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외부인이자 제3자에 불과한 자신이 이성준의 품에 안겨있는 게 낯 뜨거웠다.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으나 부상을 입은 탓에 중심을 못 잡았고, 휘청거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이성준은 미간을 찌푸렸다.“백아영...”잡으려 손을 뻗은 순간 백아영은 잽싸게 몸을 피했고 마침 선우경진이 그녀를 부축했다.손은 어색하게 허공에서 굳어 버렸고 표정마저 어두워졌다.그녀 역시 마음이 무거웠지만 애써 이성준의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오늘 일은 정말 고마웠어.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보답할게.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와. 그럼, 이만...”그녀는 백채영의 눈치를 살피고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들어갈게.”그녀는 선우경진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별장으로 들어갔고 선우경진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이성준을 바라보고는 한숨을 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곧 선우 일가의 별장 앞에는 이성준과 백채영 둘만 남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이 떠나는 방향을 바라보며 표정이 어두워졌고 분위기는 엄동설한이 된 듯 찬 바람만 쌩쌩 불었다.백채영은 그런 이성준이 두려웠다.어렵게 얻은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그녀는 억울한 듯 불쌍한 척하며 입을 열었다.“성준 씨, 방해하려고 한 건 아니었어. 화내지 마... 난 그냥...”차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백채영은 대성통곡했다.“성준 씨가 날 버리고 떠날까 봐 두려워서...”이성준은 당장이라도 발차기를 날리고 싶을 만큼 그녀의 모습이 꼴 보기 싫었고, 이제는 인내심과 감정을 잃은 지 오래였다.제갈연준이 아직 잡히지 않았으니 백채영도 언젠가 쓸모가 있을 거란 생각만으로 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전에 말했듯이 테스트를 전부 통과해야만 현무 엄마가 될 수 있다고 했지? 얼른 수업받으러 가.”부정하지 않았다는 건 아직 기회가 남았다는 뜻이기에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알겠어. 지금 바로 갈게. 성준 씨 실망하지 않게 최대한 빨리 모든 테스트를 통과할게. 그런데.
말을 마친 리사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고 백채영은 꺼진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며 홧김에 욕설을 퍼부었다.“능력도 없는 주제에 성격까지 더럽네. 쓰레기 같은 년!”그녀는 리사가 말한 아들에 대해 조금도 개의치 않았고 전혀 관심이 없었다.4년 전 제갈연준과 아이를 바꾼 후 백채영은 아들의 존재를 신경조차 쓰지 않았고 생사는 더욱 궁금하지도 않았다.노경우의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알려질 바엔 차라리 아이가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그녀는 백승구와 이성준이 만날 때마다 늘 조마조마했다. 제갈연준이 아이를 원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라면 일찌감치 저세상으로 보냈을 것이다.통화를 마친 백채영은 화가 잔뜩 난 채로 수업하러 갔고 같은 시각 위정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백채영 씨가 제갈 일가와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통화 시간이 너무 짧아서 위치 추적을 못 했습니다.”“계속 지켜봐.”...이도하는 이성준과 함께 떠나지 않았고 심은아를 만나기 위해 함께 선우 일가로 들어갔다.그 시각 백아영이 다쳤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걸음을 옮기던 심은아는 마침 계단에서 이도하와 마주쳤다.이도하는 그녀를 위아래로 자세히 훑어봤고 무사한 걸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곧이어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더니 그녀를 품에 안은 채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다행이야!”제갈연준에게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무섭고 당황했는지, 그녀를 잃을까 봐 얼마나 두려웠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그녀를 지키기 위해 제갈연준의 조건을 마다하지 않았고, 이성준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 스스로 호랑이굴에 들어가게끔 백아영까지 속였다.무의식적으로 이도하를 끌어안았던 심은아는 어깨 너머로 보이는 백아영의 모습에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겁에 질려 허둥지둥 그를 밀어냈다.마치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안절부절 못한 채 죄책감이 가득한 모습이었다.“죄송해요. 숨길 생각은 아니었어요. 도하랑 서로 사랑하는 걸 아는데 차마 입을 열기가... 전 빼앗을 생각도 없고 제 은인
