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는 정민아의 모습을 본 김예훈은 화가 치밀어올랐다.그는 임은숙을 무시한 채 박동훈한테 걸어가 담담하게 말했다, "박동훈, 당신을 때린 건 나예요, 여자한테 이럴 필요 있습니까? 집사람은 그만 놔주고 내가 같이 가죠."정민아가 크게 놀라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보통 사람들은 경찰 앞에서 벌벌 떠는 게 정상이다, 근데 김예훈이 용기 있게 나서서 자신이 경찰서로 가겠다고 하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걱정하지 마, 넌 내 와이프야, 내가 널 지킬 거야." 김예훈이 살짝 미소를 보이더니 양 서장 앞으로 걸어갔다:"제가 때린 겁니다, 인정할게요."정민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 남자, 무능력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지만 오늘은 자신을 위해 죄를 인정하다니."민아야, 너 괜찮아?" 임은숙이 빠르게 달려와서 긴장한 얼굴로 정민아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엄마 나 괜찮아, 근데 예훈 씨." 정민아는 한시름을 놓았다, 근데 경찰들에게 붙잡힌 김예훈의 모습을 보고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임은숙은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싸늘하게 말했다:"무슨 일이라도 있겠어? 기껏해야 경찰서에서 며칠 지내다 오겠지, 그러니까 넌 신경 쓰지 마.""엄마, 근데...""뭐가? 저 인간은 우리 집 데릴사위일 뿐이야 ,우리가 3년동안 왜 먹이고 재워준 것 같아? 이럴 때를 위해서야, 뭐 하러 저놈을 신경 써?" 임은숙이 차갑게 말했다."그래요, 가요!" 정소현이 정민아를 꽉 붙잡았다, 그녀가 충동적으로 무슨 일이라도 할까 봐 걱정됐다."아니, 나 안 가, 아직 해결이 안 됐잖아..." 정민아가 말했다. 하지만 임은숙과 정소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녀를 끌고 갔다. 정씨 일가의 사람들은 서로 눈치만 살폈다. 만약 정민아가 경찰서로 끌려갔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빼내려고 했겠지만 김예훈 그놈이 들어갔으니 뭐 하러 쓸데없이 그 수고를 하겠는가?정동철조차도 그냥 차갑게 말할 뿐이었다:"경찰관 여러분, 일 다
말하고 나서 김예훈이 핸드폰을 양 서장한테 건넸다.양 서장이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전화를 건네받더니 이내 안색이 변하며 말했다:"하 비서님, 안녕하세요! 네! 제 잘못입니다!""김 회장님, 제가 눈이 멀었습니다, 실례했습니다!"전화를 끊고 양 서장이 김예훈한테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더니 이내 부하들을 데리고 잽싸게 도망쳤다.이런 젠장, 이 사람은 내가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김... 김 회장님?" 양 서장의 말을 들은 박동훈이 크게 놀라더니 눈앞이 캄캄해졌다.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중얼거렸다. "어떻게? 당신 같이 무능력한 사람이 새 회장이라고?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건 말도 안 돼!""말도 안 돼! YE 가문의 젊은 세대는 하나 같이 위세가 높은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당신은 절대..."박동훈은 미친 듯이 계속 고개를 저었다.그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그렇게 업신여겼던 무능력한 사람이 개미 한 마리 죽이듯 이리 쉽게 자신을 짓밟아버렸다는 사실을."부탁해요, 당신이 도대체 누구인지 말해줘요, 죽더라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죽읍시다." 박동훈은 멘붕이 와서 울먹거렸다."YE 가문에 후계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까?" 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이... 큰 도련님..." 박동훈의 멘탈이 무너졌다, 그가 이내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았다:" 도련님,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눈이 멀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한 번만 눈 감아 주세요, 맹세합니다, 다시는 아내 분을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도련님 앞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김예훈이 웃으면서 말했다:"나한테 내일은 없을 거라면서요?""도련님, 도련님, 제가 미쳤나 봅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이렇게는 못 살겠습니다, YE 투자 회사에서 제가 오랜 시간 애를 쓴 걸 봐서라도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박동훈이 콧물 눈물 다 흘리면서 머리를 박았다."내 눈앞에서 꺼져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뭘 하든 난
