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하린은 어리둥절했다.“내가 네 남편을 빼앗았다고?”정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울먹이는 척했다.“그래, 네가 내 남편 뺏어갔잖아. 하준 씨 나랑 이혼할 때 계속 너 사랑한다고 했어.”백하린은 깜짝 놀라며 눈살을 찌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한 눈빛으로 백인호를 바라보았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애써 미소를 짓더니 안경을 고쳐잡았다.“여기 얼마나 있을 생각이야?”“내가 이혼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그래, 그럼 마음 편히 있어.”백하린은 불쾌해서 물었다.“삼촌, 미쳤어요? 분명 여기 들어온 목적이 따로 있다고요!”백인호는 냉랭한 눈빛으로 백하린을 노려보았는데, 그 살기 가득 찬 눈빛에 그녀는 머리를 움츠리고 감히 끽소리도 못했다.백인호는 지윤을 가리키며 물었다.“이쪽은 누구?”정안은 지윤의 손을 잡고 소개했다.“내 친구 지윤이에요. 백수에 집도 없는 불쌍한 가난뱅이죠.”지윤은 정안의 단어 표현에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소개를 마친 정안은 지윤을 데리고 거실을 나갔다.백하린 옆을 지날 때 정안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와 어깨를 등진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백하린, 앞으로 잘 부탁해.”백하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독설을 내뱉었다. “서다인, 너 이거 지금 양이 호랑이 굴에 들어온 거나 다름없어. 왜 굳이 자기 발로 지옥문에 들어서는 거지?”정안은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누가 양이고 누가 호랑이인지는 지켜보면 알겠지.”말을 마친 그녀는 여유롭게 위층으로 올라갔다.백하린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몸을 돌려 정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크게 당황했다.분명 눈앞의 여자는 서다인이었다. 생김새도 목소리도 여전히 그녀인데 뭔가 달라진 것 같았다.눈빛이나 분위기에서 나오는 아주 미묘한 차이였다. 지금의 그녀는 자신만만하고 여유롭게 또 세상만사에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대처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정안과 지윤이 위층으로 올라가 방으로 돌아갔고 백하린이 백인호 앞에 다가가 쏘아붙였다.“왜 허락했어? 저
정안이 베개 밑에 놓아둔 자체 제작 펜타총으로 그림자를 겨누려 했을 때 갑자기 남하준의 목소리가 들렸고, 순간 그녀는 급하게 총을 숨겼다.그리고 불안했던 마음도 순식간에 가라앉았다.남하준의 목소리가 맞았다.그런데 그의 몸이 왜 이렇게 뜨거울까?그의 숨결조차 피부를 데일 것 같았다.“음!”정안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그의 큰 손이 입을 가려서 소리를 낼 수 없었다.남하준은 방금 무언가가 그의 허리에 닿은 것이 느껴졌지만 그가 말을 한 후 그 물건은 다시 사라졌다.그는 정안의 손목을 잡고 위로 끌어내렸고, 휘영청 밝은 달빛의 희미한 빛 속에서 그녀의 손에 초호형 펜이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이깟 펜으로 널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아?”정안은 긴장해서 무기를 감추려고 손을 뺐다.이것은 펜이 아니라, 그녀가 3년 전에 직접 설계한 특수 제작 마이크로 권총으로, 위력이 강하고 은폐성도 높았다.“음음!”정안이 또 몸부림쳤고 남자는 그녀의 입을 천천히 풀었다.그녀는 심호흡을 하며 화를 냈다. “오빠야말로 미친 거 아니에요? 왜 갑자기 쳐들어와요? 하마터면...”‘내 손에 죽을 뻔했다고요.’정안은 뒷말을 꾹 참고 그의 속박에서 벗어나 이불 밑에 총을 숨겼다.남자는 차갑게 웃었다.“하마터면 뭐?”“여긴 왜 왔어요?”정안이 말머리를 돌렸고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짚어보았다.“몸은 왜 이렇게 뜨거워요?”그는 급히 머리를 돌리더니 그녀를 침대에서 끌어 내리고는 엄숙하게 말했다.“당장 여기 떠나.”“어디로 들어왔어요?”정안은 남자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베란다 유리문이 조금 열려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나 분명 창문 잠갔는데 저게 어떻게 열렸지?”“저런 간단한 자물쇠가 네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네.”정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으로는 누군가 그녀를 해치려 한다면 아무리 잠가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가자.”남하준이 그녀를 끌고 베란다로 향하자 정안이 그 손을 뿌리쳤다.“나
