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일은 여자의 곁으로 다가간 다음, 약간 초조한 기색을 보였다.“내 딸 지금 당신 손에 있는 거죠?”여자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고, 악귀 모양의 가면은 그녀의 얼굴을 가렸다. 여자는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연주가 끝나면 알려줄게요.”백정일은 용솟음치는 분노를 억지로 참았다. 독충의 사람들이 독하고 악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감히 여자를 자극하지 못했다.여자가 몸을 옆으로 좀 옮기는 것을 보고 백정일은 그녀의 옆에 앉았다.그는 당연히 피아노를 칠 줄 알았지만, 그 수준은 단지 악보를 보고 더듬거리며 한 곡정도 연주할 수 있을 뿐이었다.여자의 인솔하에 이미 오랫동안 건반을 만지지 않았던 백정일은 천천히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가까스로 연주가 끝나자, 그는 계속 물었다.“당신이 내 딸을 납치한 거죠?”여자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당신은 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해 나를 찾아온 것 같은데. 지금 당신의 부인은 아직도 중환자실에 있잖아요?”“그녀를 구할 방법이 있는 건가요?”“물론이죠,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날 찾아온 이유가 없었겠죠?” 여자는 자연스럽게 대답했다.백정일은 이를 듣고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고 오히려 경계하며 물었다.“무슨 조건이 있는 거죠?”여자는 낮은 소리로 웃더니 그에게 다가갔다.“확실히 조건이 하나 있네요.”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백정일은 여자의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를 똑똑히 맡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매우 짙은 장미의 향기였다.그녀가 다가올 때, 꽃향기를 띠고 있는 여자의 머릿결은 저녁 바람에 백정일의 얼굴에 떨어졌고, 백정일은 바로 뒤로 피했다.그러나 여자는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고, 체온은 정상인보다 조금 낮았다.“조건이 뭐죠?”여자는 또박또박 말했다. “나와 하룻밤을 보내는 거예요.”백정일은 눈이 점차 휘둥그레졌는데, 아마 이 여자가 이런 요구를 제기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었다.“뭐, 뭐라고요?” 백정인은 심지어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여자의 손은 점차
이예린은 미스터 Y가 자신의 죄를 물으려고 찾아온 줄 알았지만, 사실상 소시후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냥 그녀를 돌려보냈다.백채원도 이 성에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안 두 사람은 떠나지 않았고, 오정인의 안내에 스위트룸으로 들어갔다.소시후는 방에 도청 설비가 전혀 없다는 것을 검사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이제 마음대로 물어봐도 돼.”“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던 거예요?”“응, 내가 그녀를 구해줬거든. 다만 그때의 그녀는 많이 불쌍했지. 몸이 대부분 화상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절반 이상 화상을 입었기 때문에 처음에 나도 지아 씨가 찾으려는 사람이 그녀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했어.”지아는 아연실색했다.“어쩐지 그녀의 목소리가 좀 이상하더라니.”“그 아이는 화상을 입은 것 외에 몸에 많은 상처가 있었어. 내가 그녀를 주웠을 때, 그녀는 겨우 숨이 붙어있는 상태였고 뼈만 남을 정도로 말랐어. 온몸에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는데, 반년 정도 휴양한 후에야 본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고.”그때를 생각하니 소시후는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반역자를 따라 천웅을 떠났고, 나도 더 이상 이 아이를 본 적이 없었어. 말하자면 나와 그녀도 몇 번 본 적이 없는 것 같군.”지아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그러니까 대표님은…….”“이미 짐작했겠지? 그럼 나도 이제 솔직하게 말할게. 나는 천웅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야. 내가 전에 말한 것처럼, 처음에 나의 초심은 더 많은 사람을 돕는 것이었어. 그러나 일이 뜻밖에도 오늘처럼 될 줄이야. 비록 독충은 이미 스스로 다른 조직을 세웠지만, 그녀들도 감히 천웅과 정면으로 맞설 엄두가 없어. 내 체면을 봐서라도 말이야.”지아는 그제야 상황을 똑똑히 파악했다. ‘내가 무심결에 구한 사람이 뜻밖에도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니.’“이번엔 정말 고마워요. 이제 시간도 늦었으니 먼저 쉬세요. 대표님 휴식하는 거 방해하지 않을게요.”“여기에 남아서 백채원을 찾으
