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준은 천천히 다가와 침대 저편에 앉았다. 서로 등진 채 말이다.남자는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두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분위기는 너무 무거웠고, 그의 마음은 이유 없이 지쳐 있었다.서다인은 단 한 마디만 물었고 그 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남하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백하린이 왜 들어와 살고 있지?”서다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벌써 한 달 넘었어요.”“막지 않았어?”“난 막을 자격이 없어요.”남하준은 침묵했다가 또 물었다. “자격증 준비해?”“아뇨.”“여기서 사는 거 불편하지 않아?”“괜찮아요.”“백하린이 너 괴롭히진 않았어?”“네.”그들은 또다시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남하준은 계속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시도했지만 서다인은 단답형으로 대답해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고, 분위기는 점점 더 어색해졌다.“나 씻고 올게요.”서다인은 이 말을 남기고 침대를 떠나 옷장에 가서 잠옷을 가지고는 샤워를 하러 갔다.남하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자정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저녁에 집에 돌아온 이후로 눈을 붙이지 않았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와의 대화는 점점 더 서먹해졌고, 그녀는 그와 말을 섞는 것조차 꺼려하는 듯했다.반 시간 후, 서다인이 욕실에서 나왔을 때 남하준은 여전히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몸을 구부린 채로 말이다. 그의 모습은 고독하고 무거운 슬픔을 내뿜고 있었다.‘회사 일 때문에 이렇게 지쳐있는 거야?’서다인은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천천히 다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준 씨, 어제 수술 받고 왔잖아요. 누워서 쉬어야 해요.”남하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깊고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서다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의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눈빛이 매력적이고 아름답다고 느꼈다.그는 가벼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서다인은 긴장하며 말했다.
서다인은 거즈를 싸고 있는 그의 어깨만 뚫어지라 쳐다보며 눈길을 함부로 돌리지 못했고 온몸이 약간 뜨겁고 손끝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방이 너무 조용해서 그녀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남자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불처럼 뜨거운 시선으로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고 그의 가슴은 기복이 심하고 호흡은 거칠었다.그는 너무 아픈 탓인지 허리를 곧게 펴고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남하준이 앉아 있었기에 서다인은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남자의 시선이 그녀의 가슴을 향하고 있어 위치가 애매했고 서다인은 옆으로 좀 옮겼다.“거즈를 뗄 테니 아프면 말해요.”서다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안쓰러움이 묻어 있었다.“응.”남하준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고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그녀가 거즈를 조심스럽게 걷었지만 너무 팽팽하게 붙인 탓에 피부가 당겨질 정도였다.서다인은 그가 아플까 봐 두 손을 함께 쓰며 조심스럽게 아주 조금씩 천천히 젖히고 있었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굽혀 머리를 숙이고 찢으면서 거즈에 가볍게 바람을 불어넣었다.하지만 그녀는 거즈를 젖히는 이 정도의 고통이 남하준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그녀의 입김은 오히려 남자의 마음을 간지럽히고 괴롭게 만들었다.서다인의 몸에서는 은은하고 매혹적인 향기가 풍겼다. 부드럽고 까만 긴 생머리 몇 가닥이 무심코 그의 뺨과 어깨 위로 흘러내려 가볍게 스쳤다.남하준의 마음에는 거친 파도가 일었고 횃불처럼 뜨거웠다. 허벅지에 올려놓은 두 손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서다인은 겨우 거즈를 젖히고 피가 배어 있는 상처를 보았다. 이미 꿰맸지만 섬뜩한 모습에 그녀는 가슴이 아팠다.총알이 조금만 더 아래로 떨어지면 남하준의 심장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생각만 해도 두렵고 괴로웠다.그녀는 요오드를 들고 남하준의 상처를 소독하고 살균한 후 약을 바르고 새로운 거즈를 감싸주었다.남하준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서다인은 황