그는 여전히 준수하고 잘생겼지만 안색이 나빠 보이고 입술이 약간 하얗고 건조했다.“잠깐 기다려봐요. 나 옷 갈아입고 올게요.”정안은 부랴부랴 옷장으로 가서 옷을 꺼내 화장실로 들어갔다.남하준은 그녀가 뭘 하려는 지 알 수 없었고 그저 그녀가 자신과 여기를 떠날 수 있기를 바랐다.잠시 후 정안은 옷을 갈아입고 나와 작은 가방을 들고 개인 소지품을 챙겨 남하준 곁으로 다가갔다. “가요.”남하준은 좀 놀라웠다.“나랑 같이 떠나려고?”“아니요, 난 떠나지 않아요. 오빠 데리고 병원에 가려고요.”정안은 그의 팔을 잡고 문으로 끌고 갔다. “이 시간에 모두 잠들었을 테니 조용히 대문으로 나가요.”남하준은 차가운 얼굴을 하고 천천히 손을 빼며 냉담하게 말했다.“필요 없어. 나 괜찮아.”“지금 열이 펄펄 나요!”정안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넌 신경 쓰지 마.”남자는 거리감 느껴지는 얼굴로 덤덤하게 말했다.정안은 초췌한 그의 얼굴을 보며 안쓰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고 심장이 아려왔다.그녀에게 신경 쓰지 말라니?이렇게 아픈데도 병원에 가지 않고 달려와 그녀의 일에 참견하다니. 신경 쓰지 말라는 남자의 말이 단번에 그녀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그녀는 그렁그렁한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나더러 신경 쓰지 말라면서 당신은 무슨 자격으로 내 일에 참견하는 건데요?”그에게 무슨 자격이 있을까?이 말은 남하준의 가슴을 칼로 이리저리 긁어대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이 아프고 쓰라렸다.그는 두 손으로 주먹을 쥐고 천천히 천장을 올려다보며 숨을 몰아쉬고 눈시울을 붉혔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나지막하고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완아, 말 좀 들어.”정안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입술을 오므리고 어색한 미소를 짓고 촉촉한 눈동자로 말했다.“오빠, 기억을 되찾은 나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남하준은 붉게 물든 그윽한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했다.정안의 눈빛은 강인하고 자신만만했으며 보이지 않는 힘이 묻어났다.“우리 10년 만에 만났어요. 오빤
지윤에게 말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그녀는 번호를 바꿔 류청의 번호를 눌렀다.벨이 울리고 그녀는 스피커폰으로 돌린 다음 전화를 책상 위에 올려 놓고 휴지를 가져다 남하준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줬다.“여보세요?”류청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고 잠에서 덜 깬 듯 흐리멍덩한 말투였다.정안이 긴장하며 말했다.“류청 씨, 나 다인이에요.”“발신자 표시 떠요. 말씀하세요. 새벽 3시에 무슨 일이시죠?”“하준 오빠 혹시 요즘 아파요?”“네. 이미 며칠 동안 몸이 안 좋으셨는데 병원에도 안 가고 약도 안 드시고 그저 버티면서 일에만 매진하고 계세요. 저랑 정호가 오랫동안 설득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어요.”“이 사람 지금 나랑 있는데 기절했어요.”정안은 남하준 옆에 다급하게 무릎을 꿇고 손을 뻗어 그의 뜨거운 이마를 만졌다.“이제 어떡하죠?”긴장한 류청은 목소리가 대뜸 우렁차졌다.“도련님께서 백씨 저택에 가셨다고요?”“네.”정안은 기절해 자는 남자의 잘생긴 얼굴이 초췌해진 것을 보고 가슴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류청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도련님은 이렇게 충동적인 분이 아니신데 왜 다인 씨 일에만 이성을 잃으시는지 모르겠네요.”정안은 자괴감이 들었다.“미안해요. 이제 어떡하면 좋죠? 제가 집으로 의사를 부를까요? 아니면 와서 병원으로 데려다주겠어요?”“안돼요. 절대 백씨 가문 사람들이 다인 씨를 찾으러 갔다는 걸 알면 안 돼요. 만약 알게 되면 우리가 그 집안에 심은 스파이가 드러날 거예요.”“네, 알겠어요.”정안이 시간을 보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었다. 지금 정신을 잃은 남하준을 끌고 밖으로 나가는 건 확실히 어려웠다.“집에 약 있어요?”류청이 물었다.“네.”“일단 해열제랑 감기약 같이 먹이고 푹 쉬게 하세요. 그럼 도련님께서 깨어나면 그 집에서 쉽게 나올 수 있을 거예요.”“알겠어요.”정안은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방을 나와 거실로 살금살금 내려가서 기억을 더듬어 약상자가 놓인 캐비닛에서 감
“제발... 제발 꼭 나아야 해요.”정안은 울먹이며 중얼거렸고 아랫입술을 깨물자 짭짤한 눈물이 그녀의 입가로 흘러내려 턱에 떨어졌다.그녀는 숨을 돌리고 두 손으로 눈물을 닦고 급히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달려가 젖은 수건을 꺼내 그의 땀을 닦아 주었다.약을 먹어서인지, 열이 있어서인지 남하준은 끊임없이 땀을 흘렸고 정안은 몇 분 간격으로 그의 이마를 짚어보고 땀을 닦아주었다.30분 후, 그의 옷은 흠뻑 젖었고 체온도 점차 내려갔다.정안은 휴대폰을 들고 방안을 서성거리며 류청의 번호를 보고 또 벽시계를 확인했다.이미 아침 5시였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지만 집안 도우미는 이미 깨어나 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니 지금 류청을 부르면 들키기 쉬웠다.고심 끝에 정안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큰 침대로 올라가 그의 옆에 무릎을 꿇고 이불을 들추고는 긴장한 듯 손을 뻗어 그의 옷을 풀었다.“미안해요. 오빠 옷이 다 젖어서 내가 벗겨줄게요. 아니면 이러다 추위 타요.”“나 다른 뜻은 전혀 없으니까 오해하진 말고요.”정안은 혼잣말로 긴장을 풀고 침을 삼키고는 입술을 오므리며 수줍음을 억제하려 했다.단추가 풀리자 남자의 다부진 가슴이 드러났다.