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효는 화가 나서 얼굴이 파리하게 질리고 눈가 근육이 바르르 떨렸다.심정효는 일부러 김예훈을 무시하면서 빠르게 하은혜를 데려갈 생각이었다.그러나 갑자기 김예훈이 튀어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김예훈이 아무리 CY그룹의 대표이자 경기도의 김세자라고 해도 심정효의 눈에는 그저 우스갯거리였다.경기도처럼 조그마한 곳이 어떻게 부산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부산 6대 세자야말로 진정한 세자다! 경기도의 김세자가 다 웬말인가.하지만 이 쓸데없이 김세자가 먼저 나와서 심정효에게 대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심정효는 권위가 바닥에 떨어진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그러더니 심정효는 갑자기 수표 한 장을 꺼내 기다란 숫자를 써내려 가더니 김예훈에게 던지며 차갑게 얘기했다.“난 당신이 은혜의 대표이든 은혜의 동료이든 혹은 은혜의 남자이든 상관 안 해. 하지만 결국 너는 은혜와 사귈 자격이 없어. 친구를 할 자격도 없어! 여기 200억이야. 이 200억을 받고 당장 꺼져! 앞으로 다시는 은혜 앞에 나타나지 마!”그렇게 말하는 심정효에게서는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돈으로 사람을 제압하는 건 심씨 가문이 가장 잘하는 일이다.심정효의 비웃음 속에서 김예훈은 그 수표를 주워서 꽤 열심히, 자세히 들여다보았다.그 모습을 본 심정효는 더욱 비웃었다.상장 그룹의 대표면 뭐해? 결국은 심씨 가문의 돈 앞에서 자존심을 굽히지 않겠는가?수표의 숫자를 보던 김예훈은 고개를 들어 담담하게 얘기했다.“아주머니, 고작 이 정도로 저한테 은혜 씨를 떠나라고 하다니. 이건 좀 부족한 것 같은데요?”“부족해?!”심정효는 굳어버렸다. 얼굴의 웃음은 점차 괴이해졌다. “네가 뭔데, 감히 나랑 맞먹으려고 들어?! 네게 200억을 주는 건 내 딸을 봐서야. 알아들었으면 그거 가지고 꺼져. 그렇지 않으면 나도 네가 어떻게 될지 장담 못하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급이라는 게 있어. 같은 상류층 사람이라도 누군가는 영원히 조연이라고. 공주는 왕자와 결혼하는 게 당연한 거야! 직
“너...!”심정효는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김예훈이 이렇게 자기를 모욕할 줄은 몰랐다.이 자식이 자기를 바보로 아나?2조라고?2조는 개뿔!“죽여버려.”그 순간, 심정효는 차가운 얼굴로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이놈아, 사모님이 좋은 말로 할 때 들었어야지. 그것도 모르고 나대다니. 죽어도 내 탓 하지 마.”심정효 뒤에 서 있던 개량 한복 차림의 노인이 앞으로 나오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김예훈을 쳐다보았다.“바로 죽여주마. 다음 생에는 함부로 사람 건드리지 말거라!”말을 마친 노인은 바로 주먹을 김예훈의 얼굴에 꽂으려고 했다.쿵.주먹을 뻗자 큰 소리가 울렸다.하은혜가 저도 모르게 외쳤다.“한석범 어르신, 안 돼요!”심정효는 빠르게 딸을 끌어당기고 차갑게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쿵.김예훈은 차갑게 한 발 앞으로 나서서 똑같이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빠르고 강력한 한방이 꽂혔다.퍽.한석범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김예훈의 손바닥이 한석범의 얼굴에 꽂혔다.펑.거대한 소리에 한석범이 그대로 날아가 복도의 벽에 부딪혔다. 벽에는 거미줄 같은 금이 갔다.그리고 한석범의 얼굴에 붉은 손자국이 남았다.붉게 부어오른 오른쪽 뺨을 감싸 쥔 한석범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무슨 일인가. 물론 그가 아까 손을 쓸 때, 힘을 절반 정도밖에 쓰지 않았다.다만 그의 속도와 힘은 절대 이런 애송이가 받아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하지만 이 결과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김예훈의 뺨을 맞고 날아가다니!이 자식이 꽤 까다로운 상대라는 것을 설명한다.이때, 한석범이 김예훈을 쳐다보는 눈빛이 멸시에서 조금 진중하게 바뀌었다.개량 한복을 입은 남녀도 그 모습을 보고 다 놀랐다.그들은 김예훈이 한석범을 바로 날려버릴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한석범은 부산 심씨 가문의 최고 실력자다.실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고 그의 손에 죽은 사람만 해도 셀 수 없었기에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게다가 전에 일본의 가라테
