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연속 여섯 차례의 약물치료를 진행했는데, 21일마다 한 번씩 치료를 했다. 그리고 모든 약물치료를 끝냈을 때, 이미 6개월이나 지났다.이 6개월은 지아에게 있어 지옥과 다름없었다. 약물치료의 부작용은 이미 그녀의 모든 기관에 침투했다.지아는 유난히 추위를 탔고, 항상 손발이 차가웠으며 다리에도 힘이 없었고 심지어 뼈까지 몹시 아팠다.다빈은 그런 지아를 보며 그저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지아 언니, 지금 이미 버텨냈어요. 여섯 번의 약물치료를 모두 끝냈으니 언니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대단하다고요.”지아는 침대에 누워 힘이 없었고 머리가 어지러운 동시에 눈앞이 아찔했다. 그녀는 허약하게 입을 열었다.“다빈아, 나 나가서 햇빛 좀 쬐고 싶은데, 좀 부축해줄래? 너무 오랫동안 누워 있었던 거 같아서.”“좋아요.”다빈은 휠체어로 지아를 밀고 밖으로 나왔다. 남반구에 있는 나라는 이제야 겨울에 접어들었다.이곳의 온도는 A시보다 훨씬 따뜻해서 가장 추운 시기에 처해 있어도 시내에 눈이 내리지 않았다.겨울날의 햇빛이 몸에 따스하게 떨어지자, 지아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손으로 머리 위의 약간 눈부신 빛을 가렸다.“지아 언니, 두려워하지 마요. 지금 비록 많은 부작용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지만, 그것도 다 정상이니까요. 언니는 아직 젊어서 새로운 세포가 번식하는 속도가 아주 빠르니까, 이제 천천히 조리하기만 하면 기껏해야 6개월, 상태가 많이 좋아질 거예요.”“6개월이라...”지아는 가볍게 중얼거렸다.‘하지만 난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는 것 같은데.’날짜를 계산해 보면 지아의 두 아이는 이미 한 살 반이 되었다.‘한 살 반의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이제 엄마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겠지? 여기저기 막 뛰어다닐 수 있겠지?’‘미숙아라서 또래 아이들보다 작고 야윌지도 몰라.’‘미숙아를 살리려면 엄청 힘들었을 텐데. 전효 씨는 틀림없이 많은 신경을 쏟았을 거야.’속으로 고통 속에서 그냥 죽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할 때마다, 지아는 자신이
아픈 나날은 하루하루가 고통이었지만 지금 지아는 무려 한 달 이상 더 기다려야 했다.지아는 한숨을 쉬었다. ‘전효 씨에게 하루빨리라도 연락했으면 좋겠는데. 아이들 사진만 볼 수 있어도 좋으니까.’그러나 전효는 신분이 특수했고, 지아도 예전의 번호를 감히 사용할 수 없었기에 그와 연락이 닿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애가 타는 기다림 끝에 도윤은 마침내 지아의 새로운 영상을 볼 수 있었다.지아는 이미 여러 날 정원에 나오지 않았는데, 몸이 매우 허약한 게 확실했다. 심지어 오늘 밖으로 나왔어도 그저 휠체어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도윤은 손가락으로 스크린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지난번에 비해 지아는 살이 또 좀 빠진 것 같았다. 얼굴에는 살이 하나도 없었고, 뾰족한 턱에 특히 그 두 눈은 더욱 무서울 정도로 컸다.“이번이 여섯 번째 치료겠지?”“네, 이번이 마지막 약물치료입니다. 사모님은 이제 조리만 잘하시면 되고요.”“지아라면 계속 남에게 신세를 지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 몸이 조금만 좋아지면 바로 떠날 수 있으니 사람 시켜 별장 주변을 잘 지키라고 해.”“네, 대표님. 이제 나가시죠”도윤은 이미 귀국한 지 반년이 되었는데, 예전에 종래로 그 어떤 활동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도윤은 틈틈이 시간을 내서 비즈니스 연회나 자선에 관한 활동에 참가하곤 했다.도윤은 심지어 스스로 암 환자를 돕는 자선기금을 설립하여 병을 앓고 있으면서 돈이 없는 많은 불쌍한 사람들을 도왔다.기자들 역시 도윤의 일에 대해 앞다투어 보도하였고, 지아도 자주 뉴스에서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도윤은 전보다 더욱 야위었을 뿐만 아니라 안색도 무척 나빴다. 지아의 죽음은 그에게 큰 타격을 입힌 게 분명했다. 하지만 후회약이 또 어딨겠는가?지금 지아가 도윤을 주목하는 이유는 단지 그가 국내에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일 뿐, 사랑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그래야 지아도 안심하고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이것은 도윤이 최근에 참가한 다른 한 자선 연회였다.
