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어떡해요?”정안은 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지윤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백씨 저택에 가서 살자.”지윤은 황당했다.“네? 백씨 저택에 묵어요? 미쳤어요?”“그래야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가까이서 보호할 수 있어. 이 방법밖엔 없어.”지윤은 말없이 방으로 돌아가 짐을 꾸렸다.1시간 뒤.으리으리한 백씨 저택에서, 정안과 지윤은 거실 한가운데 서 있었고, 두 사람의 옆에는 캐리어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백씨네 도우미는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낯선 두 여인을 바라보았다.여은수는 두 사람의 캐리어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조금 우습기도 했다.“우리 집이 뭔 수용소인 줄 아나? 감히 우리 집에서 살겠다고? 정말 웃기지도 않지. 대체 무슨 염치로 여기까지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건가?”정안은 느릿느릿 설명했다.“할머니, 저 지금 이혼해서 갈 데가 없어요. 그래서 여기서 며칠만 묵고 싶어요.”여은수는 코웃음을 치며 가소롭기 짝이 없었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손님 내보내게.”정안은 지윤과 몸을 돌려 떠나려 하면서 중얼거렸다.“알겠어요. 그럼 할 수 없이 하준 씨 집에 다시 돌아가야죠 뭐.”여은수가 긴장하며 소리쳤다.“잠깐.”정안과 지우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웃음을 머금고 돌아서서 여은수를 바라보았다.그녀는 몇 초 동안 망설이더니 말했다.“우리 가문에는 다른 별장도 많으니 아무거나 고르게. 가문 소유의 호텔에 묵어도 되고.”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전 금원과 여기에만 묵고 싶어요. 할머니께서 여기 못 묵게 하시니 어쩔 수 없이 금원으로 가야겠네요.”여은수는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어이없는 표정으로 정안을 노려보았다.“자네 정말 뻔뻔하군!”정안은 못 들은 척 하고 지윤에게 말했다.“지윤아, 하준 씨가 뭐라고 했었지?”지윤은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고 목청을 돋우어 말했다.“도련님께서는 언니와 재혼하고 싶다고 하셨죠.”“그래, 사실 불가능할 것도 없지.
백하린은 어리둥절했다.“내가 네 남편을 빼앗았다고?”정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울먹이는 척했다.“그래, 네가 내 남편 뺏어갔잖아. 하준 씨 나랑 이혼할 때 계속 너 사랑한다고 했어.”백하린은 깜짝 놀라며 눈살을 찌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한 눈빛으로 백인호를 바라보았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애써 미소를 짓더니 안경을 고쳐잡았다.“여기 얼마나 있을 생각이야?”“내가 이혼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그래, 그럼 마음 편히 있어.”백하린은 불쾌해서 물었다.“삼촌, 미쳤어요? 분명 여기 들어온 목적이 따로 있다고요!”백인호는 냉랭한 눈빛으로 백하린을 노려보았는데, 그 살기 가득 찬 눈빛에 그녀는 머리를 움츠리고 감히 끽소리도 못했다.백인호는 지윤을 가리키며 물었다.“이쪽은 누구?”정안은 지윤의 손을 잡고 소개했다.“내 친구 지윤이에요. 백수에 집도 없는 불쌍한 가난뱅이죠.”지윤은 정안의 단어 표현에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소개를 마친 정안은 지윤을 데리고 거실을 나갔다.백하린 옆을 지날 때 정안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와 어깨를 등진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백하린, 앞으로 잘 부탁해.”백하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독설을 내뱉었다. “서다인, 너 이거 지금 양이 호랑이 굴에 들어온 거나 다름없어. 왜 굳이 자기 발로 지옥문에 들어서는 거지?”정안은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누가 양이고 누가 호랑이인지는 지켜보면 알겠지.”말을 마친 그녀는 여유롭게 위층으로 올라갔다.백하린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몸을 돌려 정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크게 당황했다.분명 눈앞의 여자는 서다인이었다. 생김새도 목소리도 여전히 그녀인데 뭔가 달라진 것 같았다.눈빛이나 분위기에서 나오는 아주 미묘한 차이였다. 지금의 그녀는 자신만만하고 여유롭게 또 세상만사에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대처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정안과 지윤이 위층으로 올라가 방으로 돌아갔고 백하린이 백인호 앞에 다가가 쏘아붙였다.“왜 허락했어? 저
