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수줍게 해명했다.“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걸 어떡해...”지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아, 그래요?”정안은 설명할수록 당황했다.“맞아. 그리고 우리 결혼했을 때 옷 벗은 것도 봤었어. 별 것 아니야.”이 일을 떠올리자 지윤이 궁금해하며 물었다.“언니 기억 잃고 이 남자랑 결혼한 반년 동안 두 사람 혹시... 그거 했어요?”“뭐?”지윤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손가락으로 표현했다.“자는 거요.”그녀의 뜻을 알아차린 정안은 얼굴이 붉어지며 수줍게 말했다.“얘기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없었어.”지윤은 경악해서 남하준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설마요. 이렇게 잘생기고 몸매도 좋은데 설마 그건 딸리는 거예요?”그가 딸린다?자는 척하던 남하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안색이 가라앉고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속은 이미 뒤집혔다.정안은 남하준이 그 방면으로 어떤지 모르지만, 결혼 생활 동안 남하준이 그녀를 매우 존중하고 강요한 적이 없다는 건 확신했다.“함부로 말하지 마.”정안은 지윤을 밀치고 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난 여기 남아 돌볼 테니 넌 빨리 가서 할아버지 왜 아프게 됐는지나 조사해.”“알겠어요. 언니 조심해요. 이 집 사람한테 저 남자 들키면 안 돼요.”“알아.”정안은 방에서 지윤을 내쫓고 문을 잠그고는 고개를 숙이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몸을 돌린 그녀는 문득 눈앞의 장면에 화들짝 놀랐다.남하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아픈 이마를 짚고 있었다.그의 탄탄한 근육질 라인이 특히 눈길을 끌었으며 근육의 몇 군데 옅은 흉터가 야성적인 섹시함을 더했다.정안은 긴장해서 침을 삼키고 조심스럽게 걸어가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의 안색을 살폈다. “깼어요? 어디 아픈 곳 없어요?”남하준은 고개를 숙이고 흔들더니 안색이 좀 어두웠다.정안은 이불을 잡아당겨 그의 어깨를 덮었다.“감기 걸려요. 덮어요.”방금 덮은 이불이 또 그의 어깨에서 흘러내렸다.정안은 이불
“그 한 달 동안 적어도 열 번은 영상통화 했을 거예요. 그래서 두 분께서 가짜 백하린에게 속은 거고요. 게다가 그때 백인호가 내 안전을 빌미로 부모님을 협박해 협조한 게 틀림없어요.”정안이 너무 가까이 다가간 탓에 남하준은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고 그녀의 몸에서 나는 은은하고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입이 바짝바짝 모르고 온몸이 뜨거워지고 마음이 뒤숭숭했다.남하준이 목청을 가다듬고 중얼거렸다.“그건 나도 알고 있어. 나 물 좀.”“네.”정안은 침대 캐비닛에서 물 한 병을 꺼내 뚜껑을 열어 그에게 건네주었다.물을 건네받은 남하준은 고개를 젖혀 크게 한 모금 벌컥 마셨다.섹시한 남자의 목젖이 위아래로 굴려 물을 삼키는 동작이 아주 매혹적이라 정안도 참지 못하고 입술을 오므리며 갈증을 느꼈다.남하준이 물을 마시고 손을 들어 입가를 닦자 그의 어깨 위의 이불이 다시 미끄러져 내려갔다.그러자 정안은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 화끈 달아오른 얼굴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말했다.“지윤이가 이미 조사했어요. 부모님 사망증명서만 있고 화장증명서는 없고 무덤 안에도 유골이 없어요.”“그래서 난 두 분이 살아계신다고 의심하고 있어요. 지윤이랑 이 집에 들어온 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호하려는 것도 있지만 백인호를 통해 부모님 행방을 찾고 싶어서예요.”남하준은 정안의 뒤통수를 덥석 잡더니 확 끌어당겨 마주 보며 말했다.“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해? 그 두 사람은 블랙 섀도우가 보낸 스파이일 가능성이 커.”정안은 그의 위엄 있는 기색에 다소 긴장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알면서도 이런 모험을 한다고?”남하준이 되묻자 정안이 강인하게 말했다.“왜냐하면 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호하고 엄마 아빠를 찾아야 하니까요.”“고작 너랑 그 지윤이라는 여자 둘이서?”정안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눈을 깜빡이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그럼, 오빠도 나 도와줘요. 오빠가 도와준다면 훨씬 쉬울 거예요.”남하준은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다. 분명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지만
