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지체 없이 식탁을 떠나서 따라갔다....사랑채 홀은 남씨 가문이 큰 잔치를 벌이던 곳이었다.여기는 휑뎅그렁하고 넓고 밝았다.현장에는 언론 기자, 변호사팀, 화가 협회의 대가와 감정사, 심지어 권위 있는 전문가 등 많은 사람이 도착해 있었다.지완과 그녀의 조수가 마지막으로 도착했다.이 라인업을 본 지완도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녀는 남씨 저택의 사적인 초대라고 생각했지만 현장이 기자회견장과 비슷한 줄은 몰랐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발길을 돌렸다.지완과 그녀의 조수가 막 두 발짝 걸었을 때 서다인과 마주쳤다.서다인은 지완이 얼굴을 공개하는 동영상을 봤기에 그녀를 알아보고 황급히 불러 세웠다.“지완 씨, 어디 가세요?”지완은 멈칫하더니 불쾌한 듯 서다인을 쳐다보았다.지완의 이름을 들은 기자들이 급히 달려가 이들을 에워싸고 플래시를 눌렀다.서다인은 그녀 앞에 서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제가 바로 당신을 사칭한 사람 서다인이에요. 그쪽 작품을 모사하여 제 큰 형님께서 10억 원의 고가에 팔았어요.”지완은 앞에 있는 귀엽게 생긴 여자를 훑어보며 괜히 마음이 찔려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었어?”서다인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바로 저예요.”지완은 침을 꿀꺽 삼키며 부드럽게 말했다.“됐어요, 따지지 않겠어요. 자선단체에 기부할 테니 사기 친 돈 전부 돌려줘요. 그럼 기소하지 않을게요.”서다인은 빙긋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소도 안 하고 대충 넘어가려고?하지만 그녀는 오늘처럼 좋은 자증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이때 몇몇 권위 있는 전문가 교수가 다가와 지완에게 일일이 자신의 신분을 소개하며 아부하기 시작했다.지완도 권위 있는 어른들께 정중하게 악수를 청했다.한바탕 인사치레를 한 후, 모두의 시선이 서다인에게 쏠렸다.남씨 가문 사람들도 왔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아 옆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남연희는 지완에게 달려가 활짝 웃으며 악수했다.“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지완 씨를 초대한
남하준은 서다인의 맑고 촉촉한 눈매를 바라보며 그녀의 눈빛이 달라졌음을 느꼈다.주눅과 열등감이 조금 줄어들고 자신감과 강인함이 조금 더 많아졌다.서다인이 해결할 수 있든 없든 간에 그는 그녀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가 될 것이다.“그래.”남하준은 부드럽게 대답하고는 류청에게 눈짓했다.류청은 이를 깨닫고 병사들을 데리고 문밖으로 물러나 지키고 있었다.이때 지완은 이미 기가 죽어 기자들에게 돌아서서 말했다.“여러분 오늘 수고하셨어요. 서다인 씨가 제 작품을 모사하고 명의를 사칭해 그림을 10억 원에 판 것에 대해 더 이상 따지지 않기로 했어요.”남연희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지완의 팔을 잡아당기고 중얼거렸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건 약속이랑 다르잖아요?”지완은 목소리를 낮추었다.“아직도 모르겠어요? 남 장군님은 아내 편에 서고 있어요. 저는 밉보일 수 없다고요.”남연희가 가슴을 펴고 말했다.“이렇게 많은 기자가 있는데 하준이가 직권남용 할까 봐 두려워요? 안심해요. 절대 그런 애 아니니까.”이때 한 기자가 물었다.“지완 씨가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는 했으나 모사 그림을 지완 씨 명의로 판 것도 일종 사기니 경찰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요?’남연희는 흥분하여 덧붙였다.“물론 경찰에 신고해야죠. 다른 사람에게 10억 원을 사기 쳤으니 이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죠.”모두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맞아요, 경찰에 신고해야죠.”“어떻게 이렇게 쉽게 넘어갈 수 있어요? 명의를 사칭했을 뿐만 아니라 그 구매자는 10억 원을 사기당한 거잖아요.”“이건 사기죠.”일부 기자들이 몰래 라이브 방송을 켰다.지완의 팬들이 라이브 방송으로 몰려들면서 인수가 폭등하기 시작했고 댓글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게 달렸다.기자는 몰래 라이브를 켜고는 감히 시청자들과 교류하지 못했다. 군전 그룹의 병사들에게 장비를 빼앗기고 여기서 쫓겨날까 봐 걱정되었다. 자칫하면 거물의 노여움을 살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서다인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지완에게 다가갔다.“저
