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준 씨, 제발요. 내 마음속에 남은 당신에 대한 좋은 기억까지 깨드리지 말아요.”“난 더 이상 못 참겠어요...”서다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하준은 갑자기 그녀의 팔을 잡아 자기 품으로 껴안았다.서다인은 멍해졌다.그의 품에 안긴 몸은 약간 굳어 있었고 심장 박동은 빨라지고 긴장되고 불안했다.남하준은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꼭 껴안고 그녀 머리카락의 은은한 향기를 맡으며 흥분되고 아픈 마음을 어루만졌다.그는 여자를 몸 안에 쑤셔 넣고 싶은 심정이었다.만약 가능하다면 이렇게 그녀를 떠나지 못하게 속박하고 싶었다서다인의 귓가에 그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진심으로 너랑 부부로 지내고 싶었어.”“이 말은 진심이야. 어릴 때 백하린을 사랑한 건 사실이지만 이미 지난 얘기야.”“내가 여자들의 마음을 잘 몰라. 만약 백하린 때문에 나한테 화난 거라면 그냥 솔직히 말해. 계속 이혼하겠다고만 하지 말고.”그는 서다인이 이혼하겠다는 말만 들으면 아주 슬프고 괴로웠다. 총상을 입은 것보다 백 배나 더 고통스러웠다.서다인은 그의 품에 너무 미련을 두었는지 아니면 그의 설명을 듣고 괴로워 울었는지 그의 품에서 조용히 흐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백하린을 사랑한다고...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했잖아요.”남하준은 그녀의 뒤통수를 쓰다듬고 참지 못하고 머리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아니,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사랑하지 않아. 굳이 우리 사이의 감정을 정의하자면 기껏해야 남매 관계일 뿐이야.”서다인은 화가 나서 주먹을 불끈 쥐고 그의 품에서 발버둥을 쳤다. “아니요, 당신은 분명 말했어요.”남하준은 그녀가 자신의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더 세게 끌어안고 긴장했다. “아니, 없어. 그만해.”“분명 있어요!”서다인은 펑펑 울면서 호소했다.“나한테 메시지로 여전히 백하린을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나랑 이혼하든 말든 상관없다고. 남하준! 이 나쁜 놈! 쓰레기!”남하준은 즉시 그녀를 놓아주고 뒤로 조금 물러서서 허리를
서다인은 냉정을 되찾고 맑고 윤택한 살구빛 눈망울로 넋을 잃고 남하준을 바라보았다.그의 그윽하고 예쁜 눈동자에 진지함이 가득했다.서다인은 남자의 따스한 두 손이 자신의 볼을 감싸 안은 것이 다정함의 극치를 보여준 것 같아 수줍게 입을 열었다.“우리가 이간 당했다고요?”“응.”“그럼... 백하린이...”서다인은 우물쭈물하며 온전한 말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남자는 심호흡하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앞으로 이혼하겠다는 말 쉽게 하지 마. 기분 나쁜 일 있으면 나한테 먼저 털어놔. 알겠어?”서다인은 젖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하준은 아픈 심장이 천천히 풀리는 것 같았다.그는 아쉬운 듯 두 손을 그녀의 보들보들한 얼굴에서 내려놓았다.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서다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남하준의 어깨를 쳐다보았다.“상처는 좀 나았어요?”남하준은 더욱 뜨거워진 눈빛으로 그녀의 촉촉한 붉은 입술을 바라보며 대답했다.“응.”“그럼 우리 돌아가요.”서다인은 떨리고 수줍어서 손발을 어디에다 대야 할지 몰랐다.그녀가 막 돌아섰을 때, 남하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잠깐.”서다인은 고개를 돌려 놀라서 그를 올려다보았다.“왜요?”꽃향기가 가득한 선샤인 하우스는 고요하고 아름다웠다.남하준의 눈동자는 뜨거웠고 호흡은 거칠었고 심장 기복이 심하며 목젖이 아래위로 움직였다.그는 서다인을 앞으로 끌어당겨 얇은 입술을 살짝 오므리고 그녀의 입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는 고개를 약간 숙여 기울였다.분명 키스하려는 행동이었다.서다인은 가슴이 두근두근 떨렸다. 여기는 공공장소이고 시어머니가 자주 오는 곳인데 여기서 키스하는 걸 들키면 얼마나 민망할까?“하준 씨.”서다인은 두 손을 힘껏 밀어서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긴장하여 숨결이 고르지 못했다.“우리 일단 돌아가요.”말을 마친 서다인은 뜨거운 얼굴로 빠른 걸음으로 돌아섰다
최서윤은 기고만장하게 서다인을 가리키며 시큰둥하게 말했다.“네가 화가라고 뭐라도 된 줄 알아? 백하린에 비하면 천지 차이야. 하린이야말로 우리 군전 그룹의 수장과 어울리고 사모님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네까짓 건 아무것도 아니야.”서다인은 주먹을 살짝 쥐었다.그녀는 무뢰한 인간과 겨루는 데 서툴러서 말을 잇지 못했다.그때 남하준이 들어섰다. 그의 눈빛은 싸늘했고 차가운 기운이 들어오는 순간 거실 전체가 순식간에 두꺼운 얼음 서리로 뒤덮였다.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순간적으로 긴장하고 당황했다.특히 제멋대로 날뛰던 최서윤은 마음이 찔렸다.하지만 여전히 자기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남하준이 오더라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여전히 백하린이고 당연히 백하린을 보호할 거로 생각했다.