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영이 명령했다.“너희들, 남태준 아내를 데리고 내려가서 잘 가둬. 몸에 손대지 말고 잘 자키고 있어. 알아들어? 경찰이 절대 이 여자 몸에서 어떠한 단서도 발견해선 안 돼.”“네. 보스.”경호원은 즉각 대답하더니 지우에게 다가가 예의 바른 제스처를 취했다.“가시죠.”그들은 감히 지우에게 손도 대지 못했다.지우는 가면서 마지막으로 임다희를 째려보며 그녀는 벌을 받아 마땅하고 죽어도 아깝지 않다고 여겼다.처음에 지우는 남태준이 그녀를 구하러 오기를 바랐다.하지만 지금은 남태준이 절대 그녀를 구하러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가 절대 배에 오르지 말고 안전하기를 바랐다. 그들의 매복에 걸리지 않기 위해 절대 혼자 와서도 안 되었다.지우는 방에 갇혔고 밖에는 경호원 몇 명이 지키고 있었다.시간은 1분 1초 흘러갔다.지우는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고 안절부절못하며 창밖의 풍경을 내다보았다. 너무 괴롭고 허망하고 무기력했다.“태준 씨, 제발 오면 안 돼요. 제발 나 구하러 오지 말아요.”지우는 마음이 찌릿찌릿 아파 났다. 남태준이 배에 타면 사살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수백 조각으로 찢어지는 듯 떨리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배를 쓰다듬으며 울먹였다.“아가야, 넌 엄마와 같이 죽는 거니 무서워할 거 없어. 이번에는 아빠 데리고 가지 말자. 응? 아빠는 살아야 해. 반드시 잘 살아가야 해.”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지우는 허기가 졌다. 그녀가 창밖을 내다보니 보트 한 대가 이쪽에서 천천히 떠나고 있었다.그녀는 급히 창문에 엎드려 그 떠나는 보트를 자세히 보았다.남태준을 태운 보트만 아니면 되었다.보트는 아주 빨리 떠났지만 그녀는 준영의 뒷모습을 확실히 보았다.준영은 이 크루즈에 물샐틈없는 그물을 치고 남태준이 배에 오르기를 기다리며 자신은 먼저 발을 뺐다.남태준과 지우를 죽인 죄명은 아마 임다희가 뒤집어쓸 것으로 보였다.지우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더니 침대로 돌아가
그녀의 심장 박동은 쿵쾅쿵쾅 이백 이상을 뛰어넘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고 아랫배에서 통증이 전해졌다.남태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지우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뚝 떨어졌고 긴 숨을 내쉬고는 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흥분해서 울고 싶은 것도 아니고 슬퍼서 울고 싶은 것도 아니라 너무 놀라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남태준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하고 귓가에 위로했다.“여보. 괜찮아. 소리 내지 마. 나 왔어.”지우는 어렴풋이 아픈 아랫배를 가리고 천천히 내려앉더니 두 발이 나른해졌다.남태준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고 서둘러 수도꼭지를 열고 나지막이 물었다.“왜 그래?”“왜 그렇게 사람을 놀라게 해요?”지우가 눈물을 머금고 중얼거리자 남태준은 미안한 마음에 설명했다.“이 방에 갇혀 있는 사람이 너인지 확실하지 않아서 숨어야 했어. 너인 거 확신하고 나온 거야.”지우는 눈살을 찌푸리고 아랫배의 통증을 참으며 물었다.“언제 왔어요?”“배가 출발하기도 전에 올라왔어.”남태준은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느끼고 긴장하며 물었다.“너 왜 그래? 어디 아파?”지우가 낮은 소리로 나무랐다.“당신 때문에 유산할 것 같아요.”유산이라는 두 글자에 남태준은 한바탕 놀라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 긴장하고 당황해서 물었다.“당신... 임신... 했어? 언제 임신했어? 난 전혀 몰랐어.”지우는 서둘러 그의 입을 막고 긴장된 표정으로 밖을 내다봤다.그녀는 급히 걸어가서 화장실 문을 닫고 이번에는 샤워기도 틀었다.그러자 화장실은 온통 물소리뿐이었다.남태준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호흡이 어지러워 긴장한 채로 지우를 바라보았다. 흥분한 눈빛은 죄책감에 휩싸여 복잡하기 그지없었다.그가 가장 설레고 행복한 순간이어야 하는데 이런 결말일 줄은 몰랐다.그가 오래도록 기다린 두 사람의 아이가 왔는데 자신 때문에 유산했다니.남태준은 순간 이런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며 죄책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지우의 손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미
