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에 장태원은 충격에 몸이 얼어붙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도윤을 쳐다봤다. “대표님, 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이때, 진봉은 아주 큰 대야 하나를 들고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다칠까 봐 미리 방호용 장갑까지 꼈다.“난 공평을 따지는 사람이야. 이따 나도 실수로 너에게 황산을 뿌릴 건데, 네 능력으로 한 번 피해봐. 하지만 만약 황산에 맞았다면, 내가 괴롭혔다고 원망하지 말고.”장태원은 순간 공포를 느꼈다. 지금 그의 몸은 이미 도윤의 칼에 찔려 많은 상처가 나있었다. 때문에 이대로 황산을 맞는다면 그의 몸은 부식되고 말 것이다.장태원은 무릎을 꿇고 끊임없이 용서를 빌었다. 그는 고개를 조아리며 필사적으로 도윤에게 애걸복걸했다. “대표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황산에 맞으면 저 정말 죽을지도 모릅니다.”도윤은 발로 장태원을 걷어찼다. 그는 묵묵히 장태원을 쳐다보았다. 잠시 후, 그는 이를 갈며 말했다.“너도 황산이 사람을 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구나. 그런데 망설임도 없이 한 여자에게 뿌리다니. 넌 여자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얼굴이라는 것을 모르는 거야? 만약 얼굴이 망가졌다면, 운 좋게 살아남아도 어떻게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장태원은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마구 때렸다.“맞습니다,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그런 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죽어도 마땅합니다.”“그럼 죽어.”도윤은 진봉을 쳐다보았다.“시작해.”도윤은 이미 장태원의 뒷조사를 끝마쳤다. 그는 구제불능의 도박꾼이었고 또 마침 주아담의 팬이었다.일이 터진 후, 그는 인터넷에서 악플을 달았었다. 그때 마침 누군가 그에게 돈을 주면서 지아에게 황산을 끼얹으라고 지시했었다.장태원은 이미 거액의 빚 때문에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위해 복수를 할 수 있고 또 돈까지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장태원은 고민할 것도 없이 그의 제안을 바
YH 그룹의 깔끔한 반격에 하룻밤사이에 그룹의 주가는 폭등했다. 산하의 각 산업 역시 대단한 매출을 달성했다.체인점인 한 마트는 날이 밝기도 전에 고객이 입구에서 지키고 있었다. 주얼리 가게, 옷 가게, 부동산 역시 사람들로 꽉 찼다. 게다가 라이브 방송까지 재촉하는 고객들로 엄청난 트래픽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YH 그룹 산하의 기업이라면 무조건 응원했다.특히 전의 악플러들은 하마터면 지아의 얼굴을 망가뜨릴 뻔하고 또 도윤의 회사를 파산하게 만들 뻔한 것을 알고 자발적으로 YH 그룹 산하의 모든 체인점에 가서 쇼핑을 했다.도윤은 이씨 집안이 대단한 재벌이란 것을 알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얼마나 돈이 많은지는 잘 몰랐다. 오직 도윤만이 100개의 YH 그룹도 이씨 집안의 조상으로부터 축적된 재산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씨 집안은 전 세계 각 업종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것은 오직 이씨 가문 가주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날 주가가 얼마나 증발했는지, 또 어느 백화점이 얼마나 큰 손실을 입었는지, 도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돈을 잃어도 그는 상관없었으니 지금 돈을 버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도윤은 담담하게 휴대폰을 한쪽으로 던진 다음 지아의 곁을 지켰다. 도윤은 재산보다 지아가 더 중요했다. 도윤의 눈빛이 너무 뜨거웠던 탓에 지아는 잠에서 천천히 깨어났다.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부드럽고 다정한 눈빛의 도윤을 발견했다.“좋은 아침이야, 지아야.”도윤은 막 잠에서 깬 지아를 보고 귀여워 어쩔 줄 몰라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지아의 입술에 키스했다. 지아는 저도 모르게 손으로 그의 목을 감쌌다. 그리고 더욱 짙은 키스를 남겼다.그의 과거를 들은 후, 지아는 도윤이 너무 불쌍하다고 여겨졌다.비록 소계훈은 그녀의 친아버지가 아니었지만, 도윤에게서 그녀는 소계훈이 자신을 매우 사랑하고 또 자신이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도윤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관심조차 없었다.그에
