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도 이런 말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평생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증오했던 그 사람인데, 결국 자신이 곤경에 처하게 되자 그 사람 명분으로 위험에서 벗어나다니.“못 믿겠으면 인터넷에서 찾아봐. 우리만 풀어주면 오늘 일은 없었던 일로 하고 추궁하지 않을게.”조이 주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누님, 이 여자 정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건드리지 말죠. 저런 부자들 함부로 건드렸다가 발 빼기 쉽지 않아요.”“그래요. 복수하는데 인생까지 걸 필요는 없죠.”조이는 몇몇 사람들을 차갑게 노려보았다.“닥쳐, 이 겁쟁이들아. 이도윤의 전처라는 말을 믿어? 그럼 나는 옥황상제의 사생 딸이다.”입으로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조이의 손은 멈추지 않고 곧바로 인터넷에 검색했다.이도윤, 그는 확실히 기혼으로 등록되어 있었다.하지만 이혼 소식도, 전처 소식도, 심지어 현재 아내의 사진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이 년이 감히 나한테 거짓말을 해! 이혼한 적도 없는데 전처는 무슨, 네가 직접 봐!”‘그럴 리가.’지아가 전에 검색했을 땐 백채원의 사진과 정보는 지워지고 배우자 이름에 자신이 등록되어 있었다.그런데 왜 지금은 바뀐 걸까? 기혼이라는 것만 적혀 있을 뿐 이름도 사진도 없었다.지아는 자신의 거짓된 죽음 이후로 국내 각 언론에서 저마다 어그로를 끄는 탓에 화가 난 도윤이 모든 플랫폼과 언론을 정리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과거를 완전히 지우고 결혼한 상태만 남겼다.도윤의 마음속 아내는 줄곧 지아 한 명이었으니까.이 행동이 지아에게 이런 파멸을 가져올 줄이야.“아니야. 내가 진짜 그 사람 전처 맞아. 증명할 수 있어...”“이게 아직도 날 속이려고 하네.”조이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래, 당신이 전처라고 쳐. 이미 이혼한 마당에 누가 당신을 신경 써? 마지막으로 물을게. 이 약, 당신이 마실래, 딸한테 먹일까?”“안 돼!”지아가 소리쳤다.“내가 마실 테니 아이는 놔둬, 다치게 하지 말고.”“진작 그럴 것이지.”지아는
살아있는 사람은 당연히 딱딱한 물체보다 더 환영받았고, 손님들은 일찌감치 번호를 받고 입장한 뒤 오늘은 어떤 사냥감이 있나 기대 중이었다.오프닝에 앞서 조이는 누군가 제재한다는 연락을 받았고, 당연히 누구인지도 잘 알았다.“생각보다 빨리 오네. 계속해.”“누님, 상대가 만만치 않습니다. 왕 매니저도 굽신거릴 정도입니다. 이번에 보스도 배에 안 계시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저희는 감당 못합니다.”조이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떤 대단한 상대라도 배에 탔으면 우리 규칙에 따라야 해. 잊지 마, 여긴 우리 구역이야. 하느님이 와도 어쩔 수가 없으니 배에 탄 승객들이 돈을 쓰는 거야. 그 규칙이 깨지면 앞으로 누가 오겠어?”“하지만...”조이는 짜증 난 듯 손을 내저었다.“말해. 사람 얻고 싶으면 능력을 보여주라고.”“누님, 그 여자가 이도윤을 언급했는데 이도윤이 직접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멍청아, 뉴스 안 봐? 이도윤은 지금 아프리카에서 반년 넘게 지내고 있어. 그 남자가 무슨 악마야, 천사야? 날개 달려서 여기로 날아오게.”조이가 콧방귀를 뀌었다.“허풍 떠는 걸 보아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봐야겠어.”“누님, 아무래도 이번 일 마음에 걸립니다. 저 두 사람 배에 탄 게 사실은...”“됐어, 헛소리 그만하고 곧 시작할 텐데 가서 준비나 해.”조이가 이런 상황을 만든 이유는 전부 도윤을 후회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젠 눈에 뵈는 게 없었던 조이는 그날 밤 당한 굴욕만 생각하면 증오에 이가 갈렸다.자기에게 약을 그렇게 먹여놓고 풀 곳도 없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했다. 하마터면 죽는 줄 알았던 조이는 그날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1분 1초 개자식을 떠올릴 때마다 천배, 만 배로 갚아주리라 다짐했다.도윤도 이 소식을 듣고 가만 둘 리 없었다.“보스, 제가 알아보니 그 여자 이 배에서 2인자로 불린답니다. 사장은 오늘 없고 그 여자 마음대로 한다는데, 아무래도 보스를 노리는 것 같습니다. 배에 저희 쪽 사람이
예로부터 가난한 사람은 부자와 싸우지 않고 부자는 나라와 싸우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이씨 가문이 백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사업적인 배경 때문은 아니었다. 윗선의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현재의 지위에 도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아무리 부자일지라도 이런 힘이 없으면 남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도윤이 이번에 움직이면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건드리는 게 될 거고, 그렇다면 본인의 앞날에도, 가문에게도 큰 위기를 불러오는 격이라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그런데 아내와 자식이 다른 사람 손에서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도윤은 달리 방법이 없었다.이것만이 지아를 구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유일한 방법이었다.