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준은 바로 결혼반지를 빼고 목에서 목걸이를 빼더니 반지 펜던트를 꺼내 손가락에 끼웠다.진연우가 궁금해서 물었다.“그게 뭐야?”남태준은 설레하며 대답했다.“배표.”“딱 봐도 반지인데 무슨 배표야?”진연우가 경악하며 물었다.“네가 직접 올라가려고?”남태준은 경계하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엄숙하게 말했다.“지금 당장 지원 요청하고 해경을 보내 저 배를 추적하게 해. 내가 신호를 보내면 바로 저 배를 수색 체포해.”“저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군데?”진연우는 어리둥절했다. 지우는 보이지 않고 그 어떤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남태준이 왜 저 배가 의심스럽다고 단정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남태준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마약패 빅보스.”이윽고 그는 재빨리 배에 올랐고 진연우는 부두에 서서 바라보았다.안전 검사를 할 때 남태준이 당당하게 그 반지를 꺼내니 쉽게 통과할 줄은 몰랐다.진연우는 남태준의 판단을 믿고 별다른 생각없이 바로 전화로 지원을 요청했다.지우는 눈앞이 캄캄하고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느낌이었다.아마 여러 명 있는 것 같았다.그때 그녀의 눈이 풀렸다.지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눈앞의 빛에 적응했다. 아담한 방 안의 가죽 소파에 두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지우는 그녀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임다희, 그리고 준영이라고 하는 그녀의 친구인 것 같은데 전에 5성급 레스토랑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지우가 임다희의 드레스에 커피를 뿌리고 옷 브랜드 측에 몇천만 원을 냈었다.지우가 다시 주변을 둘러보니 정장 차림의 경호원 4명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준영은 손을 뻗어 그녀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머리카락을 긁어모으고는 두 손을 소파에 유유히 얹었다. 흐릿한 눈을 가늘게 뜨고 지우를 가만히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준영의 몸에서 지우는 남성적인 카리스마를 느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무서운 욕망이 배어 있었다.지우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임다희를 바라보았다.임다희는 나른하게 준영의
준영은 재밌다는 듯 임다희를 밀어내고 지우 앞으로 가서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은 지우의 얼굴을 만졌다.지우의 미모를 감상하며 시선은 점차 그녀의 하얀 목선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고 살짝 느슨한 옷깃을 통해 섹시한 쇄골이 보였다.“이렇게 예쁜 얼굴을 망가뜨리기엔 너무 아깝지. 하늘이 내려준 복 받은 몸이잖아?”지우는 온몸에 소름이 돋고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었으며 모든 세포가 이 여자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었다.그녀는 이 상황이 괴롭고 역겹고 당황하고 두려웠지만 조금도 내색하지 못하고 애써 담담한 척 강인하게 행동했다.이미 남태준에게 구조요청 메시지를 보냈으니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했다.“임다희가 그쪽 여자야?”그러자 준영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맞아. 근데 왜?”“임다희는 지금 당신을 이용해 전 남자친구에게 복수하고 있어. 그건 임다희가 아직 전 남자친구를 못 잊었다는 얘기지. 기꺼이 이용당하고 싶어? 화도 안 나?”준영은 살짝 넋이 나갔다.임다희는 화가 치밀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헛소리!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임다희는 마음이 어지러워 바짝 긴장해서 말했다.“이 여자 헛소리 듣지 말아요. 난 당신을 이용해 남태준에게 복수하려는 게 아니라 당신을 도와 남태준을 죽이려는 거예요.”지우가 코웃음을 치더니 차갑게 말했다.“내 남편을 죽이고 싶으면 직접 총을 쏘거나 나를 이용해 죽이면 되지. 물론 나도 함께 죽일 수 있고. 근데 왜 남자들을 이용해 날 능욕하고 약물을 주입하려고 해? 그건 이분의 물건을 낭비하는 일이고 또 너의 사적인 원한을 풀려는 목적 아니야?”임다희는 순간 안색이 창백해졌다.준영은 뜨거운 눈으로 만족스러운 듯 지우를 바라보았다.“아주 침착하고 덤덤하군. 정말 죽음이 두렵지 않아?”그러자 지우가 냉정하게 말했다.“두려워. 나 지금 아주 두려워하고 있어. 하지만 내가 두려워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져?”“남태준 옆에 오래 있어서 그런가? 용감하고 침착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꼭 남태준을 닮
