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아가 화장실이 급해서 깨어났을 때 아직 날이 밝지 않았다. 병실의 커튼이 쳐져 있었고 방 안의 빛이 매우 어두웠기 때문에 그녀는 집인 줄 알고 손을 뻗어 침대 머리맡에서 한참 동안 스위치를 만졌지만 만져지지 않았다.이때 “탁”하고 불이 켜졌다.자신도 모르게 팔로 눈을 가린 강지아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물 마시려고?”강지아는 팔을 걷어붙이고 놀란 얼굴로 온유한을 보다가 또 자신이 처한 환경을 보며 기억은 점점 떠올렸다. 리츠에서 나온 뒤 서원준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 뒤에 발생한 일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서원준은 어디 있지? “네가 왜 여기 있어?”“그러게 내가 왜 여기 있을까?”강지아는 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온유한이 여기 있으니 그녀가 전화를 잘못 걸었을 것이 분명하다. 처음 겪는 일이지만, 그녀는 어젯밤에 깨끗하지 않은 물을 마셨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그녀가 무엇을 마셨고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온유한이 무엇을 보았는지 감히 생각할 수 없었다.구조요청 전화 한 통을 한 것 말고는 그녀들이 나쁜 놈들에 의해 어떤 방으로 끌려들어 갔던 장면만 기억하는데 방안의 광경에 매우 놀랐다.강지아는 조심스레 온유한의 시선을 피했다. 어젯밤 일의 엄중한 정도로 봐서 강지찬이 알게 되었다간 매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이 더는 입을 열지 않고 침묵을 지키자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때 강지아는 현재 가장 긴박한 임무가 생각나서 화장실로 행했다. 어떻게 온유한에게 전화를 걸 수 있지? 지금 강지아가 제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바로 온유한 이다. 느릿느릿하게 손을 씻고 세수하며 십여 분 정도 낭비했다. 온유한이 걱정되는지 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지아야, 아직이야?”강지아는 지금 변기에서 익사하는 것이 나가서 온유한을 맞이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온유한이 화장실로 들어왔다. 강지아는 순간 놀란 기색으로 화내며 소리쳤다. “들어오지 마.
강지아는 오빠에게 이런 큰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에 풀이 죽었다. 순간 자기가 너무 쓸모없는 사람이라 여겨졌다. 강지아가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자 온유한이 물었다. “많이 놀랐어?”어제 강지아가 위험에 처했을 때 온유한은 계속 그녀와 통화 중이였고 박이진이 제때 도착했기 때문에 강지아가 괜찮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사건 때문에 강지아에게 트라우마가 남을까 봐 두려웠다. 강지아는 기가 죽어 머리를 숙인 채 말했다. “다들 나를 아직 애로 보는 거지? 나한테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내가 어려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거야?”온유한은 강지아의 물음에 강지찬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이건 원래 아는 사람이 적어. 그리고 이 일은 너희 오빠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니까 너하고 말해봤자 근심하는 사람만 늘어나지.”강지아는 온유한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특히 온유한 셔츠 칼라의 립스틱 자국을 보자 더욱 슬퍼졌다.온유한은 그녀의 시선이 그의 옷깃을 스치고 기분이 나빠졌음을 눈치채자 렌즈 뒤의 눈동자가 번쩍였다.잠시 우울해하던 강지아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녀가 다시 깨어났을 때 밖은 이미 밝았다.간호사가 와서 그녀의 피를 한 대 뽑았다.강지아는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온유한의 그림자초차 보이지 않았다.간호사가 주변을 살피던 강지아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남자친구 찾으세요? 그분은 지아 씨 아침 사러 나가셨어요.”강지아는 얼굴이 달아올라 말을 더듬거렸다. “아, 아니에요.”간호사가 장난스레 말을 이었다. “남자친구분 정말 지아 씨를 아끼세요. 어제 지아 씨를 안고 들어오던데 지아 씨가 갑작스럽게 키스를 해대서 정말 놀랐거든요. 진짜 멋지신 분이세요.”“뭐라고요? 그 립스틱 자국들이 제가 한 짓이라고요?”“지아 씨 아니면 누구겠어요. 오는 내내 키스하는 것을 많은 사람이 다 봤어요.”온유한 셔츠 칼라만 해도 립스틱 자국이
