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다인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꾹꾹 참았지만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고 쓰라린 심장은 이따금 찢어지는 듯 아팠다.그녀는 더 이상 이 남자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서다인은 울먹이며 소리쳤다.“남하준, 나쁜 놈. 이거 놔!”그녀는 남자에게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밀어냈다.이때 서다인은 남자의 어깨에 상처가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여자의 발버둥 침을 힘으로 제어하면서 상처가 아팠지만 그는 미간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이미 심장의 통증이 온몸을 덮은 지 오래고 분노가 그의 눈을 가렸다.남하준은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꽉 잡은 채 그녀를 두 걸음 뒤로 밀어 벽에다 그대로 눌렀다.등에 통증이 엄습해 오자 서다인은 깜짝 놀랐고 온통 눈물범벅이 되어 남자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그녀에게 있어서 남하준은 키가 크고 강건하며 호랑이처럼 맹렬했다. 그 앞에서 서다인은 작고 연약하여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그녀는 무서웠고, 화가 났고, 무력했고, 어쩔 줄 몰라 납작한 입술로 울음을 터뜨렸다.남하준은 마음속의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억누르고 냉담하고 매서운 말투로 말했다.“아직 이혼하지 않은 이상 넌 남하준의 아내야. 감히 나를 배신하면 죽을 줄 알아.”서다인은 심장이 떨렸다. 두피가 저리고 등골이 오싹해 났고 눈물이 멈췄다.남자는 말을 이었다.“욕구를 채우려고 남자가 필요하다면 내 앞에서 청순한 척 그만해.”한 글자 한 글자 적나라한 모욕이 되어 서다인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이 순간, 그녀는 참을 수 없었다. 그를 밀어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서 목소리가 떨렸다.“이 나쁜 놈. 이거 놔. 내가 아무리 남자가 고파도 절대 당신은 아니야. 나쁜...”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다인의 입술이 막혔다.그녀의 몸은 벽에 세게 눌렸다.남자의 힘은 강했고 그녀의 발버둥 치는 두 손을 잡고 머리 위 벽에 세게 눌러 고정했다.그녀는 손목이 눌려 계속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남자는 그녀의 입술을 거칠고 거침없이 탐했다. 미친 듯이 키스하는 남자의 행동에
서다인은 남자에게 안겨 힘없이 흐느꼈다.그녀는 생각할수록 괴로워 두 손으로 남하준의 가슴을 밀었다. 제대로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남자가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다.문득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어깨를 보았다.흰 셔츠에 이미 피가 배어 나왔다.이 순간 그녀의 원망과 분노는 모두 사라지고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상처에 피가 났어요.”남하준은 자신의 상처를 방치한 채 그녀의 어깨를 안은 손을 놓지 않았고 나지막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명령하듯 말했다.“앞으로 그 자식이랑 멀리해.”어리둥절한 서다인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의아한 빛을 띠고 그의 깊고 검은 눈동자를 올려다보았다.남하준은 고개를 떨구고 눈물 가득한 그녀의 눈망울과 키스로 붉어진 입술을 바라보았다.순간,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서다인은 화가 나서 반박했다.“나도 멀리하고 싶어요. 근데 그 나쁜 인간이 당신처럼 나를 껴안고 놓지 않잖아요. 힘껏 발버둥 쳤는데도 벗어나지 못한 걸 나더러 어떡하라고요?”이 말은 백인호와 남하준을 동시에 욕한 셈이다.남하준은 그녀를 살짝 풀어주고 한 걸음 물러섰다.그녀의 설명은 진위를 막론하고 무조건 믿기로 했다.남하준은 냉담한 표정으로 덤덤하게 말했다.“그럼 도와달라고 소리라도 쳐야지.”서다인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씩씩거렸다.“그 인간은 뻔뻔해서 창피한 걸 모르겠지만 난 아니거든요? 온 가족이 달려 나와 그 자식이 나 안고 있는 거 보면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가 터지겠어요?”남하준은 침묵했다.서다인은 그의 곁을 지나 장롱 속으로 가서 약을 꺼내며 불평을 늘어놓았다.“그런데 당신은 다짜고짜 내가 결혼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비난했으니 당신도 나쁜 놈이에요.”“그리고 또...”강제로 키스했다는 말이 서다인의 목구멍에 끼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가슴이 미친 듯이 뛰고 얼굴이 화끈거렸고 결국 화난 듯 중얼거렸다.“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요!”“당신은 계속 백하린을 좋아하고 인연도 못 끊으면서 나와 이혼도 안 해주고.