이 말을 듣자, 지아는 놀라서 손이 미끄러지더니 휴대전화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땅에 떨어뜨렸다. 쿵 하는 소리에 건우와 전화를 하고 있던 다빈은 깜짝 놀라 얼른 전화를 끊고 지아를 바라보았다.“지아 언니, 왜 그래요?”지아의 얼굴은 백지창처럼 창백했다.“아무것도 아니야.”다빈은 지아를 대신해서 핸드폰을 주웠고, 생방송 화면은 마침 도윤의 얼굴에 고정되었다.다빈은 핸드폰을 닦은 다음 지아에게 건네주며 위로했다.“지아 언니, 걱정하지 마요. 그 사람은 지금 언니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거 모르니까 이제 그만 두려움에서 벗어나요.”다빈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이도윤이 도대체 지아 언니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지금까지도 언니가 이렇게 두려워하는 것일까?’지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론 여전히 매우 두려웠다. 지아는 자꾸만 도윤이 그녀가 죽지 않았단 것을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응, 그 남자는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 리가 없어.”지아는 중얼거리며 마음속으로 계속 자신을 설득했다. ‘만약 이도윤이 정말 알고 있다면 어떻게 날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있겠어? 아마 진작에 사람 시켜 날 잡아갔겠지.’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도윤의 성격이 아니었기에 지아도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지아는 서둘러 생방송을 껐다. ‘다 이도윤 때문에 내가 이런 트라우마가 생긴 거야.’그 후 지아의 상태는 나날이 좋아졌다. 건우는 특별히 그녀에게 많은 유용한 의학 서류를 가져다주었는데, 앞으로 지아가 완치되면 여전히 의사로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눈 깜짝할 사이에 한 달이 지났고, 지아는 이미 휠체어 없이 스스로 침대에서 내려와 활동할 수 있었다.이번 달에 들어서자, 지아는 구토나 어지럼증이 많이 줄어들었고, 건우도 특별히 비밀 통로를 열어줘 밤중에 병원에 가서 몰래 MRI 검사를 해주었다.한밤중의 병원은 말이 안 될 정도로 조용했고, 각종 기기나 설비도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지아는 평온하게 침대에 누운 다음 30분이 지나서야 검사실에서
지아는 두 사람의 진지하면서도 단순한 얼굴을 마주하며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그동안 지아는 많은 좌절을 겪었고 또 많은 나쁜 사람들을 상대했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자신을 도와주는 착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면서 지아도 그리 재수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적어도 이번에 행운의 여신은 지아를 선택했다.“그래, 하지만 난 지금 많이 좋아졌으니까 다빈이 너도 이제 그만 병원에 출근해. 더 이상 날 돌볼 필요가 없어.”“하지만...”“난 이미 마음먹었어. 더 이상 두 사람이 날 위해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싶지 않아. 너무 미안하니까. 그리고 여긴 다빈이 네 신혼집이잖아. 내가 어떻게 계속 지낼 수 있겠어? 나 혼자서 지낸다면 작은 아파트 하나면 되고, 요리해 주는 아주머니만 있으면 돼. 그리고 평소에 난 혼자 내려가서 산책할 수 있고.”건우는 지아가 이런 사소한 일로 고민하게 하고 싶지 않아 바로 승낙했다.“알았어, 내가 바로 안배할게.”건우는 아주 빨리 지아에게 새집을 찾아주었는데 대형 평수의 아파트 1층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드나들기 편리하도록 정원까지 있었다.중요한 것은 정원에 꽃이 가득 심어져 있어 보기만 해도 사람 기분 좋게 할 수 있었다.지아는 짐이 별로 없었기에 그날 바로 이사를 갔고, 평소 밥해주던 아주머니도 따라갔다.지아는 이 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번화가에 있어 쇼핑하기에 아주 편리했고 주택단지도 아주 아름답게 가꿔졌다.“지아야, 일단 여기서 지내. 아주머니가 식사 챙겨줄 거야. 그리고 내가 경호원 하나 더 찾아줄게. 혼자 집을 나서는 건 너무 위험하니까.”지아는 거절하려고 생각했지만 지금 자신의 몸이 확실히 많이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휠체어를 쓰지 않으면 기껏해야 5분밖에 걸을 수 없었고 그것만으로도 지아는 이미 기진맥진했다. 만약 아주머니가 밥을 한다면, 그녀 혼자 외출하는 것 역시 많이 불편했다.“그래요, 고마워요.”“고맙다는 말 할 필요 없다고 했잖아. 일단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는지부터 봐, 있다면
