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영이 비꼬며 말했다.“다인이가 자기보다 재능있는 게 탐탁지 않은가 보지? 전문가에게 이미 검증 받았어. 이건 지완의 진품이 확실해. 이제 어떡해? 다인이가 몸값이 수십억에 달하는 자선 화가라는 걸 인정해야겠네?”남희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이미 감정했어요.”최서윤은 얼굴빛이 갑자기 변하고 화가 잔뜩 났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서다인은 약간 난처해 보였다.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을 유가영이 이렇게 확신에 차 말하니 너무 부끄러웠다.이때 남하준은 입꼬리를 꼬며 여유로워 보였다.집안의 누군가가 마침내 그의 아내의 장점을 알아주었다.남연희는 화를 참지 못하고 코웃음을 쳤다.“우리 가윤이는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웠어. 뭣도 모르는 사람이 아무렇게나 그려 감히 그림을 수십억 원에 팔아?”유가영이 반박했다.“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그려도 그림이 수십억 원에 팔리는데 고모님의 수양딸이 그린 건 얼마나 팔리나 몰라요?”남연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남희준은 어수룩하게 웃으며 그림을 말며 말했다.“지금 대학생이 얼마나 많은데. 대학생 학력으로 취직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가 그린 그림을 혼자 감상하는 수밖에 없죠.”화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질린 남연희는 갑자기 옆에 피아노가 있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우리 가윤이는 피아노도 칠 줄 알아. 얼마나 잘 친다고!”남연희는 말하면서 피아노 쪽으로 온가윤을 끌고 갔다.“가윤아, 네 실력을 보여줘 봐.”온가윤은 거절하지 않고 거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살짝 허리를 굽히더니 말했다.“그럼 한 곡 올리겠습니다.”말을 마친 후, 그녀는 앉아서 그럭저럭한 피아노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최서윤은 음악 가문 출신이라 음악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들으면 들을수록 눈살을 찌푸리며 시큰둥한 기색을 보였다.다른 사람들은 피아노에 대해 잘 알지 못해 곡이 그런대로 듣기 좋고 매끄럽다고 생각했다.연주가 끝나자 남연희는 감격에 겨워 박수를 치며 자화자찬했다. “우리 가윤이 정말 대단해. 피아노
서다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유가영이 다가가 남하준에게 ‘내가 처리할 테니 안심하라’는 눈빛을 보냈다.그리고 서다인을 끌고 정의롭게 말했다.“다인아, 겁먹지 마. 그냥 생일 축하곡이라도 들려주자.”서다인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형님, 저 못해요.”유가영은 서다인의 귀에 기대어 중얼거렸다.“걱정하지 마. 피아노에 이미 녹음된 버전이 있어. 그냥 아무렇게나 연주해. 내가 곡을 틀어줄게. 고모님한테 얕보이지 마.”서다인은 피아노 쪽으로 끌려갔고 그녀는 힘없이 남하준을 돌아보았다.하지만 남하준은 꼼짝도 하지 않고 소파에 기대어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유가영을 믿고 있었다.기억을 잃은 3년 이래, 서다인은 처음으로 피아노 앞에 앉았지만 위의 건반 위치가 그렇게 익숙하다는 것을 발견했다.유가영은 피아노로 생일 축하 노래를 몰래 틀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괜찮아.”최서윤은 그녀의 속임수를 간파한 듯 일어서서 말했다.“잠깐만요.”모두가 최서윤을 쳐다보았다.최서윤은 서다인에게 다가가 피아노 선반에 있는 두툼한 악보를 내밀었다.“여기서 아무 곡이나 골라. 단 생일 축하 연주곡은 안 돼.”말을 마친 후 그녀는 녹화 버튼을 꺼버렸다.유가영은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분개하여 말했다.“동서, 사람을 괴롭혀도 분수가 있지. 다인이가 동서한테 뭐 잘 못 했어? 대체 왜 그래?”최서윤은 오만하게 코웃음을 쳤다.“형님, 제가 언제 다인이를 괴롭혔어요? 그냥 아무 곡이나 연주하라고 했죠. 가장 쉬운 곡을 연주해도 되잖아요.”“그게 괴롭힌 거지!”“그럼 그런 거로 하죠.”두 사람이 다투고 있을 때 서다인은 이미 악보를 뒤지고 있었다.기억을 잃은 지 3년 만에 처음으로 악보를 본 것이다.뜻밖에도 음표 하나하나를 다 볼 수 있고 또렷하게 그들의 키를 알고 있었다.그녀는 악보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더니 두 손을 건반 위에 올렸다.머리는 텅 비었지만 몸의 근육이 기억하고 있었고 그녀의 손가락은 어느새 악보의 리듬에 따라 움직였다.피아
유가영은 의기양양하게 돌아서서 거실에 있는 남연희를 향해 비웃었다.“고모님은 다인이가 수양딸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우세요?”“난.”남연희는 말문이 막혔다.남하준은 천천히 일어나 피아노 쪽으로 다가가 서다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우리 먼저 방으로 가자.”서다인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그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갔다.유가영은 또 남연희와 말다툼을 했고 최서윤은 화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화가 잔뜩 난 채 소파 앞으로 가서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남영준을 못마땅하게 걷어찼다.“더 듣고 싶어요? 