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다인은 거실에서 아침을 먹으며 휴대전화를 들고 어제 미사일 발사에 실패해 J국 국경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계속 뒤적거렸다.J국과 기타 국제 뉴스에서는 J국이 수백 명의 사망자를 냈다고 보도했으며 M국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M국에 최고의 보상과 사과를 요구한다고 했다.M국 보도에 따르면 이번 미사일 발사 편향으로 인해 J국 국경에서 M국으로 판매되는 가장 큰 마약 소굴이 파괴되었으며 수십만 톤의 마약과 수백 명의 마약 밀매자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서다인은 보면 볼수록 걱정이었다.전 세계 지도자가 이번 M국 미사일 훈련 실패로 인해 파괴된 것이 마약 소굴이라는 걸 알더라도 그들은 그저 눈감아 주지 않을 것이고 서로 갈등을 유발하고 도발해 올 것이다.그때 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오셨어요?”서다인은 움찔 놀라더니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거실 현관으로 잽싸게 뛰어갔다.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여전히 잘생기고 위풍당당한 남하준을 긴장하고 불안하게 바라보았다.“준.”서다인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참지 못하고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흥건해져 가슴이 아팠다.남하준은 입꼬리가 올라가고 미간이 한껏 부드러워졌다. 그는 슬리퍼를 신고 서다인 앞으로 다가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품에 꼭 껴안았다.꽉 껴안긴 서다인은 그의 따뜻한 품에서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두 손을 천천히 들어 그의 허리를 감싸 안고는 속삭였다.“피곤해 보이는데 방에 가서 좀 쉴래요?”남하준은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가볍게 흔들었다.“배 안 고파요? 아침 먹을래요?”남하준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으며 손의 힘을 조이고 눈을 감고는 그녀의 몸이 주는 에너지를 느꼈다.“준...”서다인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남하준이 쉰 목소리로 한없이 낮고 가볍게 말했다.“나 지금 너 안고 충전하고 싶어.”서다인은 심장이 뛰었다. 마치 몇 마리의 토끼가 그녀의 마음속에서 필사적으로 뛰어다니는 것 같았다.여자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남하준이 그녀를 안고 충전하겠다는
남하준은 책갈피를 넣고 책을 덮어 탁자 위에 놓았다.서다인은 따뜻하게 웃으며 일어나려 했다.“깼어요? 배 안 고파요? 음식 데우라고 할게요.”남하준은 그녀를 자기 곁으로 끌어당겨 옆으로 끌어안고 턱을 그녀의 어깨에 눌렀다. “배 안 고파. 나랑 얘기 좀 해.”“그래요. 무슨 얘기하고 싶은데요?”남자는 가볍게 탄식했다.“형은 좀 어때?”“여전히 중환자실에 있어요.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겨우 버티고 있죠.”그는 주머니에서 반지 하나를 꺼냈다.서다인은 그의 손가락 사이에 있는 그 예쁜 반지를 보았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되고 설레어 말문이 막혔다.결혼 반년 동안 그녀에게 반지를 준 적이 없었다.“형이 자기 첫사랑한테 주라고 부탁했대.”순간 서다인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모든 기대와 설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아.”“근데 난 형이 반지를 직접 전하게 하려고.”그는 반지를 서다인의 손에 넣었다.“내일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소독해 달라고 하고 형 손가락에 끼워줘.”서다인은 그의 뜻을 알아챘다.형에게 목표가 생겨 빨리 낫기를 바라는 것이었다.서다인은 밋밋한 반지를 보며 말했다.“중환자실에서 환자한테 반지를 끼우게 할까요?”“이 반지는 형에게 아주 중요해. 사고를 당하기 전에 부모 형제도 언급하지 않고 첫사랑인 여자친구만 언급했대.”서다인은 반지를 보면서 침묵했다.남태준은 아마도 남하준과 마찬가지로 정과 의리를 중시하는 일편단심인 남자일 것이다.다만, 남태준의 일편단심에 서다인은 매우 감동했지만 남하준의 일편단심에는 아주 슬펐다.남하준이 사랑하는 여자는 백하린이었으니.서다인은 그의 품에서 나오며 물었다.“J국 국경을 폭파한 일에 대해 정통 어르신께서 뭐라고 하세요? 당신 처벌하지 않으셨어요?”남하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그녀의 긴 머리를 쓰다듬었다.“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그럼 M국이 곤란해졌겠네요?”“요즘 국제 여론 상 좀 그렇겠지만 큰 문제는 아니야.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니까.”고의가 아니