“내가 피할 수 있게 미리 말해줬어야죠.”남하준은 대답하지 않고 화장실로 들어갔고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정안은 긴장감에 일어나 달려가 문에 기대어 물었다.“누구세요?”“서다인, 문 열어.”익숙한 여인의 목소리에 정안은 가슴이 뜨끔해지며 화장실의 남하준을 돌아보았다.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더 급해지고, 외치는 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졌다.“문 열라고. 내 말 안 들려? 열라니까!”정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문을 열고 기세등등한 백하린을 보며 목청을 높였다.“백하린, 여긴 웬일이야?”화장실에 있는 남하준이 이 높은 소리를 듣고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백하린은 두 손으로 가슴을 두르고 극도로 혐오스러운 기색을 짓더니 경멸하며 바라보았다.“너처럼 뻔뻔한 여자는 본 적이 없어. 감히 하준 오빠를 빌미로 할머니를 협박해 우리 집에 들어와 살아? 진짜 죽고 싶어?”정안은 덤덤하게 대꾸했다.“응. 난 죽는 게 두렵지 않아.”백하린은 코웃음을 치더니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그녀가 집안에 들어온 의도를 짐작했다.“여긴 무슨 일이야?”백하린이 차갑게 말했다.“삼촌이 너 찾아. 지금 할아버지 병실에 있으니까 한 번 가봐.”정안은 곧장 문을 닫고 말했다.“그래. 지금 갈게.”백하린은 그녀를 데리고 백진의 병실로 왔다.커다란 방에는 활력 징후를 모니터링하는 각종 장비가 놓여 있었는데 병원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큰 침대에서 백진은 꼼짝 않고 누워있었는데 얼굴이 창백하고 뼈만 앙상해 보였다.그녀를 가장 아끼는 할아버지의 이런 모습에 정안은 마음이 아프고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꾹 참고 이를 악물며 천천히 다가갔다.백인호는 소파에 앉아 정안의 모습을 관찰했다.백진의 손을 닦고 있던 여은수가 고개를 돌려 정안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불쾌하게 물었다.“자네가 여긴 왜 왔어?”정안은 매몰찬 할머니의 태도에 마음이 아프고 또 억울했다.그때 백인호가 나서서 설명했다.“제가 오라고 했어요.”여은수는 계속해서 백진의 손을 닦으며 차
정안은 할아버지 손을 이불 속에 넣고 덮어둔 뒤 덤덤하게 물었다.“근데 백 선생님은 무슨 일로 저 여기로 부르신 거죠?”백인호는 천천히 일어나 손가락으로 안경을 밀더니 날카로운 눈빛이 의심스러운 듯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그는 생각에 잠긴 듯 침대 가장자리로 걸어갔다.“우리 집에 얹혀사는 손님으로서 중병에 걸린 내 아버지에게 인사하는 건 예의 아닌가?”정안은 목례 하며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제가 무례했네요.”그녀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까 봐 중병에 걸린 할아버지를 보러 올 수 없었다.이제는 할아버지가 꾀병을 부리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 걱정을 덜었다.여은수는 수건을 내려놓고 백진의 은빛 머리카락을 만지며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영감, 얼른 일어나게. 당신이 이렇게 가버리면 난 어떡하나?”백하린이 후다닥 다가가 여은수를 잡고 말했다.“할머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안 계셔도 제가 있잖아요.”여은수는 백하린의 손을 잡고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하린아, 만약 네 할아버지가 정말 돌아가신다면 이렇게 큰 집안 사업을 돌볼 사람이 없어 어떡하냐?”백하린은 눈밑에 설렘을 감출 수 없었지만 안타까운 척하며 울먹였다.“맞아요. 저희 집에는 할아버지가 없으면 안 돼요. 하지만 할아버지가 버티시지 못한다면 저랑 삼촌이 있잖아요.”“네 삼촌은 됐다.”여은수는 백인호를 흘끗 보고는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우리 가문 핏줄이 아니니 상속권이 없다. 게다가 의사인 삼촌이 사업을 어떻게 알겠어?”백인호는 한마디 말도 없이 주먹을 쥐고 꾹 참으며 금테 안경 아래서 음흉한 빛을 비치고 있었다.“할아버지께서 유언장 작성하셨어요?”백하린의 목소리에는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그래, 진작 작성했지. 회사와 모든 재산은 너한테 물려주기로 했어. 물론 네 삼촌에게도 평생 못 쓸 돈을 남겨 줄 거야.”백하린은 입술을 오므리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반면 백인호의 안색이 차갑게 변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그녀는 백하린의 신분을 대신하여 남하준과 결혼하고 그의 곁에 잠복하여 더 많은 기밀을 빼돌리는 조직의 명령을 받았다.백하린이 된 후 앞으로 백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을 준비가 되어 있고, 백인호와 반반이라도 그녀는 괜찮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인제 와서 백하린이 M국 사람이 아니어서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다는 말에 머리가 윙윙거렸다.백하린은 이 상황을 모르고 있었고 백인호도 말하지 않았다.정안은 반드시 이 사실을 폭로해야 백하린과 백인호의 관계를 이간질할 수 있을 것 같았다.“하준 씨 전 부인으로 제가 하린 씨에 대해 조사를 좀 했거든요.”정안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하린 씨는 단순 이민이 아니라 국적을 옮겨 이젠 Z국 사람이더라고요. M국 법에 따르면 외국인은 상속권이 없어요.”여은수는 노발대발하며 정안을 향해 외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 하린이가 왜 Z국 사람이야?”