건강하고 매끄러운 피부, 가슴 근육과 복근의 완벽한 라인, 한 치의 근육까지 매혹적인 몸매는 그야말로 여성들의 로망이었다.정안은 자신이 변태적인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본능적으로 그의 몸매에 끌렸다.예전에도 그의 가슴 근육을 본 적 있지만 늘 볼 때마다 부끄러워했다.그녀는 많은 힘을 들여서야 남하준의 상의를 벗겼고 너무 힘든 나머지 숨을 헐떡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정안은 잠시 숨을 돌린 후 그의 바지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고, 왠지 모르게 뜨거운 눈빛과 함께 뺨과 귀밑까지 뜨거워지며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바지도 젖었는데 벗기는 게 좋지 않을까?“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 사람은 환자야. 합방도 아니고 그저 아픈 사람 돌보고 있으면서 왜 이상한 생각 하냐고?”정안은 자신의 뜨거운 얼굴을 들고
“나...”정안은 너무 무안해서 얼어버렸고 목구멍에서 소리가 났지만 부끄러워서 말을 하지 못했다.그러나 남하준은 얼떨떨한 채 제대로 정신이 들지 못했고 무거운 눈꺼풀을 몇 초 만에 다시 닫았다.그는 허리에 살짝 힘을 주고 엉덩이를 들었고 바지는 순조롭게 정안의 허벅지로 당겨졌다.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며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위로 내밀었다. “오빠... 깼어요?”남자는 움직이지 않고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정안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의 긴 바지를 벗기고 급히 물수건을 가져다 그의 몸을 닦아 주었다.그녀는 온도가 완전히 내려갈 때까지 남자를 서너 번 닦아주었다.한 시간쯤 지났을 때 정안은 또 입으로 그에게 감기약을 먹였다.그렇게 밤새 남하준을 돌보느라 한숨도 자지 못하다가 날이 밝자 그녀도 피곤해서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우르릉!천둥소리에 남하준이 깨어났다.그는 무거운 눈을 천천히 뜨고 어두운 방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베란다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밖에는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벽시계는 지금 10시 30분을 나타내고 있었고, 그가 방을 한 번 훑어보고는 기절하기 전의 기억이 떠올라서야 지금 백씨 저택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막 일어나 앉으려는데 복부가 유난히 무겁고 물건에 눌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어깨를 치켜들고 고개를 숙여 복부를 바라보니 작고 가냘픈 몸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폭포수처럼 까만 긴 머리가 풀어져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완자?그는 온몸에 힘이 없고, 목이 아프고, 입이 마르고, 침을 삼키는 것조차 따끔거렸다.실외에는 폭우가 쏟아져 어두컴컴했다.남하준은 몸이 이상해서 손을 뻗어 이불 속을 더듬어 보았다.그는 긴장해서 위아래를 더듬어 보고 나서야, 자신이 발가벗겨져 있고 정확히는 팬티 한 장만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는 어쩔 수 없이 눈살을 찌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고 귀는 자신도 모르게 붉어졌다.똑똑!“언니, 깼어요?”지윤의 목소리가 노크 소리와 함께 들려왔고
정안은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수줍게 해명했다.“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걸 어떡해...”지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아, 그래요?”정안은 설명할수록 당황했다.“맞아. 그리고 우리 결혼했을 때 옷 벗은 것도 봤었어. 별 것 아니야.”이 일을 떠올리자 지윤이 궁금해하며 물었다.“언니 기억 잃고 이 남자랑 결혼한 반년 동안 두 사람 혹시... 그거 했어요?”“뭐?”지윤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손가락으로 표현했다.“자는 거요.”그녀의 뜻을 알아차린 정안은 얼굴이 붉어지며 수줍게 말했다.“얘기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없었어.”지윤은 경악해서 남하준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설마요. 이렇게 잘생기고 몸매도 좋은데 설마 그건 딸리는 거예요?”그가 딸린다?자는 척하던 남하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안색이 가라앉고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속은 이미 뒤집혔다.정안은 남하준이 그 방면으로 어떤지 모르지만, 결혼 생활 동안 남하준이 그녀를 매우 존중하고 강요한 적이 없다는 건 확신했다.“함부로 말하지 마.”정안은 지윤을 밀치고 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난 여기 남아 돌볼 테니 넌 빨리 가서 할아버지 왜 아프게 됐는지나 조사해.”“알겠어요. 언니 조심해요. 이 집 사람한테 저 남자 들키면 안 돼요.”“알아.”정안은 방에서 지윤을 내쫓고 문을 잠그고는 고개를 숙이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몸을 돌린 그녀는 문득 눈앞의 장면에 화들짝 놀랐다.남하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아픈 이마를 짚고 있었다.그의 탄탄한 근육질 라인이 특히 눈길을 끌었으며 근육의 몇 군데 옅은 흉터가 야성적인 섹시함을 더했다.정안은 긴장해서 침을 삼키고 조심스럽게 걸어가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의 안색을 살폈다. “깼어요? 어디 아픈 곳 없어요?”남하준은 고개를 숙이고 흔들더니 안색이 좀 어두웠다.정안은 이불을 잡아당겨 그의 어깨를 덮었다.“감기 걸려요. 덮어요.”방금 덮은 이불이 또 그의 어깨에서 흘러내렸다.정안은 이불