안 일어나고 뭐 해요?”남영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얼른 따라갔다.둘째 내외는 서로를 쳐다보며 아직 꿈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듯했다.그들이 가장 경멸하는 서다인이 피아노곡을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그때 남창민이 허윤미에게 속삭였다.“여보, 우리 작은 며느리가 이렇게 재능이 있을 줄은 몰랐네. 우리 엄마의 안목이 좋았던 거야.”허윤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니까 저도 깜짝 놀랐어요. 유명한 자선 화가일 뿐만 아니라 대단한 피아니스트라니.”남창민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아. 그림이나 음악의 예술적 조예가 이렇게 깊다니. 특히 그림은 명성이 자자한 지완 화가이지만 그런 재능으로 돈을 벌지 않고 단지 취미 생활로 하는 것 같아.”“그럼 다인이가 또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을까요?”“글쎄. 하지만 소문에 떠도는 그 끔찍한 흑역사는 틀림없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 같아.”허윤미도 동의하며 분개해서 말했다.“백프로 헛소문이에요. 우리 며느리가 얼마나 재능도 넘치고 얼굴도 예쁜데. 절대 남자에 기대어 돈을 벌 애가 아니에요.”남창민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그래, 앞으로 누가 감히 우리 막내며느리를 욕한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방 안.남하준이 문을 닫았다.서다인은 방 안에 서서 남하준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고 여전히 충격에 휩싸여 있
남하준의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며 서다인은 호기심에 물었다.“하준 씨, 전에도 권위적인 감정서가 있었는데 왜 계속 내가 서다인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거죠?”남하준의 깊은 눈망울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요리도 못하고 집안일도 못 하는 여자가 피아노를 치고 꽃꽂이 예술을 알고, 차뿐만 아니라 화학 지식, 여러 나라 언어를 알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보는 취미가 있는 여자는 재벌가 딸이 아닐지는 모르지만 절대 빈민가에서 자란 여자는 아니야.”서다인은 그의 말이 매우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문득 남하준은 겉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고 논리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많은 사람이 그녀의 과거를 듣자마자 바로 편견을 갖고 그녀가 분명 풍자적이고 타락한 나쁜 여자일 것으로 생각했다.하지만 남하준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를 존중하고 있었다.지금까지 그녀의 과거를 깔보고, 공격하고, 무시한 적이 없었다.서다인의 몸은 살며시 남하준에게로 다가와 고개를 젖히고 일말의 기대와 긴장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준 씨, 만약...”남하준이 고개를 숙였다.“뭐?”서다인은 갑자기 머리가 팽팽해졌고 등에 땀이 나고 용기 내 고백하려고 목소리가 가늘어졌다.“만약 내가 서다인이 아니라면...”남하준은 그녀가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아니라면?”“그럼... 하준 씨가...”인내심 있게 그녀의 말을 기다리던 남하준은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느꼈다.서다인의 목구멍에 걸린 목소리와 심장 박동은 더욱 강렬해졌고 그녀는 긴장하여 손바닥에서 땀까지 흘렸다.‘그럼 당신이 날 조금 좋아하지 않을까요?’하고 싶은 말이 서다인의 머리를 한 번 스치자 귀뿌리가 뜨거워지고 볼이 붉어졌다.그녀는 결국 부끄러워서 말을 하지 못하고 다른 말을 했다.“그럼 내 가족을 찾아줄 수 있어요?”남하준의 눈에는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 그가 기대했던 물음이 아니었다.자신의 오해에 난감해진 남하준은 뜨거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물론이지.”그
그녀는 어머니의 번호를 눌렀다.벨이 한참 울리고 끝날 무렵, 연결되자 반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더... 더... 더.”“젠장. 이번에도 망했네.”“여보세요! 누구세요?”어머니의 욕설을 듣던 서다인은 가슴이 답답해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엄마, 나 다인이에요.”진화연의 말투는 순간 부드러워졌다.“아이고, 우리 딸. 요즘 건강은 어때? 그 할망구는 건강하고?”서다인은 가족에게 혼인 신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가족들은 그녀가 수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줄 알았다.“다 좋아요.”서다인은 덤덤하게 말했다.진화연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휴, 그런데 내 상태가 별로 안 좋아. 하루하루가 다르게 혈압도 높고 혈당도 높아. 최근에는 풍습까지 도져서 밤새도록 잠을 잘 자지 못하여. 네 아빠는 술 퍼마시고 돌아와 날 때리고. 딸아. 엄마는 요즘 너무 힘들단다. 네 철없는 오빠는 빚만 지고 여기저기 숨어다니느라 나한테 한 푼도 주지 않았어.”“풍습이 도져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아파서 난 일을 할 수가 없어.”