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다인은 마음을 읽힌 듯, 부끄럽고 불안하여 고개를 떨구었다.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놓으며 화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혼하고 싶으면 솔직히 말해. 이런 식으로 나랑 거리 두지 말고.”서다인은 머리를 푹 숙이고 억울하고 괴로운 마음에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았고 눈가는 어느새 촉촉해졌다.그녀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울음을 참았다.그녀는 남하준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녀가 뭘 바꿀 수 있겠는가?나쁜 여자가 되고 싶지도 않고, 자신에게 그렇게 많은 끔찍한 과거가 있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없었다.그녀는 지금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토끼처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남하준은 서다인의 기분이 매우 가라앉은 것을 보고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졌다.순간 자신의 말투가 너무 강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의 검고 깊은 눈동자는 부드러워지더니 그녀의 축 처진 작은 얼굴을 바라보며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했다.“네 생각을 말해봐.”그녀는 줄곧 말이 없었다.남자는 점점 더 어두워지는 눈빛으로 점점 더 낮아지는 그녀의 작은 머리를 바라보았다.그녀의 맑은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질 때까지.서다인이 몰래 눈물을 훔친 것을 발견한 남하준은 심장이 약간 조여왔다.그는 긴장해서 일어나 서다인 앞으로 가서 그녀를 잡아당겼다.그녀의 작은 체구가 고개를 떨구고 있어 잡아당겨도 그는 서다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왜 울어?”그는 가슴이 답답하고 심장이 아픈 것 같았다.이 죽일 놈의 고통은 그를 괴롭히고 낯설게 만들었다.여자가 우는 것을 보고 이런 고통을 느낀 것은 10년 전이었다.서다인은 울고 싶지 않아 꾹 참느라 노력했지만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렸다.그녀는 자신의 빌어먹을 신분을 생각하고, 나중에 남하준의 손에 죽을 것을 생각하면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말도 안 하고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그저 묵묵히 눈물만 흘리는 여자의 모습에 남하준은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고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그는 서다인의 뒤통수를 낚아채
남하준은 그녀의 물음에 갑자기 굳어졌다.잠시 후에야 그는 침착하게 답했다.“이 방법이 효과가 좋아.”이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둘 사이의 온기를 깨뜨렸다.“꽃 다 꽂았어?”소리를 들은 서다인은 급히 자리로 돌아와 도구를 들고 자르기 시작했다. “거의 다 됐어요, 어머니.”허윤미가 들어와 보니 꽃 한 병도 제대로 꽂히지 않았고 바닥에 아직 빈 병 몇 개가 남아 있었다.허윤미는 의심스러운 듯 남하준을 바라보며 말했다.“하준아, 너 방금 여기 와서...”남하준은 급히 허윤미의 어깨를 껴안고 밖으로 나가면서 큰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엄마, 먼저 가서 쉬세요. 여기는 저희가 할게요.”남하준이 강제로 허윤미를 내보내고 돌아왔을 때 서다인은 열심히 꽃을 자르고 있었다.그는 가위를 하나 구해와 서다인 맞은편에 앉아 그녀의 꽃 자르는 모습을 살피고 묵묵히 함께 꽃을 다듬기 시작했다.시간은 항상 조용하고 아늑하게 흘러갔다.시끄럽지 않고 조용하고, 향긋하고, 세월이 고즈넉한 느낌이 들었다.서다인은 눈을 들어 남하준이 혼자 꽂은 꽃병을 보고 저도 모르게 웃었다.통일된 색깔의 붉은 장미꽃들이 가지런하고 질서 정연하며 네모반듯한 것이 마치 그의 병사들이 늘어선 것 같았다.사내대장부의 안목은 정말 치명적이었다.그녀가 몰래 웃고 있는 것을 발견한 남하준은 기분이 좋아졌다.“예쁘지 않아?”서다인은 계속 분주히 움직이며 대답했다.“당신이 직접 꽂은 걸 아시면 어머님도 분명 좋아하실 거예요.”남하준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넌 예뻐 보여?”서다인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쁘네요.”남하준은 그녀의 불그스름한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확실히 예뻤다!그는 난생처음 꽃꽂이가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다는 것을 느꼈다.저녁 식사를 마친 후.남하준은 방으로 돌아와 샤워하고 회색 바지 차림으로 베란다 밖에 서서 두 손으로 난간을 짚고 하늘을 쳐다보았다.알고 보니 여기 별도 밝았다.그때 문이 열리더니 서다인이