남하준은 서다인에게 다가가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으로 서다인의 어깨를 잡아 품에 안았다.서다인은 약간 경직되어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남하준은 날카롭게 말했다.“나 남하준의 아내는 서다인 하나뿐이고, 서다인이야말로 군전 그룹의 사모님이에요. 이건 형수님께서도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죠.”최서윤은 안색이 어두워지고 약간 경악했다.그녀는 당황하여 백하린을 보았다.모두 깜짝 놀랐고 마치 백하린이 배신이라도 당한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백하린은 애처롭게 눈물을 흘리며 상처받은 얼굴로 남하준을 바라보았다.모든 사람의 시선을 따라 백하린을 바라보던 남하준은 엄숙하게 타일렀다.“백하린, 잘 들어. 내가 널 좋아했으면 당연히 너랑 결혼했어. 하지만 너랑 결혼하지 않은 건 너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걸 의미해.”“굳이 우리 사이의 감정을 정의하자면 남매의 정?”“하지만 난 지금 너한테 너무 실망이야. 점점 더러운 수단을 쓰고 있는데 만약 내가 추궁하지 않으면 넌 더 심한 행동을 할 거잖아?”가족들은 세기의 빅뉴스를 본 듯 놀라 입을 가리고 눈시울을 부릅뜨고 남하준과 백하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상상을 초월한 전개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백하린은 눈물을
서다인은 남하준과의 친밀한 행동으로 백하린을 화나게 하고 싶었다. 얼굴이 빨개지더니 수줍게 말했다.“내 손을 잡고 같이 방에 가면 돼요.”그는 눈살을 찌푸렸다.“손을 잡아?”서다인은 그가 원하지 않는 줄 알고 어색해서 말했다.“그냥 백하린이 화나서 물러나기를 바랄 뿐이에요.”남하준은 고개를 숙인 채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손잡는 거로는 약하지.”“네?”남하준은 갑자기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비록 아주 가벼운 입맞춤이었지만 서다인은 깜짝 놀랐다.현장의 사람들은 남하준이 서다인에게 뽀뽀하는 것을 보고 입을 딱 벌리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 사람이 바로 그 엄숙하고 빈틈없는 남하준이라고?모두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 남하준은 가볍게 허리를 굽혀 서다인을 가로 안았다.서다인은 두 발이 하늘로 치솟자 놀라서 남하준의 목을 재빨리 낚아채 그의 단단한 가슴에 누워 부끄러운 얼굴을 했다.남하준에게 다정한 척하며 백하린을 화나게 하라고 했을 뿐이지만 그의 행동은 서다인의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하고 수줍게 만들었다.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서다인을 안고 위층으로 올라가 안방으로 들어갔다.백하린은 화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질렸지만 아무도 그녀의 상태를 주시하지 않았다.유가영은 남희준의 귀에 기대어 중얼거렸다.“도련님 정말 다인이를 좋아하나 봐요?”“다인이가 몸매도 좋고 예쁘고 재능 있는 데다 성격도 좋으니 웬만한 남자라면 다 좋아하겠지.”“하지만 도련님은 일편단심 해바라기 같은 남자 아니었어요? 왜 마음이 변한 거죠?”남희준은 유가영의 귓가에 다가가 백하린을 힐끗 쳐다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사실, 다인이가 어릴 때 하린이랑 생긴 것도 그렇고 유한 성격이 더 비슷해. 하준이가 마음이 변했다고 하는 건 어렵지.”“백하린이 어렸을 때 어떻게 생겼는데요? 사진 있어요?”남희준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첩을 한참 뒤적거리다가 유가영 앞에 내밀었다.그녀는 눈살을 찌푸리고 사진을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사진첩에는 남씨
남하준은 두 손으로 그녀의 양옆을 짚은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관능적으로 목젖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숨결마저 따뜻해지고 거칠어졌다.서다인은 그의 뜨거운 열기를 느꼈고 강렬한 수컷의 기운이 감돌면서 분위기가 애매해졌다.공기마저 건조하고 농후해지는 느낌이었다.“하... 하준 씨. 나 일어나게 해 줄래요?”서다인은 부끄럽고 긴장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다인아.”남자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중후하고 섬세했으며 욕망에 가득 차 그녀의 고막 속으로 경쾌하게 파고들었다.서다인은 이렇게 다정하고 심금을 울리는 그의 호칭을 듣고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고 손목 동맥까지 두근거렸다.서다인은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느낄 수 있었다.“하준 씨...”서다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하준은 팔꿈치를 내리누르고 그녀의 몸을 감싸며 열렬하고 미친 듯이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음!”가벼운 압통이 밀려와 서다인은 신음소리를 내더니 이내 남자의 거친 키스가 몰려왔다.너무나 열광적으로 미쳐버린 남자의 키스에 서다인은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이 없었지만 곧 그의 키스에 서서히 빠져들었다.