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준은 그녀의 물음에 갑자기 굳어졌다.잠시 후에야 그는 침착하게 답했다.“이 방법이 효과가 좋아.”이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둘 사이의 온기를 깨뜨렸다.“꽃 다 꽂았어?”소리를 들은 서다인은 급히 자리로 돌아와 도구를 들고 자르기 시작했다. “거의 다 됐어요, 어머니.”허윤미가 들어와 보니 꽃 한 병도 제대로 꽂히지 않았고 바닥에 아직 빈 병 몇 개가 남아 있었다.허윤미는 의심스러운 듯 남하준을 바라보며 말했다.“하준아, 너 방금 여기 와서...”남하준은 급히 허윤미의 어깨를 껴안고 밖으로 나가면서 큰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엄마, 먼저 가서 쉬세요. 여기는 저희가 할게요.”남하준이 강제로 허윤미를 내보내고 돌아왔을 때 서다인은 열심히 꽃을 자르고 있었다.그는 가위를 하나 구해와 서다인 맞은편에 앉아 그녀의 꽃 자르는 모습을 살피고 묵묵히 함께 꽃을 다듬기 시작했다.시간은 항상 조용하고 아늑하게 흘러갔다.시끄럽지 않고 조용하고, 향긋하고, 세월이 고즈넉한 느낌이 들었다.서다인은 눈을 들어 남하준이 혼자 꽂은 꽃병을 보고 저도 모르게 웃었다.통일된 색깔의 붉은 장미꽃들이 가지런하고 질서 정연하며 네모반듯한 것이 마치 그의 병사들이 늘어선 것 같았다.사내대장부의 안목은 정말 치명적이었다.그녀가 몰래 웃고 있는 것을 발견한 남하준은 기분이 좋아졌다.“예쁘지 않아?”서다인은 계속 분주히 움직이며 대답했다.“당신이 직접 꽂은 걸 아시면 어머님도 분명 좋아하실 거예요.”남하준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넌 예뻐 보여?”서다인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쁘네요.”남하준은 그녀의 불그스름한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확실히 예뻤다!그는 난생처음 꽃꽂이가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다는 것을 느꼈다.저녁 식사를 마친 후.남하준은 방으로 돌아와 샤워하고 회색 바지 차림으로 베란다 밖에 서서 두 손으로 난간을 짚고 하늘을 쳐다보았다.알고 보니 여기 별도 밝았다.그때 문이 열리더니 서다인이
남하준의 그윽하고 아리송한 검은 눈동자는 뜨거운 빛을 띠었고, 몸에는 차갑고 위험한 기운이 배어 있었다. 살짝 화난 듯 또박또박 말했다.“갑자기 글만 남기고 떠나는 건 실례지. 나한테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어?”서다인은 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그에게 자신이 블랙 섀도우가 보낸 첩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할까?군전 그룹은 M국의 국방 무기 생산 기지로 일급 비밀 군공장이었다.그녀의 신분은 그곳에 남아서는 안 된다.군전 그룹에서 중요한 기밀이 누설되면 그녀의 혐의는 너무 커지기에 그녀는 이런 죄명을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작별인사를 하지 않은 것은 그녀가 머리가 텅 비어 있었고 생각이 복잡하여 작별인사의 핑계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그게...”서다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입을 열듯 말듯 하는 그녀의 핑크빛 입술을 바라보던 남하준은 덩달아 가슴이 떨렸다.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눈동자가 뜨거워지며 그녀에게 키스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남자는 섹시한 목젖이 아래로 미끄러지며 고개를 더 숙였다. “대체 부대장이 뭐라고 해서 갑자기 떠난 거야?”서다인은 갑자기 등줄기가 굳어지고 안색이 변하며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서다인의 눈에 나타난 당황스러움은 그녀의 생각을 드러냈고 남하준은 이를 알아챘다.그녀는 긴장한 듯 입을 열었다.“도련님, 사실은...”“그 호칭부터 좀 바꾸면 안 돼?”남하준이 그녀의 말을 끊고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나지막하고 매혹적인 말투로 말했다.서다인은 마음이 약해졌다.왜 그녀는 이 위엄 있고 패기 넘치는 남자가 자신을 달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까?“하준 씨.”서다인은 이내 호칭을 바꾸었다.남하준은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착하네.”서다인은 또 경직되었다. 심장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오르락내리락하고 급회전하여 큰 기복이 생겼다.그녀는 약간 수줍어하며 멍하니 있었다.‘이 말이 왜 이렇게 애틋하게 들리지?’남하준은 그녀의 얼굴이 약간 붉어지는 것을 보고 그녀가 부