지우는 그의 품에서 고개를 젖히고 물었다.“그럼 우리 이제 어떻게 해요?”“준영은 이미 떠났고 지금 배에는 저격수들밖에 없어. 전부 내가 배에 오르기만 기다리고 있어.”지우는 경악해서 물었다.“당신도 준영을 알아요?”남태준이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나 계속 위쪽 파이프에 숨어 있었어. 너희가 선실에서 한 말 모두 들었어.”“내가 나타나지 않는 한 그들은 움직이지 않을 거야.”“그럼 우리 어떻게 탈출해요?”“구조를 기다려야지.”지우가 의문스러운 듯 그를 바라보자 남태준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그녀 앞에 흔들었다.지우는 여전히 충격을 받은 가운데 남태준은 자신 있게 웃으며 진연우에게 연락해 배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안팎으로 협력하여 구조를 기다렸다.“당신은 계속 화장실에 숨어 있을 거예요?”지우가 묻자 남태준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방에 감시 카메라가 있어. 저자들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여기 숨어 있는 게 안전해.”“그래요 그럼.”“의심받지 않게 넌 어서 나가봐.”“꼭 몸조심해요. 절대 무슨 일 생기면 안 돼요.”지우가 그의 손을 잡고 당부하자 남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답했다.“걱정하지 마. 나를 믿어. 경찰도 믿고.”지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수도꼭지와 샤워기 물을 끄고는 덤덤하게 화장실에서 나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녀의 마음은 온통 남태준에게 있었다.깊은 밤이 되자 밖에 있는 사람이 음식을 가져다주었다.지우는 그 안에 독이 들었을까 봐 배가 고파도 먹지 않았다.한밤중이 되자, 갑자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지우가 긴장해서 창문에 엎드려 밖의 동정을 살피니 아주 큰 어선 한 척이 다가왔다.그녀는 화장실에 달려가 남태준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여보. 밖에 어선 한 척이 다가왔어요.”“어민이 아니라 사복 해경이야.”남태준은 자신만만하게 웃음기를 띠었다.“배에 사고가 난 것처럼 가장해서 구조하러 온 거야.”지우는 깜짝 놀랐다.그때, 한바탕 총소리가 울리자 지우
길고 애타는 기다림이었고 지우는 화장실에 숨어 옴짝달싹 못 했다.그녀는 긴장돼서 미칠 것 같았지만 감히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나가서 남태준의 짐이 될 수 없었으니 그녀는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눈물은 무너진 둑처럼 펑펑 쏟아졌고 조마조마한 마음은 목구멍까지 차올라 찌릿찌릿 아팠다.그녀는 하염없이 기도만 했다.그 어느 때보다 긴 시간이었다.지우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종아리를 끌어안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반세기를 넘은 듯한 고통이 이어졌고 마침내 문소리가 나더니 남태준의 소리가 들렸다.“왜 바닥에 앉아 있어?”무릎에서 고개를 든 지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했다.남태준이 그녀를 부축하려고 몸을 웅크리고 앉자 지우는 남태준의 목을 덥석 끌어안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임신 호르몬이 그녀의 기분에도 영향을 미쳐 자제할 수 없이 펑펑 울었다.남태준은 그런 지우가 안쓰러워 그녀를 꼭 껴안고 등을 쓰다듬으며 다독였다.“왜 그래? 많이 놀랐어? 왜 이렇게 슬프게 울어?”지우는 오열하며 말했다.“왜... 이제야 돌아와요?”남태준은 그녀의 말투에서 걱정과 슬픔을 들었다.“미안해. 내가 늦게 돌아왔어. 나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나 아주 멀쩡해.”지우는 그의 품에 안겨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순간 남태준이 그녀를 가로로 안아 올리자 놀란 지우는 허우적대며 말했다.“나 걸을 수 있어요. 얼른 내려줘요.”“너를 안고 싶어서 그래.”남태준은 그녀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밖에 전부 당신 동료들이죠?”“맞아.”“그럼 빨리 내려줘요. 다들 보면 어떡해요?”남태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내가 내 아내를 안는데 뭐가 문제야?”지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부끄러워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가는 길에 그녀는 많은 사복 경찰이 범인을 호송하고 선실을 나가는 것을 보았다.갑판에는 선원과 선장 등도 수갑이 채워진 채로 다른 저격수들과 함께 묶여 있었다.크루즈는 안성을 향해
남태준은 그녀와 데이트할 때 고급 장소에 가지 않았고, 비싼 명품 선물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운전하는 차도 모두 싼 국산 차였다.임다희는 남태준 가문의 돈은 모두 부모님의 것이고 그룹도 그의 형들이 맡아 하고 남태준은 그저 박봉의 경찰일 뿐이니 미래가 막막하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녀는 남태준을 포기하고 스타의 꿈을 계속 좇는 것을 선택했다.지금 보니 피맺힌 교훈이 아닐 수 없었다.배가 부두에 접근했다.남태준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체포한 범인을 배에 인수인계하느라 바빴다.지우가 조심스럽게 혼자 배에서 내리는데 뒤에서 다른 경찰관의 목소리가 들렸다.“형수님,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지우는 고개를 돌려 사복 경찰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괜찮아요. 