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환은 휴대전화를 꺼냈다.“이것은 오늘 초소형 카메라로 찍은 화면입니다.”화면 속 지아는 정원에 앉아 조용히 책을 보고 있었다. 비록 카메라는 거미의 크기에 불과하지만 화질은 고화질이었다.도윤은 손을 들어 지아의 볼을 어루만졌다. ‘역시 손을 놓는 게 정확한 선택이었어. 지아의 상태는 전보다 훨씬 좋아졌군.’“방금 얻은 소식인데, 임건우는 지금 약물치료에 쓰이는 약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모님은 아마 2차 약물치료를 진행할 것입니다.”“알았어.”비록 도윤은 지금 별장에서 비치는 작은 불빛밖에 볼 수 없었지만, 지아가 이 안에 있다는 것을 안 이상, 그도 마음이 많이 놓였다.애석하게도 그들은 감히 과감하게 행동하지 못했고 그저 초소형 카메라를 정원에 설치해 지아가 나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이제 그만 돌아가시죠. 어차피 여기서 사모님을 보실 수가 없잖습니까. 이제 사모님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아셨으니 안심하세요.”지난번 약물치료를 받을 때, 지아에게 강렬한 반응을 보인 것을 생각하니 도윤은 걱정을 멈추지 못했다. 그는 그녀를 한 번 더 만나고 싶었지만,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조금만 더 있을게.”도윤은 떠나지 않았고 밤새 산꼭대기에 서 있었다.지아 역시 고통스러운 밤을 보냈다. 약물치료 때, 그녀는 세 번이나 토했다.건우는 지아가 버티지 못할까 봐 거듭 멈추라고 요구했지만 지아는 이렇게 끌어도 죽음뿐이니 약물치료가 현재 유일한 방법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아는 이를 악물고 건우를 막았다.“임 의사, 난 아직 버틸 수 있어요. 정말이니 포기하지 말고 나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줘요.”건우는 한숨을 쉬었다.“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이도윤에게서 도망치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결국 똑같이 죽음을 맞이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잖아요. 난 살아야 해요.”‘살아야만 내 아이들을 볼 수 있으니까.’‘살아야만 그 주모자를 잡을 수 있으니까.’오늘 밤 지아의 마음은 무척 불안했다. 지난번 이런
도윤은 내색하지 않고 건우의 말을 따라서 대답했다.“알아.”“지아는 이미 떠났으니 앞으로 어쩌실 계획이죠?”도윤은 눈치가 빨랐기에 잠시 생각한 후, 즉시 건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물건을 가지러 왔다는 것은 핑계인 것 같군. 아마 지아를 대신해서 내 상황을 살펴보러 왔을 거야.’‘내가 전에 지아에게 한 그 일들은 틀림없이 엄청난 트라우마를 초래했겠지? 지금 지아는 매일 두려움에 떨고 있을 거야.’그렇게 생각하며 도윤은 침착하게 대답했다.“지아를 이곳으로 데려왔던 것은 우리 두 사람 새로운 시작을 하길 바라서 그런 것인데, 뜻밖에도 그날까지 기다리지 못했군. 그래서 나도 이제 곧 귀국할 거야.”‘지아가 날 두려워하는 이상, 내가 떠나면 되겠지.’건우는 얼른 물었다.“언제 떠날 계획이죠?”자신이 너무 티가 났다고 생각했는지 건우는 급히 한 마디 덧붙였다.“이렇게 다시 만난 것도 인연이니 대표님과 지아를 배웅하고 싶어서요.”“내일 비행기야. 그럼 임 의사가 하고 싶은대로 하지.”건우가 떠난 후, 진봉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대표님, 사모님은 이제 금방 2차 약물치료를 마치셨는데, 어떻게 바로 떠나실 수가 있습니까?”도윤은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복도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넌 임건우가 정말 날 배웅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 거라 생각하니?”진환은 얼른 말을 이어받았다.“아마도 사모님께서 걱정이 되어 특별히 임건우 씨에게 부탁했을지도 몰라. 대표님은 지금 사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말한 거고.”진봉은 그제야 도윤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도윤은 지아가 근심과 스트레스 없이 잘 살기를 원했다.이튿날 점심, 건우는 제시간에 도착했다. 그와 도윤은 친하지 않은 데다 도윤은 원래 성격이 냉담했기에 두 사람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탑승시간이 되자, 도윤은 진봉과 진환을 데리고 안전검사 입구로 들어갔다. 그들이 시야 속에서 사라진 후에야, 건우는 한숨을 돌리며 재빨리 별장으로 향했다.