지아는 여전히 침착하게 물었다.“돈이 많이 부족한 건가? 집에 다른 식구는 없고?”강욱은 뒤통수를 긁적였다.“있어요. 고향에 제 어머니와 소 몇 마리가 있어요.”“결혼은 안 했어?”“이런 일을 하면서 연애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장가를 가도 마누라 혼자 집에 두고 다시 나와야 하니까 괜히 좋은 사람 붙잡아두고 싶지 않아요”지아는 계속 물었다.“전에 어디서 일했지?”“저는 줄곧 떠돌아다녔어요. 어린 시절 집안이 가난해서 성인이 됐을 때, 군대에 들어갔어요. 제대 후 또 수많은 곳에서 일해봤는데, 카지노, 나이트클럽, 개인 보디가드, 싸움꾼, 아무튼 돈만 벌 수 있다면 더러운 일, 힘든 일 모두 다 해봤어요.”“여기 오기 전에는?”지아는 더 이상 예전의 착하고 명랑한 소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차분하게 묻고 있었지만 몸에는 차가운 카리스마를 풍기고 있었다.그동안 너무나도 많은 일을 겪었기에 지아도 더는 쉽게 사람을 믿지 않았다.강욱 역시 침착하게 대답했다.“카지노에서요. 저는 사장님 밑에서 일하는 사채업자의 싸움꾼이었어요.”“카지노에서 일하면 수입이 괜찮았을 텐데, 왜 그만뒀어?”“그렇긴 하지만 제가 큰 잘못을 저질렀거든요.”“잘못? 한 번 말해봐.”“제가 사람들 데리고 돈 받으러 갔는데, 상대방은 가정 형편이 많이 어려워서 약속 시간 내로 돈을 갚지 못했기에 그 남자 아내가 나이트에 가서 일하며 빚을 갚아야 했거든요. 당시 그들의 딸이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사정을 했고, 저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서... 그렇게 카지노에서 잘렸어요.”건우도 따라서 말했다.“안심해. 내가 미리 조사해 봤는데 이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현지 우두머리의 미움을 사서 어쩔 수없이 이곳으로 온 거야. 그것도 내 믿을 만한 친구가 소개해 줬거든. 그리고 날렵해서 널 잘 보호할 수 있어.”지아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럼 앞으로 넌 이곳에 남아서 일해.”지아의 태도는 미적지근했고, 심지어 몇 가지 규정까지 세웠다.지아의
그렇게 평범한 두 주일이 지나갔다. 지아는 강욱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이 사람은 집에 있을 때, 거의 아무런 존재감도 드러내지 않았다.오전에 지아가 집 안에 있으면 남자는 정원으로 나갔고, 안방은커녕 강욱은 거실조차 들어가지 않았다.지아가 밤에 잠든 후에야 강욱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지아가 깨어났을 때, 강욱은 이미 정원에서 아침 운동을 하고 있었다.지아는 외출하고 싶을 때, 강욱을 불렀고, 그는 휠체어를 밀면서 그녀를 데리고 마트에 가거나 때로는 동네를 돌아다녔다.필요한 말로 입을 여는 것 외에 강욱의 말은 아주 적었고, 가끔 지아는 이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렸다.그러던 어느 날, 강욱이 갑자기 거실 바깥의 유리문을 두드렸다.지아는 문을 열더니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야?”남자의 무뚝뚝한 얼굴에 쑥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아가씨, 제가 방금 밖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는데, 너무 불쌍해 보여서요. 제가 키우면 안 될까요?”지아는 책을 내려놓더니 좀 의아해했다.“고양이?”강욱은 우물쭈물거리며 뒤로 한 두 손을 꺼냈다. 그의 손은 아주 컸지만 그 고양이는 아주 작았다.그것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하얀 새끼 고양이였는데, 어떤 동물에게 물렸는지 귀에 작은 상처가 있었다. 자세히 보면 선명한 이빨 자국을 볼 수 있었다.지아는 고양이를 보자마자 눈물을 참지 못했다.눈동자의 색깔이나 귀에 있는 상처는 모두 하루와 똑같았다.지아는 지붕에서 떨어져 자신의 발밑에서 숨을 거둔 하루의 차가운 시체를 떠올렸다.“이건...”지아는 가슴이 무척 아파 손으로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려 했지만 또 고양이를 다치게 할까 두려웠다.요 며칠 강욱이 본 지아는 정서가 매우 안정되었고 표정은 역시 항상 침착하고 차분했다.그러나 지금, 지아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심지어 눈살까지 찌푸리고 있었다.“죄송해요, 아가씨. 저는 아가씨가 고양이를 싫어하실 줄 몰랐어요. 지금 바로 밖에 던질게요.”아기
강욱이 말을 마치자, 지아가 머릿속으로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하루가 아니라 도윤이었다.지아는 두려움에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고, 강욱은 천천히 한 마디 덧붙였다.“이게 바로 아가씨가 전에 키우시던 그 고양이일지도 몰라요. 동물들은 이렇게 색다른 방식으로 다시 원래의 주인 앞에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요.”지아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이렇게 생각하니 기분도 좀 좋아졌다.‘사람이든 동물이든 모두 새로운 방식으로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거야.’‘하루도, 나도.’병원에 도착하자, 의사는 세심하게 고양이에게 검사를 했는데, 이를 본 지아는 줄곧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아기 고양이는 저항력이 좋지 않아 밖에서 떠돌다가 고양이 파보바이러스에라도 감염되면 큰일이었다.다행히 의사는 장갑을 벗더니 웃으며 말했다.“안심해요. 고양이는 아주 건강하니까요. 비록 몸은 좀 더럽지만 귀 진드기도 없네요. 이제 샤워 시킨 다음 제때에 백신을 접종하면 돼요.”지아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아가씨,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고양이 데리고 샤워하러 갈게요.”“좋아.”지아는 유리방 밖에서 기다리면서 좀처럼 고양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잃어버린 적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다시 얻었을 때, 지아는 그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아는 여전히 고양이를 품에 꼭 안았고, 마음속으로 이미 이 고양이를 하루로 여겼다.아기 고양이도 지아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지아의 옆에서 놀거나 작은 꼬리처럼 지아를 졸졸 따라다녔다. 심지어 밤에 그녀의 품에 안겨 자야 했다.지아의 마음은 마침내 따뜻함으로 메워진 것 같았다.그러나 자신의 착각인지, 지아는 자꾸 밤에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이런 느낌이 다시 엄습하자, 지아는 문득 눈을 떴지만 방에 아무도 없었다.지아는 커튼을 치지 않아 한눈에 정원을 볼 수 있었다. 정원은 매우 조용했고, 자세히 보니 매화나무 아래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바로 강욱이었다.그러나 그는 지아를 보지 않았고, 그녀의 곁에서 자고 있