”쉽지 않을 텐데…”정민택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말처럼 쉬운 일이었다면 그렇게 박동훈에게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어르신이 테이블을 탁탁 쳤다. “이 자금을 마련해 오는 사람이 쇼핑 센터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될 거다.”현재 정씨 일가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쇼핑 센터 프로젝트다. 그러니 프로젝트 담당자가 된다면 앞으로 정씨 가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어르신의 말에 적지 않는 사람들의 안색이 변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YE 투자 회사와 접촉하긴 무리였다.“할아버지.”정지용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마침 YE 투자 회사에 다니는 미녀 한 분 알고 있어요. 부장급이니 회사에서 어느정도 발언권이 있겠죠. 제가 만나서 얘기해볼까요?”어르신이 인상을 팍 썼다. “부장 나부랭이가 무슨 발언권이 있겠어?”“할아버지, 부장 한 명으로 당연히 안 되죠. 하지만 곧 총지배인으로 승진한다던데, 그때 말을 꺼내면 되지 않을까요?”정지용이 싱긋 웃었다. 지금 정씨 내부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프로젝트 담장자가 된다면 앞으로 이사장 자리는 자기 몫이 될 테니까.정민택은 아들을 쳐다보기만 할 뿐 반대하지는 않았다. 만약 진짜로 정지용이 이 골칫거리를 해결한다면 그의 가족은 아버지 눈에 더 들게 될 것이다.모두가 꺼리는 눈길로 쳐다보자 정지용은 씩 웃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모두 다 들을 수 있도록 특별히 스피커 버튼까지 눌렀다.“여보세요.” 스피커를 통해 약간 긴장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아주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정지용은 상대방이 긴장을 하든 말든 큰 소리로 물었다.“송 부장님, 정지용입니다.”한 편, 김예훈이 전동 스쿠터를 타고 회사에 도착했다. 박동훈 일로 송문영이 회사에 막 도착한 김예훈에게 보고하는 중이었다. 저녁이라 회사는 매우조용했다. 그러니 쩌렁쩌렁한 정지용의 목소리가 휴대폰을 통해 사무실에 있는 김예훈한테까지 들렸다.정지용이 큰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송 부장님, 듣자니 회사에서 투자금을 9000억으로 늘리셨다고 하던데, 마
”네,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갑자기 전화 와서…”송문영은 손으로 휴대폰을 감싸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김예훈이 씨익 웃었다. “꺼지라고 해.”“네!” 여전히 휴대폰을 손을 감싼 송문영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면서 차갑게 내뱉었다.“저희 대표님께서 꺼지라네요!”그리고 통화를 끊어버렸다. ‘또라이 같은 새끼!’…한 편, 아주 의기양양하게 전화를 걸던 정지용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한참 뒤에야 자리에서 팔짝 뛰며 일어났다.“고작 부장 나부랭이가 지금 나보고 꺼지라고 한 거야? 네가 뭔데 꺼지래?! 우리 가문이 우습다 이거야?”정씨네 식구들은 서로 쳐다보기만 했다.그 부장 나부랭이가 꺼지라고 한 게 아니라 분명 대표가 꺼지라고 한 거 같은데!“할아버지, 너무 하지 않아요?”정지용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감히 우리 가문을 꺼지라고, 분명 우습게 보는 거예요. 이거 찾아가서 따…”“닥쳐!”어르신이 말을 잘라버렸다. “무의미한 짓은 하지 말거라. 듣자니 20대 초반인 젊은 사람이 신임으로 왔다고 하던데. 그 나이 땐 세상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르고 건방지게 구는 건 당연한 거야.” 어르신이 잠시 멈추다 말을 이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그 대표가 예전의 모든 투자를 거절하고 9000억을 늘린 걸 보면 분명 비전 있는 프로젝트만 취급하나 보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 가문을 대표해서 만나고 올 테냐?”정씨네 식구들 또 서로 쳐다보기만 한다.어르신이 방금 송 부장이 말한 걸 못 들었나? 그 회사 대표님께서 꺼지라고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찾아가는 건 진짜로 면전에서 모욕을 처먹으라는 거나 마찬가지다.어르신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당연히 힘든 일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직접 찾아가서 투자금을 요구한다면 냉대를 받고 올 게 뻔하지만 이 기회를 놓친다면 정씨 가문은 부상할 가능성이 없게 된다.그때 어르신 눈길이 한참 화를 내고 있는 정지용에게 향했다. 그 시선을 느낀 정지용이 일어서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할아버지, 누나를 보내는 게 어떨
