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676화

Author: 가하
꽃을 꽂고 있던 강지아는 문 쪽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온유한이 들어오는 걸 보지 못했다.

늘 하던 대로 서원준에게 말했다.

“진짜 주책이야, 누가 그쪽 마누라라는 거예요?”

서원준은 온유한을 힐끗 보며 웃었다.

“날 챙겨주면 그 사람이 내 마누라지.”

강지아의 꽃꽂이 솜씨는 형편없었고 인내심도 부족했다. 꽃을 다 뽑아서 그냥 대충 꽃병에 꽂고는 끝냈다. 손을 털고 돌아서며 서원준에게 한마디 더 하려고 했는데 온유한을 보고 멈칫했다.

온유한은 아예 문을 열고 들어와 서원준에게 말했다.

“다쳤다고 해서 와봤어요.”

“고마워요.”

서원준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강지아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곧 과일 바구니를 풀기 시작했다.

온유한은 병상 옆에 다가가 습관처럼 침대 머리에 걸린 병력 카드를 뒤적였다. 외상이 전부여서 그저 잘 쉬기만 하면 됐다. 그는 병력 카드를 다시 걸어놓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환자가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푹 쉬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병실을 나갔다.

강지아는 과일을 씻고 나서 과일 칼을 들어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바보, 두 사람 싸웠어?”

“싸우긴 뭘요, 싸울 수 있으면 오히려 다행이죠.”

서원준은 그녀가 사과를 깎는 모습을 보면서 칼을 한번 내리자마자 사과 반쪽이 사라지는 걸 보고 입 꼬리를 씰룩거렸다.

“그 사람 좋아하지 마. 보는 것만으로도 지루하잖아.”

서원준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남자친구 소개해줄까?”

“누군데요?”

“나지!”

서원준의 잘생긴 눈에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네가 내 여자 친구 해주면 이제부터는 널 ‘바보’라고 부르는 대신 ‘자기야’라고 부를게. 어때?”

강지아는 눈을 굴리며 말했다.

“유치해요.”

그녀는 얼마 남지 않은 사과를 서원준의 입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생애 처음으로 깎은 사과예요. 그걸로 만족해요.”

그 말에는 묘한 힘이 있었는지 밤새 잠을 못 잤던 서원준은 사과를 먹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강지아는 그대로 갈 수 없어서 휴대폰을
Locked Chapter
Continue Reading on GoodNovel
Scan code to download App

Related chapters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677화

    “뭐야? 방금 온 교수님이 벽 치기하는 거야? 너무 자극적이다!”“우리 병원 최고의 미남이 드디어 강지아 씨랑 이어졌나 보네?”“너무 답답해서 내가 나서서 밀어주고 싶었는데 다행히 온 교수님이 먼저 나섰네.”“여자는 돈 많고 남자는 외모가 훤칠해!”밖에서는 간호사들이 하나같이 들뜬 목소리로 떠들었지만 휴게실 안의 두 사람은 그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창가의 테이블 위에는 이미 몇 개의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온유한이 진짜로 강지아를 밥 먹이려고 부른 것이었다.하지만 강지아는 도저히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최신애가 저지른 일을 온유한에게 화풀이하지 않으려 최대한 애썼지만 그가 자꾸만 그녀에게 다가올 때마다 마음속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밥 먹어. 밥 먹는다고 네가 환자를 돌보는 데 지장 있진 않잖아.” 온유한은 흰 가운을 벗었는데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얼굴이었다.강지아는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 “오빠, 나 이제 다 컸어. 오빠가 진짜 내 친오빠처럼 이래저래 간섭할 필요는 없어. 사람들이 오해한단 말이야. 밥 같은 건 배고프면 알아서 먹을 수 있다고.”온유한은 옷을 걸던 손이 잠시 멈췄다.그는 확신했다. 최신애가 한 일을 강지아가 이미 알고 있다는 걸.하지만 잠깐 멈췄을 뿐, 그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다시 다가와 강지아의 팔을 잡고 그녀를 의자에 앉혔다.“밥 먹어.”“...”‘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거야?’온유한은 젓가락을 집어 그녀의 손에 억지로 쥐어 주었다.바로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온유한이 대답하기도 전에 휴게실 문이 열리더니 주유정이 들어왔다.강지아를 본 주유정은 순간 당황하며 문 앞에 멈춰 섰다.“지아 씨도 있었어요? 아, 미안해요. 두 사람 이미 밥 먹고 있었네요.”“나 원래 유한이 너랑 같이 나가서 먹자고 했는데.”강지아는 ‘탁’ 소리를 내며 젓가락을 내려놓고 차갑게 온유한을 한 번 노려보고는 벌떡 일어나 나가버렸다.이번엔 온유한이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지아, 너...”강지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678화