정안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알면 분명 슬퍼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들은 국적을 옮기는 것은 곧 반역이고, 그게 어느 나라든 조국을 배신하고 배은망덕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이렇게 오랫동안 그녀와 부모님은 두 노인에게 말하지 않았다.백하린은 지금 당황해서 여은수보다 더 분노했다.어쨌든 그녀 본인의 일이기 때문에 그녀는 모르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고 그저 이를 갈며 백인호를 노려보았다.“하린아, 사실이냐?”백하린이 침묵했다.“사실이에요.”백인호가 입을 열었다.여은수는 화가 나서 눈물을 흘리고 비틀거리며 백하린의 품으로 떨어졌다.“할머니 괜찮으세요?”백하린이 그녀를 부축했다.정안도 놀라서 다가가 부축하려는데 여은수가 질색해서 그녀를 밀치며 소리쳤다.“내 몸에 손대지 마!”그녀는 손을 움츠리고 침대 위의 병든 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비로소 할아버지의 눈가에 맑은 눈물 한 방울이 맺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가슴이 아파 괴로워하며 고개를 떨구었다.너무 설명해 드리고 싶었다. 그녀의 귀화에는 고충이 있었고 나라를 배반한 것도 아니고 배은망덕
여은수는 이상하게 생각하며 물었다.“왜 못 가?”백하린은 난감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몰래 웃으며 아무 말 없이 방을 나왔다.그녀는 백하린이 Z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Z국은 최첨단 카메라가 가득했고 그녀가 Z국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얼굴을 인식해 국가안보를 해치는 1급 수배자로 판단되어 당장 체포될 것이다.설령 그녀가 최첨단 카메라를 피했더라도 신분증 발급 시 얼굴 인식과 지문 인식도 통과하지 못할 것이고 더욱이 그녀가 귀화하려는 신분은 Z국 일급 기밀의 거물급 과학자였다.정안은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마침 걸어오는 지윤을 발견했다.“언니, 옷과 음식은 이미 도련님께 드렸어요.”“그래.”정안이 고개를 끄덕였다.“언니 방금 어디 갔었어요?”정안은 할아버지 병실을 가리켰다.“할아버지 좀 어떠세요?”“괜찮아. 꾀병이야.”정안은 지윤의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내가 백하린이랑 백인호 사이를 이간질했어. 적어도 당분간은 두 분 안전하실 거야.”지윤은 어리둥절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백하린은 당분간 절대 두 분 못 건드릴 거야.”정안은 담담하게 웃으며 지윤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M국 법은 외국인이 M국 재산을 상속받는 걸 허락하지 않거든.”지윤은 활짝 웃으며 윙크했다.“역시 언니 대단해요!”“기회 봐서 백인호랑 백하린 방에 잠입해 부모님에 대한 단서가 있는지 찾아봐.”“알겠어요.”“조심해.”정안은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그럼요.”정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으로 걸어갔다.그때 지윤이 몸을 돌려 외쳤다.“언니, 나 마스크 샀으니까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요.”정안은 움찔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지윤을 바라보며 겸허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그녀는 어젯밤에 이미 남하준의 입에 대고 약을 먹였는데 지금 마스크를 써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정안이 방문을 닫고 문을 잠그고 돌아서니 남하준이 창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는 검은색 캐주얼
어릴 적 그녀는 남하준과 가장 친한 사이였고, 그와 자주 놀았지만 남태준에 대한 감정은 숭배였다.그가 전에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바로 그녀가 그의 앞에서 한 ‘태준 오빠 정말 대단해요!’였다.소년 시절의 남태준은 학교의 풍운아였다. 농구팀의 주장이었으며, 명문대학 수시모집 합격자였으며, 남들이 보기에 천재였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런 남태준은 단호하게 경찰대를 선택했다.그는 정안처럼 전혀 노력하지 않아도 학습에 뛰어난 재능을 타고나 쉽게 1등을 차지했다.하지만 남태준은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목숨 반을 걸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그들의 훌륭한 행보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지금의 그는 사업에서 큰 발전을 이루어 마침내 정안과 어울리는 신분이 되었는데,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너 형 만나고 싶으면 내가 사람 불러서 오라고 할게.”남하준의 목소리는 낮고 쓸쓸했다.정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하준의 감기 바이러스를 병원에 갖고 가 남태준에게 피해를 줄까 봐 두려웠다.“아니에요. 비 그치면 꽃이랑 과일 갖고 태준 오빠 보러 갈 거예요.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옷이 젖으면 얼마나 흉해요?”