“은아 구해줘서 고마워.”심은아를 끌어안고 있는 이도하의 얼굴에는 죄책감이 가득했다.“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사과할게. 정말 미안해.”백아영은 정신을 차리고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선택의 여지가 없었잖아요. 그래도 덕분에 아빠를 찾게 되었어요. 고마워요.”이도하가 그녀의 부모가 아직 살아있고 끔찍한 곳에 갇혀 있다는 단서를 흘리지 않았더라면 심씨 일가를 찾아낼 수도, 아버지를 찾을 수도 없었다.협박을 당하면서도 그녀를 도우려고 일부러 말실수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러면 서로한테 빚진 게 없는 거죠?”불편한 마음으로 지내지 않길 바라는 백아영의 배려에 이도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기회가 된다면 백아영의 아들을 찾아주기로 마음먹었다.“아 참, 백승구 친부는 노경우예요. 비밀리에 제갈연준의 밑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조심해요.”“노경우요?”예상치 못한 이름에 백아영은 깜짝 놀랐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더니...”그동안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이 노경우의 아이였다는 생각에 역겨움을 느꼈으나 이 정보는 너무 유용했다.비록 본성이 악하지만 그래도 세 살배기 아이에 불과했고, 그동안 함께했던 정을 쉽사리 버리지 못했던 그녀는 백승구가 백혈병으로 죽는 걸 지켜볼 바엔 차라리 노경우를 잡아 그를 살리기로 마음먹었다.“알려줘서 고마워요.”“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 그럼 난 은아랑 이만 가볼게.”막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갑자기 심은아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힘없이 이도하의 몸에 쓰러졌다.“배가... 배가 너무 아파...”말을 이어가는 동안 그녀의 치마에 핏자국이 번졌다.“은아야, 왜 그래?!”깜짝 놀란 이도하는 재빨리 심은아를 끌어안았고 이 상황을 지켜보던 백아영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은아 씨, 혹시 임신하셨어요?”심은아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에 알았어요...”그녀는 떨리는 손을 뻗어 백아영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아영 씨, 제발 우리 아이 살려줘요...”“걱정 말아요.
“백아영, 얼른 누워!”심은아의 치료를 마친 선우경진은 백아영의 방으로 들어와 강제로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아이 찾는 건 내가 할 테니까 넌 무조건 쉬고 있어. 말 안 들으면 제갈연준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도 너한테 얘기 안 할 거야.”백아영은 어쩔 수 없이 가만히 누워있어야만 했다.밤에는 지속적으로 악몽을 꾸었고 꿈속은 불쌍한 아이의 모습으로 가득했다.아이는 포대기에 싸여 있어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누군가가 아이를 강제로 끌고 가자, 필사적으로 쫓아갔지만 턱없이 부족했고 점점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만질 수도 잡을 수도 없는 상황과 더불어 아이를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이 그녀를 집어삼켜 마치 지옥으로 떨어지는 느낌에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아가야!”그녀는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침대에 앉아있었고 상처가 벌어진 듯 등이 따끔했으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창밖에 캄캄한 하늘을 바라보자 마음속의 초조함과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오더니 점점 높아지는 파도에 좀처럼 진정할 수 없었다.‘아이는 잘 있을까?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며칠 동안 치료하고 있었지만, 백아영의 상태는 크게 호전되지 않았고 나날이 심해지는 정신적인 고통에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선명했다.그녀의 모습에 선우경진도 마음이 아팠으나 도울 방법이 없었다.그날 저녁, 죽 두 숟가락 외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백아영은 멍하니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온통 아이밖에 없었고 불안한 마음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그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더니 문 앞에는 이성준과 이현무가 있었다.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백아영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들의 등장에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성준은 초췌한 그녀의 모습에 눈빛이 흔들렸지만, 여전히 잘생긴 얼굴을 유지하며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현무가 계속 다리 아프다고 하는데 네가 좀 봐줘. 다른 의사 선생님들은 원인을 못 찾겠대.”이성준의 품에 안겨있던 이현무는 많이 아픈지 괴로워하며 백