남하준은 그녀를 끌고 화장대 의자에 앉히고 그도 침대로 가서 엄숙한 얼굴로 앉았다.“서다인,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고도의 의심과 경각심을 가져야지.”서다인은 약간 어리둥절했다.남하준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어렸을 때부터 잘 보호받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토끼처럼 느껴졌다. 기억을 잃어서인지 세상의 추악함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남하준은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나도 네가 블랙 섀도우가 보낸 스파이인지 의심스럽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아직 사실은 아니야.”“당신한테 죽은 그 스파이가 한 말도 사실이 아닐까요?”“그 사람은 전에 널 암살하려던 자가 아니야. 비디오를 수백 번이나 반복해서 봤는데 체형이 같지 않아. 게다가 부대장은 일 년 내내 총을 지니고 있으니 널 죽일 때 칼을 쓸 필요가 없지.”서다인은 놀라는 표정이었다.수백 번이나 봤다고? 그가 직접 봤을까? 왜 이 일을 그토록 중시할까?“부대장은 진범에게 떠밀려 죄를 대신 뒤집어썼을 가능성이 커. 만약 정말 블랙 섀도우가 보낸 스파이라면 속전속결로 죽였지 너한테 쓸데없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을 거야.”열흘 넘게 서다인의 마음을 짓누르던 큰 바위가 순식간에 떨어져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손가락으로 옷을 부드럽게 휘저으며 말했다.“난 내가 스파이인 줄 알았어요.”“아직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어.”막 풀린 그녀의 마음은 남하준의 말 한마디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서다인은 고개를 번쩍 들고 당황한 눈으로 바라보았다.남하준은 놀란 그녀의 모습에 이내 위로했다.“직업병이야. 그래서 네 신분에 대해 항상 의심하고 있지만 아직 명확한 건 없어. 더 조사해 봐야 해.”서다인은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하준 씨, 기억을 잃기 전에 내가 정말 첩자였다면 나 죽일 거죠?”그녀의 물음에 남하준은 멈칫했다. 티 없이 맑은 그녀의 살굿빛 눈을 바라보며 그는 마음이 무거워졌다.사실이라면 그녀를 죽일 수 있을까?그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하
“이번에는 십여 개국을 다녀왔는데 정말 멋졌어요.”왁자지껄한 소리, 격앙된 정서.분명히 한 여자의 목소리일 뿐인데 야채 시장에 들어와 쉴 새 없이 지껄이는 느낌이었다.서다인은 쭈뼛쭈뼛 걸어갔다.소파에 앉아 있던 남하준은 서다인을 보고 옆자리를 두드리며 앉으라고 했다.서다인은 왠지 그에게 관심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걸어가서 남하준 옆에 앉았다.막 앉았는데 맞은편에 낯선 젊은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젊은 여자는 단정하고 대범하며 청초하고 부드러우며 눈길은 서다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서다인이 앉아 있는 몇 분 동안, 온 가족이 이 50여 세의 여자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중년 여인은 좀 복스럽게 생겼고 부티가 났다. 다른 사람이 끼어들지 못할 정도로 쉴 새 없이 말하고 있었다.중년 여인은 마침내 멈추더니 티 테이블의 물을 한 모금 마시다가 갑자기 남하준 옆에 앉아 있는 서다인을 발견했다. 여자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남하준이 소개하기도 전에 여자는 서다인의 존재를 일부러 무시하고 자신의 옆에 있는 젊은 여자를 소개하기 시작했다.“이 아가씨는 온씨 가문의 첫째 온가윤이에요. 제가 딸로 삼은 아이이고 하준이를 위해 고른 신붓감이죠.”서다인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뜨끔했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담담해 보였다.“온씨 가문 다들 아시죠? 부동산계의 우두머리이자 재벌 가문이죠. 우리 가윤이는 마음이 어질고 착할 뿐만 아니라 명문대 졸업에 금기서화에 모두 능통하고 음식도 제법이고 우아하고 품성도 좋아 백하린보다 백배 나아요.”“하준아, 고모가 골라준 신붓감 마음에 들어?”남하준이 마침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그는 한쪽 손을 벌려 서다인의 뒤에 있는 소파 등에 걸치고 그녀에게 몸을 기울여 다가갔다.“고모, 소개할게요. 이분은 내 아내 서다인이에요.”남연희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눈빛이 매서워졌다.남하준은 서다인을 보며 정식으로 소개했다.“다인아, 인사해.