“그 한 달 동안 적어도 열 번은 영상통화 했을 거예요. 그래서 두 분께서 가짜 백하린에게 속은 거고요. 게다가 그때 백인호가 내 안전을 빌미로 부모님을 협박해 협조한 게 틀림없어요.”정안이 너무 가까이 다가간 탓에 남하준은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고 그녀의 몸에서 나는 은은하고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입이 바짝바짝 모르고 온몸이 뜨거워지고 마음이 뒤숭숭했다.남하준이 목청을 가다듬고 중얼거렸다.“그건 나도 알고 있어. 나 물 좀.”“네.”정안은 침대 캐비닛에서 물 한 병을 꺼내 뚜껑을 열어 그에게 건네주었다.물을 건네받은 남하준은 고개를 젖혀 크게 한 모금 벌컥 마셨다.섹시한 남자의 목젖이 위아래로 굴려 물을 삼키는 동작이 아주 매혹적이라 정안도 참지 못하고 입술을 오므리며 갈증을 느꼈다.남하준이 물을 마시고 손을 들어 입가를 닦자 그의 어깨 위의 이불이 다시 미끄러져 내려갔다.그러자 정안은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 화끈 달아오른 얼굴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말했다.“지윤이가 이미 조사했어요. 부모님 사망증명서만 있고 화장증명서는 없고 무덤 안에도 유골이 없어요.”“그래서 난 두 분이 살아계신다고 의심하고 있어요. 지윤이랑 이 집에 들어온 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호하려는 것도 있지만 백인호를 통해 부모님 행방을 찾고 싶어서예요.”남하준은 정안의 뒤통수를 덥석 잡더니 확 끌어당겨 마주 보며 말했다.“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해? 그 두 사람은 블랙 섀도우가 보낸 스파이일 가능성이 커.”정안은 그의 위엄 있는 기색에 다소 긴장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알면서도 이런 모험을 한다고?”남하준이 되묻자 정안이 강인하게 말했다.“왜냐하면 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호하고 엄마 아빠를 찾아야 하니까요.”“고작 너랑 그 지윤이라는 여자 둘이서?”정안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눈을 깜빡이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그럼, 오빠도 나 도와줘요. 오빠가 도와준다면 훨씬 쉬울 거예요.”남하준은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다. 분명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지만
사람은 기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상쾌한 법이다. 하루 종일 바빠도 지우와의 관계를 회복한 생각만 하면 속으로 은근히 기뻐 났다.남태준이 막 차 옆으로 다가갔을 때 임다희가 차 뒤에서 걸어왔다.“태준아.”남태준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 무슨 일이야?”“할 얘기가 있어. 아주 중요한 얘기야.”임다희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타.”남태준이 쿨하게 대답하자 임다희는 그의 차에 올라탔고 남태준이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 안에서 남태준이 물었다.“어디서 얘기할래?”“너희 집.”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그건 안돼.”“아주 중요한 일이야. 반드시 사람 없는 곳에서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임다희는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빛을 내뿜으며 엄숙하게 말했다.“마약 거래에 관한 얘기야.”“그럼 지금 얘기해.”남태준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차 안에는 우리 둘만 있으니까 안전해.”임다희가 앞뒤를 돌아보니 이 길은 행인도 없고 오가는 차량도 뜸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태준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려 하자 마지못해 핸드백을 열어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이 시간에 거래가 있을 거야.”그의 다년간 사건 처리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명확한 거래 장소와 시간은 임다희가 절대 알 수 없었다.이 정보가 가짜이거나, 누군가가 그녀에게 준 것이 틀림 없었다.“어디서 났어?”남태준이 묻자 임다희는 조금 켕긴 듯 대답했다.“건달인 친구가 알아낸 정보인데 내가 샀어.”남태준은 입꼬리를 꼬며 그녀의 거짓말이 좀 억지스러워서 계속 물었다. “네가 마약 형사도 아니고 이 정보를 왜 사는데?”“너 주려고.”남태준은 움찔하더니 침묵했다.임다희는 애정 어린 눈으로 남태준을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태준아, 우리 다시 만나자.”남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뭐라고?”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울먹였다.“전에는 내가 미안했어. 네
