같은 존재였다.조민영은 진서라처럼 진서준이 보호해 주고 싶은 대상일 뿐이었다.“흥, 너희 남자들 속은 뻔히 보인다고.”허윤진은
“민영아, 이제 심씨 가문 도련님과 결혼하지 않아도 돼. 오늘 연회에 참석하는 것도 심씨 가문과 변씨 가문 앞에서 우리 조씨 가문 미래는 네가 짊어질 필요가 없다고 선언하기 위해서 가는 거야.”“네?”조민영은 그 말에 그대로 얼어붙었다.이전에 조민영이 심씨 가문 도련님과 결혼해야 할지 망설이던 그때, 조태희가 얼마나 입이 아프게 자기를 설득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 조민영이 병으로 쓰러지자마자 아버지가 이렇게 태도를 180도로 바꿀 줄은 몰랐다.조민영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의아한 눈빛으로 조태희를 바라봤다.“아빠, 저한테 장난치는 거 아니죠?”“당연히 아니지. 아빠가 이제 결혼 안 해도 된다고 했으면 정말 안 해도 되는 거야.”“그래도...”조민영은 그 말에 오히려 더 초조해졌다.조민영은 이 사회의 더러운 풍파 속에서도 순진무구함을 유지해 온 사람이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민영이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순진한 바보는 아니었다.조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혼인이란 특별한 관계로 손을 잡지 않으면 심씨 가문이 변씨 가문과 동맹을 맺을 게 뻔했다.그렇게 되면 조씨 가문은 동북 지역에서 떠나든가 아니면 완전히 사라지는 길만 남을 것이다.“민영아, 사실 아빠가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우리 조씨 가문에 귀인이 찾아왔기 때문이야.”조태희가 웃으며 설명했다.“귀인이라고요? 어떤 귀인이죠?”조민영은 여전히 의문투성이였다.“이건 내가 너한테 묻고 싶은 말인데?”조태희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너 대체 언제부터 진 마스터랑 친구가 된 거야?”이 질문을 들은 조민영은 어안이 벙벙했다.진 마스터라니, 조민영이 아는 사람 중에 진씨 성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아빠,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 진씨 성을 가진 사람은 모르는데요?”조민영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되물었다.“그럴 리가 있겠어? 네 병을 고쳐준 사람이 바로 진 마스터야.”조태희는 딸이 부끄러워서 그러는 줄 알고 웃으며 말했다.“민영아, 너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남자친구를 사
조민영은 심씨 가문에 시집가기 전에 꼭 다시 한번 김평안과 만나고 싶었다.조민영은 김평안에게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고 이후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김평안에게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김평안에 대한 감정이 단순히 남녀 사이의 호감인지, 아니면 오빠에게 기대고 싶은 감정인지 심지어 조민영 자신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그저 김평안이 옆에 있으면 조민영은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만 확신할 수 있었다.진서준은 순수한 얼굴을 한 조민영을 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 사람은 지금 수련 중이에요. 어디서 수련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이번에 봉천시에 온 것도 김평안이 부탁해서 온 거예요.”자신의 소원이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만 조민영은 그 말을 듣고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실망감에 빠져 고개를 푹 숙인 조민영을 보며 진서준은 격려의 말을 건넸다.“괜찮아요, 나중에 또 만날 기회가 있을 거예요.”“아니에요... 더 이상 기회는 없을 거예요.”조민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조태희는 그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진서준이 멀리서까지 와서 조민영의 병을 치료해 준 건 전부 김평안 덕분이었다.조태희는 김평안에 대해 좋지 않았던 인상이 지금 완전히 사라졌다.“민영아, 걱정 마. 이 진 마스터님이 우리가 지금 겪는 모든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 줄 거야.”조태희가 조민영을 안심시키며 말했다.“아니요, 저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이 저 때문에 피를 흘리게 하고 싶지 않아요.” 조민영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아빠, 저 한 사람으로 우리 조씨 가문 장래가 밝아지게 할 수 있다면 저는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조민영의 결연한 태도를 본 허사연과 허윤진은 즉시 그녀에 대한 편견을 버렸다.진서준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 아이는 진서라와 정말 닮아 있었다.