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허윤미에게 응답했다.주치의는 그녀의 몸을 검진하고 별일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날, 남태준은 집에 없었지만 허윤미가 다녀간 후 몇몇 형님들이 하나둘씩 선물을 갖고 그녀를 보러왔다. 지우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또 임신 경험과 주의사항들을 전했다.집안의 몇몇 며느리들은 모두 아이를 낳았고 경험이 풍부하여 산부인과 의사들과 견줄 만했다. 그야말로 육아 백과사전이었다.깊은 밤.지우는 혼자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낮잠을 너무 많이 잔 탓에 정신이 너무 또렷해 발코니 바깥의 야경을 보고 있었다.속으로는 남태준을 생각하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남태준이 대체 이 아이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추측할 수 없었다.아이가 와서 기분이 나쁜 건 아닐까?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남태준에게 메시지를 보내려고 핸드폰을 들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는 지금 매우 바쁠 것이다. 집에 돌아올 시간도 없으니 휴대폰을 볼 시간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지우는 마음이 울적해 휴대폰을 놓으려는데 평소 잠잠하던 가족 채팅방에서 메시지가 올라왔다.이건 남씨 가문의 가족 채팅방이었다.남태준의 고모 남연희가 만든 단톡방이었는데 그녀가 온 가족을 모두 끌어들였기에 다들 나오지 못하고 평소에는 거의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지우가 클릭하여 보니 남연희가 남태준의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남창민: [애들이 모두 결혼해서 자기 가정을 이뤘고 자식도 뒀으니 이제 내 인생은 원만해.]남연희: [오빠, 태준이네도 아이가 생겼어요?]남창민: [그럼. 아주 큰 경사가 났어.]허윤미: [아가씨. 지우 임신했어요. 두 사람 아주 행복하고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남연희: [새언니 걱정 마세요. 태준이 그 고약한 성격 때문에 나 감히 태준이 아내 못 건드려요.]허유미: [지우는 아가씨를 존경해요. 우리 서로 존경하며 지내요. 네?]남창민: [모두 한 가족끼리 서로 상처 주는 소리는 하지 마. 가화만사성이라잖아.]남연희: [허
지우의 팔자는 원래 나쁜 편인데 앞으로 어떡해야 할까?그날 밤, 지우는 잠이 오지 않았다.다음 날 아침, 그녀는 맥없이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몇 분 동안 토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은 후 서재에 가서 일했다.그녀는 일을 반쯤 하고도 괴로운 마음을 참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려 맥없이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서서히 사색에 빠졌다.눈꺼풀이 천천히 내려가고 무거워지며 점점 잠에 빠져들었다....꿈속에서 맑은 향기가 코를 찔렀는데 익숙하고 좋은 냄새가 지우의 콧속으로 들어왔다.그러자 그녀의 입술 판은 촉촉하고 따뜻한 무언가에 물렸다.지우는 어렴풋이 눈을 뜨고 바로 앞에 놓인 확대된 얼굴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남태준이었다.그가 돌아왔다니. 그녀가 잠든 사이에 몰래 키스하다니.지우가 고개를 뒤로 빼자 남태준은 그녀의 머리를 낚아채서 팔로 끌어당겼다.“음!”지우는 그의 가슴을 밀었다.지우가 밀면 밀수록 남태준은 더욱 힘을 주었고 아예 지우를 안아 옆 소파에 앉히고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진한 키스를 이어갔다.지우는 짙은 키스에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진한 키스에 만족한 남태준은 그제야 지우를 천천히 놓아주고 이마로 지우의 이마를 댔다. 두 사람은 숨을 헐떡이며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고 주위의 공기도 점점 후끈 치솟았다.“나 보고 싶었어?”남태준은 그녀의 가는 허리를 끌어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지우는 부끄러운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너 보고 싶었어.”남태준은 그녀의 아랫배를 어루만지며 물었다.“아이는 괜찮아?”“의사가 봤는데 별다른 이상은 없대요.”남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움켜쥐고 눈살을 찌푸린 채 수심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너 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 보여. 우울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요즘 너무 바빠서 네게 소홀해서 기분이 나쁜 거야?”지우는 입술을 오므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럼 말해봐. 컨디션이 왜 이렇게 안 좋은지, 왜 계속 우울해 있는지.”지우는 그