서다인은 놀랍고 어리둥절하고 경악했다.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그는 팔꿈치로 몸의 무게를 반쯤 받아내고 나머지는 서다인의 몸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의 빼어난 얼굴은 지척에서 떨어져 상대의 숨결이 감도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서다인은 피가 솟구치는 긴장을 처음 느꼈고 호흡이 가빠졌고 목소리가 떨렸다.“뭐... 하는 거예요?”남자의 깊은 눈동자는 흐릿하고 호흡은 뜨겁고 가슴은 단단하고 이목구비는 그렇게 가깝고도 아름다웠다.서다인은 넋을 잃었다. 좋아하는 남자에게 이렇게 다정하게 눌려서 그녀는 도덕과 감정에 대해 더 많은 문제를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그녀의 의식은 지배당했고 부끄러움과 긴장 심지어 기대까지 했다.남하준의 관능적인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였고 쉰 목소리는 끝이 없을 정도로 메마르고, 그녀의 부드러운 앵두 같은 입술을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갔다.남자의 얇은 입술이 가까워질수록 서다인은 더욱 긴장하여 두 손으로 시트를 꼭 꼬집고 눈을 감았다.마음이 심란하면서도 남하준의 매력에 저항할 수 없었다.남하준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는 걸 알고, 두 사람의 결혼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녀는 천박하게도 이 남자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짧은 결혼생활이었지만 그녀는 소중히 여겼다.만약 남하준만 개의치 않는다면, 그녀와 입맞춤하고 잠자리를 갖길 원한다면 그녀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남자의 넓은 손바닥이 그녀의 얼굴을 살짝 만지고 손끝이 그녀의 귀밑머리에 들어가 옆머리에 걸려 머리를 고정해 그녀가 피할 수 없게 했다.서다인은 긴장하여 눈꺼풀이 떨리고 입술을 다스며 기대했다.남자의 숨결이 그녀의 피부에 닿고 얇은 입술이 그녀의 입술 판을 덮는 순간까지.전광석화처럼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부드러운 온도, 단 1초의 터치로 서다인의 심장은 이미 견딜 수 없이 뛰기 시작했지만 곧이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부서졌다.“하준 오빠, 자요?”남하준이 입술을 열고 깊게 키스하려 할 때 뜻밖에도 방해
서다인은 남하준을 등지고 잠든 척 손끝으로 키스한 입술을 남몰래 만지작거렸다.마음이 허전한 것이 이미 설렘인지 슬픔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그녀는 밤새도록 생각해도 남하준이 왜 자신에게 키스했는지 이해가 안 갔다.단순 심란함일까? 아니면 욕정 발산일까?전자는 불가능하고 후자는 좀 억지였다. 남하준은 그런 남자가 아니었고 또 몸에 상처까지 입은 상태였다.남하준은 더 이상 그녀의 몸에 손대지 않고 불을 끄고 침대 반대편에 누워 조용히 잠이 들었다.서다인은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이튿날 아침.노크 소리에 눈을 뜬 서다인은 희미하게 남하준의 뒷모습을 보았다.그가 문을 열었다.백하린이 아침 먹으라고 부르자 그가 따라 나갔다.잠이 다 깨버린 서다인은 느릿느릿 일어나 시무룩해서 씻고 양치질을 했다.그녀는 여느 때처럼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고 아침을 먹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러나 그녀가 계단 입구에 내려서자마자 그녀가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몇몇 사람들이 식탁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그중에는 고모 남연희, 고모의 수양딸인 온가윤, 게다가 백하린과 그녀의 삼촌 백인호도 있었다.분위기는 화목해 보이지만 사실은 총성 없는 전쟁터였다.서다인은 총알받이가 되기 싫어 아침도 먹지 않고 대문 쪽으로 돌아섰다.그녀가 계단을 내려갈 때 남하준은 여광으로 그녀를 힐끗 보았다. 그녀가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돌아서서 문을 나서는 순간, 그의 눈빛은 어두워지더니 문 입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그릇 속의 아침 식사가 순식간에 맛이 없어졌다.이 사람들은 모두 다친 남하준을 방문한다는 핑계로 여기에 있지만 사실은 모두 각자의 목적이 있었다.별장 뒤뜰.햇볕이 따스하여 화원의 구석구석에 쏟아졌다.서다인은 정자의 돌 탁자에 나른하게 엎드려 꽃이 만발한 정원을 바라보며 맑은 공기를 맡으며 봄바람의 부드러움을 느꼈다.배가 고프지만 모든 것이 평온했다.얼마나 지났을까, 귓가에 갑자기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침은 왜 안 먹어
