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레스트 1호 별장.김예훈은 우현아 등을 위해 야식으로 라면을 준비했다.라면을 먹고 있던 서진욱은 김예훈한테서 방금 있었던 일을 듣고 놀라서 삼키지를 못했다.김예훈이 자신에게 가르쳐주기로 한 실력이 이 정도로 어마어마할 줄을 몰랐던 것이다.아무렇지 않게 그저 뺨 한 대로 자신의 스승인 청현 도장을 날릴 줄 몰랐다.‘고수야! 절대적인 고수! 난 김예훈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야!’전에는 김예훈의 실력이 놀라울 정도였다면 지금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마음이 이 순간 깔끔하게 사라지고 말았다.청현 도장한테서 전화가 와도 전혀 숨기지 않고 김예훈의 앞에서 그저 대충 둘러댈 뿐이었다.이어 피식 웃더니 말했다.“김 도련님, 저희 스승님께서 저보고 잠깐 이곳을 떠나지 말고 김 도련님께서 매일 뭐 하는지 지켜보라고 하셨습니다. 저희 스승님은 지금부터 쭉 우 회장님과 같이 있을 것 같고요. 우 회장님께서 저희 스승님을 모셔 오느라 큰 대가를 치렀을 것입니다. 단순히 김옥자 씨를 치료해달라고 협박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부산 용문당 때문이겠지. 부산 용문당 회장직을 맡으려면 단순히 입을 놀리는 것보다 진정한 실력을 갖춰야 해. 진윤하, 최산하와의 약속일이 곧 다가오기 때문에 우충식도 만반의 준비를 했을 거야.”서진욱은 아무렇지도 않은 김예훈의 말에 경이로운 표정으로 별장 밖을 지키고 있는 몇몇 용문 제자들을 쳐다보았다.‘내 기억이 맞다면 진윤하는 김예훈을 깍듯이 모시고 있었어. 그러면 김예훈은 도대체 무슨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거지?’서진욱은 곧 생각을 거두게 되었다.이제부터 김예훈의 하인이기 때문에 하인답게 물어보지 말아야 할 것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서진욱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우현아는 감동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부드럽게 쳐다보았다.“김예훈, 우리 아빠는 늘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 나를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어. 그래서 나 하나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을
김예훈은 표정이 담담하기만 했다.우충식이 부산 용문당 부회장이라고 뒤에서 봐주는 사람이 있다고 잘난 척하면서 몇 번이나 김예훈을 무너뜨리려고 했다.이번에 심지어 청현 도장까지 초대한 목적 역시 김예훈을 철저히 무너뜨리기 위함이었다.그래서 김예훈도 이번에는 그에게 본때를 보여주리라 마음먹었다.부산 용문단 회장직은 다음 생까지도 꿈도 꾸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김예훈이 아직 회장 자리에 앉지 않은 이유는 부산 용문당 회장직 자리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노리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고 또 다른 한 방면으로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부산 용문당 내부 분열을 막아 이 일을 해결하고 싶었던 것이다.이런 이유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우충식을 때려죽였을 것이다.우현아는 김예훈의 생각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렇게 말했다.“김예훈, 난 너의 말이 진짜라는 거 믿어. 그런데 난 우리 아빠랑 김옥자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이 두 사람은 그렇게 쉽게 패배를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야. 개도 급하면 담장을 뛰어넘는다고 이들을 건드렸다간 무슨 짓을 해낼지 몰라.”우현아는 정말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김예훈과 며칠 동안 함께 지내면서 그를 어느 정도 믿고 있었지만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그저 이방인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지 못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듯싶었다.금릉 김씨 가문이 아니라고 해도 부산 우씨 가문도 전국 10대 명문 가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산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뿌리 깊은 로열패밀리였다.김예훈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이런 가문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았다.부산 바닥에서 우충식에게 충성하는 사람은 많고도 많았다.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거지마저도 그의 사람일 수도 있었다.이러한 상황에서 우충식과 맞붙는다면 좋은 일이 있을 수가 없었다.“걱정하지 마.”김예훈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난 그들이 복수하는 거 두렵지 않아. 그리고 그들은 고개를 숙이게 되어있어. 김옥자의 상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전