감사합니다.”“그럼 형수님 조심하십시오.”지우가 호기심에 물었다.“준영은 잡았어요?”“준영이요? 그게 누구죠?”지우는 순간 입을 틀어막고 약간 당황했다.이 사복 경찰은 아마 배후의 보스가 준영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만약 그녀의 말실수로 인해 남태준에게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아니에요.”지우는 급히 말하고는 남태준에게 잽싸게 뛰어갔다.남태준 곁으로 가서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여보.”남태준은 뒤돌아보더니 범인을 동료에게 맡기고 지우의 손을 잡고 물었다.“왜 그래?”지우는 긴장하며 뒤에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내가 방금 실수로 준영의 이름을 말했는데 저 사람 당신 동료 맞죠? 나에게 준영이 누구냐고 묻더라고요.”그러자 남태준이 엷게 웃어 보였다.“괜찮아. 뭘 걱정하는 거야?”“만약 저 사람이 스파이면 어떡해요? 신분이 밝혀진 걸 준영에게 미리 알려주면 어떡해요?”남태준은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먼저 너 집까지 바래다주고.”“괜찮아요. 나 혼자 택시 타고 가면 돼요.”지우가 거절하자 남태준은 말투가 엄숙해졌다.“일이 아무리 중요하고 바쁘더라도 네 안전만큼 중요하지 않아. 나랑 집에 가.”지우는 빙긋 웃
지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허윤미에게 응답했다.주치의는 그녀의 몸을 검진하고 별일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날, 남태준은 집에 없었지만 허윤미가 다녀간 후 몇몇 형님들이 하나둘씩 선물을 갖고 그녀를 보러왔다. 지우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또 임신 경험과 주의사항들을 전했다.집안의 몇몇 며느리들은 모두 아이를 낳았고 경험이 풍부하여 산부인과 의사들과 견줄 만했다. 그야말로 육아 백과사전이었다.깊은 밤.지우는 혼자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낮잠을 너무 많이 잔 탓에 정신이 너무 또렷해 발코니 바깥의 야경을 보고 있었다.속으로는 남태준을 생각하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남태준이 대체 이 아이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추측할 수 없었다.아이가 와서 기분이 나쁜 건 아닐까?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남태준에게 메시지를 보내려고 핸드폰을 들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는 지금 매우 바쁠 것이다. 집에 돌아올 시간도 없으니 휴대폰을 볼 시간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지우는 마음이 울적해 휴대폰을 놓으려는데 평소 잠잠하던 가족 채팅방에서 메시지가 올라왔다.이건 남씨 가문의 가족 채팅방이었다.남태준의 고모 남연희가 만든 단톡방이었는데 그녀가 온 가족을 모두 끌어들였기에 다들 나오지 못하고 평소에는 거의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지우가 클릭하여 보니 남연희가 남태준의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남창민: [애들이 모두 결혼해서 자기 가정을 이뤘고 자식도 뒀으니 이제 내 인생은 원만해.]남연희: [오빠, 태준이네도 아이가 생겼어요?]남창민: [그럼. 아주 큰 경사가 났어.]허윤미: [아가씨. 지우 임신했어요. 두 사람 아주 행복하고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남연희: [새언니 걱정 마세요. 태준이 그 고약한 성격 때문에 나 감히 태준이 아내 못 건드려요.]허유미: [지우는 아가씨를 존경해요. 우리 서로 존경하며 지내요. 네?]남창민: [모두 한 가족끼리 서로 상처 주는 소리는 하지 마. 가화만사성이라잖아.]남연희: [허
지우의 팔자는 원래 나쁜 편인데 앞으로 어떡해야 할까?그날 밤, 지우는 잠이 오지 않았다.다음 날 아침, 그녀는 맥없이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몇 분 동안 토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은 후 서재에 가서 일했다.그녀는 일을 반쯤 하고도 괴로운 마음을 참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려 맥없이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서서히 사색에 빠졌다.눈꺼풀이 천천히 내려가고 무거워지며 점점 잠에 빠져들었다....꿈속에서 맑은 향기가 코를 찔렀는데 익숙하고 좋은 냄새가 지우의 콧속으로 들어왔다.그러자 그녀의 입술 판은 촉촉하고 따뜻한 무언가에 물렸다.지우는 어렴풋이 눈을 뜨고 바로 앞에 놓인 확대된 얼굴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남태준이었다.그가 돌아왔다니. 그녀가 잠든 사이에 몰래 키스하다니.지우가 고개를 뒤로 빼자 남태준은 그녀의 머리를 낚아채서 팔로 끌어당겼다.“음!”지우는 그의 가슴을 밀었다.지우가 밀면 밀수록 남태준은 더욱 힘을 주었고 아예 지우를 안아 옆 소파에 앉히고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진한 키스를 이어갔다.