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준의 안색이 굳어지더니 앞에 있는 서다인을 쳐다보고는 휴대전화를 들고 걸으면서 엄숙하게 말했다.“할머니, 서다인은 제 아내예요. 언행에 주의해주시죠.”서다인은 멀리 간 남하준을 보며 화가 잔뜩 난 채 소파에 앉아 쿠션 하나를 집어던졌다.백하린이 괘씸한 건 그렇다 치고, 이제 그녀의 할머니도 이렇게 억지를 부리다니. 부자들은 원래 이렇게 횡포할까?잠시 후 남하준이 돌아와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어르신이 안 좋은 얘기하신 거 너무 신경 쓰지 마.”서다인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지난 3년 동안 이런 말에 면역력이 생겨 혼자 삭히곤 했지만 지금의 그녀는 자신이 서다인이 아니라는 걸 알고 더더욱 신경 쓰지 않았다.다만 그녀가 신경 쓰는 건 남하준의 태도였다.“지금 백하린을 감싸는 거예요? 아니면 그 할머니를 감싸는 거예요?”서다인이 불쾌해서 물었다.남하준은 그녀의 언짢은 말투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그런 거 아니야.”“그 할머니 겉으로는 인자해 보이는데 하는 짓은 너무 역겨워요. 방금 나보고 글쎄...”서다인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남하준이 그녀의 옆에 앉아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완아, 어르신 좋은 분이셔. 단지 자기 손녀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니까 너무 미워하지 마.”“미워하지도 말라고요?”서다인은 듣자 하니 남하준은 마음속으로 계속 백씨 가문의 사람들을 존중하고 항상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그녀가 욕을 먹어도 그녀에게 참으라고 하고 이해하라고 했다.서다인은 어쩔 수 없는 듯 머리를 숙였고 마음이 좀 괴로웠다.“가자, 밥 먹으러. 이따가 병원 가자.”“병원엔 왜요?”서다인이 놀라서 물었다.남하준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긴 머리를 타고 부드럽게 내려왔다.“너 기억 상실에 대해 한번 검사해봐야지.”서다인은 침묵했다.남자의 그윽하고 고운 눈동자를 조용히 바라보니 그렇게 따뜻했다.그녀도 자신의 신분을 기억하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은 적이 없었다.“갈래?”남자는 그녀의 의
“정말 방법이 없을까요?”남하준이 물었다.“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손상된 신경을 수술로 복구하면 천천히 회복할 수 있어요. 다만 이 방법은 너무 위험해서 잘못하면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어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서다인이 긴장하며 물었다.“그럼 국내에서 이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어느 분이죠?”의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하준 즉시 말을 끊었다.“안 돼.”“왜요?”서다인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모처럼 기억을 되살릴 기회가 있고, 조금 위험하긴 했지만 100% 위험하지는 않았다.남하준은 대꾸도 없이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나 세 명의 의사에게 인사하고는 서다인을 끌고 떠났다.그들은 병원을 나와 차에 올랐다.두 사람은 무거운 마음으로 차 안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금원에 돌아와 서다인이 막 내리려고 할 때 남하준이 다정하게 입을 열었다.“먼저 들어가. 나 일 보고 돌아올게.”“그래요.”서다인이 대답하고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가장자리에 서서 남하준의 차가 천천히 금원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손을 들어 가볍게 손짓했다.그가 이번에 일하러 나가면 예전처럼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그녀는 눈을 뗄 수 없었다그래도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별장으로 들어섰다.30분 후.차량은 백씨 가문 저택 입구에 주차되어 있었다.남하준은 차에서 내려 손목시계를 벗고 별장으로 성큼성큼 들어서자 류청이 급히 따라갔다.거실에서 백하린은 남하준을 보고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일어나서 그에게 달려들었다. “오빠.”눈치 빠른 류청이 즉시 그녀를 막았다.남하준은 백하린을 차갑게 흘끗 쳐다보고는 물었다.“백인호 어딨어?”백하린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삼촌은 위층에 있는데 무슨 일로 찾아요?”“내려오라 그래.”남하준의 안색이 어둡자 백하린은 당황하여 하인을 시켜 위층으로 올라가 사람을 부르라고 했다.2분 후, 백인호가 우유 작작 내려왔다.점잖
