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조민영을 데려가지 않은 이유는 딸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는 의도였다.“민영 씨,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진서준도 조태희를 거들었다.“아니요, 저도 같이 가요.”하지만 조민영의 태도는 단호했다.“그럴 건가요? 그럼 아빠랑 함께 가요.”진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겠습니다.”진서준의 말이 떨어지자 조태희는 더 이상 실랑이하지 않고 조민영을 데리고 심씨 가문 사람들 쪽으로 향했다.조태희 부녀가 떠난 후, 허사연이 말문을 열었다.“서준아, 정말 민영 씨를 심씨 가문에 시집보낼 생각이야?”“모든 건 조민영이 스스로 결정할 일이야. 조민영이 원하면 시집보내는 거지.” 진서준은 차분하게 대답했다.조민영이든, 진서라든, 다들 스스로 결혼을 원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진서준은 절대로 방해하지 않으려고 결심했다.결혼하든, 하지 않든, 모든 건 그녀들이 선택한 삶일 뿐, 다른 누군가가 대신 결정을 내릴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진서준의 생각이었다.“조민영은 심씨 가문에 시집가는 걸 원하지 않는 것 같아.”허윤진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단지 자기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결혼을 선택하려는 거야.”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청년이 진서준 일행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응? 저 세 명은 어떻게 들어왔지?”멋진 옷차림을 한 변지오는 차가운 눈빛으로 진서준 일행을 바라보았다.“지오야, 저 사람들 네가 아는 사람이야?”변지오와 비슷한 나이대의 또 다른 청년이 물었다.“알지. 오후에 허씨 가문 집안 어르신이 내게 존예를 소개한다고 했잖아. 바로 저 여자야.”변지오는 허윤진을 가리키며 말했다.“대박, 저렇게 예쁜 자매는 처음 봐.”그 청년은 부러워 입을 쩝쩝 다시며 말했다.“나도 아쉽긴 해. 내가 네 여동생과 결혼하지 않으면 저 두 여자를 너랑 나랑 하나씩 나눠 가졌을 텐데.”그 말을 듣자 변지오는 웃음을 터뜨렸다.“도준아, 네가 내 동생과 결혼한 게 대수야? 어차피 결혼해도 넌 따먹을 여자 다 따먹잖아.”“좋아, 나중에
변지오는 허윤진과 허사연이 이미 자기와 심도준의 노리개나 다름없다고 확신했다.여기는 동북지역 변씨 가문 세력 범위 내에 있는 수은 장원이었다.허사연 자매가 아무리 하늘을 찌르는 능력이 있다 한들, 변지오의 손바닥 안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북의 3대 가문은 2대 가문으로 축소될 터였다.변씨 가문이라는 배경이 있었기에 변지오는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며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변지오가 거만하게 웃는 꼴을 본 허사연 자매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그때, 얼음처럼 차가운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네 유언은 그걸로 끝이야?”변지오가 그 말에 멈칫하더니 눈에서 섬뜩한 빛이 번뜩였다.“너 따위가 뭔데 감히 내 앞에서 짖어대? 아까 낮에 허씨 집안에서 널 때리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까 내가 가마니로 보이지?”말이 끝나자 변지오의 몸에서 강력한 무인의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이 기세를 보니 내공 절정이 틀림없었다.스물 남짓한 나이에 내공 절정까지 수련했다면 확실히 탁월한 천재라고 할 만했다.대도시는 몰라도 적어도 지방에서는 변지오가 큰소리를 떵떵 치며 다닐 수 있었다.비록 종사 아래는 전부 개미와 같은 수준이라는 말이 있긴 했지만, 대한민국 전체를 놓고 봐도 종사급 무인은 손꼽힐 정도로 적었다.더구나 최근 대한민국 무도계는 큰 재난을 겪어 해외의 이족들과 맞서 싸우다 수많은 종사급과 대종사급 강자가 전사해 호국사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충성을 다해 국가를 지킬 종사급 강자를 다시 육성하려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이런 큰 배경 때문에 변지오는 진서준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내공 절정인 자기와 맞서 싸우려면 종사급 무인이 나타나지 않는 한 대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런데 보잘것없는 평범한 인간이 감히 무인인 자기를 도발하다니, 변지오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됐어, 그만하자. 연회 중에 변씨 가문 도련님이 평범한 인간이랑 시비 붙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면 체면이 구겨지지 않겠어?”