    저녁시간이 되어 강지아는 병원 밖에서 저녁 두 세트를 사왔다.그녀가 도시락을 들고 들어오자 서원준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난 네가 나 혼자 두고 도망간 줄 알았는데, 양심은 있네.”강지아는 기운 없이 말했다. “원준 씨한테 아침 많이 얻어먹었으니 갚아야죠.”“무슨 아침...” 서원준은 말끝을 흐리며 다음 말을 삼켰다.“일어날 수 있어요?” 강지아는 병간호를 해본 적이 없어 아무것도 몰랐다.서원준이 침대 머리를 가리켰다. “저쪽에 버튼 있어. 그거 눌러서 침대 머리 올리면 돼.”서원준의 상반신은 고정되어 있었지만 하반신은 움직일 수 있었다.“먼저 와서 나 좀 일으켜 줘. 화장실 좀 가게.”강지아는 ‘말도 안 돼' 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것까지 내가 해야 해요?”“그럼 누구한테 말해? 조금만 움직여도 아파 죽겠는데 네가 안 도와주면 어쩌라고. 병간호할 줄 몰라?”“...간병인 부를게요.”서원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네가 나 화장실에 가게 도와달라는 거지, 다른 걸 도와달라는 건 아니야. 뭐가 그렇게 부끄러워?”‘이 무례한 자식!’강지아는 서원준을 화장실 앞까지 데려다주고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나머지는 혼자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사실 서원준은 혼자서 걸을 수 있었으니 더는 강지아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저녁을 먹고 나서 서원준은 강지아가 병원에서 밤을 새지 않게 하려고 그녀를 돌려보냈다.병원이 준비해 준 전담 간병인이 있어서 사실 강지아가 굳이 병실에 남을 필요는 없었다.강지아가 떠난 후 온유한이 다시 병실을 찾았다.“지아 찾는 거예요? 이미 집에 갔어요.” 서원준이 온유한을 보며 말했다.온유한은 문가에 서서 병실으로 들어오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푹 쉬어요.”서원준은 닫히는 문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강지아가 먹은 아침은 분명 온유한이 가져온 것이었다. ‘온유한, 도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걸까?’강지아가 본가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집 안의 상황을 보고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679화

    결국 강지찬은 강원훈을 만나러 갔다.경찰 쪽에서 따로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강지찬을 만나지 못하면 강원훈은 조사에 협조하지도 않고 변호사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이 진행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며칠 만에 본 강원훈은 한층 더 늙어 보였다. 수염도 깎지 않았고 다크서클이 심했지만 강지찬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여전히 검고 깊었다.강홍식 삼형제 중에서도 강원훈이 가장 잘생긴 사람이었고 젊었을 때는 마치 요괴처럼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늙어버린 모습에 강지찬은 잠시 멍해졌다.“왔니?”강지찬은 그와 마주 앉으며 말했다. “꼭 절 만나야 한다고 했다던데, 무슨 일이세요?”“별일 아니야. 그저 축하하려고. 이제 강씨 가문엔 너 혼자 남았잖아.”강지찬은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강씨 가문을 제 손에 넘기고, 저를 이 집안의 주인으로 만들었을 때부터 가문이 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나머지 분은 다르게 생각했나 봅니다.”강원훈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억울한 거지. 왜 하필 손자 세대가 집안을 물려받게 됐는지 말이야. 아들이 셋이나 멀쩡히 있는데.”강지찬은 냉정하게 대꾸했다. “그건 당신 어머니에게 물어보는 게 좋겠습니다.”강원훈의 얼굴이 굳었다.그는 평생 동안 누군가가 자신의 어머니와 출생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강지찬도 이전에는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대놓고 그의 얼굴에 들이밀었다.“뭐가 그리 잘났다고? 너도 그냥 좋은 집안에 태어난 거잖아.”“네, 태어나는 것도 능력이니까요. 다음 생엔 운 좋길 바래요.”“...”강지찬은 강원훈이 자신을 만나려 한 이유를 이미 알았기에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잠깐.”강지찬은 그를 내려다보며 그가 말하기를 기다렸다.“지금 너한테 아무리 부탁해도 소용없다는 건 알아.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해두고 싶다. 내 아내와 아이들은 아무 죄가 없어. 내가 한 짓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강지찬의 눈빛이 깊어졌다. “전 당신처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680화