서다인의 손길은 자기도 모르게 그의 넓은 어깨에 걸쳐졌고 천천히 그의 목을 껴안았다.남자의 큰 손이 그녀의 귀밑머리에 꽂혀 그녀의 뒷머리를 건드리며 더욱 깊고 열정적으로 키스했다.뜨거운 열기가 감도는 숨결이 두 사람 사이에서 출렁이고 있었다.그녀의 부탁은 마치 발정제처럼 남하준이 모든 통제력을 상실하게 했다.남자의 키스는 그녀의 입술에서 점점 아래로 내려가 그녀의 희고 핑크빛 목덜미로 옮겨졌다.그녀는 키스로 온몸이 나른하고 힘이 없었다.어느덧 남자의 손이 그녀의 옷 밑으로 들어갔다.서다인은 깜짝 놀라 눈을 뜨고 천장을 쳐다보았는데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하준 씨, 안 돼요.”서다인은 두 손으로 가슴을 움츠리더니 두 사람 사이를 마구 쓰다듬는 그의 큰 손을 잡았다.남하준은 갑자기 멈췄고 몸속에는 뜨거운 욕망이 끓어올라 괴롭고 고통스러웠다.아쉽지만 그는 서다인의 뜻대로 큰
서다인은 긴장한 듯 그의 손을 맞잡고 옷 단추를 잡아챘다.“그럴 필요 없어요.”남하준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서다인은 긴장해서 얼굴이 빨개지고 눈빛이 흔들렸다.상황이 너무 이상하게 돌아갔다.정상적인 남자가 어떻게 성병에 세 번이나 걸린 여자와 자고 싶을까?그녀를 너무 사랑하거나, 그녀에게 병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전자는 가능성이 희박한데 설마 후자?서다인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하준 씨,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요?”남자의 눈에는 쉽게 보아낼 수 없는 당황스러움이 스쳤다.“없어.”그는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그의 능력으로는 DNA 결과가 조작될 수 없다. 게다가 가장 유능하고 가까운 특수 요원이 전 과정을 감독했다.서다인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기분이 가라앉아 고개를 옆으로 슬쩍 돌렸다.“난 싫어요.”남하준은 순간 마음이 식었다.아무리 충동적인 욕망도 지금 이 순간에는 절반이나 사라졌다.그는 끓어오르는 괴로움, 풀 수 없는 고통을 참으며 천천히 그녀에게서 일어났다.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욕망을 억누르고 심호흡을 하며 한참을 생각했지만 그녀에게 마음속의 생각을 말할 용기가 없었다.서다인도 일어나 앉아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며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여겼다.“나랑 잘살아 보고 싶다면서요? 그럼 부부가 되려면 서로에게 솔직해야죠.”서다인은 그의 말을 유도하려고 했다.남하준은 심호흡을 하며 한참을 고민했지만 말을 잇지 못하고 깊고 뜨거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서다인은 그의 망설임을 알아차렸다.속으로 화가 좀 났다.그녀는 일어서서 뾰로통하게 말했다. “당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아요. 나 방으로 갈게요.”그녀가 막 몇 걸음 걷자 남하준이 쫓아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겼다.서다인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그를 올려다보았다.그의 표정은 여전히 도도하고 차가웠으며 감히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기운을 뿜고 있었다.남하준은 하고
서다인은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닫았다.문을 사이에 두고 서다인은 안에서 소리쳤다.“오늘은 당신 보고 싶지 않으니까 다시 찾아오지 말아요.”문밖의 남하준은 씁쓸하게 입술을 오므렸다.마음속으로는 연애 상대가 삐친 느낌이 들어 왠지 귀여우면서도 허탈했다.서다인은 문짝에 기대어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정리해보았지만 늘 모순되었다.자신은 분명 남하준을 깊이 사랑하지만 또 그를 의심하고 있었다.분명히 그에게 의지하고 싶지만, 감히 이 일을 그에게 알리지 못하고 있다.이리저리 생각한 서다인은 참지 못하고 문을 열었다.그러나 이때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나가서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남하준은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한숨을 쉬며 방으로 돌아갔다.남은 시간 동안 남하준은 정말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식사할 때도 없었고 저녁까지 그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서다인은 일부러 그의 서재에 가서 책을 읽으며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그러다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었지만 그는 여전히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깊은 밤, 서다인은 뾰로통해서 베개를 안고 대체 남하준이 어디를 갔을까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하지만 먼저 그의 행방을 묻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지도 못했다.‘왜 이렇게 말을 잘 들어? 내가 찾아오지 말라고 하면 진짜 안 찾아오는 거야?’...