남하준의 깊은 두 눈동자가 마치 심연의 블랙홀처럼 은은한 빛을 띠고 그녀의 예쁜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눈 밑에는 깊은 애틋함이 가득했고 마음은 바늘에 찔린 것처럼 아팠다.정안은 지금 남태준의 앞에서 흉한 모습을 보일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그녀는 여전히 남태준을 좋아하고 있을까? 예전처럼 숭배하고 존경하고 좋아하고...남하준은 여태껏 넷째 형을 목표로 열심히 쫓고 추월하며 그녀가 좋아하는 그런 남자가 되려고 노력했다.하지만 결국 신분과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었다.그는 남태준이 아니었으니 끝까지 그는 아닌 것이다.정안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고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녀는 남하준의 뜨거운 시선에 데는 것 같았다. 그는 즉시 시선을 피해 창밖을 내다보았다.정안은 저도 모르게 심장이 떨리고 긴장했다.“오빠, 가
남하준은 손을 뻗어 그녀가 들고 있는 순대를 받아 극구 사양했다.“고마워. 내가 먹을게.”정안은 말없이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마음이 착잡했다.이혼하기 전까지 집요하고 끈질기던 남하준은 그녀가 태도와 생각을 밝히자 그는 정말 매달리지 않고 자제하고 선을 지켰다.이것은 그녀가 원하는 결과였다. 그런데 하필 이런 결과가 그녀를 힘들게 했다.정안은 자제하려고 노력했다.그들은 사랑이 전부인 충동적인 십 대가 아니었다. 인생에서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너무 많았다.남하준은 순대를 입어 넣고 어슬렁어슬렁 씹었지만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정안은 모든 음식을 갖고 남하준 곁에 앉아 함께 먹기 시작했다.지금처럼 차분하고 여유롭게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 것도 오랜만이었다.군말 없이 그렇게 간단하고 화목한 식사였다.“비가 언제 그칠까요?”남하준은 움찔했다. 몸이 얼어붙고 눈빛이 싸늘해지더니 더 이상 먹지 않았다.그는 비가 좀 더 오래 오기를 바랐다. 그러면 그녀와 더 오래 함께 있을 수 있으니.잠시 후, 남하준의 휴대폰 벨이 울렸고 그는 천천히 휴대전화를 꺼내어 발신자 표시를 한 번 내려다보고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귓가에 댔다.정안은 음식을 입에 물고 뜨거운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청각이 예민해졌다.“유미야. 무슨 일이야?”정안은 멍해졌다.유미라면 그의 친구, 외교부에서 근무하는 슈퍼우먼이었다.정안은 통화하는 남하준의 엄숙한 기색과 함께 덩달아 긴장했다.“그래, 알겠어.”말을 마친 그는 일어나서 베란다로 가서 유리문을 홱 열었다.정안은 급히 음식을 내려놓고 쫓아갔다.“어디 가요?”문이 열리는 순간, 광풍이 불어와 커튼을 어지럽히고, 싸늘한 한기가 섞여 있었고, 콸콸 쏟아지는 빗소리는 무서울 정도로 악랄했다.남하준은 뒤돌아서서 그녀를 바라보며 애틋한 눈빛에는 아쉬움이 깃들었다.“네가 이미 마음을 정했다면 떠나라고 하지 않을게. 그러니까 여기서 너랑 더 시간 보낼 필요도 없어.”정안은 긴장하며 걱정스레 말했다.“밖
사람은 기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상쾌한 법이다. 하루 종일 바빠도 지우와의 관계를 회복한 생각만 하면 속으로 은근히 기뻐 났다.남태준이 막 차 옆으로 다가갔을 때 임다희가 차 뒤에서 걸어왔다.“태준아.”남태준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 무슨 일이야?”“할 얘기가 있어. 아주 중요한 얘기야.”임다희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타.”남태준이 쿨하게 대답하자 임다희는 그의 차에 올라탔고 남태준이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 안에서 남태준이 물었다.“어디서 얘기할래?”“너희 집.”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그건 안돼.”“아주 중요한 일이야. 반드시 사람 없는 곳에서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임다희는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빛을 내뿜으며 엄숙하게 말했다.“마약 거래에 관한 얘기야.”“그럼 지금 얘기해.”남태준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차 안에는 우리 둘만 있으니까 안전해.”임다희가 앞뒤를 돌아보니 이 길은 행인도 없고 오가는 차량도 뜸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태준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려 하자 마지못해 핸드백을 열어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이 시간에 거래가 있을 거야.”그의 다년간 사건 처리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명확한 거래 장소와 시간은 임다희가 절대 알 수 없었다.이 정보가 가짜이거나, 누군가가 그녀에게 준 것이 틀림 없었다.“어디서 났어?”남태준이 묻자 임다희는 조금 켕긴 듯 대답했다.“건달인 친구가 알아낸 정보인데 내가 샀어.”남태준은 입꼬리를 꼬며 그녀의 거짓말이 좀 억지스러워서 계속 물었다. “네가 마약 형사도 아니고 이 정보를 왜 사는데?”“너 주려고.”남태준은 움찔하더니 침묵했다.임다희는 애정 어린 눈으로 남태준을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태준아, 우리 다시 만나자.”남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뭐라고?”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울먹였다.“전에는 내가 미안했어. 네
