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영은 의기양양하게 돌아서서 거실에 있는 남연희를 향해 비웃었다.“고모님은 다인이가 수양딸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우세요?”“난.”남연희는 말문이 막혔다.남하준은 천천히 일어나 피아노 쪽으로 다가가 서다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우리 먼저 방으로 가자.”서다인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그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갔다.유가영은 또 남연희와 말다툼을 했고 최서윤은 화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화가 잔뜩 난 채 소파 앞으로 가서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남영준을 못마땅하게 걷어찼다.“더 듣고 싶어요? 안 일어나고 뭐 해요?”남영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얼른 따라갔다.둘째 내외는 서로를 쳐다보며 아직 꿈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듯했다.그들이 가장 경멸하는 서다인이 피아노곡을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그때 남창민이 허윤미에게 속삭였다.“여보, 우리 작은 며느리가 이렇게 재능이 있을 줄은 몰랐네. 우리 엄마의 안목이 좋았던 거야.”허윤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니까 저도 깜짝 놀랐어요. 유명한 자선 화가일 뿐만 아니라 대단한 피아니스트라니.”남창민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아. 그림이나 음악의 예술적 조예가 이렇게 깊다니. 특히 그림은 명성이 자자한 지완 화가이지만 그런 재능으로 돈을 벌지 않고 단지 취미 생활로 하는 것 같아.”“그럼 다인이가 또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을까요?”“글쎄. 하지만 소문에 떠도는 그 끔찍한 흑역사는 틀림없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 같아.”허윤미도 동의하며 분개해서 말했다.“백프로 헛소문이에요. 우리 며느리가 얼마나 재능도 넘치고 얼굴도 예쁜데. 절대 남자에 기대어 돈을 벌 애가 아니에요.”남창민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그래, 앞으로 누가 감히 우리 막내며느리를 욕한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방 안.남하준이 문을 닫았다.서다인은 방 안에 서서 남하준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고 여전히 충격에 휩싸여 있
남하준의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며 서다인은 호기심에 물었다.“하준 씨, 전에도 권위적인 감정서가 있었는데 왜 계속 내가 서다인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거죠?”남하준의 깊은 눈망울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요리도 못하고 집안일도 못 하는 여자가 피아노를 치고 꽃꽂이 예술을 알고, 차뿐만 아니라 화학 지식, 여러 나라 언어를 알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보는 취미가 있는 여자는 재벌가 딸이 아닐지는 모르지만 절대 빈민가에서 자란 여자는 아니야.”서다인은 그의 말이 매우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문득 남하준은 겉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고 논리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많은 사람이 그녀의 과거를 듣자마자 바로 편견을 갖고 그녀가 분명 풍자적이고 타락한 나쁜 여자일 것으로 생각했다.하지만 남하준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를 존중하고 있었다.지금까지 그녀의 과거를 깔보고, 공격하고, 무시한 적이 없었다.서다인의 몸은 살며시 남하준에게로 다가와 고개를 젖히고 일말의 기대와 긴장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준 씨, 만약...”남하준이 고개를 숙였다.“뭐?”서다인은 갑자기 머리가 팽팽해졌고 등에 땀이 나고 용기 내 고백하려고 목소리가 가늘어졌다.“만약 내가 서다인이 아니라면...”남하준은 그녀가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아니라면?”“그럼... 하준 씨가...”인내심 있게 그녀의 말을 기다리던 남하준은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느꼈다.서다인의 목구멍에 걸린 목소리와 심장 박동은 더욱 강렬해졌고 그녀는 긴장하여 손바닥에서 땀까지 흘렸다.‘그럼 당신이 날 조금 좋아하지 않을까요?’하고 싶은 말이 서다인의 머리를 한 번 스치자 귀뿌리가 뜨거워지고 볼이 붉어졌다.그녀는 결국 부끄러워서 말을 하지 못하고 다른 말을 했다.“그럼 내 가족을 찾아줄 수 있어요?”남하준의 눈에는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 그가 기대했던 물음이 아니었다.자신의 오해에 난감해진 남하준은 뜨거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물론이지.”그
