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막 깨어났을 때, 지아는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지아는 마치 길을 잃은 어린 양 같았고, 말투는 무척 억울했다. 그러나 지금, 지아는 자신감으로 넘쳐났다.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싫어해도 괜찮아, 어차피 앞으로 나와 같이 살 사람은 너니까.”말을 마치자마자 지아는 성큼성큼 레스토랑을 나섰다. 도윤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아이와 가족이 없는데도 이렇게 무사하다니.’비행기에서 잠을 충분히 잤기에 새로운 곳에 도착했는데도 지아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발걸음도 많이 가벼워졌다. 앞에서 소녀처럼 깡충깡충 뛰던 지아에게서 작년의 그런 의기소침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특산물을 파는 가게를 지날 때, 지아는 도윤에게 맛있는 특산물 좀 사오라고 지시했다.날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조지용은 불만이 있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지아가 도통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지아는 자신이 전에 너무 오래 틀어박혀 있었기에 새로운 곳에 오니 이렇게 흥분하고 기뻐하는 것이라고 느꼈다.도윤이 특산물을 사고 있을 때, 지아는 몸을 돌려 다른 한 가게에 들어섰다. 그렇게 쇼핑한 물건을 가득 들고 계산하러 나왔을 때, 지아는 그만 한 사람과 부딪치고 말았다.손에 든 물건이 바닥에 떨어졌다. 잠시 후, 온화하고 우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미안해요.”‘익숙한 목소리 같은데.’“괜찮아요.” 지아는 주우면서 대답했다.그러다 같은 과자를 주웠을 때,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고, 임건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지아야, 여기서 널 만날 줄은 몰랐어. 병은 다 나은 거니?”지아는 어찌된 일인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누구시죠?”‘병이라니, 나에게 언제 병이 생긴 거지?’지아가 더 묻기도 전에 한 예쁜 여자가 다가와 임건우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건우 선배 빨리요, 곧 탑승해야 하는데. 뭘 꾸물거리는 거예요?”임건우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너와 이야기할
이씨 가문은 S시 교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은 경치가 수려하고 환경 역시 아주 좋았는데 사방은 온통 여러 가지 식물로 뒤덮였다.얼마 전에 가랑비가 내려서 그런지 공기 중에는 비가 내린 후의 식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맑은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도시의 등불도 매우 특색이 있었다. 별처럼 생긴 등불이 높은 식물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그중에는 버섯, 호박 또는 각종 동물, 요정 모양의 등불도 적지 않았다.도시라기보다 또 다른 환상의 세계에 진입한 것 같았다.그들이 도착했을 때, 시간은 이미 저녁 8시였다.이씨 가문은 수십 개의 작은 별장들로 가득할 정도로 아주 컸다. 하지만 밤에는 길가의 꽃가지가 잘 다듬어진 윤곽만이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공기 중에는 짙은 꽃향기가 가득했다. 차가 지나가자 길가의 새들은 깜짝 놀라 날개짓을 했다. 메인 별장은 이 도시의 독특한 풍격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별장 주위는 등불이 환했다.지아는 멀리서 살펴보았다. 이 별장은 그들의 신혼집보다 수십 배는 더 컸고, 특히 정문은 마치 하늘나라로 통하는 것처럼 위엄과 신성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그녀는 부드러운 카펫을 밟으며 도윤을 따라 거실로 들어갔다. 눈에 띄는 모든 인테리어는 눈부시게 화려했다. 지아는 마치 왕궁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시선이 닿는 곳곳에는 값비싼 그림, 진귀한 도자기 그리고 골동품이 널려 있었다. 가는 곳마다 웅장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다행히 지아도 재벌 집안 출신이었기에 그다지 흥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좀 불편했다. 왜냐하면 이곳은 집이라기 보단 오히려 박물관 혹은 왕궁 같았지 사람이 사는 곳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윤의 표정은 아주 진지했다. 지아는 그가 자신을 데리고 집에 돌아온 것이 아니라 마치 곧 제사를 지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지아조차 영문도 모른 채 긴장하기 시작했다.오는 길에 그녀는 도윤의 어머니에 대해 거의 묻지 않았다. ‘오늘 두 사람이 만나면 도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지아는 호
