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찬이 유언장을 작성한 사실은 임우연만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일은 그가 직접 가서 처리했기 때문이다.임우연이 아주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지난번 정 대표님이 다쳐 병원에 입원한 뒤 강 대표님이 유언장을 만들었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하면서 이 일도 마무리가 됐고요. 유언장에는 K그룹에서의 강 대표의 모든 지분을 정 대표님에게 상속하겠다고 적혀있습니다.”“말도 안 돼!”고세연이 제일 먼저 일어섰다.“지찬이가 어떻게 모든 지분을 한 사람에게 줄 수 있어! 여기 친아버지도 있는데!”정유진은 유언장에 충격을 받은 듯 말을 하지 않았다.강지찬은 왜...임우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유언장은 이미 공증까지 마쳤고 증인으로 변호사까지 있으니 다들 의심이 되면 이 서류를 확인하세요. 게다가 정 대표는 남이 아니라 강 대표의 아내입니다.”고세연은 서류를 낚아채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 그럴 리가...”유언장에는 주식 외에도 강지찬 명의의 부동산은 연우와 강지아에게 준다는 내용이 적혀져 있었지만 서류를 아무리 뒤져도 강홍식의 이름은 없었다.“말도 안 돼! 이 유언장은 가짜야!”고세연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고 강홍식도 화가 난 듯했다. 친아들의 눈에 아버지의 자리가 이토록 없을 줄은 정말 몰랐다.물론 강홍식의 수중에도 평생을 다 쓰지는 못할 정도로 많은 자산이 있다.하지만 이건 다르다.강홍식은 순간 처음으로 자신이 아버지로서 실패했다고 느꼈다.다가와 고세연의 손에 있던 서류를 빼앗아 본 강원훈도 어리둥절했다.유언장을 본 다른 주주들도 이 유언장이 진짜라는 것을 확신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최의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정유진, 정 대표가 K그룹 회장 직무대행을 제안합니다. 다들 이견 없으시죠?”강지현이 제일 먼저 나서서 말했다.“전적으로 동의합니다.”강지현이 동의하자 그의 편에 섰던 주주들도 당연히 이견이 없었고 결국 강원훈 한 명만 남게 되었다.모두가 자신을 쳐다보는 모
K그룹 내부는 안정되었지만 그에 따라 강지찬의 실종 소식도 숨길 수 없었다.언론은 소식을 듣고 몰려와 K그룹의 문 앞을 꽉 메웠다.K그룹 계열의 크고 작은 회사들도 소란을 피웠고 K그룹과 협력하고 있는 기업들도 회장실에 계속 전화했다.정유진은 이런 상황이 처음이지만 겉으로는 아주 차분해 보였다. 하지만 분명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이때 강지현이 그녀에게 아이디어를 주었다.“기자회견을 해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최이현과 임우연이 눈을 마주쳤다. 비록 강지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K그룹의 위아래 협력업체들뿐만 아니라 여론도 통제해야 했다.게다가 새로운 프로젝트는 강지찬이 심혈을 기울인 것이기에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비딩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정유진은 최의현과 임우연의 의견을 묻고자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정 대표님만 준비되면 바로 준비하겠습니다.”어차피 기자들은 아래층에 있으니까 바로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정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준비해 주세요.”그 말에 임우연이 대답했다.“대답할 질문들도 모두 준비해 놓겠습니다.”시간이 촉박한 상황이라 임우연은 서둘러 안배했다.강지현이 말했다.“좀 이따 최의현 씨가 옆에 있을 테니 긴장하지 마세요. 기자회견에 온 기자들은 모두 K그룹과 협력했던 기자들이라 난처한 질문은 하지 않을 거예요.”하지만 정유진은 지금 강지현을 상대할 기분이 아닙니다.반면 갑작스럽게 자기 이름이 언급된 최의현은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최의현은 아주 바쁘다. 성원을 인수한 후 더 바빠졌지만 그렇다고 강지현이 정유진과 함께 있게 할 수는 없었다.설령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같이 있는 강지현까지 데리고 나가야 했다.“강지현 씨, 형수님이 좀 피곤한 것 같으니까 푹 쉬실 수 있게 우리가 나갈까요?”강지현도 굳이 남아서 남의 미움을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강지찬은 죽었고 이제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그렇다 보니 정유진의 기분을 상하게 할