    임미연은 겁에 질린 듯, 온몸이 흔들리고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 보였다.“언니가 나를 싫어하는 거 알아요. 하지만 내 뱃속의 아이는 아무 죄도 없어요. 나 정말 무서워요.”“그럼 지찬 씨를 찾아가요.” 정유진이 말했다.“누군가 제 아이를 이용하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찬 오빠한테는 못 가고, 언니한테 왔어요.”임미연은 정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둘 다 여자잖아요. 언니도 한 아이 엄마니까 절 그냥 두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정유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날 의심하는 거예요?”임미연은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분명 정유진이 사람을 보내 자신을 감시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정유진은 어이가 없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난 그렇게 한가하지 않아요. 당신 뱃속 아이에도 관심 없고요.” 정유진이 말했다. “그 사람들은 나와 상관없어요.”임미연은 배를 움켜쥐며 말했다. “언니가 인정하지 않을 줄 알았어요. 언니 외에 누가 이 아이를 신경 쓰겠어요? 언니는 이 아이가 태어나면 언니 딸의 자리가 위태로워질까 봐 걱정하는 거잖아요.”정유진은 임미연을 바라보았다. 이제 강원훈이 감옥에 들어간 마당에 이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원래는 굳이 이 문제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지만 더 이상은 침묵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임미연에게 더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입을 열려는 순간 문 밖에서 여러 여자가 우르르 들어왔다.정유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임미연이 또 그녀의 고모 가족을 데리고 온 것이다.“준비를 잘하고 왔나 보네요.” 정유진은 약간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임미연은 마치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듯 가슴을 펴며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자신감을 되찾았다. “언니, 날 탓하지 말아요. 나도 내 몸을 지켜야 하니까요.” 그녀는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러고는 돌아서서 그들에게 달려갔다. “여러분, 와주셨네요.”네 명의 여자가 임미연을 둘러싸고 정유진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681화

    임미연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정유진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 아이가 지찬 오빠 핏줄이 아니라는 걸 아는 걸까? 그렇다면 지찬 오빠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인가?’옆에 있던 사람들도 서로 당황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어르신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유진, 똑바로 말해라. 네가 이 아이를 의심하고 있는 거냐?”정유진은 더 이상 설명할 생각이 없었다. “미연 씨가 아이를 낳고 나면 친자 확인을 해보면 될 거예요. 임미연 씨, 어때요?”임미연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의 모습을 본 큰며느리의 얼굴도 굳어졌다. 정유진의 차분한 태도를 보니 진실은 이미 명확해 보였다. 설마 이 아이가 강지찬의 자식이 아니라는 건가? 더 큰 문제는 그동안 이 아이가 강지찬의 아들이라 믿고 정유진을 곤란하게 만들려고 온 자신들이 너무 부끄러워졌다.큰며느리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임미연에게 화살을 돌렸다. “미연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 네 할머니는 널 아끼지만, 강씨 집안의 어르신이시기도 해. 혈통 문제에서는 절대로 너를 편 들지 않으실 거야. 빨리 사실을 말해줘.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말이야.”임미연은 겁에 질려서 얼굴이 새하얘졌다. “이 아이는 정말로 지찬 오빠 아이예요. 제가, 제가 맹세할게요!”정유진은 시계를 한 번 보더니 말했다. “시간도 늦었고 이렇게 하죠. 제가 호텔에 식사를 예약해 둘게요. 고모할머니와 이모님들은 식사하시고 돌아가세요. 저는 죄송하지만 회사 일이 있어서 함께하지 못하겠네요.”그리고 임미연에게 덧붙였다. “아이 문제는 급할 필요 없어요. 아이가 태어나면 자연히 진실이 밝혀지겠죠. 하지만 누군가가 미연 씨를 미행하고 있다면 경찰에 신고하는 게 좋을 거예요.”그 말을 남기고 정유진은 미소를 짓고 일어났다. 임우연에게 마무리를 부탁한 뒤 그녀는 회사를 나섰다.“...”정유진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정유진이 아니었다. 그녀는 압도적인 기세를 보여줬고 그들이 한마디도 하지 못하도록 상황을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682화

    “오늘도 또 그 사람들이 귀찮게 했어?” 강지찬이 정유진을 품에 안고 그녀의 목덜미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정유진은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별거 아니에요. 다 해결됐어요.” “우리 아내가 점점 더 대단해지네. 이거 어쩌면 좋지? 평생 너한테 기대고 싶을 지경이야.” 정유진은 그제야 째려보며 말했다. “너무 오버하지 마요. 프로젝트가 얼마나 많은데 나 정말 정신없어요.” 강지찬은 사랑하는 아내의 허리를 놓고 싶지 않은 듯, 계속 붙들고 있었다. “며칠만 더 참아줘. 드러난 곳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따로 움직이면 더 수월해질 거야.” 정유진은 그가 나름의 계획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당연히 지지했다. 두 사람은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강지찬이 연우만 집에 있는 것을 보더니 이마를 찌푸렸다. “지아는 아직도 안 들어왔어?” 정유진은 설명했다. “원준 씨가 교통사고가 났잖아요. 그래서 병원에서 간호 중이에요.” 강지찬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는 다시 정유진에게 물었다. “며칠 후에 있을 온씨 집안 생신 연회, 옷은 준비됐어?” “오늘 도착했어요. 아직 지아는 입어보지 않았지만요.” 이 대화를 나누면서 두 사람의 표정이 모두 무거워졌다. 최신애의 생일에 강지아가 갈지 말지 고민하는 것이다. 다음 날, 강지아는 집에 돌아왔고 정유진은 다시 이 이야기를 꺼냈다. “갈 거예요. 왜 안 가겠어요.” 강지아가 과일을 먹으며 말했다. “안 가면 사람들이 내가 쫄았다고 생각할 거 아니에요.” 정유진은 그녀에게 주의를 줬다. “그때 유정 씨가 분명히 있을 거야.” “있으면 있는 거죠, 뭐.” 강지아는 마음의 준비를 다 했다고 생각했지만 최신애가 마치 미래 며느리를 소개하듯 주유정과 팔짱을 끼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자신이 생각만큼 대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정유진은 그녀의 얼굴빛이 달라진 걸 보고 살며시 손을 잡아줬다. “언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683화