“너희 아버지는 밤낮없이 술을 마시고 술주정만 하지. 난 어떻게 사니?”“딸아...”서다인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그녀의 말을 끊었다.“알겠어요. 이따가 생활비 보내드릴게요.”“소중한 딸, 고마워.”진화연은 감격에 겨웠다.“엄마, 나 부탁이 있어요.”“모녀 사이에 부탁이라니. 뭔데 그래?”“나랑 병원에 좀 다녀와요.”진화연은 당황했다.“너 어디 아파?”“엄마, 나...”서다인은 입가에 맴돌았다가 막혔다.진화연은 계속 서다인을 얌전하고 효심이 밝고 상냥하고 이해심이 많게 잘 자랐다고 칭찬하며 그녀를 매우 좋아했다.그런데 갑자기 DNA 재검사를 제안한다면 진화연은 분명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이렇게 착하고 효도하는 딸을 어떻게 날려 보낼 수 있겠는가?서다인은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엄마, 나 면역 질환에 걸린 것 같아요. 의사도 확신이 안 서서 우리 가족이 이 방면의 유전자를 가졌는지 검사하고 치료하겠대요
백씨 가문 별장.남하준의 차가 별장의 정원 밖에 주차되어 있었다. 그는 초조하게 차에서 내려 별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으리으리한 홀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가죽 소파에는 백발이 성성한 두 노인과 그들의 양아들 백인호가 앉아 있었다.“하준이?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백진은 놀라서 일어섰다.남하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깍듯이 인사했다.“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세요.”여은수는 벨벳 손수건을 들고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내가 하준이에게 오라고 연락했어. 우리 손녀딸이 죽으려고 하는데 당신은 아직도 그렇게 모질어?”백진은 연세 가득한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이 할망구가 왜 이래? 하준이가 얼마나 바쁜데 애를 귀찮게 해? 그럼 하준이 부인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여은수는 이를 갈며 화냈다.“난 몰라. 난 내 손녀만 잘 살면 돼.”백진은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었다.“이 사람이...”남하준은 걱정스레 물었다.“할아버지, 할머니. 하린이 좀 어때요?”백진은 한숨을 내쉬었다.“손목을 몇 번 그어서 피 몇 방울 떨어뜨렸을 뿐이지 죽지 않았어.”여은수는 백진을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이 늙은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린이 아직 어려. 잘못하면 천천히 타이르면 되지. 애를 반성하라고 구금하는 것도 모자라 하준이에게 연락하지 못하게 휴대폰까지 빼앗아?”“하린이가 하준이를 그렇게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어디 쉽게 포기가 되겠어? 당신이 오랫동안 애를 가둬서 우울하게 만들었잖아? 의사도 그랬어. 하린이 심한 우울증이라고! 지금 시도 때도 없이 자살하고 싶어 한다니까.”“이 늙은이, 내 하나뿐인 아들과 며느리가 다 죽었는데 이제 남은 귀한 손녀까지 죽이려고? 대를 끊을 생각이야?”가장자리에 앉은 백인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색이 어두웠다.“닥쳐, 인호가 여기 앉아 있는 거 몰라?”여은수가 울먹이며 말했다.“당신이 입양한 자식이지 내 자식 아니야!”백진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말다툼은 이 노파를 이길 수 없었다. 그래
두 명의 의사가 황급히 달려들었다.“도련님, 아가씨께서 지금 매우 불안정합니다. 더 이상 자극하시면 안 됩니다. 빨리 안아주시고 위로해 주세요.”남하준은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펑펑 우는 백하린을 보며 마음이 착잡했다.순간 손을 뻗어 백하린을 품에 안으며 위로했다.“울지 마. 바보 같은 짓도 하지 말고.”백하린은 남하준의 품에 안겨 흐느끼며 말했다.“오빠 진짜 잊은 거예요?”“내가 외국으로 떠날 때 공항에서 나 배웅해 주면서 나한테 일찍 연애하지 말고, 오빠를 잊지 말고, 커서 꼭 돌아와야 한다고, M국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잖아요.”“평생이 걸려도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고 했으면서.”“그런데 내가 돌아왔는데 왜 나와 결혼하지 않는 거냐고! 흑흑...”헤어진 아픔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남하준이 당시 얼마나 이 여자를 사랑했는지,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제 그는 백하린에게 그 당시의 느낌을 찾을 수 없었다. 설렘도 없고, 두근거림도 없고, 긴장도 없고, 강렬한 충동도 없고, 이끌림도 없고, 남녀 사이의 욕망도 없다.어쩌면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마음가짐과 감정이 변할지도 모른다.또 어쩌면, 그가 한결같은 마음을 가질 수 없는 쓰레기일지도 모른다.남하준은 백하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동생을 달래듯 사과했다.“미안해, 하린아.”남하준은 하루 종일 백씨 가문에서 백하린의 곁을 지켰다.저녁이 되자 그는 서다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밤 일이 좀 있어서 집에 안 들어가니까 일찍 쉬어.]서다인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도 여전히 괴로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다음날 점심.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해 어두웠고 공기는 매우 건조하고 바람 한 점 없이 무더웠다.병원 정문에 서서 기다리던 서다인의 마음은 바위처럼 무거웠다.진화연은 병원 현관 기둥에 물렁뼈처럼 기대어 성가신 표정을 지었다.“다인아, 대체 누구를 기다린다는 거야? 얼른 들어가자. 번호표 뽑으려면 줄 서야잖아.”얼마나