지하 카지노 사무실.육건우는 자료를 책상에 던지고는 화가 나서 일어나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임다희를 노려봤다.“너 혹시 남태준 스파이야?”임다희가 미소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그럴 리가 있나요? 우리는 같은 배에 탄 사람이잖아요. 내가 남태준을 도와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요? 난 단지 애매한 단서만 줬지 실질적인 증거를 준 적은 없어요.”“요즘 사복 경찰이 계속 우리 촬영장 밖을 배회하고 가끔 항공사진 드론이 공중을 선회하고 또...”육건우는 책상으로 가서 서류뭉치를 집어던졌다.“이건 전부 최근 경찰들에게 적발된 물건이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젠장!”임다희는 긴장해서 침을 삼키고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육건우는 분노하여 임다희를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네 신분을 잊지 마. 내가 너를 도와 남태준과 그 여자를 갈라놓겠다고 약속했고 그 동생까지 함정에 빠뜨렸어. 그런데 그 여자가 지금 나를 고소했다고. 젠장.”임다희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제가 어떻게 사장님의 큰 은혜를 잊겠어요? 다만... 저는 다시 전 남자친구와 재결합하고 싶어요. 그런데 하필 태준이가 마약 경찰이잖아요. 그래서 저... 이 일에서 손 떼고 싶은데 보스에게 사정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육건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임다희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그해 남태준과 요트에서 탈출한 뒤 남태준은 그녀 때문에 다시 잡혀가 바다에 빠져 하마터면 숨질 뻔했지만 그녀는 사실 안전하게 귀국할 방법이 없었다.배후의 빅보스가 바로 그녀를 죽이려고 했지만 육건우가 빅보스에게 사정을 해서 그녀에게 살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그녀의 연예인 신분을 이용하여 마약을 갖고 귀국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그녀는 마지못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십여 킬로그램의 마약을 촬영장 카메라 기둥에 숨긴 후 요트를 타고 귀국했다.그 이후로 그녀는 마약밀매 조직의 일원이 되었고 매번 물건을 가져오거나 몸을 헌신해야 했다.임
꽃가게 앞을 지날 때 남태준이 걸음을 멈추었다.“지우야. 나...”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는 재빨리 그를 끌고 나가 그의 팔을 껴안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부질 없는 곳에 돈 낭비하지 말아요.”“여자들은 다 꽃을 좋아하지 않아?”지우에 의해 팔이 단단히 조여진 남태준은 아주 편안했고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 번졌다.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안 좋아해요. 굳이 사주고 싶다면 차라리 다육식물을 줘요. 기르기도 쉽고 번식도 할 수 있잖아요.”“가방의 품질, 브랜드, 가격 중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가격이죠.”남태준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소비 관념과 가치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또 물었다.“다이아몬드와 금 중에 뭐가 좋아?”“금이요.”지우가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남태준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좋아. 알겠어.”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을 때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우야!”지우가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더니 그녀를 부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바로 그녀에게 맞선 상대를 소개해 준 중매인이었다.그녀는 빠르게 남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놀라움과 설렘이 가득해 말했다.“어쩐지 내가 그렇게 좋은 남자들을 소개해줘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니. 알고 보니 눈이 이렇게 높았었네? 남편 어디 사람이야? 누가 소개해줬어?”지우는 어색하고 난처해하며 웃어 보였다.“친구가 소개해줬어요.”말하자면 백완자가 그들을 소개해 준 셈이었다.“외모도 빼어나고 큰 기에 몸매도 좋네. 어디 사람이야? 무슨 일 해?”역시 가십에 관심이 많은 중매인이었다.남태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지 않았지만 지우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안성 사람이에요. 아주머니, 제가 얼른 가서 밥해야 해서요. 다음에 얘기 나눠요.”“안성 좋지! 큰 도시 사람이네!”지우는 남태준의 손을 잡고 서둘러 떠났다.그녀는 매우 급하게 걸었지만 남태준의 얼굴에는