‘강욱 씨는 이렇게 정직하고 무던한 사람인데, 내가 왜 이도윤 그 사람과 연계시킨 거지?’“고양이 좋아해?”“네, 어릴 적에 집에서 한 마리 키웠었어요. 다만 시골에서는 선택이 별로 없어서 그냥 남은 밥과 반찬을 먹였죠.”지아는 요 며칠 줄곧 표정이 차가웠고 큰 변화가 없었는데, 이 말을 듣고서야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좋아하면 앞으로 많이 놀아줘. 고양이는 활기가 많고 난 몸이 그다지 좋지 않아 오랫동안 놀아줄 수 없거든.”지아는 다리가 여전히 좋지 않아 쪼그리고 앉을 수 없었다. 게다가 심하게 움직이면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지곤 했다. 다행히 하루는 평소 얌전하게 그녀의 다리에 누워 지아와 함께 있어줬다.강욱은 또다시 머리를 긁적였다.“괜찮으시다면 전 하루를 돌볼 수 있어요.”“그럼 부탁할게.”“에이, 부탁은 무슨. 그런데 아가씨는 계속 여기에 앉아 계실 건가요?” 강욱은 지아를 바라보았다.“응.”“잠깐만 기다리세요.”강욱은 거실에 가서 담요를 가져와 지아에게 걸쳐주었다.“임 선생님이 아가씨의 몸이 아주 약하다고 하셨어요. 이곳은 겨울에 비록 눈이 내리지 않지만 그래도 많이 추우니까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세요.”지아는 담요를 보며 멈칫하더니 마음속으로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그리고 고개를 들자, 강욱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 아가씨, 제가 뭐라도 잘못했나요?”지아는 고개를 저었다.“그냥 옛 생각이 나서 그래.”모처럼 오늘 저녁에 지아가 말을 하자, 강욱은 대담하게 물었다.“무슨 생각인데요?”“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넌 날 무척 관심하고 있는데, 나와 사이가 무척 가까운 사람은 오히려 끊임없이 날 아프게 했어. 이게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강욱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풀밭에 앉아 고양이와 놀아주며 입을 열었다.“어린 시절, 저는 암컷 고양이를 하나 키웠어요. 그때 고양이가 임신해서 배가 하루하루 커지는 것을 보고 저는 매일 귀여운 고양이 몇
이예린은 비록 나이가 많지 않았지만, 노련한 태도로 전혀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새로운 곳에 와서 그런지 잠이 안 오네요. 좀 걸으려고요.” “네 오빠도 여기 있잖니. 그 아이가 네가 나가는 걸 보면 분명히...” 이예린은 곧장 심예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오빠가 제 손발이 이미 회복된 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세요?” “오빠가 정말 저를 죽이고 싶었다면, 이미 3년 전에 끝냈을 거예요. 하지만 오빠는 누군가처럼 사랑에 눈이 멀어버리는, 마음 여린 사람이라고요.” 당시 도윤은 예린을 죽이지 않고, 단지 손과 발의 힘줄을 끊어버렸다. 그것만으로 지아를 위해 복수를 한 셈이었다.더구나 지아는 죽지 않았기에, 도윤은 더 이상 예린을 해치지 않았다.“너는 전혀 우리를 닮지 않은 모양이구나.”예린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러게요.”사실, 사랑에 눈이 멀어버리는 것은 그들 가문에 흐르는 피와 같았다.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도윤도 그러했으며, 예린도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시후가 예린을 구해준 순간부터, 예린은 자신의 목숨이 영원히 시후의 것임을 알았다. “그래, 주변에서만 걸어 다니렴. 괜한 문제는 일으키지 말고.” “알겠어요.”예린은 몇 발짝 걸어가다가 멈추더니, 뒤돌아 심예지를 바라보았다.“엄마.”심예지는 온몸이 굳어버렸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예린을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니?” 심예지는 지난 몇 년 동안 예린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었지만, 예린은 늘 과묵했으며, 좀처럼 말하지 않았다. 예린은 태도마저 차갑고 무관심했기에, 심예지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저 여생 동안 속죄할 기회가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심예지는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았는데, 예린의 입에서 나온 ‘엄마’라는 단어는 너무나 큰 의미를 지니는 듯했다.심예지는 그 자리에서 눈물이 차올랐고, 다시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뭐... 뭐라고?”“엄마.”이번에는 예린