도윤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난 이미 돌이킬 수 없어.”하빈은 진봉이나 진환과 달리 뒤에 숨어서 도윤을 도와주는 역할이었고, 쉽게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그런 하빈이 나타났다는 건 도윤의 앞날이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보스...”“배에 있는 부하들에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라고 명령해.”하빈은 한쪽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네.”애초에 이 길에 들어섰을 때부터 많은 세력들과 맞붙기로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어쩌면 그동안 그의 편에 섰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공격하는 날카로운 무기가 될지도 모른다.이 세상에는 언제나 이익만이 최우선이었으니까.가장 좋은 해결책은 배후의 보스가 그들을 풀어주는 것이었지만, 보스는 그곳에 없었고 연락이 닿지 않았다.조이는 개인적인 원한을 대외적인 일로 풀 생각이었다.이것이 큰 문제가 되면 여러 세력의 저울이 기울어지거나 무너질 것이고, 도윤도 공공연한 표적이 될 것이다.일단 자신이 움직이면 어떤 결말을 초래하는지 알면서도 지아를 위해서라면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그게 도윤 자신의 앞길을 막는 짓이라도.도윤은 다시 가면을 썼다.“가자.”그 시각 무대로 향하는 지아를 바라보던 조이의 눈에서 광기 어린 표정이 번뜩였다.“임강욱은 아직 안 왔어?”왕 매니저는 고개
도윤은 사람들 틈에 섞여 경매장에 들어섰다.경매가 시작되기도 전에 시끄럽고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늘 밤 멋진 미녀가 나온다고 들었어.”“나도 들었어, 좋은 물건이라고.”“지난 며칠 동안 심심했는데, 내리기 전에 한판 그게 노는 게 어떤가?”행사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추악하고 더러운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도윤이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누군가 다가왔다.“임 선생님?”다리를 꼬고 앉은 도윤은 거물의 아우라가 대단했다. 매일 지아 앞에서 공손하게 굽신거리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맞습니다.”남자의 기운에 원한에 찬 귀신들마저 물러갈 지경이었다.“선생님께 전하라는 편지입니다.”편지를 열어보니 역시나 같은 글씨체로 적혀 있었다. 종이를 펼쳤을 때 하빈은 도윤의 손에 불거진 핏줄을 발견했다. 화가 난 게 틀림없었다.“보스가 말씀하시길 거부하시면 두 모녀가 남들의 장난감이 되는 걸 보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장난감이라는 단어가 도윤을 무자비하게 자극했고, 그는 당장에 편지를 산산조각 냈다.“가서 몸 깨끗이 씻으라고 전해.”“동의하시는 겁니까?”도윤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죽기를 기다리라고.”이 말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면 농담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도윤의 입에서 나온 이상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도윤은 이미 미쳐버리기 직전이었고, 지아를 위해서라면 다른 건 안중에도 없었다.지아만 넘겨받으면 모두가 무사할 수 있었다.하빈은 마음속으로 제발 일이 커지지 않기를 남몰래 기도했다.도윤의 재력으로 지아와 소망이를 모두 넘겨받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상대가 일부러 방해를 해서 걷잡을 수 없이 일을 크게 만들까 걱정이었다.만약 수면 위로 드러난 세력을 움직이면 도윤은 권력 남용자로 낙인찍히게 된다.그 뒤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도윤의 말이 전해졌을 때 조이는 이미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이 말을 들은 조이는 립스틱을 거울에 던
도윤의 손은 의자 팔걸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고, 지아를 곁에서 잃어버린 시간 동안 지아와 아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이 되었다.비록 물건을 올려보내기 전에 청결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규칙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도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진행자가 첫 번째 상품을 소개할 거라는 말을 듣고 심장이 미친 듯이 펄떡였지만 지아와는 아무 상관이 없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역시나 도윤의 생각대로 조이는 지아를 마지막에 보낼 것 같았다.팔걸이를 움켜쥔 도윤의 손에 더더욱 힘이 들어갔다.시간이 1분 1초 지날수록 미리 엄청난 물건이 온다는 예고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모두들 앞에서는 크게 흥분하지 않고 피날레에 집중했다.도중에 하빈은 도윤에게 물을 여러 번 건넸지만 도윤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마지막 피날레가 되자 조이가 직접 무대에 올랐다.조이는 타이트한 빨간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갔다.그런 관능적인 모습에 남자들은 눈을 크게 떴고 몇몇은 아래에서 휘파람을 불었다.조이의 얼굴은 가면을 쓰고 악한 표정을 숨기고 있었다.