남태준은 궁금한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 단톡방을 클릭해 열심히 보았다.그는 약간 침울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단체 채팅방에서 탈퇴했다. 또 지우의 휴대전화를 들고 그녀의 손가락을 잡고 지문을 눌러 잠금을 풀더니 말없이 지우도 단체 채팅방에서 나가게 했다.그러자 지우가 경악했다.“그러면 고모님이 화내실 거예요!”남태준은 코웃음을 치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바로 남연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지우는 그의 이런 행동을 보며 매우 긴장되었고 조용히 그를 지켜보았다.휴대전화 너머 남연희가 기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태준아. 얼마 만에 고모한테 전화한 거야? 무슨 일 있어?”남태준은 차갑고 엄숙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남 여사님. 내가 한 번만 말씀드리는데, 내 아내에게 예의를 차리고 서로 존중한다면 당신은 여전히 내 고모이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린 서로 낯선 사람이에요.”“태준아 너 그거 무슨 말이니? 내가...”남연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태준이 말을 이었다.“그리고, 내 아내가 남자아이를 임신했든 여자아이를 임신했든 우리 가족들은 전부 기뻐하고 반길 거예요. 외부인인 당신은 함부로 지적할 자격 없어요.”“너!”남연희는 화가 나서 숨이 차오르지 않았다.“너 양심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내가 왜 외부인이야?”“딸은 손해 보는 물건이라면서요? 남의 집안을 위해 키우는 거라면서요? 딸은 값어치 없고 태어난 순간부터 이 집안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당신도 딸이잖아요? 그렇게 자기 스스로를 비하하면서도 우리가 당신을 가족으로 여기길 바라세요? 너무 염치없는 것 아니에요?”남연희는 화가 나서 버럭 화를 냈다.“남태준! 내가 네 고모야!”“스피커 폰으로 돌릴 테니까 지금 내 아내에게 사과하세요.”“나더러 손아랫사람에게 사과하라고? 꿈도 꾸지 마!”“지금부터 당신은 내 고모가 아니야.”남태준이 단호하고 차가운 태도로 말하자 남연희는 이를 갈았다.“우리 집안에서 감히 날 이렇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네 아빠도 나를 예뻐하
지우는 입술을 오므리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남태준을 보았다.그는 여유롭게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눈빛은 마치, 용서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하지 말고 전부 지우가 내키는 대로 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지우는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고모님, 저 화 안 났어요.”“하지만 네 남편이 화가 났잖아. 방금 내게 전화해서 한바탕 나무라더니 지금은 아예 내 번호를 차단했어.”지우는 웃음을 참고 말했다.“아. 그러셨군요.”“내가 너희 부부에게 사과하마. 네 남편에게 차단 해제 하라고 전해줘. 내가 태준이 형제들을 친 자식처럼 대했는데 어떻게 인연을 끊어?”“고모님, 제가 잘 얘기해 볼게요. 감히 어른에게 화를 내다니. 정말 철이 없네요.”남연희가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럼. 역시 네가 철이 들었어.”“네. 그럼 이만 끊을게요. 제가 태준 씨에게 고모님 차단 해제하라고 말할게요.”“그러렴. 임신 초기에는 특별히 몸조심해야 돼.”갑작스러운 관심에 지우는 경악하며 남태준을 바라보았다.보아하니 남태준의 방법이 먹힌 듯했다.“감사합니다.”지우는 감사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고 기뻐하며 말했다.“고모님 전에는 내가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나를 싫어하더니 이젠 먼저 나를 관심해주고 있어요.”남태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덤덤하게 말했다.“원래 그런 사람이야. 우리 고모 같은 어른을 상대하려면 반드시 강력하게 나가야 해.”지우는 남태준의 휴대전화를 잡고 그에게 건네주며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여보. 고모님 차단 해제 해요. 이미 사과까지 했잖아요.”남태준은 휴대전화를 건네받더니 고개를 숙이고 조작하며 나지막이 속삭였다.“앞으로 절대 비굴하게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마. 알겠어?”“네.”“굳이 잘 보이려고 노력하겠다면 그 상대는 반드시 나여야만 해.”지우는 그의 잘생긴 얼굴에 뽀뽀하고 그의 목을 껴안고 말했다.“계속 당신이 내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데요?”남태준은 차단을 해제한 후 휴대전