지우는 긴장되어 귀가 빨개졌다.“싫어?”남태준은 그녀의 진심을 떠보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와 재결합하고 싶은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의 허벅지에 몸을 기울여 앉았는데 긴장해서 등이 약간 뻣뻣했다.남태준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덥석 끌어안고 뒤로 기댔다.지우는 그의 튼실한 가슴에 완전히 엎드렸고 몸이 나른해졌다. 수줍고 난처해 감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그의 품에 안겨있는 느낌은 아주 편안하고 심장이 왠지 모르게 떨리면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만약 네가 불편하거나 거부감이 든다면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남태준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갖고 싶었지만 그녀가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지우는 조바심이 났다.그녀는 남태준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그의 깊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불편하지 않아요. 거부감도 들지 않고요.”“그러니까 너 지금...”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가 갑자기 입을 맞추었다.그러자 남자는 움찔했다.지우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천천히 남자의 어깨에서 뒤로 걸어 목을 감은 뒤 수줍고 서툴게 그의 따뜻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녀는 심장이 천둥처럼 뛰었다.남태준은 몇 초 동안 멍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마음은 더없이 흥분되었다.그는 지우의 뒤통수를 낚아채 옅은 키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의 입술과 혀는 그녀의 어금니를 비틀어 열고 곧장 달려들어 여자의 혀와 한데 엉켰다.“음!”지우는 그의 공세에 못 이겨 수줍은 소리를 냈다.그동안의 갈망과 그리움을 남태준은 한숨에 모두 보상받고 싶은 심정이었다.지우를 꽉 껴안고 격렬하고 난폭한 키스를 계속 퍼부었다.긴 키스가 이어지고 지우는 입술이 다 아프고 호흡이 가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남자의 가슴을 밀면서 고개를 뒤로 뺐다.남태준은 아쉬운 듯이 그녀를 놓아주었다.두 사람은 눈을 감고 서로 이마를 맞댔고 거친 호흡을 나누며 뜨거운 기운이 감돌
지우가 부랴부랴 그를 불렀다. “아니요. 나 안 더워요.”남태준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놓았다.그녀의 영롱한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으며 매력적이었다.지우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준 씨가 임다희와 사귀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지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남태준에게 건넸다.순간, 지우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이미 헤어진 이상 그와 다른 여자에 관해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확실히 묻지 않으면 그녀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비록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다만 이때 그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아 보일 수 있었다.모두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녀는 동생의 취업을 위해 목적을 갖고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지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뉴스를 본 남태준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긴장하며 설명했다.“지우야. 나와 다희 그런 사이 아니야. 나 믿어줘.”현재 임다희는 그의 정보원이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임다희의 신분과 작업을 기밀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지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지우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하게 이마를 짚고 죽을상이 된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또 불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지우를 바라봤다.지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여자가 먹여준 음식 먹었어요?”“그저 보통 친구와 밥 한 끼 먹은 거야. 나와 다희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야.”“안 먹었어요?”“응. 거절했어.”“아.”지우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둘 다 침묵에 빠졌다.남태준이 지우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