어르신이 고려해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필경 손주들 중에서 정지용을 가장 아끼고 있으니 그 말을 들어줬다.“그래, 민아가 가면 되겠구나. 미루지 말고 내일 YE 투자 회사에 가거라.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실패하면 안 돼!”“할아버지, 제 생각엔…” 방금 욕을 먹고 무슨 비위로 내일 가서 협력을 상의하라는 건지 정민아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어르신은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미 이렇게 결정한 이상 핑계를 대지 말거라!”말 떨어지기 바쁘게 그 자리에 모였던 정씨 가문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마음속으로 다행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런 판에는 누가 걸리던 재수 없게 되는 것이다.임은숙은 집에 도착해서도 표정이 내내 어두웠다. 원래 어르신 눈에 차지 않는 집인데 성공하지도 못할 임무를 맡게 되었으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탁!임은숙이 물컵을 탁하고 놓으면서 표효했다. “김예훈 그 놈은 어디 있는 거야?! 집 청소도 밥도 안 하고 우리를 굶겨 죽일 셈이야?!”정민아가 답했다. “엄마, 잊었어? 나 대신 경찰서에 갔잖아. 아직도 안 돌아온 걸 보면 무슨 일이라도 생긴 모양인데.”임은숙이 냉소를 지었다. “일은 무슨? 그 꼴에 무슨 싸움을 할 줄 한다고. 이 참에 이혼이나 해! 그동안 이혼시킬 구실이 없었는데 잘됐네. 병신 같은 놈이 우리 집에 들어온 이후로 좋은 일이 하나도 없어!”정민아는 살짝 걱정돼 몇몇 친구에게 연락했다. 김예훈을 경찰서에서 꺼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모두 하는 말이 김예훈이 경찰서에 잡혀가지 않았단다.…이튿날, 정민아는 아래 위로 단정하게 치장하고 집을 나섰다. 포르쉐를 몰고 YE 투자 회사에 가는 내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YE 투자 건물 회사 건물 아래에서 정민아를 맞이한 사람은 대표님 비서 하은혜였다. 비서는 정민아를 향해 인사도 건네지 않고 프리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정민아 씨 맞죠?”정민아가 우두커니 바라보다 이내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네, 맞아요.”“따라오세요.
그날 저녁, 정씨 가족들이 다시 별장에 모였다. 멍하니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몇 시간 전에 통보를 받고 저녁 식사도 못한 채 회의하러 온 것이다. YE 투자 회사에서 계약서를 내민 것도 모자라 투자금액을 더 올려줬다는 말에 단숨에 달려왔다.엊저녁만해도 YE 투자 회사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다들 재수 없는 판에 엮이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정민아가 해냈다. 무슨 자격으로!정민아는 어르신 셋째 아들의 딸이라 평소 대접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경영하는 회사가 계속 적자를 많이 내는 바람에 곧 정씨 가문에서 쫓겨나게 생겼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 바뀌었다.이렇게 중요한 투자금을 받아냈으니 어르신에게 인정을 받는다면 정민아도 가문에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 될 것이다.그들 중에서 정지용이 가장 믿을 수 없었다. 정민아가 성공하게 되면 자신이 무능한 인간으로 되기 때문이다.“민아 누나, 아무렇게나 쓴 계약서에 사인해도 되는 거예요? 그리고 550억이라니 누굴 속이려고? YE 투자 회사 대표 얼굴도 보지 못했으면서!” 정지용이 빈정거리며 말했다.“그래, 나 대표 얼굴 못 봤어.”정민아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하은혜가 접대를 했을 뿐 대표는 만나지 않았으니.그 말에 다들 하나같이 노려봤다. “저녁 밥도 못 먹고 네 헛소리 들으러 온 게 아니야!”“정민아, 너무 하는 거 아니야? 명색이 대표인데 모자란 네 남편을 따라 배운 거니? 가짜 계약서를 내놓고 우리를 속이려 들어?”“우리가 바보로 보이냐? 가짜 계약서가 말이 돼냐고!”“이혼이고 뭐고. 그냥 짐 싸서 네 남편이랑 손잡고 집에서 나가!”잠자코 있던 사람들이 분노하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성공하지는 못할 망정 가짜 계약서를 내놓으면 앞으로 정씨 가문은 어찌해야 되는지 아득했다.만약 가문이 망하게 되면 부귀영화는 물거품이 된다.정지용은 뻥진 표정으로 바보를 보듯이 바라봤다. “진짜 대박이다. 누나는 우리 가문이 안중에도 없어요? 민아 누나, 이 일 진짜 중요해요.