“네 마음이 변할 수도 있잖아?”남태준이 되묻자 지우는 생각 없이 툭 내뱉었다.“난 절대 변하지 않아요.”그러자 남태준이 피식 웃었다.“어떻게 미래를 장담할 수 있어?”“당신은 참 이성적이에요.”지우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하자 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별장을 걸어 다니며 진심으로 걱정하는 부분을 말했다.“난 너를 아주 사랑해. 만약 내가 100살까지 살 수 있다면 난 너를 100살까지 사랑할 거야. 하지만 내가 오래 살지 못한다면 우리 부모님과 형님 내외들이 내 재산을 나눠서 네가 별로 못 가질까 봐 걱정이야. 그럼 넌 어떻게 살아가?”알고 보니, 이것이 바로 그가 장담할 수 없는 걱정이었다.자기 마음이 변할까 봐 걱정한 것이 아니었다.지우는 그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졌다....일주일 후.깊은 밤, 찬 바람이 몰아치는 외딴 섬의 모퉁이에 보트 한 척이 천천히 다가왔다.밝은 등불이 선실 전체를 비추고 있었는데 갑판 위에 총을 든 남자가 서 있었다.배가 접안하자 남자는 배에서 잠시 기다렸다.검은 그림자가 나무숲에서 나와 배에 올랐다.“준비 끝났습니다. 보스.”준영이 남자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잘했어. 배 출발시켜.”남자가 막 돌아서자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소음저격총의 총알이 멀리서 날아와 총을 든 남자를 단박에 사살했다.남자는 순식간에 쓰러졌고 준영은 놀라서 얼른 기관총을 집어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또 둔탁한 총소리가 울렸다.팔을 적중당한 준영은 아파서 이목구비가 잔뜩 일그러졌다.곧이어 사방에서 경찰들이 쏟아져 나왔고 바다에서도 요트 몇 척이 그녀의 보트를 에워쌌다.준영은 피범벅이 된 팔을 감싼 채 걸어오는 경찰관들을 바라보았다. 음산한 시선으로 남태준을 노려보며 입가에 냉소를 머금었다.죽음이 임박했지만 그녀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쉬움만 있을 뿐이었다.진연우는 수갑을 꺼내 한 손에는 총, 한 손에는 수갑을 들고 여러 명이 함께 배에 올라 준영에게 수갑을 채웠다.남태준이 차갑
임신 후기, 지우가 머리를 감고 샤워하는 일은 모두 남태준이 전담했다.지우가 손을 댈 필요가 없었다.예전에 그녀는 자신이 남태준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남태준이 그녀의 생명처럼 느껴졌다. 남태준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아기도 작은 천사였다.임신 후기 배가 좀 무겁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불편함 없이 너무 편안했다.심지어 출산 예정일도 아주 정확했다.남태준이 산전 가방을 챙기고 돌아보니 지우가 화장실에서 나와 말했다.“여보, 나 피를 봤어요.”“뭐? 피를 봤다고?”남태준이 궁금해서 묻자 지우가 약간 긴장해서 말했다.“아기가 오늘 나올 것 같아요.”남태준은 감격에 겨워 급히 외투를 꺼내 지우에게 입혀주었다.“아파?”“아니요.”“우리 아기가 엄마를 힘들게 하기 아까운가 보네.”지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남태준은 미리 준비해둔 캐리어를 챙기고 지우의 손을 잡았다.“병원에 가자 여보.”지우는 배를 잡고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가며 기분이 아주 좋았다.“너무 기대돼요. 남자일까요? 여자일까요?”“50% 확률이겠지. 늦어도 내일엔 알 수 있을 거야.”“부모님께 알릴까요?”“일단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아기가 언제 태어날지 가늠해보라고 하고 알려드리자.”“그래요.”남태준은 그녀를 차에 태우고 안전벨트를 매주었다.산부인과 병원.지우는 VIP 병동에 입원했다.남태준은 짐을 정리하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와 지우와 함께 영화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두 사람은 웃고 떠들며 아기가 오기를 기다렸다.지우는 조금씩 조여오는 배를 만지작거리다가 눈살을 찌푸리고 참기도 하고 영화의 코믹함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지우의 배가 조이고 아파지면 남태준은 주물러줬다.그녀의 상태에 주의하고 그녀와 함께 통증을 완화하는 심호흡을 하기도 했다.지우는 남태준이 걱정할까 봐 소리를 지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꾹 참았다.이따금 통증이 밀접해지고 지우가 통증을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의사가 궁구 상태를 체
지우는 순조롭게 여아를 출산했다.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남씨 가문 전체가 들끓었다.가장 감격스러운 사람은 당연히 남태준이었다.산실에서 무사히 나온 마누라와 아이를 보며 남태준은 감격의 눈물이 눈에서 뒹굴었고 마누라를 꼭 껴안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다음 날, VIP 병동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그중 한 명은 지우의 전문 산후조리원이었고 다른 한 명은 아이를 전문적으로 돌보는 보육사, 그리고 남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왔다.병실이 넓어서 다행이었다.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유모차 가장자리에는 여섯 명의 남자들이 아기 침대를 촘촘히 둘러싸고 있었다.