아침에 일어나니 연우는 이미 스스로 옷을 다 입고 침대 옆에 엎드린 채 까무잡잡한 눈으로 정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엄마, 아빠 언제 와? 이렇게 오랫동안 출장 가니까 보고 싶어.”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정유진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아빠가 많이 바빠.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아가야, 요즘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지내면 안 될까?”“응, 좋아.”연우 선생님은 요즘 자현거로 수업하러 오기에 아이를 부모님에게 맡겨야 정유진도 안심되었다.정유진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이명자는 밤새 끓인 탕을 가져왔다.“지금 안팎으로 너를 노리고 있으니 몸조심해.”이명자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사람을 아직 못 찾았잖아. 분명 다른 사람이 구했을 거야.”정유진은 엄마의 말에도 쉽게 웃을 수가 없었다.“난 괜찮아요. 엄마도 아빠도 걱정하지 마요.”연우를 유치원에 보낸 후 그녀도 바로 K그룹으로 갔다.지금 이런 상황일수록 전에 강지찬이 조우민을 영입한 것이 너무 고마웠다. 조우민과 강예중이 있으니 연우 인테리어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연우 인테리어와 K그룹은 가까이 있기에 소미는 아침 일찍 그녀의 사인이 필요한 서류 들고 왔다가 확인을 받고 서명을 마치면 다시 연우 인테리어로 갖고 돌아갔다.온유한이 전화를 걸어와 장형준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부상이 너무 심하고 갑자기 사고가 나서 아무런 유용한 정보도 듣지 못했다.강지찬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고 했다.통화를 마친 정유진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강지찬의 사무실과 책상 위에 쌓인 서류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점점 굳어졌다. 이제 그녀가 강지찬을 대신해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할 때이다.이때 임우연이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정 대표님, 고 대표님도 오셨습니다.”정유진이 깜짝 놀랐다.“고남준 씨?”“네, 맞아요. 계속 K그룹과 협력하고 싶어 했지만 강 대표님이 허락하지 않았어요.”그 말에 정유진이 대답했다.“절차대로 하죠. K그룹과 협력하려면 고남준도 성실하게 비딩에 참여
정유진이 생각지도 못한 것은 강지찬 외삼촌 세 식구를 만나게 된 것이다.외삼촌 외숙모는 외지에서 팀을 이끌고 유적지를 둘러보다가 강지찬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돌아왔다.빨갛게 부어오른 외숙모의 눈을 보니 이미 심하게 운 것이 분명했다.만난 뒤 안부를 묻는 그녀의 인사에 정유진은 참지 못하고 최효진과 부둥켜 또 한 번 울었다.경우성은 옆에서 한숨을 쉴 뿐이다. 여동생이 없는 지금 조카에게까지 이런 일이 생겼으니 말이다. 무능한 자신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원망했다.경은우는 정유진의 시뻘게진 눈시울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형수님에게 자꾸 그러지 마세요. 지금 가장 슬픈 사람이 형수님일 거예요. 위아래로 모두 강씨 가문을 지켜보고 있어요.”경은우도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다.“형수님, 방금 방씨 아주머니에게서 들었는데 어르신이 돌아오라고 하셨다면서요?”정유진은 어르신이 돌아오라고 한 이유가 경씨 가문 사람들은 만나게 하기 위해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경은우가 이렇게 물어본 것을 보니 아마도 K그룹 일임이 분명하다.경은우는 K그룹의 현재 상황을 매우 잘 알고 있다.“걱정 마세요. 우리가 곁에 있으니까.”최효진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강씨 집안의 그 배은망덕한 놈들이 감히 이런 상황에서 너를 괴롭히다니!”혼자서 모든 것을 대응하던 정유진은 순식간에 자신이 생겼다.저녁은 강홍식 집안 마당에서 먹었지만 작은 집 식구들과 강원훈은 부르지 않았다.아마 어르신도 그 두 가족에게 화가 나 있는 것 같다.강홍식의 뜻은 간단했다. 고세연이 회사에 출근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하지만 정유진은 바로 거절했다.“안됩니다.”정유진이 이 정도로 체면을 안 세워줄 줄 몰랐던 강홍식의 안색은 급격히 안 좋아졌다.“잊지 마. 너는 강씨 가문의 며느리이고 큰집 사람이야. 세연이는 어쨌든 너의 어른이고. 가면 당연히 너를 돕기 위해 그런 것이지 해치려고 출근하려는 것은 아니잖아.”가뜩이나 입맛이 없던 정유진은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아