소씨 가문.시후는 마침내 위험에서 벗어났고 시언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형, 드디어 깨어났군.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르지?”시후는 금방 깨어났기에 안색은 여전히 안 좋았다. 그는 동생을 위로하려고 억지로 웃었다.“내가 어떻게 널 두고 떠나겠어. 네 머리카락 좀 봐, 무슨 사자도 아니고.”시언은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패션에 매우 집착했다. 요 며칠 줄곧 시후의 곁에서 그를 돌보았기에 시언은 자신을 가꿀 틈이 없었고, 금발 머리도 더부룩하고 엉망진창이어서 마치 개털 같았다.“형, 지금 나와 농담할 기분까지 있는 거야? 어쩜 운이 이리도 안 좋은 건지.”“운이 왜 안 좋아? 난 내가 살아있다는 게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시언은 콧방귀를 뀌었다.“어렵게 형과 신장이 일치하는 사람을 찾았고, 그 사람도 기증에 동의했는데, 갑자기 이런 변고가 일어날지 누가 알았겠어.”“그 사람도 일이 이렇게 되는 걸 원하지 않았겠지만, 갑작스레 교통사고를 당했으니 어쩔 수 없지 뭐.”“형은 마음이 너무 약해서 탈이야. 내가 전에 사람을 다 찾았는데. 그게 암시장에서 한 거래이든 말든 무슨 상관이라고. 형이 살 수만 있다면 되는 거 아니야? 우리한테 팔지 않아도 그 사람들 더 살 수 있을 것 같아? 계속 일치하는 사람을 찾겠지. ”여기까지 말하자 시언도 어이가 없었다.“형, 이러고 보면 우리 집안 요 몇 년 말이야, 너무 재수가 없는 것 같아. 셋째 동생도 전에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잖아. 다행히 살아남았지만 두 다리를 못 쓰게 됐고.”시후는 씁쓸하게 웃었다.“괜찮아, 스스로 기증하기를 원하는 사람 꼭 나타날 거야. 참, 그동안 무슨 일 없었어?”“큰일은 없었어.”이때 시언은 문득 생각이 났다.“맞다, 소지아 씨한테서 전화가 왔었는데.”“소지아 씨가?”“응.”“틀림없이 중요한 일로 우릴 연락했을 거야. 지아 씨가 우리를 도와 지영이를 찾아줬다는 거 잊지 마.”“형, 나도 알아. 그때 내가 물어봤는데,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게다가
약물치료를 마친 일주일 후, 지아는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다만 머리카락은 이번 치료 때문에 전부 다 빠졌다.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니, 턱은 뾰족했고 머리카락은 하나도 없었다.지아를 부축하고 있던 다빈은 서둘러 그녀를 위로했다.“지아 언니, 괜찮아요. 이제 약을 멈추기만 하면 머리카락이 다시 자랄 테니까요.”그러나 지아는 개의치 않은 듯 웃었다.“사람이 죽었다면 생전에 아무리 아름다워도 무슨 소용이 있겠어? 난 지금 내가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해.”“지아 언니, 이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안심할 수 있을 같아요. 그러나 나도 솔직히 말하는 거니까 화나지 마요. 언니는 머리카락이 없어도 전보다 훨씬 예쁜걸요. 언니를 보니까 미스 코리아도 그저 그런 것 같아요. 만약 내가 언니처럼 생겼다면 자다가도 좋아서 깨어났을 거예요.”“다빈아, 나 바람 좀 쐬고 싶은데, 와서 좀 부축해줄래?”“그래요.”이 도시는 지금 큰 눈이 흩날리고 있는 A시와 달리 온도가 적합해서 쉽게 감기에 걸릴 리가 없었기에 지아가 휴양하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도윤이 이미 떠났다는 것을 안 이후, 지아도 더는 긴장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지아는 절대 조급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천천히 치료를 받으면 꼭 나아질 것이다.오늘의 햇빛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바람이 가볍게 얼굴을 스치더니 꽃잎이 지아의 이마에 살며시 내려앉았다.이는 지아로 하여금 추억에 빠지게 했다. 영리한 하루가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영원히 그를 잃었다.‘그 사람들만 아니었다면 하루는 분명히 몇 년은 더 살 수 있었을 텐데.’‘나와 마음이 통한 고양이였는데, 너무 아쉬워.’‘그리고 미연이. 비록 이렇게 오래 지났지만 난 여전히 미연의 생기발랄한 모습이 떠올라.’과거의 모든 기억들은 지아의 머릿속에 서서히 나타났다. 그녀는 괴로울 때마다 그들을 생각했다.‘그들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이게 뭐라고. 아무리 아파도 난 꼭 견뎌내야 해.’도윤은 무려 일주일을 기다리고서야 초소