이때 어르신이 계약서를 읽더니 돋보기를 꺼내 인감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서야 손을 휘휘 저었다.“다들 조용히 해. 이 계약서 진짜구나. 한데 지용이 말도 맞다. 계약서를 보아하니 미리 작성한 게 아니라 어제 작성한 것 같구나. 민아가 계약을 성사시켰으니 물론 공을 세웠다지만 지용이가 우리 가문을 위해서 수모를 감수했으니 그 공이 더 크다.”정지용이 의기양양해서 정민아를 힐끗 보고는 할아버지를 향해 절을 했다.“할아버지, 저도 정씨 가문 후손인데 그보다 더한 수모도 참을 수 있어요. 제가 얻어 맞더라도 가문이 돈을 벌 수 있다면 기꺼이 몸을 희생하겠어요.”“제 생각엔 이 신임 대표가 우리 가문의 상업 부지 가치를 알아보고 투자금을 내준 것 같아요. 성의를 표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계약서에 서명해서 내일 보내야 된다고 생각해요. 계약서는 제가 안전하게 신임 대표에게 전달할게요. 그리고 우리집에도 초대할께요.”정지용은 무조건 신임 대표를 모시고 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신임 대표가 계약서를 내줬다는 건 우리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다는 걸 설명하니 무조건 성공이다.그리고 계약서를 자기가 가져가게 되면 이 프로젝트 담당자는 자연스럽게 자기가 맡게 될 텐데.정민아가 누군지 기억할 리가 없다.“그래, 역시 내 손자다!”어르신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자랑스럽다고 칭찬했다.“지용아 그럼 내일 수고해라.”정민아는 실망했다. 이젠 공로가 다 정지용한테 가게 생겼다.계약서에 YE 투자 회사 인감도 있으니 내일 가져가면 무조건 성공할 것이다. 그때면 정민아라는 사람을 기억할 리가 없었다.정민아는 분통이 터졌지만 말은 못하고 이만 갈았다. 왜냐면 할아버지가 저렇게 말한 이상 내가 가져온 계약서라고 우겨도 소용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YE 투자 회사김예훈은 손이 닿는 대로 서류를 훑어보다 손끝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긴장을 풀었다.오늘 일은 김예훈이 안배한 것이다. 정씨 가문 따위 상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정민아가 오는 걸 보고 마음이 약해졌다. 그냥
하은혜가 벤틀리를 몰고 김예훈을 집까지 데려다 주려고 했다. 하지만 차가 너무 막혀서 김예훈은 어쩔 수 없이 차 트렁크에서 전동 스쿠터를 꺼내 올라탔다. 전동 스쿠터가 고장난 줄도 모르고 달리다 물구덩이에 빠져서 꼴이 말이 아니었다.김예훈은 먼저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으려 했다. 한데 조이영이 보더니 냉소를 지었다.“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더니, 병신한테도 먹히나 봐. 김예훈, 설마 똥물에 빠졌어? 냄새 장난 아닌데?”김예훈은 듣는 척도 안하고 화장실에 들어가려고 하던 찰나.임은숙이 말소리를 듣고 다가오더니 인상을 팍 썼다.“김예훈, 무슨 염치로 돌아와?! 여기가 무슨 호텔이냐?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게?!”못난 자식 때문에 정민아의 공로가 정지용에게 빼앗긴 것이다. 다 이 재수 없는 놈 때문이다.정소현도 방에서 나오면서 김예훈을 째려봤다. “왜 이렇게 더러워? 신발도 갈아 신지 않고. 집안이 다 썩겠어. 우리 집에 있기 싫으면 나가!”김예훈은 무덤덤하게 임은숙과 정소현을 번갈아 볼 뿐 입을 꾹 담았다. 만약 두 모녀와 맞붙을 생각이 있었다면 3년 전에 이미 혈압 올라 죽었을 것이다.대꾸하는 것도 귀찮아 그냥 정민아 앞으로 걸어갔다. 원래는 인상이라도 쓰려고 했는데 예쁜 얼굴을 본 순간 마음이 약해졌다.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민아, 회사에 9억 필요하다고 했지? 내가…”“하하하, 병신 이제야 와이프를 챙기네?”조이영이 말을 끊었다. “모자란 놈 얼굴도 두껍지. 지 꼴이 어떤지 몰라요. 다른 남편들은 와이프가 돈이 필요하다면 노가다를 뛰면서라도 돈을 갖다 바치는데. 너는 호주머니 털어도 만원도 안 나오면서 무슨 염치로 돈 얘기를 꺼내? 내가 너라면 3층에서 뛰어내리겠어. 왜 사냐?”조이영의 말이 점점 심해지자 정민아는 더는 들어줄 수가 없었다.“이영, 그만 해.”어찌했든, 어제 박동훈한테서 억울함을 당할 때 김예훈이 나서줬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어느정도 감정이란 게 있었다.“민아, 너는 진짜 얘가 착해빠져서는. 나
“그래서 바로 총독님께 문자를 보냈죠. 총독님 같은 분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를 리가 없잖아요. 의사 선생님인 척 문을 두드릴 때부터 살인범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절대 경계를 늦추지 않았었죠. 그 뒤로 일어난 일은 다 아시잖아요.”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당신을 어떻게 해보려던 것이 아니라 당신이 너무 어리석어서 이렇게 된 거예요. 알았어요?”“너...”루미코는 직접 짠 계획이 처음부터 김예훈에게 간파당했다는 것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아까 했던 모든 일은 그저 미친 광대나 다름없었다.“이런 제기랄!”하지만 그녀는 아무리 무시당해도 고개 숙일 생각이 없었다.이때 그녀가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김예훈, 내 동생을 죽인 것도 모자라 나까지 죽이려고? 