백인호는 음험한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혀로 입가의 핏자국을 고르더니 차갑게 웃었다. 칼을 품고 있는 웃음이었다.남하준은 화를 꾹 누르고 그를 땅바닥에 내던지고는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았다.그가 몸을 돌려 가려는데 백하린이 그의 앞으로 다가와 두 손을 열어 가로막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사람 때리고 그냥 가? 적어도 왜 때렸는지는 설명을 해야 할 거 아니야?”이 낯선 여자를 바라보는 남하준의 눈빛에는 혐오감이 가득했다.일 초라도 더 보면 백하린의 이름과 신분에 먹칠하는 것 같았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곁을 스쳐 지나쳐 백씨 저택을 떠났다.백하린은 멍해 있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듯 급히 서재로 뛰어 들어가 도청 설비를 켰다.그때야 모든 도청 장비가 고장 난 것을 발견했고 그 순간 그녀는 허탈하게 의자에 앉아 얼굴이 창백해졌다.잠시 후 백하린은 서재를 뛰쳐나갔다.소파에 앉아 홀로 약을 바르는 백인호는 이를 악물고 통증을 견디고 있었다.“백인호.”백하린은 그에게 달려들었고 고개를 돌려 하인에게 나가라고 눈짓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녀는 숨이 가빠졌다.“큰일 났어. 우리가 설치한 도청 설비가 전부 고장 났어. 남하준이 설마 우리 의심하는 거 아니야?”백인호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하준이가 배불러 할 일 없어 여기까지 찾아와 나 때린 것 같아?”“그럼 어떡해?”백하린은 넋이 나갔다.“증거가 없어.”남자는 코웃음을 치며 아주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만약 네가 설치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있었다면 바로 너 감옥에 보냈을 거야.”“말도 안 돼. 난 남하준이 가장 사랑했던 여자야. 아무리 지금은 싫어한다고 해도 날 감옥에 보낼 정도는 아니지.”백인호는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렸다.“근데 방금 날 보는 남하준 눈빛이 이상했어. 전처럼 다정하지 않았다고 할까? 설마 내 신분을 의심하는 걸까?”“네 신분을 의심하는 건 당연하지.”백인호는 약상자를 치우고
“준, 돌아왔어요?”남하준은 그녀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심장이 움찔했다.지금 이 순간, 그의 마음은 비로소 진정으로 살아난 것 같았다.그는 백하린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늘 사랑하고 있었고 다만 예전에 그 짝퉁은 그에게 이런 설레임을 주지 못했다.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느낌이었다. 본능적인 사랑은 평생 변하지 않는다.남하준은 슬리퍼를 갈아 신고 서다인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꼭 껴안았다.서다인은 살짝 멍하니 몸이 굳어 그의 단단한 가슴에 안겨 꼼짝도 할 수 없었다.그의 품은 따뜻하고 편안하며 익숙한 은은한 향기가 가슴에 스며들었다.서다인은 긴장된 듯 침을 삼키고 심장이 뛰며 어쩔 줄 몰라 하며 중얼거렸다.“왜 그래요?”“힘들어. 너 안고 싶어서.”남하준은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꼭 껴안고 눈을 감고는 그녀의 이마에 입 맞추고 긴 머리를 두 손을 쓰다듬었다.아주 부드럽고 애틋하게.서다인은 그의 품에 안겨 헤어나올 수 없었다.마음 가득 남하준이 퍼져나갔다.그녀는 심지어 남하준이 그녀를 좋아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했다.‘왜 매번 이렇게 부드럽고 따뜻하게 안아줄까?’서다인은 두 손으로 천천히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배 안 고파요? 저녁 먹을래요?”“넌 먹었어?”“아니요. 당신 기다리고 있었어요. 음식 다 식었어요.”남하준은 옅은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숙여 그녀를 보며 다정다감하게 말했다.“앞으로는 나 기다리지 마. 배고프면 먼저 먹어.”“네.”서다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마음이 흐뭇해지자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내가 데울게.”남하준이 그녀를 놓고 가려 하자 서다인이 그의 손을 잡았다.“아줌마한테 시키면 돼요.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느라 피곤할 텐데 좀 쉬어요.”남하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손을 잡고 소파로 향했다.두 사람이 앉자마자 남하준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그는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엄마. 무