전화를 받은 이예린은 당황해서 더듬거리며 말했다.[말씀만 해주세요. 제 목숨을 구해주셨으니,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불 속이라도 뛰어들겠어요.]이 대답은 시후가 예상한 대로였다. 과거에도, 그리고 얼마 전에 재회했을 때도, 예린은 시후를 볼 때마다 두려워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평소의 당당한 이예린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시후는 연애 경험은 없었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다양한 유형의 여성을 접해왔다. 그래서 예린이 단순히 자신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것 외에도, 깊은 연모의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예린이 이씨 가문의 아가씨라 할지라도, 시후 앞에서는 늘 자신감 없는 태도를 보였으니 말이다. 예린은 시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며, 늘 자격지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시후는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제가 선생님의 아버지를 구출하라는 말씀이시죠?] “그래, 할 수 있겠어?”시후는 예린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았지만, 속으로는 그녀가 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예린은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어려울 순 있겠지만, 반드시 해낼게요.]예린은 나이가 어리지만 결단력이 있었다. 예린의 대답에 시후는 한결 안도했다.“뭐든 얘기해줘. 최선을 다해서 널 도울게.”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저 혼자로도 충분하니까요. 사람이 많아지면 오히려 적에게 이상한 낌새만 줄 뿐이에요.]시후는 곧 이예린의 놀라운 능력을 직접 보게 되었다. 예린은 명석한 두뇌와 치밀한 계획, 냉혹하면서도 질서 정연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다. 만약 예린이 적이었다면, 정말로 두려운 상대가 되었을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양지운이 시후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떻게 됐습니까?” “우리 사람들을 철수시켜.” “그 여자의 말을 믿으시는 거예요? 오랜 세월 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인데요.” 시후는 길가에 떨어진 나뭇잎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때로는 은혜 하나만으로도 평생 기억되는 법이지
이 말을 할 때 조경선의 얼굴은 거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고, 입가에는 미친 듯한 웃음이 번졌다.“꼭 살아남아서, 그 모든 걸 똑똑히 지켜보도록 해.” 조경선은 다시 소임호에게 영양제를 주사했다. 소임호는 침대에 누운 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는데, 조경선과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남은 힘을 모두 소진한 것 같았다. 소임호가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병약한 모습을 보자, 조경선은 결국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조경선은 수년간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계획해 왔다.조경선이 상상했던 장면은 소임호가 무릎을 꿇고 자신에게 애원하며 사과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소임호를 붙잡고 나서도, 소씨 가문이 이렇게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소임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심지어 자살 시도까지 했으니, 조경선의 분노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온 힘을 다해 날린 주먹이 솜사탕에 파묻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조경선의 가슴속은 분노와 억울함으로 가득 찼다. 그토록 오랜 시간 공들여 계획했지만, 조경선은 결국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조경선은 뼛속 깊이 소임호를 증오하면서도, 소임호가 그렇게 약해진 모습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그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소임호는 조경선이 평생 이루지 못한 소원이자,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던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소임호를 미워할수록 사랑도 더 깊어졌기에, 조경선은 소임호를 죽이기보다는 그가 자신에게 굴복하며 돌아오기를 원했다.해가 저물 무렵.조경선은 잠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별장 안팎에 놓인 꽃들과 각종 장식은 사실 특정한 용도로 설계된 것이었다. “침입자 발견! 침입자 발견!”기계음이 별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조경선은 두 눈을 번쩍 뜨며 침대 옆 협탁에서 가면을 꺼내 얼굴에 썼고, 입가에 음흉한 웃음을 그렸다. “감히 여길 들어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한 모양이지?”조경선이 손을 한 번 흔들자, 벽에 설치된 스크린에 실시간 CCTV 화면이 투사되