정유진의 뺨에 깜짝 놀란 고세연은 억울한 얼굴로 강홍식의 옷을 잡아당겼다.“나 이렇게 괴롭힘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거예요?”최효진은 드디어 화가 풀렸다. 다정다감한 정유진은 절대 고세연 같은 여자의 상대가 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두말없이 바로 손을 댔던 것이다.강씨 집안을 상대하는 데 있어 최효진도 교양을 갖추기 귀찮았다.“왜? 어르신까지 끌어들여 너의 편에 서기를 바라? 오늘 누가 감히 내 조카며느리를 건드릴지 나야말로 두고 볼게!”늙은 강홍식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따귀는 고세연이 맞았지만 사실은 그의 얼굴을 때린 것과 다름없다.테이블의 분위기는 매우 어색해져 도저히 식사할 기분이 나지 않은 정유진은 자리로 돌아갔다.이때 경우성이 헛기침을 한 번 하며 분위기를 중화시켰다.“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지찬이를 찾는 거야.”솔직히 말해서 경우성과 최효진은 사돈 식구를 무시했다. 강지찬의 체면을 보지 않았더라면 강씨 집안에 발도 들여놓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강홍식도 큰외삼촌 앞에서도 횡포를 부리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 지찬이는 내 아들이고 당연히 잘 되길 바라요.”옆에 있던 고세연은 아무 말도 못 했다.마당으로 돌아온 정유진은 방경숙에게 저녁을 준비하라고 분부했다. 조금 전, 그쪽에선 다들 잘 못 먹었기 때문이다.방경숙이 말했다.“음식은 다 되었어요. 가면 못 드실 줄 알고 이미 주방에 준비하라고 했어요.”밥을 먹은 뒤, 경씨 가문의 세 식구가 떠나자 송지윤은 보양식 한 보따리를 들고 왔다.송지윤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살 빠진 것 좀 봐요. 유진 씨, 건강 잘 챙겨요. 아이와 K그룹은 유진 씨가 지켜야죠. 그러다가 쓰러지면 지찬이가 돌아와서도 마음이 아프지 않겠어요?”진심이든 거짓이든 송지윤의 말은 듣기 좋았다.“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전 괜찮아요. 이 물건들은 가져가세요.”“유진 씨를 주려고 산 거예요. 내가 가져가서 뭐 해요? 나중에 방 씨 아주머니보고 끓여달라고 하세요.”송지윤은 한숨을
강지찬에게 아무런 소식이 없었지만 K그룹이 문을 닫을 리가 없다. K그룹은 많은 사람들을 먹고 살리기 때문이다.임우연은 비딩에 참가한 각 회사의 자료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정유진에게 전부 갖다 줬다.“정 대표님, 이 자료들은 최 부사장님과 이미 확인해 봤습니다. 대략적으로 분류를 했는데 비딩 시 협력 의사가 유력한 곳은 왼쪽 첫 번째이고 가운데는 비교적 유망한 회사입니다. 제일 높이 쌓아놓은 것은 비딩에 참여한 다른 회사들입니다.”“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그러자 임우연이 말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데요. 고남준의 회사는 첫 번째 부분에 있습니다.”“네, 신경 써서 볼게요.”입찰이 곧 다가오기에 이런 것들을 반드시 먼저 알아야 했다.임우연도 방해하지 않고 문을 닫고 나갔다.자료 하나를 집어 들었을 때, 누군가가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들어오세요.”강지현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들어와 그녀 앞에 놓더니 의자를 끌어당겨 맞은편에 앉았다.정유진이 바로 말했다.“바빠요.”강지현은 그녀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바쁜 거 알아요. 유진 씨, 나는 유진 씨를 해치지 않아요. 날 믿어요.”정유진은 이런 말에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할 말이 있으면 바로 하세요.”“고남준과 협력하지 말아요.”정유진은 어이가 없었다.강지현이 말을 이었다.“유진 씨는 강지찬 아니잖아요. 그 사람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나를 믿어요. 협력하지 마세요.”정유진은 어리둥절했다.그녀는 강지찬이 아니기에 당연히 강지찬처럼 쇼핑몰에서 기세를 내세울 능력이 없다. 하지만 고남준과의 협력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그러나 그녀는 강지현의 이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느꼈다.“고남준이 서울로 올라온 건 사실 한몫 챙기기 위해서예요. 이제 강지찬이 없으니 수작이 더 많을 거예요.”강지현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나중에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처음부터 안 하는 게 나아요. K그룹을 등에 업고 서울에 발을 붙이려는 게 최종 목적이었지만 이 사
강지찬에게 사고가 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구조대는 여전히 사람을 찾지 못했다.회의가 끝난 후 정유진은 강지아의 전화를 받았다.강지아는 전화기 너머에서 큰 소리로 울고 있다.“새언니, 이 사람들이 찾지 않으려 해요. 어떡해요, 우리 오빠를 아직 찾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이대로 포기할 수 있어요? 새언니, 이제 어떡해요. 우리 오빠 어떡해요, 자기를 구해주길 기다리고 있을지도...”일주일, 7일이 지났지만 이 사람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나타나지 않는다.온유한이 강지아의 핸드폰을 가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형수님, 구조팀도 인력과 물자 모두 여기에 쓸 수는 없어요. 