지아는 침묵을 지켰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미래에 관한 생각이 아무것도 없었다.그녀는 자신이 마치 절의 스님처럼 속세에 대한 욕망을 잃고 사랑도 미움도 없다고 느꼈다.도윤이 그녀에게 의학을 배우라고 말하자, 지아는 좋다고 했다. 사실 그녀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의학을 배우든 회사 경영을 배우든 다 괜찮았다.지아가 대답이 없어도 도윤은 오히려 화를 내지 않고 그녀의 귓볼을 만지며 진지하게 말했다.“지아야, 난 너와 달라. 과거든 미래든 내 마음속은 전부 너야.”옷을 입은 다음, 도윤은 지아의 미간에 키스를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지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아무런 감정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도윤을 배척하지 않았지만 그를 사랑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곧 A시를 떠날 것이다. 지아도 이곳에 대해 별다른 미련은 없었다.그 후 며칠 동안 도윤은 매일 날이 밝기도 전에 외출을 하고, 저녁에는 꼭 제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와 지아와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후, 도윤은 그녀와 함께 영화를 보기도 했다. 테이블 위의 꽃은 날마다 바뀌었지만 그는 지금까지 반지를 뺀 적이 없었다. 심지어 눈빛에는 여전히 그녀를 향한 애정이 넘쳐흘렀다.떠나기 하루 전, 도윤은 지아를 껴안고 물었다.“지아야, 더 하고 싶은 일은 없어? 이번에 출국하면 조만간 돌아오지 못할 텐데.”지아는 깔끔하게 대답했다.“없어.”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이것이 바로 전에 도윤이 원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오히려 불안했다. 그는 왜 이런 감정이 생기는 건지 몰랐다.도윤은 곧 마음을 가다듬고 묵묵히 모든 일이 좋아질 것이라고 믿었다. ‘몇 년 후, 지아가 지금의 생활을 즐기기 시작하고 또 위험이 사라지면 우리 일가족은 한자리에 모일 수 있을 거야.’떠나는 날, 밖에는 또다시 큰 눈이 내렸다. 장씨 아주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녀는 지아와 작별인사를 했다. 지아는 미리 준비한 돈봉투를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10여 시간의 긴 비행을 거쳐, 비행기는 마침내 무사히 공항에 착륙했다.지아는 안대를 벗고 기지개를 켜며 뻣뻣해진 손발을 움직였다.X국은 지구 다른 반구에 위치해 있어 기온은 A시와 정반대였다.A시는 지금 큰 눈이 흩날리고 있었지만, X국의 수도 S시는 날씨가 봄처럼 따뜻했다. 바닷바람은 맑기 그지없는 공기를 불어왔다.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지아는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VIP 통로 입구에는 검은색 양복을 입은 조지용이 일찌감치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도련님, 고생하셨습니다.”그의 눈빛은 그제야 지아에게 떨어졌다. 조지용은 그녀를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가씨,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지아는 중년 남자의 눈빛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지아는 타고난 직감으로 조지용이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지아도 별로 나서고 싶지 않았기에 조지용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한 뒤 먼저 자리를 떠났다.도윤은 불쾌한 눈빛으로 차갑게 남자를 바라보았다.“눈이 먼 거야? 차라리 장님으로 살지 그래?”조지용은 소름이 돋았다. 그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뒤에 있던 진봉은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조 집사, 오기 전에 우리 형이 미리 말했잖아. 그런데 지금 정말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거야? 아가씨? 허.”“가자.” 진환은 진봉의 어깨를 두드리며 소란 피우지 말라고 했다. 조지용은 이씨 가문 큰 사모님의 사람이었다. 그녀가 지아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조지용이 이런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도윤은 재빨리 앞으로 걸어가서 지아의 손을 잡았다. 그는 낮은 소리로 설명했다.“전에 우린 비밀 결혼을 했기에 조 집사가 널 몰랐던 거야.”“이제 날 알았겠지.”지아도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예비 시어머니는 날 좋아하지 않는 것 같군.’도윤은 고개를 돌려 지아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공항의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능숙하게 음식을 주문했다. 조지
얼마 전에 막 깨어났을 때, 지아는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지아는 마치 길을 잃은 어린 양 같았고, 말투는 무척 억울했다. 그러나 지금, 지아는 자신감으로 넘쳐났다.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싫어해도 괜찮아, 어차피 앞으로 나와 같이 살 사람은 너니까.”말을 마치자마자 지아는 성큼성큼 레스토랑을 나섰다. 도윤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아이와 가족이 없는데도 이렇게 무사하다니.’비행기에서 잠을 충분히 잤기에 새로운 곳에 도착했는데도 지아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발걸음도 많이 가벼워졌다. 앞에서 소녀처럼 깡충깡충 뛰던 지아에게서 작년의 그런 의기소침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특산물을 파는 가게를 지날 때, 지아는 도윤에게 맛있는 특산물 좀 사오라고 지시했다.