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김예훈은 돈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겪어보니 단순히 김세자라는 신분 하나만으로 자신이 많은 제약을 받고 있고, 또 본인 의지대로 행동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기왕에 부산에 가서 부산 용문당 일을 처리하기로 생각했던 바에, 김세자라는 신분에 좀 더 무게감을 줄 필요가 있었다.청별 그룹이 엄청 얄밉지만 그걸 칼자루로 휘두른다면 훗날 일본이나 리카 제국을 상대할 때 꽤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인도 태권도 일인자 박용진이 패하는 순간 청별 그룹은 이미 기둥이 부러진 거나 마찬가지다. 또 인도 나라 특징이 중간이 없다. 날뛸 때는 엄청나게 날뛰고, 길 때는 또 모든 걸 다 내려놓는다. 한국지부의 반 되는 자산을 내놓는 것과 한국지부 자산이 증발하는 것 중, 청별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자기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이지윤을 대표 자리에 올리는 건 김예훈의 계략이었다. 김예훈은 앞으로 이지윤의 손을 빌려 청별의 업무에 개입하고 손을 대겠다고 청별에 일러주는 셈이었다. 그러면 그들고 자신이 원하는 주식에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니 청별 그룹의 임원들은 가만히 있을 것이다.그래서 김예훈은 더욱더 청별 그룹이 자신의 모든 요구를 들어줄 거라 자신했다.역시나, 반나절도 되지 않아 이지윤이 돌아와서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샤넬의 검정 드레스 차림에 메이크업까지 완전히 달라져서 나타났다. 김예훈의 앞에서 일부러 몸매를 드러내며 고분고분한 콘셉트로 서 있었다.“김 대표님,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당신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겠다고 했어요.”김예훈은 대꾸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차를 한입 마셨다.“맞다, 그리고 오늘부터 제가 한국 지역 대표를 맡았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홍콩, 대만 등 아시아 지역 업무도 모두 저한테 맡겼습니다.”이지윤의 얼굴에 흥분이 더해졌다. 그 자리는 한국 대표라는 자리보다 더 높았고 청별 그룹 내에서도 절대적인 권력의 상징이었다.이지윤도 이번 결정이 청별 그룹에서 김예훈
“김 대표님, 한 번 보셔야지 않아요? 저희를 너무 믿는 거 아니에요?”이지윤은 복잡한 기색을 보였고 김예훈은 담담히 대답했다.“당신들 청별 그룹의 1/3 지분이면 대충 백조 정도 되겠죠? 그건 나한테 있어서 그저 숫자일 뿐, 큰 영향이 없어요. 그런데 이지윤 씨한테는 의미가 다르죠. 그 지분이 없으면, 내가 당신 뒷배가 아니라면 아시아 지역 대표 자리도 늘 불안하겠죠? 그러니 지금 당신은 나보다 더 이 일을 성사하고 싶어 하는 처지고 계약서를 수없이 들여다봤을 거고요. 나를 속이려고 함정을 판다는 건 결국 본인 무덤을 스스로 파는 걸 테고. 나는 돈을 잃으면 그만이지만 당신은 목이 날아가는 일인데, 설마 이지윤 씨가 그랬겠어요.”여기까지 말한 김예훈의 얼굴에는 재미있는 기색이 역력했다.이지윤의 눈가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이내 공손하게 얘기했다.“김세자 님, 걱정하지 마세요. 덕분에 제가 이 자리에 앉게 된 걸 잘 알고 있고 실망 시키지 않을게요.”이지윤이 물러나서야 송준은 한쪽 편에서 걸어 나오더니 의미심장하게 말을 했다.“대표님, 인도 그쪽 너무 믿지 마세요. 지금이야 깍듯하고 고분고분하지만, 기회만 되면 언제든 돌아서서 등에 칼을 꽂을 위인들이에요.”김예훈은 무덤덤하게 말했다.“상관없어. 청별 주인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는 별짓을 못 할 거야. 똑똑한 사람이니 나의 존재가 자기를 도와 청별을 손에 넣게 해준다는 걸 알고 있으니 상관없어. 나의 위기가 곧 저 사람의 위기가 될 테니. 이번에 이 자리에 올라오는 것도 이미 대부분 사람한테 미움을 샀을 거야. 짧게 말하면 청별에서는 이미 혼자인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한길로밖에 걸어갈 수 없다는 소리야.”...그 뒤로, 하루 사이에 청별 그룹 관련된 여러 가지 뉴스가 쏟아졌다. 한국 지부 이대정 대표가 갑자기 중병에 걸려 사망했다는 뉴스를 시작으로 청별 그룹 직계 이지윤이 아시아 지역 대표직을 임명받아 한국 지부 사무를 총괄한다고 했다.그 외에도 CY 그룹에서 청별 그룹의 일부 지분을