우리 타케이 가문에서는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능력 있으면 나를 죽여보든가! 아니면 천군만마를 이끌고 너를 죽이러 다시 올 거야. 타케이 가문은 죽을지언정 절대 모욕당할 순 없어! 와봐! 나를 죽여보라고!”김예훈은 루미코를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나를 자극해서 너를 없애게 하려는 거야? 아쉽게도 난 너를 죽일 생각 없어. 타케이 가문에서 이유없이 나를 죽이겠다고 소리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한번 들어봐야 하지 않겠어?”이때 김예훈의 손짓 하나에 동하임이 수갑을 꺼내 루미코의 손발에 직접 채웠다.그러고는 루미코가 출혈 과다로 사망할까 봐 개인 의사를 불러 그녀의 상처를 봉합시켰다.“아무 이유없이 너를 죽이려고 한다고?”루미코는 얼굴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김예훈, 내 동생을 죽였으면서 왜 억울한 척이야.”“누가 그래? 타케이가 내 손을 더럽힐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김예훈은 한껏 싫증난 얼굴이었다.“그리고 난 진주의 ‘착한 시민’이라고. 모욕죄로 배상해야 한다는 거 몰라?”루미코는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이때 동하임이 담담하게 말했다.“부검 결과에 의하면 당신 동생은 아침 7시에 살해되었어요. 그 시각 김 도련님은 저랑 함께 동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난처하게 하지 않을거니까요. 김현민 도련님께서 이미 경고했거든요. 비록 김예훈이 동씨 가문과 손잡았다고 해도 김현민 도련님을 봐서라도 인질로만 삼았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따르는 것이 좋을 거예요. 아니면 그 아름다운 얼굴에 상처를 낼지도 모르겠거든요.”루미코는 검을 꺼내 동하임을 먼저 제압한 후 김예훈을 협박하려고 했다.슉!바로 이때, 갑자기 타케이 시체 밑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칼로 루미코 복부를 찔렀다.“풉!”미처 예상하지 못한 루미코는 피를 뿜어내며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영안실에 동하임 외로 또 다른 인물이 있을 줄 상상도 못했다.결국 그녀는 후회할 시간도, 질문할 시간도 없이 뒤돌아 영안실을 떠나려 했다.쨕!루미코가 영안실을 벗어난 순간, 누군가 나타나 그녀의 뺨을 때렸다.순간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루미코는 저 멀리 날아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다시 일어나고 싶었지만, 몸속에 어마어마한 힘이 휘몰아쳐 힘없이 무너져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문밖에서 김예훈이 무표정으로 걸어들어와 루미코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루미코 씨? 쯧쯧. 타케이 가문에 그렇게 인력이 부족해요? 사람을 죽이려고 해도 직접 나서야 하는 거예요? 돈 없으면 말씀하시지. 제가 대신 돈을 들여서 킬러 몇 명을 고용해 드릴 수 있었는데. 타케이 가문이 돈이 아까워서 킬러도 고용하지 못한다고 하면 체면이 구겨지지 않을까요?”김예훈이 앞으로 다가가 상대방의 마스크를 벗겨내자, 타케이와 닮은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내가 하임 씨를 인질로 삼을 줄 어떻게 알았던 거야?”루미코는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원망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루미코는 자신이 왜 노출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특히 아까 그 칼 한 방에 전투력을 잃어 어쩔 수 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김예훈은 그녀의 원망 가득한 표정을 보면서 말했다.“일할
동하임이 본능적으로 말했다.“의사 선생님, 이분은 제 친구인데 좀 양해해주시면 안 될까요?”“양해요? 양해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의사 선생님은 동하임의 명찰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말했다.“동하임 씨였네요. 그런데 아무리 동하임 씨라고 해도 규칙을 어길 수는 없어요. 그런데 이분을 들이는 거 불가능한 것도 아니에요. 밖에 나가서 먼저 등록하고 기록을 남겨야 들어올 수 있는 거예요.”김예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요? 그러면 먼저 등록하러 다녀올게요. 등록실이 어디죠?”의사 선생님은 직접 밖으로 나가 등록실 방향으로 안내했다..“저쪽에 보시면 등록실이 있을 거예요. 송학민이라고 등록을 도와주시는 분이 계실 거예요.”“감사해요.”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텅 빈 복도를 걸어갔다.의사 선생님은 김예훈의 모습이 사라져서야 두 명의 경찰한테 시선을 돌렸다.“어머!”그녀는 갑자기 발목을 접질렸는지 비명을 질렀다.경찰들은 본능적으로 하얗고 가느다란 발목을 쳐다보게 되었다.샤샤샥!두 명의 경찰이 시선을 돌린 순간, 그녀가 휘두른 소매에서 하얀 연기가 퍼져 나왔다.