“밤새워 기다리셨으니 다들 궁금하실 텐데, 오늘 밤의 피날레를 바로 공개하겠습니다.”조이가 박수를 치자 그녀의 부하들은 검은색 커튼으로 덮인 거대한 물건 두 개를 밀고 들어왔다.도윤의 가슴이 조여왔다.“질질 끌지 말고 얼른 보여줘.”“그래, 하루 종일 저것만 기다렸다고. 빨리 물건 올려.”조이의 시선이 가면을 훑어보던 중 도윤의 모습이 살짝 보였다.남자는 사람들 한가운데 앉았고, 얼굴 전체를 가면으로 가려서 얼굴 표정을 볼 수 없었다.다리를 꼬고 팔걸이에 손을 얹은 채 이겼다는 확신에 가득 차 있는 모습인 것 같았다.멀리서 봐도 도윤의 몸에서 나오는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왠지 모르게 조이는 지금 눈앞의 남자가 신비한 거물의 아우라를 풍기며 자신이 상상하던 별 볼 일 없는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미 상황은 오래전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조이는 보스가 배에 없지만 배
도윤은 심호흡을 하고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켰다.모녀는 화려하고 빈티지하며 섬세한 긴 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은색 체인과 어우러져 특별한 아름다움을 자아냈다.가리지 않은 소망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커다란 스크린에 드러났다.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천사 같은 얼굴에 매료되었는지 모른다.약을 먹지 않은 아이의 큰 눈이 맑고 또렷했다.머리에는 크리스털과 깃털로 장식한 헤어 액세서리로 이국적인 공주처럼 꾸몄다.천진난만한 눈망울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는 듯 울지도 않으며 마치 늑대 굴에 들어온 호기심 많은 사슴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분홍빛이 도는 붉은 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었고 도윤은 스크린을 통해 아이의 입 모양을 보았다.“엄마, 삼촌.”도윤의 손은 이미 무기를 만지고 있었고, 지금 이 순간 그는 즉시 무기를 뽑아 들고 조이를 공격하고 싶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미 예쁜 어린 소녀 때문에 들끓고 있었다.심지어 이미 컬렉션에 넣을 계획을 세우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고, 사서 데리고 가 몇 년 더 키워 애인으로 만들 거라고 생각하는 변태적인 사람들도 많았다.게다가 일부 사람들은 어린 소녀가 너무 예뻐서 엄마는 더 예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지아는 소망처럼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었고, 철창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도윤은 망할 자식이 지아에게 약물을 사용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지아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다.조이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었다.“과장 하나도 보태지 않고 이 여자는 제가 봤던 사람 중 가장 아름다웠어요! 시공간을 넘어 이 땅에 도착한 요정 같죠. 그러니 오늘은 색다르게 놀아볼까 합니다. 경매를 시작하기 전 다들 이 여자의 가면을 벗겨보고 싶지 않나요?”다들 의견이 분분했고 심지어 조이가 지나치게 밑밥을 깐다고 욕설을 퍼부었다.욕설은 차치하고서라도 지아의 이런 전략은 모두의 흥미를 자극했다.아이가 이렇게 예쁘니 여자는 얼마나 예쁠지 다들 상상이
조이는 도윤이 분노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도윤은 분명 지아가 가면을 벗고 다른 남자들이 지아의 얼굴을 보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도윤이 돈을 내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지불해야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는 공개를 위한 첫 단계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2억은 기본 가격이자 조이가 도윤의 경제력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이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건 단 한 번의 키스였고, 뒤로 갈수록 비용은 적지 않은 금액일 텐데 도윤이 무슨 수로 돈을 꺼내겠나?하지만 뒤의 경매를 위해 그 돈을 아꼈다가 지아는 다른 남자와 키스할 것이다.도윤이 무엇을 선택하든 조이는 그를 골탕 먹일 생각이었다.하지만 조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윤이 난 놈이란 사실은 간과했다. 도윤에게 사랑이 부족하다 할지언정 돈이 부족하단 말은 못 한다.이씨 가문은 백 년의 가업을 이어온 데다 어릴 적부터 사업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도윤의 집안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재력가 집안이었다.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들이 돈을 다 합친다 해도 도윤은 감당할 수 있었다.단순히 경매는 두려울 게 없었지만 도윤은 저 여자가 무슨 수작이라도 부려 자신에게 방해 공작을 할까 봐 걱정이었다.2억부터 시작한 가격은 자리에 있는 90% 사람들을 거르고 시작했다.배에 탑승한 사람들은 꽤 부유하지만 얻을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키스를 사기 위해 멍청하게 2억이나 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돈으로 사면 얼굴도 볼 수 있었기에 다들 2라운드 경매를 기다리고 있었다.당연히 10%의 재벌들은 돈을 마구 흩뿌리고 있었다.“2억 2천만 원.”“2억 4천만 원.”입찰가가 2천만 원씩 올라갈 때마다 지아의 의식은 점점 흐려졌다. 처음에는 소망이 무사한 걸 보고 안도했지만 지아는 곧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달았다.‘임강욱도 왔을까?’약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모두 가면을 쓰고 있는 데다 약물의 영향으로 잘 볼 수 없었고 시야를 집중하기가 어려웠다.“엄마.”딸이 지아를 불렀고 지아는 애