지하 카지노 사무실.육건우는 자료를 책상에 던지고는 화가 나서 일어나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임다희를 노려봤다.“너 혹시 남태준 스파이야?”임다희가 미소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그럴 리가 있나요? 우리는 같은 배에 탄 사람이잖아요. 내가 남태준을 도와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요? 난 단지 애매한 단서만 줬지 실질적인 증거를 준 적은 없어요.”“요즘 사복 경찰이 계속 우리 촬영장 밖을 배회하고 가끔 항공사진 드론이 공중을 선회하고 또...”육건우는 책상으로 가서 서류뭉치를 집어던졌다.“이건 전부 최근 경찰들에게 적발된 물건이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젠장!”임다희는 긴장해서 침을 삼키고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육건우는 분노하여 임다희를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네 신분을 잊지 마. 내가 너를 도와 남태준과 그 여자를 갈라놓겠다고 약속했고 그 동생까지 함정에 빠뜨렸어. 그런데 그 여자가 지금 나를 고소했다고. 젠장.”임다희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제가 어떻게 사장님의 큰 은혜를 잊겠어요? 다만... 저는 다시 전 남자친구와 재결합하고 싶어요. 그런데 하필 태준이가 마약 경찰이잖아요. 그래서 저... 이 일에서 손 떼고 싶은데 보스에게 사정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육건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임다희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그해 남태준과 요트에서 탈출한 뒤 남태준은 그녀 때문에 다시 잡혀가 바다에 빠져 하마터면 숨질 뻔했지만 그녀는 사실 안전하게 귀국할 방법이 없었다.배후의 빅보스가 바로 그녀를 죽이려고 했지만 육건우가 빅보스에게 사정을 해서 그녀에게 살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그녀의 연예인 신분을 이용하여 마약을 갖고 귀국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그녀는 마지못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십여 킬로그램의 마약을 촬영장 카메라 기둥에 숨긴 후 요트를 타고 귀국했다.그 이후로 그녀는 마약밀매 조직의 일원이 되었고 매번 물건을 가져오거나 몸을 헌신해야 했다.임
꽃가게 앞을 지날 때 남태준이 걸음을 멈추었다.“지우야. 나...”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는 재빨리 그를 끌고 나가 그의 팔을 껴안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부질 없는 곳에 돈 낭비하지 말아요.”“여자들은 다 꽃을 좋아하지 않아?”지우에 의해 팔이 단단히 조여진 남태준은 아주 편안했고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 번졌다.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안 좋아해요. 굳이 사주고 싶다면 차라리 다육식물을 줘요. 기르기도 쉽고 번식도 할 수 있잖아요.”“가방의 품질, 브랜드, 가격 중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가격이죠.”남태준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소비 관념과 가치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또 물었다.“다이아몬드와 금 중에 뭐가 좋아?”“금이요.”지우가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남태준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좋아. 알겠어.”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을 때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우야!”지우가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더니 그녀를 부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바로 그녀에게 맞선 상대를 소개해 준 중매인이었다.그녀는 빠르게 남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놀라움과 설렘이 가득해 말했다.“어쩐지 내가 그렇게 좋은 남자들을 소개해줘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니. 알고 보니 눈이 이렇게 높았었네? 남편 어디 사람이야? 누가 소개해줬어?”지우는 어색하고 난처해하며 웃어 보였다.“친구가 소개해줬어요.”말하자면 백완자가 그들을 소개해 준 셈이었다.“외모도 빼어나고 큰 기에 몸매도 좋네. 어디 사람이야? 무슨 일 해?”역시 가십에 관심이 많은 중매인이었다.남태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지 않았지만 지우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안성 사람이에요. 아주머니, 제가 얼른 가서 밥해야 해서요. 다음에 얘기 나눠요.”“안성 좋지! 큰 도시 사람이네!”지우는 남태준의 손을 잡고 서둘러 떠났다.그녀는 매우 급하게 걸었지만 남태준의 얼굴에는