이 여섯 명의 성인 남자들은 각각 남창민과 그의 다섯 아들이었다.변경에 있던 정안과 남하준까지 시간을 내서 달려왔다.생후 2일째 되는 여자아기는 피부가 부드럽고 희며 작고 귀여웠다. 눈을 감고 자고 있어도 사람의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여자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여섯 명의 성인 남자들은 모두 너무 좋아서 1초도 눈을 떼지 못했다.모두가 남태준을 부러워했다.첫째 형: “얘는 어떻게 태어나자마자 이렇게 예쁠 수가 있어? 우리 아들 태어났을 때는 진짜 못생겼는데 크면서 예뻐졌어.”둘째 형: “앞으로 집에 귀염둥이 하나가 늘었네. 부드러운 목소리로 큰아버지라고 부르겠으니. 생각만 해도 즐겁네.”셋째 형: “그래도 태준이 녀석이 대단해. 난 둘 다 아들이었잖아. 딸을 갖고 싶었는데 못 낳았어.”남창민: “드디어 내게 손녀가 생겼다니. 하하...”남태준: “애가 너무 작아서 감히 안지도 못하겠어요.”남하준: “나도 딸이 갖고 싶었는데 지금 조카딸이 생겼으니 소원을 성취한 셈 치죠.”남태준이 웃으며 말했다.“우린 이 딸 하나로 충분해.”“태준아, 너무 축하해. 이건 우리 가문의 유일한 공주님이야.”“그러니까. 공주님 앞으로 다섯 명의 큰아버지가 사랑해주지, 또 다섯 명의 사촌 오빠가 사랑해주니 얼마나 좋아!”“너무 안아 보고 싶네!”“안 돼. 아직 자고 있으
“설 쇠고 우영이도 유치원에 가야 하니 앞으로 어머님이 보살펴 주세요. 우영이는 우리와 국경에 돌아가지 않아요.”허윤미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마. 내가 잘 돌볼 수 있어.”같은 엄마로서 지우는 아이가 부모와 떨어진다는 말을 듣고 안쓰러워했다.“진짜 아이 옆에 있어 주지 않을 생각이야? 오래 떨어져 있으면 애가 얼마나 불쌍해.”정안은 탄식하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어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거야. 엄마가 과학자고 아버지가 국방 장군이니 우영이는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어.”지우는 입술을 오므리고 고개를 끄덕였다.오히려 정안이 그녀를 위로했다.“우리 휴가 때 우영이를 보러 올 거야. 우영이 겨울방학과 여름방학에도 국경에 가서 지낼 수 있고. 진짜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 괜찮을 거야.”유가영이 입을 열었다.“안성 집에 있으면 좋지 뭐. 집에 애들이 많으니 얼마나 떠들썩하겠어? 매일 웃고 떠들며 놀면 얼마나 좋아?”“맞아. 맞아.”떠들썩한 병실에서는 남녀가 나뉘어 어른과 아이를 돌봤다.아늑하기 그지없었다....M국의 새해는 가족 단결을 중시하여 모두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오색찬란한 불빛이 화원 전체를 비추고 있었고 남씨네 별장 안은 매우 시끌벅적했다.모두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모여 웃고 떠들고 있었다.어른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서로 장난을 치고 하인들은 식사를 준비했다.바깥 하늘에는 밝은 달이 높이 걸려 있어 시적이고 그림 같은 야경이 매우 아름다웠다.온도가 좀 낮아서 쌀쌀하게 느껴졌다.지우와 정안은 정원의 벤치에 앉아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문득 정안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지우야. 너 지금 행복해?”지우는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응. 나 너무 행복해. 애초에 네가 우리를 이어줬어. 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어.”정안이 의혹스러워했다.“나랑 뭔 상관이야?”“애초에 네가 소개한 덕에 내가 태준 씨 돌보는 일을 하게
끝난 후, 너무 수줍은 남서연은 백건이 어찌할 수 없는 틈을 타 재빨리 자신의 옷을 챙겨 입고 거의 도망가듯 뛰쳐나갔다.“서연아...”백건은 옷을 챙겨 입지 못해 따라잡을 수 없었다.그녀는 사무실을 뛰쳐나가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숨을 헐떡였다.그녀가 디자인 부서로 돌아왔을 때 여다혜는 급히 걸어가서 책상을 두 손으로 받치고 그녀의 붉어진 얼굴과 약간 불그스름한 입술을 보았다.“서연아, 왜 그래?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너 점심 먹었어?”남서연은 마음이 켕겨 감히 여다혜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먹었어. 혼자 먹었어.”“식당에서 너 못 봤는데? 그리고 평소에는 30분이면 다 먹더니 오늘은 왜 한 시간이나 걸렸어?”“나... 구내식당이 아니라 밖에서... 멀리 가서 먹었어.”여다혜는 불쾌해하며 그녀의 손을 두드렸다.“왜 좋은 곳에 나는 안 데리고 갔어?”남서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귓가에 있는 머리를 뒤로 넘겼다.“다음에. 다음에 꼭 데리고 갈게.”여다혜가 깜짝 놀라 외쳤다.“너 움직이지 마.”남서연은 경악에 찬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여다혜는 그녀의 긴 머리를 쓸어올리고 귓불 뒤 목덜미에 닿는 위치를 보며 의아해하며 물었다.“너 목에 왜 빨간 자국이 있어? 마크 같아.”“무슨 마크?”“키스 마크!”크게 당황한 남서연은 황급히 긴 머리를 풀어 목을 가리고는 화난 척 말했다.“함부로 말하지 마. 그냥... 긁은 거야. 모기한테 물려서 난 자국이야.”모기에 물린 것인지, 키스 마크인지 여다혜는 경험자로서 한눈에 알 수 있었다.더군다나 남서연은 지금 볼이 붉어지고 눈 밑에는 수줍음이 가득했다.여다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서연아, 너 정말 우리 오빠 안 좋아해?”“안 좋아해. 자꾸 엮지 마.”남서연이 나지막이 말하자 여다혜는 어깨를 으쓱하고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럼 돌아가서 희망이 없다고 오빠에게 말할게. 네 생각하지 말고 빨리 다른 여자 만나라고.”남서연은 담담하게 웃었다.