그녀는 온몸이 나른하고 힘이 빠져 남자의 단단한 팔꿈치에 모든 무게가 떨어졌다.남하준의 키스는 가볍고 부드러우며 천천히 들어가 그녀의 입안을 휘저었다. 그녀는 모든 이성을 잃고 머리가 텅 비었다.남자의 뜨거운 입김이 그녀를 파묻고, 부드러운 얇은 입술을 부드럽게 빨며, 마치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것처럼 그녀를 떠나지 않으려 했다.그녀의 후끈 달아오른 몸은 남자의 단단한 가슴에 안겨 있었다.얇은 옷감으로 두 사람의 열기를 막을 수 없다.“읍!”서다인의 입술에서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나고 온몸이 저리고 나른했다.키스가 진해질수록 몸의 욕망이 솟구치고 낯설고 수줍은 갈망이 불처럼 타올랐다.서다인은 키스에 홀딱 반했고, 갑자기 그녀의 뒤통수에 있던 남자의 손이 목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그녀의 목을 쓰다듬으며 어깨를 한 치 한 치 긋고 가슴까지 어루만졌다.“응?”서다인은 흠칫 놀라며 신음소리를 냈고 모든 이성을 이용해 빼내고는 눈을 부릅뜨고 확대된 남자의 우아한 얼굴을 경악해서 바라보았다.그녀는 눈을 깜박거리며 거친 숨을 쉬었다.남자의 단단하고 튼실한 몸이 여자를 휘감고 큰 손이 여자의 몸에 공격적으로 침투하려는 것 같았다.“이러지 마요.”서다인은 깜짝 놀라 정신을 잃고 있는 힘을 다해 남하준을 밀어냈다.남자는 무방비 상태로 한 발짝 뒤로 밀렸다.서다인은 몸을 끌어안고 그의 곁을 지나 문밖으로 뛰어나갔다.남하준은 숨을 헐떡이고 흐릿한 눈동자를 천천히 감으며 마음이 혼란스러웠다.그녀는 방을 뛰쳐나와 서재로 뛰어들었다.문을 닫는 순간, 그녀는 문짝에 등을 기대고 완전히 녹초가 되어 힘없이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녀는 호흡이 가빠지고, 뺨이 뜨거워지고, 한 손으로 키스로 부풀어 오른 입술을 가리고 머리가 흐리멍덩했다.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미쳤어.’그녀가 미친 걸까? 아니면 남하준이 미친 걸까?남하준은 그녀에게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걸까?방금 그의 행동, 그의 몸의 반응, 그의 거칠고 강한 키스, 그리고 부드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사라졌다.서다인은 서재에서 한밤중까지 밤을 새웠다.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그녀는 배가 고파서 온몸에 힘이 빠졌다.온 가족이 잠든 뒤 서재를 나와 1층 부엌으로 가서 음식을 찾았다.그녀는 요리 솜씨가 좋지 않아 요리하는 것이 맛이 없었다.한참을 뒤져도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계란 두 개를 꺼내서 삶을 준비를 했다.갑자기 뒤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놀라서 돌아섰다.남하준은 이미 그녀 곁으로 다가왔고, 그녀는 얼굴이 뜨거워지고 긴장해서 남자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걸음을 옮겼다.“아직 안 잤어요?”서다인은 괜히 마음이 찔렸다. 잘못한 아이가 부엌에 와서 음식을 몰래 훔쳐먹다가 들킨 기분이었다.남하준은 차갑고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가 불을 껐다.“나...”배가 고프다는 말도 내뱉지 못했다. ‘아직 물도 안 끓었는데. 그럼 난 뭘 먹지?’남하준은 손을 뻗어 계란 두 개를 집어 들고 물을 버렸다. “노른자 안 먹잖아. 흰자 두 개면 충분해?”서다인은 깜짝 놀랐고 왠지 모르게 감동했다.남하준은 그녀가 노른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알고 보니, 그는 그녀의 식습관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두 개 더 끓이면 돼요.”서다인이 나지막이 속삭였다.남하준은 계란을 깨뜨리고 바로 저었다.서다인은 멍해져서 가장자리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했다.그는 안색이 매우 어둡고, 분위기가 차갑고 말도 별로 없어 좀 무서웠다.서다인은 함부로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옆에 서서 보고만 있었다.그는 두 개의 계란을 잘 섞어서 물을 넣고 체에 밭쳐 냄비에 쪘다.그리고 냉장고에서 스테이크 한 조각과 상추를 다시 꺼냈다.서다인은 남하준이 능숙하게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너무 의외였다.배가 고파서 꾸르륵꾸르륵 소리를 내는 서다인은 침을 삼키며 남자의 안색을 살피다가 궁금해서 다가가 물었다.“당신도 배고파서 뭐 좀 먹으려고 나온 거죠?”“아니.”남하