벨이 몇 번 울렸다.한 여자가 Z국 언어로 말했다.“여보세요.”서다인은 심호흡하고 내심 긴장하여 죽을 지경이었지만 여전히 침착한 척하며 Z국 언어로 물었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세요?”원장은 잠시 멍해지며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혹시... 지완 씨?”“원장님, 제 목소리 기억하고 계셨군요.”서다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며칠 전, 그녀는 지완의 이전 계정에 등록된 보육원 원장의 번호를 알아냈다.그녀가 지완이라면 원장님을 만난 적이 없어도 자주 통화했어야 마땅하다.서다인은 오늘 도박을 한 것이다.원장의 말에 그녀는 자신이 지완 본인이라고 확신했다.“당연히 기억하죠. 어머, 정말 지완 씨네요. 3년 동안 잘 지냈어요? 대체 어디 있어요? 갑자기 사라져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요.”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이 Z국 언어를 알아듣고 이 전화 내용에 놀랐다.하지만 계속 의심을 놓지 않고 들었다.지완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불안한 표정으로 조수를 쳐다보았지만, 그도 낙담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랐다.“원장님, 저 잘 있어요.”서다인은 간단히 안부 인사를 전하고 물었다.“원장님, 제가 보육원 명의로 개설한 공식 계정이 왜 로그인이 안 되죠?”“저는 비밀번호를 모르니 제가 등록한 건 아니에요. 그리고 지완 씨 계정은 이미 해킹당했어요. 그 사람은 절대 지완 씨가 아니에요. 목소리도 다르고 더군다나 지완 씨 명의로 여기저기 돈을 사취하고 다니니 정말 어이가 없어요. 지완 씨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증거가 없네요.”“원장님, 감사합니다.”서다인은 원장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통화를 끊은 뒤 기자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여전히 Z국 언어로 말했다.“여기 계신 분들도 Z국 언어를 대부분 알아들으시죠? 이 번호는 보육원 홈페이지에도 있으니 진위를 확인해보셔도 좋아요.”도둑 제 발 저린 지완이 오히려 화를 냈다.“당신 남편이 군전 그룹 수장이야. 권력이 하늘을 찌르는 데 사람 한 명 거짓말 시키는 것 정도는 일도 아
서다인은 지완의 손길을 기다리지 않고 이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그녀는 기억은 없지만 예전 작품을 그리려 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종이를 만지고 재빠르게 붓을 놀려 그림을 그렸다.기자의 카메라는 서다인의 손동작을 찍기 시작했다.라이브 방송에서 댓글이 우수수 쏟아졌다.[비교할 필요도 없이 이 사람이 바로 진짜 지완이에요. 이 하얗고 기다란 손을 내가 몇 년이나 봤다고. 틀림없어요.][맞아요. 나도 이 손 알아요.][빼박 지완 맞음.][지완 님, 3년 만에 또 걸작을 그리실 건가요?][지완 님을 지지합니다! 지완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니 또 자선단체에서 눈시울을 붉히겠네요.]댓글을 본 기자도 덩달아 감동하여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서다인을 바라보며 존경과 경외로 가득 찼다.그들도 마음속으로 서다인이 진짜 지완이라는 것을 확신했고, 자선 화가의 그림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찍을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 생각했다.백하린은 보다 못해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바보 멍청이들!”지완은 몇 대의 생방송 기계가 그녀를 겨누고 있자 핑계를 찾지 못했다. 지금 인터넷에는 그녀를 짝퉁이라고 계속 욕하고 있었다.진퇴양난에 빠진 지완은 그녀가 수도 없이 모사한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감정 전문가들이 두 사람의 그림을 지켜보았다.지완의 반쯤 완성한 작품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가로젓고 얼굴빛을 굳히더니 결국 서다인의 곁에 모두 둘러쌌다.서다인의 작품을 본 그들은 얼굴에 경이로움이 번졌다.기자는 라이브 시청자들을 향해 말했다.“여러분, 이 두 그림을 보고 어느 사람이 진짜 지완인지 아셨나요?”[뻔하죠. 가짜는 지완의 이전 작품을 모사하고 있잖아요. 너무 모방을 많이 해서 형태만 배웠을 뿐 영혼을 잃었네.][난 쟤가 가짜인 줄 진작 알았어. 얼굴 공개하더니 라이브 그림도 안 그리고 자선활동도 안 하잖아.][두 그림 모두 예쁘지만 작고 귀여운 여자의 그림이 더 기세 있고 살아 숨 쉬는 것 같고 붓이 감칠맛이 나네요.][귀여운 여자분이 지완이에요!][