“이런 젠장! 정말 너무하네! 죽여버릴 거야! 꼭 죽여버릴 거야!”부산 사랑병원 VIP룸, 가까스로 윗몸을 움직일 수 있는 김옥자는 물을 마시다 우충식의 말을 듣고 화가 나 물컵을 바닥에 내팽개쳤다.“김예훈 그 자식 도대체 어디서 오는 자신감이래요? 진실을 원한다고? 사과를 받고 싶다고? 현아를 대표 자리에 앉히고 싶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대요? 왜 차라리 우씨 집안의 주인이 되라고 하죠? 여보, 내가 보기엔 이 모든 것이 현아가 시킨 짓일 거예요. 아니면 이방인 주제에 어떻게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겠어요! 당장 현아를 불러와서 교육해야겠어요! 그리고 사회적, 군사적 모든 권력을 총출동하여 김예훈 이 자식을 없애요! 우씨 가문에서 해내지 못하겠다면 저희 김씨 가문에 부탁해 볼게요! 한평생 침대에만 누워있더라도 분풀이는 해야겠어요!”이 순간 김옥자는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우충식한테 시집온 이후로 우씨 가문의 안주인이 되어 도도하기만 했다.우현아는 그런 그녀에게 휘둘리면서 고개를 숙이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이방인의 힘을 빌어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앉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늘 자부심이 강했던 김옥자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분노한 김옥자와는 다르게 우충식은 차분하기만 했다.“여보, 흥분하지 마. 박 교수가 보충제는 한동안 움직일 수 있게 해줄 수는 있어도 일단 흥분하기만 하면 상태가 더욱 심각해진다고 했어. 지금은 이미 청현 도장님을 통해 전통 무술계에 이 증상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수소문해달라고 했어. 찾아내기만 하면 어떤 대가를 치러서든지 모셔 올 거야. 당신이 회복되기만 한다면 더 이상 김예훈 그 자식한테 휘둘리지 않아도 돼. 하지만 그전에는 김예훈과 부딪혀서는 안 돼. 똥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그리고 김예훈 그 자식 청현 도장님을 상대하면서 절반 실력만 보여줬는데도 그 실력이 어마어마했어. 일반 보디가드는 상대도 안 될 거야! 나한테 시간 조금만 더 줘. 응? 날
“그 둘이 한 쌍의 원앙 아니에요? 그때 되면 한날한시에 죽을 수 있게 해줘야겠어요! 하...”김옥자는 김예훈을 어떻게 짓밟아 줄까 생각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자기 온몸이 굳어버리면서 다시 한번 침대에 고꾸라지고 말았다.우충식이 쳐다보았을 때 그녀의 얼굴에 있던 미소는 이미 굳어져 버려 이상하기 그지없었다.두 손은 닭발처럼 구부러져 있었고 다시 회복할 수가 없었다.건방을 떨던 그녀는 이 순간 공포감에 휩싸여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울부짖었다.“여보! 시간이 없어요! 김예훈 조건을 들어줘요! 빨리 치료해달라고 해요! 빨리요!”...다음날 이른 아침, 아침 식사를 마친 김예훈은 우현아를 데리고 아무렇지 않게 부산 사랑병원 VIP룸으로 향했다.저녁 내내 핸드폰을 꺼두었기 때문에 아침에 다시 켰을 때는 수십 통의 문자가 와있었다.우충식이 거의 반 시간을 간격으로 전화했던 것이다.아침에 연락이 닿았을 때 바로 김옥자를 살려달라고 애원했다.그러면서 김예훈이 내놓은 두 가지 조건 모두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이외로 김옥자를 치료해 줄 수만 있다면 2조 원마저 주겠다고 약속했다.저녁 내내 불안에 떨었던 우충식과 김옥자는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다.그래서 김예훈이 더는 밀당하지 않고 바로 우현아를 데리고 이곳으로 왔던 것이다.“김 도련님, 드디어 오셨네요.”우충식은 김예훈이 걸어들어오는 것을 보고 초췌한 표정으로 발 벗고 나서서 마중했다.“빨리 저희 와이프 좀 봐주세요!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더니 갑자기 전신마비가 되어 미소마저 사라졌어요! 이대로 깨어나지 못해 식물인간이 될까 봐 두려워요!”우충식은 부산 용문당의 부회장으로써 겪어보지 못한 일이 없었다.하지만 김옥자의 일 때문에 몸과 마음이 모두 피곤한 상태였다.전처가 식물인간으로 되어버렸기 때문에 식물인간으로 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죽기보다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그래서 사랑하는 여인이 그런 결말을 맞이하게 내버려둘 수가