이에 당황한 서다인이 입을 열었다.“좀 먹을래요?”남하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다인은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오므렸다.속으로 잠시 고민하다가 숨을 크게 내쉬고는 소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입안 가득 고기 향이 풍기고 맛있었다.그녀는 본격적으로 계란찜과 채소를 먹었다.남하준의 요리 솜씨가 이렇게 좋은지 이제 알게 되었다.‘이 남자는 대체 못 하는 게 뭘까?’서다인이 맛있게 먹고 있을 때, 남하준이 나지막한 말투로 갑자기 입을 열었다.“나랑 한방에서 자는 거 싫어?”서다인은 갑자기 소고기를 깨물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당황했다.이 문제를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그녀는 각방은 생각하지도 않았었다.그저 그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몰라서 종일 숨어 있었을 뿐이었다.그런데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마치 그녀에게 키스한 적도, 만진 적도 없는 듯 아무런 부끄러움이나 미안함도 보이지 않았다.남하준은 그녀의 굳은 표정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쓴 미소를 지었다.“내가 객실에 가서 잘게.”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다인이 불쑥 내뱉었다.“그러지 말아요.”그녀의 말투가 좀 급해서 남자는 멍해졌고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일말의 기대와 의심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서다인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며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말했다.“객실에 가서 잘 필요 없어요. 같이 자요.”그녀는 무서웠다.백하린이 한밤중에 그의 침대에 기어오를까 봐 걱정이었다.그녀는 이런 일이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그런 배신과 상처를 견딜 수 없었다.남하준의 칙칙한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맑아지더니 내색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서다인은 머리를 더욱 숙이고 조심스레 말했다.“남하준 씨, 오늘 밤에 나 건드리지 말아요. 네?”이 말을 한 후, 그녀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수줍음과 어색함을 참을 수 없었다.남하준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더니 눈 밑에는 암울함이
이튿날 아침, 햇살이 쨍쨍했다.병원 입구에서 서다인이 몇 분을 기다리니 지우가 헐레벌떡 뛰어왔다.“미안, 다인아. 내가 늦었지?”지우는 양손을 무릎에 엎드린 채 허리를 굽혀 숨을 몰아쉬며 사과했다.서다인은 그녀를 부축했다.“내가 일찍 도착한 거야. 괜찮아.”지우는 그녀의 부축을 받아 허리를 곧게 펴고 앞에 있는 큰 병원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너 어디 아파?”서다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지우는 숨을 돌린 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왜 나 병원으로 부른 거야?”서다인은 지우 귓가에 기대어 수치스럽게 속삭였다. “내 성병이 재발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감히 혼자 가기 무서워서 너 불렀어.”지우는 약간 멍해져서 서다인을 바라보았다.서다인은 어색한 듯 고개를 숙이고 설명했다.“사실 나 결혼한 지 몇 달 됐는데 남편이 내 과거를 알고 있어서 아직 내 몸에 손도 안 댔어. 어제... 남편이...”지우는 경악해서 물었다.“너 결혼했어?”서다인이 고개를 끄덕였다.“남편이 네 몸에 손도 안 대다가 어제 너를 만져서 부과 검사받으러 왔다고?”서다인은 제 발 저린 도둑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지우는 안색이 가라앉더니 서다인을 잠시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서다인의 코를 힘껏 문질렀다.서다인은 눈을 부릅뜨고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는 거야?”지우는 스스럼없이 그녀의 코를 비비더니 말했다.“코에 보형물이 없네. 진짜네.”이어 서다인의 턱을 잡더니 이를 내려다보았다.“이빨도 전부 진짜 이빨이네.”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두 손으로 서다인의 가슴을 밀었다.서다인은 놀라서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두 손으로 가슴을 끌어안고 부끄러워하며 말했다.“왜 그래?”지우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가슴이 크진 않지만 자연산이야.”서다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았다.지우는 눈빛을 반짝이며 진심으로 사과했다.“미안해. 사실 너 처음 봤을 때 네가 서다인이