한석범은 그 말을 듣고 머리를 저었다. 아까는 확실히 너무 방심했다. 그저 애송이인 줄 알고 힘을 절반밖에 쓰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심정효의 명령이 있으니 무조건 온 힘을 다해야 했다.한석범은 한숨을 조금 내쉬었다. 이 자식은 꽤 괜찮게 생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체도 없어질 것이다.한석범이 또 한숨을 내뱉으며 얘기했다.“이놈아, 넌 사람을 잘못 건드렸어. 하지만 아가씨의 얼굴을 봐서라도 시체만은 온전히 남겨줄게.”그렇게 얘기하며 그는 온몸으로 살기를 뿜어냈다. 뼈마디 사이에서는 뚜두둑 소리가 났다.퍽.김예훈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바로 한석범의 뺨을 갈겼다.한층 진지해진 한석범은 눈으로 그의 수를 읽었다. 그리고 김예훈의 손을 피하려고 했다.하지만 그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김예훈의 속도는 한석범보다도 빨랐다.이렇게 빠르고 강한 것은 누구도 이길 수 없다!김예훈의 손은 그 누구보다 빠른 것 같았다.짝.한석범이 허공에서 몇 바퀴 돌고 또 복도의 벽에 부딪혔다.그의 왼쪽 얼굴에 또 손자국이 생겼다.양쪽 볼을 부여잡은 한석범은 머리가 어지러웠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그는 손에 꼽힐만한 고수다. 그런데 왜 김예훈에게는 한방도 먹이지 못하는 거지?심정효는 짜증을 내면서 얘기했다.“한석범, 은혜 체면을 봐주지 말고 그대로 죽여버려! 진심을 다해서 죽여버려! 그래야 저 자식이 심씨 가문을 건드린 대가를 확실히 알 거야! 김예훈은 한평생 가까이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는 걸 똑똑히 알려줘!”한석범은 기분이 상했다. 그는 진작 진심으로 달려들었다. 아까는 적어도 80퍼센트의 힘을 썼다.하지만 김예훈은 담담하게 한석범을 쳐다보며 얘기했다.“겁나요?”한석범의 표정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러더니 그는 몸을 일으켜 앞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얘기했다.“선학의 수!”90퍼센트의 힘이다!짝.하지만 김예훈은 또 뺨을 갈겼다.선학범의 몸은 또 그대로 날아가 뒤쪽의 벽에 박혀버렸다.벽의 타일이 깨져서 한석범 위로 와르르 떨어져 먼지
옆에서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심정효와 생활한복 차림의 남녀는 한석범의 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아연실색했다.졌다고? 뭘, 인정해?부산 심씨 가문에서 강력하게 공양받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심정효의 밀착 경호원인 한석범이?그럼 조금 전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게 하은혜의 면을 봐서가 아니라는 거야? 왜 갑자기 졌다고 해?사실 한석범의 실력은 심정효 일행도 잘 알고 있었다. 심씨 가문은 고사하고 부산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그의 실력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런 실력자가 김예훈에게 귀싸대기를 있는 대로 다 얻어맞고 얼굴이 터질 지경인 데다 살려달라 백기를 든 아이러니한 상황이 지금 그들 눈앞에서 벌어졌으니 누가 봐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한석범이 그저 단 한 번 당한 것이라면 방심했다 하겠는데, 네다섯 번이나 연이어 당했다는 건 분명 김예훈이 놀라운 실력자라는 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든 심정효의 안색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한석범을 한 번 쳐다보더니 한스러운 어투로 입을 열었다.“쓸모없는 인간, 실력하고는!”한석범은 이내 얼굴빛이 안 좋았고, 아픈 얼굴을 감싼 손을 내릴 용기조차 없어 보였다.그 역시도 구차하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버티다간 정말 산채로 맞아 죽을 지경이었다.김예훈이 때리면 때릴수록 힘이 더 강해지는 걸 한석범은 고스란히 느꼈기에, 몇 대 더 버텼다가는 죽거나 산송장이 될 게 뻔했다.“인정한다니 다행이네요.”김예훈은 한석범을 향해 친화적인 미소를 지었고 몸을 돌려 고고하고 도도하게 서 있는 심정효를 바라보았다.지금 김예훈은 그저 아무렇게 서 있을 뿐인데,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달라 보였다. 거의 중생을 아우라는 하늘 신의 기운이 흘러넘치듯 했다.“아주머니, 제가 은혜 씨 지켜 줄 수 있다고 말씀드렸었죠. 제 실력은 지금 보시다시피예요. 그러니 너무 따님을 내몰지 마세요.”김예훈은 차분한 목소리로 우직하게 말을 했다.“은혜 씨, 저의 비서이기도 하지만 저의 절친한 벗입니다. 저한테
김예훈의 말에 심정효는 썩소를 한번 지어 보이더니 잠시 후 경고하듯 차갑게 말을 했다.“김예훈, 너무 자만하지 마. 본인이 실력 좀 된다고 세상 무서운 거 없는 거 알겠는데 어른으로서 충고하나 할게. 부산, 서울에 가보게 되면 본인이 지금 얼마나 우스운 소리를 했는지 알 거야. 이 코딱지만 한 성남 땅에 무지렁이들이 너무 많아. 김세자라고 불린다고 정말 본인이 뭐라도 된 줄 아나 봐. 힘 있고 배경 있고 능력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서울이나 부산에 가 봐야 본인이 얼마나 꿀리는지를 알더라고. 더욱이 자네는 오만한 성격에다 우리 심씨 가문을 제대로 건드렸으니 앞으로 가는 길이 가시밭길일 거야.”심정효는 이런 것까지 귀띔해 주는 자신이 너무 착한 것 같았다.김예훈은 부정하지 않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늘의 일과는 아무 상관 없는 얘기를 하시네요. 하지만 굳이 그렇게 권력, 배경, 인맥, 실력 비겨 보시려면 해보세요. 꿀리지 않을 자신 있어요. 막강한 권력, 막강한 배경, 막강한 인맥, 막강한 실력, 그거 다 저예요, 아주머니가 믿든 안 믿든 그래요. 