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준의 표정은 침착하고 평온했다.서다인은 고모의 말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녀가 신경 쓰는 사람은 언제나 남하준이었다.“고모님, 저는 제가 화가 지완이라고 한 적 없어요. 그 명성을 이용해 이득을 취한 적도 없는데 무슨 근거로 저를 고소한다는 거죠?”남연희는 코웃음을 치더니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어머, 아직도 몰라? 맏동서가 수천만 원을 들여 그 더러운 그림을 고쳐서 10억 원에 팔았어!”서다인은 천천히 주먹을 쥐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정말 생각지도 못했다!그녀는 일부러 그림을 다 망가뜨렸는데 유가영이 사람을 찾아 회복했을 줄이야.심지어 10억 원의 높은 가격에 팔렸다.서다인은 그동안 갑자기 튀어나온 지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지완이 얼굴만 공개했을뿐만 아니라 이제는 유명세에 기대어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상품을 팔고 있었다.심지어 돈을 벌 수 있는 각종 활동에 참여하면서도 유독 그림 그리는 라이브만 중단하고 자선활동도 하지 않았다.서다인은 자신이 지완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여자가 지완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그럼 고소장 기다리고 있을게요.”말을 마친 서다인은 허윤미를 바라보았다.“어머님, 저 먼저 방으로 갈게요.”돌아설 때 서다인의 시선이 남하준의 옆모습을 스쳐 지나갔다.남자는 여전히 담담하고 아무런 내색도 없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않았다.그녀의 마음은 침울하고 매우 서글펐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지금 남하준이 그녀에 대한 태도는 항상 애매모호하고 변덕스러웠다.오늘날, 그들 사이도 점점 더 얼어붙고 있었다.그녀는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시종일관 두 사람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서다인이 위층으로 올라가서 방문을 열고 보니 안에서 두 명의 하인이 남하준의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갑자기 멍해졌다.가슴이 돌로 막혀서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프다는 느낌보다는 왠지 가슴이 답답했다.그녀는 손발이 차가워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었다.결혼한
그녀의 고맙다는 말이 남하준의 귀에 극도로 거슬렸다.그의 강렬한 카리스마는 주위 공기를 얼려버릴 기세였다.두 눈이 마주치자 두 사람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하준 오빠.”백하린의 목소리가 객실에서 들려오더니 남하준에게 다가가 팔짱을 꼈다. “내가 방을 꾸며 놨어요. 가서 마음에 드는지 한 번 봐요.”남하준은 냉랭한 얼굴로 백하린의 손을 천천히 밀치고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객실로 들어섰다.백하린은 두 발짝 걸어가더니 서다인을 흘끗 돌아보며 의기양양하고 도발적인 냉소를 흘렸다.이긴 자의 우쭐함이었다.서다인은 결코 가만있지 않았다.“하준 씨가 너랑 자러 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우쭐거려?”이 말이 나오자 백하린은 완전히 어리둥절했다. 서다인이 그녀의 표정을 이렇게 직설적으로 읽을 줄은 몰랐다.남하준도 듣고 고개를 돌려 백하린을 노려보았다.백하린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부드러운 말투로 설명했다.“오빠, 아니에요. 다인 언니가 오해 했어요.”남하준은 눈 밑에 혐오스러운 눈빛을 번뜩이며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고 백하린이 따라 들어가려 하자 갑자기 문을 쾅 닫아버렸다.백하린이 문전박대를 당한 셈이었다.서다인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안방으로 돌아가 문을 닫았다.그녀는 처음으로 방이 텅 비고 마음도 텅 빈 것을 느꼈다.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그날 밤,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남하준을 생각했고 또 자신의 정체와 미래를 생각했다.예전의 그녀는 아무런 방향도 없이 열등감과 막막함을 안고 살았다.하지만 이제 그녀의 목표는 분명했다. 반드시 진실을 찾을 것이다.이튿날.서다인은 평소처럼 일어나서 씻고 간단히 차려입고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방문을 나섰다.아래층 식당, 2m의 직사각형 탁자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이미 이사 간 셋째 내외가 돌아오고 남연희까지 합세하여 더욱 시끌벅적했다.남연희의 음흉한 웃음을 보며 서다인은 오늘이 예사롭지 않은 날이라고 느꼈다.서다인은 계단을 내려와 식탁에 올라 시부모님께만 인사
