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러싼 사람들은 허리가 불룩하니 분명 무기를 챙겨서 왔다. 숨 쉴 때마다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눈빛들이 사나웠다.그 뒤로 한석범이 얼굴을 보였고 곧이어 심정효도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본 김예훈은 얼굴에 웃음 지으며 말을 건넸다.“아주머니, 저는 어제 얘기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이게 지금 무슨 짓이죠?”심정효는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보며 대답했다.“이봐, 김예훈. 나야 너를 난처하게 할 생각이 없었지. 그런데 방씨 도련님이 여자를 두고 연적이 너무 나대니까 이렇게 사람을 보내서 자네 실력을 보고 싶은가 보네. 난 그저 길만 안내한 건데. 나를 뭐라 할 셈이야?”그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으로 살기에 찬 기운이 퍼졌다.“서울 방씨 가문?”김예훈은 비웃듯 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며 물었고 심정효가 답을 했다.“그렇지만도 않아. 이 사람들은 특별 조직에서 왔어. 당신이 아무리 실력 있다고 해도 방씨 가문에서 당신 하나 잡겠다고 사람을 보내지는 않아. 돈만 좀 써도 처리할 수 있는 걸 뭘 거기서 사람까지 보내겠어.”김예훈은 씩 웃었다.“방씨 도련님께 감사라도 드리라는 거예요?”“됐고!”심정효는 눈에 띄게 김예훈의 건방진 태도를 싫어했고 지금은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이봐, 김예훈! 사실대로 말해 줄게. 내가 당신 조사를 다 해봤어. 당신이 암만 잘 나가고 있는 척해도 꼴에 그저 데릴사위더구먼. 남의 집 데릴사위가 감히 내 딸을 곁에 두겠다고 억지를 부려! 낯짝이 어찌 그리 두꺼워!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오늘 이리 따라온 건 내 딸을 봐서 마지막 기회를 주려고 온 거야. 앞으로 내 딸 곁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러면 불쾌했던 과거를 다 잊고, 방씨 도련님한테 내가 그만하라고 말을 할 테니. 그렇지 않으면 나도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김예훈은 내색하지 않고 웃어 보였다.“제 뒷조사를 했다는 말이네요?”“그게 뭐?”심정효가 무뚝뚝하게 말했다.“그러면 저의 성격이랑 스타일도 잘 아시겠네요. 그런 말이
“심씨 가문 직계가 아직 무사한 건, 단지 그 사람이 다음 달 보름까지라고 기한을 줬기 때문이라고. 그날이... 딱 그 일이 있고 20년 되는 날이니까. 그 인간 그날을 심씨 가문의 제삿날로 못 박아뒀다고.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없단 말이야. 심씨 가문에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그러니 젊은 양반은 우리 애 일에서 손 떼.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당신이 방해하면 해결은커녕 심씨 가문 전체를 해치는 거니까. ”그 당시 킬러 조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핵심 인물은 바로 윤청이였다. 왕년에 그녀는 수헌사의 최강 킬러였다. 지금 20년을 칩거하다 나왔으니, 그녀의 실력이 어느 지경까지 올랐는지, 얼마나 많은 제자를 키워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돈, 권력, 에너지, 뒷배, 인맥 이런 건 온갖 수단을 다 쓰는 킬러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심씨 가문도 10대 명문가로서 분명 그들만의 자존심이 있고 심정효 역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다. 부득이하지 않고서야 어찌 딸을 저당으로 내세울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심정효가 바보도 아니고 김예훈도 보아낸 방씨 가문의 속셈을 그녀라고 못 알아챘을까?그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치워야 하는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을 뿐이다.김예훈은 살짝 인상을 찌푸려보았다. 