지우는 짙은 키스에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진한 키스에 만족한 남태준은 그제야 지우를 천천히 놓아주고 이마로 지우의 이마를 댔다. 두 사람은 숨을 헐떡이며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고 주위의 공기도 점점 후끈 치솟았다.“나 보고 싶었어?”남태준은 그녀의 가는 허리를 끌어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지우는 부끄러운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너 보고 싶었어.”남태준은 그녀의 아랫배를 어루만지며 물었다.“아이는 괜찮아?”“의사가 봤는데 별다른 이상은 없대요.”남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움켜쥐고 눈살을 찌푸린 채 수심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너 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 보여. 우울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요즘 너무 바빠서 네게 소홀해서 기분이 나쁜 거야?”지우는 입술을 오므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럼 말해봐. 컨디션이 왜 이렇게 안 좋은지, 왜 계속 우울해 있는지.”지우는 그
남태준은 궁금한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 단톡방을 클릭해 열심히 보았다.그는 약간 침울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단체 채팅방에서 탈퇴했다. 또 지우의 휴대전화를 들고 그녀의 손가락을 잡고 지문을 눌러 잠금을 풀더니 말없이 지우도 단체 채팅방에서 나가게 했다.그러자 지우가 경악했다.“그러면 고모님이 화내실 거예요!”남태준은 코웃음을 치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바로 남연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지우는 그의 이런 행동을 보며 매우 긴장되었고 조용히 그를 지켜보았다.휴대전화 너머 남연희가 기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태준아. 얼마 만에 고모한테 전화한 거야? 무슨 일 있어?”남태준은 차갑고 엄숙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남 여사님. 내가 한 번만 말씀드리는데, 내 아내에게 예의를 차리고 서로 존중한다면 당신은 여전히 내 고모이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린 서로 낯선 사람이에요.”“태준아 너 그거 무슨 말이니? 내가...”남연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태준이 말을 이었다.“그리고, 내 아내가 남자아이를 임신했든 여자아이를 임신했든 우리 가족들은 전부 기뻐하고 반길 거예요. 외부인인 당신은 함부로 지적할 자격 없어요.”“너!”남연희는 화가 나서 숨이 차오르지 않았다.“너 양심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내가 왜 외부인이야?”“딸은 손해 보는 물건이라면서요? 남의 집안을 위해 키우는 거라면서요? 딸은 값어치 없고 태어난 순간부터 이 집안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당신도 딸이잖아요? 그렇게 자기 스스로를 비하하면서도 우리가 당신을 가족으로 여기길 바라세요? 너무 염치없는 것 아니에요?”남연희는 화가 나서 버럭 화를 냈다.“남태준! 내가 네 고모야!”“스피커 폰으로 돌릴 테니까 지금 내 아내에게 사과하세요.”“나더러 손아랫사람에게 사과하라고? 꿈도 꾸지 마!”“지금부터 당신은 내 고모가 아니야.”남태준이 단호하고 차가운 태도로 말하자 남연희는 이를 갈았다.“우리 집안에서 감히 날 이렇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네 아빠도 나를 예뻐하
끝난 후, 너무 수줍은 남서연은 백건이 어찌할 수 없는 틈을 타 재빨리 자신의 옷을 챙겨 입고 거의 도망가듯 뛰쳐나갔다.“서연아...”백건은 옷을 챙겨 입지 못해 따라잡을 수 없었다.그녀는 사무실을 뛰쳐나가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숨을 헐떡였다.그녀가 디자인 부서로 돌아왔을 때 여다혜는 급히 걸어가서 책상을 두 손으로 받치고 그녀의 붉어진 얼굴과 약간 불그스름한 입술을 보았다.“서연아, 왜 그래?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너 점심 먹었어?”남서연은 마음이 켕겨 감히 여다혜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먹었어. 혼자 먹었어.”“식당에서 너 못 봤는데? 그리고 평소에는 30분이면 다 먹더니 오늘은 왜 한 시간이나 걸렸어?”“나... 구내식당이 아니라 밖에서... 멀리 가서 먹었어.”여다혜는 불쾌해하며 그녀의 손을 두드렸다.“왜 좋은 곳에 나는 안 데리고 갔어?”남서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귓가에 있는 머리를 뒤로 넘겼다.“다음에. 다음에 꼭 데리고 갈게.”여다혜가 깜짝 놀라 외쳤다.“너 움직이지 마.”남서연은 경악에 찬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여다혜는 그녀의 긴 머리를 쓸어올리고 귓불 뒤 목덜미에 닿는 위치를 보며 의아해하며 물었다.