그들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서다인은 접시를 밀치고 남연희에게 강경하게 물었다. “고모님, 저에게 불만이 있으면 그냥 말씀하세요. 이런 수준 떨어지는 수작 피우지 마시고.”남연희가 감히 이렇게 당당하게 서다인을 괴롭힌 것은 남하준이 어젯밤 그녀의 방에서 객실로 옮겨 잠을 잤기 때문이다.남연희는 남하준도 그녀를 극도로 싫어한다고 확신했다.그녀는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을 가리키며 원을 그렸다.“나만 너한테 불만이 있는 게 아니야.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널 싫어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 네 주제를 몰라?”남창민이 소리 높여 말했다.“연희야! 그만!”“오빠는 참견하지 말아요. 제가 우리 가문을 위해 대청소하는 거잖아요. 이런 여자가 우리 집에 머무는 건 명예를 훼손시키는 일이라고요.”“제가 이미 화가 협회 교수들과 전문 감정사랑 언론사에 다 연락했어요. 물론 다인이를 고소한 변호인단도.”누군가는 경악하고 누군가는 흥분한 가운데 남하준의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식기를 움켜쥔 손등에는 핏줄이 솟아올랐다.남연희는 남하준의 살벌한 냉기에 신경 쓰지 않고 말할수록 우쭐했다.“물론 지완 화가 본인도 제가 초대했어요.”“오늘 완전히 패가망신시키고 우리 가문에서 쫓아낼 거예요.”“얼마나 비열하고 수단이 대단한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해요.”“앞으로 무슨 낯짝으로...”남연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깜짝 놀라 남하준을 바라보았다.그는 새까만 얼굴에 화가 치밀어 벌떡 일어났고 의자는 그의 다리 뒤편에 그대로 부딪혀 쓰러졌다.그의 차가운 눈빛은 마치 용암 거수처럼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사람들을 두렵게 했다.남하준은 남연희에게 소리 질렀다.“밥 먹고 할 일이 그렇게 없어요? 내 아내랑 같이 살기 싫으면 나가시든가. 아무도 안 막으니까.”모두 그가 서다인과 완전히 사이가 틀어져 안방에서 나와 잔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입에서 ‘내 아내’라는 세 글자가 나올 줄은 몰랐다.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이 분노에 겁을
서다인은 알 수 없는 감동에 순간 눈시울을 적셨다.아무리 들어도 이 말은 그녀가 사랑 받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그러나 어젯밤 남하준은 확실히 안방에서 나갔고 그녀에 대한 태도도 냉담하여 그녀를 혼란스럽게 했다.이 남자는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사람 마음을 휘젓고 있었다.서다인은 천천히 자신의 손을 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나 아무 데도 안 가요. 여기 있을래요.”남하준은 남연희의 얼굴을 가리키며 시선은 서다인에게 고정되었다.“막돼먹은 여자랑 같이 살면 너도 똑같은 인간이 되든지 아니면 잡아 먹힌다고.”남연희는 화가 나서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일어났다.“뭐라고? 누가 막돼먹은 여자라는 거야?”남하준의 눈에는 서다인만 보였다. 남연희의 성난 질문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을 무시했다.서다인은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남자의 근심 어린 눈망울을 자신 있게 바라보며 말했다.“걱정 말아요. 제가 더 한 수 위니까.”남하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서다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그때 집사 이수정이 뛰어 들어와서 말했다.“어르신, 밖에 기자들이 몰려왔습니다. 변호사들도 있고...”이수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최서윤은 서다인이 수모당하는 것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나서 벌떡 일어섰다. “아저씨, 들여보내세요.”남연희도 흥분해서 말했다.“모두 사랑채 로비로 모시세요. 지완님께서 오시면 우리 바로 갈게요.”이수종은 즉시 나가서 손님을 맞이했다.남하준은 살벌한 눈초리를 가늘게 뜨고 남연희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고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내가 나서는 걸 꼭 봐야겠어?”남연희는 놀라서 얼굴빛이 순간 창백해지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당황하여 남창민을 바라보며 애교를 부렸다. “오빠, 하준이 좀 봐요. 저런 여자를 위해 자기 친고모를 상대하려고 해요. 이 양심도 없는 녀석은 이미 눈에 마가 끼었어요.”남창민은 코웃음을 쳤다.“허! 네가 다인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 그래도 하준이 아내인데 이렇게 많은 외부인을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지체 없이 식탁을 떠나서 따라갔다....사랑채 홀은 남씨 가문이 큰 잔치를 벌이던 곳이었다.여기는 휑뎅그렁하고 넓고 밝았다.현장에는 언론 기자, 변호사팀, 화가 협회의 대가와 감정사, 심지어 권위 있는 전문가 등 많은 사람이 도착해 있었다.지완과 그녀의 조수가 마지막으로 도착했다.이 라인업을 본 지완도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녀는 남씨 저택의 사적인 초대라고 생각했지만 현장이 기자회견장과 비슷한 줄은 몰랐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발길을 돌렸다.