지아는 멍하니 서 있다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진봉을 바라보며 물었다.“성형?” “예, 성형수술이요.”지아는 그제야 소시월이 왜 자신과 닮았는지, 혹시 소임호와 관련 있는 사람인지 의심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이제야 모든 것이 설명되었으니 말이다. 지아는 손에 든 서류를 훑어보았다.소시월은 13살에 처음 성형수술을 했고, 이후 매년 한 가지씩 성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게다가 20대 중반 이후로는 유지와 보수를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그 시절 소시월은 기숙 학교에 다녔기에, 사람들은 반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가 성장하며 부모를 닮아간다고 생각했을 뿐, 의술의 힘으로 얼굴을 바꿨다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아마 그들이 당시에 지아를 해치지 않은 이유도 그녀의 얼굴을 복제하려 했기 때문일 터.그 후, 지아가 쓸모없어지자 암살 계획을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지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 가짜 얼굴을 한 꺼풀씩 다 벗겨내 주겠어!”“사모님, 만약 그 여자가 사모님을 계속 암살하려던 배후라면, 그 여자의 등에는 분명히 총상이 있을 겁니다. 그날 저희가 사람들을 데리고 갔을 때, 그 여자는 도망치면서 총을 한 발 맞았었죠.” “당장 알아봐!”지아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는데,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생지옥 같은 나날들이 떠오르는 듯했다.비록 도윤이 한때 지아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결국 그 모든 고통은 누군가가 뒤에서 지아의 삶을 철저히 망가뜨린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소시월은 내 자리를 차지하고, 내가 누려야 할 가족의 사랑과 따듯함을 즐겼어. 그것도 모자라서 나를 지옥 속으로 처참히 몰아넣었다고!’지아의 분노는 억누를 수 없을 정도였다. “사모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반드시 모든 진실을 밝혀내겠습니다.” “그 여자를 감시할 사람을 찾아. 최근 움직임이 많아졌으니,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 최대한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해!”“예.”지아는 머리를 짚으며
안타깝게도 지아가 이미 진실을 알아낸 상태였기에, 장민호의 소식은 늦은 셈이었다.“지금 어디에 계세요?”지아가 급히 물었다.‘민호 씨가 이 일에 연루되었는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 [Z국에 있어요. 최근 소씨 가문에 많은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 소식을 알아내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틈을 타서 지아 씨에게 위협이 되는 소시월을 제거할 테니까요.]지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지아는 처음에 장민호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자신의 의도를 눈치챘을까 봐 걱정했지만, 장민호는 아직 그녀가 Z국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다. “죽이면 안 돼요.”[왜요? 그 여자는 지아 씨를 죽이려고 했잖아요. 그런 위험한 존재를 살려두면 지아 씨에게 더 큰 위협이 될 거예요.]지아는 핑계를 댔다.“저는 이미 몇 번이나 그 사람한테 암살당할 뻔했고, 그 소씨 가문의 여섯째 딸이라는 사람과도 만났어요. 우리는 나이도 비슷하고, 국적도 달라서 아무런 원한도 없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왜 저를 죽이려고 했겠어요?” “제 생각엔 누군가 소시월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단지 이용당하는 말일 뿐인 거죠. 그 사람을 죽이는 건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에요. 그 배후의 사람이 진짜 목표니까요...” 지아는 이미 체스판 위의 말이 아니라 말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장민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강인했다.[제가 도울게요.]“위험하지 않겠어요? 너무 위험하다면 하지 마세요. 저는 민호 씨가 다치는 걸 원치 않아요.” [지아 씨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겁니다.]장민호는 마지막으로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제 속죄라고 생각해 주세요.]전화를 끊은 후에도 지아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사건이 윤곽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지만, 주변 상황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특히 소씨 가문이 혼란스러운 지금은 지아가 신분을 밝히기에 적절한 때가 아니었다. 소임호와 조경숙이 자기 친부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지아