백아영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성준은 무관심하고 싸늘한 시선을 급히 옮겼다.기쁘고 행복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던 백아영은 이현무를 품에 꼭 안은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현무 여기서 자도 돼?”그를 바라보는 백아영의 눈은 반짝 빛났고 오랜만에 본 모습에 이성준은 마음이 흔들렸으나 이내 단호하게 거절했다.“안돼.”이현무는 재빨리 백아영의 팔을 끌어안더니 간절한 눈빛으로 애처롭게 그를 바라봤다.그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백아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진지하게 말했다.“현무 다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매일 마사지 해줘야 돼. 안 그러면 계속 아플 거야. 그리고 완치 안 된 상태에서 자주 움직이는 건 다리에 무리 가니까 여기서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백아영은 주춤했다.“게다가 늦은 시간에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불편하잖아. 성준아, 마침 옆에 빈방 있거든? 마음이 안 놓이면 너도 여기 있어.”이현무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아빠, 같이 있어요.”이성준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더니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다리 나으면 바로 갈 거야.”“앗싸! 아줌마랑 같이 있는다!”이현무는 기뻐하며 백아영을 껴안았고 인형처럼 말랑말랑한 녀석이 품에 안기자, 그간 공허했던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순식간에 채워졌다.그녀는 소파에 앉아있는 이성준을 보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고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날 밤 이현무는 백아영과 함께 잤고 며칠 만에 처음으로 악몽을 꾸지도, 밤중에 깨어나지도 않았다.품에 안겨있는 이현무가 아들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백아영과 달리 이현무는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살며시 침대에서 내려온 그녀는 씻은 후 밖으로 나왔고 문밖에는 도우미가 손에 정장을 든 채 기다리고 있었다.정장을 건네받은 백아영은 왠지 모르게 긴장되었다.이성준에게 옷을 선물한 건 처음이었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문 앞에서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하고서
오늘 아침, 식탁에는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식사하기 위해 한데 모였다.선우 일가 세 사람을 제외하고 심은아와 이도하, 그리고 이성준과 이현무도 있었다.이현무를 이것저것 챙겨주던 백아영이 가끔 이성준과 눈이 마주칠 때면 심장이 마구 뛰었다.이를 본 선우소훈은 흐뭇한 얼굴로 싱글벙글 웃었다.“성준아, 현무 데리고 며칠 더 있지? 너희들이 있으니까 아영도 기분이 좋은가 봐, 밥도 많이 먹고.”이성준은 의미심장하게 백아영을 바라보았다.“정말요?”백아영은 뜨끔한 나머지 민망한 듯 구시렁거렸다.“현무만 보면 너무 좋아서 그래요.”물론 이성준은 언급하지도 않았다.곧이어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오늘은 아빠를 치료하기 위해 장비를 사용한다고 했죠?”그동안 컨디션 조절을 통해 온유성의 몸도 서서히 회복되었기에 슬슬 신경 치료를 진행해도 가능했다.선우 일가에서 개발한 특수 장비는 신경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 치료를 받고 나면 온유성이 제정신을 되찾을 확률이 높았다.선우경진은 한껏 흥분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세팅을 마쳤고 이따가 밥 다 먹고 나서 고모부 데리고 갈 거야.”그 소식에 식탁을 둘러싼 사람들은 기쁜 마음에 웃음꽃이 피었다.다만 심은아는 제외였다. 식탁 밑으로 숨겨진 손은 주먹을 꼭 쥐었고, 속으로 당황함과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온유성이 의식을 회복하게 된다면 그녀의 정체를 밝힐 게 뻔했다.게다가 선우 일가 사람한테 선우정현의 행방을 알려준다면 그녀의 계획을 망칠 것이다.따라서 절대로 온유성이 깨어나게 할 수 없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백아영은 이현무를 방으로 데려다주고는 온유성이 치료받는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다.방문을 나서자마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성준을 발견했다.“성준아, 무슨 일 있어?”이성준의 잘생긴 얼굴은 시종일관 시크했고, 마치 선심을 베푸는 듯 말했다.“너랑 같이 가줄게.”어제부터 이성준의 태도는 쌀쌀맞고 소외감이 느껴졌지만,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난 분위기에 불과한지라 다소 생뚱맞게 다