지완과 그녀의 조수가 막 두 발짝 걸었을 때 서다인과 마주쳤다.서다인은 지완이 얼굴을 공개하는 동영상을 봤기에 그녀를 알아보고 황급히 불러 세웠다.“지완 씨, 어디 가세요?”지완은 멈칫하더니 불쾌한 듯 서다인을 쳐다보았다.지완의 이름을 들은 기자들이 급히 달려가 이들을 에워싸고 플래시를 눌렀다.서다인은 그녀 앞에 서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제가 바로 당신을 사칭한 사람 서다인이에요. 그쪽 작품을 모사하여 제 큰 형님께서 10억 원의 고가에 팔았어요.”지완은 앞에 있는 귀엽게 생긴 여자를 훑어보며 괜히 마음이 찔려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었어?”서다인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바로 저예요.”지완은 침을 꿀꺽 삼키며 부드럽게 말했다.“됐어요, 따지지 않겠어요. 자선단체에 기부할 테니 사기 친 돈 전부 돌려줘요. 그럼 기소하지 않을게요.”서다인은 빙긋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소도 안 하고 대충 넘어가려고?하지만 그녀는 오늘처럼 좋은 자증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이때 몇몇 권위 있는 전문가 교수가 다가와 지완에게 일일이 자신의 신분을 소개하며 아부하기 시작했다.지완도 권위 있는 어른들께 정중하게 악수를 청했다.한바탕 인사치레를 한 후, 모두의 시선이 서다인에게 쏠렸다.남씨 가문 사람들도 왔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아 옆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남연희는 지완에게 달려가 활짝 웃으며 악수했다.“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지완 씨를 초대한
남하준은 서다인의 맑고 촉촉한 눈매를 바라보며 그녀의 눈빛이 달라졌음을 느꼈다.주눅과 열등감이 조금 줄어들고 자신감과 강인함이 조금 더 많아졌다.서다인이 해결할 수 있든 없든 간에 그는 그녀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가 될 것이다.“그래.”남하준은 부드럽게 대답하고는 류청에게 눈짓했다.류청은 이를 깨닫고 병사들을 데리고 문밖으로 물러나 지키고 있었다.이때 지완은 이미 기가 죽어 기자들에게 돌아서서 말했다.“여러분 오늘 수고하셨어요. 서다인 씨가 제 작품을 모사하고 명의를 사칭해 그림을 10억 원에 판 것에 대해 더 이상 따지지 않기로 했어요.”남연희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지완의 팔을 잡아당기고 중얼거렸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건 약속이랑 다르잖아요?”지완은 목소리를 낮추었다.“아직도 모르겠어요? 남 장군님은 아내 편에 서고 있어요. 저는 밉보일 수 없다고요.”남연희가 가슴을 펴고 말했다.“이렇게 많은 기자가 있는데 하준이가 직권남용 할까 봐 두려워요? 안심해요. 절대 그런 애 아니니까.”이때 한 기자가 물었다.“지완 씨가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는 했으나 모사 그림을 지완 씨 명의로 판 것도 일종 사기니 경찰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요?’남연희는 흥분하여 덧붙였다.“물론 경찰에 신고해야죠. 다른 사람에게 10억 원을 사기 쳤으니 이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죠.”모두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맞아요, 경찰에 신고해야죠.”“어떻게 이렇게 쉽게 넘어갈 수 있어요? 명의를 사칭했을 뿐만 아니라 그 구매자는 10억 원을 사기당한 거잖아요.”“이건 사기죠.”일부 기자들이 몰래 라이브 방송을 켰다.지완의 팬들이 라이브 방송으로 몰려들면서 인수가 폭등하기 시작했고 댓글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게 달렸다.기자는 몰래 라이브를 켜고는 감히 시청자들과 교류하지 못했다. 군전 그룹의 병사들에게 장비를 빼앗기고 여기서 쫓겨날까 봐 걱정되었다. 자칫하면 거물의 노여움을 살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서다인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지완에게 다가갔다.“저
벨이 몇 번 울렸다.한 여자가 Z국 언어로 말했다.“여보세요.”서다인은 심호흡하고 내심 긴장하여 죽을 지경이었지만 여전히 침착한 척하며 Z국 언어로 물었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세요?”원장은 잠시 멍해지며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혹시... 지완 씨?”“원장님, 제 목소리 기억하고 계셨군요.”서다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며칠 전, 그녀는 지완의 이전 계정에 등록된 보육원 원장의 번호를 알아냈다.그녀가 지완이라면 원장님을 만난 적이 없어도 자주 통화했어야 마땅하다.서다인은 오늘 도박을 한 것이다.원장의 말에 그녀는 자신이 지완 본인이라고 확신했다.“당연히 기억하죠. 어머, 정말 지완 씨네요. 3년 동안 잘 지냈어요? 대체 어디 있어요? 갑자기 사라져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요.”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이 Z국 언어를 알아듣고 이 전화 내용에 놀랐다.