    강지아가 허리를 굽혀 연우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 뒤에 있던 사람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그녀가 몸을 돌렸을 때 그녀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두 여자 중 한 명은 매우 당황한 표정을, 다른 한 명은 ‘내가 잘못 말했나? 뭐 어쩌라고’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강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키가 큰 편이었고 강지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있어서 마주 보고 있는 여자들보다 반 머리 정도 더 컸다.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문득 정유진이 귀찮게 구는 사람들을 대할 때의 표정이 떠올랐다. 담담한 표정.그래서 그녀도 그렇게 해보려 했지만 역시 어린 탓에 눈빛에 무의식적으로 경멸의 기색이 묻어났다.“내가 바보라고? 그럼 남 뒤에서 험담하는 당신들은 뭐지? 교양 없는 애들인가?”이 두 소녀도 모두 서울의 유명한 집안 출신이었기에 교양 없다는 말을 듣는 건 매우 창피한 일이었다.문제는 그들이 억울하다고 할 수도 없다는 거였다. 남 뒤에서 말하다 현장에서 들킨 거니까.“너, 네가 잘났다고 생각하지 마. 유한 오빠는 널 싫어해. 오빠는 줄곧 유정 언니를 기다리고 있었어.”이 말은 최근 강지아의 머릿속을 수없이 맴돌던 말이었기에 그녀에겐 별로 상처가 되지 않았다.“온유한이 주유정을 기다리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강지아가 코웃음을 쳤다. “내가 언제 온유한을 좋아한다고 했어? 울면서 온유한과 결혼하고 싶다고 한 적 있어? 이 세상에 온유한만 남자인 것도 아니고.”두 소녀는 그녀의 날카로운 반박에 할 말을 잃고 치마를 들고 도망쳤다.강지아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승리의 기분을 만끽했다.이때 치마가 연우에 의해 살짝 당겨졌다.“연우, 방금 고모 멋있었지?”연우는 옆을 가리키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치즈스틱 드실래요?”“!!”온유한은 언제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대화를 다 들은 것 같았다.뭐 들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강지아는 그를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연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684화

    이번 연회에 주유정의 가족이 많이 왔다. 그녀의 부모님, 외할아버지 가족, 그리고 두 사촌 오빠까지.최신애가 주씨 가문에 보이는 열정을 보면, 마치 온유한과 주유정이 곧 결혼식장에 들어설 것 같은 분위기였다.이를 본 강지찬의 얼굴은 얼어붙은 듯했다.“어?”이때 최의현이 소리를 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온유한이 주유정 외할아버지와 대화하고 있었는데, 어디 갔지?”이때 온씨 가문의 친척들과 주씨 가문의 친척들이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한 가족처럼.한규진이 잔에 든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나갔어. 그런데 지아는?”“아마 어디 숨어서 몰래 울고 있겠지.”강지아는 울고 있지 않았다. 호텔 곳곳에 사람들이 있어서 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가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마찬가지로 심심해하던 서원준이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그녀가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와, 어디서 온 미인이야, 정말 예쁘다.”강지아는 축 처진 모습으로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고 옆에는 스파클링 와인 한 병이 놓여 있었다.“오늘 어때요? 아직도 아파요?”“당연히 아프지.” 서원준이 뻔뻔스럽게 말했다. “네가 가자마자 아프기 시작했어. 이상하지 않아?”강지아는 웃음이 났다. “내일 다시 보러 갈 테니 오늘은 그냥 참아요.”“술 마시지 마. 취하면 위험해.” 서원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눈을 굴렸다. “오빠랑 언니랑 같이 왔는데, 내가 취해도 누가 감히 나한테 뭘 어쩌겠어요?”서원준은 화면 속 꽃 같은 얼굴을 보며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걱정돼서 그러지. 착하지, 술 마시지 마.”그가 마시지 말라고 하니까, 원래는 별로 마실 생각이 없었던 강지아가 오히려 병을 들어 꿀꺽꿀꺽 몇 모금 마셨다.서원준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침대에서 내려와 잡으러 가는 척했다. “너 기다려.”강지아가 놀라 물었다. “뭐 하는 거예요?”“너 잡으러 가는 거야.”“미쳤어요?” 화면 속에서