남하준의 그윽하고 아리송한 검은 눈동자는 뜨거운 빛을 띠었고, 몸에는 차갑고 위험한 기운이 배어 있었다. 살짝 화난 듯 또박또박 말했다.“갑자기 글만 남기고 떠나는 건 실례지. 나한테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어?”서다인은 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그에게 자신이 블랙 섀도우가 보낸 첩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할까?군전 그룹은 M국의 국방 무기 생산 기지로 일급 비밀 군공장이었다.그녀의 신분은 그곳에 남아서는 안 된다.군전 그룹에서 중요한 기밀이 누설되면 그녀의 혐의는 너무 커지기에 그녀는 이런 죄명을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작별인사를 하지 않은 것은 그녀가 머리가 텅 비어 있었고 생각이 복잡하여 작별인사의 핑계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그게...”서다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입을 열듯 말듯 하는 그녀의 핑크빛 입술을 바라보던 남하준은 덩달아 가슴이 떨렸다.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눈동자가 뜨거워지며 그녀에게 키스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남자는 섹시한 목젖이 아래로 미끄러지며 고개를 더 숙였다. “대체 부대장이 뭐라고 해서 갑자기 떠난 거야?”서다인은 갑자기 등줄기가 굳어지고 안색이 변하며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서다인의 눈에 나타난 당황스러움은 그녀의 생각을 드러냈고 남하준은 이를 알아챘다.그녀는 긴장한 듯 입을 열었다.“도련님, 사실은...”“그 호칭부터 좀 바꾸면 안 돼?”남하준이 그녀의 말을 끊고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나지막하고 매혹적인 말투로 말했다.서다인은 마음이 약해졌다.왜 그녀는 이 위엄 있고 패기 넘치는 남자가 자신을 달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까?“하준 씨.”서다인은 이내 호칭을 바꾸었다.남하준은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착하네.”서다인은 또 경직되었다. 심장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오르락내리락하고 급회전하여 큰 기복이 생겼다.그녀는 약간 수줍어하며 멍하니 있었다.‘이 말이 왜 이렇게 애틋하게 들리지?’남하준은 그녀의 얼굴이 약간 붉어지는 것을 보고 그녀가 부
남하준은 그녀를 끌고 화장대 의자에 앉히고 그도 침대로 가서 엄숙한 얼굴로 앉았다.“서다인,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고도의 의심과 경각심을 가져야지.”서다인은 약간 어리둥절했다.남하준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어렸을 때부터 잘 보호받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토끼처럼 느껴졌다. 기억을 잃어서인지 세상의 추악함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남하준은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나도 네가 블랙 섀도우가 보낸 스파이인지 의심스럽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아직 사실은 아니야.”“당신한테 죽은 그 스파이가 한 말도 사실이 아닐까요?”“그 사람은 전에 널 암살하려던 자가 아니야. 비디오를 수백 번이나 반복해서 봤는데 체형이 같지 않아. 게다가 부대장은 일 년 내내 총을 지니고 있으니 널 죽일 때 칼을 쓸 필요가 없지.”서다인은 놀라는 표정이었다.수백 번이나 봤다고? 그가 직접 봤을까? 왜 이 일을 그토록 중시할까?“부대장은 진범에게 떠밀려 죄를 대신 뒤집어썼을 가능성이 커. 만약 정말 블랙 섀도우가 보낸 스파이라면 속전속결로 죽였지 너한테 쓸데없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을 거야.”열흘 넘게 서다인의 마음을 짓누르던 큰 바위가 순식간에 떨어져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손가락으로 옷을 부드럽게 휘저으며 말했다.“난 내가 스파이인 줄 알았어요.”“아직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어.”막 풀린 그녀의 마음은 남하준의 말 한마디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서다인은 고개를 번쩍 들고 당황한 눈으로 바라보았다.남하준은 놀란 그녀의 모습에 이내 위로했다.“직업병이야. 그래서 네 신분에 대해 항상 의심하고 있지만 아직 명확한 건 없어. 더 조사해 봐야 해.”서다인은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하준 씨, 기억을 잃기 전에 내가 정말 첩자였다면 나 죽일 거죠?”그녀의 물음에 남하준은 멈칫했다. 티 없이 맑은 그녀의 살굿빛 눈을 바라보며 그는 마음이 무거워졌다.사실이라면 그녀를 죽일 수 있을까?그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하