정안이 베개 밑에 놓아둔 자체 제작 펜타총으로 그림자를 겨누려 했을 때 갑자기 남하준의 목소리가 들렸고, 순간 그녀는 급하게 총을 숨겼다.그리고 불안했던 마음도 순식간에 가라앉았다.남하준의 목소리가 맞았다.그런데 그의 몸이 왜 이렇게 뜨거울까?그의 숨결조차 피부를 데일 것 같았다.“음!”정안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그의 큰 손이 입을 가려서 소리를 낼 수 없었다.남하준은 방금 무언가가 그의 허리에 닿은 것이 느껴졌지만 그가 말을 한 후 그 물건은 다시 사라졌다.그는 정안의 손목을 잡고 위로 끌어내렸고, 휘영청 밝은 달빛의 희미한 빛 속에서 그녀의 손에 초호형 펜이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이깟 펜으로 널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아?”정안은 긴장해서 무기를 감추려고 손을 뺐다.이것은 펜이 아니라, 그녀가 3년 전에 직접 설계한 특수 제작 마이크로 권총으로, 위력이 강하고 은폐성도 높았다.“음음!”정안이 또 몸부림쳤고 남자는 그녀의 입을 천천히 풀었다.그녀는 심호흡을 하며 화를 냈다. “오빠야말로 미친 거 아니에요? 왜 갑자기 쳐들어와요? 하마터면...”‘내 손에 죽을 뻔했다고요.’정안은 뒷말을 꾹 참고 그의 속박에서 벗어나 이불 밑에 총을 숨겼다.남자는 차갑게 웃었다.“하마터면 뭐?”“여긴 왜 왔어요?”정안이 말머리를 돌렸고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짚어보았다.“몸은 왜 이렇게 뜨거워요?”그는 급히 머리를 돌리더니 그녀를 침대에서 끌어 내리고는 엄숙하게 말했다.“당장 여기 떠나.”“어디로 들어왔어요?”정안은 남자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베란다 유리문이 조금 열려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나 분명 창문 잠갔는데 저게 어떻게 열렸지?”“저런 간단한 자물쇠가 네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네.”정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으로는 누군가 그녀를 해치려 한다면 아무리 잠가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가자.”남하준이 그녀를 끌고 베란다로 향하자 정안이 그 손을 뿌리쳤다.“나
그는 여전히 준수하고 잘생겼지만 안색이 나빠 보이고 입술이 약간 하얗고 건조했다.“잠깐 기다려봐요. 나 옷 갈아입고 올게요.”정안은 부랴부랴 옷장으로 가서 옷을 꺼내 화장실로 들어갔다.남하준은 그녀가 뭘 하려는 지 알 수 없었고 그저 그녀가 자신과 여기를 떠날 수 있기를 바랐다.잠시 후 정안은 옷을 갈아입고 나와 작은 가방을 들고 개인 소지품을 챙겨 남하준 곁으로 다가갔다. “가요.”남하준은 좀 놀라웠다.“나랑 같이 떠나려고?”“아니요, 난 떠나지 않아요. 오빠 데리고 병원에 가려고요.”정안은 그의 팔을 잡고 문으로 끌고 갔다. “이 시간에 모두 잠들었을 테니 조용히 대문으로 나가요.”남하준은 차가운 얼굴을 하고 천천히 손을 빼며 냉담하게 말했다.“필요 없어. 나 괜찮아.”“지금 열이 펄펄 나요!”정안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넌 신경 쓰지 마.”남자는 거리감 느껴지는 얼굴로 덤덤하게 말했다.정안은 초췌한 그의 얼굴을 보며 안쓰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고 심장이 아려왔다.그녀에게 신경 쓰지 말라니?이렇게 아픈데도 병원에 가지 않고 달려와 그녀의 일에 참견하다니. 신경 쓰지 말라는 남자의 말이 단번에 그녀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그녀는 그렁그렁한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나더러 신경 쓰지 말라면서 당신은 무슨 자격으로 내 일에 참견하는 건데요?”그에게 무슨 자격이 있을까?이 말은 남하준의 가슴을 칼로 이리저리 긁어대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이 아프고 쓰라렸다.그는 두 손으로 주먹을 쥐고 천천히 천장을 올려다보며 숨을 몰아쉬고 눈시울을 붉혔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나지막하고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완아, 말 좀 들어.”정안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입술을 오므리고 어색한 미소를 짓고 촉촉한 눈동자로 말했다.“오빠, 기억을 되찾은 나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남하준은 붉게 물든 그윽한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했다.정안의 눈빛은 강인하고 자신만만했으며 보이지 않는 힘이 묻어났다.“우리 10년 만에 만났어요. 오빤