우리가 돈을 더 준다고 해도 말을 안 들어요. 구조팀도 이미 최선을 다했어요. 며칠 동안 수십 킬로미터의 강을 모두 찾아다녔거든요.”정유진은 간단하게 한마디로 대답했다.“알겠어요.”휴대폰을 내려놓았을 때,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 되었다.‘지찬 씨, 진짜 못 오는 거예요?’강지아는 다음 날 돌아온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강홍식과 말다툼을 했고 방경숙은 정유진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와보라고 했다.서둘러 돌아갔지만 강지아는 진작 강홍식의 정원에서 한바탕 난동을 부렸다.바닥은 온통 난장판이라 발 디딜 틈이 거의 없다.강지아는 아직도 울고 있었고 왼쪽 뺨에는 손바닥 자국이 나 있었다.강지아의 얼굴을 본 정유진은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누가 때렸어?”강지아는 창피한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정유진은 강홍식과 고세연을 번갈아 보다가 고세연의 얼굴을 노려보며 물었다.“누가 때렸어?”고세연이 이내 입을 열었다.“나 아니야, 나 보지 마.”이 집안에 고세연이 아니면 강홍식밖에 없다.강홍식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목까지 시뻘게졌다.“딸을 때리는데 남의 허락을 받아야 해?”하지만 강홍식을 무서워할 강지아가 아니다. 이내 정유진의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새언니, 괜찮아요. 나나 오빠나 여태껏 살면서 이런 일이 없었겠어요? 따귀는 고사하고 오빠는 생사조차 알 수 없는데 아버지라는
온유한은 장형준과 그 비서를 헬기로 태안병원으로 옮겼고 정유진은 두 사람을 찾아갔다.비서는 열심히 회복하고 있었다. 뼈가 부러진 곳은 꽤 오래 쉬어야 한다.장형준의 상태는 여전히 심각했다. 매일 깨어 있는 시간이 너무 적어 온유한은 전문 의사 선생님에게 연락하여 개두술을 준비했다.“걱정하지 마. 우리 의사들이 있잖아. 간병인도 24시간 배치했고.”말을 하던 온미정은 정유진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요즘 몸무게 재본 적 있어? 거울 좀 봐봐. 너무 야위어서 귀신 같아.”“잠이 안 와요.”정유진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너...”“고모님, 이제야 내가 그 사람을 많이 사랑했음을 알 것 같아요.”온미정은 한숨을 내쉬었다.“지찬이가 어떻게 되든 너는 꼭 견뎌야 해. 엄마, 아빠도 있고 아이도 있잖아. 지찬이가 이 말을 들으면 얼마나 좋아하겠어.”정유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설마 온미정마저 강지찬이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온미정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K그룹으로 돌아오자 임우연이 황급히 다가왔다.“정 대표님, 성유 쪽에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정유진은 깜짝 놀랐다.“성유요?”임우연이 설명했다.“전태연, 기억나시죠? 작년에 강 대표가 전씨 가문의 사업에서 인수한 작은 회사인데 원래는 작은 동영상 플랫폼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되었어요. 이름을 성유라고 바꾸고 인플루언서들과 연예인 계약서를 체결하여 현재 몸집을 점점 더 키우려 했습니다.”“무슨 일인데요?”임우연은 사무실 문을 닫으며 말했다.“몇몇 인플루언서들이 매니저들을 스폰서에서 뇌물을 받고 횡령혐의로 신고해 경찰이 개입했어요.”“사실입니까?”“네, 사실입니다.”“공적인 일이니까 회사 입장에서 처리하세요.”임우연이 아무 말을 하지 않자 정유진이 계속 말을 이었다.“이 일은 직접 처리하고 성유의 담당자가 능력이 안 되면 바꾸세요. 다시는 이런 일
대화를 나눈 후에야 온유한은 강지아에게 문신해준 사람이 진수혁이라는 것을 알았다.그녀가 타투이스트와 친구가 된 것을 온유한은 모르고 있었다.“지아가 그쪽 이름을 문신으로 새긴 거 보면 많이 사랑한 것 같은데 왜 헤어진 거야?”온유한은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지아에게 내가 어울리지 않으니까.”맥주를 다 마신 뒤 온유한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진수혁은 쓰레기를 치운 뒤 샤워를 했다.진수혁은 이 집에 살고 있긴 했지만 강지아의 안방이 아니라 게스트 룸에 묵었다.샤워를 마친 뒤 강지아에게 문자를 보냈다.[네 전 남자친구와 한바탕 싸웠어.]강지아에게서 바로 답장이 왔다.[누가 이겼어?][당연히 내가 이겼지, 네 전 남자 친구 몸도 별로 안 좋았어. 반쯤 취했거든.][앞으로는 손 쓰지 마. 감당 못 하니까.][마음이 아픈 거야?][내가 마음 아플 게 뭐가 있겠어. 진작 헤어진 사람인데.][언제 돌아와? 단골 술집 가서 술이나 한잔하자.][곧 갈 거야, 돌아가면 연락할게.]이날 밤 온유한과 현채영 두 사람 모두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온씨 저택에 얼굴을 비쳤다.현채영이 종이백을 들고 있는 걸 보니 쇼핑을 하고 온 모양이었다.임유희를 본 현채영은 반갑게 인사했다.“임유희 씨, 퇴근했나 봐요? 오늘 쇼핑하다가 임유희 씨와 잘 어울리는 치마가 있어서 샀어요.”