하지만 계속 의심을 놓지 않고 들었다.지완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불안한 표정으로 조수를 쳐다보았지만, 그도 낙담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랐다.“원장님, 저 잘 있어요.”서다인은 간단히 안부 인사를 전하고 물었다.“원장님, 제가 보육원 명의로 개설한 공식 계정이 왜 로그인이 안 되죠?”“저는 비밀번호를 모르니 제가 등록한 건 아니에요. 그리고 지완 씨 계정은 이미 해킹당했어요. 그 사람은 절대 지완 씨가 아니에요. 목소리도 다르고 더군다나 지완 씨 명의로 여기저기 돈을 사취하고 다니니 정말 어이가 없어요. 지완 씨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증거가 없네요.”“원장님, 감사합니다.”서다인은 원장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통화를 끊은 뒤 기자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여전히 Z국 언어로 말했다.“여기 계신 분들도 Z국 언어를 대부분 알아들으시죠? 이 번호는 보육원 홈페이지에도 있으니 진위를 확인해보셔도 좋아요.”도둑 제 발 저린 지완이 오히려 화를 냈다.“당신 남편이 군전 그룹 수장이야. 권력이 하늘을 찌르는 데 사람 한 명 거짓말 시키는 것 정도는 일도 아
서다인은 지완의 손길을 기다리지 않고 이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그녀는 기억은 없지만 예전 작품을 그리려 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종이를 만지고 재빠르게 붓을 놀려 그림을 그렸다.기자의 카메라는 서다인의 손동작을 찍기 시작했다.라이브 방송에서 댓글이 우수수 쏟아졌다.[비교할 필요도 없이 이 사람이 바로 진짜 지완이에요. 이 하얗고 기다란 손을 내가 몇 년이나 봤다고. 틀림없어요.][맞아요. 나도 이 손 알아요.][빼박 지완 맞음.][지완 님, 3년 만에 또 걸작을 그리실 건가요?][지완 님을 지지합니다! 지완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니 또 자선단체에서 눈시울을 붉히겠네요.]댓글을 본 기자도 덩달아 감동하여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서다인을 바라보며 존경과 경외로 가득 찼다.그들도 마음속으로 서다인이 진짜 지완이라는 것을 확신했고, 자선 화가의 그림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찍을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 생각했다.백하린은 보다 못해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바보 멍청이들!”지완은 몇 대의 생방송 기계가 그녀를 겨누고 있자 핑계를 찾지 못했다. 지금 인터넷에는 그녀를 짝퉁이라고 계속 욕하고 있었다.진퇴양난에 빠진 지완은 그녀가 수도 없이 모사한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감정 전문가들이 두 사람의 그림을 지켜보았다.지완의 반쯤 완성한 작품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가로젓고 얼굴빛을 굳히더니 결국 서다인의 곁에 모두 둘러쌌다.서다인의 작품을 본 그들은 얼굴에 경이로움이 번졌다.기자는 라이브 시청자들을 향해 말했다.“여러분, 이 두 그림을 보고 어느 사람이 진짜 지완인지 아셨나요?”[뻔하죠. 가짜는 지완의 이전 작품을 모사하고 있잖아요. 너무 모방을 많이 해서 형태만 배웠을 뿐 영혼을 잃었네.][난 쟤가 가짜인 줄 진작 알았어. 얼굴 공개하더니 라이브 그림도 안 그리고 자선활동도 안 하잖아.][두 그림 모두 예쁘지만 작고 귀여운 여자의 그림이 더 기세 있고 살아 숨 쉬는 것 같고 붓이 감칠맛이 나네요.][귀여운 여자분이 지완이에요!][
남태준은 당연히 진효연의 뜻을 알았다.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진효연은 자기 자식을 너무 사랑했고 딸은 결국 시집갈 것이고 평생 그녀와 함께할 수 없으므로 아들에게 더욱 마음이 기울 것이다.가난한 사람 중에는 가식적인 사람이 많았다.하지만 본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진효연이 남태준은 마음에 들었다. 무슨 생각이든 마음에 숨겨두지 않고 바로 표현할 줄 알았으니.남태준이 여유롭게 말했다.“아주머니, 지성이가 공무원이 되려면 반드시 공무원 시험을 쳐야 해요. 통과해야만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어요.”진효연은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공무원 시험이 어디 쉽나.”“만약 공무원이 되기 싫으면 안성에 가도 돼요. 제가 가족들한테 회사에 맞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할게요.”진효연은 싱글벙글 웃으며 남태준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고마워 태준아. 내가 정말 많이 고마워.”지성도 기뻐했다.“고마워요 형.”지우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밥 먹을 기분이 없어 수저를 놓았다.그녀는 아직 남태준의 여자친구가 아닌데 그녀의 가족은 흡혈귀처럼 그에게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관계가 더 가까워지면 앞으로 어떤 무리한 요구를 제기할지 모른다.지우는 지성을 가리키며 경고했다.“너 못 가.”진효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지우를 쳐다보며 불쾌하게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지성도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내가 왜 못 가? 누나도 내가 나가서 돈 벌기를 바라잖아.”지우는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면접 보고 들어가는 건 되는데 낙하산은 절대 안 돼.”“왜?”지우는 제대로 된 신분으로 자존감을 갖고 남태준과 만나고 싶었다. 그의 도움을 받으며 난처한 위치에 처 하고 싶지 않았다.“그냥.”“내가 언제 누나더러 도와 달래? 난 태준이 형에게 부탁했어. 게다가 형도 흔쾌히 수락했고.”“너 바보니? 일자리도 혼자 못 찾아?”“내가 졸업한 대학교가 평범하잖아. 취업이 어려운 요즘 세상에 대기업 들어가는 일이 어디 쉬운 줄 알아?”“그래도 넌...