병원에서 사고를 당한 시언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아는 일찍이 자신과 시후의 계획을 모두 털어놓았다. 다만, 다른 사람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시후는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고, 시언이 대외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즉, 두 사람이 안팎에서 호응하며 움직이고 있었던 것. 게다가 소임호 또한 차근차근 사건을 조사하며, 여러 정황으로 인해 배후의 흑막이 조경선이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고, 조경선을 끌어내기 위해 자신을 미끼로 삼았다. 하지만 비행기 사고 이후로 소임호와 시후의 연락이 끊겼고, 시언은 며칠 동안 마음을 졸이며 초조해했다. 그런데 조금 전, 다행히도 소임호의 행방을 알아낸 것이었다.시언은 즉시 이 소식을 지아에게 알렸다. 지아는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되자, 시언의 목소리를 듣고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순간적으로 수많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왜 그래, 지아야?”시언은 지아의 침묵에 걱정하며 물었다.“무슨 일 있어?” 지아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말했다.[아니요, 저는 그냥...]하지만 말을 꺼내자 목소리에 눈물 섞인 떨림이 묻어나왔다.시언이 더욱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 있다면 숨기지 마. 우리는 이미 네 의형제가 됐어. 우린 가족이라고. 소씨 가문에 이런저런 일이 생겼다고 해도, 난 널 지킬 거야.”시언의 ‘지킨다’라는 말이 지아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했다.시언은 지아의 정체를 알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이렇게 다정하고 따듯하게 대해주었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만이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유대일 것이었다. 하지만 지아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왜 소씨 가문 사람들은 내 존재 자체를 몰랐을까?’ 현재 지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경숙은 여섯 번째 아이를 낳은 후 과다출혈로 크게 몸이 상해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고 했다.‘가족이 내 존재를 모를 리가 없는데.’ ‘게다가 시영 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남은 건 소시월 뿐이야.’‘소시
소임호는 눈앞의 광기 어린 조경선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조경선, 그동안 정말 행복했니? 그렇게 애써 계획해서 네가 얻은 건 뭐지?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든 우리는 모두 패배자라고!” “틀렸어.”조경숙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그 당시의 나는 얼굴도 망가지고, 족보에서 제명되고, 가족들에게도 내쳐졌어. 나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데, 조경숙은 왜 모든 걸 가져야 해? 시골에서 돌아온 한낱 촌뜨기가 어떻게 나를 대신할 수 있었냐고!” “그래, 난 패배자야. 하지만 너희도 내 시체 위에 서서 잘난 척할 수는 없을걸? 우리 두 쪽 다 망가지는 게 내 승리니까!” 조경선이 고개를 숙여 소임호를 살펴보며 말했다.“당신 꼴을 좀 봐. 떠돌이 개랑 다를 게 뭐야? 참 안쓰럽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야.”“곧 소씨 가문은 완전히 망가질 거야. 나는 당신을, 그리고 소씨 가문을 반드시 파멸시키고 말 거야!” “너 정말 미쳤구나.”“그래, 난 미쳤어.”“하지만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이젠 내가 겪었던 고통을 당신이 똑똑히 느껴야 할 차례야. 당신도 알겠지만,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경숙은 이제 심세호의 여자가 됐어. 정말 가슴 아프지 않아?” “참, 그건 모르지? 소씨 가문의 노친네는 이미 죽었고, 당신 아들들도 곧 당신과 함께 무덤으로 갈 거야!” “조경선, 너는 진짜 인간 말종이야!” 소임호는 극도로 분노하며 몸부림쳤고, 쇠사슬은 그의 몸부림으로 인해 요란하게 울렸다.하지만 조경선은 소임호의 턱을 잡고 비웃으며 말했다. “왜, 불만이야? 그럼 나한테 빌어봐. 그러면 그 자식들한테 고통 없는 죽음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꿈 깨.”소임호가 냉소하며 말했다.“죽어도 너한테 무릎 꿇을 일은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당신을 죽게 두지는 않을 테니까. 당신이 죽으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처참히 망가지는지 보여줄 수 없잖아. 당신 자식들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거고,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조경숙은 눈이 멀어 다른 남