같은 여자인데도 어색했다.의사가 돌아서서 보니 서다인은 쭈뼛쭈뼛 서 있었다.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전 병력을 보니 이런 검사를 수도 없이 하셨을 텐데 왜 그렇게 부끄러워해요?”서다인은 어색한 듯 입술을 오므리고 바지를 천천히 벗으며 의사의 말에 따라 침대에 누운 후 두 발을 양쪽으로 벌리고 걸었다.그녀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고 눈을 감고 머리를 한쪽으로 돌리며 긴장하고 부끄러워했다.의사는 확장기를 들고 서다인의 발 사이로 와서 습관적으로 먼저 검사를 했다.의사는 어리둥절해 하며 재빨리 확장기를 내려놓고 눈살을 찌푸리며 서다인을 바라보았다.“전에는 어쩌다 병에 걸린 거죠? 혈액 감염인가요?”서다인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의사의 굳어진 안색을 보며 그녀의 병이 재발할까 봐 매우 긴장했다.“몰라요. 기억을 잃었거든요. 병이 재발했나요?”의사는 어이없어 웃으며 말했다.“바지 입으세요. 검사할 필요 없어요.”서다인은 의아해하며 얼른 침대에서 내려와 바지를 입으며 물었다.“선생님, 뭐 안 좋은 거라도 있나요? 왜 검사를 안 하죠?”의사는 장갑을 벗고 걸어 나오면서 말했다. “환자분은 아직 처녀예요. 검사하면 처녀막을 상하게 할 수 있어요. 성 경험이 없으니 부과검사도 필요 없어요. 나가서 혈액 검사 결과 기다리세요.”서다인은 바보같이 방안에 서서 충격에 휩싸였다.지우는 그녀가 서다인이 아니라고 말했다.의사는 그녀가 아직 처녀라고 말했다.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반나절 만에 모든 검사 결과가 나왔다.주치의는 서다인의 모든 검사 결과를 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환자분, 뭐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서다인은 의사 옆에 단정히 앉아서 열 손가락을 불안하게 비비며 긴장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우는 서다인의 어깨를 만지며 의사를 바라보았다.“선생님!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검사 결과 어떤가요?”“서다인 씨 처녀막은 온전하고 성생활을 한 적이 없으며 심각한 부과 병도 없어요.”“검사 결과를 보면 매우 정상
지우는 질문이 막혔다.서다인은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가슴에 무한한 힘을 불어넣듯 엄숙하게 말했다. “난 서다인이 아니야. 그러니까 지금 친정도 내 친부모가 아니고 남씨 성을 가진 사람들도 내 시댁 식구가 아니야.”“다인아, 너...’지우는 지금 눈앞의 여자가 자신을 괴롭히던 열등감과 나약함에서 벗어나 자신감 넘치고, 과감하고 강인한 여자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기억을 잃고 신분을 잃은 여자.서다인은 지우의 손을 잡고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우야, 비밀 지켜줄 수 있지?”지우는 그녀의 카리스마에 놀라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응.”“내가 기억을 잃은 후로 보이지 않는 힘이 줄곧 나를 통제하고 있었어. 반드시 배후에 있는 음모를 밝혀야 해. 그러니 절대 발각돼서는 안 돼.”지우가 물었다.“혹시 서씨 가문 사람들이 아닐까?”서다인은 몇 초 동안 침묵했다.“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지금으로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지우가 또 물었다.“그럼 시댁 식구들은?”서다인은 덤덤하게 웃었다.“그럼 그 사람들이 얻는 게 뭔데?”지우도 그녀의 생각에 동의했다.서다인은 생각하더니 걱정이 앞섰다.“처음 DNA 검사를 했을 때는 경찰이 있었고, 두 번째는 군전 그룹 사람들이 모든 과정을 감독했어. 그런데 두 번이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건 이 검은 세력을 결코 얕보면 안 돼.”지우는 서다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부드럽게 웃었다.“네가 서다인이든 아니든 난 네 친구야.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내가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까.”“고마워.”저녁에 서다인은 지우에게 밥을 사주고 집에 돌아왔다.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 8시였다.그녀는 으리으리한 별장 하우스에 들어섰다.내부 조명은 밝고 수정등은 럭셔리하고 눈부셨다.등불 아래 소파에 세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첫눈에 들어온 사람은 남하준이었다.그는 평소의 신중한 자세에서 벗어나 나른하고 자유분방한 자세로 한 손을 소파 등에 얹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진은 무엇일까?여자 사진?남서연은 기분이 가라앉아 말했다.“나 먼저 돌아갈게요.”그러자 백건이 그녀에게 다가갔다.“나랑 같이 집에 가서 어른들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자.”“안돼요.”남서연은 긴장감에 못 이겨 안절부절했다.“일단 아직은 안돼요. 내가 먼저 가서 가족들 생각을 알아보고 다시 결정해요.”“어떤 상황이든, 어떤 결과든, 나 혼자 감당할 거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서두르지 말고 우리 천천히 얘기해요. 내가 우리 가족들 설득하고 오빠는 오빠 가족들 설득해요. 네?”백건은 여전히 변수가 있을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행동해 남서연을 놀라게 해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그래. 