지윤에게 말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그녀는 번호를 바꿔 류청의 번호를 눌렀다.벨이 울리고 그녀는 스피커폰으로 돌린 다음 전화를 책상 위에 올려 놓고 휴지를 가져다 남하준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줬다.“여보세요?”류청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고 잠에서 덜 깬 듯 흐리멍덩한 말투였다.정안이 긴장하며 말했다.“류청 씨, 나 다인이에요.”“발신자 표시 떠요. 말씀하세요. 새벽 3시에 무슨 일이시죠?”“하준 오빠 혹시 요즘 아파요?”“네. 이미 며칠 동안 몸이 안 좋으셨는데 병원에도 안 가고 약도 안 드시고 그저 버티면서 일에만 매진하고 계세요. 저랑 정호가 오랫동안 설득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어요.”“이 사람 지금 나랑 있는데 기절했어요.”정안은 남하준 옆에 다급하게 무릎을 꿇고 손을 뻗어 그의 뜨거운 이마를 만졌다.“이제 어떡하죠?”긴장한 류청은 목소리가 대뜸 우렁차졌다.“도련님께서 백씨 저택에 가셨다고요?”“네.”정안은 기절해 자는 남자의 잘생긴 얼굴이 초췌해진 것을 보고 가슴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류청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도련님은 이렇게 충동적인 분이 아니신데 왜 다인 씨 일에만 이성을 잃으시는지 모르겠네요.”정안은 자괴감이 들었다.“미안해요. 이제 어떡하면 좋죠? 제가 집으로 의사를 부를까요? 아니면 와서 병원으로 데려다주겠어요?”“안돼요. 절대 백씨 가문 사람들이 다인 씨를 찾으러 갔다는 걸 알면 안 돼요. 만약 알게 되면 우리가 그 집안에 심은 스파이가 드러날 거예요.”“네, 알겠어요.”정안이 시간을 보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었다. 지금 정신을 잃은 남하준을 끌고 밖으로 나가는 건 확실히 어려웠다.“집에 약 있어요?”류청이 물었다.“네.”“일단 해열제랑 감기약 같이 먹이고 푹 쉬게 하세요. 그럼 도련님께서 깨어나면 그 집에서 쉽게 나올 수 있을 거예요.”“알겠어요.”정안은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방을 나와 거실로 살금살금 내려가서 기억을 더듬어 약상자가 놓인 캐비닛에서 감
“제발... 제발 꼭 나아야 해요.”정안은 울먹이며 중얼거렸고 아랫입술을 깨물자 짭짤한 눈물이 그녀의 입가로 흘러내려 턱에 떨어졌다.그녀는 숨을 돌리고 두 손으로 눈물을 닦고 급히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달려가 젖은 수건을 꺼내 그의 땀을 닦아 주었다.약을 먹어서인지, 열이 있어서인지 남하준은 끊임없이 땀을 흘렸고 정안은 몇 분 간격으로 그의 이마를 짚어보고 땀을 닦아주었다.30분 후, 그의 옷은 흠뻑 젖었고 체온도 점차 내려갔다.정안은 휴대폰을 들고 방안을 서성거리며 류청의 번호를 보고 또 벽시계를 확인했다.이미 아침 5시였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지만 집안 도우미는 이미 깨어나 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니 지금 류청을 부르면 들키기 쉬웠다.고심 끝에 정안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큰 침대로 올라가 그의 옆에 무릎을 꿇고 이불을 들추고는 긴장한 듯 손을 뻗어 그의 옷을 풀었다.“미안해요. 오빠 옷이 다 젖어서 내가 벗겨줄게요. 아니면 이러다 추위 타요.”“나 다른 뜻은 전혀 없으니까 오해하진 말고요.”정안은 혼잣말로 긴장을 풀고 침을 삼키고는 입술을 오므리며 수줍음을 억제하려 했다.단추가 풀리자 남자의 다부진 가슴이 드러났다.건강하고 매끄러운 피부, 가슴 근육과 복근의 완벽한 라인, 한 치의 근육까지 매혹적인 몸매는 그야말로 여성들의 로망이었다.정안은 자신이 변태적인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본능적으로 그의 몸매에 끌렸다.예전에도 그의 가슴 근육을 본 적 있지만 늘 볼 때마다 부끄러워했다.그녀는 많은 힘을 들여서야 남하준의 상의를 벗겼고 너무 힘든 나머지 숨을 헐떡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정안은 잠시 숨을 돌린 후 그의 바지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고, 왠지 모르게 뜨거운 눈빛과 함께 뺨과 귀밑까지 뜨거워지며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바지도 젖었는데 벗기는 게 좋지 않을까?“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 사람은 환자야. 합방도 아니고 그저 아픈 사람 돌보고 있으면서 왜 이상한 생각 하냐고?”정안은 자신의 뜨거운 얼굴을 들고
“나...”정안은 너무 무안해서 얼어버렸고 목구멍에서 소리가 났지만 부끄러워서 말을 하지 못했다.그러나 남하준은 얼떨떨한 채 제대로 정신이 들지 못했고 무거운 눈꺼풀을 몇 초 만에 다시 닫았다.그는 허리에 살짝 힘을 주고 엉덩이를 들었고 바지는 순조롭게 정안의 허벅지로 당겨졌다.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며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위로 내밀었다. “오빠... 깼어요?”남자는 움직이지 않고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정안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의 긴 바지를 벗기고 급히 물수건을 가져다 그의 몸을 닦아 주었다.그녀는 온도가 완전히 내려갈 때까지 남자를 서너 번 닦아주었다.한 시간쯤 지났을 때 정안은 또 입으로 그에게 감기약을 먹였다.그렇게 밤새 남하준을 돌보느라 한숨도 자지 못하다가 날이 밝자 그녀도 피곤해서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우르릉!천둥소리에 남하준이 깨어났다.