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다인은 거실에서 아침을 먹으며 휴대전화를 들고 어제 미사일 발사에 실패해 J국 국경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계속 뒤적거렸다.J국과 기타 국제 뉴스에서는 J국이 수백 명의 사망자를 냈다고 보도했으며 M국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M국에 최고의 보상과 사과를 요구한다고 했다.M국 보도에 따르면 이번 미사일 발사 편향으로 인해 J국 국경에서 M국으로 판매되는 가장 큰 마약 소굴이 파괴되었으며 수십만 톤의 마약과 수백 명의 마약 밀매자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서다인은 보면 볼수록 걱정이었다.전 세계 지도자가 이번 M국 미사일 훈련 실패로 인해 파괴된 것이 마약 소굴이라는 걸 알더라도 그들은 그저 눈감아 주지 않을 것이고 서로 갈등을 유발하고 도발해 올 것이다.그때 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오셨어요?”서다인은 움찔 놀라더니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거실 현관으로 잽싸게 뛰어갔다.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여전히 잘생기고 위풍당당한 남하준을 긴장하고 불안하게 바라보았다.“준.”서다인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참지 못하고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흥건해져 가슴이 아팠다.남하준은 입꼬리가 올라가고 미간이 한껏 부드러워졌다. 그는 슬리퍼를 신고 서다인 앞으로 다가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품에 꼭 껴안았다.꽉 껴안긴 서다인은 그의 따뜻한 품에서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두 손을 천천히 들어 그의 허리를 감싸 안고는 속삭였다.“피곤해 보이는데 방에 가서 좀 쉴래요?”남하준은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가볍게 흔들었다.“배 안 고파요? 아침 먹을래요?”남하준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으며 손의 힘을 조이고 눈을 감고는 그녀의 몸이 주는 에너지를 느꼈다.“준...”서다인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남하준이 쉰 목소리로 한없이 낮고 가볍게 말했다.“나 지금 너 안고 충전하고 싶어.”서다인은 심장이 뛰었다. 마치 몇 마리의 토끼가 그녀의 마음속에서 필사적으로 뛰어다니는 것 같았다.여자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남하준이 그녀를 안고 충전하겠다는
남하준은 책갈피를 넣고 책을 덮어 탁자 위에 놓았다.서다인은 따뜻하게 웃으며 일어나려 했다.“깼어요? 배 안 고파요? 음식 데우라고 할게요.”남하준은 그녀를 자기 곁으로 끌어당겨 옆으로 끌어안고 턱을 그녀의 어깨에 눌렀다. “배 안 고파. 나랑 얘기 좀 해.”“그래요. 무슨 얘기하고 싶은데요?”남자는 가볍게 탄식했다.“형은 좀 어때?”“여전히 중환자실에 있어요.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겨우 버티고 있죠.”그는 주머니에서 반지 하나를 꺼냈다.서다인은 그의 손가락 사이에 있는 그 예쁜 반지를 보았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되고 설레어 말문이 막혔다.결혼 반년 동안 그녀에게 반지를 준 적이 없었다.“형이 자기 첫사랑한테 주라고 부탁했대.”순간 서다인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모든 기대와 설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아.”“근데 난 형이 반지를 직접 전하게 하려고.”그는 반지를 서다인의 손에 넣었다.“내일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소독해 달라고 하고 형 손가락에 끼워줘.”서다인은 그의 뜻을 알아챘다.형에게 목표가 생겨 빨리 낫기를 바라는 것이었다.서다인은 밋밋한 반지를 보며 말했다.“중환자실에서 환자한테 반지를 끼우게 할까요?”“이 반지는 형에게 아주 중요해. 사고를 당하기 전에 부모 형제도 언급하지 않고 첫사랑인 여자친구만 언급했대.”서다인은 반지를 보면서 침묵했다.남태준은 아마도 남하준과 마찬가지로 정과 의리를 중시하는 일편단심인 남자일 것이다.다만, 남태준의 일편단심에 서다인은 매우 감동했지만 남하준의 일편단심에는 아주 슬펐다.남하준이 사랑하는 여자는 백하린이었으니.서다인은 그의 품에서 나오며 물었다.“J국 국경을 폭파한 일에 대해 정통 어르신께서 뭐라고 하세요? 당신 처벌하지 않으셨어요?”남하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그녀의 긴 머리를 쓰다듬었다.“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그럼 M국이 곤란해졌겠네요?”“요즘 국제 여론 상 좀 그렇겠지만 큰 문제는 아니야.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니까.”고의가 아니