네 말대로 해.”남서연은 그가 덮은 앨범을 가리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덤덤하게 물었다.“누구 사진이에요?”백건은 고개를 돌려 협탁을 보더니 마음이 찔려 말했다.“내 사진이야.”그건 백건이 전에 몰래 찍었던 남서연의 사진이었다.결혼 후에만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가 한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계획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어머니의 강력한 방해를 무릅쓰고 그는 강력한 권한을 동원하여 인사팀을 통해 남서연의 면접을 합격시키고 그녀를 ND에 무사히 입사하게 했다.또 직권을 이용하여 남서연을 데리고 해외 출장을 갔다. 그 목적은 바로 남서연을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만든 다음 그 기회를 빌려 잠자리를 갖고 그녀를 임신시키는 것이었다.두 차례의 성관계에도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그녀를 임신시키기 위함이었다.그는 감히 남서연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남서연이 그를 비열하다고, 수단이 더럽다고, 파렴치하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결혼하고 나서 다시 그녀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천천히 용서를 빌어야 했다.남서연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백건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발이 미끄러질까 봐 보호했다. 남서연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호하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서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초롱초롱한 큰 눈으로 물끄러미 백건을 바라보며 머리가 하얘졌다.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백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큰 유혹이었다.그녀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백건은 갑자기 몸을 기울여 왼쪽 무릎을 그녀 앞에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놀란 그녀는 소파에 붙으며 경악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뜨거운 눈빛으로 부드럽게 말했는데 매우 절실해 보였다.“서연아, 나와 결혼해줘. 응?”‘지금 아이를 위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한 거야?’남서연은 아주 기뻤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괴롭고 불안했다.“두 집안 어른들 모두 찬성하지 않을 거예요.”“너만 원한다면 그런 것들은 전부 내가 알아서 해.”남서연은 차마 배 속의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가족 모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현실 생활에서 많은 부부가 선을 보고 결혼하니 먼저 결혼하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결혼 후에 그녀가 잘 보인다면 백건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남서연은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감격에 겨워 붉어진 눈시울이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어지러운 숨결로 소파에 앉더니 남서연을 덥석 품에 끌어안았다.남자의 동작은 절박했고 강렬한 포옹에 그녀는 몸이 아팠다.남서연은 그의 등 뒤에 두 손을 널어놓고 턱을 그의 어깨에 괴고는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귓가에 남자의 무거운 호흡과 함께 약간 울먹이는 쉰 목소리가 들렸다.“고마워. 서연아. 정말 고마워. 반드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될게.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최선을 다해서 네게 가장 행복한 미래를 줄게.”남서연은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다.다만,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대해야 할까?아이 때문에 결혼하게 되면 백건은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까?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슬픈 듯 중얼거렸다.“나 임신했어요.”백건은 심장이 움찔했고 온몸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거의 뛰기라도 하듯 벌떡 일어났다. 