지우는 준영의 뜻을 알아챘다.알고 보니, 임다희도 준영의 도구일 뿐이었다.“그러니까 애초에 내 남편을 학대해서 불구로 만든 것도 모자라 바다에 내던진 사람이 당신이란 거야?”지우가 한을 꾹 참고 물으니 준영이 차갑게 웃었다.“그때 남태준을 죽였어야 했는데. 숨이 붙어 있는 줄 몰랐어. 명줄이 길어 용케도 살아났고 심지어 원래 자리로 돌아가 여전히 나와 맞서고 있어.”지우는 크게 당황했다.남태준이 그동안 애타게 찾던 마약 밀매업자가 여자였다니.아주 무서운 여자였다. 만약 남태준이 온다면 위험하지 않을까?지우는 걱정하기 시작했다.준영은 소파에 다시 앉아 탁자 위의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이를 악물고 또박또박 말했다.“내가 남태준 때문에 요 몇 년 동안 얼마나 큰 손해를 본 줄 알아?”지우는 침묵했고 벌써 당황하기 시작한 임다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떠나려 했다.“최소 1조 원의 손해를 봤어.”준영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술잔을 흔들며 바라보았고 숨결을 약간 헐떡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처음에는 스파이로 들어와 내 부하를 한 명 한 명 배신하면서 내 사업을 조금씩 망쳤어. 그러다 나중에는 아예 나를 물고 늘어졌고 내 사업은 계속 문제가 생겼어.”“내가 남태준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거야.”“그쪽을 너무 흉하게 죽이진 않을 거야.”준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지우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어쨌든 너와 남태준은 모두 임다희의 손에 죽은 거로 보여야 하니 한 방에 목숨을 끊어주지. 몸이 더럽혀지는 일도, 약물이 투입되는 일도 없을 거야. 간단할수록 좋아. 그래야 경찰이 나를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임다희는 당황해서 긴장한 채 준영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지금 나더러 죄를 뒤집어쓰라는 거예요?”준영은 그녀의 턱을 만지며 능글맞은 말투로 속삭였다.“네가 그랬잖아. 나를 도와 남태준을 죽여주겠다고?”임다희는 무서워 목소리가 떨렸다.“남태준을 죽여주겠다고 약속한 건 맞지만 난 죽기 싫다고요! 당신이 내 뒤를 봐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
준영이 명령했다.“너희들, 남태준 아내를 데리고 내려가서 잘 가둬. 몸에 손대지 말고 잘 자키고 있어. 알아들어? 경찰이 절대 이 여자 몸에서 어떠한 단서도 발견해선 안 돼.”“네. 보스.”경호원은 즉각 대답하더니 지우에게 다가가 예의 바른 제스처를 취했다.“가시죠.”그들은 감히 지우에게 손도 대지 못했다.지우는 가면서 마지막으로 임다희를 째려보며 그녀는 벌을 받아 마땅하고 죽어도 아깝지 않다고 여겼다.처음에 지우는 남태준이 그녀를 구하러 오기를 바랐다.하지만 지금은 남태준이 절대 그녀를 구하러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가 절대 배에 오르지 말고 안전하기를 바랐다. 그들의 매복에 걸리지 않기 위해 절대 혼자 와서도 안 되었다.지우는 방에 갇혔고 밖에는 경호원 몇 명이 지키고 있었다.시간은 1분 1초 흘러갔다.지우는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고 안절부절못하며 창밖의 풍경을 내다보았다. 너무 괴롭고 허망하고 무기력했다.“태준 씨, 제발 오면 안 돼요. 제발 나 구하러 오지 말아요.”지우는 마음이 찌릿찌릿 아파 났다. 남태준이 배에 타면 사살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수백 조각으로 찢어지는 듯 떨리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배를 쓰다듬으며 울먹였다.“아가야, 넌 엄마와 같이 죽는 거니 무서워할 거 없어. 이번에는 아빠 데리고 가지 말자. 응? 아빠는 살아야 해. 반드시 잘 살아가야 해.”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지우는 허기가 졌다. 그녀가 창밖을 내다보니 보트 한 대가 이쪽에서 천천히 떠나고 있었다.그녀는 급히 창문에 엎드려 그 떠나는 보트를 자세히 보았다.남태준을 태운 보트만 아니면 되었다.보트는 아주 빨리 떠났지만 그녀는 준영의 뒷모습을 확실히 보았다.준영은 이 크루즈에 물샐틈없는 그물을 치고 남태준이 배에 오르기를 기다리며 자신은 먼저 발을 뺐다.남태준과 지우를 죽인 죄명은 아마 임다희가 뒤집어쓸 것으로 보였다.지우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더니 침대로 돌아가