두 경찰은 그대로 휘청거리면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다시 시체를 확인하려던 동하임은 이 소리에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결국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미간을 찌푸렸다.“당신 누구야. 아무런 원한도 없는 모르는 사이인 것 같은데 뭐 하려는 거야. 누가 보냈어.”동하임은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있는 총을 꺼내려 했지만 방호복을 입고있는 관계로 재빨리 빼낼 수 없었다.그러자 정체 모를 그녀가 문을 잠그고는 웃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총독님 딸을 제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당신이 죽어버리면 저도 곤란할 수밖에 없어요. 그냥 잘 협조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뿐이에요. 원망하려면 제 동생을 죽인 김예훈을 원망하세요.”“동생?”멈칫한 동하임은 본능적으로 눈앞에 있는 시체를 한번 쳐다보았다.“타케이 누나라고?”상대방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다.“맞아요. 타케이
뚜뚜뚜.김예훈은 걸어가면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복도 끝에 있는 영안실 입구에는 경찰 두명이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이들은 김예훈을 보자마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면서 바로 안으로 모셨다.동하임은 흰색 의료용 장갑을 끼고 짧은 머리를 묶어 이국적인 매력을 지닌 목을 드러냈다.김예훈이 서서히 다가갔을 때, 그녀는 타케이 목에 나 있는 상처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너무나도 집중한 나머지 하얀 가슴골이 드러난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의사 가운을 입고 있다고 해도 날씬한 몸매는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김예훈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가가 말했다.“하임 씨, 검시관 일까지 해버리면 그분들이 뭐 해 먹고 살겠어요?”동작을 멈춘 동하임은 눈빛 하나로 무한한 매력을 발산했다.“검시관 결과는 이미 나왔어요. 현장 증거도 모두 수집 완료한 상태고요. 그 증거들 모두 김 도련님이 살인자라고 말해주고 있어요.”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말했다.“그런데 저는 살인을 저지를 시간이 없었잖아요. 어젯밤 내내 구룡성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있었잖아요. CCTV가 증거로 될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동씨 가문 별장에 같이 있었잖아요. 하임 씨가 증인이 될수 있는 거잖아요. 범죄를 저지를 시간이 없는데 저를 살인자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거 아니에요?”말하는 사이, 김예훈은 타케이의 창백한 얼굴과 아직 가시지 않은 놀라운 표정을 발견했다.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아마도 타케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동하임은 경직된 어깨를 움켜잡으면서 김예훈의 생각을 읽었는지 말했다.“사실 누가 범인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증거가 위조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것으로 김 도련님을 정기적으로 조사하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문제는 이 쓸모없는 증거들이 일본인에게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게다가 사카모토 류이치마저 죽였잖아요. 여러 가지 관계로 경찰이 죄를 묻지 않았지만, 일본인에게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지위가 높다고 해도 배시시 웃으면서 일어나 말할 뿐이다.“김현민 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특별 경로를 통해 일본 야마구치파에 소식을 전했거든요. 야마구치파 장로님인 나오키가 오늘 저녁 진주에 도착한다고 해요. 아들딸 세이이치로와 루미코도 동행한다고 하네요. 가족인 타케이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김현민이 가식적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에요? 직접 진실을 파헤쳐야 하다뇨. 정말 일본인 친구들한테 미안하네요. 지훈 씨, 저를 대신해 일본 손님들을 잘 대접해 주세요.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드리고요. 물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거 아시죠?”남지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남씨 가문은 밀수로 일어난 가문이잖아요. 아무도 추적할 수 없을 거예요.”김현민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김병욱을 힐끔 쳐다보았다.“병욱아, 정말 김예훈이 타케이 도련님을 죽인 게 확실해?”