물론 문으로 빠져나가면 군전 그룹의 사람들에 의해 통제된다.변호사는 황급히 앞으로 나섰다.“당신들을 비방죄로 고소할 수 있어요.”전문가가 코웃음을 쳤다.“당신 앞가림이나 하세요. 뭐 비방? 진짜와 가짜도 구분하지 못하는 주제. 저 사람은 이미 범죄를 저질렀어요.”짝퉁은 혼란에 빠졌고 급히 사람들을 밀어내고 뛰쳐나갔다.모두 짝퉁이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문으로 달려오자마자 병사들에게 통제당했다.“뭐 하는 거예요? 이거 놔요. 안 그럼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그녀는 끊임없이 발버둥 치며 고함 질렀다.류청은 차갑게 웃더니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바로 경찰서로 보내 드릴 테니.”곧이어 짝퉁과 그녀의 조수는 무장차에 실려 경찰서로 향했다.지금 사랑채에는 기쁨과 슬픔이 섞여 있었다.남연희의 안색은 먹물이라도 끼얹은 듯 침울했다.셋째 내외도 서다인이 진짜 지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번에는 온 세상이 들끓었다.진짜 지완이 오랜만에 세상에 나왔다.그녀의 작품 이름은 ‘봄의 정원’이었고, 현장의 몇몇 전문가들이 서로 사겠다고 다퉜다.서다인은 가격을 제시하지 않고 요구하나만 제시했다.“Z국의 한 보육원에 기부하세요. 가장 많이 기부하신 분께 이 그림을 드리죠.”유가영은 급히 걸어가서 서다인의 손을 잡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이 바보야. 그 낡아 빠진 그림도 10억 원에 팔렸어. 동서 신분을 증명한 이 그림은 심지어 라이브 방송을 통해 완성했어. 지금 세상에 돈 있는 사람은 전부 이 그림에 관심을 가질 텐데. 적어도 수십억 원은 벌 수 있다고. 더 이상 기부하지 마.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다고!”서다인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형님, 제가 전에 그린 그 그림 복원한 금액만 빼고 나머지 전부 기부해 주세요.”“그건 내 돈이야!”유가영이 소리 질렀다.서다인은 여전히 온화하고 덤덤하게 말했다.“동서끼리 법정에 서고 싶지 않아요.”유가영은 화들짝 놀라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서다인을
남하준은 서다인에게 다가가 그녀가 방금 완성한 그림을 내려다보았다.집 뒤뜰의 경치였는데, 그녀의 붓놀림으로 보니 그렇게 시적이고 그림 같은 분위기였다.남하준은 방금 한 말을 되풀이하며 선전포고했다.“내가 200억 원으로 이 그림을 살 건데. 어느 보육원에 기부하면 되지?”서다인은 잠시 멍해져서 잠시 숨을 돌리지 못했다. “아... 아무 데나.”남하준은 깊은 눈빛으로 서다인을 보며 차갑게 명령했다.“류청, 지완의 이름으로 가난한 산간 지역의 교육 시설에 200억 기부해.”류청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서다인은 그림을 천천히 말아 조심스럽게 묶어 남하준에게 건넸다.“교육 시설을 대신해 감사드립니다.”남하준은 싱긋 웃으며 그녀의 작품을 이어받았다.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멍하니 쳐다보았다.이렇게 서먹서먹하니 아무리 봐도 부부 같지 않았다.인터넷 생중계가 발칵 뒤집혔다.최신 일선 언론에서 보도하기 시작했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지완이 짝퉁을 폭로하고,신작 경매로 200억 원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는 뉴스가 순식간에 검색어에 올랐다.그야말로 전 세계 예술계와 자선계를 뒤흔든 빅뉴스였다.“지완 씨, 인터뷰해도 될까요?”기자가 기회를 타서 서다인에게 다가갔다.“지완 씨는 Z국 사람인가요, 아니면 M국 사람인가요? 3년 동안 은퇴하신 이유가 M국 군전 그룹 남하준 장군님과 결혼했기 때문입니까?”“누군가 당신을 사칭해 돈을 뜯어냈는데 왜 계속 진화에 나서지 않았습니까?”“계속 온라인으로 그림을 그릴 겁니까?”“지완 씨...”서다인이 기자들에게 물샐틈없이 둘러싸이자 그녀는 급히 뒤로 물러났다.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남씨 가문 형 내외들은 어떤 사람은 기뻐하고 어떤 사람은 짜증을 냈다.남하준이 류청에게 눈짓했다.류청은 병사들을 데리고 기자들을 모두 뒤로 몰아 질서를 유지했다.남하준은 다가가 서다인의 손을 잡고 사랑채 옆문으로 나갔다.류청이 설명했다.“여러분 죄송합니다. 오늘은 이만 마칠게요. 여러분이 본 사람은 화가