“너 목에 왜 빨간 자국이 있어? 마크 같아.”“무슨 마크?”“키스 마크!”크게 당황한 남서연은 황급히 긴 머리를 풀어 목을 가리고는 화난 척 말했다.“함부로 말하지 마. 그냥... 긁은 거야. 모기한테 물려서 난 자국이야.”모기에 물린 것인지, 키스 마크인지 여다혜는 경험자로서 한눈에 알 수 있었다.더군다나 남서연은 지금 볼이 붉어지고 눈 밑에는 수줍음이 가득했다.여다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서연아, 너 정말 우리 오빠 안 좋아해?”“안 좋아해. 자꾸 엮지 마.”남서연이 나지막이 말하자 여다혜는 어깨를 으쓱하고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럼 돌아가서 희망이 없다고 오빠에게 말할게. 네 생각하지 말고 빨리 다른 여자 만나라고.”남서연은 담담하게 웃었다.
백건은 그녀 앞에 와서 안색이 어두워지고 눈빛이 흐려지며 부드러운 말투에 약간 불쾌함을 띠었다.“나 무서워하지 마. 서연아.”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가로저었다.백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일할 때는 좀 엄숙하긴 하지만 부하직원에게만 그래.”남서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나도 부하직원이잖아요.”백건은 화가 나서 웃더니 고개를 떨구고 어쩔 도리가 없었다.남서연은 자신이 말실수를 한 줄 알고 급히 해명했다.“무서워한 게 아니라 그냥 좀 적응이 안 됐어요.”차이가 너무 컸으니 말이다.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사납다가 갑자기 그녀에게 너무 다정하게 대해서 적응이 안 됐을 뿐이다.백건이 손목을 들어 시간을 살펴보더니 물었다.“배고파?”남서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너무 배고픈 건 아니에요.”백건은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옆 휴게실로 향했다.그는 남서연의 마음을 떠보고 싶었고 그녀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백건은 문을 열고 들어갔고 그녀도 끌고 들어갔다.문이 닫히자 남자는 곧장 그녀를 문짝에 눌렀다. 두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가두고 몸을 붙이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남서연은 깜짝 놀라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져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남자의 강한 호르몬이 그녀를 감싸고 있고 보이지 않는 압박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며 호흡에는 그의 몸에서 나는 향기가 가득했다.남자는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의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관능적인 목젖을 위아래로 구르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서연아. 네가 거절하지 않는 건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돼?”남서연은 머리가 하얘지고 몸이 약간 떨릴 정도로 긴장했다.문득 남자의 얼굴이 다가와 얇은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음!”그녀는 수줍은 소리를 내며 벽에 등을 바짝 붙였다.그의 키스는 매우 갑작스러웠고, 거칠면서도 거침없이 그녀의 입안을 침략하고 입과 혀를 섞었다.그의 키스는 매우 깊었다.남자는 서서히 자신의 몸을 눌렀고 나른해
그녀는 넓은 홀을 걸으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비서 자리는 텅 비어 있었고 하현우는 보이지 않았다.대표 사무실의 문이 굳게 닫혀있지 않았다.남서연은 궁금해서 앞으로 걸어가며 문을 두드리려고 했다.그때 안에서 서류 뭉치가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가까이 다가간 남서연은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백건의 냉엄한 목소리만 들렸다.“당신 사람들 데리고 당장 나가세요!”그러자 연륜이 느끼지는 중후한 목소리가 버럭 화를 냈다.“백건! 너무 나대지 마. 내가 네 할아버지와 사업을 일굴 때 넌 태어나지도 않았어.만약 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넌 날 보고 끽소리도 못 냈어. 네 아버지가 나를 봐도 아저씨라고 정중하게 부르는데 네가 감히 나를 해고해?”백건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맞아요. 나는 지금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을 해고하고 있어요. 당장 나가세요.”“네가 뭔데 나를 해고해? 내가 공로는 없어도 고생은 함께 했는데 어떻기 감히 나를 내보내?”“당신 손에 있는 주식, 매달 월급 그리고 매년 주어지는 배당금까지, 전부 고생 값이에요. 회사는 이미 현금으로 보상했으니 더 이상 빚진 것 없어요. 사람이 늙으면 능력이 떨어지고 더 이상 가치를 창출할 수 없으면 회사 자원을 점유하지 말고 집에 가서 노후를 보내야죠.”“백건. 네 이놈!”“당신 낙하산을 타고 들어온 사람들 한 명도 남기지 마세요.”