서다인은 남자의 진심이 드러난 말에 충격을 받았다.그의 눈물은 연기가 아니었다.대체 어떤 감정이 이 점잖은 남자를 갑자기 눈물짓게 했을까?너무 가슴 깊이 사랑하는 고통 때문일까?서다인은 당황했지만 백인호의 미세한 표정에서 흘러나오는 진실한 감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그의 심리를 추측했다.그녀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백인호가 갑자기 그녀를 자기 품으로 와락 끌어안았다.서다인은 깜짝 놀라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이거 놔요. 이게 무슨 짓이에요? 놔요!”백인호는 그녀를 꼭 껴안고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는 목이 잠긴 채 나지막이 말했다.“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나한테 왜 이래? 대체 왜? 기억을 잃기 전의 너도, 잃은 후의 너도 어쩜 나한테 이렇게 잔인해?”남자는 천성적으로 여자보다 강하고 힘이 세서 서다인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그녀가 도망칠수록 남자는 그녀를 더 꽉 껴안고 심지어 그녀를 목 졸라 죽일 만큼 세게 끌어안았다.그녀는 어깨가 짓밟혀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결국 그녀는 저항을 포기하고 허수아비처럼 서서 이를 악물고 또박또박 화를 냈다. “백 선생님, 계속 놓지 않으면 소리 지를 거예요.”“다인아, 사랑해. 정말 너무 많이 사랑해. 나에게 기회를 주면 안 될까?”서다인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고 심지어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남하준이랑 이혼해. 내가 너 꼭 행복하게 해줄게. 평생 목숨 걸고 사랑해줄게. 우리...”백인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강한 힘에 의해 심하게 당겨졌다.그는 중심을 잃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비틀거리며 땅에 주저앉았다.서다인도 이 강한 힘에 충격을 받아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하준이 어두운 얼굴로 그들 사이에 서 있었고,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마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고드름처럼 만물을 관통했다.백인호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엉덩이의 먼지를 툭툭 털며 은근히 노기를 띠었다. “난 그
이 말은 매서운 칼날이 되어 서다인의 마음을 후벼 팠다. 마치 큰 구멍이 뚫린 것처럼 묵직한 고통이 간간이 느껴졌다.그녀는 숨조차 삼킬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못난 눈물이 눈에 가득 고였지만 그녀는 한사코 참았다. 남하준 때문에 더 이상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아 이를 갈았다.남하준과 백하린의 감정으로는 포옹 같은 친밀한 행동은 말할 것도 없고 침대에서 키스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그녀가 계속 모른 척하고 신경 쓰지 않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하지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고 나니 여전히 쓰라리고 견디기 힘들었다.남하준은 부인하지 않았다.당시 투신 소란을 피우던 백하린을 의사가 안아 주라고 해서 남하준은 인도적 차원에서 그녀를 안아줬을 뿐이다.감정과 상관없는 포옹은 부도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고 아내에게 미안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그런데 백인호가 이렇게 얘기하니 성격이 변했다.남하준은 차가운 눈을 가늘게 뜨고 크게 소리쳤다.“백하린과 한 가족 아니랄까 봐 하는 짓이 어쩜 똑같네.”백인호는 흠칫 놀랐다.남하준은 그의 옷깃을 뿌리치고 돌아서서 서다인의 손목을 잡아당기고는 곧장 자리를 떠났다.서다인은 눈을 늘어뜨리고 별장으로 질질 끌려갔다. 남자의 힘이 너무 세서 손목에서 통증이 전해졌다.거실로 들어가니 백하린이 눈치도 없이 남하준에게 달려와 물었다.“하준 오빠, 방금 어디 갔었어요? 나 한참 찾았잖아요.”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두 손으로 남자의 팔을 잡으려 했지만 닿기도 전에 남자에 의해 밀쳐지고 말았다.강한 힘에 의해 밀려난 그녀는 뒤로 몇 발짝 물러서더니 바닥에 주저앉았다.모두 깜짝 놀라 부축해 주며 남하준의 무례함과 엉뚱한 화를 꾸짖었다.그러나 남하준은 땅바닥에 주저앉은 백하린은 쳐다보지도 않고 서다인을 단숨에 끌고 올라갔다.모두 남하준의 분노를 알아차렸다.걱정스러운 듯 서다인을 바라보니 야생 독수리에게 잡혀가는 병아리처럼 목숨이 위태로워 보였다.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세게 닫히고 문이 잠