그는 무거운 눈을 천천히 뜨고 어두운 방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베란다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밖에는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벽시계는 지금 10시 30분을 나타내고 있었고, 그가 방을 한 번 훑어보고는 기절하기 전의 기억이 떠올라서야 지금 백씨 저택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막 일어나 앉으려는데 복부가 유난히 무겁고 물건에 눌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어깨를 치켜들고 고개를 숙여 복부를 바라보니 작고 가냘픈 몸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폭포수처럼 까만 긴 머리가 풀어져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완자?그는 온몸에 힘이 없고, 목이 아프고, 입이 마르고, 침을 삼키는 것조차 따끔거렸다.실외에는 폭우가 쏟아져 어두컴컴했다.남하준은 몸이 이상해서 손을 뻗어 이불 속을 더듬어 보았다.그는 긴장해서 위아래를 더듬어 보고 나서야, 자신이 발가벗겨져 있고 정확히는 팬티 한 장만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는 어쩔 수 없이 눈살을 찌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고 귀는 자신도 모르게 붉어졌다.똑똑!“언니, 깼어요?”지윤의 목소리가 노크 소리와 함께 들려왔고
정안은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수줍게 해명했다.“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걸 어떡해...”지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아, 그래요?”정안은 설명할수록 당황했다.“맞아. 그리고 우리 결혼했을 때 옷 벗은 것도 봤었어. 별 것 아니야.”이 일을 떠올리자 지윤이 궁금해하며 물었다.“언니 기억 잃고 이 남자랑 결혼한 반년 동안 두 사람 혹시... 그거 했어요?”“뭐?”지윤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손가락으로 표현했다.“자는 거요.”그녀의 뜻을 알아차린 정안은 얼굴이 붉어지며 수줍게 말했다.“얘기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없었어.”지윤은 경악해서 남하준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설마요. 이렇게 잘생기고 몸매도 좋은데 설마 그건 딸리는 거예요?”그가 딸린다?자는 척하던 남하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안색이 가라앉고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속은 이미 뒤집혔다.정안은 남하준이 그 방면으로 어떤지 모르지만, 결혼 생활 동안 남하준이 그녀를 매우 존중하고 강요한 적이 없다는 건 확신했다.“함부로 말하지 마.”정안은 지윤을 밀치고 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난 여기 남아 돌볼 테니 넌 빨리 가서 할아버지 왜 아프게 됐는지나 조사해.”“알겠어요. 언니 조심해요. 이 집 사람한테 저 남자 들키면 안 돼요.”“알아.”정안은 방에서 지윤을 내쫓고 문을 잠그고는 고개를 숙이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몸을 돌린 그녀는 문득 눈앞의 장면에 화들짝 놀랐다.남하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아픈 이마를 짚고 있었다.그의 탄탄한 근육질 라인이 특히 눈길을 끌었으며 근육의 몇 군데 옅은 흉터가 야성적인 섹시함을 더했다.정안은 긴장해서 침을 삼키고 조심스럽게 걸어가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의 안색을 살폈다. “깼어요? 어디 아픈 곳 없어요?”남하준은 고개를 숙이고 흔들더니 안색이 좀 어두웠다.정안은 이불을 잡아당겨 그의 어깨를 덮었다.“감기 걸려요. 덮어요.”방금 덮은 이불이 또 그의 어깨에서 흘러내렸다.정안은 이불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진은 무엇일까?여자 사진?남서연은 기분이 가라앉아 말했다.“나 먼저 돌아갈게요.”그러자 백건이 그녀에게 다가갔다.“나랑 같이 집에 가서 어른들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자.”“안돼요.”남서연은 긴장감에 못 이겨 안절부절했다.“일단 아직은 안돼요. 내가 먼저 가서 가족들 생각을 알아보고 다시 결정해요.”“어떤 상황이든, 어떤 결과든, 나 혼자 감당할 거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서두르지 말고 우리 천천히 얘기해요. 내가 우리 가족들 설득하고 오빠는 오빠 가족들 설득해요. 네?”백건은 여전히 변수가 있을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행동해 남서연을 놀라게 해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그래. 네 말대로 해.”남서연은 그가 덮은 앨범을 가리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덤덤하게 물었다.“누구 사진이에요?”백건은 고개를 돌려 협탁을 보더니 마음이 찔려 말했다.“내 사진이야.”그건 백건이 전에 몰래 찍었던 남서연의 사진이었다.