“밥 먹어.”온유한이 아침을 꺼내고 작은 탁자 위에 열어놓았다. “나, 나는 먼저 양치하러 갈게.”강지아는 온유한을 쳐다보았지만, 상대방은 여전히 새벽부터 지금까지 여분의 표정이 없었다. 어색한 건 강지아 뿐이었다. 씻고 나오니 따뜻한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온유한이 어색한 기미가 보이지 않자, 강지아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리고 강지아는 숟가락을 들고 죽을 먹기 시작했다. “너희 오빠와 유진 씨가 좀 이따가 도착할거야.”“나 언제 퇴원해?”“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오면 퇴원할 수 있어.”“응.”두 사람이 요즘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강지아는 머리를 숙이고 묵묵히 아침을 먹었다. 먹고 있는데 갑자기 서원준이 전화 와서 그가 참가할 활동에 참여 하겠냐고 물었다. “제가 원준 씨 회사 연예인도 아니고 거기 가서 뭐해요?”강지아는 별로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나랑 같이 있어 줘. 패션 이벤트도 하고, 제품 전시도 하니까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사줄게.”강지아는 지금 놀러 갈 생각이 없었기에 단칼에 거절했다. “그냥 다음에 봬요.”맞은편에 앉아있던 온유한이 통화내용을 전부 들었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강지아는 그릇에 담긴 죽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다. 강지찬과 정유진 대신 주유정이 먼저 도착했다. “지아 씨, 몸은 좀 어때요?”주유정도 아침을 준비해와서는 이미 아침을 먹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미 아침 먹고 있었네요? 여기 더 있으니까 먹고 싶으면 더 먹으세요.”말하면서 준비해온 아침을 꺼내놓았다. 강지아는 온유한이 주유정을 불러온 줄 알고 차가운 표정으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숟가락을 놓고 말했다. “다 먹었어.”온유한은 아직 반쯤 남은 죽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더 먹어.”“배불러, 안 먹어.”“죽이라도 다 먹어.”강지아는 온유한을 째려보며 화를 내려고 했는데 주유정이 나서서 말렸다. “지아 씨가 먹고 싶지 않으면 먹지 마세요. 여자아이들이 원
강지찬과 정유진도 얼마 안 돼 병원에 도착했다. 그들은 강지아가 아무 일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강지찬은 경찰청으로 발길을 옮겼고 정유진은 병원에 남아 병간호를 하기로 했다. “저 괜찮아요. 후유증도 없고, 당장 퇴원할 수 있어요.”강지아는 마음이 아주 불편했다. 특히 온유한과 주유정이 같이 있으니 더욱 어색하고 짜증 났다. 어젯밤 일은 어찌 됐든 좋은 일이 아니었고, 말을 꺼내기가 민망했다. 중요한 것은 주유정과 온유한에게 딱 발견되었으니 정말 생각만 해도 벽에 부딪혀 이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강지아는 정유진의 팔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 “언니, 저 퇴원하고 싶어요.”정유진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아직 안돼, 검사결과가 나온 뒤에 결정하자.”정유진은 강지아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온유한과 주유정에게 말했다. “온 선생님과 주유정 씨도 얼른 일 보세요. 제가 지아와 같이 있으면 돼요. 그리고 어젯밤에 정말 고마웠어요.”“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온유한은 더는 입을 열지 않고 강지아를 힐끔 쳐다보고 주유정과 함께 병실을 떠났다. 그들이 떠나자 강지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온 선생님께서 병간호를 해주셨던 거야?”정유진이 강지아에게 물었다. “맞아요.”강지아는 무릎을 끌어안고 웅크린 채 대답했다. “저를 동생이라고 생각하니까 오빠라는 사람이 저를 혼자 놓아둘 수 없었나 봐요.”“온 선생님과 주유정 씨 아직 사귀지 않았다는데 정말 손 놓을 생각이야? 더 노력해볼 생각 없어?”“?”“좋으면 쫓아가야지 무서워하지 말고.”강지아는 전혀 용기를 내지 못했다. “저 못해요.”정유진은 강지아에게 강요할 생각이 없었기에 더는 설득하지 않았다. 얼마 뒤 화령이 찾아왔길래 강지아는 정유진에게 인터뷰에 관해 물었다. 정유진은 강지아의 부탁 때문에 화령에게 인터뷰를 두 시간 내주겠다고 약속하고 화령더러 임우연과 일정을 맞추라고 했다. 화령은 성공적인 섭외에 너무 기뻐 날아갈 것 같았다. 검사결과 두 사람 모두 문
