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이런 식으로 아이를 설득했다. 지윤은 나이가 어리지만 도윤만큼 고집스럽지 않았다.아이는 모든 걸 지아 중심으로 생각했다.외모는 도윤과 매우 닮았지만, 성격만은 지아를 닮아 배려심이 넘쳤다.하지만 늘 자기 이익대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더 힘들고 마음 아픈 일이 많았다. 이날 밤, 아이는 지아의 품에 꼭 안겨 작은 손으로 지아의 잠옷 옷깃을 불안하게 움켜쥐었다.아이의 얼굴에 난 상처를 살피던 지아는 심장이 저릿했다.이 상처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앞으로 지아가 걸어갈 길 역시 가시밭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도 아이를 떠나야 하는 지아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하지만 지아가 딱 한 가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건, 지금이나 앞으로도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도윤도 지윤도 줄곧 자신을 지켜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자칫 남에게 잡혔다가 이대로 죽을 수도 있었다.자신에게 남은 삶은 단 하나뿐인데 강해지지 않으면 미셸 같은 사람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때릴 수 있을 것이다.도윤의 힘이 줄어들면 지아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게 된다!게다가 도윤은 자신의 정체까지 드러냈기 때문에 더 이상 도윤과 함께 있는 것도 안전하지 않았다.지아는 도윤과의 결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에 눈앞의 일만 바라볼 수 없었고, 자신의 미래뿐만 아니라 여러 아이들도 생각해야 했다.아이가 잠에 들자 도윤이 조용히 다가왔고, 도윤의 단단한 가슴이 지아의 등에 닿자 지아는 순식간에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뭐 하는 거야”지아는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고 도윤은 팔로 지아의 허리를 감싸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겁내지 마, 그냥 안고만 잘게.”지아는 도윤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하지만 도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지아의 허리를 안은 채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내일 떠날 생각이야?”지아가 낮게 대답했다.“어차피 붙잡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도윤은 한숨을 쉬었다.“난 상처 회복을 위해 한동안
지아가 이마에 입을 맞춘 뒤 떠났고, 문이 살며시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부자는 조용히 눈을 떴다.지윤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아빠, 정말 못 붙잡아요?”“미안해.”도윤의 눈은 안타까운 기색으로 가득 찼다.지아가 방 밖으로 나오자마자 바깥의 찬바람이 얼굴을 칼로 찌르는 듯 얼굴 전체가 따갑고 아팠다.도윤의 말대로 누군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사모님, 비행기가 준비됐으니 이제 가셔도 돼요.”“고마워요.”“근데 활주로가 좀 멀어서 힘드시겠지만 좀 걸으셔야 해요.”“괜찮아요.”지아가 손을 내저었다.지아는 두꺼운 패딩으로 몸을 감싸고 모자 속에 얼굴 전체를 파묻었다.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것 같았지만 감히 뒤돌아보지 못했다.한번 뒤돌면 다시는 앞으로 걸어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지아는 뒤 돌아보지 말고 계속 앞으로 걸어가자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외쳤다.도윤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커튼 뒤로 숨었고,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지아의 옷깃을 잡으려는 듯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아빠, 엄마 보내기 싫어요. 날 버리면 어떡해요?”“그럴 리가, 엄마가 널 그렇게 사랑하는데 어떻게 널 버리겠어? 그저 잠깐 우리와 떨어져 지내는 것뿐이야.”지윤이 흐느꼈다.“아빠는 엄마 보고 싶지 않아요?”“보고 싶지, 미친 듯이 보고 싶지. 차라리 네 엄마를 가둬두고 평생 곁에 두고 싶지만...”도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빠는 이미 한 번 잘못했고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아. 네 엄마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었어. 과거에는 아빠가 엄마를 억지로 붙잡아 두면서 엄마의 꿈과 행복, 미래를 빼앗아 갔어. 엄마는 새장 속의 새였는데 이제 아빠가 새장을 열어 더 넓은 하늘로 날게 해주는 거야.”“그럼 아빠는 엄마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서 새 삼촌과 가정을 꾸리는 게 두렵지 않아요?”도윤이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강욱의 모습으로 지아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삶과 죽음을 겪었고 지아가 가장 약할 때 곁을 지켜