가슴의 흥분을 터뜨리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서연이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고? 나 아빠가 되는 거야? 서연이 아이의 아빠? 이거 지금 꿈 아니지?’그는 갑작스러운 행복을 애써 눌렀다.남서연은 그의 반응에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니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를 등지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이 남자가 대체 어떤 마음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그녀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그녀처럼 망연자실할까?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남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책임지라고 찾아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다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에 오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만약 수술하게 되면 나와 함께 가줘요.”백건은 무거운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순식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그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얼굴빛은 굳어졌고 말투는 엄숙했다.“뭐? 수술한다고?”남서연은 주눅이 들어 쳐다보며 말했다.“네. 혼전 임신은 안 돼요.”가족들이 만약 그녀가 혼전임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백건을 때려죽일 것이다.숨이 가빠진 백건은 두 손을 꼭 잡았고 엄숙한 말투에 약간의 온기를 더해 부드럽게 달랬다.“서연아, 아이는 포기할 수 없어. 내게 책임질 기회를 줄 수 없어? 나 좋은 아빠가 될게.”남서연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백건을 바라보며 멍해졌다.그녀의 생각과 달랐다.그녀는 백건이 그녀보다 더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이의 존재가 그를 위험하게 만들 테니까.백건은 긴장된 듯 입술을 오므리고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그리고 너만 괜찮다면 나... 좋은 남편이 될 수도 있어.”남자는 주먹을 문지르며 가늘게 떨릴 정도로 긴장했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남서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의 시주를 기
남서연은 복잡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저예요.”백건은 숨이 거칠고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말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다.그는 남서연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몰라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시간 있어요?”남서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물었다.백건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있어.”“잠깐 만나서 얘기할래요?”“좋아.”백건이 곧바로 대답하더니 또 물었다.“어디서 볼래? 데리러 갈게.”남서연이 생각해보니 밖에는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오빠 집으로 갈게요. 반 시간이면 도착해요.”“좋아.”남서연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쓰고 공중화장실을 나섰다.한편, 공항 가는 차에 타고 있던 백건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령했다.“차 돌려서 집으로 가.”“대표님, 비행기 시간 이미 다 됐어요.”백건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행사 취소하고 바로 집으로 가.”하현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전화를 들으니 아마 남서연일 것이다.백건에게 새 시즌 발표회는 취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고 없어도 되는 일이다.그러나 남서연을 만날 어떤 기회도 그는 놓칠 수 없었다.하현우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30분 후.남서연은 산 중턱 별장에 와서 막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하현우가 이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했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남서연은 살짝 놀랐다가 하현우인 걸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화원의 앞마당을 지나 웅장한 큰 집으로 들어갔다.문은 열려 있고 백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어 우아하고 멋스러우며 준수한 매력을 자랑했다.남자는 그윽한 눈동자로 남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다시 만난 남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마음속에 토끼 한 마리가 숨