그러나 남연희의 목소리가 너무 높아서 조금씩 들렸다.남연희는 눈물 없이 울기만 하다가 울면서 해묵은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그때, 두 분이 사업을 위해 밖에서 열심히 일할 때 애들을 전부 제가 키웠어요.”“첫째가 학교에서 괴롭힘당해 충격으로 똥오줌을 못 갈릴 때 내가 매일 심리상담을 해주고 안아주고 재워줬어요.”“둘째가 실연을 당해 투신하려고 했을 때, 내가 무릎 꿇고 뛰지 말라고 빌고 애를 죽음의 문턱에서 끌어왔어요.”“셋째는 승벽심이 가장 강했어요. 명품을 사겠다고 나한테 손을 내밀면 난 달라는 대로 다 줬어요. 애가 얼마나 예쁘면 그랬겠느냐고요.”“그리고 넷째는 반항적이라 매일 사회의 건달들과 어울리고, 싸우고, 수업을 빼먹고, 놀러 다녔어요. 그래서 내가 꾸준히 가르치고 타이르면서 애 마음을 달래줬죠.”남연희는 또 남하준을 가리켰다.“그리고 너, 다섯째는 세 살이 되었는데도 젖을 떼지 않았지. 새언니가 일하러 나가면 매일 나 쫓아다니며 내 옷을 들추고 젖 달라고 했잖아.”남하준은 심호흡하고 천천히 눈을 감고 꾹 참았다.서다인은 입술을 꾹 깨물고 웃음을 참았다. 남하준이 그녀의 귀를 꾹꾹 눌러도 그녀는 들렸다.‘형제들이 이 고모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어렸을 때 일이 하나둘씩 터지는 게 두려워서였네.’체면이란 존재하지 않았다.“그리고 백하린이 출국했던 해에 다 큰 애가 매일 개처럼 울었잖아. 폐인처럼 지내다가 술과 담배까지 배우고. 고모가 널 그 구덩이에서 꺼내준 거야. 다들 양심도 없지.”몇백 번을 들은 이야기라 남창민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였다.“연희야, 다 지나간 일이니 이제 그만해. 아이들 다 커서 체면이 있는데 자꾸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크긴 뭐가 커요. 내 눈에는 언제나 애들이에요. 내 손에서 자란 애들.”“내가 50대 중반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은 것도 다 애들 돌보기 위한 것 아니에요. 양심 없는 것들.”“고모가 너희들한테 어떻게 했는데. 정성껏 신붓감까지 골라줬더니, 내 말을 듣는 녀석이 아무도 없어.
남연희가 아이들을 키운 공로를 과시하고 있을 때, 문밖이 술렁거렸다.남씨 가문의 첫째, 둘째, 셋째가 모두 아내를 데리고 달려왔다.그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들어오자마자 물었다.“아빠 어디 계세요?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남연희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너희들 아버지 여기서 식사 중이셔.”남창민은 어리둥절했다. 아들과 며느리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달려왔다.“대체 왜 그러냐?”첫째 남희준은 남연희를 노려보고 아버지가 무사하자 애써 참으며 말했다.“고모가 아빠 뇌졸중으로 집에서 돌아가셨다고 하셨어요.”남창민은 밥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연희야, 거짓말을 해도 분수가 있지. 나를 뇌졸중으로 죽었다고 저주해?”남연희는 급히 달려가 남창민의 손을 끌어안고 애교를 부렸다. “거짓말을 했을 뿐이지 오빠 저주할 생각은 없었어요. 화내지 마세요. 네?”남창민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곧이어 모두가 둘러앉아 식사하게 되었다.남연희는 또 가문의 ‘양심’없는 사람 하나하나 반복해서 늘어놓았다.서다인은 두 번 들은 것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인데 남씨 가문 사람들은 대체 몇 번이나 들었기에 이 고모를 이렇게 두려워하는 것일까?식사 후.남연희는 아무도 못 떠나게 했고,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거실 소파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서다인은 남하준의 귀에 기대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하준 씨 형제들 진짜 고모가 키운 거 맞아요?”남하준은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아 서다인처럼 얼굴을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아니, 우리는 할머니 때부터 집에 하인이 부족하지 않았어. 어렸을 때부터 전담 도우미가 계셨어. 그런데 고모는 밖에 나가 일하지 않고 집안에만 있었으니 우리가 자라는 걸 지켜본 셈이지. 그러니 돌본 건 아니야.”“아버님이 고모님을 많이 예뻐하시는 것 같아요.”“그래, 확실히 그렇지.”서다인은 짓궂게 물었다.“고모님이 골라준 신붓감 맘에 들어요?”남하준은 미