진서준은 여전히 차분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있었고 조민영의 결정을 두고 다른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조민영을 데려가지 않은 이유는 딸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는 의도였다.“민영 씨,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진서준도 조태희를 거들었다.“아니요, 저도 같이 가요.”하지만 조민영의 태도는 단호했다.“그럴 건가요? 그럼 아빠랑 함께 가요.”진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겠습니다.”진서준의 말이 떨어지자 조태희는 더 이상 실랑이하지 않고 조민영을 데리고 심씨 가문 사람들 쪽으로 향했다.조태희 부녀가 떠난 후, 허사연이 말문을 열었다.“서준아, 정말 민영 씨를 심씨 가문에 시집보낼 생각이야?”“모든 건 조민영이 스스로 결정할 일이야. 조민영이 원하면 시집보내는 거지.” 진서준은 차분하게 대답했다.조민영이든, 진서라든, 다들 스스로 결혼을 원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진서준은 절대로 방해하지 않으려고 결심했다.결혼하든, 하지 않든, 모든 건 그녀들이 선택한 삶일 뿐, 다른 누군가가 대신 결정을 내릴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진서준의 생각이었다.“조민영은 심씨 가문에 시집가는 걸 원하지 않는 것 같아.”허윤진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단지 자기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결혼을 선택하려는 거야.”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청년이 진서준 일행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응? 저 세 명은 어떻게 들어왔지?”멋진 옷차림을 한 변지오는 차가운 눈빛으로 진서준 일행을 바라보았다.“지오야, 저 사람들 네가 아는 사람이야?”변지오와 비슷한 나이대의 또 다른 청년이 물었다.“알지. 오후에 허씨 가문 집안 어르신이 내게 존예를 소개한다고 했잖아. 바로 저 여자야.”변지오는 허윤진을 가리키며 말했다.“대박, 저렇게 예쁜 자매는 처음 봐.”그 청년은 부러워 입을 쩝쩝 다시며 말했다.“나도 아쉽긴 해. 내가 네 여동생과 결혼하지 않으면 저 두 여자를 너랑 나랑 하나씩 나눠 가졌을 텐데.”그 말을 듣자 변지오는 웃음을 터뜨렸다.“도준아, 네가 내 동생과 결혼한 게 대수야? 어차피 결혼해도 넌 따먹을 여자 다 따먹잖아.”“좋아, 나중에
변지오는 허윤진과 허사연이 이미 자기와 심도준의 노리개나 다름없다고 확신했다.여기는 동북지역 변씨 가문 세력 범위 내에 있는 수은 장원이었다.허사연 자매가 아무리 하늘을 찌르는 능력이 있다 한들, 변지오의 손바닥 안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북의 3대 가문은 2대 가문으로 축소될 터였다.변씨 가문이라는 배경이 있었기에 변지오는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며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변지오가 거만하게 웃는 꼴을 본 허사연 자매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그때, 얼음처럼 차가운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네 유언은 그걸로 끝이야?”변지오가 그 말에 멈칫하더니 눈에서 섬뜩한 빛이 번뜩였다.“너 따위가 뭔데 감히 내 앞에서 짖어대? 아까 낮에 허씨 집안에서 널 때리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까 내가 가마니로 보이지?”말이 끝나자 변지오의 몸에서 강력한 무인의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이 기세를 보니 내공 절정이 틀림없었다.스물 남짓한 나이에 내공 절정까지 수련했다면 확실히 탁월한 천재라고 할 만했다.대도시는 몰라도 적어도 지방에서는 변지오가 큰소리를 떵떵 치며 다닐 수 있었다.비록 종사 아래는 전부 개미와 같은 수준이라는 말이 있긴 했지만, 대한민국 전체를 놓고 봐도 종사급 무인은 손꼽힐 정도로 적었다.더구나 최근 대한민국 무도계는 큰 재난을 겪어 해외의 이족들과 맞서 싸우다 수많은 종사급과 대종사급 강자가 전사해 호국사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충성을 다해 국가를 지킬 종사급 강자를 다시 육성하려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이런 큰 배경 때문에 변지오는 진서준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내공 절정인 자기와 맞서 싸우려면 종사급 무인이 나타나지 않는 한 대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런데 보잘것없는 평범한 인간이 감히 무인인 자기를 도발하다니, 변지오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됐어, 그만하자. 연회 중에 변씨 가문 도련님이 평범한 인간이랑 시비 붙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면 체면이 구겨지지 않겠어?”