그가 느끼기엔 심정효도 자신이나 딸한테 완전히 독한 맘을 먹을 위인은 아니지만, 그녀도 여러 가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공격에 맞서기라도 하기 위해 전력을 한다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오늘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이, 바로 데리고 온 사람들에게 손 보라고 시키면 될 일이었다.김예훈은 가슴속으로 한숨을 쉬어보더니, 그래도 한마디 했다.“아주머니, 어제 제가 내뱉은 말은 번복하지 않아요. 오늘 이렇게 오셔도 은혜 씨는 못 데려갑니다.”그 한마디 하고 김예훈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눈에 힘을 주고 심정효를 쳐다보며 말했다.“다만, 킬러 건이라면 제가 심씨 가문을 도와 해결할 수 있겠네요.”“해결한다고? 당신이
김예훈이 웃었다.“아주머니 말대로 10위 안에 든 킬러와 연락해서 해결할 수 있는 거라면, 저도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겠네요. 탑 쓰리 킬러가 저한테 다 신세를 진 인물들이라서, 제가 아무나 하나 부르면 되겠네요.”김예훈이 지어내서 함부로 하는 말이 아니다. 유라시아 전쟁에서 당시 강대국들은 거금을 들여 순위 10위 안에 드는 킬러들에게 손을 내밀었고, 김예훈 이 문제아를 해치우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킬러들은 절반 가까이 죽었고 나머지 몇몇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김예훈에게 굴복했었다. 유라시아 전쟁 이후 몇 년 동안 거의 연락을 한 적이 없긴 한데, 필요할 때 신호를 보내면 자연히 그중 한둘은 나서줄 것이다.“자네가?”심정효는 김예훈의 말을 듣고도 어이가 없었다.“당신이 돈이 좀 있고 실력도 좀 된다는 건 알겠는데, 지금 당신의 말을 무턱대고 믿으면 내가 바보지. 탑 킬러들의 존재는 누가 부르면 오고 가라면 가는 그런 인물들이 아니라고. 당신이 그들 이름만 대도 내가 여기서 무릎을 꿇겠어. 이런 생사가 달린 문제는 함부로 큰소리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그런데도 본인이 그 사람들을 안다고 우길 거야?”김예훈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옆에서 침묵하고 있는 한석범을 바라보며 물었다.“한석범 씨, 아주머니는 몰라도 당신은 킬러 순위 10위 안에 드는 사람이 누군지는 잘 알죠?”김예훈이 묻는 말에 한석범은 실눈을 떠 보이더니 잠시 후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잘 알지.”김예훈은 약간 고개를 내리면서 말했다.“좋아요. 그럼 설득이 좀 쉽겠네요. 윤청이는 킬러 순위 18위였죠?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애매한 정도. 20년을 칩거했으니 실력이 늘었다 치고 상위 10위 안에는 들 수 있겠죠?”한석범은 김예훈이 킬러 세계의 은밀한 내용까지 속속히 알고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던지 약간 놀란 눈치였다. 한석범은 숨길 의사 없이 덤덤히 답을 해줬다.“맞네. 심가에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윤청이의 실력이 최소 킬러 10위 안에는 있
프리미엄 가든에 돌아온 정민아는 일찍이 잠들었다.김예훈은 그녀를 깨우지 않고 곧장 서재로 들어가서 낡은 핸드폰 하나를 꺼냈다.잠깐 정적 후에 김예훈은 한 번호를 찾아 눌렀다.“나야.”핸드폰 너머로 한동안의 침묵이 흐르더니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 나왔다.“총사령관님, 어쩐 일입니까?”“누구 하나 지켜줘야겠어.”김예훈은 말했다.“저는 킬러지 보디가드가 아닌데.”목소리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그럼, 말을 바꿔서, 누구 한 사람을 따라다니다 그 사람한테 달려드는 킬러를 싹 다 죽이는 거로 줘. 그녀는 살려주고.”상대방은 한참 침묵을 유지하다가 말을 했다.“시간, 장소, 대가를 말해요.”“시간, 장소는 아직 모르지만 나를 도와 이번 건을 해결해 주면 신세 진 거 퉁 쳐줄게.”“좋아요.”상대방은 담담하게 말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김예훈은 잠시 침묵해 있다가 컴퓨터를 열어서 심정효의 자료와 상황 그리고 심씨 가문이 처한 상황을 메일로 적어 보냈다.킬러를 대응하는 제일 좋은 수단은 킬러였다. 남진서가 손을 쓰면 심정효는 안전할 것이다.다음 날 오후 김예훈은 CY그룹의 일을 처리한 뒤 심정효가 묵고 있는 W 호텔로 갔다.