서다인은 걸어서 남씨 저택으로 돌아왔고, 두 시간 동안 비를 맞고 방에 들어갔더니 녹초가 되었다.샤워 후 긴 머리를 말리지 않고 맥없이 침대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잠이 들어야 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하루 종일 그녀는 방문을 나서지 않았고 배고픔도 느끼지 않았다.한밤중이 되어서야 그녀는 몸이 뜨겁고 불편함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천천히 깨어나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남하준에게 전화를 걸려고 핸드폰을 들었다.마침 그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는 급히 확인했다.[나는 아직도 하린이를 사랑하고 있어.]이 문자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녀의 심장을 파고들었다.뼈에 사무친 아픔.눈물이 둑이 무너지는 홍수처럼 끊임없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느낀 서다인은 서둘러 휴대폰을 내려 머리를 높이 쳐들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그녀는 심호흡하며 참았다.그러나 숨결은 칼을 찬 것처럼 그녀의 가슴을 찔렀다.통증이 그녀를 더욱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들었다.목이 따가워나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한참을 추스른 후에야 서다인은 울음을 참으며 눈물을 닦았다. 휴대폰을 들고 답장했다.[알겠어요. 언제 가정법원에 갈 수 있는지 알려줘요.”남하준: [난 이혼하든 안 하든 괜찮아. 네 뜻에 달렸어.]서다인은 이 말을 보고 마음이 싸늘해졌다.이혼하든 안 하든 괜찮다는 것이 대체 무슨 뜻일까?그녀의 뜻에 달렸다니?‘나쁜 놈, 내 감정 따위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거야? 내 청춘을 이 희망 없는 결혼에 낭비하는 게 아니었어.’서다인은 침대에서 내려와 약을 찾으려고 휴대폰을 껐다.그녀가 막 침대에서 내려왔을 때 머리가 어지럽고 두 발이 나른해지며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넘어졌다.“아!”두 손을 바닥에 세게 문지르자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온몸에 퍼졌고 그녀는 찬 숨을 내쉬며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온몸에 힘이 없고 뼈가 쑤시는 것을 느꼈다.몸의 고통은 그녀의 마음의 1만분의 1도 안 되었다.큰 무력감과 박탈감을 느꼈다.그녀
남태준은 당연히 진효연의 뜻을 알았다.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진효연은 자기 자식을 너무 사랑했고 딸은 결국 시집갈 것이고 평생 그녀와 함께할 수 없으므로 아들에게 더욱 마음이 기울 것이다.가난한 사람 중에는 가식적인 사람이 많았다.하지만 본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진효연이 남태준은 마음에 들었다. 무슨 생각이든 마음에 숨겨두지 않고 바로 표현할 줄 알았으니.남태준이 여유롭게 말했다.“아주머니, 지성이가 공무원이 되려면 반드시 공무원 시험을 쳐야 해요. 통과해야만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어요.”진효연은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공무원 시험이 어디 쉽나.”“만약 공무원이 되기 싫으면 안성에 가도 돼요. 제가 가족들한테 회사에 맞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할게요.”진효연은 싱글벙글 웃으며 남태준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고마워 태준아. 내가 정말 많이 고마워.”지성도 기뻐했다.“고마워요 형.”지우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밥 먹을 기분이 없어 수저를 놓았다.그녀는 아직 남태준의 여자친구가 아닌데 그녀의 가족은 흡혈귀처럼 그에게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관계가 더 가까워지면 앞으로 어떤 무리한 요구를 제기할지 모른다.지우는 지성을 가리키며 경고했다.“너 못 가.”진효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지우를 쳐다보며 불쾌하게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지성도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내가 왜 못 가? 누나도 내가 나가서 돈 벌기를 바라잖아.”지우는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면접 보고 들어가는 건 되는데 낙하산은 절대 안 돼.”“왜?”지우는 제대로 된 신분으로 자존감을 갖고 남태준과 만나고 싶었다. 그의 도움을 받으며 난처한 위치에 처 하고 싶지 않았다.“그냥.”“내가 언제 누나더러 도와 달래? 난 태준이 형에게 부탁했어. 게다가 형도 흔쾌히 수락했고.”“너 바보니? 일자리도 혼자 못 찾아?”“내가 졸업한 대학교가 평범하잖아. 취업이 어려운 요즘 세상에 대기업 들어가는 일이 어디 쉬운 줄 알아?”“그래도 넌...