남하준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눈동자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완아, 기억을 되찾는 것도 좋지만 네 목숨이 더 소중해. 그냥 운명에 맡기자.”“가장 좋은 의사를 찾으면 되잖아요.”그녀는 살구 눈을 깜빡이며 거의 애원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남하준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단 0.001%의 위험이라도 존재한다면 그는 동의할 수 없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배 안 고파? 밥 먹으러 가자.”남하준이 화제를 돌렸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가 여자의 손을 잡고 일어섰을 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하인이 즉시 달려가 문을 열고 긴장한 표정으로 남하준에게 돌아섰다. “도련님, 정통 어르신과 비서님이 오셨어요.”두 사람은 서로 눈이 마주쳤고 남하준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먼저 가서 밥 먹어.”서다인이 고개를 끄덕였고 하인이 문을 열자 차가운 얼굴의 정통 어르신이 기세등등하게 성큼성큼 서재로 향하며 한마디 말도 없이 남하준 곁을 지나갔다.“어르신...”남하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통 어르신은 그의 곁을 홱 스쳐 지나갔고 노기가 등등했다.남하준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무거운 마음으로 식탁에 앉은 서다인은 서재를 돌아보니 비서실장이 문밖을 지키고 있었고 태도가 매우 엄숙하고 분위기가 냉엄했다.그녀는 남하준이 처벌을 받을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렸다.서재.정통 어르신은 소파에 앉더니 화를 억제하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자네가 총회에 제출한 미사일 오류 보고서를 난 한마디도 믿을 수 없네. 지금 우리 둘뿐이니 솔직히 말해보게. 대체 어떻게 된 건가?”남하준은 그의 맞은편으로 가서 천천히 앉았다. “차 드릴까요?”정통 어르신의 안색이 어둡고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화가 나서 가슴이 벌렁거렸다.“나 속일 생각 말게. 미사일 1호 기술은 이미 완전무결해. 절대 데이터 오류가 생길 리 없다고. 원래 무인 사막에 떨어졌어야 할 미사일이 어떻게 이웃 나라 마약 소굴에 떨어지냐고
“정부 지원으로 양귀비 농사를 지어 전 세계에서 거의 모든 마약이 흘러나오는 나라죠. 저희는 이웃 국가로서 마약이 가장 범람하는 피해국입니다.”“우리 국경수비대원 18명이 강제로 마약 주사를 맞았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들은 지금 매일 독과 싸우고 있습니다. 차라리 죽음보다 못한 고통이죠. 우리 M국에는 2천만 명의 중독자가 있는데 이 숫자는 여전히 매일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수도 없는 마약 검거 경찰이 참혹하게 죽었지만 여전히 마약이 우리 M국으로 반입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정통 어르신은 비통한 표정으로 앉아 이마를 짚고 흐느끼며 말했다.“미사일로 마약 소굴 하나를 없애면 뭐하나? J국에게는 그저 간지러움을 태운 정도지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남하준은 비통하게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정통 어르신의 말투가 조금 느려졌다. “자네는 절대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네. 대체 왜 그런 건가?”남하준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숨을 내쉬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네, 사심이 있었습니다.”“제 부하 정호와 아내가 얼마 전 J국에서 살해당할 뻔했는데 다행히 무사히 구출돼 참았습니다.”“하지만 이번에는 제 친형이었습니다. 형은 M국 마약 단속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고 목숨도 버릴 수 있는 영웅이었습니다.”남하준은 눈물이 반짝이며 울먹였다.“전 형이 영광스럽게 희생될지언정 6일 밤낮으로 매달려 지독한 고문에 시달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건 사람이 아니라 짐승입니다.”“형은 아직 병원에 누워 위독한 상황입니다.”남하준은 촉촉한 눈을 천천히 감고 호흡이 점점 무거워지며 낮게 울먹였다.“형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형을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었습니다.”정통 어르신의 얼굴이 굳어지며 긴장해서 물었다.“설마 태준이? 요 몇 년 동안 계속 J국에 잠입 수사했던 건가?”남하준은 목구멍이 시큰거렸고 고개를 끄덕였다.정통 어르신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주먹을 쥐고 소파에 주먹을 쥐어박았다
남하준이 그를 따라 일어났고 정통 어르신은 서재를 나오면서 말했다.“착한 사람이 칼을 들고 있는 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지만 강도가 칼을 들고 다니는 건 약탈을 일삼기 위해서네.”“남 장군, 내 살아생전에 우리 M국이 세계 무적의 국방 무기를 개발하는 걸 보고 싶네. 우리나라를 굳건히 지키고 다시는 괴롭힘 당하지 않게 말이네.”“그 희망을 자네에게 걸고 있네.”정통 어르신은 감개무량해서 말했고 남하준은 무거운 마음으로 어르신을 배웅했다.식탁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리던 서다인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남하준이 돌아오자 급하게 달려가 물었다.“어르신이 뭐라 하세요? 당신 욕해요? 처벌하겠대요?”