김병욱이 피식 웃었다.“그럼요. 병원 CCTV에 김예훈 모습이 찍혔고, 현장에 남겨진 당도 위에 그의 반쪽 지문이 남아있거든요. 비록 확실한 증거가 아니라 평생 콩밥을 먹일 순 없겠지만 일본인이 복수할 만한 증거가 되지 않을까요?”김현민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증거는 증거야. 확실한 증거든 아니든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본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뿐이야. 그들이 어떻게 선택할지는 그들의 문제라고. 아, 또 한 가지 일이 있어.”김현민이 곽영현을 힐끔 쳐다보면서 말했다.“곽씨 가문에 믿을만한 변호사가 몇 명 있잖아요. 진세은 씨를 구해내죠? 일본 손님을 대접하는데 진세은 씨가 없어서 되겠어요?”곽영현은 반짝이는 두눈으로 말했다.“네.”김현민은 또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저희는 진주·밀양의 고위층을 대표하기도 하고 공평 공정을 대표하기도 하는 거예요. 기관에서 공평 공정하게 처리 못 하는데
동하임은 남윤지의 도발을 무시한 채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여유작작 차를 마시고 있는 김현민을 쳐다보았다.“김현민 도련님한테서 듣고 싶은 대답이 있어서 찾아왔어요.”“하임 씨, 저를 다시 경찰서에 데려가서 조사할 예정이에요? 어젯밤 이미 충분히 잘 답변해 드린 것 같은데요? 저는 그저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라고요. 그리고 저는 진주의 치안을 생각해서 쌍방의 모순을 중재했을 뿐인데 ‘착한 시민’ 상을 안 줄지언정 정한테 누명을 씌울 건 아니죠?”김현민은 의심할 여지 없이 확고한 말투였다.동하임은 평소였다면 이런 분노가 섞인 말투를 들었을 때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예전과는 다르다는 생각에 깊이 숨을 마시고는 천천히 말했다.“김현민 도련님,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왜 타케이를 죽이고 김예훈한테 누명을 씌웠느냐예요.”“타케이가 죽었어요?”놀란 표정을 보면 전혀 연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어젯밤 안동 김씨 가문의 명의를 에드워드 병원으로 보내드렸잖아요. 그런데 왜 죽어요?”동하임은 김현민을 자세히 쳐다보면서 잠시 후 입을 열었다.“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살해당했다고요. 죽은 사람은 그 어떤 의사도 살릴 수 없어요.”퍽!“이럴 수가!”김현민은 갑자기 일어나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던졌다.“내가 타케이 도련님을 구하려고 얼마나 힘들게 의사와 간호사를 동원했는데. 그런데 죽었다고요? 하임 씨,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서 일본대사관에 알려야 해요. 아니면 위에 항의해서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예요.”분노로 가득찬 김현민은 결코 연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법을 지키는 정의로운 사람처럼 보였다.동하임은 한참동안 그를 바라보다 뒤돌아 문을 열고 나가려던 순간,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김현민 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 사건은 제가 직접 범인을 찾아낼 것입니다. 나쁜 사람을 절대 놓치지 않겠지만 절대 좋은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지 않을 거예요. 결과가 나오자마자 알려드릴게요. 도련님께서는 결과를 기다리고 계시면 돼요.
동씨 가문 자제는 침을 꼴깍 삼키더니 말했다.“네. 살해된 것도 모자라 목구멍에 칼자국이 있었어요. 초보적으로는 당도로 인해 생긴 상처라고 보고요. 다른 단서는 추가적인 수색이 필요해요. 그런데 지금까지 모든 단서와 어젯밤 사건을 놓고 보면 알게모르게 김예훈 씨를 범인으로 몰고 있어요.”동태원은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이 나설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빨리 움직일 줄 몰랐다.이제 막 ‘착한 시민’ 상은 수여하려던 찰나에 안동 김씨 가문이 김예훈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씌울 줄 몰랐다.안동 김씨 가문과 김현민에 대해 잘 알고있는 동태원은 이들이 나서는 순간 절대적인 치명타를 입게 될 거일 것도 잘 알고 있었다.타에이의 죽음은 김예훈이 진범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동태원이 직접 나서서 해명한다고 해도 범인임을 증명할 만한 증거가 충분할 것이 틀림없었다.동태원은 태양혈을 문지르며 동하임에게 시선을 돌렸다.“김현민한테 가봐.”“왜요?”동하임은 미간을 찌푸렸다.“우리 동씨 가문의 입장을 알려줘야지.”동태원은 한숨을 내쉬며 별장 밖에 있는 남태평양 바다를 쳐다보았다.지평선 끝에 먹구름이 가득한 것이 곧 폭풍우가 진주를 휘몰아칠 것만 같았다.그런데 이 폭풍우가 지나면 진주에 남게 될 자가 과연 누구일지 아무도 몰랐다....퍽!오후 3시. 동하임은 비를 뚫고 빅토리아 항구에 있는 고급 사무실 문을 열었다.동하림은 프론트 데스크 여직원을 무시한 채 성큼성큼 넓은 회의실로 향했다.이곳은 안동 김씨 가문의 건물이자 김현민의 사무실이기도 했다.이 순간 사무실 안에는 김현민 외에도 진주·밀양에서 내로라하는 젊은 층이 앉아있었다.진주 4대 도련님 중의 한 명인 김병욱, 진주 4대 도련님 중의 한 명인 곽영현 및 나머지 두 명, 진주 잡지사 아들, 일본의 귀족 등등...이들은 저마다 진주·밀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 어느 누가 밖에 나가서 발을 구른다고 해도 진주가 휘청거릴 정도였