네모난 식탁에는 여섯 가지 요리에 국 하나, 그리고 디저트와 과일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새우, 게, 생선, 닭, 쇠고기, 야채, 수입산 인삼 비둘기 찜이 있었다.이러한 음식은 그다지 비싸지 않지만 남태준은 명절이나 중요한 날이 아니면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한 상 가득한 음식을 보던 남태준이 시선을 돌려 지성의 어두운 얼굴을 보니 이 맛있는 음식들이 지성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지성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엄마, 의사가 상처 완전히 아물기 전에는 담백하고 잘 소화되는 음식을 많이 먹고 기름진 음식은 피하라고 했어요. 아직 이런 음식은 벅차요.”진효연은 야채를 집어 지성의 그릇에 놓았다.“넌 야채 많이 먹어. 이건 충분히 담백해.”지성은 게를 보며 침을 흘렸다. 평소 해산물을 거의 먹지 않는 그의 집에서 하필 그가 다쳤을 때 해산물을 준비하다니.밥을 먹기도 전에 화가 잔뜩 불렀다.진효연은 집게로 가장 큰 게를 집어 남태준 앞에 놓인 작은 접시에 놓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태준아. 넌 이거 많이 먹어.”“감사합니다.”남태준은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지우를 쳐다봤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국을 먹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태준은 진효연이 너무 열정적인 것 같았다.설마 그를 수양아들로 삼아 지우의 오빠로 만들고 싶은 걸까?“혹시 게 뜯는 도구 있어요?”남태준이 식탁을 보며 묻자 진효연은 어리둥절했다.게를 자주 먹지 않으니 게를 먹을 때 전문적인 도구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지우는 그릇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달려가 깨끗한 작은 가위와 커피용 작은 숟가락을 꺼내 남태준에게 건넸다.“대충 이거라도 써요. 우리 집은 게를 먹을 때 그냥 입으로 뜯었어요.”지우가 부드럽게 말하자 남태준은 엷게 웃으며 도구를 받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우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계속했다.진효연은 남태준에게 해산물을 집어주고 지성에게 닭고기를 집어주며 많이 먹으라고 했다.다들 열심히
지우가 물건을 들고 지성의 방으로 가져갔다.남태준은 신발을 갈아신고 들어가서 그녀의 집안을 둘러봤다.확실히 좀 좁고 낡긴 하지만 깔끔한 편이었다.부엌 맞은 편에 바로 식탁이 있고 식탁 옆에는 거실이 있고 거실 소파도 짧아서 세 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텔레비전은 구식이고 냉장고도 작아서 거실 구석에 비치되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비좁아 보였다.“태준이 왔어?”진효연은 음식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며 활짝 웃으며 열정적으로 맞이했다.“앉아. 어서 앉아. 준비 거의 끝나가.”너무 친절하고 다정한 태준이라는 호칭에 남태준은 조금 어리둥절했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제가 뭐 도와드릴까요?”“없어. 없어. 그저 앉아서 차나 마시고 지우와 얘기나 나누면 돼. 부엌일 정도는 나 혼자로 충분하지.”남태준은 또 움찔했다.지우와 얘기를 나누라니. 조금 어리둥절했다.너무 갑작스러운 열정에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지성은 부랴부랴 남태준에게 거실 소파에 앉으라고 청한 뒤 녹차 한 잔을 우려낸 뒤 리모컨을 건넸다.“TV 볼래요?”남태준이 다급하게 거절했다.“괜찮아.”지성은 습관적으로 TV를 켜고 스포츠 채널을 누르면서 말했다.“누나는 로맨스 드라마만 좋아해요. 누나가 집에 있으면 내가 리모컨을 차지한 적이 없어요.”남태준이 따뜻하게 웃었다.“그건 직업 때문에 그런 거잖아.”“형도 누나 글 쓰는 거 알아요?”“누나가 경찰의 사랑 이야기를 쓴 적 있는데 아쉽지만 결말은 비극이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책을 출판했어요.”남태준은 방금 찻잔을 들자마자 흠칫 놀라더니 동작이 뻣뻣해져서 차마 차를 마실 수 없었다.방 안에서 지성의 옷을 챙겨주던 지우가 그의 말을 듣고 노기등등하게 뛰쳐나왔다.“야. 너 그 부질 없는 입 다물어!”남태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지우를 바라보았다. 뾰로통한 그녀의 모습이 아주 귀여웠다.하지만 지성에게는 그저 무서울 따름이었다.지성은 긴장한 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담담하게 TV를 계속