남하준의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괜찮으니까 걱정 마.”“정말이에요?”“그럼.”서다인은 손을 뻗어 그의 볼을 만졌다. 하얗고 가느다란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잘생긴 뺨에서 더 앙증맞게 보였다.그녀의 손바닥은 부드럽고 따뜻했으며 매우 편안했다. 남하준은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덮으며 그녀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당신 안색이 안 좋아요. 요 며칠 많이 힘들었죠?”“완아, 어떤 일들은 너에게 다 말해줄 수가 없어. 그런데도 묻지 않아 줘서 고마워.”서다인은 부드럽고 가벼운 미소를 지었고 미간에는 애틋함이 가득했다. “음식 벌써 세 번이나 데웠네요. 얼른 가서 먹어요.”남하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를 끌고 식탁으로 향했다.이날 밤.남하준은 또 밤늦게까지 바빴고 새벽녘에 그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 서다인은 이미 피곤해서 잠이 들어 있었다.이튿날 아침.서다인은 평소처럼 병원 중환자 관찰실에서 남태준을 한참을 지켜본 뒤 의사에게 그의 상태를 파악한 뒤 반지를 건넸다.처음에 의사는 ICU 병동에 장신구를 가지고 가는 것을 권장하지 않았다.하지만 서다인은 이 반지가 환자의 삶의 의지를 일깨울 수 있다고 설명하니 의사도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서다인이 떠나려고 할 때,
서다인은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순간 백인호는 그녀의 팔을 잡더니 그녀를 잡아당겼다.서다인은 화를 내며 그의 손을 밀쳤다.“뭐예요? 이거 놔요!”백인호는 그녀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겨 애틋하게 바라보며 가볍게 말했다.“뭐가 그렇게 급해? 나 전 여자친구한테 할 말 있단 말이야.”서다인은 속으로 당황하여 죽을 지경이었지만 짐짓 침착한 척 눈을 가늘게 뜨고 시선을 그의 손에 옮겨 또박또박 말했다.“이 손 놓고 말씀하시죠. 내 몸에 손대지 마세요.”백인호는 손을 놓기는커녕 오히려 고개를 숙이고 다가가 가볍게 웃었다.“네 몸은 내가 얼마나 많이 만졌겠어?”서다인은 입술을 깨물고 꾹 참고 노려봤다.“우리가 얼마나 오래 만났는데 네 몸은 내가 가장 익숙하지.”만약 얼마 전 검사에서 산부인과 의사가 그녀에게 처녀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정말 그를 믿었을 것이다.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데 뻔뻔스럽기 짝이 없었다.서다인은 팔을 힘껏 잡아당겼다.“이거 놔요!”백인호는 힘껏 잡아당겨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에 껴안아 그녀를 가두었다. 머리를 숙이고 그녀의 귀에 사악하게 중얼거렸다.“난 널 꼭 가질 거야. 무슨 수를 써서든.”서다인은 놀라서 온몸이 으슬으슬 떨렸다.“계속 안 놓으면...”살려달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갑자기 우람한 모습이 덮쳐와 백인호의 팔을 세게 꺾었다.꾸드득.“악!”백인호는 아파서 울부짖으며 꺾인 팔을 재빨리 부축했다.곧 단단하고 따뜻한 가슴이 서다인의 두 손에 파고들자 익숙한 향기가 코로 스며들었다.고개를 들어 남하준의 늠름하고 준수한 얼굴을 보는 순간 마음이 안정되었다.그는 매우 바쁘지 않은가?바빠서 넷째 형을 보러 올 시간도 없었는데 왜 지금 여기에 나타난 걸까?“준.”서다인이 따뜻한 눈으로 남하준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올려다보았다.그녀는 남자의 노기가 백인호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무서웠다.백인호는 깊이 숨을
서다인은 정신을 차린 후, 난처하고 부끄러운 듯 눈을 돌려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얼굴이 화끈거리는 그녀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안 바빠요? 여긴 어떻게 왔어요?”“방금 다 마쳤어.”“아.”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중환자 관찰실로 향했다.“나랑 같이 형 보러 가자.”서다인은 그를 따라 걸어가면서 두 사람의 손에 시선이 고정되고 마음이 따뜻해지며 손바닥이 뜨거워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지금의 그녀는 남하준이 이렇게 다정하게 자신의 손을 잡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매번 그에게 사랑받는 느낌이 들었다.관찰실 밖 유리 앞에 선 남하준은 굳어진 표정으로 남하준을 바라보며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형은 좀 나아졌어?”서다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의사가 지금까지 버틴 게 기적이라고 했어요.”“기적이 일어날 거야.”“네. 그럴 거예요.”두 사람은 조용히 남태준을 오랫동안 지켜봤다.그 후 며칠 동안 남하준은 나랏일로 바쁘게 보냈다.이날 아침 서다인이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금원 안에서 정원을 거닐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지우의 긴장된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인아, 빨리. 빨리 민간 생중계 한 번 봐봐.”“생중계?”“뉴스 채널인데 민간 인터뷰야. 빨리 찾아봐.”서다인은 통화를 끊고 곧바로 검색창을 열어 지우가 지정한 최신 프로그램을 시청했다.