“네가 아무리 김예훈 성과를 무시한다고 해도 진주·밀양에 온 지 며칠이나 되었는지 생각해 봐. 김예훈 때문에 밀양 상황이 완전히 뒤집혀 허씨 가문이 더 이상 왕으로 불리지 않잖아. 대립 구도에 서 있어야 하는 허씨 가문과 추씨 가문이 서로 손잡지 않았다고 해도 김예훈 편에 서 있잖아. 추씨 가문은 말할 것도 없어. 김예훈이 추하린을 진주·밀양 용전 주인 자리에 앉히는 순간 한 편이 된 거야. 허씨 가문 쪽은 허순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지 간에 김예훈이 어젯밤 그의 소중한 딸을 구출해 냈잖아. 허순재가 얼마나 명성을 아끼는 사람인데. 게다가 김예훈이 허순재를 두 번이나 구해줬잖아. 그런데도 김예훈을 지지하지 않고 김예훈 편에 서지 않아서야 되겠어? 두 가문의 지지를 받는 이상 밀양을 발칵 뒤집는 날은 멀지 않을 거라고. 그래도 김예훈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야?”생각에 잠겨있던 동하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김예훈이 진주·밀양에서 온 이후로 이 사람 저 사람을 건드린 것 같아도 불과 두 주일 만에 든든한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이러한 속도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그리고 우리 동씨 가문마저 김예훈의 편에 서도 김현민과 힘을 겨룰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동태원은 남은 커피를 한 모금에 다 마시고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동하임은 한참 동안 생각에 빠져있더니 잠시 후에 말했다.“그러면 저희는 앞으로 무엇을 하면 되는 거예요? 대놓고 김예훈 편에 서 있으면 되는 거예요?”동태원은 이 순진한 딸 때문에 한숨만 나왔다. “우리 동씨 가문이 그 정도로 지조 없는 가문이었어? 잘 기억해. 김예훈이 일본인을 유도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착한 시민’을 수여해야 해. 그리고 진주에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무조건 도와줘야 하고. 인정은 바라지 않고 그저 친해지기만 하면 돼...”동하임은 그의 말을 알 듯 말 듯 했다.“아빠, 그런데 아까는 전폭적으로 지지하라고 했잖아요...”“물론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건 맞지.”동태원은 동하임의
김예훈은 점심이 지나서야 배를 만지면서 별장에서 나왔다.동태원이 직접 문 앞까지 배웅하는 모습에 동씨 가문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항상 겸손함과 신비로움을 지키던 총독님께서 직접 배웅까지 한다고? 김예훈이라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길래?’이에 따라 동씨 가문 사람들은 하나둘씩 김예훈을 더 눈여겨보게 되었고, 기회가 생기면 김예훈과 친해지려 했다.동태원이 이 정도로 중시하는 사람은 절대 만만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동태원이 집안으로 돌아갔을 때, 화가 나서 표정이 어두워진 동하임이 커피 한 잔을 가져다주며 말했다.“아빠가 김예훈을 집까지 초대한 이유는 알겠는데 그냥 사람들한테 소식만 전달하면 되지 왜 이렇게 대놓고 지지한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에서 알면 무조건 아빠한테 불만이 생길 거잖아요. 진주·밀양의 왕이라고 불리는데 건드렸다간 저희 동씨 가문이 곤란해질 거란 말이에요.”동하임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동태원이 총독 자리에 앉아있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안동 김씨 가문이 위에서 누르고 있어 동태원은 몇 년 동안 숨어서 지내야 했다.“저희 계속 조용히 숨어서 지내도 되었잖아요. 그런데 어젯밤 그 사건 때문에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냥 휘말여 들어간 거잖아요.”동태원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무표정으로 말했다.“김예훈이 두 통의 전화로 경찰서 사람들과 기자들을 불렀어. 그건 우리 동씨 가문을 불구덩이로 몰고 간 거라고. 우리가 권력자 편에 서서 김예훈 같은 착한 시민을 억압한다면 내가 오늘 바로 제거당했을 거야.”동태원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진주·밀양이 대한민국 관할이 아니라고 해도 결국엔 대한민국 땅이야. 설마 국가에서 권력자 편에 서서 기준도, 양심도 없는, 법도 모르는 총독을 용납할 수 있었을까?”“저도 알긴 아는데...”동하임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그런데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을 이 정도까지 적대할 필요는 없지 않아요?”동태원이 담담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