지우가 휴대전화와 가방을 들고 일어서니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래. 그럼 나 간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남태준의 옆을 지나갔다.남태준의 시선은 그녀를 따라 움직였고 그녀가 병실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벼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지우는 그와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저번에 강제로 그녀의 몸을 가지려고 해서 그녀를 놀라게 한 것 같았다.요 며칠 동안 그는 끝없는 번뇌와 후회 속에 살았다.그때 지성이 가방을 들고 남태준 앞으로 다가왔다.“형. 가요.”남태준은 정신을 차리고 그의 가방을 받아들며 말했다.“내가 들게.”지성은 크게 기뻐했고 눈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고마워요. 형.”차에 오른 남태준은 차에 시동을 걸고 천천히 출발했다.잠시 후 지우가 뒤에서 따라오자 남태준은 속도를 줄이고 백미러로 지우가 스쿠터를 타는 모습을 보며 약간 멍해졌다.지성이 그런 남태준의 상태를 눈치채고 말했다.“누나 기다릴 필요 없어요. 매일 다니는 길이라 아주 익숙해요. 조금 있다가 앞쪽 길목에 도착해서 오솔길로 빠지면 누나가 우리보다 훨씬 빨라요.”남태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덤덤하게 대답했다.“그래.”지성은 힐끔 남태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사실 우리 누나가 가끔 사납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착하고 어질어요.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사람 잘 챙길 줄 알고 성실하고 선량한 편이에요.”남태준이 입술을 오므리며 가볍게 웃었다.“알아.”“아주 가정적인 사람이에요.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을 때, 난 대학생이었고 누나 혼자 힘으로 이 집안을 지켰어요. 병원비며 빚이며 모두 누나 혼자 짊어졌어요.”남태준이 계속 응대했다.“알아. 지우 좋은 사람인 거.”지성이 궁금해서 물었다.“우리 누나 좋은 사람인 거 알면서 왜 헤어졌어요?”남태준은 조금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네 누나가 나 안 좋아해. 별로 느낌이 없대.”지성은 입을 떠벌리고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갈았다.“누나 사람 보는 눈은 개나 줘버렸나? 난 또 엄마가 두 사람
‘너 참. 한심하다!’지우는 속으로 자신을 욕하며 스쿠터를 돌려 힘없이 집 쪽으로 향했다.다음 날.지우는 더 이상 남태준을 찾으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매일 휴대전화를 보며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그가 메시지 한 통이라도 보내길 바랐다.그를 찾으러 갈 용기와 핑계가 필요했지만 메시지는 끝내 오지 않았다.지성의 퇴원을 앞두고 진효연은 집에서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그녀에게 남태준을 부르라고 했지만 지우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병원 병실.지성은 옷을 개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지우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물었다.“나 퇴원하는 거 도와주러 온 거 아니야? 왜 아무것도 안 하고 폰만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어?”지우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지성을 쏘아보며 나무랐다.“너 이제 움직일 수 있잖아? 옷 몇 벌 개인다고 안 죽어.”“누나 같은 여자를 어느 남자가 데려가겠어? 정말 불쌍하다.”워낙 기분이 안 좋았던 지우는 그 말을 듣자 더욱 괴로워 벌컥 화를 냈다.“누가 너더러 데려가래?”지성과 지우는 어릴 적부터 서로 치고받으면서 커왔고 어린이 된 지금도 자주 다퉜다.지성이 인정사정없이 말했다.“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여자가 바로 누나 같은 여자야. 지나가는 남자들 다 홀릴 것 같은 몸매를 지닌 것도 모자라 여자가 상냥하지도 않고 어질지도 않고 배려심도 없고 사납고 악독하잖아!”지우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되받아쳤다.“그래 나 몸매 좋다! 부렵냐? 너처럼 깡마른 자식은 대나무 장대 같은 아내밖에 차려지지 않아!”“너!”지성은 화가 치밀어 상처가 아팠고 어두운 얼굴로 지우를 가리켰다.지우는 멈추지 않고 계속 공격했다.“아니다. 너 같은 놈에게 어느 여자가 시집가겠어? 평생 노총각으로 늙어 죽어라!”지성은 이를 악물었다.“누나. 말이 너무 심하잖아!”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지우와 지성은 모두 조용해져서 입구 쪽을 보았다문은 열려 있었고 남태준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서 그들 남매가 다투는 것을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지우는 당장 남태준을 찾아가고 싶었다.