이 바닥에서 방탕하게 놀기로 유명한 사람이었고, 하씨 가문의 힘도 있다 보니 그와 경쟁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도윤은 하씨 가문과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일이 커지면 하씨 가문의 노인은 그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둘만 계속해서 입찰하는 가운데 금액이 8억까지 올라갔다.하건휘도 좀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자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도대체 어떤 멍청한 자식이 나랑 해보자는 거야?”“도련님, 저희가 확인했지만 상대방 정체가 비밀리에 감춰져 있어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도련님이 가격을 부를 때마다 곧바로 따라붙는 걸 보아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 같은데, 나중을 위해 이쯤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하건휘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그래, 나도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저 여자가 8억의 가치가 있는지 두고 보자고. 억울해 펄쩍 뛰진 않을까 걱정이네.”결국 최고가 8억에 낙찰되었고, 모두들 대체 어떤 놈이 키스 한 번에 8억을 썼는지 궁금했다.한편으로는 그만큼의 돈을 꺼낼 수 있는지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는 가운데 남자는 손으로 수표 한 장을 휙 던졌다.조이는 무표정한 도윤을 흘겨보며 역시나 자기가 생각한 대로 8억은커녕 1억도 꺼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확신했다.그렇다면 오늘 자기 여자가 돈 있는 사람에게 능욕당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쯤 그날 밤 자신을 거절한 것을 후회하고 있진 않을까 궁금했다.‘그때 그렇게 모질게 굴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하진 않을 텐데.’전부 그의 잘못이다!지아는 멍한 상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무대에 올라온 낯선 남자를 바라보았다.나른한 몸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고, 움직이면서 몸에 두른 은색 체인에서도 선명한 울림소리가 났다.“안 돼, 오지 마!”남자는 열쇠를 가지고 천천히 잠긴 자물쇠를 열었다.철창은 남자의 키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약간만 허리를 굽히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컸다.관중들의 기대 속에 그 남자는 지아에게 다가와 지아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지아는 멍하니 서 있다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진봉을 바라보며 물었다.“성형?” “예, 성형수술이요.”지아는 그제야 소시월이 왜 자신과 닮았는지, 혹시 소임호와 관련 있는 사람인지 의심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이제야 모든 것이 설명되었으니 말이다. 지아는 손에 든 서류를 훑어보았다.소시월은 13살에 처음 성형수술을 했고, 이후 매년 한 가지씩 성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게다가 20대 중반 이후로는 유지와 보수를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그 시절 소시월은 기숙 학교에 다녔기에, 사람들은 반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가 성장하며 부모를 닮아간다고 생각했을 뿐, 의술의 힘으로 얼굴을 바꿨다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아마 그들이 당시에 지아를 해치지 않은 이유도 그녀의 얼굴을 복제하려 했기 때문일 터.그 후, 지아가 쓸모없어지자 암살 계획을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지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 가짜 얼굴을 한 꺼풀씩 다 벗겨내 주겠어!”“사모님, 만약 그 여자가 사모님을 계속 암살하려던 배후라면, 그 여자의 등에는 분명히 총상이 있을 겁니다. 그날 저희가 사람들을 데리고 갔을 때, 그 여자는 도망치면서 총을 한 발 맞았었죠.” “당장 알아봐!”지아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는데,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생지옥 같은 나날들이 떠오르는 듯했다.비록 도윤이 한때 지아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결국 그 모든 고통은 누군가가 뒤에서 지아의 삶을 철저히 망가뜨린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소시월은 내 자리를 차지하고, 내가 누려야 할 가족의 사랑과 따듯함을 즐겼어. 그것도 모자라서 나를 지옥 속으로 처참히 몰아넣었다고!’지아의 분노는 억누를 수 없을 정도였다. “사모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반드시 모든 진실을 밝혀내겠습니다.” “그 여자를 감시할 사람을 찾아. 최근 움직임이 많아졌으니,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 최대한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해!”“예.”지아는 머리를 짚으며
