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라도 응급실에 오가는 사람이 많다.유나는 이쁘고 강천은 잘생겨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강천이 무릎을 꿇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사람들이 구경하려고 하자 유나는 방법이 없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선배, 일어나세요. 제가 지금 선생님을 뵈러 갈게요. 사정해 드리겠지만 선생님이 허락해 주실지는 모르겠어요.”강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사정하면 반드시 성공할 거야, 선생님이 가장 아끼는 건 너니까!”응급실 일을 맡긴 후, 유나는 가운을 벗고 강천의 차를 탔다.차 안에서, 유나가 좀 피곤해서 잠깐 졸았다.30분 뒤 교외의 한 병장에 도착했다. 유나가 들어가 먼지투성인 것을 보고 물었다. “선배,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 선생님 댁이 정말 여기에요?”“찰칵!”강천은 돌아서서 별장의 문을 잠근 후, 소파에 앉아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유나야, 너는 여전히 이렇게 순진해. 동청산은 부귀영화를 추구하는데, 어떻게 이 외진 곳에 살 수 있어?”“너…” 유나는 얼굴빛이 변하고 돌아서서 문을 열려고 했다.하지만 대문이 찰칵 소리가 나더니 열리지 않았다.“자, 힘 좀 아껴.” 강천은 손에 있는 열쇠를 툭툭 던졌다. “대문과 창문을 잠구어 놨어, 이 열쇠가 없으면 넌 아무 데도 갈 수 없어.” 유나는 경계하는 표정으로 강천을 보다가 재빨리 벽 모서리에 있는 빗자루를 잡았다. “함부로 하지 마세요,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선배는 젊고 앞날이 창창한테, 절대 스스로 앞길을 망치는 일을 하지 마세요!”“닥쳐!” 강천은 앞길이라는 말에 펄쩍 뛰었다. “앞길을 스스로 망치지 말라고? 내 앞길이 벌써 사라졌어!”“내가 5년 동안 정성을 다해 계획해, 전남산이 죽은 후에 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려고 했어. 난 아무도 문제를 찾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했지!”“그런데 오늘 내가 오랫동안 준비해 온 계획을 앞당겨 실행하려다 결국 그놈에게 들키고 말았어!”“내가 오랫동안 해온 준비가 물거품이 됐는데 말해봐? ! 내가 무슨 앞길이 있겠어!?”“그래서...
별장에서 유나는 격렬히 반항했다.하지만 여자라서 힘이 별로 없어 얼마 안 지나 강천한테 핸드폰을 뺏겼다.다행히 강천이 김예훈에게 집중하여 그녀를 다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휴대폰을 열고 강천은 유나를 찍고 김예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유나가 내 손에 있으니 혼자 와. 안 그러면 유나는 죽어!”강천은 이어 메세지를 하나 더 보내고 야구 방망이를 들고 소파에 앉아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그의 계획은 간단하다. 유나를 인질로 삼아 김예훈을 협박하고, 그를 울성으로 보내는 것이다.김예훈을 김병욱에게 보낸다면 그는 성공한 것이고 부귀영화를 계속 누릴 수 있다....하은혜의 집에서 김예훈이 방금 샤워를 하고 누웠는데, 휴대폰이 또 켜졌다.휴대폰을 켜고 김예훈이 어이가 없었다.유나가 한밤중에 뭐 하는 거야? 어떻게 이런 농담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곧 유나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메시지의 내용을 볼 때 유나가 인질로 잡혔을 것이다.김예훈은 생각해 보고, 유나 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었다.그랬더니 30분 전쯤 멋있는 젊은 남자와 무슨 선생님을 뵈러 가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유나는 지원 사건 이후 아무도 믿지 않는다.그녀를 데려갈 수 있고, 병원 측에서도 큰 반응이 없는 걸 보면, 이 사람은 그녀와 관계가 깊을 것이고, 최근에 병원에 나타났기 때문에 모두가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강천!” 김예훈은 곧 알아차렸다. 강천만이 그녀를 납치할 수 있다.강천이 왜 갑자기 이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지 모르지만, 김예훈은 자신이 관계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는 하은혜에게 말하지 않고 조용히 하은혜의 아파트에서 나와 공유 전기 스쿠터를 찾아 금세 메시지에 적힌 보낸 장소로 갔다.오래되고 수리되지 않은 별장을 보고 김예훈은 어이가 없었다.유나가 너무 단순한 건지, 강천이 사람을 잘 속이는 건지, 보기만 해도 이상한 곳에 강천을 따라 들어가다니.차를 세우고 김예훈은 별장 문을 발로 걷어찼다. “내가 왔어. 빨리 유나