심국강은 전형적으로 각진 네모난 얼굴에 표정만으로도 압도적인 위엄을 뿜어내는 사람이었다.심국강은 군 출신으로,20년간 군대에서 복무하며 강인한 카리스마를 길러왔다.조태희가 주동적으로 말문을 열었다.“심 가주!”심국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조 가주, 제가 드릴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그래요? 공교롭게도 저도 드릴 말씀이 있네요.”조태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먼저 말씀하시죠.”심국강은 여유로운 태도로 응답했다.“제 딸이 심도준과 결혼하는 건 없던 일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조태희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요즘은 자유 결혼이 유행이라고 하더라고요. 제 딸에게 조씨 가문의 운명을 맡기자니 저도 내키지 않더군요. 제 딸만 믿으면 우리 조씨 가문 남자들이 너무 무능해 보일 테니까요.”조태희의 말에 심국강 옆에 있던 젊은 여자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그게 무슨 말이죠? 조씨 가문에서 파혼하겠다는 말씀인가요? 파혼하려면 우리 심씨 가문에서 먼저 해야지 당신들 조씨 가문이 뭔데 그렇게 굴어요?”심민경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꾸짖으며 조태희의 체면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심민경의 언성이 너무 높아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자연스레 이쪽으로 집중되었다.“민경아, 조 가주와 그런 말투로 말하면 돼? 얼른 사과드려.”심국강이 훈계하듯 말했지만 말투는 한없이 가벼웠고 전혀 진심으로 나무라는 기색이 없었다.조태희는 조씨 가문 가주로서 심민경 같은 후배에게 공개적으로 비난을 당하자 얼굴에 불쾌함이 스쳤다.“신 가주, 따님을 그렇게 가르치셨습니까?”조태희는 굳은 얼굴로 차갑게 물었다.“제 딸 교육 문제는 조 가주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심국강은 조태희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우리 심씨 가문과의 혼인은 조 가주가 제안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파혼을 먼저 꺼내는 것도 조 가주님이네요. 조 가주 눈에 우리 심씨 가문은 그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인가 봅니다?”심국강이 내뿜는 강렬한 기세는 주변 공기를 압
심민경이 내놓은 6조 원 배상금과 조민영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는 요구는 누가 봐도 도를 넘은 요구였다.조태희는 물론, 구경하던 사람들도 심민경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게 분명했다.하지만 사람들은 심민경이 이렇게 뻔뻔하게 요구한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속으로 곰곰이 생각했다.무언가 깨달은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고 그들의 시선은 변씨 가문의 저택으로 향했다.심씨 가문이 조씨 가문과 이렇게 공개적으로 맞설 수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변씨 가문과 손을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조씨 가문의 상황은 정말 암울해질 수밖에 없었다.심민경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조태희는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거절했다.“그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그러자 심민경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그럼 우리 가문에 어떤 배상을 하시겠다는 겁니까?”조태희는 얼굴을 굳히며 강경한 태도로 대응했다.“배상 같은 건 없습니다. 혼약은 이미 끝났고 사과도 없을 겁니다. 심씨 가문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 정면으로 대결해 보죠.”결단을 내려야 하는 밤인 만큼, 조태희도 물러서지 않고 단호한 태도로 맞섰다.조태희가 갑작스럽게 강단을 보이자 심씨 가문의 세 사람은 모두 놀란 기색을 보였다.‘무슨 상황이지? 설마 조씨 가문이 외부 지원을 받은 건가?’놀라움도 잠시일 뿐, 심국강의 얼굴엔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분노가 스쳤다.“조태희,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는 있어?”“당연하지. 혼약은 우리가 이미 파기했고 절대 사과하지 않을 거야. 너희 가문이 불만이라면 지금이라도 한번 손대봐.”조태희는 거침없이 선언했다.그 얘기를 들은 주변에 모인 유명 인사들은 재빨리 물러났다. 혹시라도 싸움에 휘말리기라도 할까 봐 우려했기 때문이다.심국강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좋아, 아주 좋아. 조씨 가문 태도가 정 그렇다면 우리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두 가문이 곧 서로에게 달려들 태세로 긴장을 끌어올릴 무렵, 위엄 넘치는
