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애타는 기다림이었고 지우는 화장실에 숨어 옴짝달싹 못 했다.그녀는 긴장돼서 미칠 것 같았지만 감히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나가서 남태준의 짐이 될 수 없었으니 그녀는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눈물은 무너진 둑처럼 펑펑 쏟아졌고 조마조마한 마음은 목구멍까지 차올라 찌릿찌릿 아팠다.그녀는 하염없이 기도만 했다.그 어느 때보다 긴 시간이었다.지우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종아리를 끌어안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반세기를 넘은 듯한 고통이 이어졌고 마침내 문소리가 나더니 남태준의 소리가 들렸다.“왜 바닥에 앉아 있어?”무릎에서 고개를 든 지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했다.남태준이 그녀를 부축하려고 몸을 웅크리고 앉자 지우는 남태준의 목을 덥석 끌어안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임신 호르몬이 그녀의 기분에도 영향을 미쳐 자제할 수 없이 펑펑 울었다.남태준은 그런 지우가 안쓰러워 그녀를 꼭 껴안고 등을 쓰다듬으며 다독였다.“왜 그래? 많이 놀랐어? 왜 이렇게 슬프게 울어?”지우는 오열하며 말했다.“왜... 이제야 돌아와요?”남태준은 그녀의 말투에서 걱정과 슬픔을 들었다.“미안해. 내가 늦게 돌아왔어. 나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나 아주 멀쩡해.”지우는 그의 품에 안겨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순간 남태준이 그녀를 가로로 안아 올리자 놀란 지우는 허우적대며 말했다.“나 걸을 수 있어요. 얼른 내려줘요.”“너를 안고 싶어서 그래.”남태준은 그녀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밖에 전부 당신 동료들이죠?”“맞아.”“그럼 빨리 내려줘요. 다들 보면 어떡해요?”남태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내가 내 아내를 안는데 뭐가 문제야?”지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부끄러워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가는 길에 그녀는 많은 사복 경찰이 범인을 호송하고 선실을 나가는 것을 보았다.갑판에는 선원과 선장 등도 수갑이 채워진 채로 다른 저격수들과 함께 묶여 있었다.크루즈는 안성을 향해
남태준은 그녀와 데이트할 때 고급 장소에 가지 않았고, 비싼 명품 선물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운전하는 차도 모두 싼 국산 차였다.임다희는 남태준 가문의 돈은 모두 부모님의 것이고 그룹도 그의 형들이 맡아 하고 남태준은 그저 박봉의 경찰일 뿐이니 미래가 막막하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녀는 남태준을 포기하고 스타의 꿈을 계속 좇는 것을 선택했다.지금 보니 피맺힌 교훈이 아닐 수 없었다.배가 부두에 접근했다.남태준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체포한 범인을 배에 인수인계하느라 바빴다.지우가 조심스럽게 혼자 배에서 내리는데 뒤에서 다른 경찰관의 목소리가 들렸다.“형수님,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지우는 고개를 돌려 사복 경찰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괜찮아요. 감사합니다.”“그럼 형수님 조심하십시오.”지우가 호기심에 물었다.“준영은 잡았어요?”“준영이요? 그게 누구죠?”지우는 순간 입을 틀어막고 약간 당황했다.이 사복 경찰은 아마 배후의 보스가 준영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만약 그녀의 말실수로 인해 남태준에게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아니에요.”지우는 급히 말하고는 남태준에게 잽싸게 뛰어갔다.남태준 곁으로 가서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여보.”남태준은 뒤돌아보더니 범인을 동료에게 맡기고 지우의 손을 잡고 물었다.“왜 그래?”지우는 긴장하며 뒤에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내가 방금 실수로 준영의 이름을 말했는데 저 사람 당신 동료 맞죠? 나에게 준영이 누구냐고 묻더라고요.”그러자 남태준이 엷게 웃어 보였다.“괜찮아. 뭘 걱정하는 거야?”“만약 저 사람이 스파이면 어떡해요? 신분이 밝혀진 걸 준영에게 미리 알려주면 어떡해요?”남태준은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먼저 너 집까지 바래다주고.”“괜찮아요. 나 혼자 택시 타고 가면 돼요.”지우가 거절하자 남태준은 말투가 엄숙해졌다.“일이 아무리 중요하고 바쁘더라도 네 안전만큼 중요하지 않아. 나랑 집에 가.”지우는 빙긋 웃