현채영은 치마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마음에 드는지 한 번 봐요.”이런 체면치레에 임유희는 순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아니요. 괜찮아요.”약간 울먹거리는 임유희의 목소리에도 현채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우리 사이에 왜 예의를 차리고 그래요. 이 치마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산 거예요. 유희 씨가 나보다 날씬해서 안 입으면 나도 못 입는단 말이에요. 나와 유한 씨가 특별히 임유희 씨를 위해 산 건데.”그러자 옆에 있던 최신애가 종이봉투를 바닥에 내던지며 말했다.“누가 이따위 치마가 필요하대? 너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지? 온유한이
임유희가 돌아오자 최신애는 얼른 하인더러 저녁 식사를 차리라고 지시했다.마침 현채영이 없으니 임유희와 온유한에게 좋은 시간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런데 음식이 다 나오기도 전에 온유한이 술을 마시러 나가자 임유희도 밥을 먹지 않고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최의현과 단둘이 술을 마시기로 약속한 온유한인지라 강지찬을 부르지 않았다.“현채영을 집으로 데려갔다면서?”“응.”최의현은 순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그럼 집안이 시끌벅적하겠구나, 임유희에 현채영까지.”술을 한 모금 마신 온유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룸을 예약하지 않고 밖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며칠 후면 지찬이네 아들 생일인데 갈 거야?”온유한은 양복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최의현에게 건넸다.안에는 순금에 보석을 박은 금 자물쇠가 들어있었다. 뭘 선물해야 좋을지 몰라 비싼 것으로 선택했다.선물을 받은 최의현이 물었다.“안 갈 거야? 지아가 올지도 모르는데.”술을 마시던 온유한은 한참 뒤에야 말했다.“안 가.”최의현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너 설마 진짜로 현채영과 그런 사이야? 일부러 네 엄마 화나게 하기 위해 만나는 줄 알았는데... 아니,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인데?”온유한은 술을 한 모금 더 마신 후 말했다.“지아와 진작 헤어졌고 강씨 가문과도 인연을 끊었는데 내가 가서 뭐해?”“너 이 자식...”최의현은 당장이라도 욕설을 내뱉을 기세였다.“너 그냥 화가 나서 이러는 거지?”온유한이 피식 웃었다.“서원준과 약혼하면 내가 큰 선물 보낼게.”“너 정말 미쳤구나.”최이현이 한마디 했다.두 사람은 적당히 마신 후, 에이프릴 홀에서 나왔다. 시계를 보니 아직 열한 시가 되지 않았다.최의현은 약혼녀의 전화를 받고 먼저 가버렸고 온유한은 차 열쇠를 운전 기사에게 건넸다.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눈을 감은 온유한은 집만 생각하면 짜증이 났다.“오늘은 집에 가고 싶지 않아요.”운전 기사는 백미러로 그를 힐끗 쳐다본 뒤 말했다.
현채영은 두 손가락으로 카드를 집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어머님, 카드 안에 얼마 있는데요?”“20억.”현채영이 입을 삐죽거리자 최신애가 냉소를 지었다.“왜 적어? 네 집에 20억은커녕 2천만 원이라도 있긴 해?”현채영은 어깨를 한 번 들썩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어머님, 제가 바보 같아 보이나요? 유한 씨에게 시집오면 온씨 가문 사업이 모두 내 것이 될 텐데 고작 20억으로 유한 씨를 포기하라고요?”그러자 최신애가 현채영에게 삿대질하며 말했다.“유한이에게 시집가고 싶어? 꿈 깨! 눈치가 있으면 돈 들고 꺼져.”현채영은 카드를 최신애 앞으로 밀며 말했다.“제가 나갈지 말지는 어머님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유한 씨가 결정하는 거예요.”“너!”이때 마침 현채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전화를 받은 현채영은 전화기 너머의 사람을 향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오 대표님이시네요? 오랜만이에요. 오 대표님... 생각이요? 당연히 했죠. 너무 보고 싶어요... 저녁이요? 알겠어요. 그럼 저녁에 뵐게요.”최신애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너! 너 다른 남자와 노닥거리는 걸 유한이 알아?”현채영이 웃으며 말했다.“어머님, 유한 씨는 당연히 모르죠. 하지만 오 대표님은 그저 친구일 뿐이에요. 오랜만이라 만나서 술 한잔 마시는 거니까 유한 씨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거예요.”이런 여자를 온유한이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집으려 데려왔다니! 최신애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정말 가문이 망하는 꼴을 보고 싶어 환장했나...“너 이거, 이거...”화가 난 최신애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도 잇지 못했다.“유한이에게 네 민낯을 똑똑히 알리고 말 거야. 널 내쫓게 할 거야.”그 말에도 현채영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대꾸했다.“말하세요. 유한 오빠가 어머님을 믿을까요. 아니면 저를 믿을까요?”최신애는 말문이 막혔다.오후에 꿀잠을 잔 현채영은 온유한이 퇴근하기 전에 메이크업을 하고 집을 나섰다.온유한이 돌아오자마자 최신애는 바로 가서 고자질