또 한바탕 큰소리에 남서연은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예순 살쯤 된 늙은 남자가 양복 차림의 젊은이 몇 명을 데리고 사무실을 나섰고 입구에서 남서연과 부딪혔다.남자는 남서연을 매섭게 쏘아보더니 조롱했다.“바로 너야? 일개 디자이너가 감히 대표 사무실에 찾아와? 생긴 건 번지르르하네. 몸을 팔아 디렉터를 쫓아낸 거지?”남서연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전 디자인 디렉터도 그의 사람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깨달았다.말을 마친 남자는 사람들을 데리고 사무실을 떠났다.백건은 소리를 듣고 뛰쳐나왔고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안색이 좀 긴장된 남
“대... 대표님. 아침부터 제가 뭐 잘못했나요? 왜 그러세요?”백건의 목소리는 얼음 창고에서 흘러나오는 듯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느껴졌다.“어제저녁에 왜 야한 영화를 보냈어? 잘리고 싶어?”하현우는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렀고 침을 삼키고 긴장하며 말했다.“그건 대표님께서...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를 부탁하셨잖아요. 혼자 사는 성인 남자가 저녁에 영화를 달라고 하니. 그리고 대표님은 애니메이션도 안 보고 로맨스 영화도 안 보시니 분명 그런 장르를 원한 거 아니셨어요?”백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를 갈았다.“서연이가 보려고 한 거야. 내가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해 모르니 네게 부탁한 거고. 네가 무슨 짓을 한 줄 알아?”하현우는 어안이 벙벙하고, 입이 떡 벌어지며,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져 오랫동안 진정되지 않았다.백건은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그의 옷깃을 풀어주고 한 발짝 물러서서 경고했다.“만약 서연이가 이 일로 날 미워하고 나에 대해 나쁜 인상을 받았다면 넌 바로 아웃이야.”하현우는 깜짝 놀라며 90도로 허리를 숙였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반드시 만회할 방법을 찾을게요. 반드시 대표님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백건은 차가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하현우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고 급히 운전석을 열고 들어가 차를 몰고 떠났다.가는 내내 하현우는 어떻게 만회해야 할지 고민했고 백건은 뒷좌석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순간 하현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서연 아가씨께서 어제 영화를 끝까지 안 보셨죠?”“응.”백건이 덤덤하게 대답하자 하현우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물었다.“그럼 대표님은요?”“다 봤어.”백건이 솔직하게 말하자 하현우는 꾹 참으며 감히 웃지 못했다.그는 재미있는 영화를 거절할 수 있는 남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남자가 아닌 한.하현우가 또 물었다.“그런 영화 자원이 더 필요하세요?”백건은 서류를 덮고 눈을 감더니
색은 남녀의 천성이었다.남자로서 자신이 호색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었다.“호색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때는...”백건이 설명하려는데 남서연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남서연은 다급히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뒤적거리며 크게 당황했다.백건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벨 소리에 묻혔다.“내가... 널 좋아하니까.”“여보세요, 할머니!”남서연은 휴대전화를 귓가에 대고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친구랑 같이 있어요. 곧 돌아가요... 아니에요. 오빠가 데리러 올 필요 없이 저 혼자 택시 타고 돌아가면 돼요... 자꾸 저 어린애 취급하지 마세요. 저도 이제 23살이에요. 어린애가 아니라고요... 네 알겠어요. 이따가 봬요.”남서연은 통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고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요?”백건은 안색이 굳어지더니 말이 목에 걸렸다. 몇 초 동안 침묵하다가 몸을 돌려 차 키를 가지러 갔다.“데려다줄게.”“괜찮아요. 택시 타고 가면 돼요.”남서연이 거절했지만 백건은 차 키를 들고 신발을 갈아 신고 남서연의 옆을 지나면서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남서연은 등뼈가 굳어지며 한발 한발 밖으로 따라나섰고 시선은 자신의 손을 잡은 남자의 손에 고정되었다. 그의 따뜻한 큰 손바닥은 마치 전류가 흘러 그녀의 손바닥 피부에서 팔다리로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다정한 촉감에 그녀는 심장이 벌렁거렸다.