“엄마, 가지 마세요! 기다려요!”밤새 내린 눈이 두껍게 쌓여 있었고, 지윤이 눈밭에서 겨우 일어났을 때 기내 문이 닫히고 헬기 프로펠러가 올라가고 있었다.지윤은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어젯밤 지아에게 잘 있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이별의 순간이 오자 본능 외에는 이성적인 판단은 남아 있지 않았다.줄곧 엄마가 곁에 없었던 아이는 온통 지아에 대한 걱정만이 얼굴에 가득했다.“엄마 가지 마요. 이제 겨우 만났는데 그냥 여기 있어 줘요, 제발!”작은 몸이 또다시 눈 속으로 쓰러졌고 지윤은 눈물을 흘리며 계속 외쳤다.하지만 오늘은 바람이 너무 심한 데다 프로펠러 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리는데 지아에게 아이의 목소리가 닿을 리 없었다.“엄마, 보고 싶어요. 매일 보고 싶었는데 옆에 있으면 안 돼요? 얌전히 말 잘 들을게요. 거짓말했어요. 사실은 엄마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 매일 엄마 보고 싶었는데. 훈련도 싫고 도련님 되는 것도 싫어요. 난 그냥 엄마 아들이 되고 싶은데, 제발 한번만...”지윤은 천천히 땅에서 일어나다가 다시 털썩 주저앉아서 목이 터져라 울었다.오랫동안 교관에게 훈련을 받아온 아이는 항상 강인한 모습을 보였고, 피곤하고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무슨 훈련이든 해냈다.그런 지윤이 처음으로 사탕 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그런데 고작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그러는 게 또 어때서?“착하지, 울지 마.”헬리콥터는 지아와 아이의 모든 바람을 싣고 이륙했다.도윤은 눈 속에서 아이를 안아 들고 몸에 묻은 눈을 털어주고는 자신의 군복을 벗어 지윤을 감싸안아 주었다.교관은 도윤에게 거수경례를 했고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일단 이틀만 쉬게 해.”“네, 보스.”아빠의 따뜻한 체온에 지윤이는 아빠 품에 안겨 주체할 수 없이 울었다.“아빠, 난 생각만큼 강하지 않아요.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이 그냥 엄마가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난 그냥 평범한 아이가 되고 싶어요.”.“착하지, 울지 마. 넌 착한 아이야.”“착한 아이
지아는 비행기에서 도윤이 눈 속에서 지윤이를 안는 장면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정말 나쁜 엄마였다.이제 겨우 만났는데 결국 다시 아이의 손을 놓아야 했으니, 지금 지윤의 마음은 얼마나 슬플까?지아는 유리창에 손을 얹은 채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지아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눈 속 깊은 곳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사라지는 부자의 모습이었다.이렇게 헤어지면 언제 다시 아들을 만날 수 있을까.비행기는 섬을 향해 날아갔고 지아는 한참이 지나서야 아들과의 이별을 극복했다.착륙하기도 전에 민아의 등 뒤로 소망이 옷깃을 붙잡고 있었고, 앞에 있는 해경이와 독수리 병아리 잡기 놀이를 하는 모습에 들리지 않아도 그들이 무척 신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헬리콥터 소리가 들리자 민아도 움직임을 멈추고 아이와 함께 지아를 마중 나왔다.일주일 동안 만나지 못했고 세찬이 없어서인지 기분이 한결 나아진 민아는 안색도 전처럼 창백하지 않고 좋아 보였다.“지아야.”“엄마!”두 아이가 새끼 고양이처럼 지아를 에워쌌다. 두 아이를 다시 만난 사실에 기뻐해야 했지만 지아는 두 아이의 얼굴을 보며 지윤을 떠올렸다.지윤이 홀로 그들의 짐을 짊어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왜 기분이 안 좋아? 개도윤이 또 괴롭혔어?”민아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당장이라도 따지러 갈 기세였다.“아니, 말하자면 길어. 나중에 말해줄게.”지아는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추스르며 말했다. 이미 큰 잘못을 하고 왔으니 두 아이에게까지 상처를 줄 수 없었다.“이모 말씀 잘 들었어?”“네!”새처럼 입을 모아 재잘거리는 두 아이는 무척 귀여웠다.민아가 웃었다.“앞으로는 이모라고 부르지 마. 몰라 이젠, 그냥 내 아들딸 삼을래. 앞으로는 엄마라고 불러주면 고맙겠어!”“그래, 애들 이뻐해 주는 사람 많으면 나야 좋지. 민아야, 나 배고파 죽겠어.”“오늘 너 올 줄 알고 주방에 다 준비해달라고 했어. 개도윤이 나쁘긴 해도 너한테는 정말 잘해주긴 하나 봐. 이 섬엔 정말 모든 게 다 있어.