오늘 심정효는 프리하게 일상복을 입고 있었고 화장하지 않은 인상이 평일보다 부드러워 보여 여성의 매력이 좀 더 진해진 것 같았다.하지만 하늘을 찌르는 고고한 기세는 하나도 줄지 않았다.“말했던 대로 제가 킬러한테 연락해 뒀어요.”김예훈은 소파에 기대여 평온하게 말했다.“오늘부터 탑 쓰리 실력자 남진서가 아주머니 신변을 지킬 겁니다. 다음 달 15일까지만 이대로 계셔주면 제가 그날 부산 가서 윤청이를 상대할게요.”김예훈은 한마디를 보충했다.“물론 제가 손쓸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남진서가 지키고 있는 한 윤청이가 그날까지 살아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깐요.“순위 탑 쓰리 남진서가 나를 지킨다고?”김예훈을 바라보는 심정효의 얼굴에는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김 대표, 킬러 이름을 대는 것도 신기하긴 한데
방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다음 순간 심정효의 매서운 고함이 들렸다.“미친 자식이! 날 죽일 셈이야?”한석범 등 일행은 정신을 차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달려들어 심정효를 구하려 했다.어떤 이는 총을 들어 김예훈을 조준했다. 심정효가 죽으면 바로 김예훈을 쏘아 죽이려는 행동이었다. 그것이 그들의 임무이기도 했다.“윽...”심정효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더니 하얀 얼굴이 바로 까맣게 변하고,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지금 그녀는 견디기 힘든 큰 고통을 치르고 있었다.“지금 손을 안 쓰면, 보호해야 할 사람이 바로 죽어.”김예훈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다음 순간 방 안 구석에서 누구도 주의하지 못한 웨이터가 앞으로 달려 나왔다.그녀의 얼굴은 너무 평범했고 몸매도 시선을 끌 만한 인물이 아니라서 사람들 속에서는 도무지 인상적이지 않았다.하지만 이 시각 그녀는 빠른 속도로 심정효의 앞에 달려와서 손을 내밀어 목젖을 살짝 두 번 치더니 청색의 약을 그녀의 입에 넣었다.심정효는 온몸이 찌릿하더니 바로 검은 피를 토했다. 그러더니 얼굴색이 까만색에서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반면 그 웨이터는 김예훈을 차갑게 쏘아보고 몸을 뒤로 숨기더니 바로 사라졌다.이 상황을 지켜보던 한석범 등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그들은 심정효가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누군가가 달려 나와서 그녀를 해독시켰다는 것 자체가 너무 놀라웠다. 관건은 그 사람이 언제 왔는지 언제 이 방에 나타났는지 아무도 몰랐다. 만약 이 사람이 킬러이고, 목표가 본인들이었다면...한석범은 본인이 실력으로도 못 당해낼 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왔다.김예훈은 뒷짐을 졌고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좀 있으니 심정효가 결국 원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그녀는 정서상 안정을 찾은 후 살기에 찬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김 대표, 감히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이야?”심정효가 포효하며 말했다.“아주머니, 아직 안 죽었어요.”김예
김예훈은 평온하게 심정효를 바라보며 간절하게 말했다.“자고로 사람은 다 죽지 않았겠습니까. 근데 누군들 죽음이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전에 아주머니가 많이 두려워하는 걸 보고 저는 그 점을 탓하지 않습니다. 이젠 지옥을 한 바퀴 돌고 온 이상, 게다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했으니 아주머니께서 방씨 가문의 도움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덧붙여서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방씨 가문에서 남진서보다 더 강한 킬러는 데리고 올 수 없을 거라고 봅니다. 남진서 카드 하나로도 아주머니가 부산에 돌아가면 심씨 가문에서 하늘을 찌를 수 있을 겁니다. 위험은 많으면 기회라고 했습니다. 