백건은 그녀 앞에 와서 안색이 어두워지고 눈빛이 흐려지며 부드러운 말투에 약간 불쾌함을 띠었다.“나 무서워하지 마. 서연아.”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가로저었다.백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일할 때는 좀 엄숙하긴 하지만 부하직원에게만 그래.”남서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나도 부하직원이잖아요.”백건은 화가 나서 웃더니 고개를 떨구고 어쩔 도리가 없었다.남서연은 자신이 말실수를 한 줄 알고 급히 해명했다.“무서워한 게 아니라 그냥 좀 적응이 안 됐어요.”차이가 너무 컸으니 말이다.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사납다가 갑자기 그녀에게 너무 다정하게 대해서 적응이 안 됐을 뿐이다.백건이 손목을 들어 시간을 살펴보더니 물었다.“배고파?”남서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너무 배고픈 건 아니에요.”백건은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옆 휴게실로 향했다.그는 남서연의 마음을 떠보고 싶었고 그녀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백건은 문을 열고 들어갔고 그녀도 끌고 들어갔다.문이 닫히자 남자는 곧장 그녀를 문짝에 눌렀다. 두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가두고 몸을 붙이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남서연은 깜짝 놀라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져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남자의 강한 호르몬이 그녀를 감싸고 있고 보이지 않는 압박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며 호흡에는 그의 몸에서 나는 향기가 가득했다.남자는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의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관능적인 목젖을 위아래로 구르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서연아. 네가 거절하지 않는 건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돼?”남서연은 머리가 하얘지고 몸이 약간 떨릴 정도로 긴장했다.문득 남자의 얼굴이 다가와 얇은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음!”그녀는 수줍은 소리를 내며 벽에 등을 바짝 붙였다.그의 키스는 매우 갑작스러웠고, 거칠면서도 거침없이 그녀의 입안을 침략하고 입과 혀를 섞었다.그의 키스는 매우 깊었다.남자는 서서히 자신의 몸을 눌렀고 나른해
그녀는 넓은 홀을 걸으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비서 자리는 텅 비어 있었고 하현우는 보이지 않았다.대표 사무실의 문이 굳게 닫혀있지 않았다.남서연은 궁금해서 앞으로 걸어가며 문을 두드리려고 했다.그때 안에서 서류 뭉치가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가까이 다가간 남서연은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백건의 냉엄한 목소리만 들렸다.“당신 사람들 데리고 당장 나가세요!”그러자 연륜이 느끼지는 중후한 목소리가 버럭 화를 냈다.“백건! 너무 나대지 마. 내가 네 할아버지와 사업을 일굴 때 넌 태어나지도 않았어.만약 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넌 날 보고 끽소리도 못 냈어. 네 아버지가 나를 봐도 아저씨라고 정중하게 부르는데 네가 감히 나를 해고해?”백건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맞아요. 나는 지금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을 해고하고 있어요. 당장 나가세요.”“네가 뭔데 나를 해고해? 내가 공로는 없어도 고생은 함께 했는데 어떻기 감히 나를 내보내?”“당신 손에 있는 주식, 매달 월급 그리고 매년 주어지는 배당금까지, 전부 고생 값이에요. 회사는 이미 현금으로 보상했으니 더 이상 빚진 것 없어요. 사람이 늙으면 능력이 떨어지고 더 이상 가치를 창출할 수 없으면 회사 자원을 점유하지 말고 집에 가서 노후를 보내야죠.”“백건. 네 이놈!”“당신 낙하산을 타고 들어온 사람들 한 명도 남기지 마세요.”또 한바탕 큰소리에 남서연은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예순 살쯤 된 늙은 남자가 양복 차림의 젊은이 몇 명을 데리고 사무실을 나섰고 입구에서 남서연과 부딪혔다.남자는 남서연을 매섭게 쏘아보더니 조롱했다.“바로 너야? 일개 디자이너가 감히 대표 사무실에 찾아와? 생긴 건 번지르르하네. 몸을 팔아 디렉터를 쫓아낸 거지?”남서연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전 디자인 디렉터도 그의 사람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깨달았다.말을 마친 남자는 사람들을 데리고 사무실을 떠났다.백건은 소리를 듣고 뛰쳐나왔고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안색이 좀 긴장된 남