백채원은 마음속으로 엄청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은 더욱 좋은 방법이 없었기에 하는 수없이 사실을 전부 털어놓았다.지아는 자초지종을 들은 다음 안색이 돌변했다.“그러니까, 넌 우리 엄마와 골수가 일치하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근데 왜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 일을 숨긴 거야? 더구나 우리 엄마의 상태가 악화되는 걸 그냥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왜 이제야 이 사실을 밝히려는 거야? 너 정말 양심이 없구나? 내 엄마를 빼앗아 가서 십년 넘게 사랑을 독차지했는데, 왜 또 무슨 불만이 있어? 이게 정당한 이유라고 생각하는 거야?”지아는 생각할수록 화가 났고 그야말로 속이 터질 것 같았다.‘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고 악독한 사람이 있을 수 있지?’“그 십 년 동안 개 한마리를 키웠어도 너보단 훨씬 나았겠지!”백채원은 흐느꼈다.“나도 이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는 것을 알아. 하지만 지금은 이런 말을 할 때가 아니야. 네가 진심으로 나를 구하고 싶다면, 얼른 방법을 생각해서 날 데리고 나가. 나 가능한 한 빨리 엄마한테 골수를 기증해야 한단 말이야. 더 늦으면 큰일 날 거라고.”지아는 백채원의 뺨을 때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으며 심호흡을 하면서 진정을 되찾으려고 했다.“안심해, 널 꼭 구할 테니까. 하지만 이건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엄마를 위해서야. 그리고 지금은 아직 안 돼. 난 여기에 몰래 잠입해 들어왔거든.”백채원은 계속 말했다.“그럼 빨리 우리 아빠 좀 구해줘. 우리 엄마, 아니, 그 여자는 이미 미쳤어. 그녀는 우리 아빠를 후회하게끔 만들기 위해 십여 년이나 기다렸다고!”“그때 우리 아빠는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그녀와 결혼했는데, 기억을 회복한 후, 마음속에는 여전히 우리 엄마밖에 없었거든. 그래서 그 여자는 한을 품고 날 병원에서 훔쳐가 자신의 딸로 키우며 어릴 때부터 나에게 우리 진짜 엄마가 우리 집안을 망친 주모자라고 세뇌했어. 그래서 그녀가 ‘죽은 후’, 난 여전히 원한을 내
지아는 의문을 가지고 재빨리 떠났지만, 소시후는 갑자기 그녀의 입을 막더니 그녀를 끌고 한쪽으로 숨었다.소시후의 몸에는 은은한 훈향이 났기에 지아는 그라는 것을 알고 크게 놀라지 않았고 그저 그가 이러는 이유가 궁금했다.소시후는 지아에게 아래를 바라보라는 눈빛을 주었다.‘밑에 뭐가 있는 거지?’그들은 2층 테라스에 있었고, 1층의 잔디밭에는 어느새 두 사람이 서 있었다.설령 그중 한 사람이 자신을 등지고 있다 하더라도, 지아는 한눈에 상대방을 알아볼 수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이도윤이었다.그리고 그는 몸매가 가녀리고 하얀 치마를 입은 여자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그것은 방금 그들과 만난 이예린이었다.‘이도윤의 목적은 독충을 일망타진하는 것인데, 설마 그는 진작에 그 사람이 바로 이예린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단 말인가?’이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자 지아는 등골이 오싹해졌다.그러나 지아는 또 고개를 저었다. ‘이도윤은 그래도 날 사랑하고 있었으니 틀림없이 이런 일로 날 속이지 않을 거야.’‘이건 그냥 우연일 거야. 그도 최근에 무언가를 눈치챈 거야.’그러나 다음 순간, 지아는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이거 놔!” 이예린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해왔다.“예린아, 너 이예린 맞잖아.” 도윤은 씁쓸하게 말했다.“부인할 필요 없어. 만약 날 관심하지 않았다면, 넌 레오가 날 죽이는 것을 막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지 않았을 테니까. 난 이미 조율과 다시 유전자 검사를 했어.”이예린은 도윤을 등지고 있었고, 가면으로 가린 얼굴은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왜 굳이 날 찾으러 온 건데? 그냥 여동생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라고.”이 말은 즉 자신이 바로 이예린이란 것을 묵인한 것과 다름없었다.위층의 지아는 실망을 느끼며 온몸이 차가워졌다.‘이도윤은 심지어 나보다 더 일찍 이 사실을 알고 있었어.’‘조율의 무덤을 건드린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도윤이었어.’‘근데 웃기게도 그는 줄곧 날 속이고 있었다니. 심지어 내가 진실을 조사하는