날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조지용은 불만이 있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지아가 도통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지아는 자신이 전에 너무 오래 틀어박혀 있었기에 새로운 곳에 오니 이렇게 흥분하고 기뻐하는 것이라고 느꼈다.도윤이 특산물을 사고 있을 때, 지아는 몸을 돌려 다른 한 가게에 들어섰다. 그렇게 쇼핑한 물건을 가득 들고 계산하러 나왔을 때, 지아는 그만 한 사람과 부딪치고 말았다.손에 든 물건이 바닥에 떨어졌다. 잠시 후, 온화하고 우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미안해요.”‘익숙한 목소리 같은데.’“괜찮아요.” 지아는 주우면서 대답했다.그러다 같은 과자를 주웠을 때,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고, 임건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지아야, 여기서 널 만날 줄은 몰랐어. 병은 다 나은 거니?”지아는 어찌된 일인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누구시죠?”‘병이라니, 나에게 언제 병이 생긴 거지?’지아가 더 묻기도 전에 한 예쁜 여자가 다가와 임건우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건우 선배 빨리요, 곧 탑승해야 하는데. 뭘 꾸물거리는 거예요?”임건우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너와 이야기할
이씨 가문은 S시 교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은 경치가 수려하고 환경 역시 아주 좋았는데 사방은 온통 여러 가지 식물로 뒤덮였다.얼마 전에 가랑비가 내려서 그런지 공기 중에는 비가 내린 후의 식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맑은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도시의 등불도 매우 특색이 있었다. 별처럼 생긴 등불이 높은 식물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그중에는 버섯, 호박 또는 각종 동물, 요정 모양의 등불도 적지 않았다.도시라기보다 또 다른 환상의 세계에 진입한 것 같았다.그들이 도착했을 때, 시간은 이미 저녁 8시였다.이씨 가문은 수십 개의 작은 별장들로 가득할 정도로 아주 컸다. 하지만 밤에는 길가의 꽃가지가 잘 다듬어진 윤곽만이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공기 중에는 짙은 꽃향기가 가득했다. 차가 지나가자 길가의 새들은 깜짝 놀라 날개짓을 했다. 메인 별장은 이 도시의 독특한 풍격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별장 주위는 등불이 환했다.지아는 멀리서 살펴보았다. 이 별장은 그들의 신혼집보다 수십 배는 더 컸고, 특히 정문은 마치 하늘나라로 통하는 것처럼 위엄과 신성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그녀는 부드러운 카펫을 밟으며 도윤을 따라 거실로 들어갔다. 눈에 띄는 모든 인테리어는 눈부시게 화려했다. 지아는 마치 왕궁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시선이 닿는 곳곳에는 값비싼 그림, 진귀한 도자기 그리고 골동품이 널려 있었다. 가는 곳마다 웅장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다행히 지아도 재벌 집안 출신이었기에 그다지 흥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좀 불편했다. 왜냐하면 이곳은 집이라기 보단 오히려 박물관 혹은 왕궁 같았지 사람이 사는 곳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윤의 표정은 아주 진지했다. 지아는 그가 자신을 데리고 집에 돌아온 것이 아니라 마치 곧 제사를 지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지아조차 영문도 모른 채 긴장하기 시작했다.오는 길에 그녀는 도윤의 어머니에 대해 거의 묻지 않았다. ‘오늘 두 사람이 만나면 도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지아는 호
지아는 이미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어차피 그녀도 도윤의 어머니에게 인사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면 바로 떠나면 됐다.그러나 심예지가 말을 하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먼저 울렸다.“예지 이모, 도윤 오빠가 돌아온 거예요?”2층 모퉁이에 익숙한 그림자가 나타났는데, 그녀는 바로 얼마 전 국내에서 만난 유진이었다.도윤은 유진의 목소리를 듣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유진은 재빨리 심예지의 곁으로 가서 다정하게 그녀의 팔을 안았다.“도윤 오빠, 이 2년 동안 난 줄곧 예지 이모와 함께 있었어요.”지아는 마침내 그때 유진이 큰소리칠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전에 이것을 말하고 싶었나 보군.’유진의 비장의 카드가 바로 심예지였다. 이번에 심예지가 먼저 도윤을 만나자고 한 것도 아마 그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일이 이렇게 되다니.’