이것은 이예린이 처음으로 먼저 입을 연 것이었다. 도윤은 그녀의 앞에 앉아 커피를 끓이며 대답했다.“말해봐.”이예린은 커피잔의 무늬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그때 길을 잃어버린 후, 난 유괴를 당해 시골에 팔려갔어.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고생을 했고. 후에 난 기회를 틈타서 도망쳐 나온 거야.”이예린은 그때 당한 고통을 자세히 말하지 않았는데, 이를 들은 도윤이 먼저 물었다.“어떻게 도망친 거지?”도윤 역시 그때 일어난 구체적인 일에 대해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예린은 그때의 일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아주 간단해. 난 오래전부터 계획했는데, 라이터를 숨겨 그들이 모은 건초에 불을 붙인 거야. 그것은 초라한 초가집이었기에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불에 전부 타버렸어. 하지만...”이예린은 멈칫하다 계속했다.“불 붙이기 전, 난 그들 일가족을 방에 가두어 산 채로 태워 죽였어. 시골에서 도망쳐 나온 후, 난 한 달 넘게 밖에서 돌아다녔지만, 화상이 너무 심해서 모두들 날 괴물로 여기며 날 무시했어. 다행히 마음씨가 착한 사람을 만나서 나도 살게 된 거야. 그리고 몇 년 동안 수많은 수술을 거쳐 지금 이런 모습을 가지게 된 거고.”“왜 일찍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거야?”“그렇게 오랫동안 갇혀 있으면서 난 돼지만도 못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 매일 돼지우리에서 돼지들과 먹이를 빼앗으며 심지어 개집에서 잠을 잤어. 내가 어렸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진작에 날 강간해서 아이를 낳게 했을 거야. 그들은 내가 커서 그 집 아들의 마누라로 되길 바랐거든. 설령 내가 도망쳐 나왔다 하더라도, 이미 화상을 입어 본모습조차 알아볼 수 없었으니 내가 다시 오빠 앞에 나타날 자격이 어딨겠어?”“후에 수술을 거쳐 겨우 사람 모습을 되찾았을 때, 내가 또 어찌 오빠를 찾으러 가고 싶지 않았겠어? 그런데 그때 넌 무엇을 하고 있었지? 연애하느라 바빠서 내가 오빠에게 다가갔을 때, 날 알아보지도 못하고 심지어 내가 오빠에게 매달리려고 찾아온 여자인
이예린은 비록 뺨을 맞았지만 여전히 섬뜩한 미소를 드러냈다.“맞아, 난 미쳤어. 무엇때문에 나 혼자서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건데? 내가 이미 지옥에 처해 있는 이상,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거야. 오빠, 탓하려면 오빠 자신을 탓해. 오빠가 그 여자를 사랑했으니까!”말하면서 이예린은 또 무언가 생각났는지 계속 말했다.“날 때리는 건 괜찮지만 오빠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어. 난 비록 주모자지만, 진정으로 소지아를 그렇게 만든 사람은 오빠야. 오빠 자신이 그 여자를 믿고 싶지 않고,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그 여자를 무시하고 괴롭혔잖아. 그 여자를 가장 많이 다치게 한 사람은 오빠지 내가 아니란 말이야.”도윤은 들었던 손에 힘이 풀렸다. ‘그래, 예린이 말한 게 맞아. 나야말로 지아를 그렇게 만든 범인이니 어떻게 다른 사람을 원망할 자격이 있겠어.’그는 힘없이 자리에 털썩 앉아 담배를 피웠고, 눈은 허공을 바라보았다.“지금 지아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났어. 난 모든 것을 잃었으니 이제 만족하겠지?”이예린의 눈빛은 도윤의 수척하고 초췌해진 얼굴에 떨어졌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분위기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고, 담배 하나를 다 피운 다음, 도윤은 다시 이예린을 바라보았다.‘예린이 그런 일을 겪은 후, 심리에 변화가 생겨 극단적으로 지아를 질투하고 원망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겠지.’‘그러나 고작 이런 이유 때문에 나와 지아를 이간질하고, 우리의 가정 심지어 아이까지 잃게 만들다니. 그건 좀 아니지 않나?’“너 말고 또 누가 이 일에 참여했지?”“아무도 없어, 다 내가 혼자 한 짓이야. 목적은 소지아를 괴롭혀 죽이는 거고. 지금 목적이 달성되었으니 날 죽이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난 후회하지 않으니까.”이예린을 불구로 만들었기에, 도윤도 더 이상 무슨 짓을 하지 않았다.그가 방에서 나오자, 진환이 따라왔다.“대표님, 뭐 좀 알아내셨습니까?”“자기가 지아를 질투해서 그런 거라고 말했어. 하지