“대... 대표님. 아침부터 제가 뭐 잘못했나요? 왜 그러세요?”백건의 목소리는 얼음 창고에서 흘러나오는 듯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느껴졌다.“어제저녁에 왜 야한 영화를 보냈어? 잘리고 싶어?”하현우는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렀고 침을 삼키고 긴장하며 말했다.“그건 대표님께서...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를 부탁하셨잖아요. 혼자 사는 성인 남자가 저녁에 영화를 달라고 하니. 그리고 대표님은 애니메이션도 안 보고 로맨스 영화도 안 보시니 분명 그런 장르를 원한 거 아니셨어요?”백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를 갈았다.“서연이가 보려고 한 거야. 내가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해 모르니 네게 부탁한 거고. 네가 무슨 짓을 한 줄 알아?”하현우는 어안이 벙벙하고, 입이 떡 벌어지며,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져 오랫동안 진정되지 않았다.백건은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그의 옷깃을 풀어주고 한 발짝 물러서서 경고했다.“만약 서연이가 이 일로 날 미워하고 나에 대해 나쁜 인상을 받았다면 넌 바로 아웃이야.”하현우는 깜짝 놀라며 90도로 허리를 숙였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반드시 만회할 방법을 찾을게요. 반드시 대표님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백건은 차가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하현우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고 급히 운전석을 열고 들어가 차를 몰고 떠났다.가는 내내 하현우는 어떻게 만회해야 할지 고민했고 백건은 뒷좌석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순간 하현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서연 아가씨께서 어제 영화를 끝까지 안 보셨죠?”“응.”백건이 덤덤하게 대답하자 하현우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물었다.“그럼 대표님은요?”“다 봤어.”백건이 솔직하게 말하자 하현우는 꾹 참으며 감히 웃지 못했다.그는 재미있는 영화를 거절할 수 있는 남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남자가 아닌 한.하현우가 또 물었다.“그런 영화 자원이 더 필요하세요?”백건은 서류를 덮고 눈을 감더니
색은 남녀의 천성이었다.남자로서 자신이 호색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었다.“호색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때는...”백건이 설명하려는데 남서연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남서연은 다급히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뒤적거리며 크게 당황했다.백건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벨 소리에 묻혔다.“내가... 널 좋아하니까.”“여보세요, 할머니!”남서연은 휴대전화를 귓가에 대고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친구랑 같이 있어요. 곧 돌아가요... 아니에요. 오빠가 데리러 올 필요 없이 저 혼자 택시 타고 돌아가면 돼요... 자꾸 저 어린애 취급하지 마세요. 저도 이제 23살이에요. 어린애가 아니라고요... 네 알겠어요. 이따가 봬요.”남서연은 통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고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요?”백건은 안색이 굳어지더니 말이 목에 걸렸다. 몇 초 동안 침묵하다가 몸을 돌려 차 키를 가지러 갔다.“데려다줄게.”“괜찮아요. 택시 타고 가면 돼요.”남서연이 거절했지만 백건은 차 키를 들고 신발을 갈아 신고 남서연의 옆을 지나면서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남서연은 등뼈가 굳어지며 한발 한발 밖으로 따라나섰고 시선은 자신의 손을 잡은 남자의 손에 고정되었다. 그의 따뜻한 큰 손바닥은 마치 전류가 흘러 그녀의 손바닥 피부에서 팔다리로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다정한 촉감에 그녀는 심장이 벌렁거렸다.