스튜디오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세 사람을 보고 넋을 잃었다.MC가 세 사람을 인터뷰하고 있었는데 인터뷰 대상은 뜻밖에도 그녀의 가족이었다.엄밀히 말하면 서다인의 가족, 서대홍, 서지석 그리고 진화연.대개 서다인이 부잣집에 시집갔지만 부모를 모시기는커녕 친오빠를 때리고 가족과의 왕래를 끊은 배은망덕한 여자라며 욕설을 퍼붓는 내용이었다.더욱 어이없는 것은 그들이 끊임없이 그녀의 명예를 훼손하고 그녀의 과거를 폭로하고 있었다.또 전국 시청자들에게 중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학교를 그만두고 남자를 따라다니며 술집에서 세간살이를 하고, 음란한 장소에서 서비스업을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결혼 사실을 부인하고 몰래 남하준과 이혼하든지, 아니면 네 진짜 정체를 밝히든지.”서다인은 이마를 감싸고 소파 등에 기댄 채 눈가에 주룩주룩 눈물이 흘렀다.“이혼 얘기는 다시 꺼내지 않기로 하준 씨랑 약속했어.”“그럼 네 정체를 밝혀. 넌 서다인이 아니라고.”그녀는 무기력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그것도 안 돼. 아직 배후를 밝히지 못했고 진짜 내 신분도 찾지 못했으니 아직은 아니야.”“그럼 어떡해?”서다인은 심호흡을 하며 눈물을 훔쳤다.“하준 씨한테 말할 거야. 그 사람은 나 믿어 줄 거야. 이건 하준 씨만 해결할 수 있어.”“그래, 네 남편 지금 집에 있어?”“아니. 군전 그룹에 있어.”“전화해서 오라 그래. 요즘 외출은 삼가고. 분명 잠복해 있는 인간들 있을 거야.”“그래, 알겠어.”서다인은 전화를 끊고 남하준에게 연락하려는데 서지석의 전화가 걸려왔다.그녀는 심호흡하고 이를 악물고 받았다.그는 득의양양한 말투로 도발했다.“사랑하는 우리 동생. 뉴스 봤어? 죽이지?”서다인은 옷을 움켜쥐고 떨면서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서지석, 너 미쳤어?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하하, 네 명예가 실추되는 걸 원하거든. 왜. 이제 좀 무서워?”서다인은 한 번도 자기 걱정을 한 적이 없었다. 다만 남하준의 명예가 실추될까 봐 두려웠다. 이 신분의 불명예스러운 과거는 남하준을 더럽히고 그의 앞날을 망칠 것이다.“죽는 게 전혀 두렵지 않나 봐?”서다인은 이를 악물고 물었다.“뭐가 두려워?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이 내가 장군 부인 가족이라는 걸 알아. 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겨봐. 가장 큰 혐의는 남하준이 받지 않겠어?”서다인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답답함에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이 파렴치한 개자식들에 대해 그녀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서지석은 갑자기 말투가 부드러워졌다.“다인아, 만약 더 이상 스캔들을 폭로하고 싶지 않다면 차라리 용돈으로 나 입막음해도 돼. 오빠가 너 명
지우가 부랴부랴 그를 불렀다. “아니요. 나 안 더워요.”남태준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놓았다.그녀의 영롱한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으며 매력적이었다.지우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준 씨가 임다희와 사귀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지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남태준에게 건넸다.순간, 지우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이미 헤어진 이상 그와 다른 여자에 관해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확실히 묻지 않으면 그녀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비록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다만 이때 그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아 보일 수 있었다.모두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녀는 동생의 취업을 위해 목적을 갖고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지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뉴스를 본 남태준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긴장하며 설명했다.“지우야. 나와 다희 그런 사이 아니야. 나 믿어줘.”현재 임다희는 그의 정보원이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임다희의 신분과 작업을 기밀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지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지우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하게 이마를 짚고 죽을상이 된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또 불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지우를 바라봤다.지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여자가 먹여준 음식 먹었어요?”“그저 보통 친구와 밥 한 끼 먹은 거야. 나와 다희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야.”“안 먹었어요?”“응. 거절했어.”“아.”지우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둘 다 침묵에 빠졌다.남태준이 지우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