지아는 연속 여섯 차례의 약물치료를 진행했는데, 21일마다 한 번씩 치료를 했다. 그리고 모든 약물치료를 끝냈을 때, 이미 6개월이나 지났다.이 6개월은 지아에게 있어 지옥과 다름없었다. 약물치료의 부작용은 이미 그녀의 모든 기관에 침투했다.지아는 유난히 추위를 탔고, 항상 손발이 차가웠으며 다리에도 힘이 없었고 심지어 뼈까지 몹시 아팠다.다빈은 그런 지아를 보며 그저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지아 언니, 지금 이미 버텨냈어요. 여섯 번의 약물치료를 모두 끝냈으니 언니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대단하다고요.”지아는 침대에 누워 힘이 없었고 머리가 어지러운 동시에 눈앞이 아찔했다. 그녀는 허약하게 입을 열었다.“다빈아, 나 나가서 햇빛 좀 쬐고 싶은데, 좀 부축해줄래? 너무 오랫동안 누워 있었던 거 같아서.”“좋아요.”다빈은 휠체어로 지아를 밀고 밖으로 나왔다. 남반구에 있는 나라는 이제야 겨울에 접어들었다.이곳의 온도는 A시보다 훨씬 따뜻해서 가장 추운 시기에 처해 있어도 시내에 눈이 내리지 않았다.겨울날의 햇빛이 몸에 따스하게 떨어지자, 지아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손으로 머리 위의 약간 눈부신 빛을 가렸다.“지아 언니, 두려워하지 마요. 지금 비록 많은 부작용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지만, 그것도 다 정상이니까요. 언니는 아직 젊어서 새로운 세포가 번식하는 속도가 아주 빠르니까, 이제 천천히 조리하기만 하면 기껏해야 6개월, 상태가 많이 좋아질 거예요.”“6개월이라...”지아는 가볍게 중얼거렸다.‘하지만 난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는 것 같은데.’날짜를 계산해 보면 지아의 두 아이는 이미 한 살 반이 되었다.‘한 살 반의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이제 엄마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겠지? 여기저기 막 뛰어다닐 수 있겠지?’‘미숙아라서 또래 아이들보다 작고 야윌지도 몰라.’‘미숙아를 살리려면 엄청 힘들었을 텐데. 전효 씨는 틀림없이 많은 신경을 쏟았을 거야.’속으로 고통 속에서 그냥 죽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할 때마다, 지아는 자신이
아픈 나날은 하루하루가 고통이었지만 지금 지아는 무려 한 달 이상 더 기다려야 했다.지아는 한숨을 쉬었다. ‘전효 씨에게 하루빨리라도 연락했으면 좋겠는데. 아이들 사진만 볼 수 있어도 좋으니까.’그러나 전효는 신분이 특수했고, 지아도 예전의 번호를 감히 사용할 수 없었기에 그와 연락이 닿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애가 타는 기다림 끝에 도윤은 마침내 지아의 새로운 영상을 볼 수 있었다.지아는 이미 여러 날 정원에 나오지 않았는데, 몸이 매우 허약한 게 확실했다. 심지어 오늘 밖으로 나왔어도 그저 휠체어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도윤은 손가락으로 스크린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지난번에 비해 지아는 살이 또 좀 빠진 것 같았다. 얼굴에는 살이 하나도 없었고, 뾰족한 턱에 특히 그 두 눈은 더욱 무서울 정도로 컸다.“이번이 여섯 번째 치료겠지?”“네, 이번이 마지막 약물치료입니다. 사모님은 이제 조리만 잘하시면 되고요.”“지아라면 계속 남에게 신세를 지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 몸이 조금만 좋아지면 바로 떠날 수 있으니 사람 시켜 별장 주변을 잘 지키라고 해.”“네, 대표님. 이제 나가시죠”도윤은 이미 귀국한 지 반년이 되었는데, 예전에 종래로 그 어떤 활동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도윤은 틈틈이 시간을 내서 비즈니스 연회나 자선에 관한 활동에 참가하곤 했다.도윤은 심지어 스스로 암 환자를 돕는 자선기금을 설립하여 병을 앓고 있으면서 돈이 없는 많은 불쌍한 사람들을 도왔다.기자들 역시 도윤의 일에 대해 앞다투어 보도하였고, 지아도 자주 뉴스에서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도윤은 전보다 더욱 야위었을 뿐만 아니라 안색도 무척 나빴다. 지아의 죽음은 그에게 큰 타격을 입힌 게 분명했다. 하지만 후회약이 또 어딨겠는가?지금 지아가 도윤을 주목하는 이유는 단지 그가 국내에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일 뿐, 사랑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그래야 지아도 안심하고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이것은 도윤이 최근에 참가한 다른 한 자선 연회였다.