Latest chapter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913화

    최신애는 반평생 살면서 오늘 처음으로 지금까지 쌓아왔던 고고한 이미지를 다 내려놓은 채 마치 미친 사람처럼 싸워봤다.그리고 온유한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더욱 흥분해서 그에게 물었다.“봐봐, 네가 좋아한다던 여자가 지금 어떤 꼴인지. 더 할 말이 있어?”온유한은 그저 말없이 주위를 둘러봤는데 침대는 이미 엉망진창으로 된 채 바닥에는 뜯긴 콘돔이 널려져 있었다.그러나 그는 아주 덤덤하게 현채영에게 다가가 그녀의 샤워 가운을 다시 입혀준 뒤 머리도 뒤로 넘겨주며 다정하게 물었다.“어디 다친 데 없어요?”현채영은 재빨리 답했다.“아니요.”“그럼 가서 옷부터 갈아입어요.”온유한의 말에 그녀는 곧바로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최신애는 자기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는 온유한의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끄, 끝이야?”그리고 온유한을 잡고 헝클어진 침대를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저 여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안 보이냐고! 현장까지 잡은 마당에 넌 아무렇지도 않아?”그러나 온유한은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이건 저랑 채영 씨 사이의 문제니까 상관하지 마세요.”“온유한!”최신애는 복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대체 왜 이러는 거야? 왜 이렇게 변했어?”온유한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답했다.“지태주 씨와의 일은 채영 씨가 나중에 해명할 겁니다. 저는 저 사람을 믿거든요.”“아직도 믿는다고?”최신애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두 눈으로 직접 다른 남자랑 침대에서 뒹군 꼴을 보고도 믿을 수 있어?”“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죠.”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지태주는 히죽거리며 그에게 말했다.“온 대표님은 정말 좋은 남자의 표본인 것 같네요.”그의 말에 온유한이 그를 힐끔 쳐다보자 지태주도 같이 매섭게 쏘아보았지만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이 상황이 그저 답답해서 당장에라도 기절할 것 같았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미쳤어, 진짜 미쳤어.”계획대로라면 오늘 밤 현채영을 바로 쫒아내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912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안에서 나왔다.제일 앞에 서 있던 강지찬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뒤따라오던 최의현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저 사람 현채영 아니야? 저 남자는 누가야? 낯이 익네.”한규진은 호텔 로비에 막 들어선 최신애를 보고 한마디 했다.“쯧쯧, 볼거리가 생겼네.”현채영은 그 남자와 반대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최신애가 뒤따라가자 최의현 일행도 따라갔다.“미친, 생각났어.”최의현이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저 자식, 그 지씨 가문 셋째 아니야? 추호와 친하던 애 있잖아. 지씨 가문에서 꽤 총애를 받고 있다고 들었는데.”“지씨 가문 셋째?”한규진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서울에서 지씨 가문은 명성이 높은 집안은 아니지만 구설수는 꽤 많다.예전에 지씨 집안의 막내아들이 밖에서 데려왔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사생아이지만 정실 마누라가 낳은 아들보다 더 총애를 받고 있다고 했다.틀림없이 지씨 가문 셋째 아들 지태주일 것이다.지태주와 현채영이 만난다고?생각보다 재미있는 관계가 될 것 같다.최의현은 당당한 모습으로 최신애의 뒤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스위트룸 방문 앞에 멈춰선 최신애는 노크를 하는 대신 손목시계만 계속 들여다봤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20여 분 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온유한은 강지찬 일행과 마주쳤다.온유한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강지찬을 슬쩍 쳐다봤다.강지찬은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온유한을 시크하게 흘겨보았다. 화가 난 건지 짜증 난 건지 알 수 없었다.옆에 있던 최의현이 온유한 앞에 다가가더니 턱으로 스위트룸 방향을 가리켰다.“어떻게 된 일이야? 현채영이 왜 지태주와...”온유한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온유한의 말에 강지찬 일행은 온유한을 멍청하다고 생각했다.남자와 여자가 한밤중에 호텔 스위트룸에 들어가서 3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설마 철학 토론이라도 하겠는가?하지만 온유한은 그들의 생각 따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본인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911화