그녀는 온몸이 긴장되고 호흡이 좀 가빠졌다.백건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손바닥을 잡아주고 있었다.이토록 다정하게 남자의 손바닥에 닿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남서연은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져서 가슴이 쿵쾅대며 몰래 즐거워하고 있었다.백건은 그녀를 차량 옆으로 끌고 가 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수줍게 숙이고 있었다.여자의 수줍은 자태는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그제야 자신이 남서연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손을 놓지 않았
저녁을 먹고 나니 8시가 넘었고 남서연은 과일도 조금 먹었다.이렇게 큰 집에 그녀와 백건 두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다소 긴장되고 어색했다.그녀는 시간을 보고 일어섰다.“시간이 늦었어요. 저 갈게요.”백건은 부랴부랴 일어나 다급하게 남서연의 손목을 잡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서연아.”남서연이 그를 뒤돌아보니 그의 눈빛에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조금만 더 앉아 있어. 조금만. 아직 9시도 안 됐으니 조급해하지 마.”남서연은 거절하기 미안하고 또 좋아하는 남자가 붙잡으니 다소 마음이 약해져 다시 자리에 앉았다.“그래요.”백건은 그녀가 심심할까 봐 물었다.“TV 볼래? 아니면 영화?”남서연은 2초간 머뭇거리다가 물었다.“애니메이션 영화 봐도 돼요?”백건은 2초간 어리둥절하더니 말했다.“그래. 어떤 애니메이션 보고 싶어?”남서연이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그녀가 너무 귀엽고 동심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면 그도 함께 볼 수 있었다.그녀와 함께라면 무엇을 해도 지루하지 않았다.남서연은 생각하다가 말했다.“아무거나요. 사랑을 다룬 애니메이션 아무거나 골라봐요.”백건은 그런 것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었다.그는 평소에도 TV와 영화를 보지 않고 애니메이션은 더더욱 본 적이 없었다.그는 리모컨을 들고 TV를 켰다.자신이 잘 못 골라서 남서연이 지루해할까 봐 휴대전화를 꺼내 하현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당장 재미있는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 하나 보내줘. 꼭 재밌어야 해.”잠시 후 하현우가 영화 링크를 그의 휴대전화로 보내주며 꼭 이어폰을 끼고 보라고 일러줬다.백건은 별생각 없이 거실 조명을 어둡게 하고 휴대전화의 링크를 TV에 띄웠다.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그리 가깝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영화가 시작되면서 남서연은 서서히 몰입했다.영화의 질감은 아름다운데 여주인공의 몸매가 너무 화끈하고 옷차림도 살짝 드러났다.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남녀주인공을 둘러싼 짝
사장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인사했다.“감사합니다. 곧 보내드릴게요.”백건은 남서연을 끌고 나가 한적한 시장 거리에 서서 화가 난 채로 몸을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남서연은 어렴풋이 백건의 화를 느끼며 긴장된 듯 침을 삼키고는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화를 꾹 억누르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남서연, 마지막으로 알려두는데 난 남우영의 삼촌이지 네 삼촌이 아니야. 난 네 부모님과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고. 알아들어?”남서연은 그가 왜 화가 났는지 몰라 거듭 사과했다.“미안해요. 알았어요. 다음부터는 그렇게 부르지 않을게요.”백건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허탈하게 그녀를 쳐다보았고 남서연도 그를 바라보았다.두 눈이 마주치자 눈빛 사이에 조금 다른 감정이 흘렀다.남서연이 용기를 내어 물었다.“오빠, 진짜 승아 누나와 사귀는 사이가 아니에요?”“아니야.”남서연은 심장이 콩닥거렸고 또 물었다.“그럼 여자친구는 있어요?”“없어.”남서연은 속으로 기뻐하며 자신이 웃지 못하도록 입술을 오므리고는 담담한 척 대답했다.“아!”마음을 진정한 백건이 말했다.“가자. 화분이 배달되면 어떻게 놓을지 네가 봐줘.”남서연은 바짝 긴장했다.“오빠 집에까지 가자고요?”백건은 그녀의 말투를 듣고 그녀가 싫어하는 줄 알고 급히 설명했다.“그냥 화분 놓을 위치만 봐줘. 끝나면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네.”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쑥스러운 미소를 숨겼다.두 사람은 차에 올랐고 시동을 걸고 떠났다.가는 길에 남서연은 그에게 그때 무슨 마음으로 자기와 잠자리를 가졌는지 너무 묻고 싶었다.하지만 너무 어색해 결국 묻지 못했다.남자와 여자는 달랐으니 말이다.어떤 남자들은 사랑을 떠나 그저 외롭고 욕망이 끓어오르면 아무 여자나 찾아 생리적 수요를 해결하면 되었으니.산 중턱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웠다.그들이 막 집에 도착했을 때, 화분을 운반하는 차도 도착했고 일꾼들은 화분을 운반하고 차에서 내려 집으로 배달했다.남서연은 화분의 위치