지아는 계속 듣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려 떠났다.그곳에 남아있는 그 자체가 바로 그녀 자신에 대한 모욕이었다. ‘그동안 이도윤에 대한 나의 사랑, 정말 보잘것없군.’비록 이예린은 소씨 집안과 지아의 인생을 망쳤지만, 도윤은 여전히 그녀를 자신의 착한 여동생이라 여기고 있었다.지아는 그날 밤 이예린이 자신에게 독약 주사를 놓아주려고 한 일을 떠올렸다. 그녀는 하마터면 이 세상을 떠날 뻔했다.그래서 아래층에 있는 도윤이 숨 쉬는 것조차 지아는 징그럽다고 느꼈다.‘전에 내 앞에서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 대신 끝까지 조사할 거라고 말했지만, 결국 증거를 없애버려 내가 영원히 진실을 알 수 없게 하려고 작정했던 거야.’‘이게 바로 이도윤의 진심이란 말인가?’지아는 떠날 때 테라스에서 돌을 하나 주웠는데, 한순간, 그녀는 정말 도윤의 머리에 그 돌을 던지고 싶었다.지아는 심호흡을 하며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떠났다.이예린의 목소리는 전보다 많이 굵어졌고, 이번에 그녀는 위장하지 않았다.“네 여동생은 이미 죽었어. 지금 네 앞에 있는 난 단지 시체일 뿐이야.”이예린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감정도 없었다. 도윤은 어릴 때의 이예린이 무척 귀엽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분명히 꽃 같은 나이의 소녀인데, 왜 죽어가는 사람처럼 말을 하는 것일까?’“예린아, 너 내 동생 맞잖아. 오빠한테 말해봐. 그동안 왜 집에 돌아오지 않은 거지? 그리고 분명히 지아가 네 새언니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왜 또 그런 일을 한 거야?”이예린은 그에게서 벗어났다.“다 내가 한 거 맞으니까 그녀를 위해 복수하고 싶다면 그냥 날 죽여. 어차피 나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으니까.”말을 마치자 이예린은 목을 꼿꼿이 치켜세웠고 두려운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도윤은 더욱 어리둥절해졌다.“넌 지아와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 왜 소씨 집안을 망치려고 한 거지?”요 며칠 도윤은 머릿속으로 이예린과 다시 만나는 장면을 수도 없이 상상해왔지만 유독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이예린은 심지
백정일은 아직 여기에 있었기에, 이 결정적인 순간에 도윤은 백정일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이예린을 자극하지 않았다.이예린을 만났을 때의 모든 복잡한 감정은 결국 실망으로 변했다. 도윤은 어릴 때 분명히 그렇게 귀여운 여자애가 어떻게 오늘처럼 변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너 성형했어?”심지어 이예린보다 조율이 더 이씨 집안사람 같았다. 도윤은 지금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았다.“응.” 이예린은 오히려 솔직하게 말했다. 도윤이 묻는 한, 그녀는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왜?”그녀는 도윤의 시선을 피했다.“이제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여긴 안전한 곳이 아니니까 그만 떠나고, 날 본 적 없는 걸로 해”하지만 도윤은 이예린의 앞을 가로막았다.“넌 집에 돌아가려 하지도, 나란 오빠를 인정하려 하지도 않고 심지어 지아에게 상처까지 줬어. 그러니 적어도 설명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무엇 때문에 억울한 사람들을 죽인 거지? 넌 어렸을 때 기르던 새끼 고양이가 죽어도 슬퍼서 며칠 동안 밥을 먹지 않았잖아. 근데 어떻게 지금 이런 모습으로 된 거지?”도윤은 그때 이예린이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후에 지아가 줄곧 기르던 하루조차 데려오지 못하게 했다. 그 슬픈 일을 떠올릴까 봐.이예린은 가볍게 웃었다.“내가 정말 고양이가 죽었기 때문에 슬퍼한 거라 생각한 거야?”그녀는 턱을 치켜들며 입가에 도윤이 본 적이 없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내가 새끼 고양이에게 수면제를 먹였거든. 매일 밤 울부짖어서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 근데 정말 아깝군. 겨우 약을 3일 먹였을 뿐인데 바로 죽었다니.”지금의 이예린은 그 익숙한 눈동자 외에 완전히 낯선 사람 같았다!그래서 그녀는 도윤의 곁에 몇 년 동안이나 있었지만, 그는 알아보지 못했다.“왜 죽인 거야? 싫으면 그냥 남에게 주면 되잖아.”“그럼 누가 나랑 놀아주는데? 오빠는 그때 무척 바쁘지, 엄마는 또 가끔 정신병이 발작하지, 아빠는 일 년 내내 얼굴조차