그러나 지아는 질투나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추측하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공항에서 배불리 먹고 온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저녁 그녀는 또 굶을지도 모른다.그래서 지아도 유진과 싸울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조용히 일이 마무리 되기만을 기다렸다. ‘설마 내가 도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로 날 공격하려는 건가?’지아는 생각에 잠겼다. ‘만약 내가 헤어지지 않으려고 한다면, 도윤의 어머니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유진은 득의양양하게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심예지는 도윤을 재빨리 훑어본 다음, 지아를 조용히 살펴보았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그녀는 마침내 차갑게 입을 열었다.“밥 먹자, 음식 다 식겠어.”유진은 좀 서운했다. 그녀는 자신이 2년 동안 정성껏 심예지를 모셨으니, 지금 망설이지 않고 그녀의 편에 설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오늘 심예지도 지아
지아가 무슨 뜻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심예지는 자리를 떠났다. 지아는 도윤을 향해 눈을 깜빡이며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네 어머니는 도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제대로 된 S시 요리 먹으러 가자.” 도윤은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잡고 식탁으로 걸어갔다.심예지는 이미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눈빛은 도윤과 지아의 맞잡은 손에 떨어졌다. 그 순간, 그녀는 멈칫했다.유진은 그릇을 들고 올 때, 도윤이 지아를 위해 의자를 당기는 것을 보았다. 지아가 앉은 후에야 그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장 멀리 있는 애피타이저를 지아 앞에 놓았다.만약 도윤이 밖에서 일부러 보여주기 식으로 지아를 챙겨주는 것이라면, 이곳에서 굳이 연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두 사람이 원래 커플처럼 지냈다는 것이다.유진은 원래 도윤의 호감을 얻으려고 했는데 도윤이 지아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보면 그녀는 이씨 집안의 셰프와 별 차이가 없었다.그녀는 그릇을 내려놓고 억울한 표정으로 지아를 바라보았다.“지아 씨, 난 정말 지아 씨가 부럽네. 도윤 오빠에게 시집갔는데도 자신을 손님으로 생각하다니.”유진은 지아를 비웃고 있었지만 지아는 화를 내지 않고 방긋 웃으며 말했다.“어쩔 수 없네요. 전 태어날 때부터 이런 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하지만 유진 씨는 요리 솜씨가 뛰어나고 마음도 착하고, 게다가 고용인보다 요리를 더 잘하잖아요.”지금 지아가 자신이 공짜로 일하고 있다고 모욕하는 것을 보고, 유진은 더욱 불쌍한 척했다.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도윤을 바라보았다. ‘도윤 오빠도 이제 나와 소지아의 차이를 느낄 수 있겠지. 난 착하고 부지런하고 부드럽고 다정하지만, 소지아는 그냥 게으른 여자일 뿐이잖아.’도윤은 턱을 높이 들더니 차갑게 말했다.“꺼져.”유진은 화가 나서 심예지를 쳐다보았다.“예지 이모, 도윤 오빠 좀.”그러나 심예지 역시 냉담하게 말했다.“밥도 다 되었으니 그만 돌아가 봐.”유진은 눈을
소임호는 눈앞의 광기 어린 조경선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조경선, 그동안 정말 행복했니? 그렇게 애써 계획해서 네가 얻은 건 뭐지?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든 우리는 모두 패배자라고!” “틀렸어.”조경숙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그 당시의 나는 얼굴도 망가지고, 족보에서 제명되고, 가족들에게도 내쳐졌어. 나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데, 조경숙은 왜 모든 걸 가져야 해? 시골에서 돌아온 한낱 촌뜨기가 어떻게 나를 대신할 수 있었냐고!” “그래, 난 패배자야. 하지만 너희도 내 시체 위에 서서 잘난 척할 수는 없을걸? 우리 두 쪽 다 망가지는 게 내 승리니까!” 조경선이 고개를 숙여 소임호를 살펴보며 말했다.“당신 꼴을 좀 봐. 떠돌이 개랑 다를 게 뭐야? 참 안쓰럽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야.”“곧 소씨 가문은 완전히 망가질 거야. 나는 당신을, 그리고 소씨 가문을 반드시 파멸시키고 말 거야!” “너 정말 미쳤구나.”“그래, 난 미쳤어.”“하지만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이젠 내가 겪었던 고통을 당신이 똑똑히 느껴야 할 차례야. 당신도 알겠지만,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경숙은 이제 심세호의 여자가 됐어. 정말 가슴 아프지 않아?” “참, 그건 모르지? 소씨 가문의 노친네는 이미 죽었고, 당신 아들들도 곧 당신과 함께 무덤으로 갈 거야!” “조경선, 너는 진짜 인간 말종이야!” 소임호는 극도로 분노하며 몸부림쳤고, 쇠사슬은 그의 몸부림으로 인해 요란하게 울렸다.하지만 조경선은 소임호의 턱을 잡고 비웃으며 말했다. “왜, 불만이야? 그럼 나한테 빌어봐. 그러면 그 자식들한테 고통 없는 죽음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꿈 깨.”소임호가 냉소하며 말했다.“죽어도 너한테 무릎 꿇을 일은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당신을 죽게 두지는 않을 테니까. 당신이 죽으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처참히 망가지는지 보여줄 수 없잖아. 당신 자식들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거고,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조경숙은 눈이 멀어 다른 남