다음날 점심, 햇빛이 쨍쨍했다.산길은 구불구불 이어져 있고 넓은 도로에는 차량이 적었다.리무진 한 대가 안성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뒷좌석에서 남하준은 쓸쓸한 표정으로 그윽한 눈빛으로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운전을 한 사람은 류청이고 조수석에는 정호가 있었다.두 사람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하준은 몇 시간 동안 차를 타고 회사로 돌아가 공무를 처리한 후 조금도 쉬지 않고 또 안성으로 돌아가고 있었다.두 도시가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 무엇을 위해 힘들게 다니는지 알 수 없었다.그들은 감히 말하지도, 묻지도 못했다.남하준이 이렇게 하는 데는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야트막한 비탈
서다인은 방에서 한참 동안 책을 읽다가 아래층으로 내려가 과일을 좀 먹으려고 했다.거실에 막 내려갔을 때, 백하린이 몇몇 형수와 시부모 앞에서 하소연하는 것을 들었다.그 초라하고 가련한 모습은 마치 학대라도 당한 것 같았다.“하준 오빠 탓하지 않아요. 오빠도 분명 자기만의 고충이 있을 거예요.”“다인 언니는 계속 저를 모함하고 곤경에 빠뜨렸어요. 그래서 오빠가 나한테 편견이 생겨 저를 좋아하지 않는 거예요.”“남자를 다루는 데 수단이 장난 아니라니까요. 오빠도 분명 홀린 것이 틀림없어요.”“내가 상처받는 건 괜찮지만 오빠가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요. 남자를 쥐락펴락하는 능력이 그렇게 대단한데, 저는 정말 오빠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이에요.”허윤미는 미간을 찌푸리고 걱정스럽게 말했다.“글쎄, 우리 하준이가 여자에게 눈이 멀 정도로 미련한 애는 아니야.”“아니라니까요? 하준 오빠가 변한 것 같지 않아요?”남연희는 감탄하며 말했다.“확실히 변했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 전에는 일만 했는데.”남희준: “말도 많아지고 집안일에 관심이 많아졌어.”남이준: “사람이 조금 온도가 생긴 것 같아. 전에는 차갑기만 했는데.”유가영: “그건 전부 좋은 거 아니에요? 전 도련님 보기 좋기만 하던데.”백하린은 이런 결론이 날 줄 몰라 경악해서 바라보았다.“하지만...”백하린이 또 무슨 말을 하려 할 때 서다인이 천천히 걸어왔다.그녀는 곧 입을 다물더니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서다인을 바라보았다.서다인은 다가와 가장자리에 서서 인사를 하고 덤덤하게 백하린을 바라보았다.“백하린, 네가 한 그 구역질 나는 일들을 입 밖에 내지 않은 건 네 마지막 체면을 살려준 건데. 넌 지금 우리 가족 앞에서 내 험담을 해?”백하린은 짐짓 침착한 척하며 나약하게 말했다.“언니, 험담이라니. 난 그저 담소를 나누고 있었을 뿐이야.”최서윤은 차가운 눈으로 서다인을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흥, 하린이가 어떤 사람인지는 우리가 너보다 더 잘 알아. 네가 어떤 이간질
지우가 부랴부랴 그를 불렀다. “아니요. 나 안 더워요.”남태준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놓았다.그녀의 영롱한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으며 매력적이었다.지우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준 씨가 임다희와 사귀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지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남태준에게 건넸다.순간, 지우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이미 헤어진 이상 그와 다른 여자에 관해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확실히 묻지 않으면 그녀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비록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다만 이때 그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아 보일 수 있었다.모두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녀는 동생의 취업을 위해 목적을 갖고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지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뉴스를 본 남태준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긴장하며 설명했다.“지우야. 나와 다희 그런 사이 아니야. 나 믿어줘.”현재 임다희는 그의 정보원이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임다희의 신분과 작업을 기밀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지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지우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하게 이마를 짚고 죽을상이 된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또 불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지우를 바라봤다.지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여자가 먹여준 음식 먹었어요?”“그저 보통 친구와 밥 한 끼 먹은 거야. 나와 다희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야.”“안 먹었어요?”“응. 거절했어.”“아.”지우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둘 다 침묵에 빠졌다.남태준이 지우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