스쿠터를 타고 남태준의 집에 도착한 지우는 고개를 들어 한낮의 햇살을 올려다보았다. 이 시간에 그는 아마 출근 중이겠지?너무 일찍 온 것 같아서 그녀는 입구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차를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그녀가 막 떠나려던 참에 남태준이 문을 열고 나왔고 그는 지우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성큼성큼 앞으로 쫓아가며 불렀다.“지우야!”지우는 차를 세우고 그를 뒤 돌아봤다.마음이 격해진 남태준은 몇 걸음 만에 지우 곁으로 달려가 뜨거운 시선을 내뿜으며 다정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방금까지만 해도 용기가 넘치던 지우는 그를 만난 순간 맥이 풀리며 긴장해서 물었다.“출근 안 했어요?”“오늘 휴식이야.”남태준은 둘 곳 없는 손을 주머니에 천천히 찔러 넣었다지우는 부끄러워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왠지 모를 애틋한 감정이 마음속에 번져 그녀를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만들었다.“어디 나가요?”지우가 묻자 남태준은 고민 없이 말했다.“아니. 나 아무 일도 없어. 들어가 앉을래?”지우가 고개를 돌려 집을 보니 또 긴장감이 감돌았다.머릿속에 지난번 장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뭐 물어보려고 왔어요. 물어만 보고 갈 거예요.”묻기만 하고 바로 간다?남태준은 너무 아쉬웠다.헤어진 후 지우가 먼저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태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여기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서 너무 더워.”지우도 고개를 들어 눈 부신 햇살을 보며 생각했다.‘이 남자가 햇볕에 약하다고?’그리고 남자의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보니 평소에도 햇볕을 많이 쬐는 것 같았다.지우는 몇 초 동안 고민하다가 차를 옆으로 몰고 가서 멈추고 가방을 들고 그의 앞에 다가갔다.그러자 남태준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그녀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걸어가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오신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임다희가 육건우의 범죄 증거를 입수했으니 네가 가서 가져와. 난 오늘 중요한 일이 생겼으니 방해하지 마
“육건우가 지금 나랑 같이 거물을 만나러 가자고 하는데 네가 찾는 그 신비로운 사람인지 모르겠어. 와볼래?”남태준은 생각지도 않고 말했다.“주소 보내.”“좋아.”전화를 끊은 남태준은 지우의 메시지를 잊고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이 밤.지우는 휴대전화를 안고 남자의 답장을 기다렸지만 밤새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벌써 두 번째였다. 남태준이 그녀에게 두 번이나 답장하지 않았다.지우는 마음이 완전히 뒤숭숭해져서 남태준이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는지 확신이 없었다.그에게 재결합을 청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그렇게 평온해 보이는 이틀이 지났다.두 사람은 서로 연락하지 않았고 지우는 평생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남태준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고 그와 임다희가 도대체 무슨 사이인지 계속 생각했다.송수빈이 자주 가던 커피숍으로 지우를 불렀고 지우는 일할 마음이 없어 컴퓨터를 보며 멍하니 있었다.송수빈은 한창 일하다가 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문득 송수빈이 소리쳤다.“지우야. 네 전 남자친구 연예 뉴스에 나왔어!”지우는 정신을 차리고 긴장해서 고개를 내빼고 기웃거렸다.송수빈이 핸드폰 액정을 그녀 앞에 널어놓은 채 허탈한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지우는 그 안의 사진과 글을 보고 움찔 놀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남태준과 임다희가 한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고 임다희가 남태준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다정한 장면이 찍힌 것이었다.제목은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임다희, 다정하게 음식을 먹여주다.’였다.송수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나무랐다.“내가 정말 사람을 잘못 봤어. 남 대장님 너랑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전 여자친구랑 만나고 있어? 이거 환승 연애 아니야? 쓰레기!”지우는 가뜩이나 마음이 아팠는데 송수빈이 남태준을 쓰레기라고 욕하는 것을 듣자 그녀는 더욱 괴로워하며 감싸기 시작했다.“그냥 밥 한 끼 먹은 것뿐이잖아? 그게 뭐? 요즘 기자들 직업정신 없어서 사진 한 장으로도 아