둘러싼 사람들은 허리가 불룩하니 분명 무기를 챙겨서 왔다. 숨 쉴 때마다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눈빛들이 사나웠다.그 뒤로 한석범이 얼굴을 보였고 곧이어 심정효도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본 김예훈은 얼굴에 웃음 지으며 말을 건넸다.“아주머니, 저는 어제 얘기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이게 지금 무슨 짓이죠?”심정효는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보며 대답했다.“이봐, 김예훈. 나야 너를 난처하게 할 생각이 없었지. 그런데 방씨 도련님이 여자를 두고 연적이 너무 나대니까 이렇게 사람을 보내서 자네 실력을 보고 싶은가 보네. 난 그저 길만 안내한 건데. 나를 뭐라 할 셈이야?”그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으로 살기에 찬 기운이 퍼졌다.“서울 방씨 가문?”김예훈은 비웃듯 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며 물었고 심정효가 답을 했다.“그렇지만도 않아. 이 사람들은 특별 조직에서 왔어. 당신이 아무리 실력 있다고 해도 방씨 가문에서 당신 하나 잡겠다고 사람을 보내지는 않아. 돈만 좀 써도 처리할 수 있는 걸 뭘 거기서 사람까지 보내겠어.”김예훈은 씩 웃었다.“방씨 도련님께 감사라도 드리라는 거예요?”“됐고!”심정효는 눈에 띄게 김예훈의 건방진 태도를 싫어했고 지금은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이봐, 김예훈! 사실대로 말해 줄게. 내가 당신 조사를 다 해봤어. 당신이 암만 잘 나가고 있는 척해도 꼴에 그저 데릴사위더구먼. 남의 집 데릴사위가 감히 내 딸을 곁에 두겠다고 억지를 부려! 낯짝이 어찌 그리 두꺼워!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오늘 이리 따라온 건 내 딸을 봐서 마지막 기회를 주려고 온 거야. 앞으로 내 딸 곁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러면 불쾌했던 과거를 다 잊고, 방씨 도련님한테 내가 그만하라고 말을 할 테니. 그렇지 않으면 나도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김예훈은 내색하지 않고 웃어 보였다.“제 뒷조사를 했다는 말이네요?”“그게 뭐?”심정효가 무뚝뚝하게 말했다.“그러면 저의 성격이랑 스타일도 잘 아시겠네요. 그런 말이
“심씨 가문 직계가 아직 무사한 건, 단지 그 사람이 다음 달 보름까지라고 기한을 줬기 때문이라고. 그날이... 딱 그 일이 있고 20년 되는 날이니까. 그 인간 그날을 심씨 가문의 제삿날로 못 박아뒀다고.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없단 말이야. 심씨 가문에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그러니 젊은 양반은 우리 애 일에서 손 떼.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당신이 방해하면 해결은커녕 심씨 가문 전체를 해치는 거니까. ”그 당시 킬러 조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핵심 인물은 바로 윤청이였다. 왕년에 그녀는 수헌사의 최강 킬러였다. 지금 20년을 칩거하다 나왔으니, 그녀의 실력이 어느 지경까지 올랐는지, 얼마나 많은 제자를 키워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돈, 권력, 에너지, 뒷배, 인맥 이런 건 온갖 수단을 다 쓰는 킬러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심씨 가문도 10대 명문가로서 분명 그들만의 자존심이 있고 심정효 역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다. 부득이하지 않고서야 어찌 딸을 저당으로 내세울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심정효가 바보도 아니고 김예훈도 보아낸 방씨 가문의 속셈을 그녀라고 못 알아챘을까?그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치워야 하는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을 뿐이다.김예훈은 살짝 인상을 찌푸려보았다. 그가 느끼기엔 심정효도 자신이나 딸한테 완전히 독한 맘을 먹을 위인은 아니지만, 그녀도 여러 가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공격에 맞서기라도 하기 위해 전력을 한다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오늘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이, 바로 데리고 온 사람들에게 손 보라고 시키면 될 일이었다.김예훈은 가슴속으로 한숨을 쉬어보더니, 그래도 한마디 했다.“아주머니, 어제 제가 내뱉은 말은 번복하지 않아요. 오늘 이렇게 오셔도 은혜 씨는 못 데려갑니다.”그 한마디 하고 김예훈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눈에 힘을 주고 심정효를 쳐다보며 말했다.“다만, 킬러 건이라면 제가 심씨 가문을 도와 해결할 수 있겠네요.”“해결한다고? 당신이