결혼 후에만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가 한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계획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어머니의 강력한 방해를 무릅쓰고 그는 강력한 권한을 동원하여 인사팀을 통해 남서연의 면접을 합격시키고 그녀를 ND에 무사히 입사하게 했다.또 직권을 이용하여 남서연을 데리고 해외 출장을 갔다. 그 목적은 바로 남서연을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만든 다음 그 기회를 빌려 잠자리를 갖고 그녀를 임신시키는 것이었다.두 차례의 성관계에도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그녀를 임신시키기 위함이었다.그는 감히 남서연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남서연이 그를 비열하다고, 수단이 더럽다고, 파렴치하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결혼하고 나서 다시 그녀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천천히 용서를 빌어야 했다.남서연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백건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발이 미끄러질까 봐 보호했다. 남서연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호하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서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초롱초롱한 큰 눈으로 물끄러미 백건을 바라보며 머리가 하얘졌다.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백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큰 유혹이었다.그녀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백건은 갑자기 몸을 기울여 왼쪽 무릎을 그녀 앞에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놀란 그녀는 소파에 붙으며 경악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뜨거운 눈빛으로 부드럽게 말했는데 매우 절실해 보였다.“서연아, 나와 결혼해줘. 응?”‘지금 아이를 위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한 거야?’남서연은 아주 기뻤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괴롭고 불안했다.“두 집안 어른들 모두 찬성하지 않을 거예요.”“너만 원한다면 그런 것들은 전부 내가 알아서 해.”남서연은 차마 배 속의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가족 모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현실 생활에서 많은 부부가 선을 보고 결혼하니 먼저 결혼하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결혼 후에 그녀가 잘 보인다면 백건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남서연은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감격에 겨워 붉어진 눈시울이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어지러운 숨결로 소파에 앉더니 남서연을 덥석 품에 끌어안았다.남자의 동작은 절박했고 강렬한 포옹에 그녀는 몸이 아팠다.남서연은 그의 등 뒤에 두 손을 널어놓고 턱을 그의 어깨에 괴고는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귓가에 남자의 무거운 호흡과 함께 약간 울먹이는 쉰 목소리가 들렸다.“고마워. 서연아. 정말 고마워. 반드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될게.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최선을 다해서 네게 가장 행복한 미래를 줄게.”남서연은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다.다만,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대해야 할까?아이 때문에 결혼하게 되면 백건은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까?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슬픈 듯 중얼거렸다.“나 임신했어요.”백건은 심장이 움찔했고 온몸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거의 뛰기라도 하듯 벌떡 일어났다. 가슴의 흥분을 터뜨리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서연이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고? 나 아빠가 되는 거야? 서연이 아이의 아빠? 이거 지금 꿈 아니지?’그는 갑작스러운 행복을 애써 눌렀다.