“이번에는 십여 개국을 다녀왔는데 정말 멋졌어요.”왁자지껄한 소리, 격앙된 정서.분명히 한 여자의 목소리일 뿐인데 야채 시장에 들어와 쉴 새 없이 지껄이는 느낌이었다.서다인은 쭈뼛쭈뼛 걸어갔다.소파에 앉아 있던 남하준은 서다인을 보고 옆자리를 두드리며 앉으라고 했다.서다인은 왠지 그에게 관심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걸어가서 남하준 옆에 앉았다.막 앉았는데 맞은편에 낯선 젊은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젊은 여자는 단정하고 대범하며 청초하고 부드러우며 눈길은 서다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서다인이 앉아 있는 몇 분 동안, 온 가족이 이 50여 세의 여자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중년 여인은 좀 복스럽게 생겼고 부티가 났다. 다른 사람이 끼어들지 못할 정도로 쉴 새 없이 말하고 있었다.중년 여인은 마침내 멈추더니 티 테이블의 물을 한 모금 마시다가 갑자기 남하준 옆에 앉아 있는 서다인을 발견했다. 여자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남하준이 소개하기도 전에 여자는 서다인의 존재를 일부러 무시하고 자신의 옆에 있는 젊은 여자를 소개하기 시작했다.“이 아가씨는 온씨 가문의 첫째 온가윤이에요. 제가 딸로 삼은 아이이고 하준이를 위해 고른 신붓감이죠.”서다인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뜨끔했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담담해 보였다.“온씨 가문 다들 아시죠? 부동산계의 우두머리이자 재벌 가문이죠. 우리 가윤이는 마음이 어질고 착할 뿐만 아니라 명문대 졸업에 금기서화에 모두 능통하고 음식도 제법이고 우아하고 품성도 좋아 백하린보다 백배 나아요.”“하준아, 고모가 골라준 신붓감 마음에 들어?”남하준이 마침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그는 한쪽 손을 벌려 서다인의 뒤에 있는 소파 등에 걸치고 그녀에게 몸을 기울여 다가갔다.“고모, 소개할게요. 이분은 내 아내 서다인이에요.”남연희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눈빛이 매서워졌다.남하준은 서다인을 보며 정식으로 소개했다.“다인아, 인사해.
그러나 남연희의 목소리가 너무 높아서 조금씩 들렸다.남연희는 눈물 없이 울기만 하다가 울면서 해묵은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그때, 두 분이 사업을 위해 밖에서 열심히 일할 때 애들을 전부 제가 키웠어요.”“첫째가 학교에서 괴롭힘당해 충격으로 똥오줌을 못 갈릴 때 내가 매일 심리상담을 해주고 안아주고 재워줬어요.”“둘째가 실연을 당해 투신하려고 했을 때, 내가 무릎 꿇고 뛰지 말라고 빌고 애를 죽음의 문턱에서 끌어왔어요.”“셋째는 승벽심이 가장 강했어요. 명품을 사겠다고 나한테 손을 내밀면 난 달라는 대로 다 줬어요. 애가 얼마나 예쁘면 그랬겠느냐고요.”“그리고 넷째는 반항적이라 매일 사회의 건달들과 어울리고, 싸우고, 수업을 빼먹고, 놀러 다녔어요. 그래서 내가 꾸준히 가르치고 타이르면서 애 마음을 달래줬죠.”남연희는 또 남하준을 가리켰다.“그리고 너, 다섯째는 세 살이 되었는데도 젖을 떼지 않았지. 새언니가 일하러 나가면 매일 나 쫓아다니며 내 옷을 들추고 젖 달라고 했잖아.”남하준은 심호흡하고 천천히 눈을 감고 꾹 참았다.서다인은 입술을 꾹 깨물고 웃음을 참았다. 남하준이 그녀의 귀를 꾹꾹 눌러도 그녀는 들렸다.‘형제들이 이 고모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어렸을 때 일이 하나둘씩 터지는 게 두려워서였네.’체면이란 존재하지 않았다.“그리고 백하린이 출국했던 해에 다 큰 애가 매일 개처럼 울었잖아. 폐인처럼 지내다가 술과 담배까지 배우고. 고모가 널 그 구덩이에서 꺼내준 거야. 다들 양심도 없지.”몇백 번을 들은 이야기라 남창민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였다.“연희야, 다 지나간 일이니 이제 그만해. 아이들 다 커서 체면이 있는데 자꾸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크긴 뭐가 커요. 내 눈에는 언제나 애들이에요. 내 손에서 자란 애들.”“내가 50대 중반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은 것도 다 애들 돌보기 위한 것 아니에요. 양심 없는 것들.”“고모가 너희들한테 어떻게 했는데. 정성껏 신붓감까지 골라줬더니, 내 말을 듣는 녀석이 아무도 없어.