남하준이 여자의 눈을 바라보니 그렇게도 맑고 당당했다.우아하고 분위기 있고 서향을 물씬 풍기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는 강인한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여린 듯하면서도 항상 빛이 나는 느낌을 주었다.서다인은 남하준이 그녀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하여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지완의 배후에 또 어떤 신분이 있는지 조사해 줄 수 있어요?”“찾아봤지만 너무 비밀에 부쳐 얻은 게 없어.”“아무런 흔적도 없다고요?”“유일한 흔적은 네가 자선단체랑 통화한 소리뿐이었어. 방금 네가 원장님이랑 통화하고 네가 지완이란 걸 증명했잖아.”서다인은 바짝 긴장했다.“하지만 난...”서다인이 아니라는 말이 갑자기 목에 걸려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는 남하준을 바라보며 그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당신을 믿어도 될까요?”남하준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반문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서다인은 마음이 심란하여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기억이 없다. 그리고 이렇게 이상한 일이 많이 발생했으니 그녀는 감히 누구도 믿지 못했다.게다가 두 번째 DNA 검사에서는 남하준의 부하들이 함께했다.일의 원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그녀는 자신 말고는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그녀는 자신의 신분을 조사해야 했다.서다인은 남하준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우리 이혼해요.”남하준은 약간 멍해졌고 눈동자가 가라앉았다.말을 마친 서다인은 가슴이 무겁고 괴로웠지만 이 일은 빨리 해결해야 했다.서다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맥이 빠졌다.“M국을 떠나 Z국으로 가고 싶어요.”남하준은 천천히 주먹을 쥐었고 숨이 가빠져 고개를 들고 심호흡했다.“Z국에 가고 싶으면 내가 데려다줄게. 얼마나 가 있으려고?”남하준은 일부러 이혼 얘기를 피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나도 잘 모르겠어요.”그녀의 정체를 알아낼 때까지, 어쩌면 기억을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빠를 수도, 오래 걸릴 수도, 심지어 평생 진실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잘 모르겠어요
남하준은 순간 안색이 굳고 눈에 빛을 잃었다.그는 손을 놓고 허탈감에 휩싸여 뒤로 몇 걸음 물러서더니 고개를 숙이고 땅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다인은 그의 기분 변화를 짐작할 수 없었다.그녀도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남하준이 그런 메시지를 보냈을 때 그녀는 이미 마음이 찢어졌다.더 이상 남하준과 평생 부부로 살 어떤 희망도 품고 있지 않았다.할머니가 돌아가시면 그는 분명 백하린의 곁으로 돌아갈 것이다.왜 이런 남자에게 자신의 청춘을 낭비해야 할까?“하준 씨, 할머니는 이미 나를 기억하지 못해요. 그러니 할머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서다인은 고개를 숙여 숨쉬기조차 힘들어졌고 가슴 끝이 은은하게 찔리는 것 같았다.“더 이상 시간 끌지 말고 이혼해요.”남하준은 호흡이 흐트러졌고 넓은 어깨가 무거워졌으며 목소리는 가볍고 힘이 없었다.“꼭 이혼해야겠어?”“꼭 이혼해야겠어요.”서다인은 이 말을 반복하며 목이 메고 가슴에서 괴로운 기운이 솟구쳤다.그녀는 눈시울을 적시고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그를 3년 동안 숭배하고 사모했다.그때 남하준이 할머니를 보러 올 때마다 도둑처럼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봤다.남하준이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때 그를 가까이서 쳐다보고 그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들으며 혼자 멍하니 꿈을 꾸고 있었다.그가 좋아하는 음식, 그가 좋아하는 운동, 그의 취미, 그의 성격, 그의 어린 시절, 그리고 그의 위대한 업적을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으니.3년 동안 짝사랑을 하면서 항상 그를 그리워하고 좋아하고 그와 함께 있는 삶을 상상했다.하지만 그에게 시집간 후에야 그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이런 결혼 생활은 결코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때때로 그가 백하린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극도로 괴로웠다.짝사랑은 언제나 괴로웠다.남하준은 무겁고 엄숙한 말투로 물었다.“이미 결정했어?”서다인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눈을 늘어뜨리고는 말했다.