심국강은 전형적으로 각진 네모난 얼굴에 표정만으로도 압도적인 위엄을 뿜어내는 사람이었다.심국강은 군 출신으로,20년간 군대에서 복무하며 강인한 카리스마를 길러왔다.조태희가 주동적으로 말문을 열었다.“심 가주!”심국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조 가주, 제가 드릴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그래요? 공교롭게도 저도 드릴 말씀이 있네요.”조태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먼저 말씀하시죠.”심국강은 여유로운 태도로 응답했다.“제 딸이 심도준과 결혼하는 건 없던 일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조태희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요즘은 자유 결혼이 유행이라고 하더라고요. 제 딸에게 조씨 가문의 운명을 맡기자니 저도 내키지 않더군요. 제 딸만 믿으면 우리 조씨 가문 남자들이 너무 무능해 보일 테니까요.”조태희의 말에 심국강 옆에 있던 젊은 여자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그게 무슨 말이죠? 조씨 가문에서 파혼하겠다는 말씀인가요? 파혼하려면 우리 심씨 가문에서 먼저 해야지 당신들 조씨 가문이 뭔데 그렇게 굴어요?”심민경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꾸짖으며 조태희의 체면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심민경의 언성이 너무 높아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자연스레 이쪽으로 집중되었다.“민경아, 조 가주와 그런 말투로 말하면 돼? 얼른 사과드려.”심국강이 훈계하듯 말했지만 말투는 한없이 가벼웠고 전혀 진심으로 나무라는 기색이 없었다.조태희는 조씨 가문 가주로서 심민경 같은 후배에게 공개적으로 비난을 당하자 얼굴에 불쾌함이 스쳤다.“신 가주, 따님을 그렇게 가르치셨습니까?”조태희는 굳은 얼굴로 차갑게 물었다.“제 딸 교육 문제는 조 가주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심국강은 조태희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우리 심씨 가문과의 혼인은 조 가주가 제안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파혼을 먼저 꺼내는 것도 조 가주님이네요. 조 가주 눈에 우리 심씨 가문은 그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인가 봅니다?”심국강이 내뿜는 강렬한 기세는 주변 공기를 압
심민경이 내놓은 6조 원 배상금과 조민영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는 요구는 누가 봐도 도를 넘은 요구였다.조태희는 물론, 구경하던 사람들도 심민경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게 분명했다.하지만 사람들은 심민경이 이렇게 뻔뻔하게 요구한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속으로 곰곰이 생각했다.무언가 깨달은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고 그들의 시선은 변씨 가문의 저택으로 향했다.심씨 가문이 조씨 가문과 이렇게 공개적으로 맞설 수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변씨 가문과 손을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조씨 가문의 상황은 정말 암울해질 수밖에 없었다.심민경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조태희는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거절했다.“그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그러자 심민경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그럼 우리 가문에 어떤 배상을 하시겠다는 겁니까?”조태희는 얼굴을 굳히며 강경한 태도로 대응했다.“배상 같은 건 없습니다. 혼약은 이미 끝났고 사과도 없을 겁니다. 심씨 가문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 정면으로 대결해 보죠.”결단을 내려야 하는 밤인 만큼, 조태희도 물러서지 않고 단호한 태도로 맞섰다.조태희가 갑작스럽게 강단을 보이자 심씨 가문의 세 사람은 모두 놀란 기색을 보였다.‘무슨 상황이지? 설마 조씨 가문이 외부 지원을 받은 건가?’놀라움도 잠시일 뿐, 심국강의 얼굴엔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분노가 스쳤다.“조태희,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는 있어?”“당연하지. 혼약은 우리가 이미 파기했고 절대 사과하지 않을 거야. 너희 가문이 불만이라면 지금이라도 한번 손대봐.”조태희는 거침없이 선언했다.그 얘기를 들은 주변에 모인 유명 인사들은 재빨리 물러났다. 혹시라도 싸움에 휘말리기라도 할까 봐 우려했기 때문이다.심국강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좋아, 아주 좋아. 조씨 가문 태도가 정 그렇다면 우리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두 가문이 곧 서로에게 달려들 태세로 긴장을 끌어올릴 무렵, 위엄 넘치는