백건은 당황해서 화를 내며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하현우는 침을 삼키고 목숨을 걸고 이렇게 말했다. “만약 한 여자가 대표님과 관계를 맺은 후 연락을 끊었다면 아마도 대표님의 돈과 권력 때문에 감히 저항하지 못했을 거예요. 진짜 대표님께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백건은 화를 참으며 또박또박 말했다.“아니, 돈과 권력이 부족한 여자가 아니야.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아.”하현우는 경악하더니 속으로 크게 흥분했다.‘뭐야? 대표님 설마 서연 아가씨와 잔 거야? 대단하네!’‘목숨을 걸고 남씨 가문의 권위에 도전하다니. 목숨을 바칠 정도로 위대한 사랑이라니.’하현우는 은근히 충고했다.“대표님, 어떤 여자들은 성격이 순하고 마음씨가 착해서 아무리 권위 있는 집에서 자라도 담은 작아요. 어려서부터 너무 잘 보호 받으며 자라서 나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려고 해도 거절할 줄도, 반항할 줄도 모르죠. 그래서 도망을 치죠.”백건은 쓴웃음을 지으며 심장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거절하지 않으면 마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가 일방적으로 남서연에게 상처를 준 걸까?개인적인 사리사욕을 위해 일방적인 행위를 가한 그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아닌가?백건은 눈을 감았고 가슴이 아파서 숨을 쉴 수 없었다. 속으로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남서연은 늘 낙천적인 성격이었다.그녀는 두 번의 잠자리로 인해 계속 괴로워하지 않았다.백건은 어쨌든 그녀가 짝사랑하는 남자였으니 아무리 쓰레기일지라도, 이미 일어난 이상 좋은 추억으로 여기기로 했다.그녀의 짝사랑도 욕망을 만족시킨 셈이었다.만약 백건이 그녀와 사귀고 싶지 않으면서 계속 그녀와 관계를 맺고 싶다면 그것은 절대 불가능했다.여다혜가 말한 대로 그녀는 더 이상 타락해서는 안 되었다.남자는 여자와 달리 사랑이 없어도 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그녀는 백건의 전화를 받지 않고 그의 메시지에도 답장하지 않기 시작했다.그 후 백건은 포기하고 그녀를 찾지 않았다.두 사람은 원래도 접촉이 많지 않았으니 남서연은 일
“남서연 씨는요?”직원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대표님, 서연 씨는 방금 가방을 챙겨 나갔습니다.”백건은 군말 없이 급히 몸을 돌려 성큼성큼 엘리베이터 앞으로 달려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남서연의 번호를 눌렀다.벨이 몇 번 울리더니 끊겼다.그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남서연이 다시 끊었다.세 번 연속 시도한 후 결국 포기했다.백건이 1층 로비까지 쫓아갔지만 이미 남서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는 풀이 죽어 위층으로 몸을 돌렸다.종일 그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날이 저물자 창밖의 네온사인이 유리창에 비쳐 창 앞의 남자를 비추고 있었다.그는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창문을 마주하고 하늘가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눈 밑은 번화한 경치였지만 그의 마음속은 황폐했다.그는 남서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그때 노크소리가 들렸고 하현우가 들어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이미 10시예요. 퇴근 안 하세요?”백건은 침묵했다.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그의 뒷모습은 쓸쓸해 보였고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뒤덮어 섬뜩하여 그는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하현우는 손목을 들어 시간을 보았다. 이미 몰래 저녁을 먹었지만 집에는 사랑하는 아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아무리 야근 수당이 있어도 또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그는 내키지 않았다.하현우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대표님, 혹시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세요? 제가 도와드려요?”백건은 말없이 돌아서서 성큼성큼 떠나갔다.하현우는 급히 옆으로 피했고 등이 뻣뻣해져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백건이 지나가고 나서야 그는 쪼뼛쭈뼛 따라갔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백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굴은 얼음처럼 차갑고 깊고 어두운 눈으로 창밖 거리의 야경을 바라보았다.차를 몰던 하현우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추측했다.“대표님, 혹시 서연 아가씨와 연락이 안 되세요?”고개를 돌려 하현우를 보는 백건의 눈빛은 차갑고 굳어 있었다.하현우는 놀라서 침을 꿀꺽 삼키더니 등