남태준은 당연히 진효연의 뜻을 알았다.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진효연은 자기 자식을 너무 사랑했고 딸은 결국 시집갈 것이고 평생 그녀와 함께할 수 없으므로 아들에게 더욱 마음이 기울 것이다.가난한 사람 중에는 가식적인 사람이 많았다.하지만 본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진효연이 남태준은 마음에 들었다. 무슨 생각이든 마음에 숨겨두지 않고 바로 표현할 줄 알았으니.남태준이 여유롭게 말했다.“아주머니, 지성이가 공무원이 되려면 반드시 공무원 시험을 쳐야 해요. 통과해야만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어요.”진효연은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공무원 시험이 어디 쉽나.”“만약 공무원이 되기 싫으면 안성에 가도 돼요. 제가 가족들한테 회사에 맞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할게요.”진효연은 싱글벙글 웃으며 남태준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고마워 태준아. 내가 정말 많이 고마워.”지성도 기뻐했다.“고마워요 형.”지우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밥 먹을 기분이 없어 수저를 놓았다.그녀는 아직 남태준의 여자친구가 아닌데 그녀의 가족은 흡혈귀처럼 그에게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관계가 더 가까워지면 앞으로 어떤 무리한 요구를 제기할지 모른다.지우는 지성을 가리키며 경고했다.“너 못 가.”진효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지우를 쳐다보며 불쾌하게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지성도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내가 왜 못 가? 누나도 내가 나가서 돈 벌기를 바라잖아.”지우는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면접 보고 들어가는 건 되는데 낙하산은 절대 안 돼.”“왜?”지우는 제대로 된 신분으로 자존감을 갖고 남태준과 만나고 싶었다. 그의 도움을 받으며 난처한 위치에 처 하고 싶지 않았다.“그냥.”“내가 언제 누나더러 도와 달래? 난 태준이 형에게 부탁했어. 게다가 형도 흔쾌히 수락했고.”“너 바보니? 일자리도 혼자 못 찾아?”“내가 졸업한 대학교가 평범하잖아. 취업이 어려운 요즘 세상에 대기업 들어가는 일이 어디 쉬운 줄 알아?”“그래도 넌...
네모난 식탁에는 여섯 가지 요리에 국 하나, 그리고 디저트와 과일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새우, 게, 생선, 닭, 쇠고기, 야채, 수입산 인삼 비둘기 찜이 있었다.이러한 음식은 그다지 비싸지 않지만 남태준은 명절이나 중요한 날이 아니면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한 상 가득한 음식을 보던 남태준이 시선을 돌려 지성의 어두운 얼굴을 보니 이 맛있는 음식들이 지성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지성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엄마, 의사가 상처 완전히 아물기 전에는 담백하고 잘 소화되는 음식을 많이 먹고 기름진 음식은 피하라고 했어요. 아직 이런 음식은 벅차요.”진효연은 야채를 집어 지성의 그릇에 놓았다.“넌 야채 많이 먹어. 이건 충분히 담백해.”지성은 게를 보며 침을 흘렸다. 평소 해산물을 거의 먹지 않는 그의 집에서 하필 그가 다쳤을 때 해산물을 준비하다니.밥을 먹기도 전에 화가 잔뜩 불렀다.진효연은 집게로 가장 큰 게를 집어 남태준 앞에 놓인 작은 접시에 놓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태준아. 넌 이거 많이 먹어.”“감사합니다.”남태준은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지우를 쳐다봤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국을 먹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태준은 진효연이 너무 열정적인 것 같았다.설마 그를 수양아들로 삼아 지우의 오빠로 만들고 싶은 걸까?“혹시 게 뜯는 도구 있어요?”남태준이 식탁을 보며 묻자 진효연은 어리둥절했다.게를 자주 먹지 않으니 게를 먹을 때 전문적인 도구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지우는 그릇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달려가 깨끗한 작은 가위와 커피용 작은 숟가락을 꺼내 남태준에게 건넸다.“대충 이거라도 써요. 우리 집은 게를 먹을 때 그냥 입으로 뜯었어요.”지우가 부드럽게 말하자 남태준은 엷게 웃으며 도구를 받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우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계속했다.진효연은 남태준에게 해산물을 집어주고 지성에게 닭고기를 집어주며 많이 먹으라고 했다.다들 열심히