남연희가 아이들을 키운 공로를 과시하고 있을 때, 문밖이 술렁거렸다.남씨 가문의 첫째, 둘째, 셋째가 모두 아내를 데리고 달려왔다.그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들어오자마자 물었다.“아빠 어디 계세요?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남연희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너희들 아버지 여기서 식사 중이셔.”남창민은 어리둥절했다. 아들과 며느리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달려왔다.“대체 왜 그러냐?”첫째 남희준은 남연희를 노려보고 아버지가 무사하자 애써 참으며 말했다.“고모가 아빠 뇌졸중으로 집에서 돌아가셨다고 하셨어요.”남창민은 밥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연희야, 거짓말을 해도 분수가 있지. 나를 뇌졸중으로 죽었다고 저주해?”남연희는 급히 달려가 남창민의 손을 끌어안고 애교를 부렸다. “거짓말을 했을 뿐이지 오빠 저주할 생각은 없었어요. 화내지 마세요. 네?”남창민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곧이어 모두가 둘러앉아 식사하게 되었다.남연희는 또 가문의 ‘양심’없는 사람 하나하나 반복해서 늘어놓았다.서다인은 두 번 들은 것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인데 남씨 가문 사람들은 대체 몇 번이나 들었기에 이 고모를 이렇게 두려워하는 것일까?식사 후.남연희는 아무도 못 떠나게 했고,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거실 소파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서다인은 남하준의 귀에 기대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하준 씨 형제들 진짜 고모가 키운 거 맞아요?”남하준은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아 서다인처럼 얼굴을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아니, 우리는 할머니 때부터 집에 하인이 부족하지 않았어. 어렸을 때부터 전담 도우미가 계셨어. 그런데 고모는 밖에 나가 일하지 않고 집안에만 있었으니 우리가 자라는 걸 지켜본 셈이지. 그러니 돌본 건 아니야.”“아버님이 고모님을 많이 예뻐하시는 것 같아요.”“그래, 확실히 그렇지.”서다인은 짓궂게 물었다.“고모님이 골라준 신붓감 맘에 들어요?”남하준은 미
최서윤은 남하준이 이렇게 아내를 보호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깜짝 놀라 긴장하여 침을 삼키고 비겁하게 대답했다.“도련님, 제가 쓸데없는 말을 했네요. 죄송해요.”서다인은 갑작스러운 남하준의 보호에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가슴이 뭉클했다.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뭐라고 하든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이 셋째 내외가 남을 무시하는 오만방자한 얼굴에 익숙했다.“뭐라고? 우리 엄마 옆에 있던 개인 간병인이라고? 세상에, 평판도 안 좋고 출신 배경도 안 좋고, 그러니까 그 어지러운 쪽방촌에서 나온 여자를... 퉤퉤퉤. 하준아, 어떻게 이런 여자를 아내로 삼을 수 있어? 창피하지도 않아?”남하준은 갑자기 안색이 변하고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 위엄 있고 패기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어디 다시 한번 말해봐요.”남연희는 놀라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발에 힘이 빠진 채 당황한 표정으로 남하준을 바라보았다.그가 이렇게 화내는 걸 처음 본 남연희는 그의 냉혹한 카리스마에 겁을 먹고 당황했다.한편 온가윤도 한층 우월감을 느끼며 눈가에 경멸의 빛이 은은하게 비치고 있었다.그녀는 처음에는 자신감이 없었는데, 인제 보니 남하준의 옆에 있는 빈민가 출신 아내보다 자신이 백 배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서다인은 자신 때문에 가족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특히 이 고모는 너무 무서워서, 일단 그녀에게 밉보이면 앞으로의 생활이 힘들 것이다.서다인은 얼른 남하준의 손을 잡고 아래로 잡아당기며 화를 가라앉히고 앉아서 말을 잘하기를 바랐다.셋째 내외는 남하준이 고모와 충돌하는 것을 보고 입꼬리를 치켜세우며 슬쩍 웃으며 연극을 보는 듯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남하준의 매서운 눈빛이 남연희를 당황하게 했고 그녀는 일부러 침착한 척 목을 축였다.“내... 말이 사실이잖아.”남하준은 깊은숨을 내쉬며 서다인의 손을 잡았다.“우리 방으로 들어갈게요.”서다인은 그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만약 그들이 이대로 떠난다면 고모는 앞으로 필
남서연은 복잡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저예요.”백건은 숨이 거칠고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말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다.그는 남서연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몰라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시간 있어요?”남서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물었다.백건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있어.”“잠깐 만나서 얘기할래요?”“좋아.”백건이 곧바로 대답하더니 또 물었다.“어디서 볼래? 데리러 갈게.”