그녀는 어머니의 번호를 눌렀다.벨이 한참 울리고 끝날 무렵, 연결되자 반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더... 더... 더.”“젠장. 이번에도 망했네.”“여보세요! 누구세요?”어머니의 욕설을 듣던 서다인은 가슴이 답답해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엄마, 나 다인이에요.”진화연의 말투는 순간 부드러워졌다.“아이고, 우리 딸. 요즘 건강은 어때? 그 할망구는 건강하고?”서다인은 가족에게 혼인 신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가족들은 그녀가 수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줄 알았다.“다 좋아요.”서다인은 덤덤하게 말했다.진화연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휴, 그런데 내 상태가 별로 안 좋아. 하루하루가 다르게 혈압도 높고 혈당도 높아. 최근에는 풍습까지 도져서 밤새도록 잠을 잘 자지 못하여. 네 아빠는 술 퍼마시고 돌아와 날 때리고. 딸아. 엄마는 요즘 너무 힘들단다. 네 철없는 오빠는 빚만 지고 여기저기 숨어다니느라 나한테 한 푼도 주지 않았어.”“풍습이 도져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아파서 난 일을 할 수가 없어.”“너희 아버지는 밤낮없이 술을 마시고 술주정만 하지. 난 어떻게 사니?”“딸아...”서다인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그녀의 말을 끊었다.“알겠어요. 이따가 생활비 보내드릴게요.”“소중한 딸, 고마워.”진화연은 감격에 겨웠다.“엄마, 나 부탁이 있어요.”“모녀 사이에 부탁이라니. 뭔데 그래?”“나랑 병원에 좀 다녀와요.”진화연은 당황했다.“너 어디 아파?”“엄마, 나...”서다인은 입가에 맴돌았다가 막혔다.진화연은 계속 서다인을 얌전하고 효심이 밝고 상냥하고 이해심이 많게 잘 자랐다고 칭찬하며 그녀를 매우 좋아했다.그런데 갑자기 DNA 재검사를 제안한다면 진화연은 분명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이렇게 착하고 효도하는 딸을 어떻게 날려 보낼 수 있겠는가?서다인은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엄마, 나 면역 질환에 걸린 것 같아요. 의사도 확신이 안 서서 우리 가족이 이 방면의 유전자를 가졌는지 검사하고 치료하겠대요
백씨 가문 별장.남하준의 차가 별장의 정원 밖에 주차되어 있었다. 그는 초조하게 차에서 내려 별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으리으리한 홀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가죽 소파에는 백발이 성성한 두 노인과 그들의 양아들 백인호가 앉아 있었다.“하준이?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백진은 놀라서 일어섰다.남하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깍듯이 인사했다.“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세요.”여은수는 벨벳 손수건을 들고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내가 하준이에게 오라고 연락했어. 우리 손녀딸이 죽으려고 하는데 당신은 아직도 그렇게 모질어?”백진은 연세 가득한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이 할망구가 왜 이래? 하준이가 얼마나 바쁜데 애를 귀찮게 해? 그럼 하준이 부인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여은수는 이를 갈며 화냈다.“난 몰라. 난 내 손녀만 잘 살면 돼.”백진은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었다.“이 사람이...”남하준은 걱정스레 물었다.“할아버지, 할머니. 하린이 좀 어때요?”백진은 한숨을 내쉬었다.“손목을 몇 번 그어서 피 몇 방울 떨어뜨렸을 뿐이지 죽지 않았어.”여은수는 백진을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이 늙은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린이 아직 어려. 잘못하면 천천히 타이르면 되지. 애를 반성하라고 구금하는 것도 모자라 하준이에게 연락하지 못하게 휴대폰까지 빼앗아?”“하린이가 하준이를 그렇게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어디 쉽게 포기가 되겠어? 당신이 오랫동안 애를 가둬서 우울하게 만들었잖아? 의사도 그랬어. 하린이 심한 우울증이라고! 지금 시도 때도 없이 자살하고 싶어 한다니까.”“이 늙은이, 내 하나뿐인 아들과 며느리가 다 죽었는데 이제 남은 귀한 손녀까지 죽이려고? 대를 끊을 생각이야?”가장자리에 앉은 백인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색이 어두웠다.“닥쳐, 인호가 여기 앉아 있는 거 몰라?”여은수가 울먹이며 말했다.“당신이 입양한 자식이지 내 자식 아니야!”백진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말다툼은 이 노파를 이길 수 없었다. 그래