그러나 어젯밤 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 그의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녀를 상대할 의향이 있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어젯밤 자신이 남태준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보았다. 그는 아직도 답장하지 않았다.어제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매몰차게 말했는데 지금 다시 메시지를 보내 다시 만나자고 하면 너무 성의 없어 보이지는 않을까?이렇게 하면 그녀가 남태준을 대하는 감정이 제멋대로이고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처럼 오만하게 보이지 않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고민하다 보니 생각이 많고 마음이 착잡했다.전화도 문자도 모두 성의 없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그녀는 스쿠터를 타고 경찰서로 향했다.이 시간에 남태준은 이미 퇴근했을 것이다.저녁노을이 지우에게 쏟아지고 그녀는 저녁 바람을 맞으며 길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더없이 좋았다.가락을 찾지 못하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스쿠터가 무성한 오동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봄바람이 불어와 공기마저 향긋했다.지우는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30분 후. 경찰서 입구에 도착한 지우는 브레이크를 밟고 전원을 끄고 대문 안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안에서 계속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데 유독 남태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지우는 한참을 기다렸다가 차를 잠그고 가방을 들고는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좀 긴장되었다.들어가서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전부 업무를 보고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들이었다.그때 경찰복을 입은 남자가 지나가면서 물었다.“어떻게 오셨죠?”지우는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긴장하며 물었다. “실례지만 마약 단속팀 남 대장님 계시나요?”남자는 사무실을 돌아보며 대답했다.“안 계세요.”“그럼 어디로 가셨죠?”지우가 또 묻자 경찰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주시했다.“누구시죠? 무슨 일로 남 대장님을 찾으시죠?”지우는 상대방의 경계심과 엄숙함이 느껴졌고 뭔가 사납고 엄한 압박감을 주는
“난...”진효연은 당황하고 긴장하여 침을 꿀꺽 삼켰다.“이게 전부 너를 위해서야.”지우는 눈물을 닦고 울며 말했다.“전 세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거의 매일 사람이 죽어요. 병으로 죽거나 사고로 죽거나 살해당하거나.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거 아니에요?”“내가 만약 운전기사와 결혼하면 남편이 운전하다가 차에 치여 죽지 않는다는 보장 있어요?”“내가 작은 가게 사장에게 시집가면 그 사람이 술을 많이 마셔 죽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어요?”“만약 농부에게 시집가면 가난해서 죽겠네요?”“뉴스 보면 가문이 몰살되는 참사가 얼마나 많아요?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고 마약 형사만 해당하는 거 아니라고요.”“제발 엄마의 그 비참한 운명을 나에게도 돌리지 말라고요!”지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파에 엎드려 목놓아 울었다.진효연은 어찌할 줄 몰라 멍하니 있으며 감히 움직이지도 못했고 마음도 어지러워졌다.한바탕 눈물을 흘린 지우는 일어나서 눈물을 닦고 코를 훌쩍였다.“엄마 첫사랑인 그 약혼자가 뜻밖에 세상을 떠나 결혼하지 못한 건 엄마 평생의 한이겠죠. 이제 나도 똑같아요. 다른 점은 내 첫사랑은 죽지 않았다는 거죠. 하지만 우리 감정은 엄마 때문에 이미 억눌려 죽었어요.”진효연은 얼굴이 창백하여 넋을 잃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말을 마친 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고 거실은 적막했다.진효연은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넋을 잃은 채로 소파에 멍하니 있었고 초점을 잃은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그날 밤, 지우도 잠을 설쳤고 진효연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이튿날 아침.하룻밤이 지나자 지우는 어제저녁 자신이 한 말이 너무 심해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쨌거나 진효연은 지우를 사랑하고 걱정하기 때문이었다.지우는 미안한 마음으로 진효연의 방문을 두드렸다.“엄마. 일어났어요?”방안에 인기척이 없자 지우는 또 몇 번 두드리며 마음이 조급해졌다. 진효연은 늘 정서적으로 불안했고 늘 삶에 대