최신애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열받아 죽겠네. 유한이가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조금 전에 한 말 무슨 뜻이야? 밖에서 현채영과 자고 오겠다는 얘기야?”임유희는 심장이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첫 만남 때 절친이 힘을 내라고 북돋우는 데 용기를 얻어 그에게 다가가 연락처를 물었지만 그는 다정하면서도 단호하게 대답했다.“여자친구가 있어요.”그때 강지아가 너무 부러웠다.지금의 온유한은 더 이상 그녀를 설레게 했던 온유한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어머님, 아니면 저 그냥 집에 갈게요. 제가 여기 있어 봤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오히려 유한 오빠를 더 화나게 하는 것 같아요.”“안돼. 네가 가면 저 여자가 더 함부로 나댈 거야. 내일부터 출근이잖아. 운전 기사에게도 얘기했으니 앞으로 네 출퇴근 픽업을 책임질 거야. 퇴근하자마자 집에 와. 저런 여자와 넌 달라. 넌 네 할 일만 해. 나머지는 나에게 맡기고.”이 말에 임유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날 밤 온유한과 현채영은 진짜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 날 정오에야 얼굴을 비쳤다.그 모습을 본 최신애는 현채영에게 눈을 희번덕인 뒤 온유한을 향해 말했다.“유한아, 오늘 평일인데 병원에 안 가봐도 돼? 넌 어중이떠중이들과 달라. 앞으로 온씨 가문 사업을 물려받아야 하는 사람이야.”그러자 현채영이 온유한의 팔짱을 끼며 웃었다.“어머님, 유한 씨를 잘 모르시나 봐요. 어제 저녁에 간 석식 자리가 평범한 술자리는 아니에요. 단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밖에서 하룻밤 묵은 것뿐이에요. 알다시피 저와 유한 씨 다 성인이고 집에서는 좀 불편한 것도 있어서.”그 말에 최신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무슨 뜻이지? 아들이 이 천한 년과 잤다는 뜻인가?이제 서른다섯 살이나 먹은 온유한인지라 이런 것들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3년 전에 임유희도 건드리지 않았고 아마 강지아도 건드리지 않았을 것으로 최신애는 짐작했다.그런데 이 뻔뻔한 천한 년과 잤다고
다행히 주방에서 매일 죽을 끓였기에 현채영의 앞에 죽 한 그릇이 놓여졌다.그러나 한 입 맛본 현채영은 미간을 찌푸렸다.“맛이 이상해요. 음식 재료를 안 좋은 거 쓰신 거 아니에요?”화가 난 최신애는 테이블을 탁 하고 쳤다.“먹기 싫으면 먹지 마! 여기가 네 집인 줄 알아? 교양이 하나도 없네!”최신애의 이런 모습에도 현채영은 전혀 화를 내지 않았고 그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어머님이 안 좋은 거 드실까 봐 걱정돼서 그러죠. 어떤 사람들은 안 좋은 물건을 좋은 것이라고 속여서 팔아요. 먹는 음식은 자기가 즐겨 먹는 음식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음식 재료 자체도 좋아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말을 마친 현채영은 죽을 내려놓으며 옆에 있는 하인을 향해 말했다.“집에 두유 있나요? 없으면 따뜻한 우유 한 잔 주세요.”성격이 좋은 온혁진도 자리가 가시방석이라 밥을 먹자마자 출근했다.최신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임유희 앞인지라 뭐라고 말하지 못했다.두유와 찐만두 두 개를 먹은 현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온유한에게 말했다.“어젯밤 늦게 자서 난 조금만 더 잘게. 안 그러면 피부가 안 좋아져.”그 말에 온유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마디 했다.“방 앞까지 데려다줄게.”“어머님, 유희 씨, 그럼 전 먼저 일어날게요.”현채영은 온유한의 팔짱을 끼며 한마디 인사하고는 온유한과 같이 자리를 떴다.그 모습에 화가 난 최신애는 옆에 있는 임유희를 다독이며 말했다.“너무해! 유한이가 일부러 나 화나게 하려고 그러는 것이니 넌 신경 쓰지 마.”임유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그런데 어머님, 유한 오빠가 저를 점점 더 차갑게 대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최신애도 한숨을 내쉬었다.“3년 전 그날, 너희 둘이 진짜로 잤더라면 좋았을 텐데… 유한이가 어떤 애인지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때 강지아가 아무리 좋아도 널 건드린 이상 분명 책임지려 했을 거야.”사실 그 일은 임유희에게 언급하기조차 싫은 인생의 오점이었다.