지아는 이미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어차피 그녀도 도윤의 어머니에게 인사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면 바로 떠나면 됐다.그러나 심예지가 말을 하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먼저 울렸다.“예지 이모, 도윤 오빠가 돌아온 거예요?”2층 모퉁이에 익숙한 그림자가 나타났는데, 그녀는 바로 얼마 전 국내에서 만난 유진이었다.도윤은 유진의 목소리를 듣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유진은 재빨리 심예지의 곁으로 가서 다정하게 그녀의 팔을 안았다.“도윤 오빠, 이 2년 동안 난 줄곧 예지 이모와 함께 있었어요.”지아는 마침내 그때 유진이 큰소리칠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전에 이것을 말하고 싶었나 보군.’유진의 비장의 카드가 바로 심예지였다. 이번에 심예지가 먼저 도윤을 만나자고 한 것도 아마 그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일이 이렇게 되다니.’그러나 지아는 질투나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추측하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공항에서 배불리 먹고 온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저녁 그녀는 또 굶을지도 모른다.그래서 지아도 유진과 싸울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조용히 일이 마무리 되기만을 기다렸다. ‘설마 내가 도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로 날 공격하려는 건가?’지아는 생각에 잠겼다. ‘만약 내가 헤어지지 않으려고 한다면, 도윤의 어머니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유진은 득의양양하게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심예지는 도윤을 재빨리 훑어본 다음, 지아를 조용히 살펴보았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그녀는 마침내 차갑게 입을 열었다.“밥 먹자, 음식 다 식겠어.”유진은 좀 서운했다. 그녀는 자신이 2년 동안 정성껏 심예지를 모셨으니, 지금 망설이지 않고 그녀의 편에 설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오늘 심예지도 지아
지아가 무슨 뜻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심예지는 자리를 떠났다. 지아는 도윤을 향해 눈을 깜빡이며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네 어머니는 도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제대로 된 S시 요리 먹으러 가자.” 도윤은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잡고 식탁으로 걸어갔다.심예지는 이미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눈빛은 도윤과 지아의 맞잡은 손에 떨어졌다. 그 순간, 그녀는 멈칫했다.유진은 그릇을 들고 올 때, 도윤이 지아를 위해 의자를 당기는 것을 보았다. 지아가 앉은 후에야 그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장 멀리 있는 애피타이저를 지아 앞에 놓았다.만약 도윤이 밖에서 일부러 보여주기 식으로 지아를 챙겨주는 것이라면, 이곳에서 굳이 연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두 사람이 원래 커플처럼 지냈다는 것이다.유진은 원래 도윤의 호감을 얻으려고 했는데 도윤이 지아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보면 그녀는 이씨 집안의 셰프와 별 차이가 없었다.그녀는 그릇을 내려놓고 억울한 표정으로 지아를 바라보았다.“지아 씨, 난 정말 지아 씨가 부럽네. 도윤 오빠에게 시집갔는데도 자신을 손님으로 생각하다니.”유진은 지아를 비웃고 있었지만 지아는 화를 내지 않고 방긋 웃으며 말했다.“어쩔 수 없네요. 전 태어날 때부터 이런 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하지만 유진 씨는 요리 솜씨가 뛰어나고 마음도 착하고, 게다가 고용인보다 요리를 더 잘하잖아요.”지금 지아가 자신이 공짜로 일하고 있다고 모욕하는 것을 보고, 유진은 더욱 불쌍한 척했다.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도윤을 바라보았다. ‘도윤 오빠도 이제 나와 소지아의 차이를 느낄 수 있겠지. 난 착하고 부지런하고 부드럽고 다정하지만, 소지아는 그냥 게으른 여자일 뿐이잖아.’도윤은 턱을 높이 들더니 차갑게 말했다.“꺼져.”유진은 화가 나서 심예지를 쳐다보았다.“예지 이모, 도윤 오빠 좀.”그러나 심예지 역시 냉담하게 말했다.“밥도 다 되었으니 그만 돌아가 봐.”유진은 눈을