지우는 눈물을 흐릿하게 머금은 채 일어나서 버럭 소리쳤다.“다른 사람에게 빌붙을 생각만 하지 말고 독립해야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서 이익을 얻을 궁리만 해? 네가 그러고도 남자야?”욕을 먹은 지성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진효연은 아들이 아까워 남태준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지우를 야단쳤다.“지금 그게 동생에게 할 소리야? 지성이가 왜 남자답지 못하고 왜 독립적이지 않은데? 지성이는 그저 좋은 직장 찾고 싶은 거잖아. 게다가 태준이가 남이야? 지성이 미래의 매형인데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잖아?”남태준은 놀라서 어리둥절했다.지우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라 화를 냈다.“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그런 사이 아니야!”“밥 안 먹어!”지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먹이며 말하고는 식탁을 빠져나와 방으로 가더니 쾅 하고 방문을 닫았다.진효연은 그제야 반응하고 약간 난처한 표정으로 남태준을 보았다.남태준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두 사람 아직 화해 안 했어?”진효연이 조심스럽게 묻자 남태준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이제 저희 반대 안 하시는 거예요?”진효연이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나 반대 안 해. 내가 허락해서 두 사람 이미 다시 만나는 줄 알았어.”진효연은 말을 잇지 못하더니 문득 쑥스러웠다.남태준이 지우의 남자친구가 아니라면 방금 그녀의 부탁은 확실히 좀 지나쳤다.지금 남태준은 마음속에 돌이 박힌 듯 숨이 막혔다.이따금 전해지는 괴로움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차라리 지우가 어머니의 반대 때문에 그와 헤어졌길 바라고 있었다.지금 보니 지우의 어머니는 두 사람을 동의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우는 정말 자신의 이유 때문에 헤어지자고 했을까?단순히 그를 사랑하지 않고 그에게 아무 느낌이 없어서?남태준은 맛을 느낄 수 없는 식사를 했다.그가 떠날 때까지 지우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는 차를 몰고 넓은 거리를 무작정 누볐고 마음이 아프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뚜뚜.메시지 벨이 울렸다.
남태준은 당연히 진효연의 뜻을 알았다.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진효연은 자기 자식을 너무 사랑했고 딸은 결국 시집갈 것이고 평생 그녀와 함께할 수 없으므로 아들에게 더욱 마음이 기울 것이다.가난한 사람 중에는 가식적인 사람이 많았다.하지만 본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진효연이 남태준은 마음에 들었다. 무슨 생각이든 마음에 숨겨두지 않고 바로 표현할 줄 알았으니.남태준이 여유롭게 말했다.“아주머니, 지성이가 공무원이 되려면 반드시 공무원 시험을 쳐야 해요. 통과해야만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어요.”진효연은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공무원 시험이 어디 쉽나.”“만약 공무원이 되기 싫으면 안성에 가도 돼요. 제가 가족들한테 회사에 맞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할게요.”진효연은 싱글벙글 웃으며 남태준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고마워 태준아. 내가 정말 많이 고마워.”지성도 기뻐했다.“고마워요 형.”지우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밥 먹을 기분이 없어 수저를 놓았다.그녀는 아직 남태준의 여자친구가 아닌데 그녀의 가족은 흡혈귀처럼 그에게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관계가 더 가까워지면 앞으로 어떤 무리한 요구를 제기할지 모른다.지우는 지성을 가리키며 경고했다.“너 못 가.”진효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지우를 쳐다보며 불쾌하게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지성도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내가 왜 못 가? 누나도 내가 나가서 돈 벌기를 바라잖아.”지우는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면접 보고 들어가는 건 되는데 낙하산은 절대 안 돼.”“왜?”지우는 제대로 된 신분으로 자존감을 갖고 남태준과 만나고 싶었다. 그의 도움을 받으며 난처한 위치에 처 하고 싶지 않았다.“그냥.”“내가 언제 누나더러 도와 달래? 난 태준이 형에게 부탁했어. 게다가 형도 흔쾌히 수락했고.”“너 바보니? 일자리도 혼자 못 찾아?”“내가 졸업한 대학교가 평범하잖아. 취업이 어려운 요즘 세상에 대기업 들어가는 일이 어디 쉬운 줄 알아?”“그래도 넌...