스쿠터를 타고 남태준의 집에 도착한 지우는 고개를 들어 한낮의 햇살을 올려다보았다. 이 시간에 그는 아마 출근 중이겠지?너무 일찍 온 것 같아서 그녀는 입구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차를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그녀가 막 떠나려던 참에 남태준이 문을 열고 나왔고 그는 지우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성큼성큼 앞으로 쫓아가며 불렀다.“지우야!”지우는 차를 세우고 그를 뒤 돌아봤다.마음이 격해진 남태준은 몇 걸음 만에 지우 곁으로 달려가 뜨거운 시선을 내뿜으며 다정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방금까지만 해도 용기가 넘치던 지우는 그를 만난 순간 맥이 풀리며 긴장해서 물었다.“출근 안 했어요?”“오늘 휴식이야.”남태준은 둘 곳 없는 손을 주머니에 천천히 찔러 넣었다지우는 부끄러워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왠지 모를 애틋한 감정이 마음속에 번져 그녀를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만들었다.“어디 나가요?”지우가 묻자 남태준은 고민 없이 말했다.“아니. 나 아무 일도 없어. 들어가 앉을래?”지우가 고개를 돌려 집을 보니 또 긴장감이 감돌았다.머릿속에 지난번 장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뭐 물어보려고 왔어요. 물어만 보고 갈 거예요.”묻기만 하고 바로 간다?남태준은 너무 아쉬웠다.헤어진 후 지우가 먼저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태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여기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서 너무 더워.”지우도 고개를 들어 눈 부신 햇살을 보며 생각했다.‘이 남자가 햇볕에 약하다고?’그리고 남자의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보니 평소에도 햇볕을 많이 쬐는 것 같았다.지우는 몇 초 동안 고민하다가 차를 옆으로 몰고 가서 멈추고 가방을 들고 그의 앞에 다가갔다.그러자 남태준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그녀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걸어가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오신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임다희가 육건우의 범죄 증거를 입수했으니 네가 가서 가져와. 난 오늘 중요한 일이 생겼으니 방해하지 마
“육건우가 지금 나랑 같이 거물을 만나러 가자고 하는데 네가 찾는 그 신비로운 사람인지 모르겠어. 와볼래?”남태준은 생각지도 않고 말했다.“주소 보내.”“좋아.”전화를 끊은 남태준은 지우의 메시지를 잊고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이 밤.지우는 휴대전화를 안고 남자의 답장을 기다렸지만 밤새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벌써 두 번째였다. 남태준이 그녀에게 두 번이나 답장하지 않았다.지우는 마음이 완전히 뒤숭숭해져서 남태준이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는지 확신이 없었다.그에게 재결합을 청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그렇게 평온해 보이는 이틀이 지났다.두 사람은 서로 연락하지 않았고 지우는 평생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남태준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고 그와 임다희가 도대체 무슨 사이인지 계속 생각했다.송수빈이 자주 가던 커피숍으로 지우를 불렀고 지우는 일할 마음이 없어 컴퓨터를 보며 멍하니 있었다.송수빈은 한창 일하다가 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문득 송수빈이 소리쳤다.“지우야. 네 전 남자친구 연예 뉴스에 나왔어!”지우는 정신을 차리고 긴장해서 고개를 내빼고 기웃거렸다.송수빈이 핸드폰 액정을 그녀 앞에 널어놓은 채 허탈한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지우는 그 안의 사진과 글을 보고 움찔 놀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남태준과 임다희가 한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고 임다희가 남태준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다정한 장면이 찍힌 것이었다.제목은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임다희, 다정하게 음식을 먹여주다.’였다.송수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나무랐다.“내가 정말 사람을 잘못 봤어. 남 대장님 너랑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전 여자친구랑 만나고 있어? 이거 환승 연애 아니야? 쓰레기!”지우는 가뜩이나 마음이 아팠는데 송수빈이 남태준을 쓰레기라고 욕하는 것을 듣자 그녀는 더욱 괴로워하며 감싸기 시작했다.“그냥 밥 한 끼 먹은 것뿐이잖아? 그게 뭐? 요즘 기자들 직업정신 없어서 사진 한 장으로도 아