해서 은혜 씨 곁을 지킬 거고요. 은혜 씨가 꺼지라고 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저한테 그러라고 요구할 자격도 능력도 없을 겁니다. 그게 은혜 씨 어머니여도, 서울 4대 도련님, 부산 6대 세자라도... 누구도 은혜 씨를 힘들게 하지 못하게 제가 지킬 겁니다.”김예훈은 자신의 태도를 명확하게 밝혔고 그 모습을 어둠이 짙은 표정으로 지켜보던 심정효는 갑자기 고개 돌려 하은혜를 보며 물었다.“은혜야, 너 약속을 어길 셈이니? 이렇게 저놈이 엄마를 능욕하는 걸 보고만 서 있을 거니?”하은혜는 수심이 깊어지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어머니한테 약속했던 건 지킬 거예요. 근데, 저 선 만 보겠다고 약속했지, 시집간다고는 안 했어요. 시집가라고 하는 거라면, 미안해요, 저 안 해요. 그리고 심씨 가문도 오랜 시간 동안 10대 명문가인데, 고작 킬러 조직 하나가 무섭다고 가문의 위기라고 하는 것도 이해 가지
아파트.김예훈은 하은혜에게 그녀의 사직서를 건네면서 말했다.“사직서는 도로 갖고 가요. 은혜 씨는 여전히 CY그룹 비서이고, 오늘부로 오정범한테 24시간 경호를 맡길 거예요. 필요하다면 당도 부대원을 보낼게요. 아무쪼록 은혜 씨 안전은 내가 책임질 테니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아요.”하은혜는 한숨을 내쉬어 보였다. 오늘 그녀는 김예훈의 평소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았다. 성격이 센 걸 떠나서 횡포를 놓는 모습은, 그녀 어머니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겼고 미움마저 제대로 샀다.앞으로 두 사람이 같이 다니면 얼마나 번거로울지 눈에 선하다. 그걸 다 떠나서 하은혜는 김예훈의 속내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녀는 눈을 굴리더니 갑자기 문 앞에 막아서서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김 대표님, 갑자기 든 생각인데. 한 번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생각났어요. ”“무슨?”김예훈은 눈빛이 번쩍 뜨여서 물었다.“무슨? 내가 능력이 닿는 선에서 전력을 다해 도울게요.”“당연히 대표님이 할 수 있는 거예요.”하은혜는 꿍꿍이가 있는 듯 웃으며 김예훈의 귓가에 말했다.“날 가져요.”쿵쿵쿵.곧이어 일련의 쿵쿵 소리가 방안에서 나더니 화장실의 창문이 열렸고 김예훈이 그대로 창문으로 뛰쳐나왔다. 그 와중에 어렴풋이 하은혜의 한숨 소리도 들렸다. 김예훈은 화장실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착지했고, 이내 어이없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 ‘어떨 때는 나도 어쩔 수 없는 게 있다고, 집에 여자가 있는 몸이라. 그녀하고도 아직 제대로 해결을 보지 못했는데, 감히 어디 한눈팔 새가 있겠냐고.’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예훈은 전화를 걸었고 심씨 가문의 상황을 금방 보고 받았다. 모든 사람이 각자 말 못 할 어려운 일이 있듯이 경상 재벌인 부산 심씨 가문도 그랬다.심씨 가문도 엄청나게 잘나갔었지만, 이십 년 전쯤, 강력한 경쟁 상대를 제대로 만나 격변을 겪었다. 상대는 상업 측면에서 공격했고, 심현섭을 암살하겠다고 킬러 조직까지 동원했었다.젊고 혈기 왕성했던 심현섭도 거칠고 횡포하여, 그들에 맞
프리미엄 가든. 그동안 줄곧 이곳에 살던 정군과 임은숙 두 사람은 이사를 갔고 정소현은 학교로 돌아갔다. 큰 집에 정민아 혼자 남아 있어서 그런지 좀 많이 허전해 보였다. 정민아는 테이블 위에 쌓여 있는 한 겹의 서류를 보고 있자니 미간에 근심이 가득 쌓였다.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쌓인 서류들은 다 반송된 계약서랑 주식양도 합의서이다.모든 게 다 오늘 갑자기 발생한 일이었다. 로열 가든 그룹 측에서 공개매수를 통해 시중의 유통주식 전부를 경기도 정씨 가문에서 보유했다. 그리고 얼마 전 구두계약 했던 업체들에서 한 시간 전에 로열 가든 그룹과의 협력을 깨겠다고 연락이 왔다. 다들 로열 가든 그룹의 배후가 CY그룹임을 알면서도 말 한마디로 합의 건을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 망설임 없는 그들의 태도에서 충분히 적수가 기세등등해서 공격해 오고 있다는 게 설명이 되었다. “경기도 정씨 집안...”정민아는 손으로 눈썹을 만졌고 눈가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일찍이 세력을 잃은 정동철이 부산 견씨 가문의 지원에 이렇게 다시 한번 기가 하늘을 뚫을지 예상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부산에서 복귀한 정가을이 기고만장했다. 그녀가 정동원을 보좌하니 하루도 안 된 사이 쾌도난마로 많은 일들을 해치웠다. 그리고 지금 정민아를 겨눌 칼을 갈고 있었다. 정동철의 요구는 딱 하나, 정민아가 김예훈과 이혼하고 부산으로 내려가 견씨 가문과 혼사를 치르는 일이었다. 비록 김예훈이 김세자의 신분을 밝혔지만도, 견씨 가문의 뒷받침을 받는 정동철에게는 김예훈이 맘에 들 리가 없었다.정동철이 봤을 때, 고작 CY그룹 하나로는 전국 10대 명문가 중의 부산 견씨 가문과 어디 내놔도 견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원칙이라고는 없는 임은숙은 이미 완전히 정동철에게 줄을 댔다. 정군은 어쩔 수 없이 따라서 태도를 보였다.“펑!”바로 그때 갑자기 방문이 누군가에 의해 뻥 차여서 열렸다. 찾아온 이는 힘이 어찌나 센지 노크도 없이 발로 문을 차고 거실로 들어왔다. 곧장 서류 하나를 정민아