    “지찬아, 유한이가 미친 거 아닐까? 임유희를 집에서 쫓아내고 현채영을 온씨 저택에 데려갔어. 최신애가 엄청 화를 낼 것 같은데?”최의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현채영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지 몰랐네... 그때 지아를 신경 쓰는 것보다 더...”강지찬이 힐끗 바라보자 최의현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지만 이내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임유희 때문에 온씨 가문과 임씨 가문 사이도 안 좋아졌어. 임씨 가문이 체면을 완전히 구겼잖아. 아마 이번 기회에 단단히 복수하려 할 거야. 그 임씨 부부도 생각이 있는 어른들은 아닌 것 같아. 온유한이 임유희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딸을 이용해 온씨 가문에 바싹 달라붙어 가문의 지위를 올리려 했으니 말이야. 하지만 최신애만 그걸 모르고 어떻게든 유한이와 임유희를 엮어주느라 골머리를 앓았지. 온유한은 임씨 가문의 속셈을 알았을까?”한규진이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코웃음을 쳤다.“그 자식 계속 약속 펑크내서 이제 어떻게 생겼는지도 까먹을 것 같아.”경은우가 말했다.“유한이 형에게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일 거야. 유한이 형이 절대 함부로 누구를 대하는 사람이 아닌데 요즘 하는 행동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니까.”최의현이 말했다.“며칠 전 만났을 때 임씨 가문 얘기를 몇 마디 했는데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어.”몇 사람이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강지찬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밤 10시가 넘은 시각. 하루 종일 잠을 잔 현채영은 가방을 들고 외출 준비에 나섰다.“잠깐!”거실에 앉아 있던 최신애는 현채영의 화려한 차림을 보고 화를 냈다.온유한이 석식이 있어 집을 비우니 현채영은 한밤중에 외출을 하려 했다.현채영이 뒤돌아서서 웃으며 말했다.“어머님, 무슨 일 있으세요?”“어디 가는 거야?”“친한 여자친구들과 술 약속이 있어 오늘 밤엔 안 들어올 거예요.”그 말에 최신애는 바로 화를 냈다. “친한 여자친구들? 부잣집에 시집갈 생각밖에 안 하는 날라리 여자들?”현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910화

    임유희도 온유한에게 쫓겨난 후 몸져누워 열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임유희는 이제 주위에서 웃음거리가 됐다.이 때문에 임씨 부부와 임유희 오빠는 온씨 가문에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바쁜 일과를 마치고 병원으로 향한 온유한은 문 앞에서 온혁진과 최신애가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그때 임유희를 집에 데려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잖아...”싸움에 휘말리기 싫은 온유한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병실에서 최신애가 병상을 두드리며 큰소리로 외쳤다.“그럼 내 탓이란 말이에요? 당신 하나뿐인 아들이 현채영 그 여자와 엮이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당신이 그렇게 만든 거잖아? 강지아가 어때서? 본인 마음에 안 든다고 그렇게 하니까 그렇지! 최신애, 우리 온씨 가문을 망치려고 작정한 거야?”온혁진의 말을 들은 최신애는 기가 막혔다. 자기가 평생 사랑한 이 남자가 그녀를 이렇게 생각할 줄 몰랐다.“내가 그런 거라고요? 다 유한이를 위해서 그런 거잖아요!”온혁진은 더 이상 이 일로 최신애와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처음부터 얘기했잖아. 유한이의 일은 본인이 알아서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당신이 기어코 유한이와 지아를 갈라놓으니 이렇게 된 거잖아. 강씨 가문과 원수가 되었고 임씨 가문의 미움도 샀어. 만약 임씨 가문이 그때 강지찬처럼 작정하고 우리를 괴롭힌다면 이번에는 누구에게 부탁해서 도와달라고 할 거야?”집안 사업과 관련된 일이었기에 온혁진의 말에 최신애도 바짝 긴장했다.“투자자들도 돈을 더 벌기 위해 투자하는데 임씨 가문 때문에 우리에게 뭐라고 하겠어요?”“당신이 뭘 알아? 정책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어. 우리보다 우수한 의료 회사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경쟁업체에서 얼마 전에 외국에서 새로운 의료기기를 도입했다고 들었어. 우리가 올해 주력으로 추진하려고 했던 프로젝트였는데...”온혁진은 말을 할수록 화가 났다.“이런 얘기를 당신에게 해봤자 당신이 뭘 알겠어. 어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임씨 가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909화