선우경진이 치료를 중단하면 안 된다고 한지라 백아영은 패닉에 빠졌다.“아빠!”“아아아!!”온유성은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침대에서 일어나 몸에 연결된 튜브를 거칠게 뜯어냈는데, 상처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그러나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광기에 휩싸인 모습이다.이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눈에 보이는 것들을 족족 집어던졌다.“죽어! 빌어먹을 놈들아, 죽어버려!”선우경진은 급히 달려가 여러 대나 얻어맞은 끝에 온유성을 겨우 붙잡았다. 하지만 미쳐 날뛰는 사람을 제압하기에는 선우경진 혼자서 무리였다.이내 이성준도 선우경진을 돕기 위해 나섰고, 두 사람은 안간힘을 써서 온유성을 막았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목놓아 울부짖었다.쩌렁쩌렁한 목소리 때문에 목청이 찢어지는 건 아닌지 싶었고, 입가에 언뜻 핏자국까지 보였다.이를 본 백아영은 가슴이 미어졌고, 재빨리 다가가 손목을 붙잡고 맥박을 짚었는데 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온유성은 이미 이성을 잃었고, 정신병도 더 심해졌다. 이미 광기에 빠져 지쳐 죽기 전까지는 계속 날뛰고 있을 것이다.장비를 중단한 결과가 인명 피해로 이어질 정도라니!백아영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눈물이 점점 차올랐다.한편, 심은아의 방.샤워기 헤드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고, 이미 해체한 콘센트 옆에 심은아가 서 있었다. 그녀는 두꺼비집이 내려가서 정전되도록 일부러 회로를 태워 먹었다.그녀의 두 눈에는 온통 악랄한 속셈으로 가득 찼다.치료가 중단된 결과는 매우 처참했다. 온유성이 완전히 미쳐버리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였다.나중에 의식을 회복해서 그녀의 계획을 망치는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까.“은아야?”이도하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오면서 손잡이가 딸깍 돌아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아쉽게도 문이 잠긴 탓에 그는 들어갈 수 없었다.“괜찮아? 전기가 나갔나 봐. 아마 뜨거운 물도 끊겼을 텐데 씻지 말고 기다려. 감기 걸릴지도 몰라.”심은아는 문을 힐긋 바라보며
심은아는 곧바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온유성 씨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도하야, 우리도 얼른 따라가 보자.”장비실에 도착한 심은아는 침술책을 들고 한쪽으로 배우면서 치료하는 백아영을 발견했다.회생술이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심은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나 찰나의 긴장을 끝으로 이내 시름을 놓았다.비록 회생술은 생명을 구하는 놀라운 효과가 있지만, 기술이 복잡하고 배우기 어려운지라 침을 놓는 건 더더욱 난도가 있기에 백아영이 고작 책을 보면서 익힌다고 해서 단번에 성공할 리가 없었다.온유성은 어차피 죽게 될 것이다!백아영의 등에 피가 점점 퍼졌고, 창백한 얼굴은 핏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뚝뚝 흘러내렸지만 안정적인 손놀림으로 침을 하나씩 놓았다.비록 처음 배우는 침술이자 책에 적혀 있는 대로 따라 했지만, 백아영은 탄탄한 학습 재능과 끈기를 바탕으로 마지막 침까지 침착하게 놓았다.미쳐 날뛰던 온유성이 서서히 진정을 되찾았다.“다행이야! 고모부는 이제 괜찮아.”선우경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경악을 금치 못한 심은아는 안색이 돌변했다.이럴 수가! 백아영이 진짜 성공하다니?!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서서히 회복되면서 백아영을 빤히 쳐다보는 온유성은 두 눈이 반짝였다.“넌... 누구지?”침을 놓자마자 모든 기력을 다한 백아영은 이성준의 품에 힘없이 쓰러졌다.피곤함에 지친 그녀는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그러나 온유성의 시선을 마주친 순간 다시 활기를 되찾았고,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전... 전 당신의 딸이에요.”의혹이 확신으로 변하자 온유성은 감격스러운 듯 손을 내밀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고 했다.“우리 딸... 정현과 내 딸이구나... 정현이랑 참 닮았네.”온유성은 위안이 되면서도 다급하게 물었다.“정현은 어디 있어? 그녀도 구해준 거야?”“아니요. 아빠, 엄마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백아영이 초조하게 물었다.온유성의 눈빛은 고통으로 가득 찼고, 힘없는 목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