스쿠터를 타고 남태준의 집에 도착한 지우는 고개를 들어 한낮의 햇살을 올려다보았다. 이 시간에 그는 아마 출근 중이겠지?너무 일찍 온 것 같아서 그녀는 입구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차를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그녀가 막 떠나려던 참에 남태준이 문을 열고 나왔고 그는 지우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성큼성큼 앞으로 쫓아가며 불렀다.“지우야!”지우는 차를 세우고 그를 뒤 돌아봤다.마음이 격해진 남태준은 몇 걸음 만에 지우 곁으로 달려가 뜨거운 시선을 내뿜으며 다정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방금까지만 해도 용기가 넘치던 지우는 그를 만난 순간 맥이 풀리며 긴장해서 물었다.“출근 안 했어요?”“오늘 휴식이야.”남태준은 둘 곳 없는 손을 주머니에 천천히 찔러 넣었다지우는 부끄러워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왠지 모를 애틋한 감정이 마음속에 번져 그녀를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만들었다.“어디 나가요?”지우가 묻자 남태준은 고민 없이 말했다.“아니. 나 아무 일도 없어. 들어가 앉을래?”지우가 고개를 돌려 집을 보니 또 긴장감이 감돌았다.머릿속에 지난번 장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뭐 물어보려고 왔어요. 물어만 보고 갈 거예요.”묻기만 하고 바로 간다?남태준은 너무 아쉬웠다.헤어진 후 지우가 먼저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태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여기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서 너무 더워.”지우도 고개를 들어 눈 부신 햇살을 보며 생각했다.‘이 남자가 햇볕에 약하다고?’그리고 남자의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보니 평소에도 햇볕을 많이 쬐는 것 같았다.지우는 몇 초 동안 고민하다가 차를 옆으로 몰고 가서 멈추고 가방을 들고 그의 앞에 다가갔다.그러자 남태준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그녀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걸어가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오신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임다희가 육건우의 범죄 증거를 입수했으니 네가 가서 가져와. 난 오늘 중요한 일이 생겼으니 방해하지 마
“육건우가 지금 나랑 같이 거물을 만나러 가자고 하는데 네가 찾는 그 신비로운 사람인지 모르겠어. 와볼래?”남태준은 생각지도 않고 말했다.“주소 보내.”“좋아.”전화를 끊은 남태준은 지우의 메시지를 잊고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이 밤.지우는 휴대전화를 안고 남자의 답장을 기다렸지만 밤새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벌써 두 번째였다. 남태준이 그녀에게 두 번이나 답장하지 않았다.지우는 마음이 완전히 뒤숭숭해져서 남태준이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는지 확신이 없었다.그에게 재결합을 청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그렇게 평온해 보이는 이틀이 지났다.두 사람은 서로 연락하지 않았고 지우는 평생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남태준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고 그와 임다희가 도대체 무슨 사이인지 계속 생각했다.송수빈이 자주 가던 커피숍으로 지우를 불렀고 지우는 일할 마음이 없어 컴퓨터를 보며 멍하니 있었다.송수빈은 한창 일하다가 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문득 송수빈이 소리쳤다.“지우야. 네 전 남자친구 연예 뉴스에 나왔어!”지우는 정신을 차리고 긴장해서 고개를 내빼고 기웃거렸다.송수빈이 핸드폰 액정을 그녀 앞에 널어놓은 채 허탈한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지우는 그 안의 사진과 글을 보고 움찔 놀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남태준과 임다희가 한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고 임다희가 남태준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다정한 장면이 찍힌 것이었다.제목은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임다희, 다정하게 음식을 먹여주다.’였다.송수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나무랐다.“내가 정말 사람을 잘못 봤어. 남 대장님 너랑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전 여자친구랑 만나고 있어? 이거 환승 연애 아니야? 쓰레기!”지우는 가뜩이나 마음이 아팠는데 송수빈이 남태준을 쓰레기라고 욕하는 것을 듣자 그녀는 더욱 괴로워하며 감싸기 시작했다.“그냥 밥 한 끼 먹은 것뿐이잖아? 그게 뭐? 요즘 기자들 직업정신 없어서 사진 한 장으로도 아