하지만 진서준은 이 칠색정화를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진서준 씨가 치료한다고요?”소하비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실례지만, 진서준 씨가 황예은 씨와 친구가 아니었다면 진서준 씨는 나와 대화할 자격도 없을 겁니다.”상당히 상처가 되는 말이었지만 냉혹한 사실이기도 했다.샛터의 국제적 위치는 매우 높아서 심지어 용란 같은 상임이사국보다도 우위에 있었다.그러니 소하비의 지위는 여태껏 진서준이 만났던 어떤 인물보다도 높았다.진서준은 지금 실력도 대단하고 지위나 신분이 높은 사람이긴 했지만 소하비 앞에서는 머리를 숙여야 했다.“네가 원한다면 내가 사줄 수 있어.”황예은이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그 말에 소하비의 눈에 질투가 스쳤다.소하비는 여태껏 황예은이 이렇게 남자에게 잘해주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그만둬, 돈 낭비하지 마.”진서준이 고개를 저었다.이 왕자도 자기 가족을 구하기 위해 거액의 돈을 쓰는 것인데 굳이 가격을 200조 단위까지 끌어올릴 필요는 없었다.정말 그 정도로 가격을 올린다면 오히려 명양사해 경매장만 이득을 볼 뿐이었다.“황예은 씨, 더 이상 경매하지 않으실 건가요?”이세아의 질문에 황예은이 되물었다.“이 정도면 명양사해가 수익을 충분히 올리지 않았나요?”진서준은 살짝 의아한 눈빛으로 황예은을 바라보았다.황예은의 성격이 항상 차갑고 도도한 건 알지만 누군가가 정상적으로 말을 건넸을 때 이렇게 거칠게 반격하지는 않았다.혹시 이 두 여자 사이에 갈등이라도 있었던 걸까?황예은의 날카로운 반응에 이세아는 가볍게 웃으며 대응했다.“세상에 돈 많이 버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황씨 가문이 이렇게 오래 대한민국 갑부 일인자 자리에 있었는데도 여전히 은퇴하지 않고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잖아요.”그 후 이세아는 소하비를 보며 말했다.“소하비 왕자님, 이제 이 칠색정화는 왕자님 거예요.”200조라는 거액으로 약초 한 송이를 사다니,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너 저 여자와 갈등이라도
변지산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이 약초는 사실 널 위해서 내가 사려고 했던 거야.”사실 예전에 진서준은 변지산에게 전화를 걸어 칠색정화를 포함한 여러 약재를 요구했었다.하지만 성약당 안에는 진서준이 필요로 하는 약재가 없었다.그래서 변지산은 이 약재들을 기억해 두고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진서준의 빚을 갚기 위해 주기로 했다.이번에 이씨 가문 사람이 변지산을 귀빈으로 초청했을 때, 변지산은 처음에 단호하게 거절했었다.하지만 이 약초가 바로 진서준이 필요로 하는 약초라는 소식을 듣고 변지산은 바로 초청에 응했다.변지산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도 바로 이 약초 때문이었다.“감사합니다, 변 어르신.”진서준이 고마워하며 말했다.모두가 이번 경매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줄 알았을 때, 소하비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참 공교롭네요. 이 약초는 저도 필요하거든요.”소하비가 이 약초를 놓고 경쟁하려는 모습을 보자 다들 진서준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기 시작했다.조금 전에도 이 왕자는 1조 7600억이라는 거액을 불쑥 제시했으니 이 약초에도 어마어마한 가격을 제시할 게 분명했다.“진서준 씨, 제가 일부러 엿 먹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 약초가 정말 필요해서 그래요.”소하비가 적극적으로 해명하자 진서준이 물었다.“사람을 구하는 데 필요한 건가요?”“맞아요.”소하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제 여동생이 불치병에 걸려 있는데 교회 의사도 이 칠색정화라는 약초가 있어야만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어요.”소하비의 진지한 표정을 보자 진서준은 그가 말하는 게 진실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만약 소하비가 진심이라면 상황은 꽤나 복잡해질 것이다.칠색정화를 사용해야 하는 병이라면 진서준도 무조건 치료할 자신이 없었다.“그럼 공정하게 경매를 진행합시다.”진서준이 제안하자 소하비는 바로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2조!”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시작 가격이 1조에 불과한데 소하비는 그 가격을 단숨에 두 배로 올렸다.옆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박서명은