최신애는 건강상의 이유를 대면서 임유희더러 온씨 저택에 머물라고 했다.하지만 뜻은 분명했다. 온유한과 자주 부딪히면서 정을 쌓으라는 것이었다.일찍 최신애의 이런 수법을 경험한 온유한은 두 번 다시 그녀에게 휘둘리지 않았다.“어머님이 편찮으시니 저도 남아서 모실게요.”현채영이 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사람 많으면 시끌벅적한 게 좋지 뭐. 우리 어머니도 시끌벅적한 거 좋아하니까 승낙할 거야.”최신애는 또 한 번 테이블을 내리칠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고 싸늘하게 말했다.“아니야. 유희만 있어도 돼.”현채영이 웃으며 말했다.“어머니, 어려워하지 마세요. 임유희 씨는 일도 나가야 하잖아요. 저는 시간이 많으니 어머니와 같이 쇼핑도 하고 꽃도 기를게요. 모르시겠지만 제가 차도와 꽃꽂이, 그리고 장기까지 다 배웠어요. 참, 피아노와 바이올린도 칠 줄 알아요. 답답하시면 피아노 한 곡 쳐 드릴게요.”최신애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이렇게 뻔뻔한 여자는 처음이라 최신애는 순간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온유한은 최신애가 뭐라고 하기 전에 옆에 있는 하인에게 지시를 내렸다.“뒤에 있는 두 객실을 치워 주세요. 당분간 임유희 씨와 현채영 씨가 묵을 거예요.”하인은 최신애의 눈피를 살폈고 최신애는 이내 화를 냈다.“온유한, 대체 뭘 어쩌려는 거야?”온유한이 최신애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니면 채영이는 나와 같은 방 쓰게 할까요?”“너 정말!”최신애가 임유희를 집에 남겨두겠다고 하는 한 온유한도 현채영을 집에 남겨둘 것임을 주위 사람들은 이내 알아챘다.최신애는 화가 났지만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임유희의 부모님은 화가 나서 밥도 먹지 않고 가버렸지만 임유희는 온유한의 집에 남겨 뒀다.결국 최씨 가문 사람들만 온씨 저택에 남아 밥을 먹게 되었다. 하지만 최신애는 여전히 최금성이 온유한을 설득하기를 바랐다.“대체 무슨 생각을 하기에 형더러 와서 나를 타이르라고 하는 거야?”최금성은 피식 웃었다.“그러니까, 나도 몰라.”
분위기가 싸늘해졌고 임유희 부모님의 안색도 매우 어두웠다.임유희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3년 동안 좋아했던 온유한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말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온유한은 주위 사람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현채영을 끌어안고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온씨 집안 하인들도 현채영을 쫓아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임근우가 테이블을 치며 말했다.“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이 집 사람들은 내 딸이 안중에도 없나요?”최신애가 일 처리를 제대로 못 하긴 했지만 임근우가 면전에서 책상을 두드리는 것을 온혁진은 참을 수 없었다.애초에 임씨 가문이 대놓고 온씨 가문의 뒤를 쫓아다니지 않았더라면 온씨 가문은 임씨 가문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 모든 일은 최신애가 저지른 것이었기에 온혁진은 최신애에게 이 난장판을 넘기고 본인은 찻잔을 들고 빠져나왔다.최씨 가문 식구들도 마찬가지로 좌불안석이다. 보다 못한 최금성의 엄마 황은숙이 최신애를 도와 상황 수습에 나섰다.타이르고 위로하느라 거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이때 임유희가 일어서더니 온유한에게 다가갔다.그나마 안색은 조금 전에 비해 한결 누그러졌다.“유한 오빠, 나가서 얘기 좀 해요.”온유한이 다리를 꼰 채 말했다.“우리가 할 얘기가 있나? 그리고 그쪽과 같이 나가면 우리 채영이가 질투할 거야.”옆에 있던 현채영이 한마디 했다.“가봐, 질투 안 할 테니.”온유한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정말 질투 안 할 거야?”현채영이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내가 질투할지 말지는 가보면 알 거 아니야?”두 사람은 앞에 서 있는 임유희를 아랑곳하지 않고 대놓고 대화를 주고받았다.주먹을 꽉 쥔 임유희는 기가 막혀 숨이 안 쉬어질 정도였다.“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뭔데?”온유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임유희는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 나서야 온유한을 향해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죠? 날 난처하게 하고 어머니와 맞서는 이유, 다 강지아 씨 때문이죠?”온유한은 피식 웃었다.