김예훈은 비아냥거리며 별장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별장 거실에서 이를 지켜보던 유나는 착잡하였다.이런 장면은 영화 드라마에서만 봤는데, 오늘 김예훈이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삐걱 소리와 함께 굳게 잠겼던 대문이 열리고 김예훈이 들어섰다.“쨍그랑!”강천이 들고 있던 야구 방망이를 바닥에 내리친 뒤 들어올려 김예훈을 가리켰다.“내가 왔으니 유나 풀어줘!” 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내가 언제 네가 오면 풀어준다고 했어?”“김예훈, 아직 상황 파악 안 했어? 이제 내 말을 들어야 돼.”강천은 싸늘하게 김예훈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왜 김병욱이 이 녀석을 경계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오늘 밤 그는 김예훈이 남해시의 아류 가문의 데릴사위일 뿐이라는 것을 수소문해서 확인했다.이런 사람이 왜 김씨 가문의 사람이 신경 쓰는가? “그럼 어쩌려고?”김예훈가 눈썹을 찌푸렸다. 혼자라면 강천을 상대하기가 쉽지만 유나가 있어 이 단순한 여자가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했다.“어쩌겠냐고? 네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몰라?”강천은 침을 뱉으며 말했다. “아류 가문의 데릴사위 주제에 내가 직접 나서야 하다니! 김예훈, 너 정말 대단해.”“무릎 꿇고 얌전히 날 따라와. 그러면 이 여자를 놓아줄지도 몰라!”김예훈은 웃었다. “어디 가게?”“어디 가긴, 양성이지!” 강천은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나랑 같이 가자! 차가 바로 밖에 있어!”강천이 감격에 겨웠다. 어려워 보이는 임무를 이렇게 쉽게 완수하다니? 그는 자신이 인재라고 속으로 칭찬했다.“양성?” 김예훈이 깨닳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천, 혹시 김씨 집안 사람들이 널 지시했지?”“그리고 너희 의학계의 명문이 김씨 가문이 기른 개일 뿐이고.”“어디보자. 네가 날 양성으로 데려가는 게 네가 남해시에 온 진짜 목적이지? 그 의학강좌도 그렇고 나와 유나를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니지?”“원래 의학 연구 프로젝트를 발표한다는 핑계로 참석자들을 모두 양성에 초대하고 나를 속여서 양
“당연히 아니지.” 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너의 배후가 너 같은 폐물을 시켜 나를 떠보는 것은 나를 무시하는 거야?”“내 배후가 누군지 알아?” 강천은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김씨 사걸 중 가장 콧대가 높은 것은 김병욱이고, 나를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그 사람인데 당연히 그가 너를 보냈겠지?” 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강천은 흠칫했다.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야? 그는 어떻게 모든 것을 짐작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는 김예훈에게서 어떤 기질을 느꼈다.이런 기질은 김병욱에게도 없었다.자기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린 것 같다.김병욱도 떠보기만 할 뿐 직접 건드리지는 못하는 사람.강천은 식은땀이 흘러 그의 등을 적셨다.강천은 김병욱을 건드리면 강씨 가문은 기껏해야 파산할 뿐이지만, 김예훈을 건들면 강씨 가문의 결말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너의 신분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아. 심지어 김씨 가문과 깊은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강천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물러설 곳이 없어. 네가 누구든 널 양성으로 데려가야 해!”“강씨 가문을 위하여!”말이 끝나자 강천이 들고 있던 야구 방망이를 들고 김예훈의 이마를 내리쳤다.“퉁!”강천은 날아 거실 구석에 퉁하니 부딪혀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그는 겁에 질렸다.김예훈은 앞으로 나아가 강천의 야구방망이를 걷어차고 고개를 숙여 그를 바라보았다.“강천, 다른 사람이 널 강씨 가문의 후계자라고 생각하겠지만 넌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야.”“너의 배후는 단지 나를 양성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뿐이야. 내가 돌아갈 것이고, 잃어버린 것들을 직접 되찾을 거야…”말이 끝나자 김예훈은 몸을 돌려 떠났다. 그는 이런 코뿔만한 사람을 처리하고 싶지 않았다....전기 스쿠터에서 유나는 김예훈의 허리를 감싸고 마음이 착잡했다.그녀는 김예훈이 와이프가 있고 더 이상 가까이하면 안 되는 걸 안다.하지만 이 신비롭고 강대한 남자는 전지전능한 것 같았다.