지우는 눈물을 흐릿하게 머금은 채 일어나서 버럭 소리쳤다.“다른 사람에게 빌붙을 생각만 하지 말고 독립해야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서 이익을 얻을 궁리만 해? 네가 그러고도 남자야?”욕을 먹은 지성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진효연은 아들이 아까워 남태준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지우를 야단쳤다.“지금 그게 동생에게 할 소리야? 지성이가 왜 남자답지 못하고 왜 독립적이지 않은데? 지성이는 그저 좋은 직장 찾고 싶은 거잖아. 게다가 태준이가 남이야? 지성이 미래의 매형인데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잖아?”남태준은 놀라서 어리둥절했다.지우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라 화를 냈다.“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그런 사이 아니야!”“밥 안 먹어!”지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먹이며 말하고는 식탁을 빠져나와 방으로 가더니 쾅 하고 방문을 닫았다.진효연은 그제야 반응하고 약간 난처한 표정으로 남태준을 보았다.남태준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두 사람 아직 화해 안 했어?”진효연이 조심스럽게 묻자 남태준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이제 저희 반대 안 하시는 거예요?”진효연이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나 반대 안 해. 내가 허락해서 두 사람 이미 다시 만나는 줄 알았어.”진효연은 말을 잇지 못하더니 문득 쑥스러웠다.남태준이 지우의 남자친구가 아니라면 방금 그녀의 부탁은 확실히 좀 지나쳤다.지금 남태준은 마음속에 돌이 박힌 듯 숨이 막혔다.이따금 전해지는 괴로움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차라리 지우가 어머니의 반대 때문에 그와 헤어졌길 바라고 있었다.지금 보니 지우의 어머니는 두 사람을 동의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우는 정말 자신의 이유 때문에 헤어지자고 했을까?단순히 그를 사랑하지 않고 그에게 아무 느낌이 없어서?남태준은 맛을 느낄 수 없는 식사를 했다.그가 떠날 때까지 지우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는 차를 몰고 넓은 거리를 무작정 누볐고 마음이 아프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뚜뚜.메시지 벨이 울렸다.
남태준은 당연히 진효연의 뜻을 알았다.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진효연은 자기 자식을 너무 사랑했고 딸은 결국 시집갈 것이고 평생 그녀와 함께할 수 없으므로 아들에게 더욱 마음이 기울 것이다.가난한 사람 중에는 가식적인 사람이 많았다.하지만 본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진효연이 남태준은 마음에 들었다. 무슨 생각이든 마음에 숨겨두지 않고 바로 표현할 줄 알았으니.남태준이 여유롭게 말했다.“아주머니, 지성이가 공무원이 되려면 반드시 공무원 시험을 쳐야 해요. 통과해야만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어요.”진효연은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공무원 시험이 어디 쉽나.”“만약 공무원이 되기 싫으면 안성에 가도 돼요. 제가 가족들한테 회사에 맞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할게요.”진효연은 싱글벙글 웃으며 남태준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고마워 태준아. 내가 정말 많이 고마워.”지성도 기뻐했다.“고마워요 형.”지우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밥 먹을 기분이 없어 수저를 놓았다.그녀는 아직 남태준의 여자친구가 아닌데 그녀의 가족은 흡혈귀처럼 그에게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관계가 더 가까워지면 앞으로 어떤 무리한 요구를 제기할지 모른다.지우는 지성을 가리키며 경고했다.“너 못 가.”진효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지우를 쳐다보며 불쾌하게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지성도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내가 왜 못 가? 누나도 내가 나가서 돈 벌기를 바라잖아.”지우는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면접 보고 들어가는 건 되는데 낙하산은 절대 안 돼.”“왜?”지우는 제대로 된 신분으로 자존감을 갖고 남태준과 만나고 싶었다. 그의 도움을 받으며 난처한 위치에 처 하고 싶지 않았다.“그냥.”“내가 언제 누나더러 도와 달래? 난 태준이 형에게 부탁했어. 게다가 형도 흔쾌히 수락했고.”“너 바보니? 일자리도 혼자 못 찾아?”“내가 졸업한 대학교가 평범하잖아. 취업이 어려운 요즘 세상에 대기업 들어가는 일이 어디 쉬운 줄 알아?”“그래도 넌...