변철주는 그 말을 듣고 조태희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아이가 한 말이 사실인가?”“사실입니다.”조태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인하지 않았다.“그렇다면 이번 일은 너희 조씨 가문 잘못이 맞아. 하지만 혼약을 파기한 것도 나쁜 일만은 아니야.”변철주는 갑자기 화제를 돌리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연회에 참석한 다른 세가 권력자들을 향해 의미심장하게 선언했다.“여러분, 오늘 우리 변씨 가문이 연회를 개최한 이유는 여러분께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드디어 오늘 연회의 진짜 목적이 나왔다.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변철주의 다음 발언을 기다렸다.“우리 변씨 가문은 심씨 가문과 혼인 동맹을 맺을 겁니다.”이 한마디는 거대한 폭탄처럼 연회장을 순식간에 뒤흔들었다.“진짜였구나. 난 단순한 소문인 줄 알았어.”“조씨 가문은 이제 끝났군. 앞으로 동북에선 조씨 가문이 사라지겠어.”“앞으로가 아니라 오늘 밤이라고 봐야지. 흑권왕 같은 살인마가 나서면 조태희 일행은 오늘 살아서 나가기 어려울걸.”사람들은 조태희 일행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처음엔 조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손잡고 변씨 가문을 무너뜨리는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조씨 가문이 함정에 빠진 꼴이었다.조태희와 조기강의 얼굴은 이미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역시나 예상이 틀리지 않았어...’심민경은 상황이 뜻대로 돌아가자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조 가주, 당신 딸이 우리 동생에게 무릎 꿇고 빌면 우리가 당신 가문을 살려줄 수도 있어요.”조민영은 그 말을 듣고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정말입니까?”조민영의 말에 심민경은 더욱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사실입니다.”물론 사실일 리 없었다.심씨 가문과 변씨 가문은 오늘 밤 조씨 가문을 절대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오늘 밤 이 세 사람은 절대 살아서 변씨 가문의 장원을 나가지 못할 것이다.“민영아, 저 개수작에 속지 마!”조태희는 서둘러 조민영을 뒤로 끌어들이며 변철주를 향해 분노를 터뜨렸다.“변 어르
칠급 대종사 두 명을 상대한다면 전성기 조기강이라고 해도 아무런 승산도 없었다.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조태희 형제는 마지막 희망을 진서준에게 걸었다.“진 마스터님, 부디 우리를 도와주십시오.”조태희는 진서준을 향해 크게 외쳤다.진 마스터는 또 누구지?연회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당황하며 조태희가 부른 진 마스터가 누구인지 이해하지 못했다.조태희의 요청을 듣자 진서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와인잔을 들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진서준의 양옆에는 허사연 자매가 따라붙었다.한편, 변철주와 그의 일가족은 조태희가 언급한 진 마스터가 누구인지 머릿속에서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어? 설마 저 녀석을 말하는 거야?”변지오는 진서준이 걸어오는 것을 보며 폭소를 터뜨렸다.“왜 그래?”변철주가 의아해하며 물었다.“할아버지, 조태희가 말한 진 마스터는 저 청년일 겁니다.”변지오는 진서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모두가 고개를 돌려 진서준을 보았다.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청년의 등장에 연회장의 분위기는 금세 조롱으로 변했다.“조태희가 제정신이 아니구나. 저런 애송이를 불러들여 도움을 청하다니.”“저건 도움을 청한 게 아니라 자살을 부른 거잖아.”저 청년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스무 살 남짓의 나이로 얼마나 대단할 수 있겠는가?그럼에도 조태희는 진서준을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진 마스터님, 오늘 밤은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조태희,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선 이런 애송이에게 가문의 장래를 맡기다니, 참으로 가소롭구나.”변지오는 거침없이 조롱했다.하지만 변지오와 달리 변철주는 신중한 표정으로 물었다.“이봐 청년, 혹시 넌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야?”“알 필요 없어.”진서준은 차갑게 답했다.그러자 변지오가 비웃으며 진서준의 정체를 대신 설명했다.“할아버지, 저 녀석이 무슨 진씨 가문 사람이겠습니까? 저건 그냥 평범한 놈이에요. 보세요, 저 자매는 동북 허씨 가문 허순재 손녀들이잖아요. 진짜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었다면 허씨 가문 같은 하찮