그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양성의 백운별원에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김씨 가족 모임에서.매달 월말에 경기도 각지에 흩어져 있는 김씨 가족들이 백운별원에 모여든다.백운별원은 별원이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김씨 가문의 직계 가족만이 거주하는 곳이다.방계 김씨 가문의 사람들은 평일에 이곳에 들어오려면 일련의 신청과 심사 비준을 거쳐야 한다.신분과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이곳에 드나들 자격조차 없다.별원 옆의 주차장에 명품차들이 모였다. 하지만 거의 모두 렉서스였다.이것은 매우 티를 안 내는 우아한 브랜드로, 김씨 가문 같은 제일의 명문가에 맞지 않지만 김씨 가문의 가르침은 “달도 차면 기운다”여서, 김씨 가문의 사람들은 항상 이 가훈을 지켰다.차세대의 젊은이들 중에는 럭셔리 세단과 슈퍼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김씨 가문의 진짜 권력자들은 보통 렉서스를 몰고 다닌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수십 년 되어도 차를 바꾸지 않았다.일부 가족에게 럭셔리 세단은 체면을 대표한다.하지만 경기도에서 김씨 가문의 위상은 김씨 가문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고 해도, 아무도 그들을 얕잡아 볼 수 없다.김씨 가문은 날로 번성해 수천 명의 가족 성원이 있다.하지만 오늘 가족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은 수백 명에 불과하다.수백 명이 별원 밖 임시 접견장에 모여들었지만 아무도 불평불만이 없었다.이 자리에 경제 기자가 있었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경기도의 거의 모든 업계에 퍼져 있었고, 그중에는 회사의 핵심인물과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아닌데도 이곳에 온 사람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들은 모두 김씨 가문의 하인과 가신의 후손들이다.비록 봉건 시대가 결속된지 이미 백 년이 지났지만, 이 사람들은 여전히 김씨 가문에 의지하고 충성은 조금도 변치 않았다.조용한 분위기가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검은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경비원을 데리고 입구에서 걸어 들어왔다.그는 주위를 둘러본 뒤 “강씨 가문 사람 외에는 모두 별실에 들어갈 수 있다”고 담담하게
강회장은 마치 어명이라도 들은 듯 흐느끼며 말했다. “네네, 도련님이 이렇게 인자하신데 우린 절대 믿음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말이 끝나자 강회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그의 입가에 검은 피가 흘러내렸고, 천천히 땅에 주저앉아 숨을 거두었다.그가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독약을 삼킨 것이다.의학계 가문의 가주로서 그는 독약의 용량을 잘 조절한다.김총관은 눈썹을 약간 찡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여봐라, 시체를 강씨 집으로 돌려보내 후하게 장사 지내도록 하라!”“그리고 강씨네한테 직접 회장을 뽑으라고 해.”김 총관은 말을 다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둘째 도련님은 항상 상벌이 분명한데, 이번에 강씨 가문이 도련님의 계획을 망친 이상 죽음이 가장 가벼운 벌이다....백운별원의 옆 홀은 매우 우아하고 고대 건축의 맛을 느낄 수 있다.사람들이 다 모였지만, 감히 자리에 앉는 사람이 없었다.홀의 가장 안쪽의 아홉 개의 계단 위에 다섯 개의 소엽자단으로 조각된 의자가 놓여 있는데, 가운데의 의자 위에만 사람이 앉아있다.이 사람은 흰 옷을 입고 혼자서 바둑을 두고 있는데, 바로 김씨네 둘째 도련님이고, 김씨 사걸의 우두머리인 김병욱이다.김청미를 포함해서 다른 삼걸은 오늘 나타나지 않았다.김병욱은 어려운 문제에 부닺친 듯 손에 검은 돌을 좀처럼 두지 못했다.한참 뒤 바둑알이 손가락에 튕겨져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쨍그랑 소리가 났다.수백 명이 모였지만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김총관만이 묵묵히 내려와 바둑알을 주워 깍듯이 김병욱에게 주었다.김병욱은 바둑알을 받아 의자에 기대어 담담하게 말했다.“월례회를 시작하지.”“네!”곧 아래쪽에는 기업의 고위 임원들이 줄줄이 나왔다.“도련님, YE 제일 투자 회사가 이번 분기에 양성의 인프라 프로젝트 3개를 따냈고, 2개는 정부와 협의 중입니다. 이번 분기에 3억 정도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합니다.”“도련님, YE 제약회사에서 이번 달에 상장 준비를 마쳤습니다, 서류만 발급해 주시면 상장할 수