이예린은 비록 나이가 많지 않았지만, 노련한 태도로 전혀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새로운 곳에 와서 그런지 잠이 안 오네요. 좀 걸으려고요.” “네 오빠도 여기 있잖니. 그 아이가 네가 나가는 걸 보면 분명히...” 이예린은 곧장 심예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오빠가 제 손발이 이미 회복된 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세요?” “오빠가 정말 저를 죽이고 싶었다면, 이미 3년 전에 끝냈을 거예요. 하지만 오빠는 누군가처럼 사랑에 눈이 멀어버리는, 마음 여린 사람이라고요.” 당시 도윤은 예린을 죽이지 않고, 단지 손과 발의 힘줄을 끊어버렸다. 그것만으로 지아를 위해 복수를 한 셈이었다.더구나 지아는 죽지 않았기에, 도윤은 더 이상 예린을 해치지 않았다.“너는 전혀 우리를 닮지 않은 모양이구나.”예린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러게요.”사실, 사랑에 눈이 멀어버리는 것은 그들 가문에 흐르는 피와 같았다.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도윤도 그러했으며, 예린도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시후가 예린을 구해준 순간부터, 예린은 자신의 목숨이 영원히 시후의 것임을 알았다. “그래, 주변에서만 걸어 다니렴. 괜한 문제는 일으키지 말고.” “알겠어요.”예린은 몇 발짝 걸어가다가 멈추더니, 뒤돌아 심예지를 바라보았다.“엄마.”심예지는 온몸이 굳어버렸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예린을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니?” 심예지는 지난 몇 년 동안 예린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었지만, 예린은 늘 과묵했으며, 좀처럼 말하지 않았다. 예린은 태도마저 차갑고 무관심했기에, 심예지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저 여생 동안 속죄할 기회가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심예지는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았는데, 예린의 입에서 나온 ‘엄마’라는 단어는 너무나 큰 의미를 지니는 듯했다.심예지는 그 자리에서 눈물이 차올랐고, 다시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뭐... 뭐라고?”“엄마.”이번에는 예린
전화를 받은 이예린은 당황해서 더듬거리며 말했다.[말씀만 해주세요. 제 목숨을 구해주셨으니,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불 속이라도 뛰어들겠어요.]이 대답은 시후가 예상한 대로였다. 과거에도, 그리고 얼마 전에 재회했을 때도, 예린은 시후를 볼 때마다 두려워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평소의 당당한 이예린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시후는 연애 경험은 없었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다양한 유형의 여성을 접해왔다. 그래서 예린이 단순히 자신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것 외에도, 깊은 연모의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예린이 이씨 가문의 아가씨라 할지라도, 시후 앞에서는 늘 자신감 없는 태도를 보였으니 말이다. 예린은 시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며, 늘 자격지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시후는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제가 선생님의 아버지를 구출하라는 말씀이시죠?] “그래, 할 수 있겠어?”시후는 예린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았지만, 속으로는 그녀가 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예린은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어려울 순 있겠지만, 반드시 해낼게요.]예린은 나이가 어리지만 결단력이 있었다. 예린의 대답에 시후는 한결 안도했다.“뭐든 얘기해줘. 최선을 다해서 널 도울게.”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저 혼자로도 충분하니까요. 사람이 많아지면 오히려 적에게 이상한 낌새만 줄 뿐이에요.]시후는 곧 이예린의 놀라운 능력을 직접 보게 되었다. 예린은 명석한 두뇌와 치밀한 계획, 냉혹하면서도 질서 정연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다. 만약 예린이 적이었다면, 정말로 두려운 상대가 되었을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양지운이 시후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떻게 됐습니까?” “우리 사람들을 철수시켜.” “그 여자의 말을 믿으시는 거예요? 오랜 세월 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인데요.” 시후는 길가에 떨어진 나뭇잎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때로는 은혜 하나만으로도 평생 기억되는 법이지