여자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넌 먼저 돌아가.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 당분간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있어.” “알겠어요.”시월은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라 물었다.“맞다, 아빠는 어떻게 됐어요?” 그 말을 들은 여자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흥, 끝까지 고집불통인 쓰레기 같은 남자. 내가 겪은 교통을 천배, 만 배로 되돌려줄 거야!” 시월의 얼굴에 찰나의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엄마, 이제 그만하면 안 돼요? 우리는 그동안 아빠가 가족도 잃게 하고, 집안도 망가지게 했잖아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충분? 꿈 깨! 이건 그 사람이 나한테 진 빚이라고!” 여자가 소시월의 옷깃을 꽉 잡으며 으르렁거렸다.“경고하는데, 나는 네 어미야. 네가 조금이라도 망설인다면, 나는 절대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엄마, 알겠어요, 나는 엄마의 딸이니까 당연히 엄마 편이에요.” 소시월은 여자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벗어나 두려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그 여자의 정서는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사실, 그녀의 얼굴도 치료를 통해 회복할 수 있었지만, 집착이 너무도 강한 그녀는 치료를 거부했다. “이 고통을 평생 기억하면서 나한테 상처를 준 사람한테 천 배, 만 배로 돌려줄 거야!!” 여자는 평생을 복수 계획에만 몰두하며 살았다. 하지만 소시월이 보기에, 복수를 이루더라도 그녀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었다. 소씨 가문은 지금 엉망진창이 되었기에, 소시월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소시월이 떠난 후, 여자는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지하실로 향했다. 지하실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는데, 여자가 자신의 지문을 입력하자,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서서히 열렸다. 여자는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며 안으로 들어갔고,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는 손과 발이 묶인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여자는 그를 향해 다가가며 광기 어린 집착이 서린 눈빛으로 말했다.“소임호
소지훈이 폭로한 충격적인 사실은 소씨 가문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아에게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출생 비밀을 찾아 헤매던 지아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스스로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되고 말았다. 이전에 소씨 가문 사람들의 고충에 공감했던 지아는 이제 그들이 자기 혈육임을 알게 되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지아는 도윤의 품에서 천천히 미끄러졌고,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아빠, 엄마, 그리고 오빠들이...” 하지만 더욱 지아를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예전에 마주했던 그 시신이 자기 친언니였다는 사실이었다. ‘시영 언니는 너무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어.’ ‘심지어 나는 그걸 전혀 몰랐고, 언니의 마지막 가는 길조차 배웅하지 못했어...’ 지아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지아야!”도윤은 지아를 안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침대에 누운 채 찡그린 표정을 한 지아를 보며 도윤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지아는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어. 그런데 간절히 바랐던 가족마저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다니.’ 무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아의 곁을 지켰다.도윤은 무무를 부드럽게 달래며 말했다.“엄마는 괜찮을 거야. 그냥 과로한 상태에서 큰 충격을 받아 기절한 것뿐이거든.” 한편, 소씨 가문의 황당한 해프닝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으며, 소영수의 장례식은 결국 소씨 가문 사람들의 싸움의 장이 되고 말았다. 겉으로는 소지훈이 이긴 듯 보였으나, 사실 그로 인해 소씨 가문은 체면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시월은 마음이 조급해졌고, 해가 뜨기도 전에 황급히 차를 몰아 오래된 별장으로 향했다. 건물 꼭대기에는 까마귀들이 앉아 있었다.‘까악까악’ 울음소리가 밤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섬뜩하게 들렸다. 장미 덩굴은 낡은 담벼락 위로 기어오르며, 삭막하고 부패한 세상에 한 줄기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새벽이 다가오자, 햇살이 어둠을 찢으며 온 세상의