안타깝게도 지아가 이미 진실을 알아낸 상태였기에, 장민호의 소식은 늦은 셈이었다.“지금 어디에 계세요?”지아가 급히 물었다.‘민호 씨가 이 일에 연루되었는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 [Z국에 있어요. 최근 소씨 가문에 많은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 소식을 알아내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틈을 타서 지아 씨에게 위협이 되는 소시월을 제거할 테니까요.]지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지아는 처음에 장민호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자신의 의도를 눈치챘을까 봐 걱정했지만, 장민호는 아직 그녀가 Z국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다. “죽이면 안 돼요.”[왜요? 그 여자는 지아 씨를 죽이려고 했잖아요. 그런 위험한 존재를 살려두면 지아 씨에게 더 큰 위협이 될 거예요.]지아는 핑계를 댔다.“저는 이미 몇 번이나 그 사람한테 암살당할 뻔했고, 그 소씨 가문의 여섯째 딸이라는 사람과도 만났어요. 우리는 나이도 비슷하고, 국적도 달라서 아무런 원한도 없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왜 저를 죽이려고 했겠어요?” “제 생각엔 누군가 소시월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단지 이용당하는 말일 뿐인 거죠. 그 사람을 죽이는 건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에요. 그 배후의 사람이 진짜 목표니까요...” 지아는 이미 체스판 위의 말이 아니라 말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장민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강인했다.[제가 도울게요.]“위험하지 않겠어요? 너무 위험하다면 하지 마세요. 저는 민호 씨가 다치는 걸 원치 않아요.” [지아 씨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겁니다.]장민호는 마지막으로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제 속죄라고 생각해 주세요.]전화를 끊은 후에도 지아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사건이 윤곽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지만, 주변 상황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특히 소씨 가문이 혼란스러운 지금은 지아가 신분을 밝히기에 적절한 때가 아니었다. 소임호와 조경숙이 자기 친부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지아
병원에서 사고를 당한 시언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아는 일찍이 자신과 시후의 계획을 모두 털어놓았다. 다만, 다른 사람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시후는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고, 시언이 대외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즉, 두 사람이 안팎에서 호응하며 움직이고 있었던 것. 게다가 소임호 또한 차근차근 사건을 조사하며, 여러 정황으로 인해 배후의 흑막이 조경선이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고, 조경선을 끌어내기 위해 자신을 미끼로 삼았다. 하지만 비행기 사고 이후로 소임호와 시후의 연락이 끊겼고, 시언은 며칠 동안 마음을 졸이며 초조해했다. 그런데 조금 전, 다행히도 소임호의 행방을 알아낸 것이었다.시언은 즉시 이 소식을 지아에게 알렸다. 지아는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되자, 시언의 목소리를 듣고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순간적으로 수많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왜 그래, 지아야?”시언은 지아의 침묵에 걱정하며 물었다.“무슨 일 있어?” 지아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말했다.[아니요, 저는 그냥...]하지만 말을 꺼내자 목소리에 눈물 섞인 떨림이 묻어나왔다.시언이 더욱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 있다면 숨기지 마. 우리는 이미 네 의형제가 됐어. 우린 가족이라고. 소씨 가문에 이런저런 일이 생겼다고 해도, 난 널 지킬 거야.”시언의 ‘지킨다’라는 말이 지아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했다.시언은 지아의 정체를 알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이렇게 다정하고 따듯하게 대해주었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만이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유대일 것이었다. 하지만 지아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왜 소씨 가문 사람들은 내 존재 자체를 몰랐을까?’ 현재 지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경숙은 여섯 번째 아이를 낳은 후 과다출혈로 크게 몸이 상해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고 했다.‘가족이 내 존재를 모를 리가 없는데.’ ‘게다가 시영 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남은 건 소시월 뿐이야.’‘소시