진서준은 손에 들고 있던 와인잔을 기울이며 와인을 바닥에 쏟았다.그 순간, 잔에서 떨어진 와인 한 방울이 영기에 감싸였다.사람들이 진서준이 뭘 하려는지 깨닫기도 전에, 그 와인 한 방울은 심민경의 미간을 향해 날아갔다.그 광경에 강명찬과 변운도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으며 긴장했다.두 칠급 대종사는 진서준의 손끝에서 와인 방울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즉시 저지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푸슉!예리한 무기가 살점을 꿰뚫는 소리가 들렸다.작은 와인 방울은 심민경의 이마를 그대로 꿰뚫었다. 심민경의 얼굴에 남아 있던 오만한 표정은 그대로 영원히 굳어버렸다..쿵!심민경의 몸이 뒤로 넘어가며 흙바닥에 처참하게 쓰러졌다.이 갑작스러운 광경에 연회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민경아! 민경아!”“누나, 왜 그래?”심국강 부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급히 심민경의 상태를 확인했다.그러나 심민경의 미간에 물방울 크기만 한 피로 물든 구멍을 본 순간, 두 사람은 기절초풍할 뻔했다.다른 사람들 또한 겁에 질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방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단 한 순간에 한 사람이 목숨을 잃은 현실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이봐, 네 짓이야?”변운도는 진서준을 노려보며 물었다.진서준은 변운도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변지오를 바라보았다.진서준의 시선이 닿는 순간, 변지오의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거대한 맹수의 눈빛 아래 서 있는 듯한 공포감이 순간 변지오에게 밀물처럼 밀려왔다.“방금 했던 말을 기억해?”진서준은 차분하게 물었다.“너, 너 대체 뭘 하려는 거야?”변지오는 큰소리로 되물었지만 내심 두려움이 커졌다.“우리에겐 칠급 대종사가 두 명이나 있어. 너 혼자서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변지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명찬이 앞으로 나서며 차갑게 말했다.“이 녀석, 아무리 봐도 보통 놈이 아니야. 우리가 먼저 선수 치는 게 좋을 것 같아.”“좋아.”변운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진서준의 단 한마디가 거대한 산맥처럼 압박감을 주자 모두가 숨쉬기 힘들 정도로 힘들어했다.이 청년은 진짜 전설 속의 용존이었다.검을 휘두른 일격과 손바닥으로 튕긴 한 방으로 칠급 대종사 두 명을 완벽하게 제압하다니, 용존을 제외하고 세상에 이런 괴물 같은 청년은 없을 것이다.물론 이처럼 무시무시한 전설 속의 용존이 겨우 스무 살 남짓의 청년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예상할 수 없었다.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미 하늘을 찌르는 실력을 갖췄다면 몇 년 후에는 대체 누가 용존과 대적할 수 있을까?연회 현장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해졌다.변씨 가문과 심씨 가문의 사람들은 초상을 치르는 듯한 절망에 잠겨 진서준을 바라보았다.두 가문이 보물로 여기던 칠급 대종사조차 용존 앞에서는 한 방도 견디지 못했고 도무지 대적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조태희 또한 멍하니 서서 사색에 잠겼다.칠급 대종사가 언제 이렇게 약해졌단 말인가?심지어 국안부의 호국장군이 와도 이렇게까지는 못할 것이다.한편, 허사연의 눈은 환희로 가득했다.그리고 조민영은 진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묘한 친숙함을 느꼈다.진서준의 뒷모습은 신농산에서 만났던 김평안과 너무 닮아 있었다.진서준의 유아독존적인 태도와 압도적인 강함까지... 모든 것이 김평안과 판박이였다.혹시 진서준이 김평안 아저씨란 말인가...이런 생각이 조민영의 머릿속에 떠오르자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았다.조민영의 타고난 무구의 체질 덕분에 조민영의 직감은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웠다.따라서 이런 상상을 하게 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한참을 침묵하던 조태희는 팽팽한 분위기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 진서준에게 공손히 예를 올렸다.“조씨 가문, 용존께 문안 드립니다.”이 말이 떨어지자 모두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강씨 가문, 용존께 문안드립니다.”“한씨 가문, 용존께 문안드립니다.”이어지는 우렁찬 목소리가 끊임없이 현장에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이곳에 모인 동북 지역의 30여 개 최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전화로 물어보겠습니다.”전화하기 전에 진서준은 한마디 덧붙였다.“간호사를 불러 여동생에게 목욕을 시키고 병실도 바꾸는 게 좋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자, 다들 진서준 씨 말대로 움직여.”소하비는 자기가 데리고 온 여성 하인들에게 즉시 지시했다.예린을 돌보기 위해 소하비는 평소 예린의 시중을 드는 여성 하인을 전부 데려왔다.진서준은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를 살펴보았다.“지유 누나에게 전화해 보자. 지유 누나랑 성우 형 인맥이 꽤 넓으니까.”진서준은 즉시 한지유에게 전화를 걸었다.벨 소리가 두 번 울리더니 한지유가 전화를 받았다.“서준 동생, 오늘은 웬일로 내게 전화했어?”한지유가 웃으며 물었다.진서준과 한지유는 꽤 오랫동안 서로 연락이 없었다.“지유 누나,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화를 드리게 되었어요.”진서준은 웃으며 바로 전화를 건 이유를 설명했다.“지유 누나, 이 동네에서 약재를 큰 규모로 다루는 곳을 아시나요? 백년 영지를 급하게 하나 구하고 싶어서 그래요.”“약재를 다루는 곳이라... 잠깐만 기다려.”한지유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답했다.“실제로 아는 곳이 있긴 해, 부지로에 있는 회춘당이라는 곳이야. 