네모난 식탁에는 여섯 가지 요리에 국 하나, 그리고 디저트와 과일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새우, 게, 생선, 닭, 쇠고기, 야채, 수입산 인삼 비둘기 찜이 있었다.이러한 음식은 그다지 비싸지 않지만 남태준은 명절이나 중요한 날이 아니면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한 상 가득한 음식을 보던 남태준이 시선을 돌려 지성의 어두운 얼굴을 보니 이 맛있는 음식들이 지성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지성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엄마, 의사가 상처 완전히 아물기 전에는 담백하고 잘 소화되는 음식을 많이 먹고 기름진 음식은 피하라고 했어요. 아직 이런 음식은 벅차요.”진효연은 야채를 집어 지성의 그릇에 놓았다.“넌 야채 많이 먹어. 이건 충분히 담백해.”지성은 게를 보며 침을 흘렸다. 평소 해산물을 거의 먹지 않는 그의 집에서 하필 그가 다쳤을 때 해산물을 준비하다니.밥을 먹기도 전에 화가 잔뜩 불렀다.진효연은 집게로 가장 큰 게를 집어 남태준 앞에 놓인 작은 접시에 놓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태준아. 넌 이거 많이 먹어.”“감사합니다.”남태준은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지우를 쳐다봤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국을 먹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태준은 진효연이 너무 열정적인 것 같았다.설마 그를 수양아들로 삼아 지우의 오빠로 만들고 싶은 걸까?“혹시 게 뜯는 도구 있어요?”남태준이 식탁을 보며 묻자 진효연은 어리둥절했다.게를 자주 먹지 않으니 게를 먹을 때 전문적인 도구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지우는 그릇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달려가 깨끗한 작은 가위와 커피용 작은 숟가락을 꺼내 남태준에게 건넸다.“대충 이거라도 써요. 우리 집은 게를 먹을 때 그냥 입으로 뜯었어요.”지우가 부드럽게 말하자 남태준은 엷게 웃으며 도구를 받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우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계속했다.진효연은 남태준에게 해산물을 집어주고 지성에게 닭고기를 집어주며 많이 먹으라고 했다.다들 열심히
지우가 물건을 들고 지성의 방으로 가져갔다.남태준은 신발을 갈아신고 들어가서 그녀의 집안을 둘러봤다.확실히 좀 좁고 낡긴 하지만 깔끔한 편이었다.부엌 맞은 편에 바로 식탁이 있고 식탁 옆에는 거실이 있고 거실 소파도 짧아서 세 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텔레비전은 구식이고 냉장고도 작아서 거실 구석에 비치되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비좁아 보였다.“태준이 왔어?”진효연은 음식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며 활짝 웃으며 열정적으로 맞이했다.“앉아. 어서 앉아. 준비 거의 끝나가.”너무 친절하고 다정한 태준이라는 호칭에 남태준은 조금 어리둥절했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제가 뭐 도와드릴까요?”“없어. 없어. 그저 앉아서 차나 마시고 지우와 얘기나 나누면 돼. 부엌일 정도는 나 혼자로 충분하지.”남태준은 또 움찔했다.지우와 얘기를 나누라니. 조금 어리둥절했다.너무 갑작스러운 열정에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지성은 부랴부랴 남태준에게 거실 소파에 앉으라고 청한 뒤 녹차 한 잔을 우려낸 뒤 리모컨을 건넸다.“TV 볼래요?”남태준이 다급하게 거절했다.“괜찮아.”지성은 습관적으로 TV를 켜고 스포츠 채널을 누르면서 말했다.“누나는 로맨스 드라마만 좋아해요. 누나가 집에 있으면 내가 리모컨을 차지한 적이 없어요.”남태준이 따뜻하게 웃었다.“그건 직업 때문에 그런 거잖아.”“형도 누나 글 쓰는 거 알아요?”“누나가 경찰의 사랑 이야기를 쓴 적 있는데 아쉽지만 결말은 비극이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책을 출판했어요.”남태준은 방금 찻잔을 들자마자 흠칫 놀라더니 동작이 뻣뻣해져서 차마 차를 마실 수 없었다.방 안에서 지성의 옷을 챙겨주던 지우가 그의 말을 듣고 노기등등하게 뛰쳐나왔다.“야. 너 그 부질 없는 입 다물어!”남태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지우를 바라보았다. 뾰로통한 그녀의 모습이 아주 귀여웠다.하지만 지성에게는 그저 무서울 따름이었다.지성은 긴장한 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담담하게 TV를 계속