남하준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눈동자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완아, 기억을 되찾는 것도 좋지만 네 목숨이 더 소중해. 그냥 운명에 맡기자.”“가장 좋은 의사를 찾으면 되잖아요.”그녀는 살구 눈을 깜빡이며 거의 애원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남하준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단 0.001%의 위험이라도 존재한다면 그는 동의할 수 없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배 안 고파? 밥 먹으러 가자.”남하준이 화제를 돌렸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가 여자의 손을 잡고 일어섰을 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하인이 즉시 달려가 문을 열고 긴장한 표정으로 남하준에게 돌아섰다. “도련님, 정통 어르신과 비서님이 오셨어요.”두 사람은 서로 눈이 마주쳤고 남하준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먼저 가서 밥 먹어.”서다인이 고개를 끄덕였고 하인이 문을 열자 차가운 얼굴의 정통 어르신이 기세등등하게 성큼성큼 서재로 향하며 한마디 말도 없이 남하준 곁을 지나갔다.“어르신...”남하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통 어르신은 그의 곁을 홱 스쳐 지나갔고 노기가 등등했다.남하준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무거운 마음으로 식탁에 앉은 서다인은 서재를 돌아보니 비서실장이 문밖을 지키고 있었고 태도가 매우 엄숙하고 분위기가 냉엄했다.그녀는 남하준이 처벌을 받을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렸다.서재.정통 어르신은 소파에 앉더니 화를 억제하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자네가 총회에 제출한 미사일 오류 보고서를 난 한마디도 믿을 수 없네. 지금 우리 둘뿐이니 솔직히 말해보게. 대체 어떻게 된 건가?”남하준은 그의 맞은편으로 가서 천천히 앉았다. “차 드릴까요?”정통 어르신의 안색이 어둡고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화가 나서 가슴이 벌렁거렸다.“나 속일 생각 말게. 미사일 1호 기술은 이미 완전무결해. 절대 데이터 오류가 생길 리 없다고. 원래 무인 사막에 떨어졌어야 할 미사일이 어떻게 이웃 나라 마약 소굴에 떨어지냐고
“정부 지원으로 양귀비 농사를 지어 전 세계에서 거의 모든 마약이 흘러나오는 나라죠. 저희는 이웃 국가로서 마약이 가장 범람하는 피해국입니다.”“우리 국경수비대원 18명이 강제로 마약 주사를 맞았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들은 지금 매일 독과 싸우고 있습니다. 차라리 죽음보다 못한 고통이죠. 우리 M국에는 2천만 명의 중독자가 있는데 이 숫자는 여전히 매일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수도 없는 마약 검거 경찰이 참혹하게 죽었지만 여전히 마약이 우리 M국으로 반입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정통 어르신은 비통한 표정으로 앉아 이마를 짚고 흐느끼며 말했다.“미사일로 마약 소굴 하나를 없애면 뭐하나? J국에게는 그저 간지러움을 태운 정도지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남하준은 비통하게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정통 어르신의 말투가 조금 느려졌다. “자네는 절대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네. 대체 왜 그런 건가?”남하준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숨을 내쉬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네, 사심이 있었습니다.”“제 부하 정호와 아내가 얼마 전 J국에서 살해당할 뻔했는데 다행히 무사히 구출돼 참았습니다.”“하지만 이번에는 제 친형이었습니다. 형은 M국 마약 단속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고 목숨도 버릴 수 있는 영웅이었습니다.”남하준은 눈물이 반짝이며 울먹였다.“전 형이 영광스럽게 희생될지언정 6일 밤낮으로 매달려 지독한 고문에 시달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건 사람이 아니라 짐승입니다.”“형은 아직 병원에 누워 위독한 상황입니다.”남하준은 촉촉한 눈을 천천히 감고 호흡이 점점 무거워지며 낮게 울먹였다.“형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형을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었습니다.”정통 어르신의 얼굴이 굳어지며 긴장해서 물었다.“설마 태준이? 요 몇 년 동안 계속 J국에 잠입 수사했던 건가?”남하준은 목구멍이 시큰거렸고 고개를 끄덕였다.정통 어르신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주먹을 쥐고 소파에 주먹을 쥐어박았다