그녀는 온몸이 긴장되고 호흡이 좀 가빠졌다.백건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손바닥을 잡아주고 있었다.이토록 다정하게 남자의 손바닥에 닿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남서연은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져서 가슴이 쿵쾅대며 몰래 즐거워하고 있었다.백건은 그녀를 차량 옆으로 끌고 가 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수줍게 숙이고 있었다.여자의 수줍은 자태는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그제야 자신이 남서연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손을 놓지 않았
저녁을 먹고 나니 8시가 넘었고 남서연은 과일도 조금 먹었다.이렇게 큰 집에 그녀와 백건 두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다소 긴장되고 어색했다.그녀는 시간을 보고 일어섰다.“시간이 늦었어요. 저 갈게요.”백건은 부랴부랴 일어나 다급하게 남서연의 손목을 잡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서연아.”남서연이 그를 뒤돌아보니 그의 눈빛에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조금만 더 앉아 있어. 조금만. 아직 9시도 안 됐으니 조급해하지 마.”남서연은 거절하기 미안하고 또 좋아하는 남자가 붙잡으니 다소 마음이 약해져 다시 자리에 앉았다.“그래요.”백건은 그녀가 심심할까 봐 물었다.“TV 볼래? 아니면 영화?”남서연은 2초간 머뭇거리다가 물었다.“애니메이션 영화 봐도 돼요?”백건은 2초간 어리둥절하더니 말했다.“그래. 어떤 애니메이션 보고 싶어?”남서연이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그녀가 너무 귀엽고 동심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면 그도 함께 볼 수 있었다.그녀와 함께라면 무엇을 해도 지루하지 않았다.남서연은 생각하다가 말했다.“아무거나요. 사랑을 다룬 애니메이션 아무거나 골라봐요.”백건은 그런 것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었다.그는 평소에도 TV와 영화를 보지 않고 애니메이션은 더더욱 본 적이 없었다.그는 리모컨을 들고 TV를 켰다.자신이 잘 못 골라서 남서연이 지루해할까 봐 휴대전화를 꺼내 하현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당장 재미있는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 하나 보내줘. 꼭 재밌어야 해.”잠시 후 하현우가 영화 링크를 그의 휴대전화로 보내주며 꼭 이어폰을 끼고 보라고 일러줬다.백건은 별생각 없이 거실 조명을 어둡게 하고 휴대전화의 링크를 TV에 띄웠다.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그리 가깝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영화가 시작되면서 남서연은 서서히 몰입했다.영화의 질감은 아름다운데 여주인공의 몸매가 너무 화끈하고 옷차림도 살짝 드러났다.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남녀주인공을 둘러싼 짝
사장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인사했다.“감사합니다. 곧 보내드릴게요.”백건은 남서연을 끌고 나가 한적한 시장 거리에 서서 화가 난 채로 몸을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남서연은 어렴풋이 백건의 화를 느끼며 긴장된 듯 침을 삼키고는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화를 꾹 억누르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남서연, 마지막으로 알려두는데 난 남우영의 삼촌이지 네 삼촌이 아니야. 난 네 부모님과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고. 알아들어?”남서연은 그가 왜 화가 났는지 몰라 거듭 사과했다.“미안해요. 알았어요. 다음부터는 그렇게 부르지 않을게요.”백건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허탈하게 그녀를 쳐다보았고 남서연도 그를 바라보았다.두 눈이 마주치자 눈빛 사이에 조금 다른 감정이 흘렀다.남서연이 용기를 내어 물었다.“오빠, 진짜 승아 누나와 사귀는 사이가 아니에요?”“아니야.”남서연은 심장이 콩닥거렸고 또 물었다.“그럼 여자친구는 있어요?”“없어.”남서연은 속으로 기뻐하며 자신이 웃지 못하도록 입술을 오므리고는 담담한 척 대답했다.“아!”마음을 진정한 백건이 말했다.“가자. 화분이 배달되면 어떻게 놓을지 네가 봐줘.”남서연은 바짝 긴장했다.“오빠 집에까지 가자고요?”백건은 그녀의 말투를 듣고 그녀가 싫어하는 줄 알고 급히 설명했다.“그냥 화분 놓을 위치만 봐줘. 끝나면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네.”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쑥스러운 미소를 숨겼다.두 사람은 차에 올랐고 시동을 걸고 떠났다.가는 길에 남서연은 그에게 그때 무슨 마음으로 자기와 잠자리를 가졌는지 너무 묻고 싶었다.하지만 너무 어색해 결국 묻지 못했다.남자와 여자는 달랐으니 말이다.어떤 남자들은 사랑을 떠나 그저 외롭고 욕망이 끓어오르면 아무 여자나 찾아 생리적 수요를 해결하면 되었으니.산 중턱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웠다.그들이 막 집에 도착했을 때, 화분을 운반하는 차도 도착했고 일꾼들은 화분을 운반하고 차에서 내려 집으로 배달했다.남서연은 화분의 위치