네모난 식탁에는 여섯 가지 요리에 국 하나, 그리고 디저트와 과일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새우, 게, 생선, 닭, 쇠고기, 야채, 수입산 인삼 비둘기 찜이 있었다.이러한 음식은 그다지 비싸지 않지만 남태준은 명절이나 중요한 날이 아니면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한 상 가득한 음식을 보던 남태준이 시선을 돌려 지성의 어두운 얼굴을 보니 이 맛있는 음식들이 지성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지성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엄마, 의사가 상처 완전히 아물기 전에는 담백하고 잘 소화되는 음식을 많이 먹고 기름진 음식은 피하라고 했어요. 아직 이런 음식은 벅차요.”진효연은 야채를 집어 지성의 그릇에 놓았다.“넌 야채 많이 먹어. 이건 충분히 담백해.”지성은 게를 보며 침을 흘렸다. 평소 해산물을 거의 먹지 않는 그의 집에서 하필 그가 다쳤을 때 해산물을 준비하다니.밥을 먹기도 전에 화가 잔뜩 불렀다.진효연은 집게로 가장 큰 게를 집어 남태준 앞에 놓인 작은 접시에 놓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태준아. 넌 이거 많이 먹어.”“감사합니다.”남태준은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지우를 쳐다봤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국을 먹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태준은 진효연이 너무 열정적인 것 같았다.설마 그를 수양아들로 삼아 지우의 오빠로 만들고 싶은 걸까?“혹시 게 뜯는 도구 있어요?”남태준이 식탁을 보며 묻자 진효연은 어리둥절했다.게를 자주 먹지 않으니 게를 먹을 때 전문적인 도구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지우는 그릇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달려가 깨끗한 작은 가위와 커피용 작은 숟가락을 꺼내 남태준에게 건넸다.“대충 이거라도 써요. 우리 집은 게를 먹을 때 그냥 입으로 뜯었어요.”지우가 부드럽게 말하자 남태준은 엷게 웃으며 도구를 받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우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계속했다.진효연은 남태준에게 해산물을 집어주고 지성에게 닭고기를 집어주며 많이 먹으라고 했다.다들 열심히
지우가 물건을 들고 지성의 방으로 가져갔다.남태준은 신발을 갈아신고 들어가서 그녀의 집안을 둘러봤다.확실히 좀 좁고 낡긴 하지만 깔끔한 편이었다.부엌 맞은 편에 바로 식탁이 있고 식탁 옆에는 거실이 있고 거실 소파도 짧아서 세 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텔레비전은 구식이고 냉장고도 작아서 거실 구석에 비치되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비좁아 보였다.“태준이 왔어?”진효연은 음식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며 활짝 웃으며 열정적으로 맞이했다.“앉아. 어서 앉아. 준비 거의 끝나가.”너무 친절하고 다정한 태준이라는 호칭에 남태준은 조금 어리둥절했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제가 뭐 도와드릴까요?”“없어. 없어. 그저 앉아서 차나 마시고 지우와 얘기나 나누면 돼. 부엌일 정도는 나 혼자로 충분하지.”남태준은 또 움찔했다.지우와 얘기를 나누라니. 조금 어리둥절했다.너무 갑작스러운 열정에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지성은 부랴부랴 남태준에게 거실 소파에 앉으라고 청한 뒤 녹차 한 잔을 우려낸 뒤 리모컨을 건넸다.“TV 볼래요?”남태준이 다급하게 거절했다.“괜찮아.”지성은 습관적으로 TV를 켜고 스포츠 채널을 누르면서 말했다.“누나는 로맨스 드라마만 좋아해요. 누나가 집에 있으면 내가 리모컨을 차지한 적이 없어요.”남태준이 따뜻하게 웃었다.“그건 직업 때문에 그런 거잖아.”“형도 누나 글 쓰는 거 알아요?”“누나가 경찰의 사랑 이야기를 쓴 적 있는데 아쉽지만 결말은 비극이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책을 출판했어요.”남태준은 방금 찻잔을 들자마자 흠칫 놀라더니 동작이 뻣뻣해져서 차마 차를 마실 수 없었다.방 안에서 지성의 옷을 챙겨주던 지우가 그의 말을 듣고 노기등등하게 뛰쳐나왔다.“야. 너 그 부질 없는 입 다물어!”남태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지우를 바라보았다. 뾰로통한 그녀의 모습이 아주 귀여웠다.하지만 지성에게는 그저 무서울 따름이었다.지성은 긴장한 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담담하게 TV를 계속