남하준이 그를 따라 일어났고 정통 어르신은 서재를 나오면서 말했다.“착한 사람이 칼을 들고 있는 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지만 강도가 칼을 들고 다니는 건 약탈을 일삼기 위해서네.”“남 장군, 내 살아생전에 우리 M국이 세계 무적의 국방 무기를 개발하는 걸 보고 싶네. 우리나라를 굳건히 지키고 다시는 괴롭힘 당하지 않게 말이네.”“그 희망을 자네에게 걸고 있네.”정통 어르신은 감개무량해서 말했고 남하준은 무거운 마음으로 어르신을 배웅했다.식탁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리던 서다인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남하준이 돌아오자 급하게 달려가 물었다.“어르신이 뭐라 하세요? 당신 욕해요? 처벌하겠대요?”남하준의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괜찮으니까 걱정 마.”“정말이에요?”“그럼.”서다인은 손을 뻗어 그의 볼을 만졌다. 하얗고 가느다란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잘생긴 뺨에서 더 앙증맞게 보였다.그녀의 손바닥은 부드럽고 따뜻했으며 매우 편안했다. 남하준은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덮으며 그녀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당신 안색이 안 좋아요. 요 며칠 많이 힘들었죠?”“완아, 어떤 일들은 너에게 다 말해줄 수가 없어. 그런데도 묻지 않아 줘서 고마워.”서다인은 부드럽고 가벼운 미소를 지었고 미간에는 애틋함이 가득했다. “음식 벌써 세 번이나 데웠네요. 얼른 가서 먹어요.”남하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를 끌고 식탁으로 향했다.이날 밤.남하준은 또 밤늦게까지 바빴고 새벽녘에 그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 서다인은 이미 피곤해서 잠이 들어 있었다.이튿날 아침.서다인은 평소처럼 병원 중환자 관찰실에서 남태준을 한참을 지켜본 뒤 의사에게 그의 상태를 파악한 뒤 반지를 건넸다.처음에 의사는 ICU 병동에 장신구를 가지고 가는 것을 권장하지 않았다.하지만 서다인은 이 반지가 환자의 삶의 의지를 일깨울 수 있다고 설명하니 의사도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서다인이 떠나려고 할 때,
서다인은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순간 백인호는 그녀의 팔을 잡더니 그녀를 잡아당겼다.서다인은 화를 내며 그의 손을 밀쳤다.“뭐예요? 이거 놔요!”백인호는 그녀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겨 애틋하게 바라보며 가볍게 말했다.“뭐가 그렇게 급해? 나 전 여자친구한테 할 말 있단 말이야.”서다인은 속으로 당황하여 죽을 지경이었지만 짐짓 침착한 척 눈을 가늘게 뜨고 시선을 그의 손에 옮겨 또박또박 말했다.“이 손 놓고 말씀하시죠. 내 몸에 손대지 마세요.”백인호는 손을 놓기는커녕 오히려 고개를 숙이고 다가가 가볍게 웃었다.“네 몸은 내가 얼마나 많이 만졌겠어?”서다인은 입술을 깨물고 꾹 참고 노려봤다.“우리가 얼마나 오래 만났는데 네 몸은 내가 가장 익숙하지.”만약 얼마 전 검사에서 산부인과 의사가 그녀에게 처녀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정말 그를 믿었을 것이다.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데 뻔뻔스럽기 짝이 없었다.서다인은 팔을 힘껏 잡아당겼다.“이거 놔요!”백인호는 힘껏 잡아당겨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에 껴안아 그녀를 가두었다. 머리를 숙이고 그녀의 귀에 사악하게 중얼거렸다.“난 널 꼭 가질 거야. 무슨 수를 써서든.”서다인은 놀라서 온몸이 으슬으슬 떨렸다.“계속 안 놓으면...”살려달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갑자기 우람한 모습이 덮쳐와 백인호의 팔을 세게 꺾었다.꾸드득.“악!”백인호는 아파서 울부짖으며 꺾인 팔을 재빨리 부축했다.곧 단단하고 따뜻한 가슴이 서다인의 두 손에 파고들자 익숙한 향기가 코로 스며들었다.고개를 들어 남하준의 늠름하고 준수한 얼굴을 보는 순간 마음이 안정되었다.그는 매우 바쁘지 않은가?바빠서 넷째 형을 보러 올 시간도 없었는데 왜 지금 여기에 나타난 걸까?“준.”서다인이 따뜻한 눈으로 남하준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올려다보았다.그녀는 남자의 노기가 백인호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무서웠다.백인호는 깊이 숨을