지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허윤미에게 응답했다.주치의는 그녀의 몸을 검진하고 별일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날, 남태준은 집에 없었지만 허윤미가 다녀간 후 몇몇 형님들이 하나둘씩 선물을 갖고 그녀를 보러왔다. 지우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또 임신 경험과 주의사항들을 전했다.집안의 몇몇 며느리들은 모두 아이를 낳았고 경험이 풍부하여 산부인과 의사들과 견줄 만했다. 그야말로 육아 백과사전이었다.깊은 밤.지우는 혼자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낮잠을 너무 많이 잔 탓에 정신이 너무 또렷해 발코니 바깥의 야경을 보고 있었다.속으로는 남태준을 생각하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남태준이 대체 이 아이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추측할 수 없었다.아이가 와서 기분이 나쁜 건 아닐까?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남태준에게 메시지를 보내려고 핸드폰을 들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는 지금 매우 바쁠 것이다. 집에 돌아올 시간도 없으니 휴대폰을 볼 시간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지우는 마음이 울적해 휴대폰을 놓으려는데 평소 잠잠하던 가족 채팅방에서 메시지가 올라왔다.이건 남씨 가문의 가족 채팅방이었다.남태준의 고모 남연희가 만든 단톡방이었는데 그녀가 온 가족을 모두 끌어들였기에 다들 나오지 못하고 평소에는 거의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지우가 클릭하여 보니 남연희가 남태준의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남창민: [애들이 모두 결혼해서 자기 가정을 이뤘고 자식도 뒀으니 이제 내 인생은 원만해.]남연희: [오빠, 태준이네도 아이가 생겼어요?]남창민: [그럼. 아주 큰 경사가 났어.]허윤미: [아가씨. 지우 임신했어요. 두 사람 아주 행복하고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남연희: [새언니 걱정 마세요. 태준이 그 고약한 성격 때문에 나 감히 태준이 아내 못 건드려요.]허유미: [지우는 아가씨를 존경해요. 우리 서로 존경하며 지내요. 네?]남창민: [모두 한 가족끼리 서로 상처 주는 소리는 하지 마. 가화만사성이라잖아.]남연희: [허
지우의 팔자는 원래 나쁜 편인데 앞으로 어떡해야 할까?그날 밤, 지우는 잠이 오지 않았다.다음 날 아침, 그녀는 맥없이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몇 분 동안 토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은 후 서재에 가서 일했다.그녀는 일을 반쯤 하고도 괴로운 마음을 참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려 맥없이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서서히 사색에 빠졌다.눈꺼풀이 천천히 내려가고 무거워지며 점점 잠에 빠져들었다....꿈속에서 맑은 향기가 코를 찔렀는데 익숙하고 좋은 냄새가 지우의 콧속으로 들어왔다.그러자 그녀의 입술 판은 촉촉하고 따뜻한 무언가에 물렸다.지우는 어렴풋이 눈을 뜨고 바로 앞에 놓인 확대된 얼굴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남태준이었다.그가 돌아왔다니. 그녀가 잠든 사이에 몰래 키스하다니.지우가 고개를 뒤로 빼자 남태준은 그녀의 머리를 낚아채서 팔로 끌어당겼다.“음!”지우는 그의 가슴을 밀었다.지우가 밀면 밀수록 남태준은 더욱 힘을 주었고 아예 지우를 안아 옆 소파에 앉히고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진한 키스를 이어갔다.지우는 짙은 키스에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진한 키스에 만족한 남태준은 그제야 지우를 천천히 놓아주고 이마로 지우의 이마를 댔다. 두 사람은 숨을 헐떡이며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고 주위의 공기도 점점 후끈 치솟았다.“나 보고 싶었어?”남태준은 그녀의 가는 허리를 끌어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지우는 부끄러운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너 보고 싶었어.”남태준은 그녀의 아랫배를 어루만지며 물었다.“아이는 괜찮아?”“의사가 봤는데 별다른 이상은 없대요.”남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움켜쥐고 눈살을 찌푸린 채 수심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너 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 보여. 우울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요즘 너무 바빠서 네게 소홀해서 기분이 나쁜 거야?”지우는 입술을 오므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럼 말해봐. 컨디션이 왜 이렇게 안 좋은지, 왜 계속 우울해 있는지.”지우는 그