“오빠. 우리 둘뿐이에요?”“응.”“그래요.”남서연은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서둘러 조수석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맸다.문을 닫은 백건은 운전석으로 돌아가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떠났다.석양이 서쪽으로 지고 붉은 노을이 하늘에 가득했다.차 안의 분위기는 다소 답답하고 억압되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으니 분위기가 점점 더 어색해졌다.남서연은 그 정적을 깨려고 화제를 찾으려 했지만 너무 떨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몇 번이나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그때 백건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우영이는 네가 나와 꽃 사러 가는 거 알아?”“몰라요. 다혜랑 쇼핑 간다고 말했어요.”백건의 안색이 굳어지며 마음이 좀 언짢았다.꽃을 사러 시장에 가는 것은 낯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왜 그의 존재를 숨겼을까? 그와 쇼핑하러 가는 것도 가족을 속여야 하는 일일까?새가 지저귀고 꽃이 향기로운 꽃 시장에 간 두 사람은 어리둥절했다.그들은 모두 처음 와서 이 시장이 6시부터 문을 닫는 것을 몰랐다.차를 세우고 둘러보니 두세 군데 가게에 그래도 녹색 식물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화분 필요하세요?”마감 정리를 하던 사장이 반갑게 인사했다.남서연은 백건과 나란히 가게로 걸어가서 사방을 둘러보았다.백건은 남서연의 곁에 다가가 부드럽게 물었다.“뭐가 맘에 들어?”남서연은 그제야 모든 녹색 식물이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대나무 같은 녹색 식물을 가리키며 말했다.“이거 예쁘네요.”그러자 백건이 사장에게 말했다.“이 친구가 좋아하는 거 다 포장해 주세요.”사장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네. 알겠습니다.”많은 희한한 녹색 식물이 정교하고 예쁘게 생겼다. 처음 본 남서연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이것도 예쁘네요.”“이건 무슨 꽃이에요? 실내에서 키울 수 있어요?”“태양이 조금 필요한 베란다에 심을 수 있어요.”“그것도 사죠.”백건이 말했다.남서연은 구석에 있는 이상한 식물을 보고 얼른 백건의 팔을 잡아끌었다.“오빠. 저것 좀
남서연은 심장이 움찔하더니 두 손으로 휴대전화를 꼭 잡은 채 백건이 보낸 메시지를 읽었다.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읽으며 매 글자의 뜻을 모두 이해했다.‘지금 나와 단독으로 만나겠다는 건가? 가야 하나?’남서연은 고민하다가 운전석의 남우영을 돌아보고 떠보듯 말했다.“오빠, 내일 퇴근 후에는 나 집에 데려다줄 필요 없어요.”“왜?”“그게...”야근한다고 하면 남우영이 곧바로 조사해서 거짓말이라는 걸 알 테니 거짓말을 지어냈다.“친구랑 쇼핑하려고요.”“어느 친구? 어디서 쇼핑하는데?”남우영이 묻자 남서연은 자신 없이 대답했다.“회사 동료 다혜랑요. 회사 근처에서 쇼핑할 거예요.”남우영은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그래. 그럼 조심하고 일찍 집에 돌아와.”남서연은 속으로 기뻐하며 남우영에게 기대어 애교스럽게 웃었다.“고마워요 오빠.”남우영은 어리둥절했다.“나한테 왜 고마워해? 재미있게 놀아.”이어 주머니에서 블랙 카드 한 장을 꺼내 남서연에게 건넸다.“마음껏 사.”“괜찮아요. 나 돈 있어요. 충분해요.”남우영은 웃으며 카드를 남서연의 손에 쥐여주고 사랑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넣어둬. 오빠 돈 써. 네 돈은 모아서 부자 돼야지.”남서연은 입술을 오므리고 빙그레 웃었다.“고마워요.”그녀는 다시 휴대전화를 보았지만 아직 백건에게 답장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채팅창에 입력 중이라고 떴는데 갑자기 취소되고 조금 있다가 다시 입력 중이라고 떴다.한참이나 메시지를 받지 못하자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타이핑을 했다.서재에 있는 백건은 휴대폰을 보고 또 보았다. 책상 위에 놓았다가 또 들고 메시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그녀의 답장을 애타게 기다렸다.‘왜 답장을 안 하지? 나와 함께 나가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모르는 건가?’뚜뚜.백건은 방금 내려놓은 핸드폰을 빠르게 집어 들고 열어보았다.[좋아요. 하지만 내일 출근해야 해서 퇴근 후에 시간 있어요.]백건은 미간을 구부리고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바로 답장했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