지우가 난동을 부릴수록 남자는 더욱 괴로웠다.남자의 키스는 그녀의 입술에서 천천히 떨어져 나가며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부드럽게 닿았다.지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울다가 눈을 감은 채 몸을 떨며 울먹였다.“태준 씨. 이러지 말아요.”“사랑해 지우야.”그녀의 귓불에 키스하고 있는 남자의 목소리는 빠져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지우는 그의 손길이 스쳐 지나고 그가 키스한 피부에 마치 전류가 흘러 사지를 관통하고 온몸이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그녀는 두렵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갈망하고 있었다.어느새 몸부림을 포기하고 남자를 받아들이고 있었다.누군가를 사랑하기 전, 그녀는 절대 혼전 순결을 지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하지만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이성보다 신체의 갈망이 훨씬 컸다.지우는 온몸에 힘을 빼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상한 촉감에 입에서 수줍은 신음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꾹 참았다.그녀가 남태준이 주는 정욕의 설렘을 즐기고 있을 때 남자가 갑자기 멈추었다.그는 지우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숨을 몰아쉬더니 그녀의 옷 밑에서 천천히 손을 빼내어 그녀의 흐트러진 옷을 정리해주었다.“미안해.”남태준은 욕망을 고통스럽게 억누르고 죄책감 가득한 채 속삭였다.“미안해. 미안해.”그는 하마터면 통제력을 잃을 뻔했다.이성이 돌아온 지금, 남태준은 자신의 뺨을 몇 대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른 거야?’“난 정말 개자식이야. 미안해.”남태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고 그는 숨을 헐떡이며 그녀의 몸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지우는 가슴이 출렁이고 호흡이 어지럽고 눈을 깜박이며 천장을 바라보며 마음을 추스르고 욕망을 추슬렀다.좋아하는 남자가 키스하면서 쓰다듬어주면 몸에서 이렇게 격렬한 반응이 일어날 줄이야.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녀는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 같아 강렬한 욕망까지 생겼다.아주
그래서 이 일은 남태준에게 매우 중요할 것이다.그의 사명이고 명예이고 책임이고 그의 전부일 것이다.지우는 남태준을 사랑하고 그의 일과 삶도 존중했다.남태준은 그녀의 팔을 잡고 힘껏 끌어당겼다.“내가 그 비실비실한 이혼남보다도 못하다는 거야?”지우는 중심을 잃고 그의 품에 안겨 방황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팔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그녀는 서럽게 눈물을 흘렸고 턱은 떨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를 바라봤다.남태준은 그녀 눈 밑의 눈물을 바라보며 자신도 눈시울을 붉혔고 그의 슬픈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만약 가능하다면 내가 다리도 못 쓰고 앞도 못 보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네가 돈 때문에 나를 보살피기는 했지만 나 그때 정말 기쁘고 행복했어.”그때를 생각하면 지우 눈 밑의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그녀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당시의 남태준은 너무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다.그가 언제나 지금처럼 건강하기를 바랐다.“그때 너는 내가 눈이 안 보인다고 멋대로 행동했어.”남태준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 밑에는 눈물이 흐르지만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네가 나를 도와 샤워하고 밥 먹여주고 우리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했었지. 넌 청개구리처럼 내가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 했어.”“네가 아무리 완자 친구라지만 내 말 한마디면 엄마는 널 해고할 수 있었어. 하지만 난 널 떠나보내는 게 너무 아쉬웠어. 진흙탕이 된 내 마음을 넌 작은 작대기로 계속 저어주어 더 이상 평온하지 않고 매일 파도가 일렁였어.”“그러던 어느 날, 네가 갑자기 떠났어.”남태준은 눈물이 흘러넘쳐 흐느껴 울었다.“난 또다시 그 암흑 같은 삶으로 돌아갔어. 햇볕도 없고 활기도 없는 그 어두운 세계로.”“지우야. 네가 돈을 원한다면 난 만족시켜 줄 수 있어. 네가 사랑을 원한다면 난 온 마음을 다해 널 사랑할 거야. 네가 안정감을 원한다면 나 일선에서 떠나 사무직으로 물러날 수 있어.”남태준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애틋했고 점점 더 간절해졌다.“제발 나 떠나지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