그 집은 최근에 새로 열었는데 주로 귀한 약재를 팔아.”“감사합니다, 지유 누나. 기회가 되면 성우 형이랑 누나에게 식사 대접할게요.”진서준은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뭘 그런 걸로 그래? 우리 사이에 그런 예의는 필요 없어.”몇 마디 인사를 나눈 후, 진서준은 전화를 끊었다.“확인했어요, 회춘당에 백년 영지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네요. 바로 가보겠습니다.”진서준이 소하비에게 말하자 소하비도 동참하겠다고 했다.“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다들 여기서 예린 공주를 잘 지켜. 절대 내가 없는 사이에 누구도 동생 몸에 손대게 해서는 안 돼.”소하비는 경호원들을 병원에 남겨두고 진서준과 함께 차를 타고 회춘당으로 향했다.같은 시각, 회춘당 가게 앞.서현욱은 이쁜 얼굴에 화
서양의 여성들은 남녀 관계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었고 왕실의 여성들은 더 개방적이었다.적지 않은 왕실의 여성이 여러 명의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하지만 샛터 왕실은 일반 왕실과 다르게 매우 보수적이었다.소하비 왕자조차도 아직 여자와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었다.여동생인 예린도 관계는 둘째치고 남자와 신체적인 접촉도 전혀 없었다.그런데 진서준은 예린의 옷을 벗기고 마사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진서준 씨, 다른 방법은 없나요?”소하비는 얼굴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샛터 왕실은 정조를 무엇보다 더 중시한다.진서준이 예린의 옷을 벗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샛터 왕실의 체면은 완전히 구겨질 것이다.“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내가 굳이 이런 방법을 쓸까요?”진서준은 그 말에 덤덤하게 되물었다.“근데 제 여동생은 여태껏 남자와 한 번도 접촉한 적이 없어요.”“그럼 소하비 왕자님이 선택하세요. 사람을 살릴 것인지, 아니면 여동생의 정조와 명예를 지킬 것인지.”진서준도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어떻게 선택할지는 전적으로 소하비의 책임이었다.“소하비 왕자님, 공주님 병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자칫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베컨이 옆에서 끼어들었다.“좀 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소하비는 미간을 찌푸린 채 깊은 고민에 빠졌다.바로 그때, 침대에 누워 있던 예린이 갑자기 격렬하게 기침했다.예린의 창백했던 얼굴이 이제는 종이처럼 더욱 창백해졌다.“예린아!”소하비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베컨이 다가가서 한 번 확인한 후,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공주님 병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소하비 왕자님,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진서준 씨, 오늘 일은 절대로 외부인에게 알려지면 안 됩니다.”“알겠습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샛터 왕실의 체면이 걸린 일인 만큼 진서준도 신중하게 대해야 했다.소하비와 베컨이 나간 후, 진서준은 조심스럽게 예린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진서준이 예상치 못한 건 예린의 옷 아래 숨
경호원의 얼굴이 급변하더니 바로 체내의 선천강기를 모았다.강기가 손을 감싸자 총알조차 뚫지 못하는 강력한 보호막이 형성되었다.“자업자득이야.”옆에서 구경하던 소하비가 불쑥 한마디 내뱉었다.소하비가 데려온 경호원들은 전부 자국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강자였다.맨손으로 총알을 쥐어버리는 건 이 경호원들에게 숨 쉬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하지만 소하비가 그날 밤 천하 유람선을 떠나지 않고 진서준과 교회 기사와의 전투를 봤다면 이런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쿵!둔탁한 소리와 함께 소하비는 눈앞의 광경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경호원은 진서준의 주먹의 기세를 버텨내지 못하고 그대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고 KTX에 치인 듯 시뻘건 피가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병원 바닥에도 경호원의 붉은 피가 흥건했다.“이래도 또 덤빌 거야?”진서준은 몸을 돌려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소하비가 데려온 경호원 네 명 중에는 육급 정점 대종사와 칠급 정점 대종사도 있었다.이 네 명이 힘을 합쳐서 달려든다면 진서준도 확실히 수습하기 어려울 상황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하지만 경호원 쪽에서 이미 먼저 공격한 마당에 진서준이 반격하지 않으면 이 경호원들은 진서준을 곤경에 몰아넣기 위해 더욱 기를 쓰고 달려들 것이다.진서준이 반격하자 나머지 세 경호원도 즉시 참전하려 했다.“그만둬.”하지만 의외로 소하비는 바로 경호원들을 제지했다.소하비는 자기가 데려온 경호원들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진서준이 자기 경호원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면 그만큼 진서준의 실력이 대단한 것이다.소하비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진서준에게 다가가 말했다.“진서준 씨, 당신 외엔 이제 제 여동생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발 여동생의 생명을 살려주세요. 이전의 무례함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소하비 왕자님은 우리 샛터의 얼굴입니다. 어떻게 한낱 평민에게 사과할 수 있습니까?”“맞아요, 왕자님. 그렇게 사과하면 우리나라 체면이 구겨집니다.”“절대로 이 녀석과 타