네모난 식탁에는 여섯 가지 요리에 국 하나, 그리고 디저트와 과일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새우, 게, 생선, 닭, 쇠고기, 야채, 수입산 인삼 비둘기 찜이 있었다.이러한 음식은 그다지 비싸지 않지만 남태준은 명절이나 중요한 날이 아니면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한 상 가득한 음식을 보던 남태준이 시선을 돌려 지성의 어두운 얼굴을 보니 이 맛있는 음식들이 지성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지성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엄마, 의사가 상처 완전히 아물기 전에는 담백하고 잘 소화되는 음식을 많이 먹고 기름진 음식은 피하라고 했어요. 아직 이런 음식은 벅차요.”진효연은 야채를 집어 지성의 그릇에 놓았다.“넌 야채 많이 먹어. 이건 충분히 담백해.”지성은 게를 보며 침을 흘렸다. 평소 해산물을 거의 먹지 않는 그의 집에서 하필 그가 다쳤을 때 해산물을 준비하다니.밥을 먹기도 전에 화가 잔뜩 불렀다.진효연은 집게로 가장 큰 게를 집어 남태준 앞에 놓인 작은 접시에 놓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태준아. 넌 이거 많이 먹어.”“감사합니다.”남태준은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지우를 쳐다봤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국을 먹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태준은 진효연이 너무 열정적인 것 같았다.설마 그를 수양아들로 삼아 지우의 오빠로 만들고 싶은 걸까?“혹시 게 뜯는 도구 있어요?”남태준이 식탁을 보며 묻자 진효연은 어리둥절했다.게를 자주 먹지 않으니 게를 먹을 때 전문적인 도구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지우는 그릇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달려가 깨끗한 작은 가위와 커피용 작은 숟가락을 꺼내 남태준에게 건넸다.“대충 이거라도 써요. 우리 집은 게를 먹을 때 그냥 입으로 뜯었어요.”지우가 부드럽게 말하자 남태준은 엷게 웃으며 도구를 받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우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계속했다.진효연은 남태준에게 해산물을 집어주고 지성에게 닭고기를 집어주며 많이 먹으라고 했다.다들 열심히
지우가 물건을 들고 지성의 방으로 가져갔다.남태준은 신발을 갈아신고 들어가서 그녀의 집안을 둘러봤다.확실히 좀 좁고 낡긴 하지만 깔끔한 편이었다.부엌 맞은 편에 바로 식탁이 있고 식탁 옆에는 거실이 있고 거실 소파도 짧아서 세 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텔레비전은 구식이고 냉장고도 작아서 거실 구석에 비치되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비좁아 보였다.“태준이 왔어?”진효연은 음식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며 활짝 웃으며 열정적으로 맞이했다.“앉아. 어서 앉아. 준비 거의 끝나가.”너무 친절하고 다정한 태준이라는 호칭에 남태준은 조금 어리둥절했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제가 뭐 도와드릴까요?”“없어. 없어. 그저 앉아서 차나 마시고 지우와 얘기나 나누면 돼. 부엌일 정도는 나 혼자로 충분하지.”남태준은 또 움찔했다.지우와 얘기를 나누라니. 조금 어리둥절했다.너무 갑작스러운 열정에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지성은 부랴부랴 남태준에게 거실 소파에 앉으라고 청한 뒤 녹차 한 잔을 우려낸 뒤 리모컨을 건넸다.“TV 볼래요?”남태준이 다급하게 거절했다.“괜찮아.”지성은 습관적으로 TV를 켜고 스포츠 채널을 누르면서 말했다.“누나는 로맨스 드라마만 좋아해요. 누나가 집에 있으면 내가 리모컨을 차지한 적이 없어요.”남태준이 따뜻하게 웃었다.“그건 직업 때문에 그런 거잖아.”“형도 누나 글 쓰는 거 알아요?”“누나가 경찰의 사랑 이야기를 쓴 적 있는데 아쉽지만 결말은 비극이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책을 출판했어요.”남태준은 방금 찻잔을 들자마자 흠칫 놀라더니 동작이 뻣뻣해져서 차마 차를 마실 수 없었다.방 안에서 지성의 옷을 챙겨주던 지우가 그의 말을 듣고 노기등등하게 뛰쳐나왔다.“야. 너 그 부질 없는 입 다물어!”남태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지우를 바라보았다. 뾰로통한 그녀의 모습이 아주 귀여웠다.하지만 지성에게는 그저 무서울 따름이었다.지성은 긴장한 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담담하게 TV를 계속