    강지아도 명성 빌딩에 오래 묵을 생각이 없었기에 아침을 먹자마자 서원준과 함께 집을 나섰다.현관문 너머로 서원준의 목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그제야 어젯밤에 서원준도 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것을 알고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벽을 내리쳤다.한편 기분이 좋아진 서원준은 일부러 온유한을 도발하기 위해 한마디 했다.“지아야, 이 집 어차피 비어 있는데 우리가 이사 오는 게 어때?”강지아는 서원준을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꿈 깨.”서원준이 일부러 다가가서 강지아를 품에 꽉 껴안자 강지아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뭐 하는 거야?”서원준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내 여자친구에게 뭘 하겠어? 어젯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중요한 걸 못했네.”강지아가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치며 말했다.“함부로 행동하기만 해 봐!”강지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쳐다보자 무언가를 기대하던 서원준은 순간 주눅이 들었다.이런 상황에 사랑하는 남녀들이라면 분명 저도 모르게 끌려서 그다음 진도로 넘어갔을 것이다.놀라움만 가득한 눈빛으로 서원준을 바라보는 순수한 강지아에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손을 놓았다.하긴 강지아가 왜 고백을 받았는지 서원준은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온유한을 속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서원준은 아쉬운 마음에 강지아의 볼을 꼬집은 뒤 말했다.“내일 나 출장 가. 저녁 비행기인데 같이 갈래? 꽤 재미있는 곳인데.”서원준은 연예계 활동 때문에 출장을 가야 했다. 강지아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연예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기에 거기에 가면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안 가. 요즘 작업실에서 현지 수주를 받은 게 있어서 자리 비우면 안 돼.”“알았어. 그럼 빨리 갔다 올게.”두 사람 모두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매일 만날 수는 없었다.오늘 서원준은 석식 약속이 있었고 내일도 바쁘기에 출장에서 돌아온 뒤에야 강지아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차에 타기 전에 서원준은 우물쭈물하더니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한마디 했다.“여기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908화

    오늘 기분이 좋은 서원준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강지아는 진수혁의 도움을 받아 서원준을 명성 빌딩에 데려다줬다. 그나마 여기가 가장 가깝기 때문이었다.진수혁은 이미 자신의 물건을 모두 옮겨갔기에 집은 예전 상태로 되었으며 먼지 하나 없이 깨끗이 청소까지 했다.두 사람은 서원준을 게스트 룸, 즉 진수혁이 묵었던 방에 데려다 눕혔다.이불을 끌어안은 서원준은 계속 웃고 있었다.“지아야... 나 너무 좋아... 정말 기뻐...”강지아는 진수혁에게 말했다.“이 집 어차피 비워둘 건데 그냥 있어도 되는데.”“여태까지 묵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고마워.”진수혁은 부엌을 가리키며 말했다.“전기와 가스 카드는 모두 원래 있던 곳에 놓아뒀어. 비용은 이미 지불했고.”말을 마친 진수혁은 오래 머물지 않고 이내 자리를 떴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진수혁은 온유한에게 명성 빌딩에서 이사를 했기에 더는 가지 않을 거라고 메시지를 보냈다.온유한은 휴대전화를 힐끗 본 뒤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병상에 누워있는 최신애는 최씨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이 자식 머릿속에 온통 그 여자 생각뿐이야. 우리 온씨 가문과 이 엄마는 안중에도 없다니까! 내가 죽는 꼴을 보고 싶어 그러나 봐. 내가 죽어야 본인을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내 팔자야! 힘들게 키운 아들이 얼마 전까지 멀쩡했는데 지금은 원수나 다름없게 되었어. 하느님, 제가 살아서 뭘 하겠습니까?”온유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얘기하고 계세요. 야식 좀 사 올게요.”황은숙도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한밤중이고 최신애의 하소연을 한참 동안이나 들으니 지칠 대로 지쳤다.“됐어. 나도 금성이 집에 가봐야 해. 유한아, 엄마 화나게 하지 말고 잘 모셔.”황은숙과 최금성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병실에는 온씨 모자만 남아 있었다.최신애의 얼굴에 있던 슬픔이 어느새 원망으로 변했다.“왜, 나와 같이 있기도 싫은 거야?”온유한이 말했다.“채영이 집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907화

    강지아의 인터뷰는 아주 재미있었다. 사회자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화령이 차를 우리면서 잡담을 나누는 형식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러면서 강지아의 다도 실력도 선보이게 되었다.녹화가 끝난 후 점심시간이 되어 화령이 강지아에게 점심을 사주기로 했다.“얼마 전에 온씨 집안이 떠들썩했던 거 알아?”강지아가 고개를 갸웃하자 화령이 말을 이었다.“나도 금성 씨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아직 외부로 알려지진 않은 것 같아.”국물을 한 모금 마신 강지아는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화령이 말하는 것을 제지하지도 않았다.“두 가지 일이 일어났어. 첫 번째는 최신애가 온씨 가문에서 며느리에게 물려줄 가보를 현채영이 훔쳤다면서 누명을 씌웠지. 그래서 경찰까지 불렀대. 온유한이 최신애와 싸우고 나서 경찰이 갔고 현채영은 별일 없었대. 두 번째 일은 어젯밤 온유한이 현채영을 위해 최신애가 집을 비운 틈을 타 임유희를 온씨 저택에서 쫓아냈고 최신애는 한밤중에 화를 내며 병원에 입원했대.”강지아는 국물을 삼킨 뒤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잘됐네. 두 사람 다 힘든 것보다 낫네. 적어도 현채영 씨는 힘들지는 않으니까.”강지아가 별 반응이 없자 화령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온유한이 많이 변했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강지아가 말했다.“좋은 사람을 만났나 보지 뭐. 현채영 씨, 괜찮잖아.”화령은 온유한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작업실로 돌아온 강지아는 커피 한 잔을 끓였다.서랍을 열어보니 서원준에게 선물할 넥타이를 아직 전달하지 않아 그대로 있었다.나중에 기회를 봐서 그에게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휴대폰이 울려서 수신자를 보니 진수혁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새집을 찾았기에 명성 빌딩에서 묵지 않겠다고 했다.월세도 내지 않고 강지아의 집에 산 것에 대해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남자친구 데려가도 돼?”“당연하지. 단골 술집에서 만나. 사장님더러 십몇 년 동안 간직해온 술을 오픈하라고 해야겠네.”“그래.”강지아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906화