맞죠?”심정효와 한석범은 동시에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그들은 김예훈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일리 있는 김예훈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이번 일을 겪고 나니 심정효는 윤청이에 대한 두려움이 예전 같지는 않았다. 거기다 킬러가 경호원을 해주니 마음이 놓였다. 심지어 다시 보면 이번 위기는 상위권에 오를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예훈을 바라보는 심정효의 눈빛은 인정하는 기색도 깃들었다.“자, 제가 할 말은 여기까지고, 다음 달 보름에 심씨 가문이 이번 문제를 해결했건 아니건 간에 가서 찾아뵙겠습니다!”김예훈은 손을 흔들며 돌아서 나갔다.김예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석범의 표정은 몇 번이고 변하더니 조용히 말했다.“사모님, 지금도 아가씨를 데리고 돌아가야 하나요?”“걔를 왜 데리고 가? 여기 남아서 우리 사위하고 잘 사귀게 놔둬야지! 정민아를 차버리게! 이런 사윗감 누구한테도 못 빼앗겨!”심정효는 당당히 말했다....그 시각, 경기도 정씨 가문이 새로 구매한 별장 안에서 정동철은 애지중지하는 본인이 손수 만든 왕좌를 쓰다듬으며 왕좌에 앉았다. 몇 달이나 떨어져 있다가 모처럼 기회가 되어 이 자리에 앉아 있으니, 그는 더욱 소중하게 여겼다. 그때 정가을이 아래 측에서 나와서 말했다.“할아버지, 시간이 다
사희진은 견천룡이 정동철을 지키라고 보내온 사람이다.실력이 대단한 건 말할 필요도 없는 고수다.그러니 정동철도 무서운 것이 없었다.이때, 두 손에 검은 뱀을 든 노인이 나타나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정가을은 실력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머리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사희진은 너무 무서운 사람이다. 실력이 강한 것도 있지만 뱀을 부리는 수법은 다른 사람이 따라 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프리미엄 가든.며칠 동안 떠난 정군과 임은숙이 함께 돌아왔다. 좋은 술과 맛있는 음식까지 준비한 그들은 정민아를 시켜 얼른 김예훈은 불러오도록 했다.부모님의 그런 모습을 본 정민아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지만 뭐라고 얘기할지 몰라 그저 김예훈을 불렀다.정소현도 같이 돌아왔다.한 집안사람들이 어렵게 모여 같이 식사했다.김예훈을 본 정소현은 갑자기 무슨 일이 떠올라 얘기했다.“형부, 우리 선배 중에 한 분이 대학 졸업 후 감독이 되었거든요. 그리고 요즘 우리 학교에서 사람들을 뽑아 부산에 가서 드라마를 찍을 거래요. 그런데 그분이 저한테 딱 어울리는 캐릭터가 있다고 부산으로 초청해 주셨어요. 원래는 가고 싶지 않았는데 들어보니까 대우도 괜찮은 것 같아서 한번 가보려고요.”식사 자리에서, 정소현은 기대감에 차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많은 일을 겪고 난 후, 정소현은 자신이 아직 어려서 김예훈을 돕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 둔 정소현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정소현은 뜨거운 시선으로 김예훈을 쳐다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잠깐 고민하던 김예훈이 입을 열기도 전에 임은숙이 가차 없이 말을 끊어버렸다.“입만 열면 형부, 형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두 사람 사이가 정말 돈독한 줄 알겠어!”정소현은 의아한 시선으로 임은숙을 쳐다보았다. 오늘따라 임은숙의 태도가 평소와 달랐다.김예훈은 정소현을 보면서 웃더니 핸드폰으로 얘기하자고 눈치를 줬다.“예훈아, 오늘 너를 불러서 같이 식사 자리를