도윤은 고집불통인 과거 자신과 꼭 닮은 세찬을 보며 그의 순진함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아이가 된다. 시련과 고난을 겪어야 새로운 인생 경험이 생기는 법이니까.이런 경험은 옆에서 말해줘도 들리지 않으니 본인이 직접 겪어야 했다.도윤은 오만한 세찬을 비웃지 않았다. 신은 공평하니 예정된 일은 반드시 오기 때문이었다.게다가 도윤은 세찬이 단순한 애인이 아니라 민아를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걸 이미 알아차렸다.괜찮다, 어차피 사랑의 힘이 다 바꿀 테니까.세찬은 말을 하면서 다시 카메라를 쳐다보았고, 영상에는 해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민아의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전보다 훨씬 더 정서적으로 안정된 모습이었다.이번에 도윤의 제안이 옳았던 것 같다. 민아에겐 친구와 아이들의 치유가 필요했다.“요즘 집안이 시끄러워서 3개월만 머물게 했다가 다시 데리러 올 거야.”이번 민아의 유산으로 세찬은 화가 나서 민아를 위해 미친 짓을 했고, 약혼 상대는 지금까지도 중환자실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상대 역시 돈 있고 권력 있는 재벌 가문이라 고작 애인 때문에 큰 짓을 벌인 세찬의 입지가 난처해졌다.결혼이 무산되고 두 가문 사이에 원한이 생기자 강씨 어르신도 크게 동요하며 그 역시 애인 때문에 세찬이 지나친 화를 불러왔다는 생각에 이번 기회에 민아도 함께 처리할 생각이었다.하여 이번 도윤의 제안에 세찬이 동의한 것이다.“3개월?”도윤이 피식 웃었다.“네가 생각보다 그 여자를 더 사랑하는데 다만 그걸 깨닫지 못하는 건 아니야?”이렇게 큰일이 생겼으니 3개월은 무슨, 3년이 지나도 강씨 가문이 잠잠할지 미지수였다.“네가 그 아가씨한테 극악무도하게 굴어 남은 인생마저 망쳐버렸다고 들었는데.”“본인이 자초한 거지.”그 여자를 언급하는 세찬의 목소리에서 잔인한 냉기가 느껴졌다.“넌 설마 평생 형수님을 섬에 둘 생각이야?”“말했잖아, 이번엔 자유를 줄 거라고.”세찬이 알고 있는 도윤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지아와 섬 의사들의 치료를 받
앞으로 5일만 있으면 떠난다는 말에 민아는 미래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펼쳤다.“민아야, 앞으로의 계획이 뭐야?”“과거에 학교 다닐 때는 항상 돈을 많이 벌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밤낮으로 일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지만 더 중요한 것을 잃었어. 난 이제 평범한 나라에서 봉사 활동이나 하면서 가난한 아이들을 돕고 싶어. 그러다 질리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카페랑 꽃집을 열거나 세계 여행을 하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 거야.”“좋아.”민아는 지아를 돌아보았다.“넌?”“난 더 강해질 거야. 의학 공부도 계속하고 계속 선생님 눈에 자랑스러운 학생이 될 거야.”지아의 눈빛이 확고했다.“잘됐네.”민아는 한숨을 쉬었다.“고등학교 3학년 때 교내 나무 밑에 앉아 미래를 기대하던 때가 생각나. 나중에 우리 인생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애초에 유학을 가는 게 나았을지도 몰라.”“민아야, 도망쳐봐야 소용없어. 때론 경험해 봐야만 아는 게 있어.”“하긴.”민아는 나무 그늘에서 두 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바닷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세어보았다. 세찬과 모든 인연을 영원히 끊을 때까지 아직 5일이 남아있었다.하지만 사흘째 되던 날 일이 생겼다.지난 이틀 동안 민아는 잔뜩 들떠 있었고 심지어 폴짝폴짝 뛰면서 길가에 있는 잡초에도 인사를 건넸다.아마도 세찬은 민아가 너무 행복해하는 모습을 못 견뎠는지 사흘째 저녁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때 민아는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는데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왔지만 개의치 않았다.그동안 이곳에 지내면서 열흘에 한 번씩 섬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가져다주는 걸 알고 있었다.섬의 일꾼들이 돌아오는 줄 알았던 민아는 상관하지 않고 나무 밑에 서서 천으로 눈을 가리고 숫자를 세었다.“여덟, 아홉, 열, 꼬마들 잘 숨었어? 늑대가 토끼 잡으러 간다!”사람이 너무 적기 때문에 민아는 그 자리에서 무작위로 일꾼 몇 명을 붙잡아 숨바꼭질에 합류시켰다.고작 몇 걸음만에 단단한 누군가의 품에 부딪혔다.