지우는 눈물을 흐릿하게 머금은 채 일어나서 버럭 소리쳤다.“다른 사람에게 빌붙을 생각만 하지 말고 독립해야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서 이익을 얻을 궁리만 해? 네가 그러고도 남자야?”욕을 먹은 지성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진효연은 아들이 아까워 남태준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지우를 야단쳤다.“지금 그게 동생에게 할 소리야? 지성이가 왜 남자답지 못하고 왜 독립적이지 않은데? 지성이는 그저 좋은 직장 찾고 싶은 거잖아. 게다가 태준이가 남이야? 지성이 미래의 매형인데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잖아?”남태준은 놀라서 어리둥절했다.지우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라 화를 냈다.“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그런 사이 아니야!”“밥 안 먹어!”지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먹이며 말하고는 식탁을 빠져나와 방으로 가더니 쾅 하고 방문을 닫았다.진효연은 그제야 반응하고 약간 난처한 표정으로 남태준을 보았다.남태준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두 사람 아직 화해 안 했어?”진효연이 조심스럽게 묻자 남태준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이제 저희 반대 안 하시는 거예요?”진효연이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나 반대 안 해. 내가 허락해서 두 사람 이미 다시 만나는 줄 알았어.”진효연은 말을 잇지 못하더니 문득 쑥스러웠다.남태준이 지우의 남자친구가 아니라면 방금 그녀의 부탁은 확실히 좀 지나쳤다.지금 남태준은 마음속에 돌이 박힌 듯 숨이 막혔다.이따금 전해지는 괴로움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차라리 지우가 어머니의 반대 때문에 그와 헤어졌길 바라고 있었다.지금 보니 지우의 어머니는 두 사람을 동의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우는 정말 자신의 이유 때문에 헤어지자고 했을까?단순히 그를 사랑하지 않고 그에게 아무 느낌이 없어서?남태준은 맛을 느낄 수 없는 식사를 했다.그가 떠날 때까지 지우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는 차를 몰고 넓은 거리를 무작정 누볐고 마음이 아프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뚜뚜.메시지 벨이 울렸다.
남태준은 당연히 진효연의 뜻을 알았다.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진효연은 자기 자식을 너무 사랑했고 딸은 결국 시집갈 것이고 평생 그녀와 함께할 수 없으므로 아들에게 더욱 마음이 기울 것이다.가난한 사람 중에는 가식적인 사람이 많았다.하지만 본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진효연이 남태준은 마음에 들었다. 무슨 생각이든 마음에 숨겨두지 않고 바로 표현할 줄 알았으니.남태준이 여유롭게 말했다.“아주머니, 지성이가 공무원이 되려면 반드시 공무원 시험을 쳐야 해요. 통과해야만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어요.”진효연은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공무원 시험이 어디 쉽나.”“만약 공무원이 되기 싫으면 안성에 가도 돼요. 제가 가족들한테 회사에 맞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할게요.”진효연은 싱글벙글 웃으며 남태준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고마워 태준아. 내가 정말 많이 고마워.”지성도 기뻐했다.“고마워요 형.”지우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밥 먹을 기분이 없어 수저를 놓았다.그녀는 아직 남태준의 여자친구가 아닌데 그녀의 가족은 흡혈귀처럼 그에게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관계가 더 가까워지면 앞으로 어떤 무리한 요구를 제기할지 모른다.지우는 지성을 가리키며 경고했다.“너 못 가.”진효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지우를 쳐다보며 불쾌하게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지성도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내가 왜 못 가? 누나도 내가 나가서 돈 벌기를 바라잖아.”지우는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면접 보고 들어가는 건 되는데 낙하산은 절대 안 돼.”“왜?”지우는 제대로 된 신분으로 자존감을 갖고 남태준과 만나고 싶었다. 그의 도움을 받으며 난처한 위치에 처 하고 싶지 않았다.“그냥.”“내가 언제 누나더러 도와 달래? 난 태준이 형에게 부탁했어. 게다가 형도 흔쾌히 수락했고.”“너 바보니? 일자리도 혼자 못 찾아?”“내가 졸업한 대학교가 평범하잖아. 취업이 어려운 요즘 세상에 대기업 들어가는 일이 어디 쉬운 줄 알아?”“그래도 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