    순간 임유희는 오늘 밤 온유한의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천천히 다가가 온유한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했던 임유희였다.임씨 가문이 온유한을 몰아세우면 그녀는 온유한 앞에서 이해심 많은 모습을 보여주며 그에게 점수를 딸 생각이었다.임근우와 장희수도 잘 협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변고가 생겼다.“콜록... 유한 오빠... 그게...”“봤냐니까?”온유한은 다시 한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안경을 쓰고 있지 않아 표정이 매우 사나워 보였다.“아니, 아니...”임유희는 미친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을 흘렸다.“방금 본 건 잊어버리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네네, 알겠어요!”임유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이 순간 온유한의 얼굴이 너무 무서워서 미칠 지경이었다.온유한이 한참 후에야 손을 뗐고 임유희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바닥에 쓰러졌다.하마터면 온유한의 손에 죽을 뻔했다.이 남자는 더 이상 3년 전 그녀를 설레게 했던 온유한이 아니었다.지금의 온유한은 강지아를 위해 미쳐버린 상태였다.그는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에 ‘지'자를 문신했다.미친 거 아닐까?너무 무섭다!현채영을 집으로 데려온 목적은 분명했다.강지아를 위해서라면 친엄마도 신경 안 쓰는 사람이다.이런 남자를 그녀가 어떻게 옆에 둘 수 있겠는가?감히 엄두도 못 낼 것이다.임유희는 기다시피 하며 온유한의 방을 뛰쳐나갔다.자기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혹시라도 온유한이 따라올까 봐 서둘러 문을 닫은 뒤 방문을 잠갔다.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한 뒤 거울을 보니 목에 빨간 자국이 생겼다.온유한이 진짜로 그녀를 목 졸라 죽일 뻔했다!침대에 몸을 웅크린 뒤 장희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입술을 깨물며 울음소리를 내지 못했다.“엄마, 온유한이랑 결혼하기 싫어. 집에 가고 싶어.”장희수는 지금 한창 신이 난 상태였다. 최신애가 장희수와 친해지기 위해 카드도 많이 양보했다.“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장희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905화

    “진짜 열받아 죽겠어. 정말!”화가 난 최신애는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엄마인 나를 점점 안중에도 안 두는구나. 같이 지옥에 가자고?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온혁진은 이런 최신애가 너무 귀찮았다. 낮에 임씨 가문 사람들과 만나면 그들은 온유한과 임유희의 혼사를 언제 치를 것이냐고만 물었다.지금 이런 상황에서 온유한이 임유희와 약혼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애초에 임씨 가문을 건드리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우리가 오히려 발목이 잡혔어.”온혁진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임씨 가문 사람들에게 어떻게 얘기하는지 모르겠지만 유한이 결혼에 대해 나는 상관하지 않을 거야. 경고하는데 당신도 좀 똑똑하게 굴어, 나중에 이도 저도 아닌 꼴이 되지 말고. 임씨 가문 사람들도 속셈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최신애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속셈이가 있어 봤자 무슨 속셈이가 있겠어요? 유희를 우리 집 며느리로 들이고 싶은 것뿐이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유희가 유한이만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임씨 가문도 그저 말로만 재촉하는 것이니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나라고 상관하고 싶겠어요? 현채영 같은 여자가 강지아보다 훨씬 못한데 어떻게 우리 온씨 가문에 들이겠어요? 그런 여자를 들였다가는 서울의 웃음거리가 될 거예요.”온혁진은 골치가 아팠다. 말로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온유한이 진짜로 현채영과 결혼하려 한다면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그래서 이 일은 최신애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이날 오후 최신애는 장희수와 함께 미용실에 갔다. 대화가 잘 통했는지 저녁에는 카드 놀이하러 함께 갔다.온유한이 집에 돌아왔을 때, 집에는 임유희만 있었고 현채영은 다른 일이 있어서 현씨 저택으로 돌아갔다.“유한 오빠, 아직 밥 안 먹었죠?”온유한이 ‘응’이라고 대답하자 임유희는 얼른 하인을 시켜 밥을 차리게 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어머님이 일이 있으셔서 밖에서 저녁 드시고 오겠대요. 아버님도 석식이 있으시다고 했고 현채영 씨도 저녁에 늦게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