이렇게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경쟁을 벌였다.황예은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고 그 목걸이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1조 7600억.”경매가 열린 후 줄곧 침묵을 지키던 소하비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순간, 경매장 전체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방금 최고가는 6000억이었는데 소하비는 바로 1조가 넘는 돈을 더 올렸다.돈이 많다고 해서 이렇게 함부로 쓸 수 있는 건가?경쟁을 벌이던 부자들은 속으로 소하비를 무식하고 무모한 부자라고 욕설을 날렸다.“소하비 왕자님, 이렇게 거액을 들였는데 분명 왕자님이 원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으실 겁니다.”자주색 복장의 여성은 바로 축하하는 멘트를 날렸다.“그랬으면 좋겠습니다.”소하비가 덤덤하게 웃어넘겼다.소하비의 자신감 없어 보이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이렇게 엄청나게 비싼 목걸이로도 여자의 마음을 열지 못한다면 그 돈은 사실 불로 태워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이건 1만도 아니고 1억도 아닌 1조라는 천문학적인 숫자였다.잠시 후, 한 직원이 해양의 심장을 소하비에게 전달했다.하지만 소하비는 서둘러 황예은에게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이렇게 많은 사람의 시선 속에서 구애하는 데 실패하기라도 하면 소하비 왕자는 너무나 창피해 경매장에 남아 있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사치품이 여러 개 판매된 후, 자주색 복장의 여성이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여러분, 이제 이번 경매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됩니다. 우선, 칠색정화를 보여 드리겠습니다.”길이 약 30cm에 달하고 일곱 가지 색깔의 꽃이 핀 약초가 등장했다.“진 신의님, 이 약초가 맞죠?”이용진의 질문에 진서준은 흥분한 말투로 대답했다.“맞습니다.”오늘 진서준이 이곳에 온 목적은 바로 이 칠색정화였다.“이 약초가 바로 칠색정화입니다. 이 약초는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약효가 있고 이 약초를 먹으면 10년은 더 살 수 있습니다.”자주색 복장의 여성이 칠색정화의 신기한 약효에 관해 간단하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있다.이건 소하비가 대한민국의 병법에 관련된 책에서 배운 말이다.지금 소하비는 이미 진서준을 잠재적인 위험인물 목록에 올려두었다.자기 정체를 몹시 궁금해하는 소하비에게 진서준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대답했다.“내 목표는 당신과 분명 다를 테니 내게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소하비는 그 말에 멈칫하더니 이내 진서준의 뜻을 알아챘다.“그 말을 믿어도 되는 거죠?”“난 거짓말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진서준이 평온하게 대답하자 소하비는 내심 기뻤다.“좋아요. 당신은 이제부터 내 친구입니다.”하지만 옆에서 대화를 듣던 황예은의 얼굴은 창백해졌다.자기가 진서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자격조차 없을 정도로 매력이 없단 말인가?황예은의 표정 변화를 눈치챈 소하비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황예은 씨, 무슨 일 있나요? 몸이 불편한 건가요?”“괜찮아요.”황예은이 더욱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동안 익숙했던 황예은의 태도와는 거리가 먼 태도에 소하비는 저도 몰래 움찔했다.여자의 마음은 바다 밑의 바늘과도 같았다.