시하와 시언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완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는데, 도무지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듯했다. 심지어 소시월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이걸... 오빠들은 알고 있었어?”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어.” 소시월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내 계획이 성공하려던 찰나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어. 절대 다른 사람이 내 계획을 망치게 둘 순 없어!’“단지 사진 한 장으로 뭘 증명한다는 거죠? 아빠와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아빠는 비행기 사고로 시신조차 찾지 못했어요. 두 사람의 친자확인도 없이, 대체 무슨 증거를 내놓겠다는 거냐고요!” “이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했던 혈액형 검사야. 두 분은 모두 O형이야. 즉, 두 분은 O형의 자녀만 낳을 수 있다는 뜻이지. 하지만 당신들 아버지는 B형이었어. 혈액형에 돌연변이가 생길 확률이 아주 적다는 건 알고 있겠지? 과연 당신들 아버지가 그 예외일까?” 소지훈은 다시 다른 사진을 꺼냈다.“혈액형 이야기는 우선 접어두자고.”“이건 할아버지의 여러 아들들 사진이야. 우리 아버지와 삼촌, 작은삼촌은 할아버지와 60% 이상 닮았지만, 네 아버지는 전혀 닮은 점이 없어!” 지아는 소임호의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형 스크린에 비춰진 소임호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버렸다. 지아는 이성을 잃고 도윤의 손을 꽉 잡았다.“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많이 본 정도가 아니라, 완전 똑같아!” 두 사람의 대화는 오직 서로만 이해할 수 있었다. 소임호가 부남진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부남진은 나이가 들어 얼굴이 많이 변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젊었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소임호는 분명히 부남진의 젊은 시절을 그대로 닮은 모습이었다. “설마...”지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자신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진실이 이렇게 갑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시언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분노를 참지 못했는데, 그의 손이 여전히 멀쩡했다면, 지금쯤 소지훈의 뺨을 때렸을 것이었다. 시월과 심장후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아는 도윤을 바라보며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거지? 저 사람이 한 말이 사실이야?” 도윤은 고개를 숙이고 지아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방금 들은 소식인데, 이 사진 속 사람을 한 번 봐봐.” 도윤은 핸드폰 속 사진을 열어 서른쯤의 매혹적인 여성을 지아에게 보여주었다. 지아는 그녀의 눈가에 있는 검은 점을 보자마자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 할머니잖아!” 흑백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환희의 모습이 컬러로, 게다가 훨씬 선명한 화질로 나타난 것이었다. “맞아.”지아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혹시 할머니의 행방을 알아낸 거야?” 도윤이 논쟁으로 가득 찬 현장을 보며 말했다.“아마 저 사람들이 답을 줄지도 몰라.” 소지훈의 폭로는 현장을 술렁이게 했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지훈 도련님께서 파문을 일으킬 만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당연하죠, 아무리 무례한 사람이라도 이런 자리에서 저런 말을 할 순 없으니까요!” “어머, 정말 흥미진진한데요?”시월은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오빠, 시언 오빠와 오해가 있는 건 알지만, 그런 거짓말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은 할아버지를 배웅해 드리는 날인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고요.” “할아버지? 허, 네가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야?” “오빠, 적당히 좀 하세요!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웃기지도 않는다고요!” “웃기는 건 너희 같은 잡종들이지!”소지훈이 손뼉을 치며 준비된 프로젝터를 가리켰다.“여러분, 죄송합니다만, 이 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공개하고, 소씨 가문의 족보를 깨끗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죽어서도 소씨 가문에 매달리려는 사람이 없도록 말이죠!” “도대체 숨