정민아의 찌푸려진 미간이 더 짙어졌다. 잠깐의 침묵 뒤 냉랭하게 말했다.“곽영현, 김병욱 그리고 이대정, 그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었지. 결과는 봐서 알잖아?”정가을이 “풉”하고 비웃었다.“언니는 그게 정말 거지 같은 남편이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견세자가 이미 알아봤어요. 하정민과 양정국이 언니 남편을 도왔던 건 하은혜 비서 때문이고, 전남산 어르신이 나서 준 것도 예전의 신세를 갚느라 그랬대요. 그리고 용문당 어르신이 나선 건 우연히 그런 거래요. 다 하늘이 도운 거예요. 진짜 실력으로 따지면 벌써 진주 4대 명문가와 청별 그룹에 짓밟혀 저세상에 갔겠죠. 싸움 잘하는 건 알겠는데, 여기가 주먹만으로 통하는 그런 세상 아니잖아요. 실력이랑 배경, 인맥, 부와 권세를 다 갖춰야 하는 거고 그게 세상 돌아가는 근본이에요. 잘 싸우는 거? 기껏해야 깡패밖에 더 되겠어요? 내 말이 틀려요? 게다가 부산 견씨 가문도 10대 명문가인데, 견씨 가문하고 틀어져 봐야 뭐가 득이 되겠어요? 그러니까 정신 차려요. 나도 입 아프니까, 얼른 사인해요. 끝나면 나랑 같이 부산 내려가서 제대로 된 것 누려요”정민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정가을을 쳐다보며 말했다.“만약, 내가 싫다면?”“싫다면?”정가을은 오른손으로 정민아의 턱을 치켜들고는 웃음을 터뜨렸다.“거절이야 할 수 있죠. 그런데 언니가 싫다고 해도 소용이 있을까요? 언니는 아직 얼굴을 다치면 안 되니까 당장에 뺨을 갈기고 싶지만 놔두는 거예요. 마지막 시간을 줄 테니 모레 아침 10시까지 이혼 협의서에 사인해 둬요. 아! 그리고 정군, 임은숙 두 사람이 지금 우리 손에 있다는 걸 잊지 마요. 두 분이 조심하지 않고 뭐라도 잘못 먹고 중독이라도 돼서 죽으면 누가 속상할지 모르는 일이니까.”정가을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미친!”정민아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화를 냈다.“정가을, 어떻게 이렇게 변한 거야? 예전엔 좀 지나치게 행동했어도 이렇게 막 나가지는 않았잖아? 왜 이렇게 독해진 거야!”“
외국 여자의 말을 들은 장무준은 역겨움과 혐오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바라보았다.그는 동하임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 김예훈을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입을 삐죽거렸다.“어쩐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어디서 악취가 진동하더라니, 네 몸에서 나는 냄새였구나!”“동하임, 마리아 씨가 너한테서 어떤 악취가 난다고 했는지 알아?”“궁상맞은 냄새가 난다고 했어!”“동씨 가문은 어떻게 보면 별 보잘것없는 가문인데 자기네가 무슨 상류층 가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히 진주 상류층에 끼려고 해?”“너희 동씨 가문의 그런 염치없는 모습이 참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워!”“특히 동하임 넌 영국 제국의 황녀에 비하면 길가의 개에 불과해!”장무준의 눈에는 거리낌 없는 경멸이 깃들어 있었다.“당장 이 기생오라비를 데리고 꺼져!”“앞으로 절대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참, 혼약은 할아버지한테 취소하라고 할 거야.”“그전에 조건이 하나 있어.”“바로 너랑 이 기생오라비가 장씨 가문 문 앞에서 3일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비는 거야!”“3일 채우면 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어!”장무준의 빈정거림에 매서운 기운이 동하임의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그녀는 장무준을 차갑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장무준, 고작 며칠 동안 외국인 행세를 했다고 해서 자기가 무슨 영국 제국의 개라도 된 줄 아나 봐?”“잘 들어!”“파혼의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장무준 네놈이 3일 밤낮으로 우리 가문 문 앞에서 무릎 꿇고 빌면 파혼을 동의할 거야!”“그렇지 않으면 이 내연녀랑 부부가 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내연녀?”장무준은 동하임을 차갑게 바라보았다.“더러운 년, 말조심해!”“네 눈앞에 있는 여인은 영국 제국의 황녀고 영국 제국 황위의 49번째 계승자야!”“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공주고 네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야. 너랑 너희 동씨 가문이 평생 떠받들고 모셔야 하는 존재라고!”“감히 누구한테 내연녀라고 하는 거야?”“미친 거 아니야?”“마리아 씨가 나