소임호는 눈앞의 광기 어린 조경선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조경선, 그동안 정말 행복했니? 그렇게 애써 계획해서 네가 얻은 건 뭐지?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든 우리는 모두 패배자라고!” “틀렸어.”조경숙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그 당시의 나는 얼굴도 망가지고, 족보에서 제명되고, 가족들에게도 내쳐졌어. 나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데, 조경숙은 왜 모든 걸 가져야 해? 시골에서 돌아온 한낱 촌뜨기가 어떻게 나를 대신할 수 있었냐고!” “그래, 난 패배자야. 하지만 너희도 내 시체 위에 서서 잘난 척할 수는 없을걸? 우리 두 쪽 다 망가지는 게 내 승리니까!” 조경선이 고개를 숙여 소임호를 살펴보며 말했다.“당신 꼴을 좀 봐. 떠돌이 개랑 다를 게 뭐야? 참 안쓰럽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야.”“곧 소씨 가문은 완전히 망가질 거야. 나는 당신을, 그리고 소씨 가문을 반드시 파멸시키고 말 거야!” “너 정말 미쳤구나.”“그래, 난 미쳤어.”“하지만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이젠 내가 겪었던 고통을 당신이 똑똑히 느껴야 할 차례야. 당신도 알겠지만,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경숙은 이제 심세호의 여자가 됐어. 정말 가슴 아프지 않아?” “참, 그건 모르지? 소씨 가문의 노친네는 이미 죽었고, 당신 아들들도 곧 당신과 함께 무덤으로 갈 거야!” “조경선, 너는 진짜 인간 말종이야!” 소임호는 극도로 분노하며 몸부림쳤고, 쇠사슬은 그의 몸부림으로 인해 요란하게 울렸다.하지만 조경선은 소임호의 턱을 잡고 비웃으며 말했다. “왜, 불만이야? 그럼 나한테 빌어봐. 그러면 그 자식들한테 고통 없는 죽음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꿈 깨.”소임호가 냉소하며 말했다.“죽어도 너한테 무릎 꿇을 일은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당신을 죽게 두지는 않을 테니까. 당신이 죽으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처참히 망가지는지 보여줄 수 없잖아. 당신 자식들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거고,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조경숙은 눈이 멀어 다른 남
여자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넌 먼저 돌아가.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 당분간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있어.” “알겠어요.”시월은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라 물었다.“맞다, 아빠는 어떻게 됐어요?” 그 말을 들은 여자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흥, 끝까지 고집불통인 쓰레기 같은 남자. 내가 겪은 교통을 천배, 만 배로 되돌려줄 거야!” 시월의 얼굴에 찰나의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엄마, 이제 그만하면 안 돼요? 우리는 그동안 아빠가 가족도 잃게 하고, 집안도 망가지게 했잖아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충분? 꿈 깨! 이건 그 사람이 나한테 진 빚이라고!” 여자가 소시월의 옷깃을 꽉 잡으며 으르렁거렸다.“경고하는데, 나는 네 어미야. 네가 조금이라도 망설인다면, 나는 절대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엄마, 알겠어요, 나는 엄마의 딸이니까 당연히 엄마 편이에요.” 소시월은 여자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벗어나 두려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그 여자의 정서는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사실, 그녀의 얼굴도 치료를 통해 회복할 수 있었지만, 집착이 너무도 강한 그녀는 치료를 거부했다. “이 고통을 평생 기억하면서 나한테 상처를 준 사람한테 천 배, 만 배로 돌려줄 거야!!” 여자는 평생을 복수 계획에만 몰두하며 살았다. 하지만 소시월이 보기에, 복수를 이루더라도 그녀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었다. 소씨 가문은 지금 엉망진창이 되었기에, 소시월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소시월이 떠난 후, 여자는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지하실로 향했다. 지하실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는데, 여자가 자신의 지문을 입력하자,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서서히 열렸다. 여자는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며 안으로 들어갔고,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는 손과 발이 묶인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여자는 그를 향해 다가가며 광기 어린 집착이 서린 눈빛으로 말했다.“소임호