서다인이 남하준을 따라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응급실 밖은 남씨 가문 사람들로 가득 찼다.모두의 안색이 매우 어두웠다.남태준이 5년 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생사를 넘는 위급한 순간이라니. 허윤미는 응급실 밖에서 울다 기절하여 병실로 보내져 링거를 맞았다.남태준을 병원에 데려온 두 명의 경찰은 사복 차림이었다.서다인은 물어보지 않아도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남태준은 무려 6시간 동안 응급수술을 받았고 새벽녘이 되어서야 의사가 응급실에서 나왔다.모두 긴장한 채 의사 옆을 빙 둘러싸서 물었다.의사는 피곤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상황이 좋지 않아요. 중환자실로 옮겨서 지켜봐야 해요. 아직 위험한 고비를 넘긴 건 아니니 살아날 수 있을지는 환자분 의지에 달렸어요.”남창민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비틀거리자 남희준과 남이준이 급히 아버지를 부축했다. 그는 안색이 창백하고 슬프고 무기력해 보였다.의사의 말은 듣기 좋아 한 가닥 희망이 있지만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고 살아날 기회가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남창민은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아 두 손으로 이마를 짚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었다.서다인은 아버님이 이렇게 슬퍼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몇몇 형들도 눈물을 글썽이며 슬픔을 참고 아버지를 보살피고 있었다.지금 서다인은 세 명의 형님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슬프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옆에 서서 조용히 지켜야만 했다.마음속으로 남태준이 이 재앙을 이겨내기를 기도했다.그 자리에서 가장 침착한 건 남하준이었다. 그는 의사의 말을 다 듣고는 의사를 따라 중환자 관찰실로 들어갔다.유리창 너머로 그는 병상에 누워 튜브가 가득 꽂힌 넷째 형을 보았다. 그의 몸 곳곳에 거즈가 가득 둘러싸였고 어디 성한 곳 하나 없었다.기구의 심전도와 맥박이 비정상적으로 흔들렸고 간호사는 곁에서 돌보며 수시로 그의 상태를 관찰했다.남하준은 가만히 서서 꽉 쥔 주먹이 약간 떨리고 눈시울이 붉어지고 촉촉해지며 눈 아래에서 분노가 솟구쳤다.가족
남자는 눈물이 있어도 쉽게 흘리지 않는 법이지만 그건 어쩌면 마음속 깊숙한 슬픔에 도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또 다른 경찰관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그는 동료가 총에 맞아 즉사할지언정 그런 고통을 겪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았다. 그 비인간적인 고통을 남태준이 어떻게 견뎌냈는지 알 수 없었다.남하준은 한마디 말도 없이 듣고 있더니 눈가에 맑은 눈물 두 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렸고 핏줄 터지는 듯한 철권을 움켜쥐고 온몸을 가늘게 떨었다.두 명의 마약 사복 경찰이 병원을 떠난 후 남하준은 형 옆을 지키지 않았다.그는 이곳을 형들과 부모님께 맡기고 서다인을 데리고 병원을 떠났다.서다인은 그가 괴로운 것을 알고 돌아가는 길에 조용히 그의 손을 잡고는 방해하지도, 귀찮게 하지도 않았다.금원으로 돌아간 후.남하준은 그녀에게 앞으로 며칠 동안 좀 바쁠 것이라고 했다. 그녀더러 먼저 방에 들어가 씻고 자라고 하고 자신은 서재로 들어가 계속 일했다.그날 밤, 서다인은 그가 방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지만 옆자리는 여전히 허전했다.그녀가 일어나 서재에 와서 보니 남하준은 아직도 어제 옷을 입고 긴급회의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감히 방해하지 못하고 묵묵히 문을 닫았다.그 후 이틀 동안 서다인은 매일 병원에 가서 남태준의 상태가 호전되었는지 확인했지만 병원은 그녀에게 만족스러운 답을 주지 않았다.셋째 날, 남하준은 미사일 훈련 지휘를 위해 군전 그룹으로 돌아갔다. 이날 오후 4시 서다인이 거실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갑자기 하인이 다가와 말했다.“사모님, 미사일 훈련 생중계 안 보세요?”“생중계라니요?”“류청 씨께서 오늘 저한테 4시에 사모님께 TV를 켜라고 알려주라고 하셨어요. 우리 M 국의 첫 미사일 훈련을 도련님께서 지휘하신다고요.”서다인은 바로 책을 덮고 서둘러 TV를 켜서 하인이 지정한 채널로 넘겼다.TV에서 생중계를 보았을 때 마음이 뜨거워졌다.화면은 미사일 발
서다인은 거실에서 아침을 먹으며 휴대전화를 들고 어제 미사일 발사에 실패해 J국 국경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계속 뒤적거렸다.J국과 기타 국제 뉴스에서는 J국이 수백 명의 사망자를 냈다고 보도했으며 M국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M국에 최고의 보상과 사과를 요구한다고 했다.M국 보도에 따르면 이번 미사일 발사 편향으로 인해 J국 국경에서 M국으로 판매되는 가장 큰 마약 소굴이 파괴되었으며 수십만 톤의 마약과 수백 명의 마약 밀매자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서다인은 보면 볼수록 걱정이었다.전 세계 지도자가 이번 M국 미사일 훈련 실패로 인해 파괴된 것이 마약 소굴이라는 걸 알더라도 그들은 그저 눈감아 주지 않을 것이고 서로 갈등을 유발하고 도발해 올 것이다.그때 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오셨어요?”서다인은 움찔 놀라더니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거실 현관으로 잽싸게 뛰어갔다.