지우는 긴장되어 귀가 빨개졌다.“싫어?”남태준은 그녀의 진심을 떠보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와 재결합하고 싶은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의 허벅지에 몸을 기울여 앉았는데 긴장해서 등이 약간 뻣뻣했다.남태준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덥석 끌어안고 뒤로 기댔다.지우는 그의 튼실한 가슴에 완전히 엎드렸고 몸이 나른해졌다. 수줍고 난처해 감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그의 품에 안겨있는 느낌은 아주 편안하고 심장이 왠지 모르게 떨리면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만약 네가 불편하거나 거부감이 든다면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남태준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갖고 싶었지만 그녀가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지우는 조바심이 났다.그녀는 남태준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그의 깊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불편하지 않아요. 거부감도 들지 않고요.”“그러니까 너 지금...”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가 갑자기 입을 맞추었다.그러자 남자는 움찔했다.지우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천천히 남자의 어깨에서 뒤로 걸어 목을 감은 뒤 수줍고 서툴게 그의 따뜻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녀는 심장이 천둥처럼 뛰었다.남태준은 몇 초 동안 멍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마음은 더없이 흥분되었다.그는 지우의 뒤통수를 낚아채 옅은 키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의 입술과 혀는 그녀의 어금니를 비틀어 열고 곧장 달려들어 여자의 혀와 한데 엉켰다.“음!”지우는 그의 공세에 못 이겨 수줍은 소리를 냈다.그동안의 갈망과 그리움을 남태준은 한숨에 모두 보상받고 싶은 심정이었다.지우를 꽉 껴안고 격렬하고 난폭한 키스를 계속 퍼부었다.긴 키스가 이어지고 지우는 입술이 다 아프고 호흡이 가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남자의 가슴을 밀면서 고개를 뒤로 뺐다.남태준은 아쉬운 듯이 그녀를 놓아주었다.두 사람은 눈을 감고 서로 이마를 맞댔고 거친 호흡을 나누며 뜨거운 기운이 감돌
지우가 부랴부랴 그를 불렀다. “아니요. 나 안 더워요.”남태준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놓았다.그녀의 영롱한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으며 매력적이었다.지우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준 씨가 임다희와 사귀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지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남태준에게 건넸다.순간, 지우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이미 헤어진 이상 그와 다른 여자에 관해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확실히 묻지 않으면 그녀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비록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다만 이때 그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아 보일 수 있었다.모두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녀는 동생의 취업을 위해 목적을 갖고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지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뉴스를 본 남태준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긴장하며 설명했다.“지우야. 나와 다희 그런 사이 아니야. 나 믿어줘.”현재 임다희는 그의 정보원이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임다희의 신분과 작업을 기밀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지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지우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하게 이마를 짚고 죽을상이 된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또 불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지우를 바라봤다.지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여자가 먹여준 음식 먹었어요?”“그저 보통 친구와 밥 한 끼 먹은 거야. 나와 다희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야.”“안 먹었어요?”“응. 거절했어.”“아.”지우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둘 다 침묵에 빠졌다.남태준이 지우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