김병욱은 자신의 왼손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 위에 운명선과 사업선이 교차되어 바둑판처럼 빽빽하였다.마치 위에서 자신의 운명을 본 듯 김병욱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적지 않은 사람이 그 사람의 힘을 빌어 성공한 것을 알고 있어요. 지난 3년 동안 제 문하로 들어왔다 하더라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신만이 알고 있겠죠.”“제가 여러분을 어떻게 대했는지 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가 여러분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제가 더 많이 줄 수 있습니다…”“만약 누군가가 아직도 그를 위해 생각하려 한다면, 기회를 한 번 주죠. 그를 따르겠다면 저도 따지지 않고 떠나도록 내버려둘 것입니다.”“하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3년 전에 그를 쫓아낸 것은 여러분에게도 다 책임이 있습니다.”말이 떨어지자 망설이던 사람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누군가가 털썩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다. “전 도련님에게 일편단심 충성할 것입니다!” “일편단심 충성할 것입니다!”평소에 안하무인하던 상업계의 대가들이 마치 봉건 사회의 신하와 같다.그들에게 김병욱은 마치 황제와 같다.김병욱은 가볍게 웃었다. 그는 남해시의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모든 것을 되찾고 싶어? 아쉽지만 넌 그럴 자격이 없어!”...옆 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김청미는 연못에서 꽃구경을 하고 있다.가녀린 손가락 사이에 고기밥이 떨어져 붉은 잉어와 녹색 잉어가 끊임없이 모여든다.“미끼는 이미 준비했는데, 물고기를 몇 명이나 나눠 먹을 수 있지? ...3일 후 정씨 가문 별장에서.오늘은 좋은 날이다, 장씨 가문은 장씨 가문의 자산을 사려는 사람을 찾았다.어르신의 부름에 정씨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그들은 정씨 가문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할아버지, 전 가장 먼저 팔아야 할 곳은 쇼핑 센터 그 땅이라고 생각해요. 그 땅을 손에 넣을 때는 400억도 안 들었지만 지금은 800억에 달합니다.”“우리가 지금 급히 돈이 필요하지 않다면 훗날 이곳이 우리 정씨 가문의 근거지가 되었을 텐데!”“하
“내가 모를 줄 알아요? 언니는 단지 쇼핑 센터의 부지가 팔리면 정씨 가문에서 빈털털이 될까봐 두려워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정씨 가문이 곧 성남에 가서 발전할 거라는 걸 생각해 봤어요?" “나중에 우리 시댁 복씨 가문이 챙겨주면 정씨 가문은 반드시 승승장구할 거예요!” "언니가 말만 잘 들으면 우리가 고기 먹을 때 국물 한 모금을 줄 테니 걱정 말아요." 정가을은 두 팔을 감싸 안고 거만하고 우쭐대는 모습이었다. "맞아! 성남으로 간다는 건 네 아빠가 말씀한 건데 설마 네 아빠와 맞서려는 건 아니지? 우리 정씨 가문이 성남으로 가서 발전하는 계획에 폐를 끼치려는 거야?" "네 아빠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자산을 패키지로 매각하는 일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겠지!" "맞아. 이 모든 일이 다 너네 가족 때문이야. 지금 이득을 봤다고 또 잘난 체하고 있어!" "내가 봤을 때 다른 프로젝트는 매각하지 않아도 되지만, 정민아의 쇼핑 센터 프로젝트는 무조건 제일 먼저 팔아야 해!" “......” 이 순간 많은 정씨 가문의 사람들이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분명 하나같이 지금 당장이라도 성남으로 가서 전설 중의 지위 높은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정민아 앞에서는 그리 원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정군이 들고 온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해치는 것 같았다. 이건 확실히 정군이 가지고 온 큰 프로젝트였으며 정민아는 잠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정씨 가문이 성남에 가서 발전하는 일도 모두 정군이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왠지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이렇게 하는 것이 꼭 옳은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러나 정씨 가족들의 감정이 몰아치는 가운데 정민아는 지금 말문이 막혔다. 정군은 오히려 지금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냉담한 모습이었다. 이번에 그는 정씨 가문으로 돌아와서 후계자 자리를 되찾으려고 했지만, 정씨 어르신의 태도에 완전히 실망해서 지금 이 순간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