이예린은 도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응, 그런 괴로운 나날을 참을 만큼 참았으니까. 그래서 도망갔어. 바깥 세상을 보러 가고 싶었다고. 다만 그때의 나는 여전히 순진했고, 이 세상에 엄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모두 착하다고 생각했어…….”여기까지 말하자 그녀는 멈추더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도윤은 계속 물었다.“설사 어머니가 널 괴롭혔다 하더라도, 지아는 무슨 죄가 있는 거지? 그녀를 그렇게 괴롭힌 이유가 대체 뭐야?”“지아, 지아, 그놈의 지아.” 이 이름을 듣자 이예린의 눈빛은 갑자기 으스스해졌다.그녀는 흥분해지더니 심지어 도윤의 옷깃까지 잡아당겼다.“내가 오빠 찾으러 돌아간 적이 없을 거 같아? 그때 오빠 눈에는 나란 여동생이 있긴 한 거냐고? 오빠 마음속에는 그녀밖에 없었지. 난 오빠가 그녀에게 웃고, 그녀를 아끼는 모습을 보았어. 마치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그녀는 얼마나 행복하게 웃던지…….”억지로 참았던 눈물은 이 순간 뺨을 따라 떨어졌고, 이예린은 소리를 질렀다.“오빠는 내가 그동안 어떤 나날을 보냈는지 알아? 오빠를 다시 볼 수 있기 위해 내가 무엇을 겪었는지 아냐고?”따뜻한 눈물은 도윤의 손등에 떨어졌다.“내가 그 어두운 굴레에서 도망쳐 나와 목숨을 걸고 오빠를 찾으러 갈 때, 오빠는 오히려 그 소지아만 사랑했어. 분명히 내가 오빠의 가족인데 말이야. 오직 나만이 오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이예린은 편집증적인 모습을 드러냈고, 도윤은 그 모습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는 자학적인 어머니에게서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발병할 때마다 이예린과 같은 눈빛을 보였다.정신병은 유전될 수 있었고, 이예린은 또 어릴 때부터 줄곧 어머니의 학대 속에서 자랐다. ‘설마 그녀에게도 이런 증상이 생긴 건가?’“예린아, 넌 내 여동생이자 내 가족이고, 지아는 내 아내이자 네 새언니이니 그녀도 너의 가족이지. 넌 그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사랑해야 해.”“사랑? 내가
뽀얀 피부와 대조를 이룬 그 상처는 무척 끔찍해 보였다. 도윤은 즉시 이예린의 소매를 위로 걷어 올렸다. 팔 전체에 상처가 있는 것을 보자 그는 또 그녀의 다른 손을 살폈다.도윤을 놀라게 한 그것은 그 한두 개의 흉터뿐만 아니었는데, 이예린이 일부 화상까지 입었단 것이었다. 피부에 가득한 그 구불구불한 흉터는 보기만 해도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어쩌다 이렇게 다친 거야?”이예린은 맹렬하게 도윤에게서 벗어났고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오빠와 상관없어. 날 죽이지 않을 거면 난 이제 떠날 거야. 앞으로 내가 죽든 살든, 오빠와 상관없는 일이라고.”말을 마치자 이예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고, 도윤은 막고 싶었지만 막지 못했다.그는 지금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요 몇 년 동안 예린은 밖에서 도대체 무엇을 겪은 거야?’……방안의 지아는 어두운 얼굴로 말을 하지 않았고, 그저 물끄러미 자신의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소시후는 작은 소리로 물었다.“이제 볼일 다 봤겠지? 이곳은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니 내가 바래다 줄게.”지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무슨 일인데?”“대표님, 날 도와 백채원을 구해 주실 수 있나요?”소시후는 고개를 저었다.“지아 씨는 어머니를 구하고 싶은 거지? 백채원의 골수가 지아 씨 어머니와 일치하더라도 그녀는 병원의 요구대로 정상적인 상태에서 기증해야만 하거든. 지금의 백채원은 거의 죽어가고 있었으니 신체기능은 일반인과 비교할 수가 없지. 이런 상태에서 다시 골수를 기증하는 것은 그녀를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야. 지아 씨도 의대 나왔으니 나보다 더 잘 알 텐데.”“만약 지아 씨 어머니에게 남은 시간이 아직 좀 있다면, 백채원이 회복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지만, 지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가장 좋은 방법은 백채원의 목숨으로 지아 씨 어머니의 목숨을 살리는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아 씨 어머니는 반드시 나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지