지우가 휴대전화와 가방을 들고 일어서니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래. 그럼 나 간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남태준의 옆을 지나갔다.남태준의 시선은 그녀를 따라 움직였고 그녀가 병실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벼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지우는 그와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저번에 강제로 그녀의 몸을 가지려고 해서 그녀를 놀라게 한 것 같았다.요 며칠 동안 그는 끝없는 번뇌와 후회 속에 살았다.그때 지성이 가방을 들고 남태준 앞으로 다가왔다.“형. 가요.”남태준은 정신을 차리고 그의 가방을 받아들며 말했다.“내가 들게.”지성은 크게 기뻐했고 눈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고마워요. 형.”차에 오른 남태준은 차에 시동을 걸고 천천히 출발했다.잠시 후 지우가 뒤에서 따라오자 남태준은 속도를 줄이고 백미러로 지우가 스쿠터를 타는 모습을 보며 약간 멍해졌다.지성이 그런 남태준의 상태를 눈치채고 말했다.“누나 기다릴 필요 없어요. 매일 다니는 길이라 아주 익숙해요. 조금 있다가 앞쪽 길목에 도착해서 오솔길로 빠지면 누나가 우리보다 훨씬 빨라요.”남태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덤덤하게 대답했다.“그래.”지성은 힐끔 남태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사실 우리 누나가 가끔 사납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착하고 어질어요.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사람 잘 챙길 줄 알고 성실하고 선량한 편이에요.”남태준이 입술을 오므리며 가볍게 웃었다.“알아.”“아주 가정적인 사람이에요.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을 때, 난 대학생이었고 누나 혼자 힘으로 이 집안을 지켰어요. 병원비며 빚이며 모두 누나 혼자 짊어졌어요.”남태준이 계속 응대했다.“알아. 지우 좋은 사람인 거.”지성이 궁금해서 물었다.“우리 누나 좋은 사람인 거 알면서 왜 헤어졌어요?”남태준은 조금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네 누나가 나 안 좋아해. 별로 느낌이 없대.”지성은 입을 떠벌리고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갈았다.“누나 사람 보는 눈은 개나 줘버렸나? 난 또 엄마가 두 사람
‘너 참. 한심하다!’지우는 속으로 자신을 욕하며 스쿠터를 돌려 힘없이 집 쪽으로 향했다.다음 날.지우는 더 이상 남태준을 찾으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매일 휴대전화를 보며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그가 메시지 한 통이라도 보내길 바랐다.그를 찾으러 갈 용기와 핑계가 필요했지만 메시지는 끝내 오지 않았다.지성의 퇴원을 앞두고 진효연은 집에서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그녀에게 남태준을 부르라고 했지만 지우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병원 병실.지성은 옷을 개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지우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물었다.“나 퇴원하는 거 도와주러 온 거 아니야? 왜 아무것도 안 하고 폰만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어?”지우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지성을 쏘아보며 나무랐다.“너 이제 움직일 수 있잖아? 옷 몇 벌 개인다고 안 죽어.”“누나 같은 여자를 어느 남자가 데려가겠어? 정말 불쌍하다.”워낙 기분이 안 좋았던 지우는 그 말을 듣자 더욱 괴로워 벌컥 화를 냈다.“누가 너더러 데려가래?”지성과 지우는 어릴 적부터 서로 치고받으면서 커왔고 어린이 된 지금도 자주 다퉜다.지성이 인정사정없이 말했다.“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여자가 바로 누나 같은 여자야. 지나가는 남자들 다 홀릴 것 같은 몸매를 지닌 것도 모자라 여자가 상냥하지도 않고 어질지도 않고 배려심도 없고 사납고 악독하잖아!”지우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되받아쳤다.“그래 나 몸매 좋다! 부렵냐? 너처럼 깡마른 자식은 대나무 장대 같은 아내밖에 차려지지 않아!”“너!”지성은 화가 치밀어 상처가 아팠고 어두운 얼굴로 지우를 가리켰다.지우는 멈추지 않고 계속 공격했다.“아니다. 너 같은 놈에게 어느 여자가 시집가겠어? 평생 노총각으로 늙어 죽어라!”지성은 이를 악물었다.“누나. 말이 너무 심하잖아!”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지우와 지성은 모두 조용해져서 입구 쪽을 보았다문은 열려 있었고 남태준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서 그들 남매가 다투는 것을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지우는 당장 남태준을 찾아가고 싶었다.그러나 어젯밤 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 그의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녀를 상대할 의향이 있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어젯밤 자신이 남태준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보았다. 