스쿠터를 타고 남태준의 집에 도착한 지우는 고개를 들어 한낮의 햇살을 올려다보았다. 이 시간에 그는 아마 출근 중이겠지?너무 일찍 온 것 같아서 그녀는 입구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차를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그녀가 막 떠나려던 참에 남태준이 문을 열고 나왔고 그는 지우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성큼성큼 앞으로 쫓아가며 불렀다.“지우야!”지우는 차를 세우고 그를 뒤 돌아봤다.마음이 격해진 남태준은 몇 걸음 만에 지우 곁으로 달려가 뜨거운 시선을 내뿜으며 다정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방금까지만 해도 용기가 넘치던 지우는 그를 만난 순간 맥이 풀리며 긴장해서 물었다.“출근 안 했어요?”“오늘 휴식이야.”남태준은 둘 곳 없는 손을 주머니에 천천히 찔러 넣었다지우는 부끄러워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왠지 모를 애틋한 감정이 마음속에 번져 그녀를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만들었다.“어디 나가요?”지우가 묻자 남태준은 고민 없이 말했다.“아니. 나 아무 일도 없어. 들어가 앉을래?”지우가 고개를 돌려 집을 보니 또 긴장감이 감돌았다.머릿속에 지난번 장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뭐 물어보려고 왔어요. 물어만 보고 갈 거예요.”묻기만 하고 바로 간다?남태준은 너무 아쉬웠다.헤어진 후 지우가 먼저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태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여기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서 너무 더워.”지우도 고개를 들어 눈 부신 햇살을 보며 생각했다.‘이 남자가 햇볕에 약하다고?’그리고 남자의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보니 평소에도 햇볕을 많이 쬐는 것 같았다.지우는 몇 초 동안 고민하다가 차를 옆으로 몰고 가서 멈추고 가방을 들고 그의 앞에 다가갔다.그러자 남태준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그녀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걸어가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오신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임다희가 육건우의 범죄 증거를 입수했으니 네가 가서 가져와. 난 오늘 중요한 일이 생겼으니 방해하지 마
“육건우가 지금 나랑 같이 거물을 만나러 가자고 하는데 네가 찾는 그 신비로운 사람인지 모르겠어. 와볼래?”남태준은 생각지도 않고 말했다.“주소 보내.”“좋아.”전화를 끊은 남태준은 지우의 메시지를 잊고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이 밤.지우는 휴대전화를 안고 남자의 답장을 기다렸지만 밤새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벌써 두 번째였다. 남태준이 그녀에게 두 번이나 답장하지 않았다.지우는 마음이 완전히 뒤숭숭해져서 남태준이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는지 확신이 없었다.그에게 재결합을 청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그렇게 평온해 보이는 이틀이 지났다.두 사람은 서로 연락하지 않았고 지우는 평생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남태준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고 그와 임다희가 도대체 무슨 사이인지 계속 생각했다.송수빈이 자주 가던 커피숍으로 지우를 불렀고 지우는 일할 마음이 없어 컴퓨터를 보며 멍하니 있었다.송수빈은 한창 일하다가 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문득 송수빈이 소리쳤다.“지우야. 네 전 남자친구 연예 뉴스에 나왔어!”지우는 정신을 차리고 긴장해서 고개를 내빼고 기웃거렸다.송수빈이 핸드폰 액정을 그녀 앞에 널어놓은 채 허탈한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지우는 그 안의 사진과 글을 보고 움찔 놀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남태준과 임다희가 한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고 임다희가 남태준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다정한 장면이 찍힌 것이었다.제목은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임다희, 다정하게 음식을 먹여주다.’였다.송수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나무랐다.“내가 정말 사람을 잘못 봤어. 남 대장님 너랑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전 여자친구랑 만나고 있어? 이거 환승 연애 아니야? 쓰레기!”지우는 가뜩이나 마음이 아팠는데 송수빈이 남태준을 쓰레기라고 욕하는 것을 듣자 그녀는 더욱 괴로워하며 감싸기 시작했다.“그냥 밥 한 끼 먹은 것뿐이잖아? 그게 뭐? 요즘 기자들 직업정신 없어서 사진 한 장으로도 아