소지훈이 폭로한 충격적인 사실은 소씨 가문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아에게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출생 비밀을 찾아 헤매던 지아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스스로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되고 말았다. 이전에 소씨 가문 사람들의 고충에 공감했던 지아는 이제 그들이 자기 혈육임을 알게 되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지아는 도윤의 품에서 천천히 미끄러졌고,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아빠, 엄마, 그리고 오빠들이...” 하지만 더욱 지아를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예전에 마주했던 그 시신이 자기 친언니였다는 사실이었다. ‘시영 언니는 너무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어.’ ‘심지어 나는 그걸 전혀 몰랐고, 언니의 마지막 가는 길조차 배웅하지 못했어...’ 지아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지아야!”도윤은 지아를 안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침대에 누운 채 찡그린 표정을 한 지아를 보며 도윤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지아는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어. 그런데 간절히 바랐던 가족마저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다니.’ 무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아의 곁을 지켰다.도윤은 무무를 부드럽게 달래며 말했다.“엄마는 괜찮을 거야. 그냥 과로한 상태에서 큰 충격을 받아 기절한 것뿐이거든.” 한편, 소씨 가문의 황당한 해프닝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으며, 소영수의 장례식은 결국 소씨 가문 사람들의 싸움의 장이 되고 말았다. 겉으로는 소지훈이 이긴 듯 보였으나, 사실 그로 인해 소씨 가문은 체면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시월은 마음이 조급해졌고, 해가 뜨기도 전에 황급히 차를 몰아 오래된 별장으로 향했다. 건물 꼭대기에는 까마귀들이 앉아 있었다.‘까악까악’ 울음소리가 밤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섬뜩하게 들렸다. 장미 덩굴은 낡은 담벼락 위로 기어오르며, 삭막하고 부패한 세상에 한 줄기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새벽이 다가오자, 햇살이 어둠을 찢으며 온 세상의
시하와 시언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완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는데, 도무지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듯했다. 심지어 소시월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이걸... 오빠들은 알고 있었어?”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어.” 소시월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내 계획이 성공하려던 찰나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어. 절대 다른 사람이 내 계획을 망치게 둘 순 없어!’“단지 사진 한 장으로 뭘 증명한다는 거죠? 아빠와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아빠는 비행기 사고로 시신조차 찾지 못했어요. 두 사람의 친자확인도 없이, 대체 무슨 증거를 내놓겠다는 거냐고요!” “이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했던 혈액형 검사야. 두 분은 모두 O형이야. 즉, 두 분은 O형의 자녀만 낳을 수 있다는 뜻이지. 하지만 당신들 아버지는 B형이었어. 혈액형에 돌연변이가 생길 확률이 아주 적다는 건 알고 있겠지? 과연 당신들 아버지가 그 예외일까?” 소지훈은 다시 다른 사진을 꺼냈다.“혈액형 이야기는 우선 접어두자고.”“이건 할아버지의 여러 아들들 사진이야. 우리 아버지와 삼촌, 작은삼촌은 할아버지와 60% 이상 닮았지만, 네 아버지는 전혀 닮은 점이 없어!” 지아는 소임호의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형 스크린에 비춰진 소임호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버렸다. 지아는 이성을 잃고 도윤의 손을 꽉 잡았다.“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많이 본 정도가 아니라, 완전 똑같아!” 두 사람의 대화는 오직 서로만 이해할 수 있었다. 소임호가 부남진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부남진은 나이가 들어 얼굴이 많이 변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젊었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소임호는 분명히 부남진의 젊은 시절을 그대로 닮은 모습이었다. “설마...”