“그 집 어머니가 나를 찾아와서는 너를 못마땅하게 여겨서 온 씨 집안의 며느리로 삼을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강홍식은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현재 강씨 가문의 지위로 그가 밖에서 돌아다니면 아첨하려 들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최신애에게 체면이 구겨진 것 같아 화를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강홍식은 강지아에게 엄격히 경고했다. “다시는 온유한 그 자식이랑 만나지 마. 그러지 않으면 너에게 소개팅을 시켜줄 거다.”강지아는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라고요? 아주머니께서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어요?”“그래, 내가 설마 거짓말하겠냐?”“그 온유한 이라는 자식 이제 서른두 살이 되는데 너를 마음에 두고 있다면 진작에 말했을 것이다. 그 집 어머니가 이미 눈 여겨둔 며느리감이 있으니 너더러 단념하라고 말하더라.”강지아는 강홍식의 말에 충격을 받고 멍하니 서 있었다. 상냥하고 단아한 모습, 그녀를 보면서 항상 웃는 모습이 너무나 다정했고, 그와 같은 딸을 원한다는 말을 수없이 해온 아주머니가 “단념하라”는 말을 내뱉을 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강지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을 보고 정유진이 더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르신, 저희는 지아의 가족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우리는 지아의 편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온 씨 가문은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합니까? 강지아가 온유한과 사귀었나요, 아니면 그에게 매달렸나요? 온 부인은 무엇 때문에 우리 지아를 업신여기시는 건데요?”강홍식은 정유진의 반박에 말문이 막혀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정유진도 강홍식을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런 집안에서만 난폭한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강 씨 온 씨 양가는 대대로 친분이 있었고 강지아의 상황은 최신애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강지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무슨 자격으로 강 씨 가문과 지아를 비난하는 것인가? 심지어 강지아와 온유한은 사귄 적이 없다. 최신
강지아는 자신을 한참 깎아내리다가 말할수록 더 기운이 빠졌다.온유한의 눈에 주유정은 분명히 자신감 있고 당당하며 능력도 있는 여자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제멋대로인 어린애에 불과했다.“네가 유정 씨보다 못하다고 누가 그래?”정유진이 웃으며 말했다. “지아 넌 유정 씨보다 몇 살 어리잖아. 난 유정 씨도 지아 네 나이 때는 그저 걱정 없이 살던 소녀였을 거라고 생각해. 나도 네 나이 때 창업을 시작했어. 계약을 따내기 위해 낮에는 밖에서 영업 뛰고 밤에는 야근하면서 도면을 그렸지.”“그건 언니가 능력이 있으니까 성공한 거죠.”“물론 나는 성공할 거라고 믿었어. 하지만 네 오빠가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성공하지 못했을 거야. 노력도 중요하지만 네 오빠가 나한테 제공해준 조건들이 더 큰 보상을 가져다준 거야.”정유진은 기회를 틈타 말했다. “너도 그 사람의 여동생이잖아. 너도 그 조건들을 가지고 있어. 왜 한 번 시도해 보지 않겠니? 유정 씨는 서른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차렸고, 넌 스물셋에 벌써 네 스튜디오를 열었잖아. 어디가 부족하다는 거니?”강지아는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도 할 수 있어요?”정유진은 웃었다. “그럼, 왜 안 돼? 설마 우리의 도움 없이 처음부터 시작할 거야? 지아야, 강씨 가문과 네 오빠도 너의 큰 장점이란 걸 알아야 해.”강지아의 마음이 서서히 따뜻해졌다.‘그래, 왜 과거에 매달려 자책하고 있었던 걸까? 더 멋지게 살 수 있지 않나?’주유정이 귀국해서 스튜디오를 차린 것도 주씨 가문의 도움과 인맥이 필요했을 것이다.그렇다면 자신은 왜 안 된단 말인가?“언니, 사랑해요!” 강지아는 정유진을 끌어안고는 볼에 큰 키스를 한 후 바람같이 계단을 올라갔다. “언니, 저 나가야 해요. 저녁엔 안 들어와요!”“또 어디 가서 사고치려고?” 강지찬은 얼굴이 어두웠다.집에 들어서자마자 강지아가 자기 아내를 껴안고 뽀뽀하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어젯밤 일도 아직 정리하지 못했는데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최신애는 소파에 단정히 앉아 있었는데 눈빛이 엄중했다.“그러니까 강지아가 정말로 그런 저질스러운 곳에 갔고, 물에 뭔가 섞인 걸 먹었다는 거야? 명문가의 아가씨가 자존심도 자애심도 없군!”온유한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주머니, 그건 전형적인 피해자 비난이에요. 범죄를 저지른 건 지아가 아니잖아요.”