밤이 깊어지자, Z국에서 전통적인 가족 고별 의식이 시작되었다.지아는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섞여 소씨 가문의 방대한 자손들과 그들의 복잡한 계보를 바라보았다. 소영수의 직계 자손들 외에도 그의 둘째 동생과 셋째 동생 등의 곁가지 후손들까지 합쳐져, 효성과 의리를 다하는 자식들과 손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별 의식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첫 번째로 향을 올리는 순서는 원래 장남의 몫이었지만, 장남이 사고를 당하면서 그 역할은 둘째에게 넘어갔다. 다른 자손들도 각자 자신의 향을 챙기러 움직였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시언과 시하를 대신해 시월이 나서서 향을 가지러 갔다. 하지만 소시월이 향에 손을 대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냉랭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지훈이었다.“오늘은 가족을 위한 작별의 자리야. 미안하지만, 너는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언이 즉각 반응했다.“소지훈, 적당히 좀 하지 그래? 여긴 할아버지의 영정이 모셔진 자리야. 할아버지께서 편히 눈감지도 못하게 할 작정이야?” ‘예전의 작은 다툼은 다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오늘처럼 외부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저렇게 무례한 말을 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시하는 상대적으로 차분해 보였지만, 그는 이 상황이 단순하지 않음을 직감했다. ‘연예계에서 단련된 소지훈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저런 말을 했을 리 없어. 뭔가 계획이 있는 게 분명해.’ 시하가 둘째 삼촌인 소상현을 바라보았다. 소상현은 아들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소명담의 시신이 발굴되었을 때, 소상현은 자기 친아들이 이토록 오래전에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백발의 노인이 흑발의 자식을 보내는 고통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소상현은 소지훈의 말을 듣고도 아무 말 없이 공허한 눈빛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입을 연 사람은 소상현의 부인인 오연희였다.“시언아, 너무 흥분하는 거 아니니
지아는 물 한 잔을 건네며 시언에게 진정하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는데,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스파이가 누구라는 거예요?” “방금 떠난 사람은 소지훈이에요. 지금은 연예계에서 활동 중인 사람인데, 우리 둘째 삼촌의 막내아들이고, 얼마 전에 죽은 소명담의 동생이기도 하죠.” “그동안 큰형이 다른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던 건, 우리가 모두 한 핏줄이고, 소씨 가문의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가족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누가 감히 가족이 자기 가문을 망가뜨리려 한다고 생각했겠어요?”“그런데 이젠 확실히 알겠어요. 저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한테 원한을 품고 있었던 거라고요.” 지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어르신은 왜 편애하셨던 걸까요?” “원래 황제는 장남을 사랑하는 법이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첫 번째 아이여서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각별히 아끼셨어요. 어쩌면 과도한 애정을 쏟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래서 손자들인 저와 형제들에게도 각별히 대해주셨어요. 사촌들과 다툴 때마다 늘 우리 편을 드셨으니까요. 하지만 그 작은 편애가 쌓여 그 사람들의 원한이 된 거예요.” 지아가 시언의 얼굴에서 깊은 슬픔을 읽으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사연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저 사람이 소씨 가문을 해치려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왜죠?”“세상에 자기 이마에 나쁜 사람이라는 글자를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상대는 10년, 20년을 준비했잖아요. 저 사람보다 더 차분하고 계획적인 사람일 거예요. 소지훈 씨 같은 사람이 그런 일을 꾸몄을 리 없어요.”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그럼...”지아의 표정은 여전히 깊은 뜻을 품고 있었다.“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이미 체스판 위의 말이 된 거예요. 판은 이미 시작되었고요.” 지아의 위로에 시언의 감정도 점차 안정되었다. “대체 우리 큰형과 무슨 계획을 꾸미는 겁니까?” “아무것도 하지