지우가 물건을 들고 지성의 방으로 가져갔다.남태준은 신발을 갈아신고 들어가서 그녀의 집안을 둘러봤다.확실히 좀 좁고 낡긴 하지만 깔끔한 편이었다.부엌 맞은 편에 바로 식탁이 있고 식탁 옆에는 거실이 있고 거실 소파도 짧아서 세 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텔레비전은 구식이고 냉장고도 작아서 거실 구석에 비치되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비좁아 보였다.“태준이 왔어?”진효연은 음식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며 활짝 웃으며 열정적으로 맞이했다.“앉아. 어서 앉아. 준비 거의 끝나가.”너무 친절하고 다정한 태준이라는 호칭에 남태준은 조금 어리둥절했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제가 뭐 도와드릴까요?”“없어. 없어. 그저 앉아서 차나 마시고 지우와 얘기나 나누면 돼. 부엌일 정도는 나 혼자로 충분하지.”남태준은 또 움찔했다.지우와 얘기를 나누라니. 조금 어리둥절했다.너무 갑작스러운 열정에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지성은 부랴부랴 남태준에게 거실 소파에 앉으라고 청한 뒤 녹차 한 잔을 우려낸 뒤 리모컨을 건넸다.“TV 볼래요?”남태준이 다급하게 거절했다.“괜찮아.”지성은 습관적으로 TV를 켜고 스포츠 채널을 누르면서 말했다.“누나는 로맨스 드라마만 좋아해요. 누나가 집에 있으면 내가 리모컨을 차지한 적이 없어요.”남태준이 따뜻하게 웃었다.“그건 직업 때문에 그런 거잖아.”“형도 누나 글 쓰는 거 알아요?”“누나가 경찰의 사랑 이야기를 쓴 적 있는데 아쉽지만 결말은 비극이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책을 출판했어요.”남태준은 방금 찻잔을 들자마자 흠칫 놀라더니 동작이 뻣뻣해져서 차마 차를 마실 수 없었다.방 안에서 지성의 옷을 챙겨주던 지우가 그의 말을 듣고 노기등등하게 뛰쳐나왔다.“야. 너 그 부질 없는 입 다물어!”남태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지우를 바라보았다. 뾰로통한 그녀의 모습이 아주 귀여웠다.하지만 지성에게는 그저 무서울 따름이었다.지성은 긴장한 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담담하게 TV를 계속
지우가 휴대전화와 가방을 들고 일어서니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래. 그럼 나 간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남태준의 옆을 지나갔다.남태준의 시선은 그녀를 따라 움직였고 그녀가 병실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벼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지우는 그와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저번에 강제로 그녀의 몸을 가지려고 해서 그녀를 놀라게 한 것 같았다.요 며칠 동안 그는 끝없는 번뇌와 후회 속에 살았다.그때 지성이 가방을 들고 남태준 앞으로 다가왔다.“형. 가요.”남태준은 정신을 차리고 그의 가방을 받아들며 말했다.“내가 들게.”지성은 크게 기뻐했고 눈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고마워요. 형.”차에 오른 남태준은 차에 시동을 걸고 천천히 출발했다.잠시 후 지우가 뒤에서 따라오자 남태준은 속도를 줄이고 백미러로 지우가 스쿠터를 타는 모습을 보며 약간 멍해졌다.지성이 그런 남태준의 상태를 눈치채고 말했다.“누나 기다릴 필요 없어요. 매일 다니는 길이라 아주 익숙해요. 조금 있다가 앞쪽 길목에 도착해서 오솔길로 빠지면 누나가 우리보다 훨씬 빨라요.”남태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덤덤하게 대답했다.“그래.”지성은 힐끔 남태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사실 우리 누나가 가끔 사납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착하고 어질어요.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사람 잘 챙길 줄 알고 성실하고 선량한 편이에요.”남태준이 입술을 오므리며 가볍게 웃었다.“알아.”“아주 가정적인 사람이에요.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을 때, 난 대학생이었고 누나 혼자 힘으로 이 집안을 지켰어요. 병원비며 빚이며 모두 누나 혼자 짊어졌어요.”남태준이 계속 응대했다.“알아. 지우 좋은 사람인 거.”지성이 궁금해서 물었다.“우리 누나 좋은 사람인 거 알면서 왜 헤어졌어요?”남태준은 조금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네 누나가 나 안 좋아해. 별로 느낌이 없대.”지성은 입을 떠벌리고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갈았다.“누나 사람 보는 눈은 개나 줘버렸나? 난 또 엄마가 두 사람
‘너 참. 한심하다!’지우는 속으로 자신을 욕하며 스쿠터를 돌려 힘없이 집 쪽으로 향했다.다음 날.지우는 더 이상 남태준을 찾으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매일 휴대전화를 보며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그가 메시지 한 통이라도 보내길 바랐다.그를 찾으러 갈 용기와 핑계가 필요했지만 메시지는 끝내 오지 않았다.지성의 퇴원을 앞두고 진효연은 집에서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그녀에게 남태준을 부르라고 했지만 지우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병원 병실.지성은 옷을 개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지우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물었다.“나 퇴원하는 거 도와주러 온 거 아니야? 왜 아무것도 안 하고 폰만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어?”지우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지성을 쏘아보며 나무랐다.“너 이제 움직일 수 있잖아? 옷 몇 벌 개인다고 안 죽어.”“누나 같은 여자를 어느 남자가 데려가겠어? 정말 불쌍하다.”워낙 기분이 안 좋았던 지우는 그 말을 듣자 더욱 괴로워 벌컥 화를 냈다.“누가 너더러 데려가래?”지성과 지우는 어릴 적부터 서로 치고받으면서 커왔고 어린이 된 지금도 자주 다퉜다.지성이 인정사정없이 말했다.“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여자가 바로 누나 같은 여자야. 지나가는 남자들 다 홀릴 것 같은 몸매를 지닌 것도 모자라 여자가 상냥하지도 않고 어질지도 않고 배려심도 없고 사납고 악독하잖아!”