남서연이 생각해보니 밖에는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오빠 집으로 갈게요. 반 시간이면 도착해요.”“좋아.”남서연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쓰고 공중화장실을 나섰다.한편, 공항 가는 차에 타고 있던 백건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령했다.“차 돌려서 집으로 가.”“대표님, 비행기 시간 이미 다 됐어요.”백건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행사 취소하고 바로 집으로 가.”하현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전화를 들으니 아마 남서연일 것이다.백건에게 새 시즌 발표회는 취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고 없어도 되는 일이다.그러나 남서연을 만날 어떤 기회도 그는 놓칠 수 없었다.하현우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30분 후.남서연은 산 중턱 별장에 와서 막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하현우가 이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했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남서연은 살짝 놀랐다가 하현우인 걸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화원의 앞마당을 지나 웅장한 큰 집으로 들어갔다.문은 열려 있고 백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어 우아하고 멋스러우며 준수한 매력을 자랑했다.남자는 그윽한 눈동자로 남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다시 만난 남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마음속에 토끼 한 마리가 숨
백건은 당황해서 화를 내며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하현우는 침을 삼키고 목숨을 걸고 이렇게 말했다. “만약 한 여자가 대표님과 관계를 맺은 후 연락을 끊었다면 아마도 대표님의 돈과 권력 때문에 감히 저항하지 못했을 거예요. 진짜 대표님께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백건은 화를 참으며 또박또박 말했다.“아니, 돈과 권력이 부족한 여자가 아니야.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아.”하현우는 경악하더니 속으로 크게 흥분했다.‘뭐야? 대표님 설마 서연 아가씨와 잔 거야? 대단하네!’‘목숨을 걸고 남씨 가문의 권위에 도전하다니. 목숨을 바칠 정도로 위대한 사랑이라니.’하현우는 은근히 충고했다.“대표님, 어떤 여자들은 성격이 순하고 마음씨가 착해서 아무리 권위 있는 집에서 자라도 담은 작아요. 어려서부터 너무 잘 보호 받으며 자라서 나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려고 해도 거절할 줄도, 반항할 줄도 모르죠. 그래서 도망을 치죠.”백건은 쓴웃음을 지으며 심장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거절하지 않으면 마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가 일방적으로 남서연에게 상처를 준 걸까?개인적인 사리사욕을 위해 일방적인 행위를 가한 그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아닌가?백건은 눈을 감았고 가슴이 아파서 숨을 쉴 수 없었다. 속으로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남서연은 늘 낙천적인 성격이었다.그녀는 두 번의 잠자리로 인해 계속 괴로워하지 않았다.백건은 어쨌든 그녀가 짝사랑하는 남자였으니 아무리 쓰레기일지라도, 이미 일어난 이상 좋은 추억으로 여기기로 했다.그녀의 짝사랑도 욕망을 만족시킨 셈이었다.만약 백건이 그녀와 사귀고 싶지 않으면서 계속 그녀와 관계를 맺고 싶다면 그것은 절대 불가능했다.여다혜가 말한 대로 그녀는 더 이상 타락해서는 안 되었다.남자는 여자와 달리 사랑이 없어도 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그녀는 백건의 전화를 받지 않고 그의 메시지에도 답장하지 않기 시작했다.그 후 백건은 포기하고 그녀를 찾지 않았다.두 사람은 원래도 접촉이 많지 않았으니 남서연은 일
“남서연 씨는요?”직원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대표님, 서연 씨는 방금 가방을 챙겨 나갔습니다.”백건은 군말 없이 급히 몸을 돌려 성큼성큼 엘리베이터 앞으로 달려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남서연의 번호를 눌렀다.벨이 몇 번 울리더니 끊겼다.그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남서연이 다시 끊었다.세 번 연속 시도한 후 결국 포기했다.백건이 1층 로비까지 쫓아갔지만 이미 남서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는 풀이 죽어 위층으로 몸을 돌렸다.종일 그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날이 저물자 창밖의 네온사인이 유리창에 비쳐 창 앞의 남자를 비추고 있었다.그는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창문을 마주하고 하늘가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눈 밑은 번화한 경치였지만 그의 마음속은 황폐했다.그는 남서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그때 노크소리가 들렸고 하현우가 들어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이미 10시예요. 퇴근 안 하세요?”백건은 침묵했다.