서다인은 정신을 차린 후, 난처하고 부끄러운 듯 눈을 돌려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얼굴이 화끈거리는 그녀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안 바빠요? 여긴 어떻게 왔어요?”“방금 다 마쳤어.”“아.”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중환자 관찰실로 향했다.“나랑 같이 형 보러 가자.”서다인은 그를 따라 걸어가면서 두 사람의 손에 시선이 고정되고 마음이 따뜻해지며 손바닥이 뜨거워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지금의 그녀는 남하준이 이렇게 다정하게 자신의 손을 잡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매번 그에게 사랑받는 느낌이 들었다.관찰실 밖 유리 앞에 선 남하준은 굳어진 표정으로 남하준을 바라보며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형은 좀 나아졌어?”서다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의사가 지금까지 버틴 게 기적이라고 했어요.”“기적이 일어날 거야.”“네. 그럴 거예요.”두 사람은 조용히 남태준을 오랫동안 지켜봤다.그 후 며칠 동안 남하준은 나랏일로 바쁘게 보냈다.이날 아침 서다인이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금원 안에서 정원을 거닐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지우의 긴장된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인아, 빨리. 빨리 민간 생중계 한 번 봐봐.”“생중계?”“뉴스 채널인데 민간 인터뷰야. 빨리 찾아봐.”서다인은 통화를 끊고 곧바로 검색창을 열어 지우가 지정한 최신 프로그램을 시청했다.스튜디오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세 사람을 보고 넋을 잃었다.MC가 세 사람을 인터뷰하고 있었는데 인터뷰 대상은 뜻밖에도 그녀의 가족이었다.엄밀히 말하면 서다인의 가족, 서대홍, 서지석 그리고 진화연.대개 서다인이 부잣집에 시집갔지만 부모를 모시기는커녕 친오빠를 때리고 가족과의 왕래를 끊은 배은망덕한 여자라며 욕설을 퍼붓는 내용이었다.더욱 어이없는 것은 그들이 끊임없이 그녀의 명예를 훼손하고 그녀의 과거를 폭로하고 있었다.또 전국 시청자들에게 중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학교를 그만두고 남자를 따라다니며 술집에서 세간살이를 하고, 음란한 장소에서 서비스업을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결혼 사실을 부인하고 몰래 남하준과 이혼하든지, 아니면 네 진짜 정체를 밝히든지.”서다인은 이마를 감싸고 소파 등에 기댄 채 눈가에 주룩주룩 눈물이 흘렀다.“이혼 얘기는 다시 꺼내지 않기로 하준 씨랑 약속했어.”“그럼 네 정체를 밝혀. 넌 서다인이 아니라고.”그녀는 무기력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그것도 안 돼. 아직 배후를 밝히지 못했고 진짜 내 신분도 찾지 못했으니 아직은 아니야.”“그럼 어떡해?”서다인은 심호흡을 하며 눈물을 훔쳤다.“하준 씨한테 말할 거야. 그 사람은 나 믿어 줄 거야. 이건 하준 씨만 해결할 수 있어.”“그래, 네 남편 지금 집에 있어?”“아니. 군전 그룹에 있어.”“전화해서 오라 그래. 요즘 외출은 삼가고. 분명 잠복해 있는 인간들 있을 거야.”“그래, 알겠어.”서다인은 전화를 끊고 남하준에게 연락하려는데 서지석의 전화가 걸려왔다.그녀는 심호흡하고 이를 악물고 받았다.그는 득의양양한 말투로 도발했다.“사랑하는 우리 동생. 뉴스 봤어? 죽이지?”서다인은 옷을 움켜쥐고 떨면서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서지석, 너 미쳤어?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하하, 네 명예가 실추되는 걸 원하거든. 왜. 이제 좀 무서워?”서다인은 한 번도 자기 걱정을 한 적이 없었다. 다만 남하준의 명예가 실추될까 봐 두려웠다. 이 신분의 불명예스러운 과거는 남하준을 더럽히고 그의 앞날을 망칠 것이다.“죽는 게 전혀 두렵지 않나 봐?”서다인은 이를 악물고 물었다.“뭐가 두려워?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이 내가 장군 부인 가족이라는 걸 알아. 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겨봐. 가장 큰 혐의는 남하준이 받지 않겠어?”서다인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답답함에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이 파렴치한 개자식들에 대해 그녀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서지석은 갑자기 말투가 부드러워졌다.“다인아, 만약 더 이상 스캔들을 폭로하고 싶지 않다면 차라리 용돈으로 나 입막음해도 돼. 오빠가 너 명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