“장무준 저 자식이 어렸을 때부터 영국 제국에서 자라서 결국 영국 제국 황실 방계의 여자 친구를 찾은 듯해요.”“저런 친밀한 모습이 해외에서 일어난 거라면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심지어 저 자식이 우리 가문이랑 진작에 파혼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저희 동씨 가문이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근데 지금 우리 동씨 가문이랑 파혼도 하지 않고 내가 마중 나올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외국 여자를 데리고 와서 내 뒤통수를 치잖아요.”“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죠!”동하임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자신의 약혼자인 저 남자한테 관심이 없지만 자신과 동씨 가문에 먹칠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일이 일단 진주·밀양 두 도시에서 퍼지게 되면 동씨 가문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김예훈은 동하임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는 살짝 웃으면서 물었다.“그럼 이제 어쩌려고요?”“저 남자한테 가서 당신을 좋아하는지, 결혼은 할 것인지 물어볼 건가요?”“죽어도 싫어요!”동하임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간단하네요.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가서 분명히 말해줘요.”“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없는 거면 장씨 가문 쪽에서 자발적으로 파혼하게끔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거 아니에요?”김예훈은 장무준이 장현준의 손자란 걸 알고 있었지만 동하임이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랐다.어찌 됐든 동씨 가문과 장씨 가문이 이 지경에 이른데에는 자신한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니 동씨 가문을 도와 이 일을 최대한 조용히 해결해야 했다.자신이야 나중에 진주·밀양을 떠날 거라서 상관이 없지만 동씨 가문은 여기에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었다.동하임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파혼하고 싶은 건 맞아요.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 않아서 그래요.”“장무준이 지금 이 관건적인 시기에 돌아왔는데 순순히 파혼할까요?”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순순히 파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그 남자 교육
다음 날 시즌 호텔 로얄 스위트 룸에서 깊이 잠들어 있던 김예훈은 다시 한번 끊임없는 노크 소리에 잠이 깼다.김예훈은 시계를 보고 나서 힘없이 문 열러 갔고 문 앞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동하임을 보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동하임 씨, 지금 아침 9시예요. 나 조금만 더 자게 해줘요!”“좀 푹 쉬게 내버려둬요!”화장한 동하임의 안색이 안 좋았고 그녀는 김예훈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나랑 같이 공항에 누구 좀 데리러 가요!”김예훈은 자세히 물어보려고 했지만 동하임의 안색이 좋지 않을 걸 보자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동하임의 포로쉐 911은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다 진주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동씨 가문의 사람은 이미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동하임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급히 달려가 주차를 도와주고 한 레스토랑의 위치를 알려주었다.안색이 좋지 않은 동하임은 에르메스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김예훈은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입을 꾹 다문 채 따라나섰다.그는 도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평소에 냉담한 동하임을 이토록 화나게 하는지 궁금했다.곧 두 사람은 레스토랑 입구에 도착했다.거대한 레스토랑은 이미 통째로 예약된 상태라 다른 손님은 없었고 모든 웨이터가 한 테이블 귀빈들한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테이블 중앙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남자는 서울 사람으로 잘생긴 외모에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듯했고 금색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점잖고 우아한 귀족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의 맞은편에는 영국 제국의 외국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외모와 몸매는 그런대로 괜찮았고 관건적인 것은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김예훈은 그것이 영국 제국 황족만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다.그녀의 외모는 영국 제국의 장공주과는 조금 차이가 났지만 특유의 기질은 숨길 수 없었다.그러한 사람이 진주 국제 공항에 나타났다는 자체만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듯했다.몇몇 젊은이들이 레스토랑 바깥 구석에 몰래