이 장면에 소하비는 순간 말문이 막혔고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베컨 닥터는 따귀를 맞고도 반격은커녕, 따귀를 날린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다니, 혹시 따귀를 맞고 머리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가?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대한민국 청년의 의술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베컨만이 알았다.방금 진서준이 따귀를 날린 후, 베컨은 갑자기 자기 머리가 맑아지고 심지어 흐릿하던 시력도 훨씬 좋아진 걸 느꼈다.세계가 공인하는 불치병이 이렇게 간단하게 치료되다니, 너무나도 무섭고 놀라운 일이었다.“내 의술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잖아.”진서준이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방금은 제가 눈이 멀어서 선생님의 뛰어난 의술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어요. 제 무례함을 용서해 주세요.”베컨은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베컨은 수십 년 동안 난치병을 연구해 왔고 본인의 병을 치료하는 데 십 년이나 넘는 시간을 투자했으나 결과를 얻지 못했다.하지만 지금 진서준의 따귀 한 대로 베컨의 병을 치료한 것만 봐도 진서준의 의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베컨 닥터, 지금 뭐 하는 겁니까?”소하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베컨을 바라보았다.“소하비 왕자님, 이분이야말로 진정한 신의입니다.”베컨은 고개를 들고 흥분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제 병은 이 신의 따귀 한 대로 완벽하게 치료되었습니다.”소하비는 그 말을 듣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고작 따귀 한 대로 불치병을 치료했다니, 영화 시나리오도 아닌 일이 현실 세계에서 일어났다고?하지만 소하비는 베컨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베컨은 자기 고집이 센 노인이었다.진서준이 뭔가 특별한 능력이 없다면 절대로 베컨의 인정을 받으며 사과까지 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어쩌면 자기 여동생 예린이 정말 구원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진 씨, 정말 베컨 닥터 불치병을 치료한 겁니까?”소하비의 질문에 진서준은 아니꼽게 대답했다.“저 사람이 더 잘 알겠죠.”“소하비 왕자님, 저는 제 조상님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
“이 청년은 내 손자보다 더 어려 보이는데 의술이 고명할 수가 없잖아요.”베컨도 물러나지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두 사람은 영어로 대화하고 있었고 진서준은 조금 알아들을 수 있었다.진서준은 베컨을 흘깃 바라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대한민국에는 개처럼 천한 놈이 딴 사람을 깔본다는 속담이 있어.”“지금 누구를 개처럼 천한 놈이라고 욕하는 거야?”베컨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샛터 왕실의 구성원이라도 베컨에게 이렇게 함부로 막말하는 사람은 없었다.그런데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젊은 대한민국 청년이 자기를 개라고 비하하고 있었다.“너 말고 다른 사람이 더 있어? 나이가 많다고 의술이 뛰어난 건 아니고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내가 너보다 못하다는 법은 없어.”진서준이 차갑게 말하자 베컨은 화가 나서 헛웃음이 나왔다.“웃기고 자빠졌네. 의학에 몸을 담근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너 같은 방자한 청년은 처음 봐.”진서준은 베컨을 자세히 훑어보더니 갑자기 화제의 방향을 바꿨다.“넌 오랫동안 눈이 흐릿하고 가끔씩 사고가 몇 초 동안 멈추는 것 같구나.”베컨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지만 곧 기운을 차리고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너 지금 뭐라고 헛소리하는 거야?”“서양 의학에서는 이걸 두뇌 경화라고 하지.”진서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일종의 불치병이야.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해.”이 청년은 도대체 어떻게 이걸 알아챈 거지?베컨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을 받아 할 말을 잃었다.진서준의 말대로 베컨은 확실히 두뇌 경화를 앓고 있었다.이 병은 현재 서양 의학으로는 완치할 방법이 없었고 단지 발병 빈율과 시간을 늦추는 것만 가능했다.하지만 이 병은 베컨만의 비밀이었고 본인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그런데 지금 자기 앞에 있는 대한민국 청년이 이를 정확히 지적하다니,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소하비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진 씨, 그 말이 사실인가요?”“사실인지 아닌지는 이 사