김예훈은 표정이 차갑기만 했다.비록 의술과 약리에 대해 잘 몰랐지만, 박 교수가 했던 말과 똑같았다.박 교수의 분석과 같이 김옥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기껏 해 24시간이었다.이 지경에 이르러서야 우충식은 김옥자가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잘못된 방식으로 도를 닦다가 사도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이 두 가지는 엄연히 다른 것이었기 때문에 의학으로 김옥자를 살려내기란 불가능했다.이런 생각에 우충식은 한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말했다.“김 도련님께서 저희 와이프 상태를 바로 알아내셨는데 살려낼 방법은 있을까요? ““아주 쉬워요.”김예훈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하지만 제 조건을 들어줘야 살려주겠다는 건 변함없어요. 첫째, 현아와 어머님께 진실을 밝혀드리는 것. 둘째, 현아를 대표 자리에 앉히는 것. 제 조건만 들어준다면 돈 일 푼도 받지 않고 살려드리겠다고 약속하죠. 하지만 들어줄 수가 없다면 죄송하게도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할 거예요.”우현아는 우충식 얼굴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 버럭 화를 낼까 봐 조마조마했다.“그래요. 그렇게 할게요.”우충식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 저녁 내내 이미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마쳤던 것이다.이때 그는 여진수에게 임명장을 가져오라고 손짓했다.“이것이 바로 임명장입니다. 지금부터 현아가 바로 저희 JK 그룹의 대표이고 전체 일상업무를 맡아서 할 것입니다.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이 사회에서 해고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30%의 지분에 대표직까지 맡았으니, 현아 능력으로는 충분히 이겨낼 거예요.”이런 말을 하고있는 우충식의 표정은 복잡미묘하기만 했다.현아를 대표 자리에 앉힐 줄 몰랐던 그는 김옥자를 위해서라면 그 자리를 내줘야 했다.머리가 똑똑한 우현아가 JK 그룹을 넘겨받기만 한다면 우충식도 그녀를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다른 선택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우현아는 멈칫하더니 임명장을 받았다. 자신이 이런 방식으로 대표 자리
김예훈의 대답에 우충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김 도련님, 비록 제가 아직 조건을 전부 만족시켜 드리지 못했지만 저는 제 성의를 보여드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저희 와이프를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내일까지 기다리겠다고 말씀하실 건 아니죠? 내일까지 기다리면 평생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어요.”김예훈이 웃더니 말했다.“성의를 보여줬으니 저도 그 성의에 보답해 드려야죠. 걱정하지 마세요. 저 김예훈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에요.”김예훈은 다른 사람들한테 자리를 비켜달라고 손짓하고는 혼자 김옥자의 앞으로 다가갔다.온몸이 굳어버린 김옥자를 보면서 아무렇지 않게 수술칼 하나로 그녀의 맥소를 찔렀다.한기가 서린 피가 뿜어져 나와 병실 온도가 한층 차가워졌다.이와 동시에 김옥자의 몸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지기 시작했고 김예훈이 그녀의 머리를 ‘탁’ 치자 다시 기절하고 말았다.몇 분 뒤, 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병실을 나섰다.우충식은 그가 병실에서 나온 것을 보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김 도련님, 상황이 어떠한가요?”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이미 김옥자 씨 오한증을 해결해 드렸습니다. 곧 깨어나실 테니 한의사를 통해 몸조리 잘하시면 됩니다.”“그래요! 정말 잘됐네요!”우충식은 흥분하기 시작하면서 얼굴에 있던 초췌함과 피로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박 교수 등도 김옥자 따라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상태를 확인해 보니, 온몸이 굳어버렸던 김옥자의 상황이 많이 나아져 있었다.조금만 몸조리하면 완전히 회복할 수도 있었다.우충식은 결과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김 도련님께서는 정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네요! 부러울 따름입니다!”이 순간 우충식은 정말 김예훈을 마음에 들어 했다.대립적 구도가 아니었다면 무슨 대가를 치러서든지 김예훈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이지만 지금으로써는 한여름 밤의 꿈과도 같았다.“김옥자 씨 오한증은 해결되었습니다.”김예훈은 웃을 듯 말 듯 하면서