조금 전까지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 왜 눈앞의 여자가 갑자기 이런 태도로 변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두 번째 줄에 앉아 있던 박서명은 진서준과 소하비 왕자가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박서명의 에리 그룹은 실력이 강력해 황씨 가문과 충분히 겨룰 수 있었지만 샛터 왕실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했고 약했다.그런데 진서준이 샛터 왕자의 도움을 받게 된다면 박서명은 더 이상 악의를 품고 진서준과 경쟁할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반 시간 후, 경매장 홀의 불이 갑자기 어두워졌고 밝은 빛 한 줄기가 무대 위로 비춰졌다.그리고 몸에 딱 맞는 자주색 전통 복장을 입은 여성이 무대 뒤에서 나왔다.“바쁘신 중에도 시간을 내어 저희 명양사해 경매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이렇게 많은 권력자와 부자 앞에서 여성은 전혀 기죽지 않아 보였고 대신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이용진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진서준과 황예은은 동년배 중에서 소문난 천재였다.이 두 사람은 연애 상대를 찾을 때 자기 실력과 지위가 비슷한 사람을 찾을 것이다.“이 삼촌.”황예은이 이용진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지만 말투는 여전히 쌀쌀했다.“진 신의님, 사실 이번 경매에서 저는 신의님을 지원할 생각이었습니다.”이용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근데 우리 황 조카가 있으니 내가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겠군요.”황씨 가문의 재력과 비교하면 이용진의 재력은 턱없이 부족했다.누군가가 악의적으로 경쟁하지 않는다면 진서준은 무조건 칠색정화를 손에 넣을 것이다.진서준이 대화하는 사이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그중 진서준과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그중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흰 모자를 쓰고 짙은 눈썹과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청년이었다.“세상에, 저 사람은 샛터 셋째 왕자가 아니야? 왕자도 이 장소에 왔어?”“저 왕자가 원하는 물건이 나와 겹치지 않을지 걱정이야. 그럼 오늘 경매장에 헛걸음을 치게 될 게 분명할 거야.”“쯧쯧, 샛터의 셋째 왕자 앞에서는 초아국 금융 업계 거물들도 물러설 수밖에 없을 거야.”사람들은 뜻밖의 인물이 등장하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다들 돈 많은 최고급 권력자였기 때문에 자기보다 더 고귀한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에 한없이 들떠 있었다.황예은이 진서준에게 소개했다.“저 사람은 샛터 셋째 왕자, 소하비야.”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로마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아예 로마에서 태어났다.이 말은 바로 샛터의 왕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샛터의 부유함은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사실이었다.세상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8성급 호텔도 샛터에 있었다.그곳에는 부유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셀 수 없을 정도이다.샛터 왕실은 돈을 그냥 휴지로 취급했다.소하비는 경매장에 들어서자 한바퀴 휙 돌아본 뒤, 바로 황예은에게 다가갔다.“황예은 씨, 이렇게 여기서 만나다니
경매장은 유람선의 가장 위층에 자리 잡고 있고 입구의 보안 검사도 매우 엄격했다.첫 번째 검사는 바로 자산을 제시하는 것이었다.전체 자산이 조 단위여야 했고 손에 쥔 예금 역시 조 단위여야 했다.첫 번째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경매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이 검사만 해도 99%의 사람들이 걸러지게 된다.조 단위 자산을 자랑하는 부자는 꽤 있겠지만 조 단위 예금을 갖춘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대다수 부자는 손에 쥔 돈을 투자해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했다.“너랑 함께 와 참 다행이네. 네가 없었다면 절대 들어올 수 없었을 거야.”진서준이 엄격한 검사를 보며 감탄했다.