서다인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꾹꾹 참았지만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고 쓰라린 심장은 이따금 찢어지는 듯 아팠다.그녀는 더 이상 이 남자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서다인은 울먹이며 소리쳤다.“남하준, 나쁜 놈. 이거 놔!”그녀는 남자에게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밀어냈다.이때 서다인은 남자의 어깨에 상처가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여자의 발버둥 침을 힘으로 제어하면서 상처가 아팠지만 그는 미간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이미 심장의 통증이 온몸을 덮은 지 오래고 분노가 그의 눈을 가렸다.남하준은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꽉 잡은 채 그녀를 두 걸음 뒤로 밀어 벽에다 그대로 눌렀다.등에 통증이 엄습해 오자 서다인은 깜짝 놀랐고 온통 눈물범벅이 되어 남자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그녀에게 있어서 남하준은 키가 크고 강건하며 호랑이처럼 맹렬했다. 그 앞에서 서다인은 작고 연약하여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그녀는 무서웠고, 화가 났고, 무력했고, 어쩔 줄 몰라 납작한 입술로 울음을 터뜨렸다.남하준은 마음속의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억누르고 냉담하고 매서운 말투로 말했다.“아직 이혼하지 않은 이상 넌 남하준의 아내야. 감히 나를 배신하면 죽을 줄 알아.”서다인은 심장이 떨렸다. 두피가 저리고 등골이 오싹해 났고 눈물이 멈췄다.남자는 말을 이었다.“욕구를 채우려고 남자가 필요하다면 내 앞에서 청순한 척 그만해.”한 글자 한 글자 적나라한 모욕이 되어 서다인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이 순간, 그녀는 참을 수 없었다. 그를 밀어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서 목소리가 떨렸다.“이 나쁜 놈. 이거 놔. 내가 아무리 남자가 고파도 절대 당신은 아니야. 나쁜...”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다인의 입술이 막혔다.그녀의 몸은 벽에 세게 눌렸다.남자의 힘은 강했고 그녀의 발버둥 치는 두 손을 잡고 머리 위 벽에 세게 눌러 고정했다.그녀는 손목이 눌려 계속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남자는 그녀의 입술을 거칠고 거침없이 탐했다. 미친 듯이 키스하는 남자의 행동에
서다인은 남자에게 안겨 힘없이 흐느꼈다.그녀는 생각할수록 괴로워 두 손으로 남하준의 가슴을 밀었다. 제대로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남자가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다.문득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어깨를 보았다.흰 셔츠에 이미 피가 배어 나왔다.이 순간 그녀의 원망과 분노는 모두 사라지고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상처에 피가 났어요.”남하준은 자신의 상처를 방치한 채 그녀의 어깨를 안은 손을 놓지 않았고 나지막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명령하듯 말했다.“앞으로 그 자식이랑 멀리해.”어리둥절한 서다인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의아한 빛을 띠고 그의 깊고 검은 눈동자를 올려다보았다.남하준은 고개를 떨구고 눈물 가득한 그녀의 눈망울과 키스로 붉어진 입술을 바라보았다.순간,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서다인은 화가 나서 반박했다.“나도 멀리하고 싶어요. 근데 그 나쁜 인간이 당신처럼 나를 껴안고 놓지 않잖아요. 힘껏 발버둥 쳤는데도 벗어나지 못한 걸 나더러 어떡하라고요?”이 말은 백인호와 남하준을 동시에 욕한 셈이다.남하준은 그녀를 살짝 풀어주고 한 걸음 물러섰다.그녀의 설명은 진위를 막론하고 무조건 믿기로 했다.남하준은 냉담한 표정으로 덤덤하게 말했다.“그럼 도와달라고 소리라도 쳐야지.”서다인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씩씩거렸다.“그 인간은 뻔뻔해서 창피한 걸 모르겠지만 난 아니거든요? 온 가족이 달려 나와 그 자식이 나 안고 있는 거 보면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가 터지겠어요?”남하준은 침묵했다.서다인은 그의 곁을 지나 장롱 속으로 가서 약을 꺼내며 불평을 늘어놓았다.“그런데 당신은 다짜고짜 내가 결혼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비난했으니 당신도 나쁜 놈이에요.”“그리고 또...”강제로 키스했다는 말이 서다인의 목구멍에 끼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가슴이 미친 듯이 뛰고 얼굴이 화끈거렸고 결국 화난 듯 중얼거렸다.“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요!”“당신은 계속 백하린을 좋아하고 인연도 못 끊으면서 나와 이혼도 안 해주고.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