[좀 바빠요.][우리 만나서 얘기하자. 응?][서연아, 처음에 너도 거절하지 않았잖아? 왜 이제와서 이래? 이거 무슨 뜻이야?][기다릴 테니 내려와. 아니면 내가 올라간다?]남서연은 백건이 보낸 몇 개의 메시지를 보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마음이 더욱 불안해져 여다혜를 돌아보았다.여다혜는 연애경험이 비교적 풍부해서 거의 감정 전문가인 셈이었다.남서연은 의자를 옮겨 여다혜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다혜야,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여다혜는 책상 위에 엎드려 졸면서 중얼거렸다.“말해.”“내 친구가 있는데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남자를 계속 짝사랑했어. 근데 그 남자는 계속 그 친구에게 차가웠고 만날 때마다 일부러 숨었어. 마치 싫어하는 것처럼.”“나중에 내 친구가 커서 그 남자가 먼저 접근했고 아무 이유 없이 두 번이나 잤어. 그 남자는 대체 무슨 뜻일까?”여다혜는 번쩍 튕겨 일어나 앉더니 깜짝 놀라며 입을 가리고 남서연을 끔벅끔벅 바라보았다.“왜 그래?”남서연이 묻자 여다혜는 비통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서연아, 너 나쁜 남자 만났구나.”“내가 아니라 내 친구라고.”“그래그래. 네 친구.”여다혜는 서둘러 말을 바꾸고 슬픈 듯 입을 납작하게 하고는 눈에는 동정이 가득했다.“네 친구 나쁜 남자 만난 거야. 정말 너무해. 대체 어느 개자식이야?”남서연은 긴장감에 침을 삼키고 숨을 몰아쉬었다.“무슨 말이야?”여다혜는 그녀의 말을 바탕으로 분석했다.“네 친구는 커서 예쁜 여자가 된 게 틀림없어. 그래서 그 남자가 혹한 거지. 어렸을 때부터 네 친구를 좋아하지 않았어도 자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 남자는 하반신으로 고민하는 수컷이니까.”남서연은 얼굴이 희끗희끗해지며 축 처져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여다혜는 남서연의 차디찬 손을 맞잡고 위로했다.“서연아, 네 친구는 감정에 무지하고 세상 물정에 어둡고 순진해서 남자한테 속았을 거야.”“그런... 사람 아니야.”남서연은 무기력하게 해명했다.“그
끝난 후, 너무 수줍은 남서연은 백건이 어찌할 수 없는 틈을 타 재빨리 자신의 옷을 챙겨 입고 거의 도망가듯 뛰쳐나갔다.“서연아...”백건은 옷을 챙겨 입지 못해 따라잡을 수 없었다.그녀는 사무실을 뛰쳐나가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숨을 헐떡였다.그녀가 디자인 부서로 돌아왔을 때 여다혜는 급히 걸어가서 책상을 두 손으로 받치고 그녀의 붉어진 얼굴과 약간 불그스름한 입술을 보았다.“서연아, 왜 그래?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너 점심 먹었어?”남서연은 마음이 켕겨 감히 여다혜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먹었어. 혼자 먹었어.”“식당에서 너 못 봤는데? 그리고 평소에는 30분이면 다 먹더니 오늘은 왜 한 시간이나 걸렸어?”“나... 구내식당이 아니라 밖에서... 멀리 가서 먹었어.”여다혜는 불쾌해하며 그녀의 손을 두드렸다.“왜 좋은 곳에 나는 안 데리고 갔어?”남서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귓가에 있는 머리를 뒤로 넘겼다.“다음에. 다음에 꼭 데리고 갈게.”여다혜가 깜짝 놀라 외쳤다.“너 움직이지 마.”남서연은 경악에 찬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여다혜는 그녀의 긴 머리를 쓸어올리고 귓불 뒤 목덜미에 닿는 위치를 보며 의아해하며 물었다.“너 목에 왜 빨간 자국이 있어? 마크 같아.”“무슨 마크?”“키스 마크!”크게 당황한 남서연은 황급히 긴 머리를 풀어 목을 가리고는 화난 척 말했다.“함부로 말하지 마. 그냥... 긁은 거야. 모기한테 물려서 난 자국이야.”모기에 물린 것인지, 키스 마크인지 여다혜는 경험자로서 한눈에 알 수 있었다.더군다나 남서연은 지금 볼이 붉어지고 눈 밑에는 수줍음이 가득했다.여다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서연아, 너 정말 우리 오빠 안 좋아해?”“안 좋아해. 자꾸 엮지 마.”남서연이 나지막이 말하자 여다혜는 어깨를 으쓱하고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럼 돌아가서 희망이 없다고 오빠에게 말할게. 네 생각하지 말고 빨리 다른 여자 만나라고.”남서연은 담담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