김예훈이 웃었다.“아주머니 말대로 10위 안에 든 킬러와 연락해서 해결할 수 있는 거라면, 저도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겠네요. 탑 쓰리 킬러가 저한테 다 신세를 진 인물들이라서, 제가 아무나 하나 부르면 되겠네요.”김예훈이 지어내서 함부로 하는 말이 아니다. 유라시아 전쟁에서 당시 강대국들은 거금을 들여 순위 10위 안에 드는 킬러들에게 손을 내밀었고, 김예훈 이 문제아를 해치우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킬러들은 절반 가까이 죽었고 나머지 몇몇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김예훈에게 굴복했었다. 유라시아 전쟁 이후 몇 년 동안 거의 연락을 한 적이 없긴 한데, 필요할 때 신호를 보내면 자연히 그중 한둘은 나서줄 것이다.“자네가?”심정효는 김예훈의 말을 듣고도 어이가 없었다.“당신이 돈이 좀 있고 실력도 좀 된다는 건 알겠는데, 지금 당신의 말을 무턱대고 믿으면 내가 바보지. 탑 킬러들의 존재는 누가 부르면 오고 가라면 가는 그런 인물들이 아니라고. 당신이 그들 이름만 대도 내가 여기서 무릎을 꿇겠어. 이런 생사가 달린 문제는 함부로 큰소리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그런데도 본인이 그 사람들을 안다고 우길 거야?”김예훈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옆에서 침묵하고 있는 한석범을 바라보며 물었다.“한석범 씨, 아주머니는 몰라도 당신은 킬러 순위 10위 안에 드는 사람이 누군지는 잘 알죠?”김예훈이 묻는 말에 한석범은 실눈을 떠 보이더니 잠시 후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잘 알지.”김예훈은 약간 고개를 내리면서 말했다.“좋아요. 그럼 설득이 좀 쉽겠네요. 윤청이는 킬러 순위 18위였죠?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애매한 정도. 20년을 칩거했으니 실력이 늘었다 치고 상위 10위 안에는 들 수 있겠죠?”한석범은 김예훈이 킬러 세계의 은밀한 내용까지 속속히 알고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던지 약간 놀란 눈치였다. 한석범은 숨길 의사 없이 덤덤히 답을 해줬다.“맞네. 심가에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윤청이의 실력이 최소 킬러 10위 안에는 있
프리미엄 가든에 돌아온 정민아는 일찍이 잠들었다.김예훈은 그녀를 깨우지 않고 곧장 서재로 들어가서 낡은 핸드폰 하나를 꺼냈다.잠깐 정적 후에 김예훈은 한 번호를 찾아 눌렀다.“나야.”핸드폰 너머로 한동안의 침묵이 흐르더니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 나왔다.“총사령관님, 어쩐 일입니까?”“누구 하나 지켜줘야겠어.”김예훈은 말했다.“저는 킬러지 보디가드가 아닌데.”목소리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그럼, 말을 바꿔서, 누구 한 사람을 따라다니다 그 사람한테 달려드는 킬러를 싹 다 죽이는 거로 줘. 그녀는 살려주고.”상대방은 한참 침묵을 유지하다가 말을 했다.“시간, 장소, 대가를 말해요.”“시간, 장소는 아직 모르지만 나를 도와 이번 건을 해결해 주면 신세 진 거 퉁 쳐줄게.”“좋아요.”상대방은 담담하게 말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김예훈은 잠시 침묵해 있다가 컴퓨터를 열어서 심정효의 자료와 상황 그리고 심씨 가문이 처한 상황을 메일로 적어 보냈다.킬러를 대응하는 제일 좋은 수단은 킬러였다. 남진서가 손을 쓰면 심정효는 안전할 것이다.다음 날 오후 김예훈은 CY그룹의 일을 처리한 뒤 심정효가 묵고 있는 W 호텔로 갔다.오늘 심정효는 프리하게 일상복을 입고 있었고 화장하지 않은 인상이 평일보다 부드러워 보여 여성의 매력이 좀 더 진해진 것 같았다.하지만 하늘을 찌르는 고고한 기세는 하나도 줄지 않았다.“말했던 대로 제가 킬러한테 연락해 뒀어요.”김예훈은 소파에 기대여 평온하게 말했다.“오늘부터 탑 쓰리 실력자 남진서가 아주머니 신변을 지킬 겁니다. 다음 달 15일까지만 이대로 계셔주면 제가 그날 부산 가서 윤청이를 상대할게요.”김예훈은 한마디를 보충했다.“물론 제가 손쓸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남진서가 지키고 있는 한 윤청이가 그날까지 살아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깐요.“순위 탑 쓰리 남진서가 나를 지킨다고?”김예훈을 바라보는 심정효의 얼굴에는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김 대표, 킬러 이름을 대는 것도 신기하긴 한데