여자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넌 먼저 돌아가.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 당분간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있어.” “알겠어요.”시월은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라 물었다.“맞다, 아빠는 어떻게 됐어요?” 그 말을 들은 여자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흥, 끝까지 고집불통인 쓰레기 같은 남자. 내가 겪은 교통을 천배, 만 배로 되돌려줄 거야!” 시월의 얼굴에 찰나의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엄마, 이제 그만하면 안 돼요? 우리는 그동안 아빠가 가족도 잃게 하고, 집안도 망가지게 했잖아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충분? 꿈 깨! 이건 그 사람이 나한테 진 빚이라고!” 여자가 소시월의 옷깃을 꽉 잡으며 으르렁거렸다.“경고하는데, 나는 네 어미야. 네가 조금이라도 망설인다면, 나는 절대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엄마, 알겠어요, 나는 엄마의 딸이니까 당연히 엄마 편이에요.” 소시월은 여자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벗어나 두려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그 여자의 정서는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사실, 그녀의 얼굴도 치료를 통해 회복할 수 있었지만, 집착이 너무도 강한 그녀는 치료를 거부했다. “이 고통을 평생 기억하면서 나한테 상처를 준 사람한테 천 배, 만 배로 돌려줄 거야!!” 여자는 평생을 복수 계획에만 몰두하며 살았다. 하지만 소시월이 보기에, 복수를 이루더라도 그녀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었다. 소씨 가문은 지금 엉망진창이 되었기에, 소시월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소시월이 떠난 후, 여자는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지하실로 향했다. 지하실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는데, 여자가 자신의 지문을 입력하자,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서서히 열렸다. 여자는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며 안으로 들어갔고,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는 손과 발이 묶인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여자는 그를 향해 다가가며 광기 어린 집착이 서린 눈빛으로 말했다.“소임호
소지훈이 폭로한 충격적인 사실은 소씨 가문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아에게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출생 비밀을 찾아 헤매던 지아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스스로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되고 말았다. 이전에 소씨 가문 사람들의 고충에 공감했던 지아는 이제 그들이 자기 혈육임을 알게 되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지아는 도윤의 품에서 천천히 미끄러졌고,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아빠, 엄마, 그리고 오빠들이...” 하지만 더욱 지아를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예전에 마주했던 그 시신이 자기 친언니였다는 사실이었다. ‘시영 언니는 너무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어.’ ‘심지어 나는 그걸 전혀 몰랐고, 언니의 마지막 가는 길조차 배웅하지 못했어...’ 지아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지아야!”도윤은 지아를 안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침대에 누운 채 찡그린 표정을 한 지아를 보며 도윤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지아는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어. 그런데 간절히 바랐던 가족마저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다니.’ 무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아의 곁을 지켰다.도윤은 무무를 부드럽게 달래며 말했다.“엄마는 괜찮을 거야. 그냥 과로한 상태에서 큰 충격을 받아 기절한 것뿐이거든.” 한편, 소씨 가문의 황당한 해프닝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으며, 소영수의 장례식은 결국 소씨 가문 사람들의 싸움의 장이 되고 말았다. 겉으로는 소지훈이 이긴 듯 보였으나, 사실 그로 인해 소씨 가문은 체면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시월은 마음이 조급해졌고, 해가 뜨기도 전에 황급히 차를 몰아 오래된 별장으로 향했다. 건물 꼭대기에는 까마귀들이 앉아 있었다.‘까악까악’ 울음소리가 밤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섬뜩하게 들렸다. 장미 덩굴은 낡은 담벼락 위로 기어오르며, 삭막하고 부패한 세상에 한 줄기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새벽이 다가오자, 햇살이 어둠을 찢으며 온 세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