옆에 있던 주유정이 머쓱해지며 해명했다.“그 술집은 작년에 막 문을 연 곳인데 정말 인기 많아요. 평소에도 깨끗하고요. 저도 귀국한 후에 유한이랑 한 번 가봤는데 그때도 지아 씨가 거기서 춤을 추고 있었어요. 평소엔 아무 문제 없었거든요.”“술집에서 춤까지 춘다고?” 최신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곳에서 춤을 춘다고? 도대체 그 애는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보아하니 자주 가는 곳이겠구나. 너희가 가선 괜찮았는데 왜 하필 그 애만 그런 일이 생겼지?”“아주머니, 그게 아니에요...”“편 들어 줄 필요 없어. 그 애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으니 이런 행동을 하는 것도 당연하지.”온유한은 참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그런 건 어른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말이에요.”아들이 반박했지만 최신애는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어제 강홍식을 만났는데 강지아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눴어. 원래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어젯밤 일을 겪고 나니 그때 좀 더 분명하게 말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네.”온유한의 눈빛이 깊어졌다. “무슨 얘길 하셨어요?”최신애는 담담히 대답했다. “별건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며느리 후보가 따로 있다는 걸 강홍식에게 살짝 암시했지.”온유한은 벌떡 일어나 어머니를 똑바로 쳐다보았다.“어떻게 강씨 집안에 그런 얘길 할 수 있어요? 저랑 지아가 사귀기라도 했어요? 아니면 뭐 결혼이라도 하기로 했어요? 왜 굳이 남의 집 딸을 모욕하세요?”“그렇게 흥분할 일이야?” 최신애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네 태도를 보니까 마음에 꺼리는 게 있나 보
두 남자는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다가 결국 서원준이 먼저 물러섰다.“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다음에 시간 내서 같이 한잔할까요?”온유한은 냉랭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서원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떠나갔다. 돌아서는 순간 서원준의 입가엔 가벼운 비웃음이 스쳤다.오늘의 강지아는 평소와 달랐다. 아침에는 차갑게 굴더니 오후에는 행사에 가자는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내내 즐거워하는 듯 보였다. 마치 무언가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듯했다.서원준은 그 내려놓은 것이 온유한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온유한이 집에 돌아왔을 때 발코니에서 강지아가 이미 집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옆집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강홍식의 성격과 강지아에 대한 태도를 보면 어제 그렇게 큰 망신을 당했으니 분명 강지아에게 화를 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강지아의 상태는 전혀 예상과 다르다.온유한은 강지아의 속마음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안경을 벗고 눈가를 주무르며 당장이라도 찾아가서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강지아는 매우 들뜬 상태였다. 화장을 지우고 샤워를 마친 후 컴퓨터 앞에 앉아 자신의 작업실 디자인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이제 확실히 마음을 먹었다. 작업실을 빨리 시작해야겠다고.밤을 꼬박 새며 작업하다 결국 피곤해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허리는 뻐근했고 목은 나무토막처럼 뻣뻣했다.‘차라리 새언니를 불러볼까?'‘안 돼, 스스로 해야지.'배가 고파 슬리퍼를 질질 끌며 문을 열어보니 예상대로 문손잡이에 아침이 걸려 있었다. 오늘 아침은 다른 가게에서 온 것 같은데 맛도 꽤 괜찮았다. 식사를 마치고 침대로 가서 반나절을 깊이 잤다.한창 자고 있던 중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서원준이었는데 그의 목소리는 힘이 없는 듯했다. “바보야, 병문안 좀 와.”강지아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누구 병문안을...”“나, 사고 나서 지금 병원에 누워 있어.”“...”서원준은 태안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