방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다음 순간 심정효의 매서운 고함이 들렸다.“미친 자식이! 날 죽일 셈이야?”한석범 등 일행은 정신을 차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달려들어 심정효를 구하려 했다.어떤 이는 총을 들어 김예훈을 조준했다. 심정효가 죽으면 바로 김예훈을 쏘아 죽이려는 행동이었다. 그것이 그들의 임무이기도 했다.“윽...”심정효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더니 하얀 얼굴이 바로 까맣게 변하고,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지금 그녀는 견디기 힘든 큰 고통을 치르고 있었다.“지금 손을 안 쓰면, 보호해야 할 사람이 바로 죽어.”김예훈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다음 순간 방 안 구석에서 누구도 주의하지 못한 웨이터가 앞으로 달려 나왔다.그녀의 얼굴은 너무 평범했고 몸매도 시선을 끌 만한 인물이 아니라서 사람들 속에서는 도무지 인상적이지 않았다.하지만 이 시각 그녀는 빠른 속도로 심정효의 앞에 달려와서 손을 내밀어 목젖을 살짝 두 번 치더니 청색의 약을 그녀의 입에 넣었다.심정효는 온몸이 찌릿하더니 바로 검은 피를 토했다. 그러더니 얼굴색이 까만색에서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반면 그 웨이터는 김예훈을 차갑게 쏘아보고 몸을 뒤로 숨기더니 바로 사라졌다.이 상황을 지켜보던 한석범 등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그들은 심정효가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누군가가 달려 나와서 그녀를 해독시켰다는 것 자체가 너무 놀라웠다. 관건은 그 사람이 언제 왔는지 언제 이 방에 나타났는지 아무도 몰랐다. 만약 이 사람이 킬러이고, 목표가 본인들이었다면...한석범은 본인이 실력으로도 못 당해낼 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왔다.김예훈은 뒷짐을 졌고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좀 있으니 심정효가 결국 원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그녀는 정서상 안정을 찾은 후 살기에 찬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김 대표, 감히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이야?”심정효가 포효하며 말했다.“아주머니, 아직 안 죽었어요.”김예
김예훈은 평온하게 심정효를 바라보며 간절하게 말했다.“자고로 사람은 다 죽지 않았겠습니까. 근데 누군들 죽음이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전에 아주머니가 많이 두려워하는 걸 보고 저는 그 점을 탓하지 않습니다. 이젠 지옥을 한 바퀴 돌고 온 이상, 게다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했으니 아주머니께서 방씨 가문의 도움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덧붙여서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방씨 가문에서 남진서보다 더 강한 킬러는 데리고 올 수 없을 거라고 봅니다. 남진서 카드 하나로도 아주머니가 부산에 돌아가면 심씨 가문에서 하늘을 찌를 수 있을 겁니다. 위험은 많으면 기회라고 했습니다. 맞죠?”심정효와 한석범은 동시에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그들은 김예훈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일리 있는 김예훈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이번 일을 겪고 나니 심정효는 윤청이에 대한 두려움이 예전 같지는 않았다. 거기다 킬러가 경호원을 해주니 마음이 놓였다. 심지어 다시 보면 이번 위기는 상위권에 오를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예훈을 바라보는 심정효의 눈빛은 인정하는 기색도 깃들었다.“자, 제가 할 말은 여기까지고, 다음 달 보름에 심씨 가문이 이번 문제를 해결했건 아니건 간에 가서 찾아뵙겠습니다!”김예훈은 손을 흔들며 돌아서 나갔다.김예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석범의 표정은 몇 번이고 변하더니 조용히 말했다.“사모님, 지금도 아가씨를 데리고 돌아가야 하나요?”“걔를 왜 데리고 가? 여기 남아서 우리 사위하고 잘 사귀게 놔둬야지! 정민아를 차버리게! 이런 사윗감 누구한테도 못 빼앗겨!”심정효는 당당히 말했다....그 시각, 경기도 정씨 가문이 새로 구매한 별장 안에서 정동철은 애지중지하는 본인이 손수 만든 왕좌를 쓰다듬으며 왕좌에 앉았다. 몇 달이나 떨어져 있다가 모처럼 기회가 되어 이 자리에 앉아 있으니, 그는 더욱 소중하게 여겼다. 그때 정가을이 아래 측에서 나와서 말했다.“할아버지, 시간이 다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