지아는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비록 많은 음식을 시켰지만, 사실 다 먹지 않았고 그저 가볍게 맛보았다. 그러나 워낙 작은 위 때문에 지아도 많이 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배가 불렀다.심예지는 어이가 없었다.“못 먹겠으면 먹지 마. 한 끼 낭비한다고 이씨 집안이 파산하는 거 아니니까. 설령 파산한다 하더라도 우리와 상관없어.”지아는 멍해졌다. 심예지는 그녀의 상상과 매우 달랐다.“죄송해요, 저는…….” 지아는 입을 오므리며 사실을 말하려 했지만 심예지는 그녀가 다 하지 못한 말을 이어서 말했다.“내가 너를 괴롭힐 것이라 생각하고, 저녁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까 봐 미리 밖에서 먹은 거잖아.”“네, 죄송해요.”“사과할 필요 없어, 난 확실히 널 괴롭히려고 했으니까.”지아는 어이가 없었다.‘내가 생각한 것과 너무 많이 다르잖아.’이 말에 지아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사실 나도 너 때문에 입맛 없을까 봐 미리 먹었어. 만약 배고프지 않으면 나와 함께 걸으면서 소화 좀 하지 그래.”심예지가 먼저 요청을 했기에 지아도 거절할 수 없어 얼른 입을 닦고 일어섰다.“네.”수많은 음식을 차린 큰 식탁에는 도윤 혼자만 남았다. 그는 심예지가 단독으로 지아와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 것을 보고 세 살 때의 트라우마가 떠올라 즉시 지아를 감쌌다.“왜, 내가 네 와이프 잡아먹을까 봐 걱정이야?”“어머니가 지아를 위층에서 밀어낼까 봐요.’“엄마한테 이렇게 말하는 아들이 어딨어? 이럴 줄 알았으면 널 다시 내 배 안으로 집어넣을 걸 그랬어.”“저도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싶지 않았어요.”어릴 때부터 심예지가 도윤을 죽이려 했던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예전에 확실히 잘못을 저질렀지, 인정해. 그때 엄마가 아팠으니까. 지금 난 이미 다 나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거야.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면, 너도 동행해도 돼.”지아는 이렇게 두 모자의 버림을 받았고 다시 앉아서 과일을 조금 먹었다.이때 고용인은 공손하게 그녀의 곁으로 다
도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심예지를 바라보았다.“저희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소식이 참 빠르시군요.”그와 눈을 마주치려면 심예지는 고개를 살짝 들어야 했다. 이 말을 듣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감개무량했다.“내 기억 속에서 너는 줄곧 내 뒤를 따르는 꼬마였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네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어.”그녀는 도윤의 얼굴을 쓰다듬으려고 손을 들었다. 그러나 닿기도 전에 동작을 멈췄다.도윤에 대한 심예지의 감정은 복잡했다. 처음에 그녀는 이 아이가 태어나길 바랐고, 도윤을 이용해 그 남자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매정한 이남수는 그들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고, 심예지는 차츰 도윤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다. 그녀는 단 하루도 어머니 노릇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도윤이 지금 자기 앞에 서 있는 것조차 낯설다고 생각했다.심예지는 겸연쩍게 손을 거두며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너와 예린이는 틀림없이 나를 원망하고 있을 거야. 난 너희들을 사랑한 적이 없으니까.”“지금 이런 말씀을 하시면 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아버지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고, 그렇게 어머니는 아버지의 자식을 낳아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되었죠.”도윤은 말을 할 때 심예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만약 이전의 심예지였다면 진작에 미쳐버렸겠지만, 오늘 그녀는 무척 평온했다.심예지는 완쾌한 게 분명했다. 그녀의 화를 돋구게 하는 사람을 언급해도 심예지는 오히려 평온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깨닫게 되는 법이지. 내가 전반생을 이런 사람 때문에 헛되이 보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가치가 없더라고. 이 2년 동안 나는 묵묵히 너를 주시하고 있었어. 그래서 예린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거야. 그 당시 내가 예린에게 한 일을 생각하면, 예린은 분명히 나란 어머니를 몹시 원망했을 거야. 그래서 분명히 살아있는데도 나를 찾아오지 않는 거겠지.”도윤은 자기가 생전에 심예지의 참회를 들을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이번에 저를 부르신 이유가 유진을 만나게 하기 위해