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그의 뒷모습은 쓸쓸해 보였고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뒤덮어 섬뜩하여 그는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하현우는 손목을 들어 시간을 보았다. 이미 몰래 저녁을 먹었지만 집에는 사랑하는 아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아무리 야근 수당이 있어도 또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그는 내키지 않았다.하현우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대표님, 혹시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세요? 제가 도와드려요?”백건은 말없이 돌아서서 성큼성큼 떠나갔다.하현우는 급히 옆으로 피했고 등이 뻣뻣해져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백건이 지나가고 나서야 그는 쪼뼛쭈뼛 따라갔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백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굴은 얼음처럼 차갑고 깊고 어두운 눈으로 창밖 거리의 야경을 바라보았다.차를 몰던 하현우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추측했다.“대표님, 혹시 서연 아가씨와 연락이 안 되세요?”고개를 돌려 하현우를 보는 백건의 눈빛은 차갑고 굳어 있었다.하현우는 놀라서 침을 꿀꺽 삼키더니 등
[좀 바빠요.][우리 만나서 얘기하자. 응?][서연아, 처음에 너도 거절하지 않았잖아? 왜 이제와서 이래? 이거 무슨 뜻이야?][기다릴 테니 내려와. 아니면 내가 올라간다?]남서연은 백건이 보낸 몇 개의 메시지를 보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마음이 더욱 불안해져 여다혜를 돌아보았다.여다혜는 연애경험이 비교적 풍부해서 거의 감정 전문가인 셈이었다.남서연은 의자를 옮겨 여다혜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다혜야,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여다혜는 책상 위에 엎드려 졸면서 중얼거렸다.“말해.”“내 친구가 있는데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남자를 계속 짝사랑했어. 근데 그 남자는 계속 그 친구에게 차가웠고 만날 때마다 일부러 숨었어. 마치 싫어하는 것처럼.”“나중에 내 친구가 커서 그 남자가 먼저 접근했고 아무 이유 없이 두 번이나 잤어. 그 남자는 대체 무슨 뜻일까?”여다혜는 번쩍 튕겨 일어나 앉더니 깜짝 놀라며 입을 가리고 남서연을 끔벅끔벅 바라보았다.“왜 그래?”남서연이 묻자 여다혜는 비통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서연아, 너 나쁜 남자 만났구나.”“내가 아니라 내 친구라고.”“그래그래. 네 친구.”여다혜는 서둘러 말을 바꾸고 슬픈 듯 입을 납작하게 하고는 눈에는 동정이 가득했다.“네 친구 나쁜 남자 만난 거야. 정말 너무해. 대체 어느 개자식이야?”남서연은 긴장감에 침을 삼키고 숨을 몰아쉬었다.“무슨 말이야?”여다혜는 그녀의 말을 바탕으로 분석했다.“네 친구는 커서 예쁜 여자가 된 게 틀림없어. 그래서 그 남자가 혹한 거지. 어렸을 때부터 네 친구를 좋아하지 않았어도 자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 남자는 하반신으로 고민하는 수컷이니까.”남서연은 얼굴이 희끗희끗해지며 축 처져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여다혜는 남서연의 차디찬 손을 맞잡고 위로했다.“서연아, 네 친구는 감정에 무지하고 세상 물정에 어둡고 순진해서 남자한테 속았을 거야.”“그런... 사람 아니야.”남서연은 무기력하게 해명했다.“그
끝난 후, 너무 수줍은 남서연은 백건이 어찌할 수 없는 틈을 타 재빨리 자신의 옷을 챙겨 입고 거의 도망가듯 뛰쳐나갔다.“서연아...”백건은 옷을 챙겨 입지 못해 따라잡을 수 없었다.그녀는 사무실을 뛰쳐나가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숨을 헐떡였다.그녀가 디자인 부서로 돌아왔을 때 여다혜는 급히 걸어가서 책상을 두 손으로 받치고 그녀의 붉어진 얼굴과 약간 불그스름한 입술을 보았다.“서연아, 왜 그래?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너 점심 먹었어?”남서연은 마음이 켕겨 감히 여다혜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먹었어. 혼자 먹었어.”“식당에서 너 못 봤는데? 그리고 평소에는 30분이면 다 먹더니 오늘은 왜 한 시간이나 걸렸어?”“나... 구내식당이 아니라 밖에서... 멀리 가서 먹었어.”여다혜는 불쾌해하며 그녀의 손을 두드렸다.“왜 좋은 곳에 나는 안 데리고 갔어?”남서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귓가에 있는 머리를 뒤로 넘겼다.“다음에. 다음에 꼭 데리고 갈게.”여다혜가 깜짝 놀라 외쳤다.“너 움직이지 마.”남서연은 경악에 찬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여다혜는 그녀의 긴 머리를 쓸어올리고 귓불 뒤 목덜미에 닿는 위치를 보며 의아해하며 물었다.“너 목에 왜 빨간 자국이 있어? 마크 같아.”“무슨 마크?”“키스 마크!”크게 당황한 남서연은 황급히 긴 머리를 풀어 목을 가리고는 화난 척 말했다.“함부로 말하지 마. 그냥... 긁은 거야. 모기한테 물려서 난 자국이야.”모기에 물린 것인지, 키스 마크인지 여다혜는 경험자로서 한눈에 알 수 있었다.더군다나 남서연은 지금 볼이 붉어지고 눈 밑에는 수줍음이 가득했다.여다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서연아, 너 정말 우리 오빠 안 좋아해?”“안 좋아해. 자꾸 엮지 마.”남서연이 나지막이 말하자 여다혜는 어깨를 으쓱하고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럼 돌아가서 희망이 없다고 오빠에게 말할게. 네 생각하지 말고 빨리 다른 여자 만나라고.”남서연은 담담하게 웃었다.