“제 기억이 맞다면 전에 손자분이 동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었죠?”“명목상으로는 동하임의 약혼자 맞죠?”김현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했다가 그 당시 동씨 가문이 아직 집권하지 않았을 때 장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던 게 떠올랐다.하지만 그의 손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해서 서울 사람들을 경멸했고 오직 영국 제국 황실의 사위가 되기만을 원했다.그래서 그는 영국 제국으로 유학 갔고 황실 방계인 여친을 찾은 후에는 진주로 돌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김현민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장현준은 그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을 거다.김현민은 이어서 말했다.“어르신의 표정을 보니 제가 제대로 기억한 것 같네요.”“오늘 동하임이 현장에서 김예훈을 건드리려면 자신의 시체를 밟고 가라는 둥, 그런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그 말이 퍼지게 되면 장씨 가문의 체면이 구겨질 게 뻔해요.”“어쨌든 동하임은 어르신의 손자며느리이고 아직 파혼하지 않았잖아요.”“제가 보기에는 손자분이 돌아와서 동하임을 교육 좀 시켜야한다고 생각해요. 진주에서 누가 더 권력이 있는지 동씨 가문에 단단히 알려야죠!”“고작 동씨 가문 주제에 집권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장씨 가문의 은혜는 싹 다 잊은 거잖아요.”“게다가 동씨 가문을 망가뜨리면 김예훈이 계속해서 큰소리칠 수 있을까요?”“그 사람이 평성에서 아무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진주에서는 뿌리 없는 초목일 뿐이에요.”“동씨 가문과의 인연만 끊어버린다면 얼마든지 밟고 올라설 수 있지 않겠어요?”“게다가 그 사람이 이번에 영국 제국을 거듭해서 모욕했는데 어르신 손자분과 황실 여자 친구가 같이 돌아와서 김예훈의 낯짝을 세게 후려갈겨 버리면 얼마나 속 시원하겠어요?”장현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김 수장님 역시 명성대로 인재시네요. 직접 나서지 못하는 대신 전략과 배치를 아주 완벽하게 짜놓으셨네요.”“어떻게 체면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급한 마
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물었다.“용현성이 김예훈을 제압하지 못할 거란 걸 진작에 예상했던 거예요?”“용현성은 용문당 집법부대의 부당주고 용문당 36개 지회를 총괄하는 사람이에요.”“그런데 김예훈이 어떻게 감히 용현성의 체면을 구길 수 있어요?”김현민은 직접 장현준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간단해요. 김예훈이 부산 용문당 회장 신분만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회장이라는 신분은 그 사람한테 단지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덤일 뿐이에요.”“그 사람의 진짜 정체는 아마 어르신도 들어봤을 거예요.”“경기도 김세자요!”“진주 이씨 가문의 이일메 큰 어르신도 그 사람을 건드렸다가 패배의 쓴맛만 봤어요.”“심지어 경기도 제일의 명문가의 모든 자원이 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어요.”“그런 사람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죠.”“게다가 용 어르신과 어르신께서 아무런 준비 없이 공격해서 큰 코만 다치게 된거예요.”김현민의 담담한 말투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장현준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가 김현민을 응시하며 약간 화가 난 듯이 말했다.“그럼 왜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얘기하지 않았어요?”“제가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제 말을 안 들으셨잖아요.”“제가 어르신한테 그 사람의 진짜 정체를 미리 말해줬다고 해도 어르신의 성격과 용어르신의 독단성을 감안했을 때 제 말을 들어주고 믿어줬을까요?”김현민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그에게 차근차근 미끼를 던졌다.“어르신과 용 어르신께서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합쳐서 세상 물정 모르는 그놈을 처리해 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분께서 미리 패배의 쓴맛을 맛보는 거예요.”“그래야 두 분께서 그런 놈을 상대하려면 아예 손을 쓰지 않거나 손을 쓴다면 바로 죽여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니깐요.”그 말을 들은 장현준의 표정이 바뀌었고 안색이 많이 누그러졌다.잠시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김 수장님은 날 위해서 나설