그녀의 심장 박동은 쿵쾅쿵쾅 이백 이상을 뛰어넘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고 아랫배에서 통증이 전해졌다.남태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지우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뚝 떨어졌고 긴 숨을 내쉬고는 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흥분해서 울고 싶은 것도 아니고 슬퍼서 울고 싶은 것도 아니라 너무 놀라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남태준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하고 귓가에 위로했다.“여보. 괜찮아. 소리 내지 마. 나 왔어.”지우는 어렴풋이 아픈 아랫배를 가리고 천천히 내려앉더니 두 발이 나른해졌다.남태준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고 서둘러 수도꼭지를 열고 나지막이 물었다.“왜 그래?”“왜 그렇게 사람을 놀라게 해요?”지우가 눈물을 머금고 중얼거리자 남태준은 미안한 마음에 설명했다.“이 방에 갇혀 있는 사람이 너인지 확실하지 않아서 숨어야 했어. 너인 거 확신하고 나온 거야.”지우는 눈살을 찌푸리고 아랫배의 통증을 참으며 물었다.“언제 왔어요?”“배가 출발하기도 전에 올라왔어.”남태준은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느끼고 긴장하며 물었다.“너 왜 그래? 어디 아파?”지우가 낮은 소리로 나무랐다.“당신 때문에 유산할 것 같아요.”유산이라는 두 글자에 남태준은 한바탕 놀라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 긴장하고 당황해서 물었다.“당신... 임신... 했어? 언제 임신했어? 난 전혀 몰랐어.”지우는 서둘러 그의 입을 막고 긴장된 표정으로 밖을 내다봤다.그녀는 급히 걸어가서 화장실 문을 닫고 이번에는 샤워기도 틀었다.그러자 화장실은 온통 물소리뿐이었다.남태준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호흡이 어지러워 긴장한 채로 지우를 바라보았다. 흥분한 눈빛은 죄책감에 휩싸여 복잡하기 그지없었다.그가 가장 설레고 행복한 순간이어야 하는데 이런 결말일 줄은 몰랐다.그가 오래도록 기다린 두 사람의 아이가 왔는데 자신 때문에 유산했다니.남태준은 순간 이런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며 죄책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지우의 손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미
지우는 그의 품에서 고개를 젖히고 물었다.“그럼 우리 이제 어떻게 해요?”“준영은 이미 떠났고 지금 배에는 저격수들밖에 없어. 전부 내가 배에 오르기만 기다리고 있어.”지우는 경악해서 물었다.“당신도 준영을 알아요?”남태준이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나 계속 위쪽 파이프에 숨어 있었어. 너희가 선실에서 한 말 모두 들었어.”“내가 나타나지 않는 한 그들은 움직이지 않을 거야.”“그럼 우리 어떻게 탈출해요?”“구조를 기다려야지.”지우가 의문스러운 듯 그를 바라보자 남태준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그녀 앞에 흔들었다.지우는 여전히 충격을 받은 가운데 남태준은 자신 있게 웃으며 진연우에게 연락해 배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안팎으로 협력하여 구조를 기다렸다.“당신은 계속 화장실에 숨어 있을 거예요?”지우가 묻자 남태준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방에 감시 카메라가 있어. 저자들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여기 숨어 있는 게 안전해.”“그래요 그럼.”“의심받지 않게 넌 어서 나가봐.”“꼭 몸조심해요. 절대 무슨 일 생기면 안 돼요.”지우가 그의 손을 잡고 당부하자 남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답했다.“걱정하지 마. 나를 믿어. 경찰도 믿고.”지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수도꼭지와 샤워기 물을 끄고는 덤덤하게 화장실에서 나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녀의 마음은 온통 남태준에게 있었다.깊은 밤이 되자 밖에 있는 사람이 음식을 가져다주었다.지우는 그 안에 독이 들었을까 봐 배가 고파도 먹지 않았다.한밤중이 되자, 갑자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지우가 긴장해서 창문에 엎드려 밖의 동정을 살피니 아주 큰 어선 한 척이 다가왔다.그녀는 화장실에 달려가 남태준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여보. 밖에 어선 한 척이 다가왔어요.”“어민이 아니라 사복 해경이야.”남태준은 자신만만하게 웃음기를 띠었다.“배에 사고가 난 것처럼 가장해서 구조하러 온 거야.”지우는 깜짝 놀랐다.그때, 한바탕 총소리가 울리자 지우