온유한이 일부러 맞서는 것을 최신애는 알 수 있었다.어젯밤에 온유한에게 보여주려 했던 사진을 그의 앞에 던지며 말했다.“그럼 네 눈으로 봐! 이 여자와 결혼할 거야?”온유한은 힐끗 보고 말했다.“안 될 것도 없죠.”“개자식아! 너 요즘 이런 여자와 어울리느라 매일 늦게 들어온 거야? 집안 상황을 몰라서 그래?”“그래서 뭐요?”온유한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현씨 가문이 지금은 파산했지만 예전에 잘나갈 때는 가장 바랐던 며느릿감 아니었어요?”“예전은 예전이고! 예전에는 현씨 가문 딸이었지만 지금은 돈만 주면 뭐든 다 하는 여자야. 그때와 지금이 같아?”온유한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예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든 지금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어요.”“무슨 뜻이야?”최신애는 순간 멍해졌다.“설마 진짜로 데리고 올 것은 아니지?”“안 될 이유라도 있나요?”“당연히 안 되지!”최신애는 화가 나서 테이블을 쳤다.“죽는 한이 있어도 이런 여자를 우리 온씨 가문에 들일 수는 없어. 잘 들어, 오늘 퇴근하자마자 바로 집에 들어와. 오늘 유희와 결혼 날짜 잡을 거야. 이것은 임씨 가문에 대한 우리의 약속이기도 해. 잊지 마. 임씨 가문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의 온씨 가문도 없었을 테니.”“그래요?”온유한은 여전히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온씨 가문과 강씨 가문의 인연을 끊게 된 게 누구 때문인데요? 그런데 지금 나더러 임유희와 결혼하라고요? 내 인생이에요.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세요. 내가 그렇게 쉽게 말을 들을 사람처럼 보여요? 순진하네, 온 여사. 더 이상 강요하지 마세요!”온유한은 밥도 먹지 않은 채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한편 최신애는 화가 나서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성격상,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저녁 식사에 그녀는 온씨 가문 사람들뿐만 아니라 최씨 가문 사람들까지 초대했다.최신애는 온유한을 설득하기 위해 최금성도 불렀다.이제 모든 사람이 다 도착했지만 온유한만 오지 않았다.최신애는 끊임없이 그에게 전화를 걸
“집에 돌아올 줄은 알아?”벽에 걸린 시계의 시간을 본 최신애는 더욱 화를 냈다.“지금 몇 시인지 좀 봐! 하루 종일 무엇을 하기에 점점 늦게 들어오는 거야?”하지만 오늘 심하게 취한 온유한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그저 눈앞의 사람이 귀찮다고 생각했고 빨간 립스틱을 바른 저 입은 벌렁거릴 때마다 섬뜩하게 느껴졌다.“누구야, 비켜! 막지 마.”운전기사는 제대로 서지조차 못하는 온유한을 붙잡으며 말했다.“사모님, 도련님이 많이 취했으니 할 말이 있으면 내일 하세요.”최신애는 가슴이 아프면서도 화가 났다.“얘 오늘 어디 간 거야?”“최의현 도련님의 약혼식에 참석했다가 끝나고 에이프릴로 갔습니다.”“거기서 여태껏 술을 마셨다고?”“네...”최신애는 머리가 지끈거렸다.“얼른 방으로 데려가 눕혀... 아줌마, 내일 유한이에게 해장국을 끓여줘...”온유한을 방에 눕힌 뒤 최신애는 지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돌아갔다.일찍 잠이 든 온혁진을 본 최신애는 화가 치밀어 손바닥으로 때려 그를 깨웠다.“아들이 이 꼴인데 잠이 와요?”온혁진은 싫증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누가 이렇게 만들었는데?”“무슨 뜻이에요?”그 말에 화가 난 최신애는 모든 불만을 온혁진에게 쏟아냈다.“다 유한이를 위해서 그런 거잖아요. 당신, 아버지로서 유한이를 위해 한 게 뭔데요?”온혁진은 더 이상 잘 수 없어 침대에서 일어났다.“아들 일, 관여하고 싶지 않아. 어차피 언젠가는 온씨 가문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텐데 평생 의사로 살 수는 없잖아. 왜 그렇게 유한이를 핍박하는 거야? 죄만 안 짓고 사고만 안 치면 상관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당신도 신경 쓰지 마. 예전의 우리 아들이 아니라고.”하지만 최신애는 다른 일을 생각했다.“강씨 가문에서 투자를 회수한 후 임씨 가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유희가 3년째 유한이를 기다리고 있다고요. 우리 아들도 이제 서른 다섯이에요. 유희 집안에 정식으로 결혼에 대해 얘기해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