그는 아직도 답장하지 않았다.어제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매몰차게 말했는데 지금 다시 메시지를 보내 다시 만나자고 하면 너무 성의 없어 보이지는 않을까?이렇게 하면 그녀가 남태준을 대하는 감정이 제멋대로이고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처럼 오만하게 보이지 않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고민하다 보니 생각이 많고 마음이 착잡했다.전화도 문자도 모두 성의 없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그녀는 스쿠터를 타고 경찰서로 향했다.이 시간에 남태준은 이미 퇴근했을 것이다.저녁노을이 지우에게 쏟아지고 그녀는 저녁 바람을 맞으며 길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더없이 좋았다.가락을 찾지 못하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스쿠터가 무성한 오동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봄바람이 불어와 공기마저 향긋했다.지우는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30분 후. 경찰서 입구에 도착한 지우는 브레이크를 밟고 전원을 끄고 대문 안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안에서 계속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데 유독 남태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지우는 한참을 기다렸다가 차를 잠그고 가방을 들고는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좀 긴장되었다.들어가서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전부 업무를 보고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들이었다.그때 경찰복을 입은 남자가 지나가면서 물었다.“어떻게 오셨죠?”지우는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긴장하며 물었다. “실례지만 마약 단속팀 남 대장님 계시나요?”남자는 사무실을 돌아보며 대답했다.“안 계세요.”“그럼 어디로 가셨죠?”지우가 또 묻자 경찰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주시했다.“누구시죠? 무슨 일로 남 대장님을 찾으시죠?”지우는 상대방의 경계심과 엄숙함이 느껴졌고 뭔가 사납고 엄한 압박감을 주는
“난...”진효연은 당황하고 긴장하여 침을 꿀꺽 삼켰다.“이게 전부 너를 위해서야.”지우는 눈물을 닦고 울며 말했다.“전 세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거의 매일 사람이 죽어요. 병으로 죽거나 사고로 죽거나 살해당하거나.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거 아니에요?”“내가 만약 운전기사와 결혼하면 남편이 운전하다가 차에 치여 죽지 않는다는 보장 있어요?”“내가 작은 가게 사장에게 시집가면 그 사람이 술을 많이 마셔 죽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어요?”“만약 농부에게 시집가면 가난해서 죽겠네요?”“뉴스 보면 가문이 몰살되는 참사가 얼마나 많아요?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고 마약 형사만 해당하는 거 아니라고요.”“제발 엄마의 그 비참한 운명을 나에게도 돌리지 말라고요!”지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파에 엎드려 목놓아 울었다.진효연은 어찌할 줄 몰라 멍하니 있으며 감히 움직이지도 못했고 마음도 어지러워졌다.한바탕 눈물을 흘린 지우는 일어나서 눈물을 닦고 코를 훌쩍였다.“엄마 첫사랑인 그 약혼자가 뜻밖에 세상을 떠나 결혼하지 못한 건 엄마 평생의 한이겠죠. 이제 나도 똑같아요. 다른 점은 내 첫사랑은 죽지 않았다는 거죠. 하지만 우리 감정은 엄마 때문에 이미 억눌려 죽었어요.”진효연은 얼굴이 창백하여 넋을 잃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말을 마친 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고 거실은 적막했다.진효연은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넋을 잃은 채로 소파에 멍하니 있었고 초점을 잃은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그날 밤, 지우도 잠을 설쳤고 진효연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이튿날 아침.하룻밤이 지나자 지우는 어제저녁 자신이 한 말이 너무 심해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쨌거나 진효연은 지우를 사랑하고 걱정하기 때문이었다.지우는 미안한 마음으로 진효연의 방문을 두드렸다.“엄마. 일어났어요?”방안에 인기척이 없자 지우는 또 몇 번 두드리며 마음이 조급해졌다. 진효연은 늘 정서적으로 불안했고 늘 삶에 대