지우는 눈물을 흐릿하게 머금은 채 일어나서 버럭 소리쳤다.“다른 사람에게 빌붙을 생각만 하지 말고 독립해야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서 이익을 얻을 궁리만 해? 네가 그러고도 남자야?”욕을 먹은 지성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진효연은 아들이 아까워 남태준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지우를 야단쳤다.“지금 그게 동생에게 할 소리야? 지성이가 왜 남자답지 못하고 왜 독립적이지 않은데? 지성이는 그저 좋은 직장 찾고 싶은 거잖아. 게다가 태준이가 남이야? 지성이 미래의 매형인데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잖아?”남태준은 놀라서 어리둥절했다.지우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라 화를 냈다.“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그런 사이 아니야!”“밥 안 먹어!”지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먹이며 말하고는 식탁을 빠져나와 방으로 가더니 쾅 하고 방문을 닫았다.진효연은 그제야 반응하고 약간 난처한 표정으로 남태준을 보았다.남태준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두 사람 아직 화해 안 했어?”진효연이 조심스럽게 묻자 남태준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이제 저희 반대 안 하시는 거예요?”진효연이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나 반대 안 해. 내가 허락해서 두 사람 이미 다시 만나는 줄 알았어.”진효연은 말을 잇지 못하더니 문득 쑥스러웠다.남태준이 지우의 남자친구가 아니라면 방금 그녀의 부탁은 확실히 좀 지나쳤다.지금 남태준은 마음속에 돌이 박힌 듯 숨이 막혔다.이따금 전해지는 괴로움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차라리 지우가 어머니의 반대 때문에 그와 헤어졌길 바라고 있었다.지금 보니 지우의 어머니는 두 사람을 동의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우는 정말 자신의 이유 때문에 헤어지자고 했을까?단순히 그를 사랑하지 않고 그에게 아무 느낌이 없어서?남태준은 맛을 느낄 수 없는 식사를 했다.그가 떠날 때까지 지우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는 차를 몰고 넓은 거리를 무작정 누볐고 마음이 아프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뚜뚜.메시지 벨이 울렸다.
남태준은 당연히 진효연의 뜻을 알았다.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진효연은 자기 자식을 너무 사랑했고 딸은 결국 시집갈 것이고 평생 그녀와 함께할 수 없으므로 아들에게 더욱 마음이 기울 것이다.가난한 사람 중에는 가식적인 사람이 많았다.하지만 본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진효연이 남태준은 마음에 들었다. 무슨 생각이든 마음에 숨겨두지 않고 바로 표현할 줄 알았으니.남태준이 여유롭게 말했다.“아주머니, 지성이가 공무원이 되려면 반드시 공무원 시험을 쳐야 해요. 통과해야만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어요.”진효연은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공무원 시험이 어디 쉽나.”“만약 공무원이 되기 싫으면 안성에 가도 돼요. 제가 가족들한테 회사에 맞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할게요.”진효연은 싱글벙글 웃으며 남태준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고마워 태준아. 내가 정말 많이 고마워.”지성도 기뻐했다.“고마워요 형.”지우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밥 먹을 기분이 없어 수저를 놓았다.그녀는 아직 남태준의 여자친구가 아닌데 그녀의 가족은 흡혈귀처럼 그에게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관계가 더 가까워지면 앞으로 어떤 무리한 요구를 제기할지 모른다.지우는 지성을 가리키며 경고했다.“너 못 가.”진효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지우를 쳐다보며 불쾌하게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지성도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내가 왜 못 가? 누나도 내가 나가서 돈 벌기를 바라잖아.”지우는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면접 보고 들어가는 건 되는데 낙하산은 절대 안 돼.”“왜?”지우는 제대로 된 신분으로 자존감을 갖고 남태준과 만나고 싶었다. 그의 도움을 받으며 난처한 위치에 처 하고 싶지 않았다.“그냥.”“내가 언제 누나더러 도와 달래? 난 태준이 형에게 부탁했어. 게다가 형도 흔쾌히 수락했고.”“너 바보니? 일자리도 혼자 못 찾아?”“내가 졸업한 대학교가 평범하잖아. 취업이 어려운 요즘 세상에 대기업 들어가는 일이 어디 쉬운 줄 알아?”“그래도 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