시언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둘째 삼촌의 막내아들인 소지훈이 서 있었다.몇 년 사이, 예전의 어린 철부지는 이제 연예계에서 가장 뜨거운 스타로 떠올라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과거 얽힌 사연도 적지 않았다. 어린 시절, 시언은 1년의 세월을 들여 목각으로 ‘행려풍속도’를 복원했다. 하지만 문제가 일어난 것은 방대한 작업을 간신히 완성했을 무렵이었다. 그것은 바로 시언보다 열 살이나 어린 소지훈이 고용인이 없는 틈을 타 정신없이 놀다가 실수로 작품을 망가뜨린 것.이는 대회 출품을 목표로 하던 시언에게 큰 충격이었고, 그는 동생을 가차 없이 혼내며 매질하고 말았다.두 사람 모두 소영수 내외의 후손들이지만, 둘째 집과 셋째 집은 어릴 적부터 소영수가 장남을 더 편애한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그들의 자식들까지도 소영수에 눈에 들지 못하고, 늘 냉대를 받으며 자랐다. 가문의 중심인 소영수는 이 일에 분노하며 소지훈의 손바닥을 피가 날 정도로 때린 뒤, 그를 사당에 무릎 꿇게 하며 삼 일 밤낮으로 벌을 주었다. 이 사건은 어린 소지훈의 마음에 깊은 원망의 씨앗을 심었다. 이후 시언이 이성을 되찾고 사과했지만, 소지훈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가문의 둘째와 셋째는 사이가 좋았지만, 유독 첫째인 소임호와는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불운한 이는 넷째였다. 그는 심예지와 청소년기를 함께 보냈지만 버림받았고, 그로 인해 사랑에 상처받아 결혼하지 않고 홀로 지내며 자손마저 두지 못했다. 시언이 소지훈의 눈에 담긴 냉소를 보며 말했다.“할아버지께서 생전에 똑똑히 말씀하셨을 텐데? 소씨 가문은 흥망을 같이해야 한다고. 소씨 가문이 이렇게 어려움에 부닥친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니?” 소지훈은 고개를 숙이고 시언의 옷깃을 잡았다.“그거 알아요? 나는 당신 집안이 너무 싫어요. 항상 체면을 차리려는 모습은 역겨울 정도라고요.”“허, 할아버지한테 대체 무슨 마법을 걸었길래 당신들만 그렇게 아낀 거예요? 우리도 분명 소씨 가문 사람이었는데... 지금이라
도윤은 음윤한 심장후에 비해 훨씬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을 자랑해서,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을 때는 대비가 확연했다.한 사람은 강인하고 압도적인 기운을 풍기고, 다른 한 사람은 부드럽고 우아한 매력을 가진 극과 극의 존재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도윤은 시선으로 심장후를 가볍게 스치고 난 뒤,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형님, 제 약혼녀인 소시월입니다.”심장후가 소개했다.“반갑습니다.”도윤의 시선이 닿는 소시월의 얼굴에는 지아와 약간 닮은 점이 있었다. 그 순간, 시월의 눈동자에 긴장이 스쳤고, 그녀는 급히 입을 열었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그렇습니까? 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으신 거죠?”도윤의 질문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했지만, 그 속에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특유의 위엄과 탐색이 깃들어 있었다. 게다가 도윤은 소시월보다 훨씬 키가 컸기에, 그녀를 내려다보는 눈빛에서 압도적인 아우라가 느껴졌다.소시월은 마음을 다잡고 답했다.“이 대표님께서 비즈니스계에서 쌓으신 명성은 제가 Z국에 있을 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이번 기회를 통해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비즈니스에 있어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이제 한 가족이 될 텐데, 앞으로도 많은 지도와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시월의 답변은 빈틈이 없었고, 흠잡을 곳도 없었다.“좋습니다.”도윤은 시선을 돌리고 심규철과 함께 다른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소시월은 극도로 긴장했던 마음을 그제야 풀었지만, 찰나의 눈 맞춤에도 온몸에서 땀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눈빛이 정말 무서웠어. 한 번이라도 나를 더 쳐다봤다면 숨통이 막혔을 것 같다니까?’‘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갑고 카리스마 넘쳤어.’“괜찮아?”심장후가 소시월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 소시월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괜찮아, 손님들이 또 많이 온 것 같던데, 나 먼저 가볼게.”“너무 무리하지는 마.” 소영수는 장례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