백건은 그녀 앞에 와서 안색이 어두워지고 눈빛이 흐려지며 부드러운 말투에 약간 불쾌함을 띠었다.“나 무서워하지 마. 서연아.”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가로저었다.백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일할 때는 좀 엄숙하긴 하지만 부하직원에게만 그래.”남서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나도 부하직원이잖아요.”백건은 화가 나서 웃더니 고개를 떨구고 어쩔 도리가 없었다.남서연은 자신이 말실수를 한 줄 알고 급히 해명했다.“무서워한 게 아니라 그냥 좀 적응이 안 됐어요.”차이가 너무 컸으니 말이다.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사납다가 갑자기 그녀에게 너무 다정하게 대해서 적응이 안 됐을 뿐이다.백건이 손목을 들어 시간을 살펴보더니 물었다.“배고파?”남서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너무 배고픈 건 아니에요.”백건은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옆 휴게실로 향했다.그는 남서연의 마음을 떠보고 싶었고 그녀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백건은 문을 열고 들어갔고 그녀도 끌고 들어갔다.문이 닫히자 남자는 곧장 그녀를 문짝에 눌렀다. 두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가두고 몸을 붙이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남서연은 깜짝 놀라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져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남자의 강한 호르몬이 그녀를 감싸고 있고 보이지 않는 압박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며 호흡에는 그의 몸에서 나는 향기가 가득했다.남자는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의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관능적인 목젖을 위아래로 구르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서연아. 네가 거절하지 않는 건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돼?”남서연은 머리가 하얘지고 몸이 약간 떨릴 정도로 긴장했다.문득 남자의 얼굴이 다가와 얇은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음!”그녀는 수줍은 소리를 내며 벽에 등을 바짝 붙였다.그의 키스는 매우 갑작스러웠고, 거칠면서도 거침없이 그녀의 입안을 침략하고 입과 혀를 섞었다.그의 키스는 매우 깊었다.남자는 서서히 자신의 몸을 눌렀고 나른해
그녀는 넓은 홀을 걸으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비서 자리는 텅 비어 있었고 하현우는 보이지 않았다.대표 사무실의 문이 굳게 닫혀있지 않았다.남서연은 궁금해서 앞으로 걸어가며 문을 두드리려고 했다.그때 안에서 서류 뭉치가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가까이 다가간 남서연은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백건의 냉엄한 목소리만 들렸다.“당신 사람들 데리고 당장 나가세요!”그러자 연륜이 느끼지는 중후한 목소리가 버럭 화를 냈다.“백건! 너무 나대지 마. 내가 네 할아버지와 사업을 일굴 때 넌 태어나지도 않았어.만약 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넌 날 보고 끽소리도 못 냈어. 네 아버지가 나를 봐도 아저씨라고 정중하게 부르는데 네가 감히 나를 해고해?”백건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맞아요. 나는 지금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을 해고하고 있어요. 당장 나가세요.”“네가 뭔데 나를 해고해? 내가 공로는 없어도 고생은 함께 했는데 어떻기 감히 나를 내보내?”“당신 손에 있는 주식, 매달 월급 그리고 매년 주어지는 배당금까지, 전부 고생 값이에요. 회사는 이미 현금으로 보상했으니 더 이상 빚진 것 없어요. 사람이 늙으면 능력이 떨어지고 더 이상 가치를 창출할 수 없으면 회사 자원을 점유하지 말고 집에 가서 노후를 보내야죠.”“백건. 네 이놈!”“당신 낙하산을 타고 들어온 사람들 한 명도 남기지 마세요.”또 한바탕 큰소리에 남서연은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예순 살쯤 된 늙은 남자가 양복 차림의 젊은이 몇 명을 데리고 사무실을 나섰고 입구에서 남서연과 부딪혔다.남자는 남서연을 매섭게 쏘아보더니 조롱했다.“바로 너야? 일개 디자이너가 감히 대표 사무실에 찾아와? 생긴 건 번지르르하네. 몸을 팔아 디렉터를 쫓아낸 거지?”남서연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전 디자인 디렉터도 그의 사람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깨달았다.말을 마친 남자는 사람들을 데리고 사무실을 떠났다.백건은 소리를 듣고 뛰쳐나왔고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안색이 좀 긴장된 남