황예은은 보기 드물게 얼굴에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진서준도 드디어 황예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다.진서준은 경매장에 들어서자, 한 번 둘러보았다.경매장은 70여 평 크기로 4줄의 계단식 좌석이 있었고 그 좌석들 정면에는 무대가 하나 놓여 있었다.경매가 시작되면 전시물은 바로 이 무대에서 등장하게 된다.두 사람은 한적한 구석 자리를 찾아 앉아 조용히 경매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네 여자 둘을 데려오지 않아서 불안하지 않아?”황예은이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서지은과 허윤진은 함께 경매장에 따라오지 않았고 유람선의 다른 곳에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었다.“괜찮아, 누군가 그 애들을 보호하고 있어.”진서준이 대답했다.정확히 말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교룡이었다.진서준은 올기가 서지은과 허윤진과 함께 다니게 했다.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해도 교룡인 올기 한 마리로도 충분히 그녀들을 보호할 수 있다.올기는 동호에서 풀려난 이후 서서히 실력을 회복하고 있었다.비록 아직 절정의 상태는 아니지만 칠급 이하의 대종사는 올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황예은 씨, 또 만났네요.”이때 박서명이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황예은 씨도 여기 물건에 관심이 있나 보네요.”예전에 박서명이 경매에 참석했을 때 황예은은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황예은이 예전에 오지 않은 건 단순히 시간이 없었기
진서준과 서정훈은 환경 오염을 대가로 지역 경제 발전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다.“박진강은 네가 죽였지?”진서준이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예상외의 질문에 박서명은 움찔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서준을 쳐다봤다.박서명의 얼굴에 있던 미소는 사라지고 대신 차가운 냉기를 품은 독기가 눈에서 뿜어나왔다.박신준과 연락이 닿지 않게 된 그 순간부터 박서명은 자기 형제가 뭔가 큰 일을 당했음을 직감했다.“내가 어떻게 내 아들을 죽일 수 있지?”박서명이 차가운 목소리로 묻자 진서준은 바로 사실을 폭로했다.“그 녀석이 네 친아들이 아니니까 죽일 수 있지. 물론 너와 박신준 둘 중에 누가 누구에게 오쟁이를 진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이 말에 박서명은 순간 당황해하며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말했다.“오늘 밤 달빛이나 제대로 즐겨.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거야.”말을 마친 박서명은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너 말이 참 거칠어.”황예은의 말에 진서준은 어깨를 으쓱했다.“이건 전부 저놈이 자초한 일이야.”“너는 혼자잖아. 박씨 가문이 공해에서 너에게 무슨 일을 할지 걱정되지 않냐=아?” 황예은의 질문에 진서준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언젠가는 한 판 벌여야 할 싸움이야.”“대한민국 전역에서 너처럼 거침없고 대담한 사람은 아마 몇 명 되지 않을걸?”“그 말은 칭찬이야? 아니면 욕이야?”진서준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묻자 황예은은 대답하지 않았다.황예은의 말에는 칭찬과 비하가 골고루 섞여 있었다.잠시 후, 유람선에서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유람선은 서서히 부두를 떠나 어두운 바닷속으로 향해 나갔다.차가운 바닷바람이 불어오자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진서준은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평범한 사람에 불과한 황예은은 달랐다.“유람선 안으로 들어가자.”진서준이 제안하자 황예은은 선뜻 동의했다.“좋아.”두 사람이 막 유람선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진 마스터님.”진서준이 머리를 돌리자 두 사람