지우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되받아쳤다.“그래 나 몸매 좋다! 부렵냐? 너처럼 깡마른 자식은 대나무 장대 같은 아내밖에 차려지지 않아!”“너!”지성은 화가 치밀어 상처가 아팠고 어두운 얼굴로 지우를 가리켰다.지우는 멈추지 않고 계속 공격했다.“아니다. 너 같은 놈에게 어느 여자가 시집가겠어? 평생 노총각으로 늙어 죽어라!”지성은 이를 악물었다.“누나. 말이 너무 심하잖아!”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지우와 지성은 모두 조용해져서 입구 쪽을 보았다문은 열려 있었고 남태준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서 그들 남매가 다투는 것을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지우는 당장 남태준을 찾아가고 싶었다.그러나 어젯밤 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 그의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녀를 상대할 의향이 있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어젯밤 자신이 남태준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보았다. 그는 아직도 답장하지 않았다.어제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매몰차게 말했는데 지금 다시 메시지를 보내 다시 만나자고 하면 너무 성의 없어 보이지는 않을까?이렇게 하면 그녀가 남태준을 대하는 감정이 제멋대로이고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처럼 오만하게 보이지 않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고민하다 보니 생각이 많고 마음이 착잡했다.전화도 문자도 모두 성의 없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그녀는 스쿠터를 타고 경찰서로 향했다.이 시간에 남태준은 이미 퇴근했을 것이다.저녁노을이 지우에게 쏟아지고 그녀는 저녁 바람을 맞으며 길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더없이 좋았다.가락을 찾지 못하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스쿠터가 무성한 오동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봄바람이 불어와 공기마저 향긋했다.지우는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30분 후. 경찰서 입구에 도착한 지우는 브레이크를 밟고 전원을 끄고 대문 안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안에서 계속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데 유독 남태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지우는 한참을 기다렸다가 차를 잠그고 가방을 들고는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좀 긴장되었다.들어가서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전부 업무를 보고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들이었다.그때 경찰복을 입은 남자가 지나가면서 물었다.“어떻게 오셨죠?”지우는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긴장하며 물었다. “실례지만 마약 단속팀 남 대장님 계시나요?”남자는 사무실을 돌아보며 대답했다.“안 계세요.”“그럼 어디로 가셨죠?”지우가 또 묻자 경찰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주시했다.“누구시죠? 무슨 일로 남 대장님을 찾으시죠?”지우는 상대방의 경계심과 엄숙함이 느껴졌고 뭔가 사납고 엄한 압박감을 주는
“난...”진효연은 당황하고 긴장하여 침을 꿀꺽 삼켰다.“이게 전부 너를 위해서야.”지우는 눈물을 닦고 울며 말했다.“전 세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거의 매일 사람이 죽어요. 병으로 죽거나 사고로 죽거나 살해당하거나.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거 아니에요?”“내가 만약 운전기사와 결혼하면 남편이 운전하다가 차에 치여 죽지 않는다는 보장 있어요?”“내가 작은 가게 사장에게 시집가면 그 사람이 술을 많이 마셔 죽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어요?”“만약 농부에게 시집가면 가난해서 죽겠네요?”“뉴스 보면 가문이 몰살되는 참사가 얼마나 많아요?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고 마약 형사만 해당하는 거 아니라고요.”“제발 엄마의 그 비참한 운명을 나에게도 돌리지 말라고요!”지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파에 엎드려 목놓아 울었다.진효연은 어찌할 줄 몰라 멍하니 있으며 감히 움직이지도 못했고 마음도 어지러워졌다.한바탕 눈물을 흘린 지우는 일어나서 눈물을 닦고 코를 훌쩍였다.“엄마 첫사랑인 그 약혼자가 뜻밖에 세상을 떠나 결혼하지 못한 건 엄마 평생의 한이겠죠. 이제 나도 똑같아요. 다른 점은 내 첫사랑은 죽지 않았다는 거죠. 하지만 우리 감정은 엄마 때문에 이미 억눌려 죽었어요.”진효연은 얼굴이 창백하여 넋을 잃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말을 마친 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고 거실은 적막했다.진효연은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넋을 잃은 채로 소파에 멍하니 있었고 초점을 잃은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그날 밤, 지우도 잠을 설쳤고 진효연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이튿날 아침.하룻밤이 지나자 지우는 어제저녁 자신이 한 말이 너무 심해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쨌거나 진효연은 지우를 사랑하고 걱정하기 때문이었다.지우는 미안한 마음으로 진효연의 방문을 두드렸다.“엄마. 일어났어요?”방안에 인기척이 없자 지우는 또 몇 번 두드리며 마음이 조급해졌다. 진효연은 늘 정서적으로 불안했고 늘 삶에 대