이 말을 할 때 조경선의 얼굴은 거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고, 입가에는 미친 듯한 웃음이 번졌다.“꼭 살아남아서, 그 모든 걸 똑똑히 지켜보도록 해.” 조경선은 다시 소임호에게 영양제를 주사했다. 소임호는 침대에 누운 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는데, 조경선과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남은 힘을 모두 소진한 것 같았다. 소임호가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병약한 모습을 보자, 조경선은 결국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조경선은 수년간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계획해 왔다.조경선이 상상했던 장면은 소임호가 무릎을 꿇고 자신에게 애원하며 사과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소임호를 붙잡고 나서도, 소씨 가문이 이렇게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소임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심지어 자살 시도까지 했으니, 조경선의 분노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온 힘을 다해 날린 주먹이 솜사탕에 파묻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조경선의 가슴속은 분노와 억울함으로 가득 찼다. 그토록 오랜 시간 공들여 계획했지만, 조경선은 결국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조경선은 뼛속 깊이 소임호를 증오하면서도, 소임호가 그렇게 약해진 모습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그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소임호는 조경선이 평생 이루지 못한 소원이자,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던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소임호를 미워할수록 사랑도 더 깊어졌기에, 조경선은 소임호를 죽이기보다는 그가 자신에게 굴복하며 돌아오기를 원했다.해가 저물 무렵.조경선은 잠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별장 안팎에 놓인 꽃들과 각종 장식은 사실 특정한 용도로 설계된 것이었다. “침입자 발견! 침입자 발견!”기계음이 별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조경선은 두 눈을 번쩍 뜨며 침대 옆 협탁에서 가면을 꺼내 얼굴에 썼고, 입가에 음흉한 웃음을 그렸다. “감히 여길 들어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한 모양이지?”조경선이 손을 한 번 흔들자, 벽에 설치된 스크린에 실시간 CCTV 화면이 투사되
지아는 멍하니 서 있다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진봉을 바라보며 물었다.“성형?” “예, 성형수술이요.”지아는 그제야 소시월이 왜 자신과 닮았는지, 혹시 소임호와 관련 있는 사람인지 의심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이제야 모든 것이 설명되었으니 말이다. 지아는 손에 든 서류를 훑어보았다.소시월은 13살에 처음 성형수술을 했고, 이후 매년 한 가지씩 성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게다가 20대 중반 이후로는 유지와 보수를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그 시절 소시월은 기숙 학교에 다녔기에, 사람들은 반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가 성장하며 부모를 닮아간다고 생각했을 뿐, 의술의 힘으로 얼굴을 바꿨다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아마 그들이 당시에 지아를 해치지 않은 이유도 그녀의 얼굴을 복제하려 했기 때문일 터.그 후, 지아가 쓸모없어지자 암살 계획을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지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 가짜 얼굴을 한 꺼풀씩 다 벗겨내 주겠어!”“사모님, 만약 그 여자가 사모님을 계속 암살하려던 배후라면, 그 여자의 등에는 분명히 총상이 있을 겁니다. 그날 저희가 사람들을 데리고 갔을 때, 그 여자는 도망치면서 총을 한 발 맞았었죠.” “당장 알아봐!”지아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는데,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생지옥 같은 나날들이 떠오르는 듯했다.비록 도윤이 한때 지아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결국 그 모든 고통은 누군가가 뒤에서 지아의 삶을 철저히 망가뜨린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소시월은 내 자리를 차지하고, 내가 누려야 할 가족의 사랑과 따듯함을 즐겼어. 그것도 모자라서 나를 지옥 속으로 처참히 몰아넣었다고!’지아의 분노는 억누를 수 없을 정도였다. “사모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반드시 모든 진실을 밝혀내겠습니다.” “그 여자를 감시할 사람을 찾아. 최근 움직임이 많아졌으니,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 최대한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해!”“예.”지아는 머리를 짚으며
안타깝게도 지아가 이미 진실을 알아낸 상태였기에, 장민호의 소식은 늦은 셈이었다.“지금 어디에 계세요?”지아가 급히 물었다.‘민호 씨가 이 일에 연루되었는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 [Z국에 있어요. 최근 소씨 가문에 많은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 소식을 알아내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틈을 타서 지아 씨에게 위협이 되는 소시월을 제거할 테니까요.]지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지아는 처음에 장민호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자신의 의도를 눈치챘을까 봐 걱정했지만, 장민호는 아직 그녀가 Z국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다. “죽이면 안 돼요.”[왜요? 그 여자는 지아 씨를 죽이려고 했잖아요. 그런 위험한 존재를 살려두면 지아 씨에게 더 큰 위협이 될 거예요.]지아는 핑계를 댔다.“저는 이미 몇 번이나 그 사람한테 암살당할 뻔했고, 그 소씨 가문의 여섯째 딸이라는 사람과도 만났어요. 우리는 나이도 비슷하고, 국적도 달라서 아무런 원한도 없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왜 저를 죽이려고 했겠어요?” “제 생각엔 누군가 소시월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단지 이용당하는 말일 뿐인 거죠. 