“이렇게 큰 유람선은 처음 봐!”차에서 내리자 허윤진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철갑 괴물을 감탄하며 호들갑을 떨었다.서울시 명문대가 출신인 허윤진도 이 유람선 앞에서는 감탄 이외에 할 말이 없었다.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마 말을 잃을 정도로 놀랐을 것이다.주변을 지나가는 권력자들도 유람선의 규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듯했다.대한민국에는 부유한 사람이 많지만 천하 유람선에 올라설 수 있는 부유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황예은이라는 대한민국 최고 갑부 맏딸이 아니었다면 진서준은 초대장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진서준, 너랑 서지은은 이렇게 큰 유람선을 본 적 있어? 너희는 전혀 놀라지 않은 것 같은데.”허윤진이 두 사람을 돌아보며 묻자 서지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전에 아빠랑 이 유람선에 탄 적 있어. 그때 내 표정도 너 지금 표정과 똑같았거든.”서씨 가문은 강남 최고의 가문인지라 서지은이 천하 유람선에 올라탄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난 오늘이 처음이야.”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하자 허윤진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넌 이 유람선이 하나도 놀랍지 않아?”“안 놀랍다면 거짓말이지.”진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허윤진은 말로만 놀랍다고 하고 전혀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는 진서준이 못마땅해 눈을 굴렸다.“배에 올라타자.”황예은이 말을 꺼내자 다들 그녀를 따라 여러 차례의 보안 점검을 거쳐 유람선에 올랐다.유람선 안에 들어선 후, 진서준은 서지은에게 허윤진을 데리고 유람선 내부를 구경하라고 시켰다.그리고 자기는 황예은과 함께 유람선 갑판에 올라가 배에 오르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유람산에 올라온 사람 중, 권력자도 많았고 무인도 적지 않았다.종사 경지의 무인들은 흔치 않았고 대다수는 사급 대종사였으며 오급 대종사와 육급 대종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이 정도 인원만 해도 이미 굉장히 큰 규모였다.강남과 서남 지역에서는 이렇게 많은 대종사가 한자리에 모인 걸 진서준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명주시는 역시 진짜
이 자식은 정말 밉상인데 의술 하나만은 정말 뛰어난 듯했다.황예은은 오늘 진서준이라는 사람에 대해 또 다른 평가를 내렸다.“미리 말해두지만 난 거기서 널 보호하는데 그렇게 많은 정력을 퍼부을 수 없어.”진서준이 미리 경고했다.진서준은 진서라을 치료할 약재를 손에 넣은 후, 간첩을 찾으러 가야 했다.그때가 되면 유람선 위에 사람이 많아 자연스레 보는 눈도 많을 것이다.누군가 황예은에게 해를 끼치려 하면 그건 큰 문제가 될 것이다.황예은은 이내 얼굴이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단호하게 말했다.“내가 알아서 날 보호할 사람을 구할 거야. 알았어, 그럼 너 먼저 밥 먹어. 나중에 약 바르러 올게.”진서준은 방을 나갔다.허윤진은 진서준이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물었다.“진서준, 오늘 밤만 지나면 우리는 서울로 돌아갈 거지?”“왜 그렇게 급하게 돌아가려 해?”진서준은 허윤진의 말에 의아해했다.황예은이라는 여우를 경계하기 위해서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허윤진이 차마 꺼낼 수 없었다.“너무 늦으면 엄마랑 진서라가 걱정할까 봐 그래.”허윤진이 비장 카드인 두 사람을 꺼냈다.어머니와 진서라를 생각하니 진서준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약재만 받으면 내일 바로 돌아가자.”“이따가 또 저 여자 약 발라줘야 해?”허윤진이 질투와 원한이 섞인 눈빛을 보이자 진서준은 등골이 서늘했다.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서준이 허윤진을 속이고 불륜을 피운 거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응, 근데 이따가 바르는 건 마지막 약이야.”“그럼 다행이네.”허윤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황예은의 몸매는 너무 매력적이라 여성인 허윤진조차도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진서준 같은 정상적인 남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만약 두 사람 사이에 정말 불꽃이라도 튄다면 수습할 수 없을 것 같았다.“약 바를 시간이야. 일단 들어가서 약 바르고 나올게.”진서준이 약을 들고 들어가자 황예은이 이미 죽을 다 먹은 걸 발견했다.“엎드려, 먼저 등부터 발라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