두 명의 의사가 황급히 달려들었다.“도련님, 아가씨께서 지금 매우 불안정합니다. 더 이상 자극하시면 안 됩니다. 빨리 안아주시고 위로해 주세요.”남하준은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펑펑 우는 백하린을 보며 마음이 착잡했다.순간 손을 뻗어 백하린을 품에 안으며 위로했다.“울지 마. 바보 같은 짓도 하지 말고.”백하린은 남하준의 품에 안겨 흐느끼며 말했다.“오빠 진짜 잊은 거예요?”“내가 외국으로 떠날 때 공항에서 나 배웅해 주면서 나한테 일찍 연애하지 말고, 오빠를 잊지 말고, 커서 꼭 돌아와야 한다고, M국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잖아요.”“평생이 걸려도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고 했으면서.”“그런데 내가 돌아왔는데 왜 나와 결혼하지 않는 거냐고! 흑흑...”헤어진 아픔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남하준이 당시 얼마나 이 여자를 사랑했는지,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제 그는 백하린에게 그 당시의 느낌을 찾을 수 없었다. 설렘도 없고, 두근거림도 없고, 긴장도 없고, 강렬한 충동도 없고, 이끌림도 없고, 남녀 사이의 욕망도 없다.어쩌면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마음가짐과 감정이 변할지도 모른다.또 어쩌면, 그가 한결같은 마음을 가질 수 없는 쓰레기일지도 모른다.남하준은 백하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동생을 달래듯 사과했다.“미안해, 하린아.”남하준은 하루 종일 백씨 가문에서 백하린의 곁을 지켰다.저녁이 되자 그는 서다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밤 일이 좀 있어서 집에 안 들어가니까 일찍 쉬어.]서다인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도 여전히 괴로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다음날 점심.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해 어두웠고 공기는 매우 건조하고 바람 한 점 없이 무더웠다.병원 정문에 서서 기다리던 서다인의 마음은 바위처럼 무거웠다.진화연은 병원 현관 기둥에 물렁뼈처럼 기대어 성가신 표정을 지었다.“다인아, 대체 누구를 기다린다는 거야? 얼른 들어가자. 번호표 뽑으려면 줄 서야잖아.”얼마나
서다인은 걸어서 남씨 저택으로 돌아왔고, 두 시간 동안 비를 맞고 방에 들어갔더니 녹초가 되었다.샤워 후 긴 머리를 말리지 않고 맥없이 침대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잠이 들어야 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하루 종일 그녀는 방문을 나서지 않았고 배고픔도 느끼지 않았다.한밤중이 되어서야 그녀는 몸이 뜨겁고 불편함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천천히 깨어나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남하준에게 전화를 걸려고 핸드폰을 들었다.마침 그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는 급히 확인했다.[나는 아직도 하린이를 사랑하고 있어.]이 문자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녀의 심장을 파고들었다.뼈에 사무친 아픔.눈물이 둑이 무너지는 홍수처럼 끊임없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느낀 서다인은 서둘러 휴대폰을 내려 머리를 높이 쳐들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그녀는 심호흡하며 참았다.그러나 숨결은 칼을 찬 것처럼 그녀의 가슴을 찔렀다.통증이 그녀를 더욱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들었다.목이 따가워나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한참을 추스른 후에야 서다인은 울음을 참으며 눈물을 닦았다. 휴대폰을 들고 답장했다.[알겠어요. 언제 가정법원에 갈 수 있는지 알려줘요.”남하준: [난 이혼하든 안 하든 괜찮아. 네 뜻에 달렸어.]서다인은 이 말을 보고 마음이 싸늘해졌다.이혼하든 안 하든 괜찮다는 것이 대체 무슨 뜻일까?그녀의 뜻에 달렸다니?‘나쁜 놈, 내 감정 따위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거야? 내 청춘을 이 희망 없는 결혼에 낭비하는 게 아니었어.’서다인은 침대에서 내려와 약을 찾으려고 휴대폰을 껐다.그녀가 막 침대에서 내려왔을 때 머리가 어지럽고 두 발이 나른해지며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넘어졌다.“아!”두 손을 바닥에 세게 문지르자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온몸에 퍼졌고 그녀는 찬 숨을 내쉬며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온몸에 힘이 없고 뼈가 쑤시는 것을 느꼈다.몸의 고통은 그녀의 마음의 1만분의 1도 안 되었다.큰 무력감과 박탈감을 느꼈다.그녀