샛터 왕실의 로고가 새겨진 비행기가 공항에 서서히 착륙했다.막 착륙한 또 다른 비행기에서 몇몇 승객들이 그 비행기를 보고 수군거렸다.“저 비행기 로고는 처음 보는데?”“이렇게 오랫동안 비행기를 탔지만 나도 처음 봐. 혹시 부자의 개인 비행기일까요?”“그건 개인 비행기가 아니라 샛터 왕실 전용 비행기야!”조금 안목이 있는 중년 남자가 믿기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즉시 떠들썩한 반응이 일었다.샛터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였다.왕실 구성원의 재산은 포브스 부자 순위에 오른 상위 3명보다도 더 많은 자산을 자랑했다.이토록 부유하고 신분이 높은 사람이 왜 갑자기 작은 도시 서울시에 전용기를 타고 왔을까?잠시 후, 왕실 전용기의 문이 열렸고 건장한 남자 네 명이 먼저 내려왔다.주변에 위험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소하비와 그 일행이 내려왔다.“소하비 왕자, 지금이라도 돌아갈 기회가 있습니다.”베컨이 여전히 진지하게 고집을 부렸다.“그만하세요. 난 마음을 굳혔으니까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마세요.”소하비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이 노인은 자기가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자꾸 소하비의 계획을 방해하고 있었다.도대체 이 노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베컨은 소하비의 태도가 단호한 걸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공항을 나온 소하비 일행은 차를 타고 시립 병원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소하비는 진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진 씨, 저는 소하비입니다. 황예은 씨가 이미 상황을 설명했을 거라고 믿습니다.”소하비는 직설적으로 말했다.“제 여동생을 살릴 수 있다면 칠색정화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비용도 받지 않겠습니다.”칠색정화의 가격은 서울시 경제를 일으킬 정도로 엄청났지만 소하비에게는 여동생의 생명이 더 중요했다.“병원에서 기다리세요.”진서준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저희는 병원으로 가는 중입니다. 되도록 빨리 오세요.”전화를 끊고 소하비는 자기
“응? 그 왕자가 날 만나서 뭘 하려고?”진서준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유람선에서 소하비는 진서준이 필요한 약재를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사 갔다.“소하비 여동생이 위독하대.”황예은이 차분하게 말하자 진서준은 흠칫 떨었다.“뭐라고? 그 왕자가 칠색정화를 사서 동생을 살리려던 거 아니었어? 혹시 칠색정화가 효과가 없었던 거야?”“구체적인 상황은 소하비가 얘기하지 않았어. 그저 네 도움이 필요하다고만 했어.”“물론 도울 수 있어. 근데 나도 조건이 있어. 그 칠색정화을 내가 받아야겠어.”진서준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아무 조건 없이 소하비를 돕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소하비의 여동생을 구하는 대가로 진서준이 꼭 필요한 칠색정화를 손에 넣어야 했다.“난 이미 그 요구를 말했어. 소하비도 동의했어. 오늘 밤에 서울에 도착할 거야.”황예은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칠색정화가 진서준에게 중요한 약재라는 걸 잘 아는 황예은은 진서준이 요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소하비에게 이렇게 제안할 것이다.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겪고 난 황예은은 이제 진서준과 같은 편이었다.“좋아, 그럼 오늘 밤 그 왕자가 오기만을 기다리면 되겠네.”진서준은 순간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칠색정화를 되찾을 기회가 이렇게 생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진서라를 치료하는 목표가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오빠,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기뻐해?”진서라가 궁금해하며 묻자 진서준은 웃으며 설명했다.“네 독을 치료할 약재를 하나 더 찾았어.”“오빠, 그렇게 고생할 필요 없잖아.”진서라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감옥에서 나온 이후 여태껏 가족을 위해 힘쓰고 있는 진서준을 보니 진서라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너랑 엄마만 무사하면 난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아.”진서준은 확고한 눈빛을 보이며 대답했다.가족이 함께 오손도손 지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다.얼핏 보기에 단순하고 아름다운 바람이지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이제 4대 종문 회전에 참가해