남서연은 그의 반응에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니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를 등지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이 남자가 대체 어떤 마음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그녀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그녀처럼 망연자실할까?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남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책임지라고 찾아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다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에 오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만약 수술하게 되면 나와 함께 가줘요.”백건은 무거운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순식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그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얼굴빛은 굳어졌고 말투는 엄숙했다.“뭐? 수술한다고?”남서연은 주눅이 들어 쳐다보며 말했다.“네. 혼전 임신은 안 돼요.”가족들이 만약 그녀가 혼전임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백건을 때려죽일 것이다.숨이 가빠진 백건은 두 손을 꼭 잡았고 엄숙한 말투에 약간의 온기를 더해 부드럽게 달랬다.“서연아, 아이는 포기할 수 없어. 내게 책임질 기회를 줄 수 없어? 나 좋은 아빠가 될게.”남서연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백건을 바라보며 멍해졌다.그녀의 생각과 달랐다.그녀는 백건이 그녀보다 더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이의 존재가 그를 위험하게 만들 테니까.백건은 긴장된 듯 입술을 오므리고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그리고 너만 괜찮다면 나... 좋은 남편이 될 수도 있어.”남자는 주먹을 문지르며 가늘게 떨릴 정도로 긴장했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남서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의 시주를 기
남서연은 복잡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저예요.”백건은 숨이 거칠고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말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다.그는 남서연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몰라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시간 있어요?”남서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물었다.백건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있어.”“잠깐 만나서 얘기할래요?”“좋아.”백건이 곧바로 대답하더니 또 물었다.“어디서 볼래? 데리러 갈게.”남서연이 생각해보니 밖에는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오빠 집으로 갈게요. 반 시간이면 도착해요.”“좋아.”남서연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쓰고 공중화장실을 나섰다.한편, 공항 가는 차에 타고 있던 백건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령했다.“차 돌려서 집으로 가.”“대표님, 비행기 시간 이미 다 됐어요.”백건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행사 취소하고 바로 집으로 가.”하현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전화를 들으니 아마 남서연일 것이다.백건에게 새 시즌 발표회는 취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고 없어도 되는 일이다.그러나 남서연을 만날 어떤 기회도 그는 놓칠 수 없었다.하현우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30분 후.남서연은 산 중턱 별장에 와서 막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하현우가 이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했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남서연은 살짝 놀랐다가 하현우인 걸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화원의 앞마당을 지나 웅장한 큰 집으로 들어갔다.문은 열려 있고 백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어 우아하고 멋스러우며 준수한 매력을 자랑했다.남자는 그윽한 눈동자로 남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다시 만난 남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마음속에 토끼 한 마리가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