김예훈이 흥미진진한 말투로 말했다.“부 회장님, 이 바닥에서 몇 년을 지내셨는데 기본적인 도리도 모르시나요?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며 남의 해를 막으려는 마음도 가져서는 안 되는 거 몰라요? 제가 왜 부 회장님을 경계하는지 정말 모르시겠어요?”우충식이 피식 웃었다.“김 도련님께서 생각 많으셨습니다. 저는 저희 와이프를 위해 최선을 다해 협조해 드릴 것입니다.”김예훈은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우현아를 데리고 이곳을 떠났다.우충식은 김예훈이 사라지자 예리한 눈빛으로 바뀌더니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견 세자님, 저는 내일 우씨 가족 모임에서 현아에게 진실을 알려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견 세자님과 현아의 혼인도 선포하려고 합니다! 아, 그리고 김예훈이라는 자는 손쉽게 청현 도장님을 무너뜨릴 수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 또한 견 세자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아에게 진실을 알려주자마자 그의 목숨을 끝냈으면 좋겠네요. 상상만으로도 재밌을 것 같군요.”통화를 마친 우충식은 얼굴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내일, 모든 것이 내일에 달려있어! 내일이면 옥자 씨 병도 치료할 수 있고, 부산 견씨 가문과 친척 사이를 맺을 수도 있고, 부산 용문당 회장 자리에도 오를 수 있을 거야!’이런 생각에 우충식은 얼굴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우충식이 무슨 꿍꿍이를 하고 있는지 김예훈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알고 있다고 해도 별로 큰 반응을 보일 사람이 아니었다.이것이야말로 우충식에게 알맞은 스타일이었고 그가 이런 짓거리를 하지 않으면 손봐주기도 미안했다.포레스트 별장에 도착한 김예훈은 진윤하와 최산하에게 연락하여 미리 내일의 움직임을 맞춰보았다.요 며칠 이 둘은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을 거의 마친 상태였다.김예훈이 마지막으로 나서기만 한다면 부산 용문당을 철저히 통합시킬 수 있었다.그리고 내일이 바로 가장 적절한 시기였다!김예훈의 계획을 모르고 있던 우현아는 비서를 불러와 계약서를 준비하라고 했다.
10시, 부산 버뮤다 JK 그룹 큰 회의실.회의실에는 각 고위직이 앉아있었고 하나같이 직급이 높아 큰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이들은 검은 정장을 입은 우현아와 차가운 표정의 김예훈이 걸어들어오는 것을 자세히 주시하고 있었다.불쾌함, 의문스러움, 흉악스러움만 가득했지 김예훈이 원하던 복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우현아가 갑자기 대표 자리에 앉게 된 것이 자신의 이익에 어긋났을 뿐만 아니라 지난날의 경영방식을 깨트린 것으로 생각해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품게 되었다.그중 에르메스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시가를 입에 물고 하찮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넓은 회의실에서 아무렇지 않게 시가 연기나 뿜어대면서 건방지기만 했다.우현아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 없이 센터 자리에 앉아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이 자리에 계신 분들 다 저를 아실 거라 믿습니다. 저는 오늘부로 정식으로 대표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을 테니 앞으로 전 김옥자 대표님을 지지해 주었던 것처럼 저도 많이 지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더 잘해서 여러분께 연말에 더 많은 보너스를 챙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어 오늘부터 사장직을 맡게 된 김예훈 씨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저희 JK 그룹에서 이분은 저의 의지를 대표할 수 있고 이분이 한 말이 바로 제가 한 말이 될 것입니다. 김 사장님의 명령은 무조건 따라야 할 것이고 어기는 자는 그대로 해고될 것입니다!”우현아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제 뜻을 모두 알아들으셨나요?”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김예훈을 쳐다보게 되었다.‘20만 원도 안 되어 보이는 옷차림의 저 남자가 부산에서 유명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사람일 텐데...’고위직들은 의아하기만 했다.‘어디서 튀어나온 사람이길래 우현아의 믿음을 한 몸에 받고 있어? 저 자식이 한 말이 자기 말과도 같다고? 설마 소문으로만 듣던 기생오라비?’사람들은 김예훈을 무시했고 왠지 모르게 부럽기도 하도 질투 나기도 했다.우현아의 덕을 볼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