지우가 난동을 부릴수록 남자는 더욱 괴로웠다.남자의 키스는 그녀의 입술에서 천천히 떨어져 나가며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부드럽게 닿았다.지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울다가 눈을 감은 채 몸을 떨며 울먹였다.“태준 씨. 이러지 말아요.”“사랑해 지우야.”그녀의 귓불에 키스하고 있는 남자의 목소리는 빠져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지우는 그의 손길이 스쳐 지나고 그가 키스한 피부에 마치 전류가 흘러 사지를 관통하고 온몸이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그녀는 두렵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갈망하고 있었다.어느새 몸부림을 포기하고 남자를 받아들이고 있었다.누군가를 사랑하기 전, 그녀는 절대 혼전 순결을 지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하지만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이성보다 신체의 갈망이 훨씬 컸다.지우는 온몸에 힘을 빼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상한 촉감에 입에서 수줍은 신음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꾹 참았다.그녀가 남태준이 주는 정욕의 설렘을 즐기고 있을 때 남자가 갑자기 멈추었다.그는 지우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숨을 몰아쉬더니 그녀의 옷 밑에서 천천히 손을 빼내어 그녀의 흐트러진 옷을 정리해주었다.“미안해.”남태준은 욕망을 고통스럽게 억누르고 죄책감 가득한 채 속삭였다.“미안해. 미안해.”그는 하마터면 통제력을 잃을 뻔했다.이성이 돌아온 지금, 남태준은 자신의 뺨을 몇 대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른 거야?’“난 정말 개자식이야. 미안해.”남태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고 그는 숨을 헐떡이며 그녀의 몸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지우는 가슴이 출렁이고 호흡이 어지럽고 눈을 깜박이며 천장을 바라보며 마음을 추스르고 욕망을 추슬렀다.좋아하는 남자가 키스하면서 쓰다듬어주면 몸에서 이렇게 격렬한 반응이 일어날 줄이야.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녀는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 같아 강렬한 욕망까지 생겼다.아주
그래서 이 일은 남태준에게 매우 중요할 것이다.그의 사명이고 명예이고 책임이고 그의 전부일 것이다.지우는 남태준을 사랑하고 그의 일과 삶도 존중했다.남태준은 그녀의 팔을 잡고 힘껏 끌어당겼다.“내가 그 비실비실한 이혼남보다도 못하다는 거야?”지우는 중심을 잃고 그의 품에 안겨 방황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팔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그녀는 서럽게 눈물을 흘렸고 턱은 떨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를 바라봤다.남태준은 그녀 눈 밑의 눈물을 바라보며 자신도 눈시울을 붉혔고 그의 슬픈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만약 가능하다면 내가 다리도 못 쓰고 앞도 못 보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네가 돈 때문에 나를 보살피기는 했지만 나 그때 정말 기쁘고 행복했어.”그때를 생각하면 지우 눈 밑의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그녀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당시의 남태준은 너무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다.그가 언제나 지금처럼 건강하기를 바랐다.“그때 너는 내가 눈이 안 보인다고 멋대로 행동했어.”남태준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 밑에는 눈물이 흐르지만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네가 나를 도와 샤워하고 밥 먹여주고 우리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했었지. 넌 청개구리처럼 내가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 했어.”“네가 아무리 완자 친구라지만 내 말 한마디면 엄마는 널 해고할 수 있었어. 하지만 난 널 떠나보내는 게 너무 아쉬웠어. 진흙탕이 된 내 마음을 넌 작은 작대기로 계속 저어주어 더 이상 평온하지 않고 매일 파도가 일렁였어.”“그러던 어느 날, 네가 갑자기 떠났어.”남태준은 눈물이 흘러넘쳐 흐느껴 울었다.“난 또다시 그 암흑 같은 삶으로 돌아갔어. 햇볕도 없고 활기도 없는 그 어두운 세계로.”“지우야. 네가 돈을 원한다면 난 만족시켜 줄 수 있어. 네가 사랑을 원한다면 난 온 마음을 다해 널 사랑할 거야. 네가 안정감을 원한다면 나 일선에서 떠나 사무직으로 물러날 수 있어.”남태준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애틋했고 점점 더 간절해졌다.“제발 나 떠나지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