남태준은 궁금한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 단톡방을 클릭해 열심히 보았다.그는 약간 침울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단체 채팅방에서 탈퇴했다. 또 지우의 휴대전화를 들고 그녀의 손가락을 잡고 지문을 눌러 잠금을 풀더니 말없이 지우도 단체 채팅방에서 나가게 했다.그러자 지우가 경악했다.“그러면 고모님이 화내실 거예요!”남태준은 코웃음을 치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바로 남연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지우는 그의 이런 행동을 보며 매우 긴장되었고 조용히 그를 지켜보았다.휴대전화 너머 남연희가 기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태준아. 얼마 만에 고모한테 전화한 거야? 무슨 일 있어?”남태준은 차갑고 엄숙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남 여사님. 내가 한 번만 말씀드리는데, 내 아내에게 예의를 차리고 서로 존중한다면 당신은 여전히 내 고모이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린 서로 낯선 사람이에요.”“태준아 너 그거 무슨 말이니? 내가...”남연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태준이 말을 이었다.“그리고, 내 아내가 남자아이를 임신했든 여자아이를 임신했든 우리 가족들은 전부 기뻐하고 반길 거예요. 외부인인 당신은 함부로 지적할 자격 없어요.”“너!”남연희는 화가 나서 숨이 차오르지 않았다.“너 양심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내가 왜 외부인이야?”“딸은 손해 보는 물건이라면서요? 남의 집안을 위해 키우는 거라면서요? 딸은 값어치 없고 태어난 순간부터 이 집안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당신도 딸이잖아요? 그렇게 자기 스스로를 비하하면서도 우리가 당신을 가족으로 여기길 바라세요? 너무 염치없는 것 아니에요?”남연희는 화가 나서 버럭 화를 냈다.“남태준! 내가 네 고모야!”“스피커 폰으로 돌릴 테니까 지금 내 아내에게 사과하세요.”“나더러 손아랫사람에게 사과하라고? 꿈도 꾸지 마!”“지금부터 당신은 내 고모가 아니야.”남태준이 단호하고 차가운 태도로 말하자 남연희는 이를 갈았다.“우리 집안에서 감히 날 이렇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네 아빠도 나를 예뻐하
지우는 입술을 오므리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남태준을 보았다.그는 여유롭게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눈빛은 마치, 용서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하지 말고 전부 지우가 내키는 대로 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지우는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고모님, 저 화 안 났어요.”“하지만 네 남편이 화가 났잖아. 방금 내게 전화해서 한바탕 나무라더니 지금은 아예 내 번호를 차단했어.”지우는 웃음을 참고 말했다.“아. 그러셨군요.”“내가 너희 부부에게 사과하마. 네 남편에게 차단 해제 하라고 전해줘. 내가 태준이 형제들을 친 자식처럼 대했는데 어떻게 인연을 끊어?”“고모님, 제가 잘 얘기해 볼게요. 감히 어른에게 화를 내다니. 정말 철이 없네요.”남연희가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럼. 역시 네가 철이 들었어.”“네. 그럼 이만 끊을게요. 제가 태준 씨에게 고모님 차단 해제하라고 말할게요.”“그러렴. 임신 초기에는 특별히 몸조심해야 돼.”갑작스러운 관심에 지우는 경악하며 남태준을 바라보았다.보아하니 남태준의 방법이 먹힌 듯했다.“감사합니다.”지우는 감사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고 기뻐하며 말했다.“고모님 전에는 내가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나를 싫어하더니 이젠 먼저 나를 관심해주고 있어요.”남태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덤덤하게 말했다.“원래 그런 사람이야. 우리 고모 같은 어른을 상대하려면 반드시 강력하게 나가야 해.”지우는 남태준의 휴대전화를 잡고 그에게 건네주며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여보. 고모님 차단 해제 해요. 이미 사과까지 했잖아요.”남태준은 휴대전화를 건네받더니 고개를 숙이고 조작하며 나지막이 속삭였다.“앞으로 절대 비굴하게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마. 알겠어?”“네.”“굳이 잘 보이려고 노력하겠다면 그 상대는 반드시 나여야만 해.”지우는 그의 잘생긴 얼굴에 뽀뽀하고 그의 목을 껴안고 말했다.“계속 당신이 내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데요?”남태준은 차단을 해제한 후 휴대전