최서윤은 남하준이 이렇게 아내를 보호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깜짝 놀라 긴장하여 침을 삼키고 비겁하게 대답했다.“도련님, 제가 쓸데없는 말을 했네요. 죄송해요.”서다인은 갑작스러운 남하준의 보호에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가슴이 뭉클했다.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뭐라고 하든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이 셋째 내외가 남을 무시하는 오만방자한 얼굴에 익숙했다.“뭐라고? 우리 엄마 옆에 있던 개인 간병인이라고? 세상에, 평판도 안 좋고 출신 배경도 안 좋고, 그러니까 그 어지러운 쪽방촌에서 나온 여자를... 퉤퉤퉤. 하준아, 어떻게 이런 여자를 아내로 삼을 수 있어? 창피하지도 않아?”남하준은 갑자기 안색이 변하고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 위엄 있고 패기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어디 다시 한번 말해봐요.”남연희는 놀라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발에 힘이 빠진 채 당황한 표정으로 남하준을 바라보았다.그가 이렇게 화내는 걸 처음 본 남연희는 그의 냉혹한 카리스마에 겁을 먹고 당황했다.한편 온가윤도 한층 우월감을 느끼며 눈가에 경멸의 빛이 은은하게 비치고 있었다.그녀는 처음에는 자신감이 없었는데, 인제 보니 남하준의 옆에 있는 빈민가 출신 아내보다 자신이 백 배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서다인은 자신 때문에 가족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특히 이 고모는 너무 무서워서, 일단 그녀에게 밉보이면 앞으로의 생활이 힘들 것이다.서다인은 얼른 남하준의 손을 잡고 아래로 잡아당기며 화를 가라앉히고 앉아서 말을 잘하기를 바랐다.셋째 내외는 남하준이 고모와 충돌하는 것을 보고 입꼬리를 치켜세우며 슬쩍 웃으며 연극을 보는 듯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남하준의 매서운 눈빛이 남연희를 당황하게 했고 그녀는 일부러 침착한 척 목을 축였다.“내... 말이 사실이잖아.”남하준은 깊은숨을 내쉬며 서다인의 손을 잡았다.“우리 방으로 들어갈게요.”서다인은 그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만약 그들이 이대로 떠난다면 고모는 앞으로 필
유가영이 비꼬며 말했다.“다인이가 자기보다 재능있는 게 탐탁지 않은가 보지? 전문가에게 이미 검증 받았어. 이건 지완의 진품이 확실해. 이제 어떡해? 다인이가 몸값이 수십억에 달하는 자선 화가라는 걸 인정해야겠네?”남희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이미 감정했어요.”최서윤은 얼굴빛이 갑자기 변하고 화가 잔뜩 났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서다인은 약간 난처해 보였다.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을 유가영이 이렇게 확신에 차 말하니 너무 부끄러웠다.이때 남하준은 입꼬리를 꼬며 여유로워 보였다.집안의 누군가가 마침내 그의 아내의 장점을 알아주었다.남연희는 화를 참지 못하고 코웃음을 쳤다.“우리 가윤이는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웠어. 뭣도 모르는 사람이 아무렇게나 그려 감히 그림을 수십억 원에 팔아?”유가영이 반박했다.“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그려도 그림이 수십억 원에 팔리는데 고모님의 수양딸이 그린 건 얼마나 팔리나 몰라요?”남연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남희준은 어수룩하게 웃으며 그림을 말며 말했다.“지금 대학생이 얼마나 많은데. 대학생 학력으로 취직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가 그린 그림을 혼자 감상하는 수밖에 없죠.”화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질린 남연희는 갑자기 옆에 피아노가 있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우리 가윤이는 피아노도 칠 줄 알아. 얼마나 잘 친다고!”남연희는 말하면서 피아노 쪽으로 온가윤을 끌고 갔다.“가윤아, 네 실력을 보여줘 봐.”온가윤은 거절하지 않고 거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살짝 허리를 굽히더니 말했다.“그럼 한 곡 올리겠습니다.”말을 마친 후, 그녀는 앉아서 그럭저럭한 피아노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최서윤은 음악 가문 출신이라 음악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들으면 들을수록 눈살을 찌푸리며 시큰둥한 기색을 보였다.다른 사람들은 피아노에 대해 잘 알지 못해 곡이 그런대로 듣기 좋고 매끄럽다고 생각했다.연주가 끝나자 남연희는 감격에 겨워 박수를 치며 자화자찬했다. “우리 가윤이 정말 대단해. 피아노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