남윤지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곧 김현민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리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애초에 그 두 늙은이를 내보낸 건 단지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였잖아요.”“첫 번째 목적은 이 기회를 빌려 용문당이 김예훈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지 그 한계를 알아내기 위해서였고요.”“그리고 두 번째는 일본이 김예훈 측과의 싸움에서 패배돼서 이번에는 영국 제국의 힘을 빌려서 그놈을 죽이려고 했잖아요.”“이제 그 두 늙은이는 도련님이 예상했던 대로 쓸모가 없어졌고 마침 저희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잘된 거 아니에요?”김현민은 담담하게 말했다.“계획은 그렇긴 한데 안타깝게도 변수가 생겼어.”“어떤 사람들은 자기 주제도 모르고 아직도 자신이 권력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단 말이지.”김현민의 얼굴에 비웃음이 번졌다.“어떤 사람들이요?”남윤지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 문 앞에서 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코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 얼굴이 부어오른 장현준이 거실 문을 열고 김현민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의 얼굴은 끊임없이 일그러지면서 변화하는 동시에 원한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김 수장님, 김예훈 그놈 뭐예요?”“고작 용문당 회장 주제에!”“어떻게 감히 내 얼굴에 손을 대요!”“게다가 날 서양 놈들의 개라고까지 했어요!”“그놈을 당장 죽여버려요! 김 수장님, 내 원한을 꼭 갚아줘요!”“별거 아닌 놈이 감히 전임 총독의 얼굴을 때리다니!”“그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진주·밀양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어요?”“또 어떻게 영국 제국 황실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겠어요?”장현준은 자신과 김현민의 신분 차이를 잊은 채 붉게 부어오른 얼굴에는 증오와 사나움만 가득했다.이어서 장현준은 그의 부하들 앞으로 다가가서 그들의 얼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쓸모없는 것들! 이 쓸모없는 것들아!”“날 보호하지 않고 뭘 했던 거야?”“영국 제국의 퇴역 기사라면
김예훈은 생각하더니 또 말했다.“그리고 김현민이 일본, 영국과 결탁한 의혹이 있는 것과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큰 어르신의 생신날 김현민이 상속받으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주세요.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누군지 모르게 여러가지 버전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퍼뜨려 주세요. 김현민이 밖에 나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긴장감을 줘야죠. 맨날 집에서 음모와 계략을 연구하는 것도 정신상태에 좋지 않거든요.”김현민이라는 사람은 너무 계산적이고, 자기 보호에 강했다. 그런 그에게 짜증 날 대로 짜증 난 김예훈은 이렇게라도 그를 압박하고 괴롭혀 보기로 했다.그가 미쳐 날뛰기 시작해야 자기가 짜놓은 판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네. 알겠어요. 지금 바로 알아볼게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동씨 가문은 그래도 진주에서 어느 정도 힘이 있어서 이런 일은 쉽게 처리할 수 있거든요.”김예훈은 웃으면서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리했다.김현민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너무 의도적으로 계획하면 안 되었다. 너무 티 나게 하면 그가 눈치챌 수 있었다.오히려 이런 무심한 계획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있던 동하임은 갑자기 웃더니 그에게 다가가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도련님께서 저희 동씨 가문에 이렇게 잘해주시는데 마땅히 내놓을 것도 없고 해서 제 몸을 바치는 거 어떨까요?”농담처럼 보이지만 사실 큰 용기를 낸 것이다.김예훈만 원한다면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튈 것이 분명했다.“하하하.”김예훈은 웃음을 터뜨리며 오른손으로 동하임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하임 씨, 농담도 참. 아무리 그래도 저는 하임 씨 아버지의 친구이자 하임 씨의 삼촌이 되는 사람이에요. 이런 농담으로 저를 화나게 하면 제가 어떤 벌을 내릴지도 몰라요.”동하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도련님께서 이런 걸 좋아하셨어요? 그러면 삼촌, 저한테 어떤 벌을 주실 건데요?”김예훈은 갑자기 주제가 잘못된 것 같아 순