그 사람을 죽이는 건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에요. 그 배후의 사람이 진짜 목표니까요...” 지아는 이미 체스판 위의 말이 아니라 말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장민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강인했다.[제가 도울게요.]“위험하지 않겠어요? 너무 위험하다면 하지 마세요. 저는 민호 씨가 다치는 걸 원치 않아요.” [지아 씨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겁니다.]장민호는 마지막으로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제 속죄라고 생각해 주세요.]전화를 끊은 후에도 지아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사건이 윤곽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지만, 주변 상황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특히 소씨 가문이 혼란스러운 지금은 지아가 신분을 밝히기에 적절한 때가 아니었다. 소임호와 조경숙이 자기 친부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지아
병원에서 사고를 당한 시언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아는 일찍이 자신과 시후의 계획을 모두 털어놓았다. 다만, 다른 사람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시후는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고, 시언이 대외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즉, 두 사람이 안팎에서 호응하며 움직이고 있었던 것. 게다가 소임호 또한 차근차근 사건을 조사하며, 여러 정황으로 인해 배후의 흑막이 조경선이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고, 조경선을 끌어내기 위해 자신을 미끼로 삼았다. 하지만 비행기 사고 이후로 소임호와 시후의 연락이 끊겼고, 시언은 며칠 동안 마음을 졸이며 초조해했다. 그런데 조금 전, 다행히도 소임호의 행방을 알아낸 것이었다.시언은 즉시 이 소식을 지아에게 알렸다. 지아는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되자, 시언의 목소리를 듣고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순간적으로 수많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왜 그래, 지아야?”시언은 지아의 침묵에 걱정하며 물었다.“무슨 일 있어?” 지아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말했다.[아니요, 저는 그냥...]하지만 말을 꺼내자 목소리에 눈물 섞인 떨림이 묻어나왔다.시언이 더욱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 있다면 숨기지 마. 우리는 이미 네 의형제가 됐어. 우린 가족이라고. 소씨 가문에 이런저런 일이 생겼다고 해도, 난 널 지킬 거야.”시언의 ‘지킨다’라는 말이 지아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했다.시언은 지아의 정체를 알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이렇게 다정하고 따듯하게 대해주었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만이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유대일 것이었다. 하지만 지아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왜 소씨 가문 사람들은 내 존재 자체를 몰랐을까?’ 현재 지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경숙은 여섯 번째 아이를 낳은 후 과다출혈로 크게 몸이 상해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고 했다.‘가족이 내 존재를 모를 리가 없는데.’ ‘게다가 시영 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남은 건 소시월 뿐이야.’‘소시
소임호는 눈앞의 광기 어린 조경선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조경선, 그동안 정말 행복했니? 그렇게 애써 계획해서 네가 얻은 건 뭐지?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든 우리는 모두 패배자라고!” “틀렸어.”조경숙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그 당시의 나는 얼굴도 망가지고, 족보에서 제명되고, 가족들에게도 내쳐졌어. 나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데, 조경숙은 왜 모든 걸 가져야 해? 시골에서 돌아온 한낱 촌뜨기가 어떻게 나를 대신할 수 있었냐고!” “그래, 난 패배자야. 하지만 너희도 내 시체 위에 서서 잘난 척할 수는 없을걸? 우리 두 쪽 다 망가지는 게 내 승리니까!” 조경선이 고개를 숙여 소임호를 살펴보며 말했다.“당신 꼴을 좀 봐. 떠돌이 개랑 다를 게 뭐야? 참 안쓰럽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야.”“곧 소씨 가문은 완전히 망가질 거야. 나는 당신을, 그리고 소씨 가문을 반드시 파멸시키고 말 거야!” “너 정말 미쳤구나.”“그래, 난 미쳤어.”“하지만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이젠 내가 겪었던 고통을 당신이 똑똑히 느껴야 할 차례야. 당신도 알겠지만,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경숙은 이제 심세호의 여자가 됐어. 정말 가슴 아프지 않아?” “참, 그건 모르지? 소씨 가문의 노친네는 이미 죽었고, 당신 아들들도 곧 당신과 함께 무덤으로 갈 거야!” “조경선, 너는 진짜 인간 말종이야!” 소임호는 극도로 분노하며 몸부림쳤고, 쇠사슬은 그의 몸부림으로 인해 요란하게 울렸다.하지만 조경선은 소임호의 턱을 잡고 비웃으며 말했다. “왜, 불만이야? 그럼 나한테 빌어봐. 그러면 그 자식들한테 고통 없는 죽음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꿈 깨.”소임호가 냉소하며 말했다.“죽어도 너한테 무릎 꿇을 일은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당신을 죽게 두지는 않을 테니까. 당신이 죽으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처참히 망가지는지 보여줄 수 없잖아. 당신 자식들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거고,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조경숙은 눈이 멀어 다른 남