길고 애타는 기다림이었고 지우는 화장실에 숨어 옴짝달싹 못 했다.그녀는 긴장돼서 미칠 것 같았지만 감히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나가서 남태준의 짐이 될 수 없었으니 그녀는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눈물은 무너진 둑처럼 펑펑 쏟아졌고 조마조마한 마음은 목구멍까지 차올라 찌릿찌릿 아팠다.그녀는 하염없이 기도만 했다.그 어느 때보다 긴 시간이었다.지우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종아리를 끌어안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반세기를 넘은 듯한 고통이 이어졌고 마침내 문소리가 나더니 남태준의 소리가 들렸다.“왜 바닥에 앉아 있어?”무릎에서 고개를 든 지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했다.남태준이 그녀를 부축하려고 몸을 웅크리고 앉자 지우는 남태준의 목을 덥석 끌어안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임신 호르몬이 그녀의 기분에도 영향을 미쳐 자제할 수 없이 펑펑 울었다.남태준은 그런 지우가 안쓰러워 그녀를 꼭 껴안고 등을 쓰다듬으며 다독였다.“왜 그래? 많이 놀랐어? 왜 이렇게 슬프게 울어?”지우는 오열하며 말했다.“왜... 이제야 돌아와요?”남태준은 그녀의 말투에서 걱정과 슬픔을 들었다.“미안해. 내가 늦게 돌아왔어. 나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나 아주 멀쩡해.”지우는 그의 품에 안겨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순간 남태준이 그녀를 가로로 안아 올리자 놀란 지우는 허우적대며 말했다.“나 걸을 수 있어요. 얼른 내려줘요.”“너를 안고 싶어서 그래.”남태준은 그녀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밖에 전부 당신 동료들이죠?”“맞아.”“그럼 빨리 내려줘요. 다들 보면 어떡해요?”남태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내가 내 아내를 안는데 뭐가 문제야?”지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부끄러워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가는 길에 그녀는 많은 사복 경찰이 범인을 호송하고 선실을 나가는 것을 보았다.갑판에는 선원과 선장 등도 수갑이 채워진 채로 다른 저격수들과 함께 묶여 있었다.크루즈는 안성을 향해
남태준은 그녀와 데이트할 때 고급 장소에 가지 않았고, 비싼 명품 선물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운전하는 차도 모두 싼 국산 차였다.임다희는 남태준 가문의 돈은 모두 부모님의 것이고 그룹도 그의 형들이 맡아 하고 남태준은 그저 박봉의 경찰일 뿐이니 미래가 막막하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녀는 남태준을 포기하고 스타의 꿈을 계속 좇는 것을 선택했다.지금 보니 피맺힌 교훈이 아닐 수 없었다.배가 부두에 접근했다.남태준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체포한 범인을 배에 인수인계하느라 바빴다.지우가 조심스럽게 혼자 배에서 내리는데 뒤에서 다른 경찰관의 목소리가 들렸다.“형수님,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지우는 고개를 돌려 사복 경찰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괜찮아요. 감사합니다.”“그럼 형수님 조심하십시오.”지우가 호기심에 물었다.“준영은 잡았어요?”“준영이요? 그게 누구죠?”지우는 순간 입을 틀어막고 약간 당황했다.이 사복 경찰은 아마 배후의 보스가 준영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만약 그녀의 말실수로 인해 남태준에게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아니에요.”지우는 급히 말하고는 남태준에게 잽싸게 뛰어갔다.남태준 곁으로 가서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여보.”남태준은 뒤돌아보더니 범인을 동료에게 맡기고 지우의 손을 잡고 물었다.“왜 그래?”지우는 긴장하며 뒤에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내가 방금 실수로 준영의 이름을 말했는데 저 사람 당신 동료 맞죠? 나에게 준영이 누구냐고 묻더라고요.”그러자 남태준이 엷게 웃어 보였다.“괜찮아. 뭘 걱정하는 거야?”“만약 저 사람이 스파이면 어떡해요? 신분이 밝혀진 걸 준영에게 미리 알려주면 어떡해요?”남태준은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먼저 너 집까지 바래다주고.”“괜찮아요. 나 혼자 택시 타고 가면 돼요.”지우가 거절하자 남태준은 말투가 엄숙해졌다.“일이 아무리 중요하고 바쁘더라도 네 안전만큼 중요하지 않아. 나랑 집에 가.”지우는 빙긋 웃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