그 목소리에 민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고, 민아는 자신의 얼굴에서 눈가리개를 격렬하게 벗었다.민아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세찬이었다!민아는 번개라도 맞은 듯 말을 더듬었다.“여긴 왜 왔어요?”세찬의 입꼬리가 미소를 머금고 말려 올라갔다.“난 매일 밤낮으로 김 비서 보고 싶었는데, 섬에서 너무 잘 지내서 내가 누군지도 잊었나?”일꾼들은 모두 눈치껏 자리를 떴고, 두 아이는 아직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눈을 크게 깜빡이며 세찬을 쳐다보았다.그 천진난만한 눈빛에 뭔가 하고 싶었던 세찬은 민아를 그냥 놓아주었다.“해경이랑 소망이 맞지?”무슨 생각을 하는지 두 아이는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소망이가 불렀다.“아빠?”세찬은 기뻐하며 서둘러 무릎을 꿇고 아이를 안아주었다.마치 올챙이가 어미를 찾는 것 같았다.“꼬마야, 난 네 아빠가 아니야. 사람들이 들으면 오해하겠다.”소망이의 눈에 실망감이 스쳐 갔다. ‘아빠는 어디 갔을까?’세찬은 소망을 안고 한참을 놀아주었고 눈가에는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다.민아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오래 전 세찬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당시 민아는 천진난만하게 아이들을 좋아하냐고 물었고 세찬의 대답은 단호했다.“안 좋아해. 짜증 나.”그러고는 들고 있던 잡지를 내려놓고 자신을 바라보았다.“김 비서, 당신은 똑똑하니까 멍청한 짓은 안 할 거야, 그렇지?”세찬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 속에는 위협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아이를 좋아하지 않으니 애인이 낳은 아이는 더더욱 싫어할 것이다.앞으로 세찬의 자녀는 본처의 뱃속에서만 태어날 테니까.그때까지도 깊게 빠지지 않았던 민아도 그 점을 잘 알고 2년 동안 잘 버텼다.그날 밤의 사고가 있기 전까지. 민아도 자신이 임신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아이가 생기자 생각도 바뀌었다.그런데 지금 와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민아는 세찬이 아이와 노는 사이 미련 없이 뒤돌아 가버렸다.세찬만 보면 자신의
민아는 입을 삐죽거렸다.“그런 농담 하나도 재미없어. 지아야, 어떡해. 그 사람이 오면 우리 계획은...”세찬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무슨 계획? 김 비서, 나 몰래 뒤에서 나쁜 짓 하는 거야?”민아는 하마터면 들킬 뻔하자 자신의 뺨을 때리고 싶었다.그나마 지아가 침착하게 마스크를 벗고 수술 도구를 내려놓은 다음 수술복을 벗고 방 밖으로 나왔다.“아무것도 아닙니다. 민아가 말한 건 그쪽이 잘 때 칼로 찔러서 죽일지, 설사약을 먹여서 죽일지였어요. 그런 계획은 하루에도 백 개는 생각해 내거든요.”민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아에게 눈짓했다.‘역시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지아는 차분하고 절제된 성격, 민아는 솔직하고 거침없는 성격이라 서로 보완하기 딱 좋았다.세찬은 가볍게 웃었다.“장난이 심하네. 역시 형수님께서 현명하시네요.”지아는 담담하게 말했다.“강세찬 씨도 저희가 이미 이혼했다는 걸 아실 텐데 그런 호칭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네요.”“미안합니다, 소지아 씨.”그제야 세찬은 도윤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민아는 화가 나면 달려들어 물고 얼굴을 할퀴는데 지아는 말다툼은커녕 차갑게 쳐다보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강세찬 씨는 섬에 왜 오셨죠? 민아가 이제 겨우 이겨내고 있는데 지금 그쪽을 만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민아는 세찬을 마주하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고,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만 소란을 피웠으며, 평온할 때는 습관적으로 멀리 피했고 함부로 쏘아붙이지도 않았다.지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민아는 당장에 속으로 감탄을 뱉었다.‘역시 지아야!’“흠, 김 비서 만나러 왔습니다.”지아는 무심코 머리 위의 감시카메라를 가리켰다.“이 섬에는 카메라가 많고 강세찬 씨도 적지 않게 봤을 텐데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사람 불쾌하게 하시는 거죠? 솔직히 민아와 미래를 꿈꾸는 것도 아니면서 왜 서로 시간만 낭비하시는 건가요? 본인도 불쾌하고 남도 불행할 뿐인데.”민아는 일방적으로 지아가 자신의 변호인이라고 여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