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인정이 없는 것 같지만, 세 살짜리 아이를 위층에서 던진 모진 어머니로서는 너무 정상이었다.심예지는 자신의 자식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니 남의 자식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렇게 보면 심예지와 이남수는 사실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 이기적인 데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을 철저히 무시하는.심예지는 귓가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넘겼다.“그 아이는 2년 전부터 틈틈이 날 찾아왔어. 때로는 나랑 같이 산책을 했고, 때로는 내 다리까지 주물러줬고. 난 그 아이가 심심해서 그러는 줄 알고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어.”도윤은 어이가 없었다.“심심하신 사람은 어머니인 것 같은데.”심예지는 한번도 현모양처였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악역에 더 근접했다. 전에 이남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심예지는 그 불여우를 많이 괴롭혔다. 물론 마지막에 이남수는 갈수록 그녀와 멀어졌고, 두 사람은 이혼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심예지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이 전에 한 일을 회상했다. 그녀는 예전의 자신이 가소롭게만 여겨졌다. 한 남자를 위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니.“그래, 나도 확실히 심심했지. 하지만 누가 스스로 찾아온 장난감을 거절할 수 있겠어?” 심예지는 웃었다. 그 웃음은 마치 밝은 달이 구름과 안개를 뚫은 것처럼 즉시 하늘을 밝게 비추었다.도윤은 멍해졌다. 그동안 그는 종래로 심예지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한때 그가 가장 바랐던 것이 바로 어머니가 자신에게 웃어주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심예지는 항상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거나 증오의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확실히 납득하신 것 같네요.”“도윤아, 이 엄마를 용서해 주면 안 될까?” 심예지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어릴 적 그녀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자, 심예지는 뜻밖에도 부드럽고 많이 상냥해졌다.그러나 도윤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는 어릴 때 심예지가 자기에게 한 짓을 잊지 않았다.심예지는 한숨을 쉬었다.“그래, 네가 이
도윤의 눈빛은 점점 예리해졌다.“또 무엇을 알고 계신 거죠?”“네 반응을 보니 내가 맞힌 것 같구나. 다른 뜻은 없어. 이번에 만나자는 것도 단순히 너희들이 보고 싶었을 뿐이야. 그러나 조언 하나 해주지. 우리 집안의 사람들은 많은 결점이 있어. 한 사람을 좋아한다면 평생 집착을 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양날의 칼이라 할 수 있지.”심예지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나와 너의 아버지는 모두 너에게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을 가르쳐 주지 않았어. 도윤아, 나는 네가 우리처럼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사랑은 결코 일방적인 일이 아니야. 엄마가 가장 후회되는 것이 바로 그때 네 아버지에게 한 그 일들 때문에 너와 예린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는 것이야.”도윤에게 있어 심예지의 말은 환상과 같았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그에게 이런 말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저는 지아를 잘 챙겨줄 거예요.”잠시 망설이다 도윤은 다시 입을 열었다.“장미 부인을 아신다면, 저 대신 한 가지 일 좀 알아봐 주실 수 있어요? 지아의 신분에 관해서요.”“어?” 심예지는 깜짝 놀랐다.“지아는 소계훈의 딸이 아니에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장미 부인뿐이고요. 국내에 있을 때 누군가가 지아를 수차례 죽이려고 했는데, 저는 그 사람이 지아의 친부와 관련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어요.”“내가 대신 알아봐줄 테니까 이제 지아를 좀 보여줄래?” 심예지는 다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아는 씻고 나오자마자 침대에 앉아 있는 여자를 보았다. 분명히 앉아만 있을 뿐인데, 지아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만 제자리에 몸이 굳어져버리고 말았다.“사모님.”심예지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이리 와.”지아는 천천히 심예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마음 속으로 이미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녀는 심예지가 자기에게 돈을 주며 도윤의 곁에서 떠나라고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도윤 정도의 남자라면, 그의 어머니도 돈을 아주 두툼하게 챙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