지우가 난동을 부릴수록 남자는 더욱 괴로웠다.남자의 키스는 그녀의 입술에서 천천히 떨어져 나가며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부드럽게 닿았다.지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울다가 눈을 감은 채 몸을 떨며 울먹였다.“태준 씨. 이러지 말아요.”“사랑해 지우야.”그녀의 귓불에 키스하고 있는 남자의 목소리는 빠져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지우는 그의 손길이 스쳐 지나고 그가 키스한 피부에 마치 전류가 흘러 사지를 관통하고 온몸이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그녀는 두렵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갈망하고 있었다.어느새 몸부림을 포기하고 남자를 받아들이고 있었다.누군가를 사랑하기 전, 그녀는 절대 혼전 순결을 지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하지만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이성보다 신체의 갈망이 훨씬 컸다.지우는 온몸에 힘을 빼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상한 촉감에 입에서 수줍은 신음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꾹 참았다.그녀가 남태준이 주는 정욕의 설렘을 즐기고 있을 때 남자가 갑자기 멈추었다.그는 지우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숨을 몰아쉬더니 그녀의 옷 밑에서 천천히 손을 빼내어 그녀의 흐트러진 옷을 정리해주었다.“미안해.”남태준은 욕망을 고통스럽게 억누르고 죄책감 가득한 채 속삭였다.“미안해. 미안해.”그는 하마터면 통제력을 잃을 뻔했다.이성이 돌아온 지금, 남태준은 자신의 뺨을 몇 대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른 거야?’“난 정말 개자식이야. 미안해.”남태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고 그는 숨을 헐떡이며 그녀의 몸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지우는 가슴이 출렁이고 호흡이 어지럽고 눈을 깜박이며 천장을 바라보며 마음을 추스르고 욕망을 추슬렀다.좋아하는 남자가 키스하면서 쓰다듬어주면 몸에서 이렇게 격렬한 반응이 일어날 줄이야.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녀는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 같아 강렬한 욕망까지 생겼다.아주
그래서 이 일은 남태준에게 매우 중요할 것이다.그의 사명이고 명예이고 책임이고 그의 전부일 것이다.지우는 남태준을 사랑하고 그의 일과 삶도 존중했다.남태준은 그녀의 팔을 잡고 힘껏 끌어당겼다.“내가 그 비실비실한 이혼남보다도 못하다는 거야?”지우는 중심을 잃고 그의 품에 안겨 방황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팔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그녀는 서럽게 눈물을 흘렸고 턱은 떨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를 바라봤다.남태준은 그녀 눈 밑의 눈물을 바라보며 자신도 눈시울을 붉혔고 그의 슬픈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만약 가능하다면 내가 다리도 못 쓰고 앞도 못 보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네가 돈 때문에 나를 보살피기는 했지만 나 그때 정말 기쁘고 행복했어.”그때를 생각하면 지우 눈 밑의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그녀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당시의 남태준은 너무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다.그가 언제나 지금처럼 건강하기를 바랐다.“그때 너는 내가 눈이 안 보인다고 멋대로 행동했어.”남태준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 밑에는 눈물이 흐르지만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네가 나를 도와 샤워하고 밥 먹여주고 우리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했었지. 넌 청개구리처럼 내가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 했어.”“네가 아무리 완자 친구라지만 내 말 한마디면 엄마는 널 해고할 수 있었어. 하지만 난 널 떠나보내는 게 너무 아쉬웠어. 진흙탕이 된 내 마음을 넌 작은 작대기로 계속 저어주어 더 이상 평온하지 않고 매일 파도가 일렁였어.”“그러던 어느 날, 네가 갑자기 떠났어.”남태준은 눈물이 흘러넘쳐 흐느껴 울었다.“난 또다시 그 암흑 같은 삶으로 돌아갔어. 햇볕도 없고 활기도 없는 그 어두운 세계로.”“지우야. 네가 돈을 원한다면 난 만족시켜 줄 수 있어. 네가 사랑을 원한다면 난 온 마음을 다해 널 사랑할 거야. 네가 안정감을 원한다면 나 일선에서 떠나 사무직으로 물러날 수 있어.”남태준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애틋했고 점점 더 간절해졌다.“제발 나 떠나지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