진서준은 이미 1년 동안 유지수를 만나지 못했다.현재 유지수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진서준도 확신할 수 없었다.왕권 부귀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승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실력이 약할 리 없었다.하지만 유지수와 직접 겨뤄보기 전까지 진서준은 유지수를 무조건 죽인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하지만 허사연을 안심시키고 쓸데없는 걱정하지 않도록 진서준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 마, 유지수가 왕권 전승을 얻었다고 해도 나보다는 못해.”진서준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허사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다행이야...”그러나 허사연은 다시 뭔가 생각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유지수 스승은 실력이 분명 강력할 거야. 네가 유지수 스승과 유지수 본인을 동시에 상대해야 할까 봐 걱정돼.”진서준은 이미 유지수의 스승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지선 급의 절세 강자인 구지범이 바로 유지수의 스승이었다.천용 반지 내의 힘은 진서준이 명주시 바다에서 소모해 버렸고 현재까지도 회복되지 않았다.이 상태에서 정말 구지범을 만나게 된다면 진서준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승산이 없으면 도망가면 돼. 걱정 마.”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허사연의 예쁜 얼굴을 쓰다듬었다.“넌 지금 건강을 빨리 되찾는 게 가장 중요해. 나머지 일은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걱정하지 마.”“서준아, 난 너무 쓸모없는 것 같아. 네게 폐만 끼치고 한 번도 도움을 주지 못한 것 같아.”허사연이 진심으로 자책했다.“아니야, 네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최고의 선물이야.”진서준은 허사연을 꼭 껴안았다.“이제 그만 좀 해. 나 아직 여기 있어.”허윤진은 입술을 삐쭉 내밀며 두 사람이 자기를 무시하고 대놓고 꽁냥꽁냥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허사연은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실 허사연도 허윤진이 방에 있다는 걸 까먹었다.“그만 놔줘...”허사연은 얼굴이 붉어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진서준은 허사연이 쑥스러움이 많다는 걸 알기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그
“진서준, 빨리 도망쳐... 도망쳐...”악몽을 꾸는 듯한 허사연은 점점 더 흥분한 상태로 말을 이었다.그 모습을 본 진서준은 양손으로 허사연의 손을 꽉 잡았다.“미안해, 사연아. 내가 널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어. 네가 나랑 함께한 이후로 난 너에게 부귀영화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이렇게 끔찍한 경험이나 겪게 했어. 진심으로 미안해, 널 볼 면목이 없어.”진서준의 눈에는 자책이 가득했다.허사연은 익숙한 안전감을 느낀 듯, 잔뜩 찌푸렸던 미간은 서서히 펴지고 불온정한 상태는 점점 안정되었다.진서준의 양손에 허사연의 손가락이 전부 들어갔는데 지금 이 열 손가락은 모두 부러져 있었다.“유씨 가문, 너희는 피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할 거야.”진서준의 눈에서는 냉혹한 기운이 감돌았다.진서준은 속으로 유씨 가문이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굳게 맹세했다.며칠이 지나는 동안 진서준은 집에서 허사연을 세심하게 돌봤고 때로는 밤을 새워가며 허사연의 곁을 지켰다.단지 허사연이 다시 악몽을 꾸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어느 날 아침.그동안 의식이 없던 허사연이 드디어 잠에서 깨어났다.의식을 되찾은 허사연은 먼저 주위를 둘러보았다.텅 빈 낯선 방이 허사연의 시야에 들어왔다.“내가 살아있었다고? 서준이 구해준 거야?”허사연은 양손을 침대에 대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갑자기 자기 손이 말을 듣지 않는 걸 느꼈다.아무리 애써도 허사연은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내 손...”허사연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슬픔이 솟구쳤다.본래 진서준의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던 허사연은 지금 오히려 진서준의 짐이 되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셈이었다.“사연아, 깼어?”진서준은 의식을 회복한 허사연을 보자 기쁨에 차서 다가갔다.진서준을 본 허사연은 목이 메어 눈물이 흘러나왔다.“서준아. 난 다시는 널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그날 밤, 유지수가 허사연에게 가한 고문은 그녀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한낱 평범한 여자가 이토록 잔인하게 변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