“엄마, 결혼은 우리 둘 사이의 일이에요. 끼어들지 말아요!”정민아는 임은숙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잘 알았기에 하얗게 질린 입술을 꽉 깨물고 겨우 얘기했다.“끼어들지 말라고? 내가 끼어들지 않으면 너희가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게 될지 몰라! 부산 견씨 가문은 우리 정씨 가문의 뿌리야! 지금 세자가 너한테 이혼하고 부산으로 가라고 했어! 그분들이 우리를 봐줘서 말로 하는 건데, 너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계속 거절하다니. 뭐 하자는 거야!? 네가 지금은 김예훈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너희가 어울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김예훈이 세자로 남을 수 있는 날이 며칠인지도 몰라! 진주 4대 명문가가 손을 잡은 거로도 모자라 이제 또 어느 가문이 김예훈을 죽이려고 들지 몰라. 이런 남자 곁이 안전하다고 할 수 있겠어? 게다가 부산 견씨 가문은 이 자식보다 천 배, 만 배는 강해! 그러니 넌 무조건 세자의 말을 듣고 진정한 명문가로 시집가야 해! 바로 전국 10대 명문가 중 하나로! 그래야 우리도 이 신세를 벗어날 수 있어!”임은숙은 여태까지 쓴 가면을 찢어버린 채 크게 소리쳤다.정씨 가문과 임씨 가문이 몰락하면서 임은숙은 이렇게 큰 소리를 내본 적이 없다.하지만 오늘의 임은숙은 자신이 있었다.정군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이건 예훈이와 민아, 두 사람 사이의 일이야. 좋게 얘기해.”“당신은 닥쳐!”임은숙이 짝 소리가 날 정도로 정군의 뺨을 세게 내려치고 차갑게 얘기했다.“이런 일을 어떻게 좋게 얘기해야 해? 어르신께서 날짜까지 정해주셨어. 이 일 때문에 민아의 로열 가든 그룹이 망하게 생겼다고! 이런 마당에 내가 어떻게 좋은 말로 얘기할 수 있겠어!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김예훈은 이혼해야 해!”김예훈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며칠 동안 CY그룹과 하은혜에게만 신경을 썼더니 집에 이런 일이 생겼을 줄은 몰랐다.젓가락을 내려놓은 김예훈이 천천히 얘기했다.“장모님,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얘기해 주세요. 민아한테 이 일을 얘기한 적이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
아마미네 토시로는 영상통화를 끊어버리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이런 실력이라면 아마도 나랑 거의 맞먹을 거야. 탑 무신급에 가까운 실력자가 아니라면 내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을 쉽게 무너뜨릴 수 없었어.”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넌 정말 숨은 고수였구나. 어린 나이에 이런 실력을 갖추다니. 정말 장래가 밝아. 너 같은 사람은 왜 밖에 나가서 자랑하지 않는 거야? 자랑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너의 실력을 모르잖아. 우리가 제대로 준비하지도 못하고 실수로 너를 죽이면 어떡하려고?”아마미네 토시로는 자신감 넘치게 웃었다.“내가 다년간 수련하면서 도를 닦았기 다행이지. 아니면 정말 너의 상대가 안 되었을 수도 있어.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무신 급 실력자를 한 명 잃게 될 운명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를 저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다른 일본인들도 서로 마주 보더니 하나같이 가소로운 미소를 지었다.오늘 패배할 운명인 줄 알았는데 무서운 김예훈을 앞에 두고도 아마미네 토시로가 태연한 모습을 보일 줄 몰랐다.‘역시 야마자키파 검신은 달라.’이 순간 일본인들은 다시 자신감이 생기는 기분이었다.“이런 제기랄. 우리 아마미네 토시로 검신님의 말씀을 못 들었어? 무신이라고 해서 우리 검신님 앞에서 잘난 척하지 마. 자식. 넌 아직 너무 어려. 네가 엄마 배속에서부터 무술을 배웠다고 해도 검신님의 상대가 될 수 없어. 얼른 무릎 꿇고 사과하지 않고 뭐해. 검신님이 네가 무신인 걸 봐서 살려줄지 어떻게 알아. 내가 보기엔 넌 우리 몸종이나 되는 게 낫겠어.”“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이번에 입을 연 사람은 김예훈이 아니라 아마미네 토시로였다.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아까 입을 놀린 일본인의 뺨을 때려 저 멀리 날려버렸다.쨕.부하가 요트 엔진에 부딪히는 바람에 엔진이 고장 나면서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나머지 일본인들은 입을 꾹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바로 이때, 아마미네 토시로가 담담하게 말했다.