“대... 대표님. 아침부터 제가 뭐 잘못했나요? 왜 그러세요?”백건의 목소리는 얼음 창고에서 흘러나오는 듯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느껴졌다.“어제저녁에 왜 야한 영화를 보냈어? 잘리고 싶어?”하현우는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렀고 침을 삼키고 긴장하며 말했다.“그건 대표님께서...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를 부탁하셨잖아요. 혼자 사는 성인 남자가 저녁에 영화를 달라고 하니. 그리고 대표님은 애니메이션도 안 보고 로맨스 영화도 안 보시니 분명 그런 장르를 원한 거 아니셨어요?”백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를 갈았다.“서연이가 보려고 한 거야. 내가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해 모르니 네게 부탁한 거고. 네가 무슨 짓을 한 줄 알아?”하현우는 어안이 벙벙하고, 입이 떡 벌어지며,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져 오랫동안 진정되지 않았다.백건은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그의 옷깃을 풀어주고 한 발짝 물러서서 경고했다.“만약 서연이가 이 일로 날 미워하고 나에 대해 나쁜 인상을 받았다면 넌 바로 아웃이야.”하현우는 깜짝 놀라며 90도로 허리를 숙였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반드시 만회할 방법을 찾을게요. 반드시 대표님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백건은 차가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하현우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고 급히 운전석을 열고 들어가 차를 몰고 떠났다.가는 내내 하현우는 어떻게 만회해야 할지 고민했고 백건은 뒷좌석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순간 하현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서연 아가씨께서 어제 영화를 끝까지 안 보셨죠?”“응.”백건이 덤덤하게 대답하자 하현우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물었다.“그럼 대표님은요?”“다 봤어.”백건이 솔직하게 말하자 하현우는 꾹 참으며 감히 웃지 못했다.그는 재미있는 영화를 거절할 수 있는 남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남자가 아닌 한.하현우가 또 물었다.“그런 영화 자원이 더 필요하세요?”백건은 서류를 덮고 눈을 감더니
색은 남녀의 천성이었다.남자로서 자신이 호색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었다.“호색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때는...”백건이 설명하려는데 남서연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남서연은 다급히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뒤적거리며 크게 당황했다.백건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벨 소리에 묻혔다.“내가... 널 좋아하니까.”“여보세요, 할머니!”남서연은 휴대전화를 귓가에 대고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친구랑 같이 있어요. 곧 돌아가요... 아니에요. 오빠가 데리러 올 필요 없이 저 혼자 택시 타고 돌아가면 돼요... 자꾸 저 어린애 취급하지 마세요. 저도 이제 23살이에요. 어린애가 아니라고요... 네 알겠어요. 이따가 봬요.”남서연은 통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고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요?”백건은 안색이 굳어지더니 말이 목에 걸렸다. 몇 초 동안 침묵하다가 몸을 돌려 차 키를 가지러 갔다.“데려다줄게.”“괜찮아요. 택시 타고 가면 돼요.”남서연이 거절했지만 백건은 차 키를 들고 신발을 갈아 신고 남서연의 옆을 지나면서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남서연은 등뼈가 굳어지며 한발 한발 밖으로 따라나섰고 시선은 자신의 손을 잡은 남자의 손에 고정되었다. 그의 따뜻한 큰 손바닥은 마치 전류가 흘러 그녀의 손바닥 피부에서 팔다리로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다정한 촉감에 그녀는 심장이 벌렁거렸다.그녀는 온몸이 긴장되고 호흡이 좀 가빠졌다.백건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손바닥을 잡아주고 있었다.이토록 다정하게 남자의 손바닥에 닿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남서연은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져서 가슴이 쿵쾅대며 몰래 즐거워하고 있었다.백건은 그녀를 차량 옆으로 끌고 가 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수줍게 숙이고 있었다.여자의 수줍은 자태는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그제야 자신이 남서연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손을 놓지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