“그렇다면 덕망 높은 두 분의 끊임없는 호소 끝에 김현민은 반드시 전략을 바꿔야겠죠. 만약 도련님께서 상대가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멀리 놓고 봤을 때 저 두 사람은 김현민이 자신을 위해 분풀이를 해줄 수 없다고 생각하겠죠. 그렇다면 저 두 사람이 김현민의 마음을 흔들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다 단단한 고리에 작은 균열이 생길 수도 있어요. 만약 김현민이 오늘 일때문에 참지 못하고 직접 나선다면 계획이 급하게 진행되면서 그중에서 부족한 점이 보이겠죠. 어쩌면 도련님께서 이 기회를 이용해 그를 뿌리째 뽑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무튼 도련님은 이 건물에 들어선 순간부터 함정에 빠진 것이 틀림없어요.”동하임은 손에 들고 있던 수표를 김예훈에게 건넸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김예훈이 흥분한 나머지 일을 너무 크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까 아버지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조언을 듣고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김예훈의 행동이 막무가내로 보이지만 사실은 신중한 움직임이었고, 걸음마다 김현민의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비록 김예훈과 김현민이 아직 정식으로 붙지 않았지만, 신경전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현재 파악된 상황을 봤을 때 적어도 김현민은 김예훈에게서 그 어떠한 이득도 본 적이 없었다.이로써 동하임은 왜 아버지가 진주·밀양에서 아무런 기반도 없는 김예훈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였지만 안타깝게도...동하임은 김예훈이 미혼일 때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이때 김예훈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힐끔 쳐다보았다.비록 동태원의 조언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사람은 조금만 더 가르쳐주면 곧 큰 인물이 될 사람이었다.하지만 김예훈은 인정하지 않고 피식 웃을 뿐이다.“너무 과대평가하신 거 아니에요? 저는 그저 사람을 때렸을 뿐인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신 거 아니에요? 저를 너무 그렇게 과대평가하지 말아
잠시 후, 용현성과 장현준은 처참한 모습으로 이곳을 떠났다.동하임은 손에 든 2,000억 원의 수표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김 도련님, 이번 만남은 정말 실패네요. 아무쪼록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줄 알았는데 저들에게 본때를 보여줬냬요. 이 2,000억 원, 더 두 분이 여기저기 연락해서 겨우 모은 거예요.”동하임은 여전히 한숨이 나왔다.‘그렇게 거들먹거리더니 돈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어. 2,000억 원을 울며불며 여기저기서 빌려야 한다니.’김예훈은 그들에게 2,000억 원을 내놓으라고 한 것은 그들의 뺨을 때리는 것보다도 더 심했다.그들의 노후 자금마저 탈탈 턴 것과도 같았다.이로써 쌍방은 지금, 이 순간부터 더 이상 평화롭게 지낼 수가 없었다.“괜찮아요. 저희가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고 해도 저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었을 거예요. 어차피 저들 눈에는 제가 죽어야 마땅한 존재니까요.”김예훈은 다시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공진해가 보내온 자료를 확인했다.“소식에 따르면 용현성은 특별한 능력 없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어요. 암암리에 일본 쪽과 연락하는 것 같더라고요. 류서우가 초대하지 않았더라도 일본인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기 위해 무조건 문제를 일으키러 왔을 거예요. 장현준은 원래부터 식민지 시대 때 영국에서 기르던 개였을 뿐이에요. 평생 무릎 꿇고 개처럼 살더니 외국인이 하느님인 줄 아나 봐요. 이런 사람은 아무리 체면을 세워주고, 또 기회를 줘봤자 절대 만족하지 않을 거예요. 아무튼 제가 회장 패쪽을 내놓지 않고, 또 그들의 요구에 따라 일본에 가서 사죄하지 않는 한 둘 중 하나는 죽는 운명이었다고요.”김예훈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계속해서 말했다.“어차피 죽고 못 살 판에 2,000억 원을 배상하라고 한 것도 많이 봐준 거예요. 오늘 이렇게 많은 눈이 지켜보지 않았다면 저 사람들 오늘 이곳을 벗어나지도 못했어요.”김예훈의 담담한 말투에는 살기가 가득했다.그에게는 외국과 은밀히 연락하고 국민을 해치려는 비겁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