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여전히 잘생기고 위풍당당한 남하준을 긴장하고 불안하게 바라보았다.“준.”서다인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참지 못하고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흥건해져 가슴이 아팠다.남하준은 입꼬리가 올라가고 미간이 한껏 부드러워졌다. 그는 슬리퍼를 신고 서다인 앞으로 다가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품에 꼭 껴안았다.꽉 껴안긴 서다인은 그의 따뜻한 품에서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두 손을 천천히 들어 그의 허리를 감싸 안고는 속삭였다.“피곤해 보이는데 방에 가서 좀 쉴래요?”남하준은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가볍게 흔들었다.“배 안 고파요? 아침 먹을래요?”남하준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으며 손의 힘을 조이고 눈을 감고는 그녀의 몸이 주는 에너지를 느꼈다.“준...”서다인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남하준이 쉰 목소리로 한없이 낮고 가볍게 말했다.“나 지금 너 안고 충전하고 싶어.”서다인은 심장이 뛰었다. 마치 몇 마리의 토끼가 그녀의 마음속에서 필사적으로 뛰어다니는 것 같았다.여자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남하준이 그녀를 안고 충전하겠다는
남하준은 책갈피를 넣고 책을 덮어 탁자 위에 놓았다.서다인은 따뜻하게 웃으며 일어나려 했다.“깼어요? 배 안 고파요? 음식 데우라고 할게요.”남하준은 그녀를 자기 곁으로 끌어당겨 옆으로 끌어안고 턱을 그녀의 어깨에 눌렀다. “배 안 고파. 나랑 얘기 좀 해.”“그래요. 무슨 얘기하고 싶은데요?”남자는 가볍게 탄식했다.“형은 좀 어때?”“여전히 중환자실에 있어요.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겨우 버티고 있죠.”그는 주머니에서 반지 하나를 꺼냈다.서다인은 그의 손가락 사이에 있는 그 예쁜 반지를 보았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되고 설레어 말문이 막혔다.결혼 반년 동안 그녀에게 반지를 준 적이 없었다.“형이 자기 첫사랑한테 주라고 부탁했대.”순간 서다인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모든 기대와 설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아.”“근데 난 형이 반지를 직접 전하게 하려고.”그는 반지를 서다인의 손에 넣었다.“내일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소독해 달라고 하고 형 손가락에 끼워줘.”서다인은 그의 뜻을 알아챘다.형에게 목표가 생겨 빨리 낫기를 바라는 것이었다.서다인은 밋밋한 반지를 보며 말했다.“중환자실에서 환자한테 반지를 끼우게 할까요?”“이 반지는 형에게 아주 중요해. 사고를 당하기 전에 부모 형제도 언급하지 않고 첫사랑인 여자친구만 언급했대.”서다인은 반지를 보면서 침묵했다.남태준은 아마도 남하준과 마찬가지로 정과 의리를 중시하는 일편단심인 남자일 것이다.다만, 남태준의 일편단심에 서다인은 매우 감동했지만 남하준의 일편단심에는 아주 슬펐다.남하준이 사랑하는 여자는 백하린이었으니.서다인은 그의 품에서 나오며 물었다.“J국 국경을 폭파한 일에 대해 정통 어르신께서 뭐라고 하세요? 당신 처벌하지 않으셨어요?”남하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그녀의 긴 머리를 쓰다듬었다.“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그럼 M국이 곤란해졌겠네요?”“요즘 국제 여론 상 좀 그렇겠지만 큰 문제는 아니야.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니까.”고의가 아니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진은 무엇일까?여자 사진?남서연은 기분이 가라앉아 말했다.“나 먼저 돌아갈게요.”그러자 백건이 그녀에게 다가갔다.“나랑 같이 집에 가서 어른들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자.”“안돼요.”남서연은 긴장감에 못 이겨 안절부절했다.“일단 아직은 안돼요. 내가 먼저 가서 가족들 생각을 알아보고 다시 결정해요.”“어떤 상황이든, 어떤 결과든, 나 혼자 감당할 거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서두르지 말고 우리 천천히 얘기해요. 내가 우리 가족들 설득하고 오빠는 오빠 가족들 설득해요. 네?”백건은 여전히 변수가 있을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행동해 남서연을 놀라게 해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그래. 네 말대로 해.”남서연은 그가 덮은 앨범을 가리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덤덤하게 물었다.“누구 사진이에요?”백건은 고개를 돌려 협탁을 보더니 마음이 찔려 말했다.“내 사진이야.”그건 백건이 전에 몰래 찍었던 남서연의 사진이었다.