김서하는 한껏 우쭐거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녀는 김예훈을 조롱하면서도 그가 산산조각이 나는 장면을 놓칠까 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아마미네 토시로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이따 김예훈이 죽으면 저랑 했던 약속을 잊으면 안 돼요.”김서하가 냉랭하게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김예훈만 죽이면 네가 원하는 특별 외교 신분은 얼마든지 줄 수 있어. 이제부터 야마자키파가 우리 진주에서 무슨 짓을 하든 다 상관없는 거야. 진주법을 어기더라도 나랑 현민이가 뒤를 봐주는 이상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할 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입 다물어. 좋은 구경하는 거 방해하지 말고.”개인 이익을 위해 국가 이익마저 팔아넘기는 사람을 제일 좋아하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이때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의 검에서 빛이 반사되어 김예훈은 잠깐 눈살을 찌푸렸다.이제는 피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하지만 이 어마어마한 기세에도 김예훈은 피식 웃을 뿐이다.“아마미네 토시로, 이 여덟 명의 제자를 길러낸 것도 참 대단해. 그런데 아쉽게도 네가 만난 상대는 나야. 내 앞에선 무신도 맥을 추지 못하는데 하물며 가짜 무신이라?”김예훈은 말을 끝내자마자 사람무리를 뚫고 나가 손바닥을 힘껏 휘둘렀다.아무렇지 않은 움직임이었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변했다.이들 눈에 평범해 보이기만 하던 김예훈이 손바닥을 휘두르는 순간 천지가 흔들리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정도였기 때문이다.“이런 제기랄!”알약까지 먹은 일본 자객들은 잠깐 멈칫하긴 했지만 이 순간에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쨕.하지만 다음 순간, 청량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바람의 아들들이 하나같이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이다.“악!”이들은 공중에서 피를 뿜어내기도 했다.땅에 떨어지는 순간, 모두 정신이 혼미해져 표정이 멍한 채 일어날 수 없었다.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이 뺨 한 대로 무너지다니.김예훈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설령 천하무적의 무신이라 해도 이 정도로
“이런 제기랄!”김예훈이 다시 그들의 습격을 피하자 남은 네 명의 일본 자객은 다시 힘을 합쳐 동시에 앞으로 달려들었다.김예훈이 갑판에 꽂혀있던 검 하나를 뽑아 드는 순간 바다 위에 밝은 달이 떠오르는 것처럼 번쩍거렸다.아마미네 토시로는 이 광경을 보고 얼굴색이 확 변하면서 단호하게 외쳤다.“막아!”다음 순간, 남은 네 명의 자객은 동시에 뒤로 물러나면서 검을 모아 앞을 막았다.이 완벽한 호흡은 정말 흠잡을 데 없었다.이로써 아마미네 토시로가 고수를 가르치는 실력을 알 수 있었다.퍽.검이 서로 마주치는 순간 불꽃이 튀었지만 당장 방어막을 뚫을 수는 없었다.다른 네 명의 부상당한 자객들은 모두 빠르게 썩은 냄새 나는 알약을 삼키더니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이 알약으로 고통을 감소하고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다시 공격!”김예훈이 상대하기 어려운 놈으로 보이자 아마미네 토시로는 험악한 표정을 하고서 또 한 번 이를 악물며 명령했다.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은 하나가 되어 검을 칼집에 넣더니 다시 뽑았다.“죽여!”이건 바로 일본 검도 중 가장 강력한 기술인 일본 검술이었다.여덟 명의 탑 장병급 실력자들은 살기를 뿜어내면서 다 함께 김예훈이 있는 곳으로 돌진했다.어떤 무신도 가볍게 죽일 것만 같은 기세에 물러설 곳도 없고 막을 수도 없는 느낌이었다.이 모습을 보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그제야 긴장이 풀리면서 진정할 수 있었다.‘나도 막을 수 없는데 고작 김예훈 따위가 막겠어?’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야마자키파의 명성을 알릴 수 있는 이 기회에 구경꾼을 불러 모으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었다.그래도 아쉬운 대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곧 통화가 연결되고, 핸드폰 화면에 김서하의 아름다운 얼굴이 나타났다.그녀는 반쪽 얼굴을 감싼 채 한쪽 손으로 운전하면서 원망 어린 말투로 말했다.“김예훈은 처리했어?”“아직요. 곧 끝날 거예요. 이 역사적인 순간을 보여주려고 사모님께 영상통화를 보낸 거 아니에요.”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