지우가 휴대전화와 가방을 들고 일어서니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래. 그럼 나 간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남태준의 옆을 지나갔다.남태준의 시선은 그녀를 따라 움직였고 그녀가 병실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벼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지우는 그와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저번에 강제로 그녀의 몸을 가지려고 해서 그녀를 놀라게 한 것 같았다.요 며칠 동안 그는 끝없는 번뇌와 후회 속에 살았다.그때 지성이 가방을 들고 남태준 앞으로 다가왔다.“형. 가요.”남태준은 정신을 차리고 그의 가방을 받아들며 말했다.“내가 들게.”지성은 크게 기뻐했고 눈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고마워요. 형.”차에 오른 남태준은 차에 시동을 걸고 천천히 출발했다.잠시 후 지우가 뒤에서 따라오자 남태준은 속도를 줄이고 백미러로 지우가 스쿠터를 타는 모습을 보며 약간 멍해졌다.지성이 그런 남태준의 상태를 눈치채고 말했다.“누나 기다릴 필요 없어요. 매일 다니는 길이라 아주 익숙해요. 조금 있다가 앞쪽 길목에 도착해서 오솔길로 빠지면 누나가 우리보다 훨씬 빨라요.”남태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덤덤하게 대답했다.“그래.”지성은 힐끔 남태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사실 우리 누나가 가끔 사납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착하고 어질어요.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사람 잘 챙길 줄 알고 성실하고 선량한 편이에요.”남태준이 입술을 오므리며 가볍게 웃었다.“알아.”“아주 가정적인 사람이에요.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을 때, 난 대학생이었고 누나 혼자 힘으로 이 집안을 지켰어요. 병원비며 빚이며 모두 누나 혼자 짊어졌어요.”남태준이 계속 응대했다.“알아. 지우 좋은 사람인 거.”지성이 궁금해서 물었다.“우리 누나 좋은 사람인 거 알면서 왜 헤어졌어요?”남태준은 조금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네 누나가 나 안 좋아해. 별로 느낌이 없대.”지성은 입을 떠벌리고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갈았다.“누나 사람 보는 눈은 개나 줘버렸나? 난 또 엄마가 두 사람
‘너 참. 한심하다!’지우는 속으로 자신을 욕하며 스쿠터를 돌려 힘없이 집 쪽으로 향했다.다음 날.지우는 더 이상 남태준을 찾으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매일 휴대전화를 보며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그가 메시지 한 통이라도 보내길 바랐다.그를 찾으러 갈 용기와 핑계가 필요했지만 메시지는 끝내 오지 않았다.지성의 퇴원을 앞두고 진효연은 집에서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그녀에게 남태준을 부르라고 했지만 지우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병원 병실.지성은 옷을 개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지우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물었다.“나 퇴원하는 거 도와주러 온 거 아니야? 왜 아무것도 안 하고 폰만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어?”지우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지성을 쏘아보며 나무랐다.“너 이제 움직일 수 있잖아? 옷 몇 벌 개인다고 안 죽어.”“누나 같은 여자를 어느 남자가 데려가겠어? 정말 불쌍하다.”워낙 기분이 안 좋았던 지우는 그 말을 듣자 더욱 괴로워 벌컥 화를 냈다.“누가 너더러 데려가래?”지성과 지우는 어릴 적부터 서로 치고받으면서 커왔고 어린이 된 지금도 자주 다퉜다.지성이 인정사정없이 말했다.“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여자가 바로 누나 같은 여자야. 지나가는 남자들 다 홀릴 것 같은 몸매를 지닌 것도 모자라 여자가 상냥하지도 않고 어질지도 않고 배려심도 없고 사납고 악독하잖아!”지우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되받아쳤다.“그래 나 몸매 좋다! 부렵냐? 너처럼 깡마른 자식은 대나무 장대 같은 아내밖에 차려지지 않아!”“너!”지성은 화가 치밀어 상처가 아팠고 어두운 얼굴로 지우를 가리켰다.지우는 멈추지 않고 계속 공격했다.“아니다. 너 같은 놈에게 어느 여자가 시집가겠어? 평생 노총각으로 늙어 죽어라!”지성은 이를 악물었다.“누나. 말이 너무 심하잖아!”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지우와 지성은 모두 조용해져서 입구 쪽을 보았다문은 열려 있었고 남태준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서 그들 남매가 다투는 것을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