결혼 후에만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가 한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계획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어머니의 강력한 방해를 무릅쓰고 그는 강력한 권한을 동원하여 인사팀을 통해 남서연의 면접을 합격시키고 그녀를 ND에 무사히 입사하게 했다.또 직권을 이용하여 남서연을 데리고 해외 출장을 갔다. 그 목적은 바로 남서연을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만든 다음 그 기회를 빌려 잠자리를 갖고 그녀를 임신시키는 것이었다.두 차례의 성관계에도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그녀를 임신시키기 위함이었다.그는 감히 남서연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남서연이 그를 비열하다고, 수단이 더럽다고, 파렴치하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결혼하고 나서 다시 그녀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천천히 용서를 빌어야 했다.남서연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백건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발이 미끄러질까 봐 보호했다. 남서연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호하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서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초롱초롱한 큰 눈으로 물끄러미 백건을 바라보며 머리가 하얘졌다.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백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큰 유혹이었다.그녀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백건은 갑자기 몸을 기울여 왼쪽 무릎을 그녀 앞에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놀란 그녀는 소파에 붙으며 경악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뜨거운 눈빛으로 부드럽게 말했는데 매우 절실해 보였다.“서연아, 나와 결혼해줘. 응?”‘지금 아이를 위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한 거야?’남서연은 아주 기뻤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괴롭고 불안했다.“두 집안 어른들 모두 찬성하지 않을 거예요.”“너만 원한다면 그런 것들은 전부 내가 알아서 해.”남서연은 차마 배 속의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가족 모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현실 생활에서 많은 부부가 선을 보고 결혼하니 먼저 결혼하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결혼 후에 그녀가 잘 보인다면 백건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남서연은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감격에 겨워 붉어진 눈시울이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어지러운 숨결로 소파에 앉더니 남서연을 덥석 품에 끌어안았다.남자의 동작은 절박했고 강렬한 포옹에 그녀는 몸이 아팠다.남서연은 그의 등 뒤에 두 손을 널어놓고 턱을 그의 어깨에 괴고는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귓가에 남자의 무거운 호흡과 함께 약간 울먹이는 쉰 목소리가 들렸다.“고마워. 서연아. 정말 고마워. 반드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될게.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최선을 다해서 네게 가장 행복한 미래를 줄게.”남서연은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다.다만,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대해야 할까?아이 때문에 결혼하게 되면 백건은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까?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슬픈 듯 중얼거렸다.“나 임신했어요.”백건은 심장이 움찔했고 온몸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거의 뛰기라도 하듯 벌떡 일어났다. 가슴의 흥분을 터뜨리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서연이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고? 나 아빠가 되는 거야? 서연이 아이의 아빠? 이거 지금 꿈 아니지?’그는 갑작스러운 행복을 애써 눌렀다.