“오빠. 우리 둘뿐이에요?”“응.”“그래요.”남서연은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서둘러 조수석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맸다.문을 닫은 백건은 운전석으로 돌아가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떠났다.석양이 서쪽으로 지고 붉은 노을이 하늘에 가득했다.차 안의 분위기는 다소 답답하고 억압되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으니 분위기가 점점 더 어색해졌다.남서연은 그 정적을 깨려고 화제를 찾으려 했지만 너무 떨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몇 번이나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그때 백건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우영이는 네가 나와 꽃 사러 가는 거 알아?”“몰라요. 다혜랑 쇼핑 간다고 말했어요.”백건의 안색이 굳어지며 마음이 좀 언짢았다.꽃을 사러 시장에 가는 것은 낯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왜 그의 존재를 숨겼을까? 그와 쇼핑하러 가는 것도 가족을 속여야 하는 일일까?새가 지저귀고 꽃이 향기로운 꽃 시장에 간 두 사람은 어리둥절했다.그들은 모두 처음 와서 이 시장이 6시부터 문을 닫는 것을 몰랐다.차를 세우고 둘러보니 두세 군데 가게에 그래도 녹색 식물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화분 필요하세요?”마감 정리를 하던 사장이 반갑게 인사했다.남서연은 백건과 나란히 가게로 걸어가서 사방을 둘러보았다.백건은 남서연의 곁에 다가가 부드럽게 물었다.“뭐가 맘에 들어?”남서연은 그제야 모든 녹색 식물이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대나무 같은 녹색 식물을 가리키며 말했다.“이거 예쁘네요.”그러자 백건이 사장에게 말했다.“이 친구가 좋아하는 거 다 포장해 주세요.”사장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네. 알겠습니다.”많은 희한한 녹색 식물이 정교하고 예쁘게 생겼다. 처음 본 남서연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이것도 예쁘네요.”“이건 무슨 꽃이에요? 실내에서 키울 수 있어요?”“태양이 조금 필요한 베란다에 심을 수 있어요.”“그것도 사죠.”백건이 말했다.남서연은 구석에 있는 이상한 식물을 보고 얼른 백건의 팔을 잡아끌었다.“오빠. 저것 좀
남서연은 심장이 움찔하더니 두 손으로 휴대전화를 꼭 잡은 채 백건이 보낸 메시지를 읽었다.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읽으며 매 글자의 뜻을 모두 이해했다.‘지금 나와 단독으로 만나겠다는 건가? 가야 하나?’남서연은 고민하다가 운전석의 남우영을 돌아보고 떠보듯 말했다.“오빠, 내일 퇴근 후에는 나 집에 데려다줄 필요 없어요.”“왜?”“그게...”야근한다고 하면 남우영이 곧바로 조사해서 거짓말이라는 걸 알 테니 거짓말을 지어냈다.“친구랑 쇼핑하려고요.”“어느 친구? 어디서 쇼핑하는데?”남우영이 묻자 남서연은 자신 없이 대답했다.“회사 동료 다혜랑요. 회사 근처에서 쇼핑할 거예요.”남우영은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그래. 그럼 조심하고 일찍 집에 돌아와.”남서연은 속으로 기뻐하며 남우영에게 기대어 애교스럽게 웃었다.“고마워요 오빠.”남우영은 어리둥절했다.“나한테 왜 고마워해? 재미있게 놀아.”이어 주머니에서 블랙 카드 한 장을 꺼내 남서연에게 건넸다.“마음껏 사.”“괜찮아요. 나 돈 있어요. 충분해요.”남우영은 웃으며 카드를 남서연의 손에 쥐여주고 사랑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넣어둬. 오빠 돈 써. 네 돈은 모아서 부자 돼야지.”남서연은 입술을 오므리고 빙그레 웃었다.“고마워요.”그녀는 다시 휴대전화를 보았지만 아직 백건에게 답장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채팅창에 입력 중이라고 떴는데 갑자기 취소되고 조금 있다가 다시 입력 중이라고 떴다.한참이나 메시지를 받지 못하자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타이핑을 했다.서재에 있는 백건은 휴대폰을 보고 또 보았다. 책상 위에 놓았다가 또 들고 메시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그녀의 답장을 애타게 기다렸다.‘왜 답장을 안 하지? 나와 함께 나가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모르는 건가?’뚜뚜.백건은 방금 내려놓은 핸드폰을 빠르게 집어 들고 열어보았다.[좋아요. 하지만 내일 출근해야 해서 퇴근 후에 시간 있어요.]백건은 미간을 구부리고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바로 답장했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