여자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넌 먼저 돌아가.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 당분간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있어.” “알겠어요.”시월은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라 물었다.“맞다, 아빠는 어떻게 됐어요?” 그 말을 들은 여자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흥, 끝까지 고집불통인 쓰레기 같은 남자. 내가 겪은 교통을 천배, 만 배로 되돌려줄 거야!” 시월의 얼굴에 찰나의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엄마, 이제 그만하면 안 돼요? 우리는 그동안 아빠가 가족도 잃게 하고, 집안도 망가지게 했잖아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충분? 꿈 깨! 이건 그 사람이 나한테 진 빚이라고!” 여자가 소시월의 옷깃을 꽉 잡으며 으르렁거렸다.“경고하는데, 나는 네 어미야. 네가 조금이라도 망설인다면, 나는 절대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엄마, 알겠어요, 나는 엄마의 딸이니까 당연히 엄마 편이에요.” 소시월은 여자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벗어나 두려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그 여자의 정서는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사실, 그녀의 얼굴도 치료를 통해 회복할 수 있었지만, 집착이 너무도 강한 그녀는 치료를 거부했다. “이 고통을 평생 기억하면서 나한테 상처를 준 사람한테 천 배, 만 배로 돌려줄 거야!!” 여자는 평생을 복수 계획에만 몰두하며 살았다. 하지만 소시월이 보기에, 복수를 이루더라도 그녀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었다. 소씨 가문은 지금 엉망진창이 되었기에, 소시월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소시월이 떠난 후, 여자는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지하실로 향했다. 지하실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는데, 여자가 자신의 지문을 입력하자,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서서히 열렸다. 여자는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며 안으로 들어갔고,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는 손과 발이 묶인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여자는 그를 향해 다가가며 광기 어린 집착이 서린 눈빛으로 말했다.“소임호
소지훈이 폭로한 충격적인 사실은 소씨 가문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아에게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출생 비밀을 찾아 헤매던 지아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스스로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되고 말았다. 이전에 소씨 가문 사람들의 고충에 공감했던 지아는 이제 그들이 자기 혈육임을 알게 되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지아는 도윤의 품에서 천천히 미끄러졌고,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아빠, 엄마, 그리고 오빠들이...” 하지만 더욱 지아를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예전에 마주했던 그 시신이 자기 친언니였다는 사실이었다. ‘시영 언니는 너무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어.’ ‘심지어 나는 그걸 전혀 몰랐고, 언니의 마지막 가는 길조차 배웅하지 못했어...’ 지아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지아야!”도윤은 지아를 안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침대에 누운 채 찡그린 표정을 한 지아를 보며 도윤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지아는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어. 그런데 간절히 바랐던 가족마저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다니.’ 무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아의 곁을 지켰다.도윤은 무무를 부드럽게 달래며 말했다.“엄마는 괜찮을 거야. 그냥 과로한 상태에서 큰 충격을 받아 기절한 것뿐이거든.” 한편, 소씨 가문의 황당한 해프닝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으며, 소영수의 장례식은 결국 소씨 가문 사람들의 싸움의 장이 되고 말았다. 겉으로는 소지훈이 이긴 듯 보였으나, 사실 그로 인해 소씨 가문은 체면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시월은 마음이 조급해졌고, 해가 뜨기도 전에 황급히 차를 몰아 오래된 별장으로 향했다. 건물 꼭대기에는 까마귀들이 앉아 있었다.‘까악까악’ 울음소리가 밤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섬뜩하게 들렸다. 장미 덩굴은 낡은 담벼락 위로 기어오르며, 삭막하고 부패한 세상에 한 줄기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새벽이 다가오자, 햇살이 어둠을 찢으며 온 세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