남서연은 그의 반응에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니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를 등지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이 남자가 대체 어떤 마음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그녀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그녀처럼 망연자실할까?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남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책임지라고 찾아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다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에 오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만약 수술하게 되면 나와 함께 가줘요.”백건은 무거운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순식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그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얼굴빛은 굳어졌고 말투는 엄숙했다.“뭐? 수술한다고?”남서연은 주눅이 들어 쳐다보며 말했다.“네. 혼전 임신은 안 돼요.”가족들이 만약 그녀가 혼전임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백건을 때려죽일 것이다.숨이 가빠진 백건은 두 손을 꼭 잡았고 엄숙한 말투에 약간의 온기를 더해 부드럽게 달랬다.“서연아, 아이는 포기할 수 없어. 내게 책임질 기회를 줄 수 없어? 나 좋은 아빠가 될게.”남서연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백건을 바라보며 멍해졌다.그녀의 생각과 달랐다.그녀는 백건이 그녀보다 더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이의 존재가 그를 위험하게 만들 테니까.백건은 긴장된 듯 입술을 오므리고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그리고 너만 괜찮다면 나... 좋은 남편이 될 수도 있어.”남자는 주먹을 문지르며 가늘게 떨릴 정도로 긴장했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남서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의 시주를 기
남서연은 복잡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저예요.”백건은 숨이 거칠고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말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다.그는 남서연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몰라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시간 있어요?”남서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물었다.백건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있어.”“잠깐 만나서 얘기할래요?”“좋아.”백건이 곧바로 대답하더니 또 물었다.“어디서 볼래? 데리러 갈게.”남서연이 생각해보니 밖에는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오빠 집으로 갈게요. 반 시간이면 도착해요.”“좋아.”남서연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쓰고 공중화장실을 나섰다.한편, 공항 가는 차에 타고 있던 백건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령했다.“차 돌려서 집으로 가.”“대표님, 비행기 시간 이미 다 됐어요.”백건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행사 취소하고 바로 집으로 가.”하현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전화를 들으니 아마 남서연일 것이다.백건에게 새 시즌 발표회는 취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고 없어도 되는 일이다.그러나 남서연을 만날 어떤 기회도 그는 놓칠 수 없었다.하현우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30분 후.남서연은 산 중턱 별장에 와서 막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하현우가 이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했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남서연은 살짝 놀랐다가 하현우인 걸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화원의 앞마당을 지나 웅장한 큰 집으로 들어갔다.문은 열려 있고 백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어 우아하고 멋스러우며 준수한 매력을 자랑했다.남자는 그윽한 눈동자로 남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다시 만난 남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마음속에 토끼 한 마리가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