“네 마음이 변할 수도 있잖아?”남태준이 되묻자 지우는 생각 없이 툭 내뱉었다.“난 절대 변하지 않아요.”그러자 남태준이 피식 웃었다.“어떻게 미래를 장담할 수 있어?”“당신은 참 이성적이에요.”지우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하자 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별장을 걸어 다니며 진심으로 걱정하는 부분을 말했다.“난 너를 아주 사랑해. 만약 내가 100살까지 살 수 있다면 난 너를 100살까지 사랑할 거야. 하지만 내가 오래 살지 못한다면 우리 부모님과 형님 내외들이 내 재산을 나눠서 네가 별로 못 가질까 봐 걱정이야. 그럼 넌 어떻게 살아가?”알고 보니, 이것이 바로 그가 장담할 수 없는 걱정이었다.자기 마음이 변할까 봐 걱정한 것이 아니었다.지우는 그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졌다....일주일 후.깊은 밤, 찬 바람이 몰아치는 외딴 섬의 모퉁이에 보트 한 척이 천천히 다가왔다.밝은 등불이 선실 전체를 비추고 있었는데 갑판 위에 총을 든 남자가 서 있었다.배가 접안하자 남자는 배에서 잠시 기다렸다.검은 그림자가 나무숲에서 나와 배에 올랐다.“준비 끝났습니다. 보스.”준영이 남자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잘했어. 배 출발시켜.”남자가 막 돌아서자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소음저격총의 총알이 멀리서 날아와 총을 든 남자를 단박에 사살했다.남자는 순식간에 쓰러졌고 준영은 놀라서 얼른 기관총을 집어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또 둔탁한 총소리가 울렸다.팔을 적중당한 준영은 아파서 이목구비가 잔뜩 일그러졌다.곧이어 사방에서 경찰들이 쏟아져 나왔고 바다에서도 요트 몇 척이 그녀의 보트를 에워쌌다.준영은 피범벅이 된 팔을 감싼 채 걸어오는 경찰관들을 바라보았다. 음산한 시선으로 남태준을 노려보며 입가에 냉소를 머금었다.죽음이 임박했지만 그녀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쉬움만 있을 뿐이었다.진연우는 수갑을 꺼내 한 손에는 총, 한 손에는 수갑을 들고 여러 명이 함께 배에 올라 준영에게 수갑을 채웠다.남태준이 차갑
임신 후기, 지우가 머리를 감고 샤워하는 일은 모두 남태준이 전담했다.지우가 손을 댈 필요가 없었다.예전에 그녀는 자신이 남태준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남태준이 그녀의 생명처럼 느껴졌다. 남태준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아기도 작은 천사였다.임신 후기 배가 좀 무겁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불편함 없이 너무 편안했다.심지어 출산 예정일도 아주 정확했다.남태준이 산전 가방을 챙기고 돌아보니 지우가 화장실에서 나와 말했다.“여보, 나 피를 봤어요.”“뭐? 피를 봤다고?”남태준이 궁금해서 묻자 지우가 약간 긴장해서 말했다.“아기가 오늘 나올 것 같아요.”남태준은 감격에 겨워 급히 외투를 꺼내 지우에게 입혀주었다.“아파?”“아니요.”“우리 아기가 엄마를 힘들게 하기 아까운가 보네.”지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남태준은 미리 준비해둔 캐리어를 챙기고 지우의 손을 잡았다.“병원에 가자 여보.”지우는 배를 잡고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가며 기분이 아주 좋았다.“너무 기대돼요. 남자일까요? 여자일까요?”“50% 확률이겠지. 늦어도 내일엔 알 수 있을 거야.”“부모님께 알릴까요?”“일단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아기가 언제 태어날지 가늠해보라고 하고 알려드리자.”“그래요.”남태준은 그녀를 차에 태우고 안전벨트를 매주었다.산부인과 병원.지우는 VIP 병동에 입원했다.남태준은 짐을 정리하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와 지우와 함께 영화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두 사람은 웃고 떠들며 아기가 오기를 기다렸다.지우는 조금씩 조여오는 배를 만지작거리다가 눈살을 찌푸리고 참기도 하고 영화의 코믹함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지우의 배가 조이고 아파지면 남태준은 주물러줬다.그녀의 상태에 주의하고 그녀와 함께 통증을 완화하는 심호흡을 하기도 했다.지우는 남태준이 걱정할까 봐 소리를 지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꾹 참았다.이따금 통증이 밀접해지고 지우가 통증을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의사가 궁구 상태를 체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