지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자신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진실이 이렇게 갑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시언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분노를 참지 못했는데, 그의 손이 여전히 멀쩡했다면, 지금쯤 소지훈의 뺨을 때렸을 것이었다. 시월과 심장후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아는 도윤을 바라보며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거지? 저 사람이 한 말이 사실이야?” 도윤은 고개를 숙이고 지아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방금 들은 소식인데, 이 사진 속 사람을 한 번 봐봐.” 도윤은 핸드폰 속 사진을 열어 서른쯤의 매혹적인 여성을 지아에게 보여주었다. 지아는 그녀의 눈가에 있는 검은 점을 보자마자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 할머니잖아!” 흑백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환희의 모습이 컬러로, 게다가 훨씬 선명한 화질로 나타난 것이었다. “맞아.”지아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혹시 할머니의 행방을 알아낸 거야?” 도윤이 논쟁으로 가득 찬 현장을 보며 말했다.“아마 저 사람들이 답을 줄지도 몰라.” 소지훈의 폭로는 현장을 술렁이게 했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지훈 도련님께서 파문을 일으킬 만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당연하죠, 아무리 무례한 사람이라도 이런 자리에서 저런 말을 할 순 없으니까요!” “어머, 정말 흥미진진한데요?”시월은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오빠, 시언 오빠와 오해가 있는 건 알지만, 그런 거짓말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은 할아버지를 배웅해 드리는 날인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고요.” “할아버지? 허, 네가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야?” “오빠, 적당히 좀 하세요!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웃기지도 않는다고요!” “웃기는 건 너희 같은 잡종들이지!”소지훈이 손뼉을 치며 준비된 프로젝터를 가리켰다.“여러분, 죄송합니다만, 이 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공개하고, 소씨 가문의 족보를 깨끗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죽어서도 소씨 가문에 매달리려는 사람이 없도록 말이죠!” “도대체 숨
밤이 깊어지자, Z국에서 전통적인 가족 고별 의식이 시작되었다.지아는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섞여 소씨 가문의 방대한 자손들과 그들의 복잡한 계보를 바라보았다. 소영수의 직계 자손들 외에도 그의 둘째 동생과 셋째 동생 등의 곁가지 후손들까지 합쳐져, 효성과 의리를 다하는 자식들과 손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별 의식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첫 번째로 향을 올리는 순서는 원래 장남의 몫이었지만, 장남이 사고를 당하면서 그 역할은 둘째에게 넘어갔다. 다른 자손들도 각자 자신의 향을 챙기러 움직였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시언과 시하를 대신해 시월이 나서서 향을 가지러 갔다. 하지만 소시월이 향에 손을 대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냉랭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지훈이었다.“오늘은 가족을 위한 작별의 자리야. 미안하지만, 너는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언이 즉각 반응했다.“소지훈, 적당히 좀 하지 그래? 여긴 할아버지의 영정이 모셔진 자리야. 할아버지께서 편히 눈감지도 못하게 할 작정이야?” ‘예전의 작은 다툼은 다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오늘처럼 외부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저렇게 무례한 말을 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시하는 상대적으로 차분해 보였지만, 그는 이 상황이 단순하지 않음을 직감했다. ‘연예계에서 단련된 소지훈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저런 말을 했을 리 없어. 뭔가 계획이 있는 게 분명해.’ 시하가 둘째 삼촌인 소상현을 바라보았다. 소상현은 아들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소명담의 시신이 발굴되었을 때, 소상현은 자기 친아들이 이토록 오래전에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백발의 노인이 흑발의 자식을 보내는 고통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소상현은 소지훈의 말을 듣고도 아무 말 없이 공허한 눈빛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입을 연 사람은 소상현의 부인인 오연희였다.“시언아, 너무 흥분하는 거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