지우가 휴대전화와 가방을 들고 일어서니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래. 그럼 나 간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남태준의 옆을 지나갔다.남태준의 시선은 그녀를 따라 움직였고 그녀가 병실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벼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지우는 그와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저번에 강제로 그녀의 몸을 가지려고 해서 그녀를 놀라게 한 것 같았다.요 며칠 동안 그는 끝없는 번뇌와 후회 속에 살았다.그때 지성이 가방을 들고 남태준 앞으로 다가왔다.“형. 가요.”남태준은 정신을 차리고 그의 가방을 받아들며 말했다.“내가 들게.”지성은 크게 기뻐했고 눈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고마워요. 형.”차에 오른 남태준은 차에 시동을 걸고 천천히 출발했다.잠시 후 지우가 뒤에서 따라오자 남태준은 속도를 줄이고 백미러로 지우가 스쿠터를 타는 모습을 보며 약간 멍해졌다.지성이 그런 남태준의 상태를 눈치채고 말했다.“누나 기다릴 필요 없어요. 매일 다니는 길이라 아주 익숙해요. 조금 있다가 앞쪽 길목에 도착해서 오솔길로 빠지면 누나가 우리보다 훨씬 빨라요.”남태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덤덤하게 대답했다.“그래.”지성은 힐끔 남태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사실 우리 누나가 가끔 사납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착하고 어질어요.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사람 잘 챙길 줄 알고 성실하고 선량한 편이에요.”남태준이 입술을 오므리며 가볍게 웃었다.“알아.”“아주 가정적인 사람이에요.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을 때, 난 대학생이었고 누나 혼자 힘으로 이 집안을 지켰어요. 병원비며 빚이며 모두 누나 혼자 짊어졌어요.”남태준이 계속 응대했다.“알아. 지우 좋은 사람인 거.”지성이 궁금해서 물었다.“우리 누나 좋은 사람인 거 알면서 왜 헤어졌어요?”남태준은 조금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네 누나가 나 안 좋아해. 별로 느낌이 없대.”지성은 입을 떠벌리고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갈았다.“누나 사람 보는 눈은 개나 줘버렸나? 난 또 엄마가 두 사람
‘너 참. 한심하다!’지우는 속으로 자신을 욕하며 스쿠터를 돌려 힘없이 집 쪽으로 향했다.다음 날.지우는 더 이상 남태준을 찾으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매일 휴대전화를 보며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그가 메시지 한 통이라도 보내길 바랐다.그를 찾으러 갈 용기와 핑계가 필요했지만 메시지는 끝내 오지 않았다.지성의 퇴원을 앞두고 진효연은 집에서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그녀에게 남태준을 부르라고 했지만 지우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병원 병실.지성은 옷을 개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지우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물었다.“나 퇴원하는 거 도와주러 온 거 아니야? 왜 아무것도 안 하고 폰만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어?”지우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지성을 쏘아보며 나무랐다.“너 이제 움직일 수 있잖아? 옷 몇 벌 개인다고 안 죽어.”“누나 같은 여자를 어느 남자가 데려가겠어? 정말 불쌍하다.”워낙 기분이 안 좋았던 지우는 그 말을 듣자 더욱 괴로워 벌컥 화를 냈다.“누가 너더러 데려가래?”지성과 지우는 어릴 적부터 서로 치고받으면서 커왔고 어린이 된 지금도 자주 다퉜다.지성이 인정사정없이 말했다.“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여자가 바로 누나 같은 여자야. 지나가는 남자들 다 홀릴 것 같은 몸매를 지닌 것도 모자라 여자가 상냥하지도 않고 어질지도 않고 배려심도 없고 사납고 악독하잖아!”지우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되받아쳤다.“그래 나 몸매 좋다! 부렵냐? 너처럼 깡마른 자식은 대나무 장대 같은 아내밖에 차려지지 않아!”“너!”지성은 화가 치밀어 상처가 아팠고 어두운 얼굴로 지우를 가리켰다.지우는 멈추지 않고 계속 공격했다.“아니다. 너 같은 놈에게 어느 여자가 시집가겠어? 평생 노총각으로 늙어 죽어라!”지성은 이를 악물었다.“누나. 말이 너무 심하잖아!”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지우와 지성은 모두 조용해져서 입구 쪽을 보았다문은 열려 있었고 남태준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서 그들 남매가 다투는 것을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