“흑흑. 하준 오빠. 가지 마요.”백하린은 울음을 터뜨렸다.여은수는 마음이 아파서 계속 남하준에게 남으라고 말렸다....류청과 정호는 검사과에서 교대로 근무하며 곧 DNA 보고서를 받았다.이 기간 동안 검사관 외에는 누구도 혈액 샘플에 접근할 수 없었다.검사 보고서를 받은 두 사람은 곧장 남씨 저택으로 가서 서다인에게 손수 건넸다.얇은 외투를 걸치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서다인은 베란다의 등나무 의자에 앉아 서류 봉투를 찢었다.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와 그녀는 좀 춥다고 느꼈다.하지만 마음은 뜨거웠다.일말의 기대를 안고 보고서를 꺼냈다.그녀는 잠시 조용히 보다가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덮고 다시 서류 봉투에 넣었다.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도련님께 보고하세요. 결과는 변함없다고. 난 서다인이니까 더 이상 의심하지 말라고.”정호와 류청도 보고서의 결과를 보고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네, 사모님.”두 사람이 대답했다.“콜록콜록.”서다인은 한바탕 기침을 했다.류청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사모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어디 아프세요? 의사 불러 드릴까요?”“난 괜찮아요, 가서 일 보세요.”서다인은 등나무 의자에 기대 눈을 감다.정호: “사모님, 도련님께서 요즘 좀 바쁘십니다.”서다인은 천천히 손을 들어 나지막이 말했다.“괜찮으니까 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요.”두 사람은 인사를 하고 서다인의 방에서 물러났다.서다인은 발을 움츠리고 두 손으로 종아리를 꼭 껴안고 머리를 무릎에 파묻었다.그녀는 가냘픈 몸을 움츠리고 어깨를 가볍게 떨었다.봄바람이 불어와 그녀 마음속의 상처를 어루만졌다.그녀는 며칠 동안 정신없이 잠을 잤고 하인은 그녀에게 정해진 시간에 음식을 가져다주었지만 그녀는 별로 먹지 않았다.몸이 좀 나아지자 서다인은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뵈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그녀는 희끗희끗한 얼굴에 화장을 좀 했다.수원리.서다인은 활짝 웃으며 할머니 앞에 서서 외쳤다.“할머니!”
저녁 무렵, 어둠이 깔리고 노을빛이 희미했다.서다인은 수원에서 할머니와 한참이나 시간을 보냈다.그녀의 병이 아직 낫지 않았기 때문에 남씨 저택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지친 걸음으로 거실로 들어서자 조롱하는 목소리가 들렸다.“아이고, 우리 짝퉁 화가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네.”서다인이 목소리를 따라가 보니 고모 남연희였다.남연희는 왼손을 허리에 짚고 오른손에 휴대폰을 든 채 오만하게 서다인에게 다가갔다.”“화가 지완은 3년 동안 병을 앓아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해명했어.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유명 화가의 이름을 내걸고 여기저기 허세를 부리며 사기를 치고 다니지.”말을 마친 남연희는 휴대폰 동영상을 서다인 앞에 보이며 눈에는 경멸로 가득 찼다.서다인은 남연희의 휴대폰 화면을 힐끗 쳐다보았다.한 젊은 여자가 카메라 앞에 앉아 은퇴 3년의 경위를 설명하고 있었다.화가 지완의 계정이었다.“고모님, 저는 제가 지완이라고 한 적 없어요.”“너...”남연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유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모님, 개나 소나 자기가 지완이라고 영상을 올리면 그 사람이 지완인 거예요? 그럼 그림을 그려서 전문가한테 감정받아 보던가요. 아팠다는 말 한마디로 눈속임을 해요?”남연희가 고개를 돌리자 유가영이 당당하게 서다인에게 다가갔다.그녀는 서다인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툭 쳤다.“다인아, 당황하지 마. 지금 이런 플랫폼 계정은 돈만 주면 사고팔 수 있어. 그리고 좀 실력 있는 해킹범들이 계정을 해킹하는 건 일도 아니야.”남연희는 고개를 땅바닥에 대고는 침을 뱉었다.“퉤!”“본인이 영상까지 올렸는데 아직도 여기서 뻔뻔하게 인정하지 않는 거야?”“이제 온 세상 사람들이 화가 지완을 알게 됐어. 넌 짝퉁이야!”유가영은 화가 나서 얼굴이 어두워졌고, 주먹을 불끈 쥐고 남연희에게 화내려는데 서다인이 가볍게 그녀의 팔을 잡았다.“형님, 괜찮아요. 고모님 편하신 대로 생각하라고 하세요.”유가영은 서다인의 어깨를 툭툭 쳤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